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목표치가 아니라 출발 첫 걸음의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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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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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3 00:00
이성 결백, 경제 결백, 충성 결백을 3 대 결백이라고 합니다.
남녀 문제에 깨끗할 것을 말씀하고, 돈 문제에 깨끗할 것을 말하고 충성할 것을 말합니다.
1. 이성 결백
교회는 남자가 머리 되어 책임 지고 인도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남반에게 교회의 지도 은혜를 주시는데 문제는 남녀반을 비교한다면 남반은 적고 교회는 거의 여반이 핵심이며 주력입니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교회는 항상 목회자를 존경하고 따르는 여반 교인과 목회자 사이에서 이성 문제가 생기기 쉽고 이런 문제가 생기면 교회는 겉 보기에 멀쩡한데 속으로는 곪고 시들거리다가 주저 앉아 버립니다.
공회 교회는 우리 사회의 이성 문제가 급변하던 모든 시기를 걸쳐 지금까지 변치 않고 시대와 사회와 교계와 주변 교회들과 달리 옛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 있던 일제 시대에도, 해방 후에 미군들이 들어 오면서 고삐 풀린 망아지 꼴이 될 때에도 그리고 경제 발전기가 되면서 온 나라와 가정들이 술집처럼 되고 아내들과 딸들이 업소 여인들이나 아가씨처럼 탈바꿈을 할 때에도 공회 교회들은 남녀반의 좌석조차 떼어 놓고 있습니다.
남녀 이성 옆에 서로 앉고 싶으면 타 교회를 가든지 아니면 업소를 찾아 가라고 권하는 편입니다. 가정이나 개인적인 결정은 본인들이 알아서 할지라도 최소한 교회 차원에서는 남녀 합석조차 또는 남녀의 업무 외의 친분 대화조차 엄금하여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교회 운영이 안 되며, 지성인들과 청년 남녀의 전도나 부흥에 해로우며, 청소년 어린 학생들의 반발이 심하다는 등의 그 어떤 이견이 제기 된다 해도 교회의 부흥과 발전과 예배당 대문을 폐쇄하는 일이 있다 해도 최소한 교회와 예배를 이성 문란에서 지켜 보겠다는 입장입니다.
이 모든 일에 목회자는 가장 앞에 서서 이성 면을 조심하자는 뜻입니다. 여반과 일대 일로는 심방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문제는 남이 오해하는 경우 자기의 결백을 증명할 수가 없고 또한 실제 죄를 지었을지라도 남이 개입하기에도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목회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상대방이 있을 때 그의 신앙과 입장과 가정과 앞 날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든 면을 감안하여 교회는 앉는 좌석부터 찬양대와 모든 종류의 행사에서 남녀 분리를 표시 내면서 엄금을 시킴으로 교회의 분위기와 입장을 간접적으로 강하게 표시하고 있습니다.
2. 경제 결백
- 경제 문제
이성 문제는 어지간해서는 그 실체를 알기 어려운 면이 있어 선언적 경고에 그칠 수밖에 없으나 경제 문제는 회계 장부를 뒤져 보거나 그 집 살림살이나 주머니를 털어 보면 단번에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 결백 문제는 아주 철저하게 숫자까지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경제 결백의 원칙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하신 말씀에서 보듯이 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 하심에서 보듯이 또 예수님의 3 대 시험의 첫 문제가 먹는 문제였듯이, 신앙의 아주 초보에서 해결할 문제이며 객관적으로 가장 검증이 쉬운 문제이며 또한 본인도 목회를 두고는 적어도 경제 문제는 넘어 서야 그 다음에 교회를 위한 수고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엄하게 제시하는 편입니다.
총공회 중에서 부공3으로 표시하고 있는 이 홈 관련 공회 목회자들은 현재 10여 년 가까이 80 - 100만 원 사이에서 월급을 정하고 있으며 월급 인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2 년에 한 번씩 월급 조정을 하지만 목회자들이 그럴 필요가 없다 해서 인상하지 않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각 사택의 사모님들의 의견을 모시고 있는데 역시 마찬 가지로 듣고 있습니다.
- 경제 기준
프란시스와 같은 분은 사도 바울처럼 특수 은혜를 받은 분이어서 우리가 마음에 존경할 분이지 그 생활을 그대로 따라 한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 사회주의나 고행주의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 분은 특수 은혜를 받았으므로 논외로 하고 일반 목회자가 사회 속에서 교회를 운영하면서 공회 기준에서 최소한 요구하는 것은
* 적금 금지: 교회를 상대로 월급을 받아서 적금을 한다는 것은 지나 치다고 생각합니다.
