성경해석과 교리이해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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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과 교리이해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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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배우는 학생으로서 답변의 기회가 있어 답변을 달았습니다. 잘못된 부분이나 잘못 배운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교리적인 대화나 글을 쓴다는 것이 매우 흔치 않은 일인데, 써보면서 익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아서 한 번 더 올려봅니다.


위의 답변자들께서도 언급하셨듯이, 호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에서 질문자의 의문과 비슷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내 백석이 지식이 없다했는데, 여기의 내 백성이 지식이 없는 무뇌자임을 말씀하지 않고, 인생 수많은 지식을 가진진 자이나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벧후2:12의 말씀이나 호4:6의 말씀이나 전후의 문맥을 살피면 누구나 그 말씀의 요점과 방향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단지 질문자께서는 독해가 안되어 질문을 한 것이 아니라, 영과 마음과 몸이라는 교리의 논리성에 대해서 의문을 품으신 것일 겁니다.


1. 의사소통의 기능으로서의 말과 글

언어란 기본적으로 말하는 자의 사상과 의사와 감정을 전달하는 목적과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듣는 자, 읽는 자는 글쓴이가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문자와 언어의 행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 언어가 그 표현의 한계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문자를 문자 그대로 독해를 해버린다면,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에는 이 결혼 허락을 못한다”하면 “아~어머님 눈에 흙을 넣어 드려야 결혼을 허락하신다는 말이구나” 하며 어머님 눈에 얼른 흙을 넣어 드린다면 이 사람은 말귀를 못 알아듣는 정신 나간 사람이지 정상은 아닐 것입니다. 또, “문닫고 들어와라”할 때, 문을 먼저 닫고 들어 가려한다면 아마도 이마가 깨지든지 문이 박살나든지 하는 코미디가 연출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하는 자, 글쓴이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이 언어의 기본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영어가 늦고 안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에 대해서 신경을 쓰기 보다는, 지금 말하고 있는데 “주어는 뭐지? 동사는 뭐지? 목적어는 뭐지? 시제가 지금 어떻게 되지?” 하다가 말하는 사람의 의중을 놓쳐 버리고 더 이상의 대화가 어렵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을 할 때도 내가 이 말을 하고 싶은데 “주어는 뭘로 잡지? 동사는 뭘로 하지? 이게 시제가 맞나?” 하다보면 상대방은 이미 저 멀리 제 갈 길을 갑니다. 뒤통수에 대고 혼자 주어 동사 맞추다 그냥 집에 가는 수 밖에 없는 것이죠.


2.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의 성경 저작 목적과 의중을 확정하기

성경을 읽을 때도 성경을 써주신 하나님의 목적과 의중을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성경은 66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더 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이 완전한 단일의 목적으로 주신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을 인간에게 주신 이유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인간에게 인간의 몸으로 오신 이유는 하나이니,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전부를 받아 가질 하나님 닮은 하나님의 자녀를 만드시는 것입니다.


택한 자의 구원이라는 성경을 쓰신 하나님의 목적과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고, 별도의 목적을 위해서 성경을 읽고 해석하게 되면, 그때부터 탈선이 생기게 됩니다. 과거 교회사의 수많은 이단들이 그러했고, 현대의 신신학자들도 마찮가지입니다. 아니면 예수님을 부인하고 성경의 가치를 세계의 고전이나 종교서적 또는 어느 한 문화 한 민족의 역사와 통치에 관련된 이데올로기 등으로 저급하게 취급해 버릴 수 있습니다. 또한 구원론적인 시각의 해석 이외의 다른 해석과 적용이 이미도 넘처 나는 세상입니다. 아쉬운 것은 다양한 신학의 이론들이 현대 인문학의 학문 학위 체계를 거치면 그 내용이 반 성경적 반 구원적인 신학이 아니라 이전보다 더 권위적이며 더 세련되며 더 신뢰할 만한 안정성을 확보하게 됩니다.


