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목사님의 몇십 분의 일, 몇백 분의 일 수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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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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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6 00:00
1. 일반적 교세로 본 공회
매주 출석이 수천 명이 되면 대형교회라고 합니다. 만 명이 넘어 서면 초대형교회라고 할 것 같습니다. 몇백 명 정도면 우리 주변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자리 잡은 교회라고 할 듯합니다. 아다시피 수천 명 출석 교회는 전국 곳곳에 흔하게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공회 교회들은 서부교회가 주일학교까지 합해서 4천여 명 넘기 어렵다고 보이고, 서울 잠실동 교회가 1천여 명 출석한다고 짐작 됩니다. 나머지 전국 교회는 1 - 300명 정도 교회가 20여 개일 것입니다. 나머지 200여 교회들은 몇십 명 수준입니다.
공회 교회를 일반 교세로 본다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주 형편 없습니다. 일부 생존에, 대다수가 존립 자체가 어렵다 할 만큼 그렇습니다. 서부교회 하나만 그래도 큰 편인데 1980년대 전성기에 비하면 망해 가는 곳이라는 인상은 아주 쉽게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잠실동교회가 서울에서 그래도 버틴다 하지만 1980년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일반 교단이 하는 것을 하나도 빠짐 없이 다하면서 버티는 것이어서 사실상 공회라고 할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2. 공회 기준에서 본 교세
이 번에는 이 노선 시각에서 본 교세입니다. 현재 답변자 아는 대로의 교회치고 교회가 교회로 운영되는 곳은 알지를 못합니다. 몇 부로 예배를 나눠 본다면 공회 기준으로는 예배다운 예배로 치지를 않습니다. 쉽게 말하면 예배가 아니라고 속으로 외칩니다. 예배 드리는 사람이 자기 편한 시간을 자기 생활에 맞춰 골라 잡고 간다면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을 가진 예배의 근방에도 갈 수 없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리고 주일이 없다면 그 교회는 전도 집회소거나 선교부의 지부 활동일 수는 있다 해도 정식 교회로 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답변자 아는 대로 주일을 지키는 교회는 없습니다. 전혀 없지는 않을 듯한데 아는 대로는 그렇습니다. 주일을 지킬 수 있으면 지킨다는 것이 일반 교단들의 원칙입니다. 이 원칙은 주일이 없는 원칙입니다. 신사참배를 두고 마지 못하고 피할 수 없을 때는 아주 가끔 한두 번 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신사참배 실패자라고 규정합니다.
3. 공회 교회의 교세 문제
일제 시대에 남편이 징용을 멀리 가고 돌아 올 날이 아득하고 집에는 먹고 살 것이 없는데 남겨 진 여자들이 돈 많은 집을 기웃거리며 다방도 가고 놀러도 가고 자러도 가고 용돈도 받아 가면서 살고 있다면 아마 남겨 진 자식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공부도 시킬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생존에 급급하여 그 모습이 처참하기 이를 데 없을 것입니다.
오늘 말세, 교회들이 세상 돈과 명예와 편리와 멋과 자유로움을 다 누려 가며 운영을 한다면 교회라 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그 교회들의 교인 숫자와 경제 규모와 여러 가지 왕성한 활동들은 성경과 이 노선에서 볼 때는 해서 안 될 죄를 짓는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교단 총회장이 왜 대통령을 만나는가? 왜 여당 지도자를 만나고 왜 야당 지도자를 만날까? 왜 호텔에서 교회 대표들이 기도회를 할까, 왜 교단 목사 장로 기도회가 제주도로 중국으로 동남아로 장소를 옮겨 갈까? 그 것이 기도회일까? 그 것이 기도일까? 그 것이 신앙일까?
따라서 일반 교단의 교세와 공회의 교세는 근본적으로 비교 자체를 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천주교 교세와 기독교 교세는 한 눈에 우리가 아는 것처럼. 천주교는 우리가 주변에서 잘 아다시피 불교처럼 그냥 이름 올려 놓고 가끔 생각 날 때 한 번 가서 앉았다 오는 것입니다. 천주교는 1,500여 년 벌어 놓은 돈이 있고 불교도 그 정도 세월 속에 모아 놓은 경제가 좋고 지금도 관광지 입장료가 있어 그들은 그들의 목표를 다 달성했습니다. 교회는 매주 한 번은 나와야 그래도 교인으로 칩니다. 조금 열심을 가졌다 하면 한 주간에 여러 번을 교회에 드나 듭니다. 불교 천주교는 그들 종교 직업인들의 종교에 그치고 일반 교인은
무명의 회원 정도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20 %에 불교 30 %에 천주교 5 %니 10 %니 말을 해도 그들의 증가세는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고 기독교의 감소세는 걱정입니다만, 아직도 현황을 수평 비교하면 그들 교인들은 기독교 기준에서는 교인이라고 칠 것도 없는 유령 교인이 대부분입니다. 한국의 유교인을 따지자면 지금도 조상 제사 지내는 사람과 아들 선호하는 사람 전부를 다 잡아야 하는데 그 숫자가 제일 많을 것이나 우리는 숫자 조사도 하지 않습니다.