* 보험 금지: 알지 못하는 미래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신앙인데 보험은 피하고 있습니다.
* 적정 교육: 교회 돈으로 고졸 정도 시키면 나머지 공부는 알아서 해야 하지 않을까?
* 병원 치료: 의료 보험이 되는 치료만 하고 특수 치료는 사양해야 하지 않을까?
* 노후 대책: 죽는 날까지 충성하되 교회에 짐이 될 정도가 되면 자녀가 책임 지는 것이고
* 문화 생활: 세상과 원수로 사는 목회자로서 여가나 문화 생활은 없어야 당연한 것입니다.
적금, 보험, 교육, 치료, 노후, 문화 생활까지 명쾌하게 구별하고 나면 목회자는 더 이상 쓸 돈이 별로 없습니다. 먹으면 살이 쪄서 운동을 해서 빼야 하는데 이 것은 목회자에게 죄악일 것입니다. 필요 없는 것을 먹은 죄와 게으른 죄와 심방 전도하지 않은 죄의 결과로 생기는 일입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 교회는 사택을 대개 제공하고 있으며 교회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목회자는 책정 된 월급 외에도 큰 돈을 추가로 혜택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먹고 살 데가 없어 교회에 신세를 지러 온 사람이면 기본적으로 목회자가 아닐 것이고, 적어도 목회자라는 이름을 걸쳤다면 자기가 수고하고 교회가 덕을 봐야 하는데 바로 이 정도의 자세라면 고행주의도 아니면서 또한 교회를 구멍가게나 직장으로 삼아 처자식 먹고 살 호구대책으로 삼는 종교사업가라는 소리는 듣지 않을 듯합니다. 그래서 공회의 경제 원칙은 절약이라거나 아낀다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공회의 신앙 원칙이 철저하게 따지고 좌우로 치우 치지 않는 정로를 견지하는 것이니, 이 원칙에 따른 자연스런 모습으로 보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 첫 걸음
천국은 가 보지 않아서 사실 우리와 좀 멀리 있습니다. 하나님도 본 적이 없어 모두들 사실 잘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중생 된 생명이 있어 본능적으로 천국을 소망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합니다. 그런데 잘 되지 않아서 세상과 주변에게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 문제는 신앙의 첫 걸음이며 이런 문제는 어느 사회든지 제대로 좀 헌신해 보려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넘어야 합니다. 하물며 주와 복음을 위한다는 직책이라면 경제 문제는 눈에 보이는 문제며 가장 쉬운 문제이므로 공회는 명확하게 기준을 제시하여 이를 준수할 수 없으면 세상에 가서 돈을 벌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 지되 만일 교회를 위해 사명감을 받았다면 최소한 경제 문제는 넘고 함께 가자고 권하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과거 수십 년 전에만 해도 경제를 초월한 분들은 교파를 막론하고 좀 있었는데 최근에는 경제 문제를 넘어 서는 분들은 거의 없다고 보입니다. 경제를 초월하면 우수한 목회자라는 것이 아니라 걸음마를 뗀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교계는 목회자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고 선언해도 맞을 것입니다. 타 교단의 신학교 운영비 내역이나 목회자들의 회의 장소나 기도회 모임이나 기타 활동 소식을 얼핏 들어 봐도 세상의 회의 장소나 학교나 조직들이 오늘 기준으로 세상을 먹고 놀고 다니기 위해 지출하는 그런 활동만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 교파나 교회들이나 목회자나 신학자들은 최소한 신앙이나 목회나 신학이나 교회 이름은 떼 놓아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결산하는 날
우리가 개인적으로 이 세상을 다 살고 나면 즉시 평생 산 생활을 두고 결산이 있습니다. 회계라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마25:19이나 히13:17의 회계 결산은 오늘 이 땅 위에서도 미리 해 볼 수 있습니다.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하시고, 쓴 것에 대해서는 왜 사용했으며 그렇게까지 많이 사용해야 했는지를 반드시 다 계산할 것입니다.
백 목사님은 평생 메모지를 사용할 때 쓰고 난 달력을 접고 잘라서 이면지를 사용했고 이쑤시게 하나로 한 주간을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 분만큼 따라 하기는 건강이나 여러 면에서 벅차지만 그래도 주변에서 지켜 본 분들은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아끼는 것이 기본 생활이 되어 있는 편입니다.
아쉽게도 그 분 사후 지금의 전체 공회는 현저하게 타 교단의 경제 모습을 향해 닮아 가고 있으나 중요한 것은 언제든지 교회는 한 시대에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섰다면 또 앞 날이 있었고 어느 시대든지 많은 사람이 떼거리로 몰려 다니며 운동을 해서 성공을 시킨 일은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런 문제도 남이나 주변이나 시대를 보기 전에 자기 하나를 돌아 보면 될 듯합니다.
