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시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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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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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1 12:51
유1:9, 모세 시체를 두고 다툰 내용에 대해 설교록에서 간단히 찾아 주셨으면
백영희의 해석
출처 : 84.8.31금밤, 11.5월새, 11.20금새, 87.8.9주새 89.4.17월새
* 하나님의 결정을 염두
마귀를 미워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마귀를 미워하고 정죄하는 것은 여전 하나님의 승리를 넓게 궁극적으로 생각하면 원망하는 것입니다... 천사장 미가엘은 모세의 시체에 대해서 마귀로 더불어 다툴 때에 너 하는 일은 그거는 잘못하는 일이다 그렇게 말했지 거게 대해서 미워하거나 정죄하는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 최종 책임은 하나님께
미가엘 천사가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꾸짖으시기를 원한다' 말은 너 하는 일이 잘못됐으니까 하나님이 손을 떼도록 도와 주셨으면 좋겠다 이렇게 했지 저주나 책망을 안했습니다.
* 저주 처단은 하나님만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를 가지고 시비할 때에 마귀를 저주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너를 꾸짖으시리라' 네가 잘못된 것을 하나님이 너에게 알려주리라 한 말이지 저주한 거 아닙니다.
* 냉정해도 지혜롭게
나쁜 행위라도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거는 아니라 하라” 이거는 틀렸다 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냉정스러운 것이요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 보여 주신 그대로만
모세의 시체를 두고 사탄으로 시비할 때 미가엘 천사장이 사탄에게 대해서 미워하거나 대적하지 않고 성경 대로 “옳은 거는 옳다 아닌 거는 아니라 하라” 그대로 ‘하나님이 너를 노여워하실 것이다’ 요렇게 책임을 지우고 자기가 책임지지 안했습니다.
* 경거만동은 늘 조심
우리는 주권자가 있으니 피조물들이 이렇게 저렇게 나타나는 것만 보고 속단하고 경거망동하면 그분에게 거슬려집니다. 모세의 시체에 대해서 사탄과 시비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말을 하지 안하고 하나님이 네 잘못된 데 대해서 판단해서 꾸짖으시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 모세에게 있었던 문제
그거 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광대하신 계획이 뭐인지 모르면서 속단적으로 경솔하면 안 됩니다. 미가엘 천사장이 모세의 시체에 대해서, 서로 신강할 때 사탄은 시체를 안 줄라고 하고 미가엘은 시체를 하나님에게 귀속시킬라고 하는 시비 원인이 과거에 한번 있었습니다.
출처 : 84.8.31금밤, 11.5월새, 11.20금새, 87.8.9주새 89.4.17월새
* 하나님의 결정을 염두
마귀를 미워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마귀를 미워하고 정죄하는 것은 여전 하나님의 승리를 넓게 궁극적으로 생각하면 원망하는 것입니다... 천사장 미가엘은 모세의 시체에 대해서 마귀로 더불어 다툴 때에 너 하는 일은 그거는 잘못하는 일이다 그렇게 말했지 거게 대해서 미워하거나 정죄하는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 최종 책임은 하나님께
미가엘 천사가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꾸짖으시기를 원한다' 말은 너 하는 일이 잘못됐으니까 하나님이 손을 떼도록 도와 주셨으면 좋겠다 이렇게 했지 저주나 책망을 안했습니다.
* 저주 처단은 하나님만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를 가지고 시비할 때에 마귀를 저주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너를 꾸짖으시리라' 네가 잘못된 것을 하나님이 너에게 알려주리라 한 말이지 저주한 거 아닙니다.
* 냉정해도 지혜롭게
나쁜 행위라도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거는 아니라 하라” 이거는 틀렸다 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냉정스러운 것이요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 보여 주신 그대로만
모세의 시체를 두고 사탄으로 시비할 때 미가엘 천사장이 사탄에게 대해서 미워하거나 대적하지 않고 성경 대로 “옳은 거는 옳다 아닌 거는 아니라 하라” 그대로 ‘하나님이 너를 노여워하실 것이다’ 요렇게 책임을 지우고 자기가 책임지지 안했습니다.