4. 공회 교세의 진짜 문제점
질문의 글이 짧아 질문자의 시각을 잘 모르겠습니다. 만일 답변자의 이 글과 같다 해도 우리는 이 곳에 들르는 모든 분들을 위해 이런 변명성 설명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사실은 사실이며 이 것이 교회의 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설명 드리고 싶은 것은 아마도 질문자의 참 고민 거리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회의 부흥과 교세를 타 교단이 아니라 공회의 과거와 비교하면 이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공회가 옳다 치면 과거가 더 옳을 것인데 과거와 비교해서 넓어 지기는 한 없이 넓어 지고도 일반 부흥도 없고 그렇다고 과거 모습을 유지하는 곳도 제대로 없고 그런 곳이 있다면 그 교회 예배당을 찾기도 어려울 지경입니다.
- 공회 교회의 진정한 부흥
당연히 공회 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공회 신앙 원칙을 지키며 공회 목회법으로 부흥 될 때를 부흥이라 합니다. 공회의 부흥은 어떤 본질에서 어떤 면으로 노력해야 할까?
- 생명의 본질
공회 교훈에 수 없이 나타 나는 기본 원칙 중에 하나는 생명성입니다. 생명은 아다시피 하나님과 연결입니다. 하나님과 끊어 진 것은 아예 송장으로 보며 그런 상태의 수천 명은 수천 개의 묘소가 있는 공원묘지로 취급합니다. 단 하나라도 하나님과 연결 된 상태를 살았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연결 문제를 두고 내면으로 주관으로 각자 달리 말하고 달리 걸어 갈 수 있는 개별적인 문제는 두고 일단 교회라면 성경 말씀만은 누구라도 지켜야 할 객관적 기준이므로 말씀을 가지고 살필 수 있습니다. 물론 교회마다 교리가 달라서 교파가 다릅니다. 그렇다 해도 그 교회 그 교파의 기본 교리를 살펴서 그 교회의 부흥을 본다면 판단에 어려울 문제는 거의 없습니다. 교파는 크게 둘로 나뉘며 하나는 자유주의고 하나는 보수주의입니다. 자유주의는 성경 자체를 믿지 않는 곳이니 교파 자체를 교회라 할 수 없을 것이고, 성경 그대로를 주장하는 보수 교파는 역사적으로 서로 정통성을 주장해도 그들의 연혁을 조금만 살펴 보면 대동소이합니다. 즉, 최소한 주일은 알고 있으며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임을 확인합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 말씀대로 살려면 세상 어떤 희생도 다 포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기준을 가지고 살피면 됩니다.
타 교단과 비교할 것 없이 공회 교회가 스스로 생명을 가지고 있다면 자기 기준에서라도 자라 가야 합니다. 생명은 활동과 성장을 통해 생명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합니다. 생명 자체는 속에 있는 것이어서 누구라도 생명이 있다고 큰 소리를 칠 수 있으나 그 생명이 움직이고 자라는 것을 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공회가 성경과 공회의 신앙 원칙을 지키며 활동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런 원칙을 지키는 것과 그런 활동이 점점 커지고 있는가? 이 것을 통해 그 속에 생명력을 알 수 있고 그 실력도 알 수가 있습니다.
- 공회 부흥의 현황
현재 볼 때 전국 200여 개 공회 교회들 중에 성경과 공회 신앙 노선을 스스로 알고 좋아서 확고하게 규정하고 있는 곳은 3 분의 1에서 4 분의 1 수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50여 개 정도는 그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교회들의 교세는 주일학생처럼 특별한 경우는 제외하고 일반 장년반 예배만을 기준으로 본다고 해도 1980년대와 비교하면 대부분 절반 수준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은 있으나 심각하게 약화 된 상태라는 것이 답변자 판단입니다. 아주 가끔 몇 곳의 경우는 그렇지 않고 비록 완만하지만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물론 공회 신앙 원칙인 생명성을 지키는 경우를 말합니다.