성경을 가진 현대의 대다수의 교회가 세상 도덕의 잣대를 가지고 살펴도 더 이상 종교라고 할 수 없는 세상보다 더 세상이 되었으니, 차라리 구원이니 천국이니 하면서 자기들끼리만 잘먹고 잘사는 장사하지 말고, 성경을 세상 정의의 도구로, 인간의 사랑과 자유와 평화를 지지하는, 문화를 지지하고, 인류 보편선을 지지하고, 정권을 지지하고, 그렇게라도 써 먹어야 그나마 세상의 인정을 받아 직장도 얻고 세력도 얻고 명성도 얻고, 이제는 좀 고급스럽게 인류를 위한 사업을 해야 교회도 유지되고 선교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두가 하나님이 성경을 쓰시고 말씀하시는 그 목적과 의중을 읽지 못하고, 너는 너 말하고 나는 내말하겠다는, 상대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내 말과 내 뜻을 가지고 상대의 말을 꺽기 위해서 듣는 경우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목적과 의중을 벗어나고 오해한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구원론의 시각을 가지고, 구원론적 시각의 성경 해석으로는 현대 사회와 더불어 살기 힘들고 세상과의 의사 소통이 문제가 있고 선교에 막대한 지장이 있으니, 교회가 구원론적 성경해석 이외의 환경보호 중심의 성경해석도 가지고, 인류 복지 중심의 성경해석도 가지고, 정치사상 중심의 성경해석도, 사회학적 성경해석도, 동성애자를 위한 성경해석도, 부자를 위한 성경해석도, 가난한 자를 위한 성경해석도, 애완견을 위한 성경해석도...세상 오만가지 욕구와 요구에 성경을 들이대고 거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는,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구원론적 성경해석의 시각을 통해서, 이 세상 무엇이든, 어느 곳이든, 어느 시대든, 어떤 형편과 상황이든지 다 상대할 수 있고 해결할 수 있고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자칫 사회변혁을 위한 방편으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적용하게 되면, 성경이 말하는 성경이 아니라, 사회변혁을 위한 수많은 이론적 배경 가운데, 하나의 번호달린 각주로 성경은 전락하고 이용을 당합니다. 사회학이 성경을 이리도 저리도 사용하고 요리하지, 성경은 사회학을 이렇게 저렇게 할 수 없게 됩니다. 똑같이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십자가 구원 천국을 말하는데, 그 모두 위에, 하나님 보다 더 높은 위에 세상이 있어 성경을 가지고 노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3. 성경해석에 대한 개인적 의견

기독교 정통 보수라 불리는 대다수 교회가 타락한 사회로 부터 비판과 욕을 먹고 이유없이(?) 지탄을 받다 보니, 정통 보수의 신앙적 유산도 총체적으로 신뢰를 잃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총공회의 교리도 이론과 말뿐인 그 밥의 그 반찬이라는 말대로 취급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하더라도, 성경해석의 보수 정통의 방법을 통해서 성경을 읽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이고(구원론적 시각 때문), 총공회 백목사님의 성경해석의 입장을 참고 한다면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한가지는, 총공회의 교리가 백영희 목사님의 특별한 신앙자세와 순생 순교를 통해 나온 교리여서, 일반의 사람으로서 그 교리의 연구와 전인적 이해는 매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실행 실천의 교리이며 순교의 교리이기에, 대충의 성경 지식으로 훝어 보면 대충 이해가 가는 것 같으나, 그 교리 도출의 외부적 내부적 상황과 투쟁과 연구와 노력과 실천은 목숨을 내놓는 노력과 실행과 연구에서 나온 것이라, 굉장히 어렵고 고통스러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밥을 맛있게 먹지만, 볍씨를 틔우고, 모판을 준비하고 모를 기르고, 논에 물을 대고 모내기를 하고, 한여름 땡볕에도 잡초를 뽑고, 농약을 하며 자기가 직접 땀을 흘리고 수고해서, 직접 길러 먹는 사람의 밥맛과 느낌과 생각이, 수퍼에서 사다 먹는 사람과는 전혀 틀릴 것입니다. 그러니 총공회 교리의 전인적 이해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며...


10만 페이지가 넘는 백목사님의 설교는 하나 하나씩 은혜를 받으며 참고해 갈 수 있지만, 그 방대한 설교록을 다 볼 수 없으니, 한권으로 살필 수 있는, 핵심적인 교리 내용을 살필 수 있도록 이영인 목사님 저 “백영희 조직신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으로 전반을 살피면서 성경을 읽는 다면, 교리 이해 측면에 큰 유익이 있으리라 봅니다.


>> 외부제자 님이 쓰신 내용 <<

:

: 총공회 교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함께 고민을 해보며 배운바를 정리해 봤습니다.

