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620주전(요한복음 5장 1절~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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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백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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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7 00:00
820620주전(요한복음 5장 1절~9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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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동일의 본문 설교도 내용은 대동소이합니다만 우선 뽑은 게 이 설교입니다. 대개 초신자에게는 새벽기도설교보다 주일 오전 오후 설교가 일반적이고 더 쉬운 사례가 허다하므로 주일 설교를 권합니다.
대동소이하다는 말은 백 목사님의 설교의 특징 중의 하나는 십년전에 한 설교나 20,30년 전에 한 설교가 거의 내용이 차이가 없고 주된 내용은 항상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50년대 설교나 80년대 설교가 환경이나 이런 것은 달라도, 차이가 나더라도 설교의 줄거리나 흐름과 맥은 어떤 설교를 불문하고 일치하는 부분이 대개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하고 오늘이나 내일이나 항시 여일하다는 뜻이지요. 본문이 동일한 경우는 물론이고 심지어 본문이 다른 경우에도 주된 내용은 일치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는 수십년 간 그렇게 많이 해온 설교가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체계화되었다는 것으로 보여지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직접 주신 영감에 따라 한 설교가 아니라면 이렇게 설교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실제로 경험한 바로는 이 홈상 50년대 설교가 희귀하게 수개 가 있는데 이 설교를 듣다가 80년말 설교를 들어도 음성만 50대의 것이 더 카랑카랑하지 내용은 어느 것이 50년대 것이고, 어느것이 80년대의 것인지를 쉽게 분간을 할 수 없음을 발견하고 참으로 백 목사님의 설교는 세기에 한 번쯤이나 맛볼수 있는 설교로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저는 많이는 몰라도 국내의 이제나 어제나의 최고로 치는 명설교를 들어봤어도 백 목사님의 설교처럼 앞에서 말한대로 메시지가 수십년의 차이를 넘어서 항시 여일하게 변치않는 설교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는 국내외의 명설교라고 불리우는 설교들에서 도저히 찾아 볼 수 없는 점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대개 목사님들의 설교는 설교할 때마다 색다르고 메시지가 다르고 맥락이 차이가 나고 시대에 따라 변화무쌍하고 너무 종잡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때마다 차이가 나고 교리 조차도 쉽게 변해버리고 어제는 틀렸다고 하면서 오늘은 맞다고 하는 설교가 일반 교회의 설교라고 보는바, 즉 비체계적으로 순간적으로, 통시적이지 아니하고, 항시여일한 메시지를 찾기 어렵습니다. 이는 바로 설교에서 영감이 없거나 있다고 해도 소수분만 있고 설교의 포인트를 설교자가 청중 감동위주, 교회부흥위주, 자기 사람 만드는 심중, 인기집중의도 등의 목적을 마음에 품고 하는 설교들이기 때문에 항시 여일하지 못하고 시공을 초월한 불변한 설교가 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현실은 변화하고 소소한 면은 변해도 설교는 변하면 안되는, 즉 불변이어야 한다고 봄니다. 설교는 진리를 풀어서 쉽게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면 진리가 변치 아니하듯이 설교도 변치 말아야 합니다. 이미 시공을 초월하여 시종이 여일하지 못한 설교는 그것은 인본설교이거나 인기위주 설교이거나, 연출식 설교이거나 즉 영감 설교가 아닌 인간의 이성에서 나온 것이지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설교가 아니거나 받았다 해도 온전히 받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점에서 백 목사님의 설교의 불변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입니다.
한편, 이런 불변성과 통시성을 잘 모르는 성도는 백 목사님의 설교는 항상 같은 것만 되풀이하고, 한 소리 또하고 또한다고해서 지루하고 해서 짜증난다고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평가는 마귀의 역사에 기인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 홈상에 등재된 5천여개 설교가 실은 주제는 거의 불변하고 시공을 초월하고 어느 때에 들어도 거의 유사하게 들리는 면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어느 누가 어떤 상황에 맞는 설교를 추천하라고 해도 설교들마다 거의 차이가 나는 면은 별로 찾기 힘들고 거의 차이가 안나고 공통적면이 더많기 때문에 쉽게 권유를 하지 못하고 망서리게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무릇 육에서 시작해서 영으로 들어가야 가야 하고, 보이는 데서 발단해서 보이지 않는 데로 나아가고, 기본구원에서 시작해서 건설구원으로 전진하는 것이 믿음의 법칙이라고 본다면 불신자나 초신자에게는 우선 육적 기적이나 축복을 강조하는 설교가 좋다고 보기 때문에 윗 설교를 감히 권장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딱 부러지게 윗 설교가 치료가 어려운 신체적 사고나 질병을 치유하는데 안성맞춤이라고는 주장을 못할 것이지만 제가 평소 많이 들어온 설교중 그 상황에서라면 이런 설교가 좋을 것이라는 직감에 의한 추천일 뿐일 것입니다.