* 경거만동은 늘 조심
우리는 주권자가 있으니 피조물들이 이렇게 저렇게 나타나는 것만 보고 속단하고 경거망동하면 그분에게 거슬려집니다. 모세의 시체에 대해서 사탄과 시비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말을 하지 안하고 하나님이 네 잘못된 데 대해서 판단해서 꾸짖으시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 모세에게 있었던 문제
그거 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광대하신 계획이 뭐인지 모르면서 속단적으로 경솔하면 안 됩니다. 미가엘 천사장이 모세의 시체에 대해서, 서로 신강할 때 사탄은 시체를 안 줄라고 하고 미가엘은 시체를 하나님에게 귀속시킬라고 하는 시비 원인이 과거에 한번 있었습니다.
성경과 신앙의 '연구 자세와 방법'
1. 자료의 의미
84년에서 89년까지 걸쳐 나온 내용이라는 것은 목사님 마음 속에 평소 있던 내용
2. 우선, 넓게 보면
실무적으로 일을 하다 보면 충성이 넘쳐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잊을 수 있으니, 항상 하나님의 최종 결정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그 범위 안에서 충성하고 표현하고 판단하는 것을 보여 주심
3. 구체적으로
모세의 죽음은 요단강을 건너지 못한 것으로 그 죽음에는 죄 문제가 있었고, 그 죄는 죄의 주인 사단이 연고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죄악 세상 타락한 세상에 공중의 권세 잡은 사단의 권리인데, 모세가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 최종 성공에 실패한 것이 시체이고 그 사망의 결과는 사단이 죄와 사망의 주인이므로 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 모세가 불순종 했고 그로 인해 모세가 일반 성도의 죽음이 아니고 의인들의 성공적 죽음도 아니고 실패한 죽음으로 끝낸 그 것조차 하나님은 구원 역사의 큰 범위에서 그렇게 했으니 미가엘 천사는 그 뜻을 넘지 않고, 동시에 모세의 생애를 가져 가는 주장을 했으니 이 것이 천사의 직무 수행이며, 힘으로만 한다면 사단을 이길 수 있으나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힘으로만 해결하지 않고 공의 앞에 옳게만 할 수 있는 것
4. 성경 연구
목회자를 비롯 이 노선을 좀 아는 분들은 성경과 신앙 현실의 사안들을 두고 막히는 것이 있을 때 즉문즉답으로 헤쳐 나가려 하는 경향이 있다. 설교록을 검색해서 바로 답을 찾아 내야 직성이 풀리고 답이 잘 나오지 않으면 알려 줄 사람에게 바로 질문을 한다. 그렇게 하면 우선은 빠르지만 배워 가는 자세에 문제가 있다. 문제가 있으면 일단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스스로 답을 구성'해 봐야 한다. 옳은가 아닌가? 왜 옳은가? 왜 전원일치라야 하는가? 소송금지가 정말 무제한인가? 성경 교리 생활 교회 운영까지 일일이 살펴 봐야 한다.
확정적인 답이 나오면 그대로 확정하는 것이 양심이다. 그 양심은 비록 틀렸을지라도 다음에 자라 가는 경험이 된다. 물론 자기 확정에 자기가 감당 못할 일이 따르거나 남에게 피해가 될 때는 아는 사람에게 물어 봐야 한다. 어떤 분들은 수도 없이 물어 본다. 현대화 효율화가 몸에 배어 있어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수백 수천 번을 질문하고 안내를 받은 뒤 감사하며 뿌듯해 하는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답을 안내하면서 자세를 고치도록 여러 번을 부탁했다. 그래도 빨리 해 치워야 하는 우리의 민족적 특성이 있다. 무조건 속사포 질문만 쏟아 낸다. 이런 분들은 남 보기에는 제일 많이 배운 듯하나 실제로는 전혀 아는 것이 없게 된다. 빨리 끓는 물이 빨리 식는다고 했든가? 그렇게 열정적인 사람들이 순서적으로 먼저 나갔다. 대구에서 타 교단으로 가서 엄청나게 성공한 분이 제대 후 이 노선을 알고 목사님께 배울 때 하루아침에 끝장을 낼 기세였다. 목사님 사후 먼저 나갔다.
연구소 안에서도 배우려 노력하지 않고 묻지도 않고 마치 아는 것처럼 버틴 분들은 자기들이 모른다는 표시를 내지 않는다. 체면 위신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끝까지 표 없이 배웠고 그리고 아는 척했다. 그런데 오늘 이 노선의 가장 초보조차 엉망이다. 오늘의 결과는 갑작스런 것이 아니라 필연이다.