3. 충성 결백
백 목사님은 목회자들에게 늘 하루 3 끼나 밥을 챙겨 먹을 터인데 그 밥을 먹고 전도하고 심방하며 교회를 위해서 활동하는 데 사용을 하는지 아니면 놀고 잠이나 자고 쓸 데 없는 일을 하는지 꼼꼼히 챙기는 법입니다. 배가 조금 나왔다 싶으면 어김 없이 '아니, 저 0 목사님, 배가 나왔네요!' 아주 기겁을 하고 놀라거나 아니면 크게 근심스런 표정으로 염려하신 분입니다. 1989년 당시 80 세는 요즘 나이로 100 세에 가까운 시기였는데 매주 11 회 예배 전부를 혼자 맡았습니다.
없는 힘은 할 수 없으나 주신 힘만은 있는 대로 다 주와 복음을 위해서 사용할 때 그 것을 충성이라고 합니다. 10 년이 지나고 20 년이 지나도 어디 한 번을 놀러 가 본 적이 없다는 것은 공회 노선 목회자들에게는 너무 당연해서 따로 묻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적어 가다 보면 타 교단 비판처럼 들릴 수 있어 이 정도에서 일단 그칩니다. 필요한 부분은 다시 질문해 주시되, 이런 문제는 교파를 막론하고 우리의 세상 양심을 가지고 생각해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사안들입니다. 김현봉 목사님의 직통 계열이나 아주 간혹 특별한 곳에서는 이 노선과 비슷한 모습을 가진 곳이 있을 듯합니다.
>> 회계집사 님이 쓰신 내용 <<
:
: 목회자의 삼대결백 중 경제결백을 알고싶습니다.
: 부공3 목회자들은 사례를 적게 받는것으로 알고있는데
: 여러면으로 알고싶습니다. 그리고 배우고싶습니다.
: 최근 프란시스의 전기를읽고 감명을 받았는데 어디까지가 경제결백인지요?
남녀 문제에 깨끗할 것을 말씀하고, 돈 문제에 깨끗할 것을 말하고 충성할 것을 말합니다.
1. 이성 결백
교회는 남자가 머리 되어 책임 지고 인도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남반에게 교회의 지도 은혜를 주시는데 문제는 남녀반을 비교한다면 남반은 적고 교회는 거의 여반이 핵심이며 주력입니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교회는 항상 목회자를 존경하고 따르는 여반 교인과 목회자 사이에서 이성 문제가 생기기 쉽고 이런 문제가 생기면 교회는 겉 보기에 멀쩡한데 속으로는 곪고 시들거리다가 주저 앉아 버립니다.
공회 교회는 우리 사회의 이성 문제가 급변하던 모든 시기를 걸쳐 지금까지 변치 않고 시대와 사회와 교계와 주변 교회들과 달리 옛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 있던 일제 시대에도, 해방 후에 미군들이 들어 오면서 고삐 풀린 망아지 꼴이 될 때에도 그리고 경제 발전기가 되면서 온 나라와 가정들이 술집처럼 되고 아내들과 딸들이 업소 여인들이나 아가씨처럼 탈바꿈을 할 때에도 공회 교회들은 남녀반의 좌석조차 떼어 놓고 있습니다.
남녀 이성 옆에 서로 앉고 싶으면 타 교회를 가든지 아니면 업소를 찾아 가라고 권하는 편입니다. 가정이나 개인적인 결정은 본인들이 알아서 할지라도 최소한 교회 차원에서는 남녀 합석조차 또는 남녀의 업무 외의 친분 대화조차 엄금하여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교회 운영이 안 되며, 지성인들과 청년 남녀의 전도나 부흥에 해로우며, 청소년 어린 학생들의 반발이 심하다는 등의 그 어떤 이견이 제기 된다 해도 교회의 부흥과 발전과 예배당 대문을 폐쇄하는 일이 있다 해도 최소한 교회와 예배를 이성 문란에서 지켜 보겠다는 입장입니다.
이 모든 일에 목회자는 가장 앞에 서서 이성 면을 조심하자는 뜻입니다. 여반과 일대 일로는 심방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문제는 남이 오해하는 경우 자기의 결백을 증명할 수가 없고 또한 실제 죄를 지었을지라도 남이 개입하기에도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목회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상대방이 있을 때 그의 신앙과 입장과 가정과 앞 날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든 면을 감안하여 교회는 앉는 좌석부터 찬양대와 모든 종류의 행사에서 남녀 분리를 표시 내면서 엄금을 시킴으로 교회의 분위기와 입장을 간접적으로 강하게 표시하고 있습니다.