- 질문에 대한 안내
부흥이라는 단어가 갖는 오해가 많아서 답변을 하려고 먼 길을 돌아 왔습니다. 백 목사님과 하나님과 사이의 연결, 그 연결의 강함이 생명력인데, 그 분 생전에는 그냥 그 설교가 너무 은혜스럽고 그의 지도를 지켜 보는 것은 놀랄 일이 많아서 존경하고 감탄하며 따라 다녔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그 당시에 목격자였고 때로는 방관자였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님 생전에 그렇게 함께 살며 모든 것을 다 보고 다 알았으나 예수님이 가시고 나니까 거짓말처럼 하나도 남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은 헛깨비를 본 듯했습니다. 아마 그 것이 우리의 신앙 본 모습인 듯합니다.
공회의 부흥은 그 자체 기준으로 볼 때도 반토막입니다. 그런데 그 반토막이 유지라도 될 수 있는 반토막이면 백 목사님 생전과 비교하면 공회 부흥의 역량은 1/2라고 설명하겠는데 현재 공회의 신앙 원칙을 지키며 교회를 유지하고 있는 50여 교회들 대부분은 백 목사님 생전에 은혜를 받고 자기 신앙을 확고하게 가진 이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이고, 새로 태어 나고 새로 전도 받아 새로 그 교회의 빈 자리를 채우며 자라 나오는 이들을 기준으로 보면 교회의 최소 유지 숫자를 제대로 채울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듯합니다.
공회의 신앙 생명에 모든 것을 건다고 하는 교회 50여 개 되는 곳은 거의 대부분 몇십 명 교회입니다. 그 교회들의 교인들 대부분은 백 목사님 생전의 신앙이 그들의 현재 신앙 모습을 그들의 양심 때문에 타 교단처럼 그렇게 넓히지 못하고 습관적 신앙으로 고착적 모습만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백 목사님이라는 훌륭한 신앙인을 당대와 오늘 우리 시대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파송했는데 그 분을 당대 훌륭한 분으로 목격만 하다가 그대로 보내 드렸고, 그리고 그의 신앙 행적을 보고 들은 이들은 '흰 개 꼬리를 3 년 굴뚝에 쳐 박아 놓아도 털고 나면 흰 개 꼬리'라는 백 목사님의 예화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5. 결론적으로
타 교단들과 달리 이 노선은 신앙의 생명을 지키면서 부흥한 것은 부흥이라고 쳐도 그렇지 않은 것은 아예 상관을 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공회 스스로의 기준에서 봐도 공회 교회들 중에 신앙의 생명을 가늠할 수 있는 그들의 공회 신앙적 활동과 성장을 가지고 본다면 아주 허무합니다. 생존 유지가 과연 가능할까 그런 정도입니다. 바로 이런 신앙 내면이 공회 교회의 외형에 그대로 드러 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흥의 결론도 쉽게 나옵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 가도, 한국 교계가 어떻게 돌아 가도, 그리고 공회의 교회들과 신앙들이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사도행전처럼 주님 한 분 붙들고 주신 말씀 가지고 움직인 1 명, 움직인 몇 명, 그들은 신앙의 생명이 강했고 그 강한 것이 때를 주시면 움 돋고 열매를 맺는 것이니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 승천 후 10 일만에 오순절 은혜를 주실 것인가? 그 때는 10 일 정도였으나 오늘은 10 년일지, 아니면 그 이상일지, 또는 어떤 형태일지 모르겠으나 원리는 같은 것이니 오늘 이 시점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고 그 한 사람이 사실 중요하다는 것이니, 이 홈은 답변자를 포함해서 이 신앙에 가치를 아는 분들이 각자 자기 현실에서 그 하나가 되고, 그 중에 어느 하나를 붙들고 다음 세대를 위해 자라 가는 은혜를 주시라는 기대 속에 움직이고 있습니다.
>> 목회후보생 님이 쓰신 내용 <<
:
: 목사님 공회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무엇입니까?
: 백목사님은 초대형교회로 부흥을 이루셨는데
: 왜 지금은 그런 공회교회가 나오지 않는지요?