위 82.6.20 주전 설교는 음성상태도 좋고 새벽 예배설교에 비해 믿음이 부족한 신자들도 겨냥한 대중적면이 보다 많다고 판단되고, 제가 열람한 바로는 내용도 평이한 것으로 보이며, 사례 중에 박 정권 살해시 최종 당시 비서실장 김계원 장로가 사형 선고를 받아 그 처럼 생사가 오가는 극난의 현실에서 아마 그가 장로니까 회개하고 믿었더라면 사형에 처하지 아니하고 살아날 희망이 있다고 백 목사님께서 당시 권사님들과 식사를 하면서 말씀을 하셨는데, 과연 기적이 일어나 그는 살해 사건에서 주범과 함께 사형당하지 아니하고 생의 구원을 받았지요. 백 목사님의 예언이 적중했던 것이지요.
38년 병자 설교가 바로 김계원 사건에 맞는 설교입니다. 김계원 장로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죽지 않고 산 기적은 백 목사님은 설교중에 여러번이나 하셨습니다. 저는 실제로 김 장로가 어떻게 사형 당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기적적으로 산 것인지를 알아볼려고 당시 박 대통령 저격 사건에 관한 법원 판례를 평소 법학 연구중에 찾아 보았습니다. 백 목사님의 예언 적중을 검증해 볼려는 참이었습니다.
당시 주범인 정보부장이 연회가 시작되기전에 안간 정원에서 김 비서실장과 대화하면서 오늘밤에 그 친구(경호실장 차지철을 말함) 해 치워버릴 까하니 김 실장은 이 말을 듣고 먼데를 응시하며 아무말도 아니하고 고개를 끄덕 끄덕(다소 내 기억력이 떨어진 지는몰라고 당시 최종심 대법원 판례를 열람 하면 당시 상황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음) 하였다고. 이래서 주범은 거사를 실행하게 되었지요. 당시 직책상 말렸어야 하는데 이렇지를 못해서 실제로 김 실장은 대법에서 주범과 공동정범으로 판단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는바 주범은 사형 집행되고 김 실장은 구원받아 죽지 아니하였던 것이지요. 저는 이 판례를 열람하면서 과연 백 목사님이 시대의 신지자로구나 하고 새삼 느꼈으며 위 추천 설교를 비롯해서 김 장로에 관한 사례을 설교에서 수회를 언급한 부분마다 재독할 때마다 사형 판결을 받은 극난한 현실에서도 회개하고 믿기만 하면 살아날 구멍이 있구나 하면서 은혜를 받게 됩니다.
38년 병자 설교는 인간병을 치료해서 모든 면에 회복하고 축복 받는, 낙망과 절망, 비참에서 구출받아 기적과 축복으로 우리 인생이 희망이 넘치게 된다는 설교인바, 인간병에는 육신병(신체병), 마음병, 영병의 3종인바 대개 우리 공회 교회들의 분위기는 육신병 치료를 강조하게 되면 순복음교회가 생각나서인지(?), 또 무슨 속보이는 것 같아서 그런지 스스로 양심도 아닌 것이 양심인 척, 또는 육적 치료, 세상 부요가 되는 것이 무슨 도리가 아닌 양, 육적병 치료에 관한 것은 슬쩍 감추고 하면서 고상하게 마음병과 영병을 더욱 강조하는 분위가 은연중에 흔히 나타나기도 한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 설교에서 강조하는 면이다고 깨닫는 것은 개인 개인 성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설교자 백 목사님은 육적 기적과 복을 애타게 제자들에게 부르짓는 모습을 쉽게 찿아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불치병이나 불치의 신체사고를 당한 사람은 그 분이 아직 예수 믿지 아니한 분이라면 의사도 손 든 상황에서라면 우선 급한대로 기적을 체험해야 합니다. 따라서 기적에 관한 설교인 위 본문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대로 사실 백 목사님의 설교는 어느 하나 기적과 축복을 다루지 아니한 설교는 없다고 저는 깨닫게 됩니다.
설교비평가 한 요셉 드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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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동일의 본문 설교도 내용은 대동소이합니다만 우선 뽑은 게 이 설교입니다. 대개 초신자에게는 새벽기도설교보다 주일 오전 오후 설교가 일반적이고 더 쉬운 사례가 허다하므로 주일 설교를 권합니다.