2. 경제 결백
- 경제 문제
이성 문제는 어지간해서는 그 실체를 알기 어려운 면이 있어 선언적 경고에 그칠 수밖에 없으나 경제 문제는 회계 장부를 뒤져 보거나 그 집 살림살이나 주머니를 털어 보면 단번에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 결백 문제는 아주 철저하게 숫자까지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경제 결백의 원칙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하신 말씀에서 보듯이 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 하심에서 보듯이 또 예수님의 3 대 시험의 첫 문제가 먹는 문제였듯이, 신앙의 아주 초보에서 해결할 문제이며 객관적으로 가장 검증이 쉬운 문제이며 또한 본인도 목회를 두고는 적어도 경제 문제는 넘어 서야 그 다음에 교회를 위한 수고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엄하게 제시하는 편입니다.
총공회 중에서 부공3으로 표시하고 있는 이 홈 관련 공회 목회자들은 현재 10여 년 가까이 80 - 100만 원 사이에서 월급을 정하고 있으며 월급 인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2 년에 한 번씩 월급 조정을 하지만 목회자들이 그럴 필요가 없다 해서 인상하지 않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각 사택의 사모님들의 의견을 모시고 있는데 역시 마찬 가지로 듣고 있습니다.
- 경제 기준
프란시스와 같은 분은 사도 바울처럼 특수 은혜를 받은 분이어서 우리가 마음에 존경할 분이지 그 생활을 그대로 따라 한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 사회주의나 고행주의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 분은 특수 은혜를 받았으므로 논외로 하고 일반 목회자가 사회 속에서 교회를 운영하면서 공회 기준에서 최소한 요구하는 것은
* 적금 금지: 교회를 상대로 월급을 받아서 적금을 한다는 것은 지나 치다고 생각합니다.
* 보험 금지: 알지 못하는 미래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신앙인데 보험은 피하고 있습니다.
* 적정 교육: 교회 돈으로 고졸 정도 시키면 나머지 공부는 알아서 해야 하지 않을까?
* 병원 치료: 의료 보험이 되는 치료만 하고 특수 치료는 사양해야 하지 않을까?
* 노후 대책: 죽는 날까지 충성하되 교회에 짐이 될 정도가 되면 자녀가 책임 지는 것이고
* 문화 생활: 세상과 원수로 사는 목회자로서 여가나 문화 생활은 없어야 당연한 것입니다.
적금, 보험, 교육, 치료, 노후, 문화 생활까지 명쾌하게 구별하고 나면 목회자는 더 이상 쓸 돈이 별로 없습니다. 먹으면 살이 쪄서 운동을 해서 빼야 하는데 이 것은 목회자에게 죄악일 것입니다. 필요 없는 것을 먹은 죄와 게으른 죄와 심방 전도하지 않은 죄의 결과로 생기는 일입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 교회는 사택을 대개 제공하고 있으며 교회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목회자는 책정 된 월급 외에도 큰 돈을 추가로 혜택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먹고 살 데가 없어 교회에 신세를 지러 온 사람이면 기본적으로 목회자가 아닐 것이고, 적어도 목회자라는 이름을 걸쳤다면 자기가 수고하고 교회가 덕을 봐야 하는데 바로 이 정도의 자세라면 고행주의도 아니면서 또한 교회를 구멍가게나 직장으로 삼아 처자식 먹고 살 호구대책으로 삼는 종교사업가라는 소리는 듣지 않을 듯합니다. 그래서 공회의 경제 원칙은 절약이라거나 아낀다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공회의 신앙 원칙이 철저하게 따지고 좌우로 치우 치지 않는 정로를 견지하는 것이니, 이 원칙에 따른 자연스런 모습으로 보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 첫 걸음
천국은 가 보지 않아서 사실 우리와 좀 멀리 있습니다. 하나님도 본 적이 없어 모두들 사실 잘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중생 된 생명이 있어 본능적으로 천국을 소망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합니다. 그런데 잘 되지 않아서 세상과 주변에게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 문제는 신앙의 첫 걸음이며 이런 문제는 어느 사회든지 제대로 좀 헌신해 보려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넘어야 합니다. 하물며 주와 복음을 위한다는 직책이라면 경제 문제는 눈에 보이는 문제며 가장 쉬운 문제이므로 공회는 명확하게 기준을 제시하여 이를 준수할 수 없으면 세상에 가서 돈을 벌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 지되 만일 교회를 위해 사명감을 받았다면 최소한 경제 문제는 넘고 함께 가자고 권하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과거 수십 년 전에만 해도 경제를 초월한 분들은 교파를 막론하고 좀 있었는데 최근에는 경제 문제를 넘어 서는 분들은 거의 없다고 보입니다. 경제를 초월하면 우수한 목회자라는 것이 아니라 걸음마를 뗀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교계는 목회자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고 선언해도 맞을 것입니다. 타 교단의 신학교 운영비 내역이나 목회자들의 회의 장소나 기도회 모임이나 기타 활동 소식을 얼핏 들어 봐도 세상의 회의 장소나 학교나 조직들이 오늘 기준으로 세상을 먹고 놀고 다니기 위해 지출하는 그런 활동만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 교파나 교회들이나 목회자나 신학자들은 최소한 신앙이나 목회나 신학이나 교회 이름은 떼 놓아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결산하는 날
우리가 개인적으로 이 세상을 다 살고 나면 즉시 평생 산 생활을 두고 결산이 있습니다. 회계라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마25:19이나 히13:17의 회계 결산은 오늘 이 땅 위에서도 미리 해 볼 수 있습니다.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하시고, 쓴 것에 대해서는 왜 사용했으며 그렇게까지 많이 사용해야 했는지를 반드시 다 계산할 것입니다.
