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들의 소리 없는 소속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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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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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30 00:00
이북의 공산주의가 원래 어떤 주장을 했는지, 오늘의 이북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게는 전혀 더듬을 것이 없는 환한 일입니다. 정통 이분설은 우리 공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모순은 너무 환하게 드러 났고 현재 이 노선 삼분설로 가지 않을 수가 없어 오늘까지 걷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엇이 문제가 어떻게 가야 한다는 것을 양심껏 밝힌 것이 공회입니다.
현재 정통 이분론이 칼빈 이후 근대까지 그렇게 주장했던 것은 그 당시로는 그 정도로만 깨달아도 되기 때문에 그만큼만 깨달은 것이고 그 분들의 시대에 주신 사명은 전혀 달랐기 때문에 그 분들의 눈이 어두워 공회의 삼분설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필요가 없어 하나님께서 보여 주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오면서 정통의 이분설은 필연적으로 공회의 삼분설로 자라 갔어야 했는데 너무 역사에 유명한 기록과 인물들이 돋보였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은 마치 성경처럼 정확무오하다고 생각해 버렸고 그 선입견 때문에 어떤 다른 가능성도 최소한 연구 차원에서라도 열지 않고 모조리 닫고만 왔기 때문에 이렇게 명확한 것이 마치 어려운 문제처럼 50 년 이상 내려 오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살펴 본 분들은 내용 파악은 단 번에 했을 것이나 문제는 한국에 제대로 된 신학교는 교단 소속이고 교단은 돈을 대고 표를 던지는 다수결의 교회 정치로 움직이는데 이 과정에서 무식하고 용감한 목사님들이 신학자들을 노려 보고 있고 또 신학교 내에서도 경쟁 위치에 있는 다른 학자들이 소리 없이 기회를 엿 보고 있기 때문에 잘못 핑계거리를 줬다가는 해명할 기회도 없이 매장 당하여 훗날 진정한 연구조차 하지 못하게 될까 해서 쉽게 간단히 밝힐 수 있는 부분을 몇몇 분은 그렇게 하시나 대개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계시는 듯합니다.
어떤 분들은 자기들이 학자로서 가진 위치가 일반인들이 갔다 올 수 없는 해외 유력 학교를 거쳐 왔기 때문인데 남이 모르는 것을 가졌을 때에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고 그런 면이 허물어 질 때는 평생 쌓은 것이 다 허물어 질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분들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조금 가능성을 봤을 때는 짐짓 고개를 돌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현재 적지 않은 양심적인 분들이 여기저기서 계속해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그렇게 하든 말든 이 문제는 너무 명확해서 시간 문제입니다. 교계 전체로 보면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고 봅니다. 다만 이분설이 신학교 교과서에 너무 명확하게 적혀 있는데 이 것을 어느 날 삼분설로 바꾼다는 것이 앞 서 말했듯이 굉장한 어려움과 위험을 내포하고 있어 지혜롭게 조금씩 띄워 가며 자리를 옮기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북한의 공산주의가 부자는 다 죽이고 미국은 죽일 원수고 자본주의를 어떻게 원수로 삼았는데 지금은 남한의 뒤를 따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미국과 외교를 맺고 무역을 하고 노동자를 착취해서 자본을 만들고... 그런데도 과거 했던 말이 너무 많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문건도 있고 생존한 위험 인물들도 있기 때문에 대충 외교적 표현으로 슬쩍 넘어 가고 있는데, 마치 그렇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답변자가 직접 만난 인물이나 대화할 기회가 적지 않았고 상대방들이 교계에서 그래도 이름 있는 분들도 많았으나 이 노선의 내용을 바로 설명한 자리에서 반론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모두 숨이 막힌 듯, 할 말을 잊고 있었습니다. 심리적 공황 상태가 될 수밖에 없는 내용이 공회 안에는 많습니다.
(답변 진행 중)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 질문1) 아랫글은 최근에 개혁주의 인간론입니다.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
: 질문2) 칼빈 오웬을 비롯하여 18세기 정통파개혁주의의 인간론은 전형적인 이분론
: 이었습니다.
: `영혼= 마음 오성(지성) 정서(감정) 의지 = 비물질`과 육체(감각기관 포함 = 물질)
: 로 명확히 구분하면서 영혼과 육체가 이원화된것이 아니라 유기적관계라고
: 주장하였습니다. 박형룡교수님도 칼빈이나 오웬과 별반 다를것이 없는것 같습니다.