대동소이하다는 말은 백 목사님의 설교의 특징 중의 하나는 십년전에 한 설교나 20,30년 전에 한 설교가 거의 내용이 차이가 없고 주된 내용은 항상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50년대 설교나 80년대 설교가 환경이나 이런 것은 달라도, 차이가 나더라도 설교의 줄거리나 흐름과 맥은 어떤 설교를 불문하고 일치하는 부분이 대개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하고 오늘이나 내일이나 항시 여일하다는 뜻이지요. 본문이 동일한 경우는 물론이고 심지어 본문이 다른 경우에도 주된 내용은 일치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는 수십년 간 그렇게 많이 해온 설교가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체계화되었다는 것으로 보여지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직접 주신 영감에 따라 한 설교가 아니라면 이렇게 설교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실제로 경험한 바로는 이 홈상 50년대 설교가 희귀하게 수개 가 있는데 이 설교를 듣다가 80년말 설교를 들어도 음성만 50대의 것이 더 카랑카랑하지 내용은 어느 것이 50년대 것이고, 어느것이 80년대의 것인지를 쉽게 분간을 할 수 없음을 발견하고 참으로 백 목사님의 설교는 세기에 한 번쯤이나 맛볼수 있는 설교로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저는 많이는 몰라도 국내의 이제나 어제나의 최고로 치는 명설교를 들어봤어도 백 목사님의 설교처럼 앞에서 말한대로 메시지가 수십년의 차이를 넘어서 항시 여일하게 변치않는 설교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는 국내외의 명설교라고 불리우는 설교들에서 도저히 찾아 볼 수 없는 점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대개 목사님들의 설교는 설교할 때마다 색다르고 메시지가 다르고 맥락이 차이가 나고 시대에 따라 변화무쌍하고 너무 종잡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때마다 차이가 나고 교리 조차도 쉽게 변해버리고 어제는 틀렸다고 하면서 오늘은 맞다고 하는 설교가 일반 교회의 설교라고 보는바, 즉 비체계적으로 순간적으로, 통시적이지 아니하고, 항시여일한 메시지를 찾기 어렵습니다. 이는 바로 설교에서 영감이 없거나 있다고 해도 소수분만 있고 설교의 포인트를 설교자가 청중 감동위주, 교회부흥위주, 자기 사람 만드는 심중, 인기집중의도 등의 목적을 마음에 품고 하는 설교들이기 때문에 항시 여일하지 못하고 시공을 초월한 불변한 설교가 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현실은 변화하고 소소한 면은 변해도 설교는 변하면 안되는, 즉 불변이어야 한다고 봄니다. 설교는 진리를 풀어서 쉽게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면 진리가 변치 아니하듯이 설교도 변치 말아야 합니다. 이미 시공을 초월하여 시종이 여일하지 못한 설교는 그것은 인본설교이거나 인기위주 설교이거나, 연출식 설교이거나 즉 영감 설교가 아닌 인간의 이성에서 나온 것이지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설교가 아니거나 받았다 해도 온전히 받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점에서 백 목사님의 설교의 불변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입니다.
한편, 이런 불변성과 통시성을 잘 모르는 성도는 백 목사님의 설교는 항상 같은 것만 되풀이하고, 한 소리 또하고 또한다고해서 지루하고 해서 짜증난다고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평가는 마귀의 역사에 기인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 홈상에 등재된 5천여개 설교가 실은 주제는 거의 불변하고 시공을 초월하고 어느 때에 들어도 거의 유사하게 들리는 면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어느 누가 어떤 상황에 맞는 설교를 추천하라고 해도 설교들마다 거의 차이가 나는 면은 별로 찾기 힘들고 거의 차이가 안나고 공통적면이 더많기 때문에 쉽게 권유를 하지 못하고 망서리게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무릇 육에서 시작해서 영으로 들어가야 가야 하고, 보이는 데서 발단해서 보이지 않는 데로 나아가고, 기본구원에서 시작해서 건설구원으로 전진하는 것이 믿음의 법칙이라고 본다면 불신자나 초신자에게는 우선 육적 기적이나 축복을 강조하는 설교가 좋다고 보기 때문에 윗 설교를 감히 권장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딱 부러지게 윗 설교가 치료가 어려운 신체적 사고나 질병을 치유하는데 안성맞춤이라고는 주장을 못할 것이지만 제가 평소 많이 들어온 설교중 그 상황에서라면 이런 설교가 좋을 것이라는 직감에 의한 추천일 뿐일 것입니다.