매주 출석이 수천 명이 되면 대형교회라고 합니다. 만 명이 넘어 서면 초대형교회라고 할 것 같습니다. 몇백 명 정도면 우리 주변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자리 잡은 교회라고 할 듯합니다. 아다시피 수천 명 출석 교회는 전국 곳곳에 흔하게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공회 교회들은 서부교회가 주일학교까지 합해서 4천여 명 넘기 어렵다고 보이고, 서울 잠실동 교회가 1천여 명 출석한다고 짐작 됩니다. 나머지 전국 교회는 1 - 300명 정도 교회가 20여 개일 것입니다. 나머지 200여 교회들은 몇십 명 수준입니다.
공회 교회를 일반 교세로 본다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주 형편 없습니다. 일부 생존에, 대다수가 존립 자체가 어렵다 할 만큼 그렇습니다. 서부교회 하나만 그래도 큰 편인데 1980년대 전성기에 비하면 망해 가는 곳이라는 인상은 아주 쉽게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잠실동교회가 서울에서 그래도 버틴다 하지만 1980년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일반 교단이 하는 것을 하나도 빠짐 없이 다하면서 버티는 것이어서 사실상 공회라고 할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2. 공회 기준에서 본 교세
이 번에는 이 노선 시각에서 본 교세입니다. 현재 답변자 아는 대로의 교회치고 교회가 교회로 운영되는 곳은 알지를 못합니다. 몇 부로 예배를 나눠 본다면 공회 기준으로는 예배다운 예배로 치지를 않습니다. 쉽게 말하면 예배가 아니라고 속으로 외칩니다. 예배 드리는 사람이 자기 편한 시간을 자기 생활에 맞춰 골라 잡고 간다면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을 가진 예배의 근방에도 갈 수 없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리고 주일이 없다면 그 교회는 전도 집회소거나 선교부의 지부 활동일 수는 있다 해도 정식 교회로 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답변자 아는 대로 주일을 지키는 교회는 없습니다. 전혀 없지는 않을 듯한데 아는 대로는 그렇습니다. 주일을 지킬 수 있으면 지킨다는 것이 일반 교단들의 원칙입니다. 이 원칙은 주일이 없는 원칙입니다. 신사참배를 두고 마지 못하고 피할 수 없을 때는 아주 가끔 한두 번 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신사참배 실패자라고 규정합니다.
3. 공회 교회의 교세 문제
일제 시대에 남편이 징용을 멀리 가고 돌아 올 날이 아득하고 집에는 먹고 살 것이 없는데 남겨 진 여자들이 돈 많은 집을 기웃거리며 다방도 가고 놀러도 가고 자러도 가고 용돈도 받아 가면서 살고 있다면 아마 남겨 진 자식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공부도 시킬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생존에 급급하여 그 모습이 처참하기 이를 데 없을 것입니다.
오늘 말세, 교회들이 세상 돈과 명예와 편리와 멋과 자유로움을 다 누려 가며 운영을 한다면 교회라 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그 교회들의 교인 숫자와 경제 규모와 여러 가지 왕성한 활동들은 성경과 이 노선에서 볼 때는 해서 안 될 죄를 짓는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교단 총회장이 왜 대통령을 만나는가? 왜 여당 지도자를 만나고 왜 야당 지도자를 만날까? 왜 호텔에서 교회 대표들이 기도회를 할까, 왜 교단 목사 장로 기도회가 제주도로 중국으로 동남아로 장소를 옮겨 갈까? 그 것이 기도회일까? 그 것이 기도일까? 그 것이 신앙일까?
따라서 일반 교단의 교세와 공회의 교세는 근본적으로 비교 자체를 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천주교 교세와 기독교 교세는 한 눈에 우리가 아는 것처럼. 천주교는 우리가 주변에서 잘 아다시피 불교처럼 그냥 이름 올려 놓고 가끔 생각 날 때 한 번 가서 앉았다 오는 것입니다. 천주교는 1,500여 년 벌어 놓은 돈이 있고 불교도 그 정도 세월 속에 모아 놓은 경제가 좋고 지금도 관광지 입장료가 있어 그들은 그들의 목표를 다 달성했습니다. 교회는 매주 한 번은 나와야 그래도 교인으로 칩니다. 조금 열심을 가졌다 하면 한 주간에 여러 번을 교회에 드나 듭니다. 불교 천주교는 그들 종교 직업인들의 종교에 그치고 일반 교인은
무명의 회원 정도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20 %에 불교 30 %에 천주교 5 %니 10 %니 말을 해도 그들의 증가세는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고 기독교의 감소세는 걱정입니다만, 아직도 현황을 수평 비교하면 그들 교인들은 기독교 기준에서는 교인이라고 칠 것도 없는 유령 교인이 대부분입니다. 한국의 유교인을 따지자면 지금도 조상 제사 지내는 사람과 아들 선호하는 사람 전부를 다 잡아야 하는데 그 숫자가 제일 많을 것이나 우리는 숫자 조사도 하지 않습니다.