:
: 하지만 최근에 총신대교수님의 조직신학에서 인성론을 보면,이분론을 중심으로 두면서 전인론적인간론을 주장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책에 보면 뇌사와 죽음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어있습니다. 아랫글도 이분론을 말하고 있지만, 예전에 인간론과는 조금씩 달라지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 뇌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고 있고, 저의 판단으로는 점점 삼분론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 느낌입니다. 정통파개혁주의가 이분론에 워낙 철저하기 때문에 이분론을 계속말하지만
: 전인론적인간관같은 설명을 들어보면 삼분론에서 마음과 몸의 관계를 설명하는 듯한
: 느낌을 받습니다.
:
: 목사님은 현대개혁주의 인성론을 어떻게 파악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저의 이야기처럼
: 삼분론적 설명이 점점 늘어나는것이 맞는지 궁금합니다.
:
: ----------------------------------------------------------
: 아랫글에 대한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
: 개혁신학은 이분법을 지지합니다.
: 개혁주의 정통신학은 영혼과 육체가 살아서 분리되거나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며,
: 영혼과 육체가 살아있을때에 분리되지 않는다는것을 말합니다.
:
: 영과 육은 구분되지만 함께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전인격적이고 통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영과 육의 구분은 논리적 구분이지, 실제적으로 어디까지 영혼이고
: 어디까지 육체인지를 정확하게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의 전체육체속에 영이 함께
: 하는 조화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에는 분리되거나 장소적으로 이동하지 않습니다.
:
: 영과 육의 구분은 논리적 구분이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경계선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 영과 육이 실제적으로 활동하고 적용될때에는 동시적이고 총체적입니다.
: 다만 본질적인 원리면에서 마음은 영의 성격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 육체는 물리적 성격으로 봅니다. 영과 육의 존재론적인 이해와 활동적이며 적용적인
: 이해를 구분해야 오해가 없습니다. 즉 존재적으로 구분되지만 둘이 활동하고
: 실제 생활속에서 적용되고 드러날때는 총체적 전인적 조화적 형태로 나타나기에 구분하기
: 어려운 것입니다.
:
: 예를들어 마음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는것입니까?
: 심장, 뇌?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정통 이분론이 칼빈 이후 근대까지 그렇게 주장했던 것은 그 당시로는 그 정도로만 깨달아도 되기 때문에 그만큼만 깨달은 것이고 그 분들의 시대에 주신 사명은 전혀 달랐기 때문에 그 분들의 눈이 어두워 공회의 삼분설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필요가 없어 하나님께서 보여 주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오면서 정통의 이분설은 필연적으로 공회의 삼분설로 자라 갔어야 했는데 너무 역사에 유명한 기록과 인물들이 돋보였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은 마치 성경처럼 정확무오하다고 생각해 버렸고 그 선입견 때문에 어떤 다른 가능성도 최소한 연구 차원에서라도 열지 않고 모조리 닫고만 왔기 때문에 이렇게 명확한 것이 마치 어려운 문제처럼 50 년 이상 내려 오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살펴 본 분들은 내용 파악은 단 번에 했을 것이나 문제는 한국에 제대로 된 신학교는 교단 소속이고 교단은 돈을 대고 표를 던지는 다수결의 교회 정치로 움직이는데 이 과정에서 무식하고 용감한 목사님들이 신학자들을 노려 보고 있고 또 신학교 내에서도 경쟁 위치에 있는 다른 학자들이 소리 없이 기회를 엿 보고 있기 때문에 잘못 핑계거리를 줬다가는 해명할 기회도 없이 매장 당하여 훗날 진정한 연구조차 하지 못하게 될까 해서 쉽게 간단히 밝힐 수 있는 부분을 몇몇 분은 그렇게 하시나 대개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계시는 듯합니다.
