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우리의 평생은 항상 양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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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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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6 00:00
1. 시대의 선지자
이 나라 교계에 어른이 없고 시대를 감당하는 선지자가 없는 것은 행일까, 불행일까? 모두들 불행이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어떤 재난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세계는 항상 양면성을 조화 시켜 온전에 이르도록 하는 근본 원리가 있어 이 면에서 보면 전혀 다른 세계를 볼 수 있고 만사 은혜라며 감사할 수 있으니 이런 것은 신앙 실무에서 실제 큰 영향을 끼칩니다.
시대를 감당하는 종들을 주셨을 때는 무조건 달리면 됩니다. 오늘처럼 선지자가 없는 암흑기에는 그 답답함을 호소하는 각인이 자기 범위에서 각각 이 시대 선지자가 되면 됩니다. 되라고 하여 하나님께서 일부로 시대적 선지자를 주지 않은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 보면서는 선지자 있던 시대를 부러워 하고 그 때 배우지 못했음을 한탄하며 회개하고, 소망의 교리 앞에서는 나 같은 것도 보스라기 선지자로 쓰시겠다니 내 주변 몇 사람에게라도 이 세대를 함께 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하겠다고 한다면 이 사람의 신앙 건설을 총평한다면 선지자 있던 시대보다 없던 시대가 더 발전하게 되는 비이성적 비합리적 결과도 예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치는 옛날 고아원을 살피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고아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분발하여 큰 성공을 하는 아이들도 있고 고아라는 사실 때문에 아깝게 인생을 버리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좋은 집의 부모 때문에 인생 버리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도 있습니다.
2. 백 목사님의 경우
주남선의 이름은 오늘 고신의 출발에 올리는 제1 번 이름입니다. 그 교회가 해방 후에 벌써 600명 출석했던 대형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3 개 군을 관할 한 중심 교회인데 그 곳에서는 합동과 고신의 교계적 인물이 많이 배출 되었습니다. 만일 그 교회를 주 목사님에 이어 후계자가 되었다면 백 목사님의 영향력은 호랑이가 날개를 단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 분의 교계적 부상과 영향력은 시간을 많이 단축 시켰고 복음 운동도 굉장했을 것입니다.
김현봉 목사님의 경우, 1960년대 중반까지 한국 교계의 소문 난 최대 교회는 영락교회였으나 실제로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아현동교회가 월등했습니다.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비교적 적던 당시에 아현동교회에 후임을 맡았더라면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입니다.
3. 영감의 종들
그러나 주남선 김현봉 이런 이름들은 겉 보기에 그냥 성자로 의인으로 살다 간 분 중에 하나로만 기억 될지 몰라도 그들은 매 순간을 자기 지식이나 감정이나 인간적 견해로 결정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찾아 진지하게 심각하게 걸어 갔습니다. 그 분들로서는 제1 순위로 백 목사님을 후임으로 부탁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그들 속에서 그들의 생사를 인도하신 주님은 왠지 그렇게 허락하지 않고 이유를 알 수 없는, 후임 배제로 인도하셨음을 알았고 그래서 인간적으로는 가장 적임자였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주님의 뜻에 피동 되는 신앙의 걸음에 자연스런 발로로 후임에서 배제 되었습니다.
4. 오늘 살펴 볼 때
외형적 물량적 기준에서 보면 한국 교계의 신령계를 주름 잡고 세계교회사에 뚜렷하게 한 모범적 업적을 남길 기회들이었는데, 그 기회는 주님의 섭리 가운데 다 막아 버리셨고, 오히려 가장 어렵고 힘든 용광로 속과 같은 부산의 서부교회로 옮기며 그 곳에서 안팎으로 연단 받고 서서히 자라 나온 과정은 오늘 이 홈에서 살피고 있는 결과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 항상 더 커 보이는 것은 피치 못할 일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하고 따져 봐도 우리에게 더 큰 것은 신령한 면일 것입니다.
교세보다 그 교세의 생산지인 교회의 본질이 문제이고
교회가 모든 복음 운동을 하는 주체지만 그 교회가 교회 되는 것은 신앙의 노선입니다.
그 교회와 신앙의 노선을 생산하며 규정하고 깎고 다듬는 주인은 바로 성경과 교리입니다.
백 목사님의 신앙 생애를 수 많은 면에서 살펴 보고 있습니다만 그 분은 하나님과 동행한 분이며 그 분의 하나님 동행은 일반 성자들의 동행을 기본으로 하면서 성경 깨달음이 교리로 이어 져 후세대의 방향과 양식으로 계속 되게 한 면에 있어 독보적 존재입니다. 그는 김현봉 주남선의 이름에 얹혀 고맙게 잘 살다가 잘 가시는 정도로 쓰임 받지 않고 그 선배 그 스승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세계를 만들었으니 이미 교회사적 수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물입니다. 바로 이 큰 면을 위해 교회 담임의 유리한 자리를 배제 시키셨다고 보고 있습니다.
>> 신학생2 님이 쓰신 내용 <<
:
: 주남선 목사님이나 김현봉 목사님의 주변을 많이 살펴봤습니다. 왜 그 어른들이 백 목사님을 후계자로 세우지 않았을까요? 아무래도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세움을 받지 않아서 이 좋은 복음이 부산이라는 반도 최남단에 갇혀 날개를 펴지 못했다고 여겨집니다. 혹시 긍정적인 면도 있었을까요?
이 나라 교계에 어른이 없고 시대를 감당하는 선지자가 없는 것은 행일까, 불행일까? 모두들 불행이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어떤 재난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세계는 항상 양면성을 조화 시켜 온전에 이르도록 하는 근본 원리가 있어 이 면에서 보면 전혀 다른 세계를 볼 수 있고 만사 은혜라며 감사할 수 있으니 이런 것은 신앙 실무에서 실제 큰 영향을 끼칩니다.