4. 공회 교세의 진짜 문제점
질문의 글이 짧아 질문자의 시각을 잘 모르겠습니다. 만일 답변자의 이 글과 같다 해도 우리는 이 곳에 들르는 모든 분들을 위해 이런 변명성 설명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사실은 사실이며 이 것이 교회의 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설명 드리고 싶은 것은 아마도 질문자의 참 고민 거리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회의 부흥과 교세를 타 교단이 아니라 공회의 과거와 비교하면 이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공회가 옳다 치면 과거가 더 옳을 것인데 과거와 비교해서 넓어 지기는 한 없이 넓어 지고도 일반 부흥도 없고 그렇다고 과거 모습을 유지하는 곳도 제대로 없고 그런 곳이 있다면 그 교회 예배당을 찾기도 어려울 지경입니다.
- 공회 교회의 진정한 부흥
당연히 공회 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공회 신앙 원칙을 지키며 공회 목회법으로 부흥 될 때를 부흥이라 합니다. 공회의 부흥은 어떤 본질에서 어떤 면으로 노력해야 할까?
- 생명의 본질
공회 교훈에 수 없이 나타 나는 기본 원칙 중에 하나는 생명성입니다. 생명은 아다시피 하나님과 연결입니다. 하나님과 끊어 진 것은 아예 송장으로 보며 그런 상태의 수천 명은 수천 개의 묘소가 있는 공원묘지로 취급합니다. 단 하나라도 하나님과 연결 된 상태를 살았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연결 문제를 두고 내면으로 주관으로 각자 달리 말하고 달리 걸어 갈 수 있는 개별적인 문제는 두고 일단 교회라면 성경 말씀만은 누구라도 지켜야 할 객관적 기준이므로 말씀을 가지고 살필 수 있습니다. 물론 교회마다 교리가 달라서 교파가 다릅니다. 그렇다 해도 그 교회 그 교파의 기본 교리를 살펴서 그 교회의 부흥을 본다면 판단에 어려울 문제는 거의 없습니다. 교파는 크게 둘로 나뉘며 하나는 자유주의고 하나는 보수주의입니다. 자유주의는 성경 자체를 믿지 않는 곳이니 교파 자체를 교회라 할 수 없을 것이고, 성경 그대로를 주장하는 보수 교파는 역사적으로 서로 정통성을 주장해도 그들의 연혁을 조금만 살펴 보면 대동소이합니다. 즉, 최소한 주일은 알고 있으며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임을 확인합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 말씀대로 살려면 세상 어떤 희생도 다 포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기준을 가지고 살피면 됩니다.
타 교단과 비교할 것 없이 공회 교회가 스스로 생명을 가지고 있다면 자기 기준에서라도 자라 가야 합니다. 생명은 활동과 성장을 통해 생명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합니다. 생명 자체는 속에 있는 것이어서 누구라도 생명이 있다고 큰 소리를 칠 수 있으나 그 생명이 움직이고 자라는 것을 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공회가 성경과 공회의 신앙 원칙을 지키며 활동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런 원칙을 지키는 것과 그런 활동이 점점 커지고 있는가? 이 것을 통해 그 속에 생명력을 알 수 있고 그 실력도 알 수가 있습니다.
- 공회 부흥의 현황
현재 볼 때 전국 200여 개 공회 교회들 중에 성경과 공회 신앙 노선을 스스로 알고 좋아서 확고하게 규정하고 있는 곳은 3 분의 1에서 4 분의 1 수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50여 개 정도는 그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교회들의 교세는 주일학생처럼 특별한 경우는 제외하고 일반 장년반 예배만을 기준으로 본다고 해도 1980년대와 비교하면 대부분 절반 수준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은 있으나 심각하게 약화 된 상태라는 것이 답변자 판단입니다. 아주 가끔 몇 곳의 경우는 그렇지 않고 비록 완만하지만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물론 공회 신앙 원칙인 생명성을 지키는 경우를 말합니다.