어떤 분들은 자기들이 학자로서 가진 위치가 일반인들이 갔다 올 수 없는 해외 유력 학교를 거쳐 왔기 때문인데 남이 모르는 것을 가졌을 때에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고 그런 면이 허물어 질 때는 평생 쌓은 것이 다 허물어 질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분들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조금 가능성을 봤을 때는 짐짓 고개를 돌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현재 적지 않은 양심적인 분들이 여기저기서 계속해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그렇게 하든 말든 이 문제는 너무 명확해서 시간 문제입니다. 교계 전체로 보면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고 봅니다. 다만 이분설이 신학교 교과서에 너무 명확하게 적혀 있는데 이 것을 어느 날 삼분설로 바꾼다는 것이 앞 서 말했듯이 굉장한 어려움과 위험을 내포하고 있어 지혜롭게 조금씩 띄워 가며 자리를 옮기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북한의 공산주의가 부자는 다 죽이고 미국은 죽일 원수고 자본주의를 어떻게 원수로 삼았는데 지금은 남한의 뒤를 따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미국과 외교를 맺고 무역을 하고 노동자를 착취해서 자본을 만들고... 그런데도 과거 했던 말이 너무 많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문건도 있고 생존한 위험 인물들도 있기 때문에 대충 외교적 표현으로 슬쩍 넘어 가고 있는데, 마치 그렇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답변자가 직접 만난 인물이나 대화할 기회가 적지 않았고 상대방들이 교계에서 그래도 이름 있는 분들도 많았으나 이 노선의 내용을 바로 설명한 자리에서 반론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모두 숨이 막힌 듯, 할 말을 잊고 있었습니다. 심리적 공황 상태가 될 수밖에 없는 내용이 공회 안에는 많습니다.
(답변 진행 중)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 질문1) 아랫글은 최근에 개혁주의 인간론입니다.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
: 질문2) 칼빈 오웬을 비롯하여 18세기 정통파개혁주의의 인간론은 전형적인 이분론
: 이었습니다.
: `영혼= 마음 오성(지성) 정서(감정) 의지 = 비물질`과 육체(감각기관 포함 = 물질)
: 로 명확히 구분하면서 영혼과 육체가 이원화된것이 아니라 유기적관계라고
: 주장하였습니다. 박형룡교수님도 칼빈이나 오웬과 별반 다를것이 없는것 같습니다.
:
: 하지만 최근에 총신대교수님의 조직신학에서 인성론을 보면,이분론을 중심으로 두면서 전인론적인간론을 주장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책에 보면 뇌사와 죽음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어있습니다. 아랫글도 이분론을 말하고 있지만, 예전에 인간론과는 조금씩 달라지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 뇌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고 있고, 저의 판단으로는 점점 삼분론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 느낌입니다. 정통파개혁주의가 이분론에 워낙 철저하기 때문에 이분론을 계속말하지만
: 전인론적인간관같은 설명을 들어보면 삼분론에서 마음과 몸의 관계를 설명하는 듯한
: 느낌을 받습니다.
:
: 목사님은 현대개혁주의 인성론을 어떻게 파악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저의 이야기처럼
: 삼분론적 설명이 점점 늘어나는것이 맞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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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랫글에 대한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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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신학은 이분법을 지지합니다.
: 개혁주의 정통신학은 영혼과 육체가 살아서 분리되거나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며,
: 영혼과 육체가 살아있을때에 분리되지 않는다는것을 말합니다.
:
: 영과 육은 구분되지만 함께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전인격적이고 통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영과 육의 구분은 논리적 구분이지, 실제적으로 어디까지 영혼이고
: 어디까지 육체인지를 정확하게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의 전체육체속에 영이 함께
: 하는 조화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에는 분리되거나 장소적으로 이동하지 않습니다.
:
: 영과 육의 구분은 논리적 구분이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경계선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 영과 육이 실제적으로 활동하고 적용될때에는 동시적이고 총체적입니다.
: 다만 본질적인 원리면에서 마음은 영의 성격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 육체는 물리적 성격으로 봅니다. 영과 육의 존재론적인 이해와 활동적이며 적용적인
: 이해를 구분해야 오해가 없습니다. 즉 존재적으로 구분되지만 둘이 활동하고
: 실제 생활속에서 적용되고 드러날때는 총체적 전인적 조화적 형태로 나타나기에 구분하기
: 어려운 것입니다.
:
: 예를들어 마음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는것입니까?
: 심장, 뇌?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인성론에 대해서
질문1) 아랫글은 최근에 개혁주의 인간론입니다.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질문2) 칼빈 오웬을 비롯하여 18세기 정통파개혁주의의 인간론은 전형적인 이분론
이었습니다.