:

: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은 자는 단번에 영원히 완전히 죄사함과 중생을 받고 천국을 갑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기본 진리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은 이후에도 우리는 옛사람의 악성 악습의 죄가 여전히 내 속에서 역사하고 죄를 짓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죄를 짓는 자신을 보며 과거의 원죄와 본죄의 값으로 지옥을 가야하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고 천국을 가게 되었는데, 예수 믿은 이후에 계속 되는 죄에 대해 양심의 고통을 느끼며 절망하고 낙망하게 되고, 믿은 이후의 죄와의 투쟁과 말씀 순종의 노력에 대한 가치성과 의미를 상실합니다.

:

: 그 절망과 낙망 속에서 보통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첫째는, 내가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는 믿음은 아직은 주관적인 착각일 뿐이다.

: 둘째는, 요일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한다 했는데, 예수 믿은 이후에도 계속 죄를 지으니 나는 원래 택함받은 사람이 아니다.

: 셋째는, 예수 믿고 구원 얻은 것은 사실이나 히6:4-6에서와 같이 다시는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는 타락한 사람이 되어 구원이 상실되어 다시 지옥 갈 죄인이 되었다.

:

: 이상의 논리로 본다면 성경상의 바울도 다윗도 베드로도 그 누구도 구원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믿은 이후 바울도 나는 죄인의 괴수며 자신 속의 죄의 법과 성령의 법이 날마다 싸우며 투쟁한다고 고백을 한 것을 압니다. 베드로도 믿은 이후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을 주로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다가 바로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사탄이 되기도 했습니다. 성경의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다가 순간 악령의 인도를 받다가 하는 반복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바울의 죄 투쟁의 수준과 일반의 죄 투쟁의 수준과 종류는 무한히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 그렇다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한다 했는데, 모세도 바울도 베드로도 다윗도 아브라함도 믿은 이후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면, 과연 범죄치 안는 자가 반드시 있는데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 범죄치 않는 자는 중생된 영이며 새사람입니다.

: 믿은 이후, 중생 이후 우리의 영은 범죄치 않고, 우리의 마음과 몸이 죄를 짓습니다. 중생 이후 우리의 마음이 중생된 영에 순종하면 영생의 것이 되고, 악령에 순종을 하면 모두 지옥불에 떨어질 심판의 요소가 됩니다. 이때의 사람의 마음과 혼이 짐승의 마음과 혼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 이러한 선상에서 질문자께서 벧후2:12의 “이성 없는 짐승”의 구절을 통해서 짐승의 이성이 없다면 사람과 짐승의 마음과 혼이 같다는 교리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 된 것 같습니다. 마음과 혼과 이성은 짐승에게 없는 것이고, 사람과 짐승을 구별하는 요소이니, 사람의 마음과 혼과 이성은 짐승의 마음과 혼과 이성과는 전혀 다른 영이 아니겠냐는 생각이 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요일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한다 했는데, 믿은 이후에도 계속 죄를 지은 우리와 성경의 성도들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아닌 불택자가 되는 해결없는 혼동이 계속 됩니다.

:

: 혼란과 혼동 속에서 확정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완전자의 말씀이며 한 치의 오차나 오류 없는 완전한 말씀입니다. 말씀의 한 획도 필요 없는 것이 없으며,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말씀의 가치의 상대성이 있는 것도 아니며, 우리의 구원에 더하거나 덜하거나 할 것이 없는 완전한 말씀이 성경입니다. 그렇다면 한 번 받은 구원도 중생도 완전하며,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범죄치 않는다는 말씀도 모두 다 오류 없는 완전한 말씀이라 확정할 수 있습니다.

:

: 성경을 오류 없는 진리의 말씀으로 볼 때, 벧후 2:12의 “이성 없는 짐승”과 “이성 없는 짐승과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에서의 이성은, 마치 북한 공산주의의 이성과 자본주의 남한의 이성이 다른 것과 비교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옳고 그름이라는 이성의 잣대를 가지고 남한을 볼 때, 남한은 이성이 없는 미치광이 이고, 남한의 이성으로 북한의 전반을 볼 땐 이성을 잃은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