백 목사님은 평생 메모지를 사용할 때 쓰고 난 달력을 접고 잘라서 이면지를 사용했고 이쑤시게 하나로 한 주간을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 분만큼 따라 하기는 건강이나 여러 면에서 벅차지만 그래도 주변에서 지켜 본 분들은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아끼는 것이 기본 생활이 되어 있는 편입니다.
아쉽게도 그 분 사후 지금의 전체 공회는 현저하게 타 교단의 경제 모습을 향해 닮아 가고 있으나 중요한 것은 언제든지 교회는 한 시대에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섰다면 또 앞 날이 있었고 어느 시대든지 많은 사람이 떼거리로 몰려 다니며 운동을 해서 성공을 시킨 일은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런 문제도 남이나 주변이나 시대를 보기 전에 자기 하나를 돌아 보면 될 듯합니다.
3. 충성 결백
백 목사님은 목회자들에게 늘 하루 3 끼나 밥을 챙겨 먹을 터인데 그 밥을 먹고 전도하고 심방하며 교회를 위해서 활동하는 데 사용을 하는지 아니면 놀고 잠이나 자고 쓸 데 없는 일을 하는지 꼼꼼히 챙기는 법입니다. 배가 조금 나왔다 싶으면 어김 없이 '아니, 저 0 목사님, 배가 나왔네요!' 아주 기겁을 하고 놀라거나 아니면 크게 근심스런 표정으로 염려하신 분입니다. 1989년 당시 80 세는 요즘 나이로 100 세에 가까운 시기였는데 매주 11 회 예배 전부를 혼자 맡았습니다.
없는 힘은 할 수 없으나 주신 힘만은 있는 대로 다 주와 복음을 위해서 사용할 때 그 것을 충성이라고 합니다. 10 년이 지나고 20 년이 지나도 어디 한 번을 놀러 가 본 적이 없다는 것은 공회 노선 목회자들에게는 너무 당연해서 따로 묻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적어 가다 보면 타 교단 비판처럼 들릴 수 있어 이 정도에서 일단 그칩니다. 필요한 부분은 다시 질문해 주시되, 이런 문제는 교파를 막론하고 우리의 세상 양심을 가지고 생각해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사안들입니다. 김현봉 목사님의 직통 계열이나 아주 간혹 특별한 곳에서는 이 노선과 비슷한 모습을 가진 곳이 있을 듯합니다.
>> 회계집사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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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자의 삼대결백 중 경제결백을 알고싶습니다.
: 부공3 목회자들은 사례를 적게 받는것으로 알고있는데
: 여러면으로 알고싶습니다. 그리고 배우고싶습니다.
: 최근 프란시스의 전기를읽고 감명을 받았는데 어디까지가 경제결백인지요?
경제결백
목회자의 삼대결백 중 경제결백을 알고싶습니다.
부공3 목회자들은 사례를 적게 받는것으로 알고있는데
여러면으로 알고싶습니다. 그리고 배우고싶습니다.
최근 프란시스의 전기를읽고 감명을 받았는데 어디까지가 경제결백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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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삼대결백 중 경제결백을 알고싶습니다.
부공3 목회자들은 사례를 적게 받는것으로 알고있는데
여러면으로 알고싶습니다. 그리고 배우고싶습니다.
최근 프란시스의 전기를읽고 감명을 받았는데 어디까지가 경제결백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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