`영혼= 마음 오성(지성) 정서(감정) 의지 = 비물질`과 육체(감각기관 포함 = 물질)
로 명확히 구분하면서 영혼과 육체가 이원화된것이 아니라 유기적관계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박형룡교수님도 칼빈이나 오웬과 별반 다를것이 없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총신대교수님의 조직신학에서 인성론을 보면,이분론을 중심으로 두면서 전인론적인간론을 주장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책에 보면 뇌사와 죽음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어있습니다. 아랫글도 이분론을 말하고 있지만, 예전에 인간론과는 조금씩 달라지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뇌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고 있고, 저의 판단으로는 점점 삼분론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느낌입니다. 정통파개혁주의가 이분론에 워낙 철저하기 때문에 이분론을 계속말하지만
전인론적인간관같은 설명을 들어보면 삼분론에서 마음과 몸의 관계를 설명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목사님은 현대개혁주의 인성론을 어떻게 파악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저의 이야기처럼
삼분론적 설명이 점점 늘어나는것이 맞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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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글에 대한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개혁신학은 이분법을 지지합니다.
개혁주의 정통신학은 영혼과 육체가 살아서 분리되거나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며,
영혼과 육체가 살아있을때에 분리되지 않는다는것을 말합니다.
영과 육은 구분되지만 함께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전인격적이고 통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영과 육의 구분은 논리적 구분이지, 실제적으로 어디까지 영혼이고
어디까지 육체인지를 정확하게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의 전체육체속에 영이 함께
하는 조화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에는 분리되거나 장소적으로 이동하지 않습니다.
영과 육의 구분은 논리적 구분이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경계선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영과 육이 실제적으로 활동하고 적용될때에는 동시적이고 총체적입니다.
다만 본질적인 원리면에서 마음은 영의 성격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육체는 물리적 성격으로 봅니다. 영과 육의 존재론적인 이해와 활동적이며 적용적인
이해를 구분해야 오해가 없습니다. 즉 존재적으로 구분되지만 둘이 활동하고
실제 생활속에서 적용되고 드러날때는 총체적 전인적 조화적 형태로 나타나기에 구분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예를들어 마음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는것입니까?
심장, 뇌?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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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1) 아랫글은 최근에 개혁주의 인간론입니다.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질문2) 칼빈 오웬을 비롯하여 18세기 정통파개혁주의의 인간론은 전형적인 이분론
이었습니다.
`영혼= 마음 오성(지성) 정서(감정) 의지 = 비물질`과 육체(감각기관 포함 = 물질)
로 명확히 구분하면서 영혼과 육체가 이원화된것이 아니라 유기적관계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박형룡교수님도 칼빈이나 오웬과 별반 다를것이 없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총신대교수님의 조직신학에서 인성론을 보면,이분론을 중심으로 두면서 전인론적인간론을 주장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책에 보면 뇌사와 죽음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어있습니다. 아랫글도 이분론을 말하고 있지만, 예전에 인간론과는 조금씩 달라지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뇌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고 있고, 저의 판단으로는 점점 삼분론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느낌입니다. 정통파개혁주의가 이분론에 워낙 철저하기 때문에 이분론을 계속말하지만
전인론적인간관같은 설명을 들어보면 삼분론에서 마음과 몸의 관계를 설명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목사님은 현대개혁주의 인성론을 어떻게 파악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저의 이야기처럼
삼분론적 설명이 점점 늘어나는것이 맞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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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글에 대한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개혁신학은 이분법을 지지합니다.
개혁주의 정통신학은 영혼과 육체가 살아서 분리되거나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며,
영혼과 육체가 살아있을때에 분리되지 않는다는것을 말합니다.
영과 육은 구분되지만 함께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전인격적이고 통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영과 육의 구분은 논리적 구분이지, 실제적으로 어디까지 영혼이고
어디까지 육체인지를 정확하게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의 전체육체속에 영이 함께
하는 조화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에는 분리되거나 장소적으로 이동하지 않습니다.
영과 육의 구분은 논리적 구분이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경계선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영과 육이 실제적으로 활동하고 적용될때에는 동시적이고 총체적입니다.
다만 본질적인 원리면에서 마음은 영의 성격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육체는 물리적 성격으로 봅니다. 영과 육의 존재론적인 이해와 활동적이며 적용적인
이해를 구분해야 오해가 없습니다. 즉 존재적으로 구분되지만 둘이 활동하고
실제 생활속에서 적용되고 드러날때는 총체적 전인적 조화적 형태로 나타나기에 구분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예를들어 마음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는것입니까?
심장, 뇌?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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