성경과 신앙의 모든 문제를 만날 때는 반드시 자기가 답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 신앙이 생명성으로 자라 간다. 자신이 없거나 파장이 큰 것은 검토를 받고, 맞춰 보는 것이 좋다. 모세의 시체에 대해 오랜 세월 그냥 잊고 있다가 궁금했고 먼저 답을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방금 맞춰 봤다. 과거에도 목사님의 이 설명하신 것이 기억이 났고 당시 목사님의 해석이 다른 성구처럼 명확하지 않고 약간 흐리고 지나 갈 때가 있는데 이 번 자료에서도 그러했다. 그대신 자료를 찾아 주기 전에 미리 답을 마련해 봤고 이제 자료와 맞춰 봤다. 직접 자료를 찾으면 답이 보이게 되면서 내가 자라지 않고 나의 연구 자세와 방법에 문제가 있다. 자료와 같은 부분은 과거 배웠기 때문에 제 속에 있다가 나왔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명확하게 한 것은 이 번이 처음이다.
연구소를 찾는 이 곳의 모든 분들, 공회의 모든 분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 함께 가면 참 좋겠다. 하나 알게 되자 평생 '퍼뜩' 생각이 나면 자기 생각은 전부 성령이 가르친 것이라고 고함을 질러 버리면 지금 중국에 갔다가 서울에서 교계 활동을 하는 그런 분처럼 된다. 주일학교 신발 주머니가 공회 교리라고 출간까지 해 버렸다. 또 공회와 연구소 안에서 몇십 년을 배우고도 자기 연구와 발표와 대조를 기피한 분들은 자존심 하나에 자기를 아주 멀리 내버렸다.
수많은 세월에 모두가 요리 된 최종 안내만을 검색으로 활용하며 즉석 해결을 한 것이 연구소의 자료화에 단점이다. 자료화란 자기 연구의 끝에 맞춰 보라는 안내서다. 학생이 수학 문제를 답부터 보고 풀면 평생 모른다. 자기 연구가 없는 사람은 얻어 가질 것이 적어 지면서 환경의 충격이 가해지면 어느 날 탈퇴를 한다. 송용조처럼 양심가는 탈퇴라도 한다. 송용조 탈퇴 때 비양심이라며 마이크를 잡고 분투한 인물은 오늘도 공회를 나간다 해놓고 부동산이나 조직에 연연하여 자리를 버티고 있다. 부산서부교회 강단도 그 비슷하다.
1. 자료의 의미
84년에서 89년까지 걸쳐 나온 내용이라는 것은 목사님 마음 속에 평소 있던 내용
2. 우선, 넓게 보면
실무적으로 일을 하다 보면 충성이 넘쳐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잊을 수 있으니, 항상 하나님의 최종 결정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그 범위 안에서 충성하고 표현하고 판단하는 것을 보여 주심
3. 구체적으로
모세의 죽음은 요단강을 건너지 못한 것으로 그 죽음에는 죄 문제가 있었고, 그 죄는 죄의 주인 사단이 연고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죄악 세상 타락한 세상에 공중의 권세 잡은 사단의 권리인데, 모세가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 최종 성공에 실패한 것이 시체이고 그 사망의 결과는 사단이 죄와 사망의 주인이므로 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 모세가 불순종 했고 그로 인해 모세가 일반 성도의 죽음이 아니고 의인들의 성공적 죽음도 아니고 실패한 죽음으로 끝낸 그 것조차 하나님은 구원 역사의 큰 범위에서 그렇게 했으니 미가엘 천사는 그 뜻을 넘지 않고, 동시에 모세의 생애를 가져 가는 주장을 했으니 이 것이 천사의 직무 수행이며, 힘으로만 한다면 사단을 이길 수 있으나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힘으로만 해결하지 않고 공의 앞에 옳게만 할 수 있는 것
4. 성경 연구
목회자를 비롯 이 노선을 좀 아는 분들은 성경과 신앙 현실의 사안들을 두고 막히는 것이 있을 때 즉문즉답으로 헤쳐 나가려 하는 경향이 있다. 설교록을 검색해서 바로 답을 찾아 내야 직성이 풀리고 답이 잘 나오지 않으면 알려 줄 사람에게 바로 질문을 한다. 그렇게 하면 우선은 빠르지만 배워 가는 자세에 문제가 있다. 문제가 있으면 일단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스스로 답을 구성'해 봐야 한다. 옳은가 아닌가? 왜 옳은가? 왜 전원일치라야 하는가? 소송금지가 정말 무제한인가? 성경 교리 생활 교회 운영까지 일일이 살펴 봐야 한다.