- 질문에 대한 안내
부흥이라는 단어가 갖는 오해가 많아서 답변을 하려고 먼 길을 돌아 왔습니다. 백 목사님과 하나님과 사이의 연결, 그 연결의 강함이 생명력인데, 그 분 생전에는 그냥 그 설교가 너무 은혜스럽고 그의 지도를 지켜 보는 것은 놀랄 일이 많아서 존경하고 감탄하며 따라 다녔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그 당시에 목격자였고 때로는 방관자였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님 생전에 그렇게 함께 살며 모든 것을 다 보고 다 알았으나 예수님이 가시고 나니까 거짓말처럼 하나도 남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은 헛깨비를 본 듯했습니다. 아마 그 것이 우리의 신앙 본 모습인 듯합니다.
공회의 부흥은 그 자체 기준으로 볼 때도 반토막입니다. 그런데 그 반토막이 유지라도 될 수 있는 반토막이면 백 목사님 생전과 비교하면 공회 부흥의 역량은 1/2라고 설명하겠는데 현재 공회의 신앙 원칙을 지키며 교회를 유지하고 있는 50여 교회들 대부분은 백 목사님 생전에 은혜를 받고 자기 신앙을 확고하게 가진 이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이고, 새로 태어 나고 새로 전도 받아 새로 그 교회의 빈 자리를 채우며 자라 나오는 이들을 기준으로 보면 교회의 최소 유지 숫자를 제대로 채울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듯합니다.
공회의 신앙 생명에 모든 것을 건다고 하는 교회 50여 개 되는 곳은 거의 대부분 몇십 명 교회입니다. 그 교회들의 교인들 대부분은 백 목사님 생전의 신앙이 그들의 현재 신앙 모습을 그들의 양심 때문에 타 교단처럼 그렇게 넓히지 못하고 습관적 신앙으로 고착적 모습만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백 목사님이라는 훌륭한 신앙인을 당대와 오늘 우리 시대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파송했는데 그 분을 당대 훌륭한 분으로 목격만 하다가 그대로 보내 드렸고, 그리고 그의 신앙 행적을 보고 들은 이들은 '흰 개 꼬리를 3 년 굴뚝에 쳐 박아 놓아도 털고 나면 흰 개 꼬리'라는 백 목사님의 예화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5. 결론적으로
타 교단들과 달리 이 노선은 신앙의 생명을 지키면서 부흥한 것은 부흥이라고 쳐도 그렇지 않은 것은 아예 상관을 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공회 스스로의 기준에서 봐도 공회 교회들 중에 신앙의 생명을 가늠할 수 있는 그들의 공회 신앙적 활동과 성장을 가지고 본다면 아주 허무합니다. 생존 유지가 과연 가능할까 그런 정도입니다. 바로 이런 신앙 내면이 공회 교회의 외형에 그대로 드러 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흥의 결론도 쉽게 나옵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 가도, 한국 교계가 어떻게 돌아 가도, 그리고 공회의 교회들과 신앙들이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사도행전처럼 주님 한 분 붙들고 주신 말씀 가지고 움직인 1 명, 움직인 몇 명, 그들은 신앙의 생명이 강했고 그 강한 것이 때를 주시면 움 돋고 열매를 맺는 것이니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 승천 후 10 일만에 오순절 은혜를 주실 것인가? 그 때는 10 일 정도였으나 오늘은 10 년일지, 아니면 그 이상일지, 또는 어떤 형태일지 모르겠으나 원리는 같은 것이니 오늘 이 시점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고 그 한 사람이 사실 중요하다는 것이니, 이 홈은 답변자를 포함해서 이 신앙에 가치를 아는 분들이 각자 자기 현실에서 그 하나가 되고, 그 중에 어느 하나를 붙들고 다음 세대를 위해 자라 가는 은혜를 주시라는 기대 속에 움직이고 있습니다.
>> 목회후보생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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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님 공회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무엇입니까?
: 백목사님은 초대형교회로 부흥을 이루셨는데
: 왜 지금은 그런 공회교회가 나오지 않는지요?
공회부흥
목사님 공회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무엇입니까?
백목사님은 초대형교회로 부흥을 이루셨는데
왜 지금은 그런 공회교회가 나오지 않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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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공회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무엇입니까?
백목사님은 초대형교회로 부흥을 이루셨는데
왜 지금은 그런 공회교회가 나오지 않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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