: 하나님이 가지시고 계시해 주신 옳고 그름과 선악이라는 이성을 통해서 악령과 불택자의 이성을 볼 때, 그것은 마치 이성이 없는 미치광이로 보여집니다. 세상 불신자의 이성으로 만들어진 철학과 종교와 세상이 추구하고 연구하는 인간의 모든 이성의 산물은 불신 인간과 악령의 이성으로 존재하지만 죄 아래 있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적하는 “이성 없는 짐승”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짐승에게 이성이 없다는 벧후2:12의 표현은 짐승에게 마음, 혼, 이성이라는 요소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상대하여 비교할 때 이성이 없는것과 같다고 보여지는 부분을 가지고 없다고 표현한 것이지, 짐승에게 마음이나 혼이나 좋고 싫은 이성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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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각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자기에고 좋고 나쁘면 선악이라는 구분과 판정을 통해서 이성이 작동을 하고, 나에게 좋고 옳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자비한 폭력과 살인과 독재를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이성이니, 이런 정도의 인간 이성의 그 이상은 동물에게서 살펴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만 보더라도 주인을 따르고 주인의 기분을 살피고 자신에게 무엇을 시키고 요구하는지를 파악하고, 아무리 주인이라도 자신에게 싫고 해가 되는 행동을 하면 주인을 물수도 있는 이성이 있는 것이 동물이기도 합니다.

:

: 자연현상을 통해서도 자세히 살피면 동물에게나 인간에게나 이성이 존재하는 것을 분명히 발결할 수 있고, 이성 없는 짐승이라는 표현은 상대적이고 비교적인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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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도서 3:21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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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1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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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네요... 없다는 말에는 없어서 없는 것도 있고 약한 것을 없다 하는 것도 있고 또 있어도 잘못됨을 말하는 경우도 있네요. 찾아보려면 너무 많은데 몇 곳만 봤습니다. 좋은 의견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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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린도후서 11:23

: :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 :

: : 데살로니가전서 5:14

: :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 :

: : 에베소서 4:19

: :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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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성경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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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어떤 사람이 아주 엉뚱한 행동을 하면

: : :

: : : "이 사람이 정신이 있나? 없나?" 라고 말하곤 합니다.

: : :

: : : 이때 사람보고 정신이 없다고 할 때

: : : 그 사람의 마음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 : : 오히려 논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함을

: : : 지적하는 표현입니다.

: : :

: : : 벧후 2:12의 이성없는 짐승을 말할 때

: : : 헬라어 원문과 영어 번역 성경을 참고하면 도움이 됩니다.

: : :

: : : ESV 2 Peter 2:12 But these, like irrational animals, creatures of instinct,

: : : NAS 2 Peter 2:12 But these, like unreasoning animals,

: : : NIV 2 Peter 2:12 They are like brute beasts, creatures of instinct,

: : :

: : : 결론적으로 벧후 2:12, 유 1:10 등의 "이성없는 짐승"은

: : : 짐승에게 이성(마음)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an animal without reason)는 것이라기 보다는

: : : 매우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짐승도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요소는 있지만

: : :

: : : 그 마음으로 인간이 하는 것과 같은

: : :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정신작용"이 없음을 표현하는 것 같네요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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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yilee 님이 쓰신 내용 <<

: : : :

: : : : 이 노선의 교리 체계를 어느 정도 파악했다면 벧후2:12 성구는 해결이 가능할 듯합니다.

: : : : 교리는 체계화 된 성경 깨달음을 말하니 체계화는 몸이라는 말이고 교통 사고 현장에서 인체로부터 떨어 져 나온 한 부분이 발견 되었다면 어떻게 맞춰 봐도 결국은 맞아 질 것입니다. 해부학 전공자는 바로 알아 볼 것이고 우리처럼 모르는 사람은 한참 뒤적일 것이나 그렇게 어려울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 : : :

: : : : 다 함께 배우고 함께 발전하자는 뜻에서, 또 배우되 따르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평소 답변하는 전담자 외에 다른 분들의 지도나 의견을 구합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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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신학 님이 쓰신 내용 <<

: : : : :

: : : : : 베드로후서 2:12

: : : : :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 : : : :

: : : : :

: : : : : 백영희 교리체계의 특징 중에 특징은 사람의 마음을 영적 존재로 보지 않고 물질로 본다는 것인데는 이는 파격적이며 누구와 대화해도 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가 벧후2:12을 보며 의문이 듭니다. 짐승에게는 이성이 없다고 했습니다. 백영희 교리는 마음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같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또 이성이나 생각이나 양심이나 이런 것을 영이 아니고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 : : : :

: : : : : 베드로후서 2장 12절에서 '이성 없는 짐승'은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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