확정적인 답이 나오면 그대로 확정하는 것이 양심이다. 그 양심은 비록 틀렸을지라도 다음에 자라 가는 경험이 된다. 물론 자기 확정에 자기가 감당 못할 일이 따르거나 남에게 피해가 될 때는 아는 사람에게 물어 봐야 한다. 어떤 분들은 수도 없이 물어 본다. 현대화 효율화가 몸에 배어 있어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수백 수천 번을 질문하고 안내를 받은 뒤 감사하며 뿌듯해 하는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답을 안내하면서 자세를 고치도록 여러 번을 부탁했다. 그래도 빨리 해 치워야 하는 우리의 민족적 특성이 있다. 무조건 속사포 질문만 쏟아 낸다. 이런 분들은 남 보기에는 제일 많이 배운 듯하나 실제로는 전혀 아는 것이 없게 된다. 빨리 끓는 물이 빨리 식는다고 했든가? 그렇게 열정적인 사람들이 순서적으로 먼저 나갔다. 대구에서 타 교단으로 가서 엄청나게 성공한 분이 제대 후 이 노선을 알고 목사님께 배울 때 하루아침에 끝장을 낼 기세였다. 목사님 사후 먼저 나갔다.
연구소 안에서도 배우려 노력하지 않고 묻지도 않고 마치 아는 것처럼 버틴 분들은 자기들이 모른다는 표시를 내지 않는다. 체면 위신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끝까지 표 없이 배웠고 그리고 아는 척했다. 그런데 오늘 이 노선의 가장 초보조차 엉망이다. 오늘의 결과는 갑작스런 것이 아니라 필연이다.
성경과 신앙의 모든 문제를 만날 때는 반드시 자기가 답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 신앙이 생명성으로 자라 간다. 자신이 없거나 파장이 큰 것은 검토를 받고, 맞춰 보는 것이 좋다. 모세의 시체에 대해 오랜 세월 그냥 잊고 있다가 궁금했고 먼저 답을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방금 맞춰 봤다. 과거에도 목사님의 이 설명하신 것이 기억이 났고 당시 목사님의 해석이 다른 성구처럼 명확하지 않고 약간 흐리고 지나 갈 때가 있는데 이 번 자료에서도 그러했다. 그대신 자료를 찾아 주기 전에 미리 답을 마련해 봤고 이제 자료와 맞춰 봤다. 직접 자료를 찾으면 답이 보이게 되면서 내가 자라지 않고 나의 연구 자세와 방법에 문제가 있다. 자료와 같은 부분은 과거 배웠기 때문에 제 속에 있다가 나왔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명확하게 한 것은 이 번이 처음이다.
연구소를 찾는 이 곳의 모든 분들, 공회의 모든 분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 함께 가면 참 좋겠다. 하나 알게 되자 평생 '퍼뜩' 생각이 나면 자기 생각은 전부 성령이 가르친 것이라고 고함을 질러 버리면 지금 중국에 갔다가 서울에서 교계 활동을 하는 그런 분처럼 된다. 주일학교 신발 주머니가 공회 교리라고 출간까지 해 버렸다. 또 공회와 연구소 안에서 몇십 년을 배우고도 자기 연구와 발표와 대조를 기피한 분들은 자존심 하나에 자기를 아주 멀리 내버렸다.
수많은 세월에 모두가 요리 된 최종 안내만을 검색으로 활용하며 즉석 해결을 한 것이 연구소의 자료화에 단점이다. 자료화란 자기 연구의 끝에 맞춰 보라는 안내서다. 학생이 수학 문제를 답부터 보고 풀면 평생 모른다. 자기 연구가 없는 사람은 얻어 가질 것이 적어 지면서 환경의 충격이 가해지면 어느 날 탈퇴를 한다. 송용조처럼 양심가는 탈퇴라도 한다. 송용조 탈퇴 때 비양심이라며 마이크를 잡고 분투한 인물은 오늘도 공회를 나간다 해놓고 부동산이나 조직에 연연하여 자리를 버티고 있다. 부산서부교회 강단도 그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