위 82.6.20 주전 설교는 음성상태도 좋고 새벽 예배설교에 비해 믿음이 부족한 신자들도 겨냥한 대중적면이 보다 많다고 판단되고, 제가 열람한 바로는 내용도 평이한 것으로 보이며, 사례 중에 박 정권 살해시 최종 당시 비서실장 김계원 장로가 사형 선고를 받아 그 처럼 생사가 오가는 극난의 현실에서 아마 그가 장로니까 회개하고 믿었더라면 사형에 처하지 아니하고 살아날 희망이 있다고 백 목사님께서 당시 권사님들과 식사를 하면서 말씀을 하셨는데, 과연 기적이 일어나 그는 살해 사건에서 주범과 함께 사형당하지 아니하고 생의 구원을 받았지요. 백 목사님의 예언이 적중했던 것이지요.
38년 병자 설교가 바로 김계원 사건에 맞는 설교입니다. 김계원 장로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죽지 않고 산 기적은 백 목사님은 설교중에 여러번이나 하셨습니다. 저는 실제로 김 장로가 어떻게 사형 당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기적적으로 산 것인지를 알아볼려고 당시 박 대통령 저격 사건에 관한 법원 판례를 평소 법학 연구중에 찾아 보았습니다. 백 목사님의 예언 적중을 검증해 볼려는 참이었습니다.
당시 주범인 정보부장이 연회가 시작되기전에 안간 정원에서 김 비서실장과 대화하면서 오늘밤에 그 친구(경호실장 차지철을 말함) 해 치워버릴 까하니 김 실장은 이 말을 듣고 먼데를 응시하며 아무말도 아니하고 고개를 끄덕 끄덕(다소 내 기억력이 떨어진 지는몰라고 당시 최종심 대법원 판례를 열람 하면 당시 상황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음) 하였다고. 이래서 주범은 거사를 실행하게 되었지요. 당시 직책상 말렸어야 하는데 이렇지를 못해서 실제로 김 실장은 대법에서 주범과 공동정범으로 판단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는바 주범은 사형 집행되고 김 실장은 구원받아 죽지 아니하였던 것이지요. 저는 이 판례를 열람하면서 과연 백 목사님이 시대의 신지자로구나 하고 새삼 느꼈으며 위 추천 설교를 비롯해서 김 장로에 관한 사례을 설교에서 수회를 언급한 부분마다 재독할 때마다 사형 판결을 받은 극난한 현실에서도 회개하고 믿기만 하면 살아날 구멍이 있구나 하면서 은혜를 받게 됩니다.
38년 병자 설교는 인간병을 치료해서 모든 면에 회복하고 축복 받는, 낙망과 절망, 비참에서 구출받아 기적과 축복으로 우리 인생이 희망이 넘치게 된다는 설교인바, 인간병에는 육신병(신체병), 마음병, 영병의 3종인바 대개 우리 공회 교회들의 분위기는 육신병 치료를 강조하게 되면 순복음교회가 생각나서인지(?), 또 무슨 속보이는 것 같아서 그런지 스스로 양심도 아닌 것이 양심인 척, 또는 육적 치료, 세상 부요가 되는 것이 무슨 도리가 아닌 양, 육적병 치료에 관한 것은 슬쩍 감추고 하면서 고상하게 마음병과 영병을 더욱 강조하는 분위가 은연중에 흔히 나타나기도 한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 설교에서 강조하는 면이다고 깨닫는 것은 개인 개인 성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설교자 백 목사님은 육적 기적과 복을 애타게 제자들에게 부르짓는 모습을 쉽게 찿아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불치병이나 불치의 신체사고를 당한 사람은 그 분이 아직 예수 믿지 아니한 분이라면 의사도 손 든 상황에서라면 우선 급한대로 기적을 체험해야 합니다. 따라서 기적에 관한 설교인 위 본문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대로 사실 백 목사님의 설교는 어느 하나 기적과 축복을 다루지 아니한 설교는 없다고 저는 깨닫게 됩니다.
설교비평가 한 요셉 드림
병환 입원 중 불신 부모 추천설교 요청
병환 중인 불신 부모님께서 병원에 입원 중이십니다.
복음의 기회가 될까하여 백목사님 설교를 들려 드릴 길이 생길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병환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듯하나 신체상에 장애가 남을 것입니다.
불신생활에서 벗어나 복음생활을 할수 있기에 좋은 설교 추천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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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환 중인 불신 부모님께서 병원에 입원 중이십니다.
복음의 기회가 될까하여 백목사님 설교를 들려 드릴 길이 생길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병환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듯하나 신체상에 장애가 남을 것입니다.
불신생활에서 벗어나 복음생활을 할수 있기에 좋은 설교 추천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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