시대를 감당하는 종들을 주셨을 때는 무조건 달리면 됩니다. 오늘처럼 선지자가 없는 암흑기에는 그 답답함을 호소하는 각인이 자기 범위에서 각각 이 시대 선지자가 되면 됩니다. 되라고 하여 하나님께서 일부로 시대적 선지자를 주지 않은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 보면서는 선지자 있던 시대를 부러워 하고 그 때 배우지 못했음을 한탄하며 회개하고, 소망의 교리 앞에서는 나 같은 것도 보스라기 선지자로 쓰시겠다니 내 주변 몇 사람에게라도 이 세대를 함께 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하겠다고 한다면 이 사람의 신앙 건설을 총평한다면 선지자 있던 시대보다 없던 시대가 더 발전하게 되는 비이성적 비합리적 결과도 예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치는 옛날 고아원을 살피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고아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분발하여 큰 성공을 하는 아이들도 있고 고아라는 사실 때문에 아깝게 인생을 버리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좋은 집의 부모 때문에 인생 버리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도 있습니다.
2. 백 목사님의 경우
주남선의 이름은 오늘 고신의 출발에 올리는 제1 번 이름입니다. 그 교회가 해방 후에 벌써 600명 출석했던 대형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3 개 군을 관할 한 중심 교회인데 그 곳에서는 합동과 고신의 교계적 인물이 많이 배출 되었습니다. 만일 그 교회를 주 목사님에 이어 후계자가 되었다면 백 목사님의 영향력은 호랑이가 날개를 단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 분의 교계적 부상과 영향력은 시간을 많이 단축 시켰고 복음 운동도 굉장했을 것입니다.
김현봉 목사님의 경우, 1960년대 중반까지 한국 교계의 소문 난 최대 교회는 영락교회였으나 실제로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아현동교회가 월등했습니다.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비교적 적던 당시에 아현동교회에 후임을 맡았더라면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입니다.
3. 영감의 종들
그러나 주남선 김현봉 이런 이름들은 겉 보기에 그냥 성자로 의인으로 살다 간 분 중에 하나로만 기억 될지 몰라도 그들은 매 순간을 자기 지식이나 감정이나 인간적 견해로 결정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찾아 진지하게 심각하게 걸어 갔습니다. 그 분들로서는 제1 순위로 백 목사님을 후임으로 부탁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그들 속에서 그들의 생사를 인도하신 주님은 왠지 그렇게 허락하지 않고 이유를 알 수 없는, 후임 배제로 인도하셨음을 알았고 그래서 인간적으로는 가장 적임자였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주님의 뜻에 피동 되는 신앙의 걸음에 자연스런 발로로 후임에서 배제 되었습니다.
4. 오늘 살펴 볼 때
외형적 물량적 기준에서 보면 한국 교계의 신령계를 주름 잡고 세계교회사에 뚜렷하게 한 모범적 업적을 남길 기회들이었는데, 그 기회는 주님의 섭리 가운데 다 막아 버리셨고, 오히려 가장 어렵고 힘든 용광로 속과 같은 부산의 서부교회로 옮기며 그 곳에서 안팎으로 연단 받고 서서히 자라 나온 과정은 오늘 이 홈에서 살피고 있는 결과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 항상 더 커 보이는 것은 피치 못할 일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하고 따져 봐도 우리에게 더 큰 것은 신령한 면일 것입니다.
교세보다 그 교세의 생산지인 교회의 본질이 문제이고
교회가 모든 복음 운동을 하는 주체지만 그 교회가 교회 되는 것은 신앙의 노선입니다.
그 교회와 신앙의 노선을 생산하며 규정하고 깎고 다듬는 주인은 바로 성경과 교리입니다.
백 목사님의 신앙 생애를 수 많은 면에서 살펴 보고 있습니다만 그 분은 하나님과 동행한 분이며 그 분의 하나님 동행은 일반 성자들의 동행을 기본으로 하면서 성경 깨달음이 교리로 이어 져 후세대의 방향과 양식으로 계속 되게 한 면에 있어 독보적 존재입니다. 그는 김현봉 주남선의 이름에 얹혀 고맙게 잘 살다가 잘 가시는 정도로 쓰임 받지 않고 그 선배 그 스승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세계를 만들었으니 이미 교회사적 수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물입니다. 바로 이 큰 면을 위해 교회 담임의 유리한 자리를 배제 시키셨다고 보고 있습니다.
>> 신학생2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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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남선 목사님이나 김현봉 목사님의 주변을 많이 살펴봤습니다. 왜 그 어른들이 백 목사님을 후계자로 세우지 않았을까요? 아무래도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세움을 받지 않아서 이 좋은 복음이 부산이라는 반도 최남단에 갇혀 날개를 펴지 못했다고 여겨집니다. 혹시 긍정적인 면도 있었을까요?
주남선 김현봉의 후계를 주지 않은 이유
주남선 목사님이나 김현봉 목사님의 주변을 많이 살펴봤습니다. 왜 그 어른들이 백 목사님을 후계자로 세우지 않았을까요? 아무래도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세움을 받지 않아서 이 좋은 복음이 부산이라는 반도 최남단에 갇혀 날개를 펴지 못했다고 여겨집니다. 혹시 긍정적인 면도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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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남선 목사님이나 김현봉 목사님의 주변을 많이 살펴봤습니다. 왜 그 어른들이 백 목사님을 후계자로 세우지 않았을까요? 아무래도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세움을 받지 않아서 이 좋은 복음이 부산이라는 반도 최남단에 갇혀 날개를 펴지 못했다고 여겨집니다. 혹시 긍정적인 면도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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