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기본은 정확성 때문에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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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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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5 00:00
백 목사님의 유족 중에는 필기본은 정확성이 없고 아버님의 진의가 잘못 전달 되어 불요한 시비에 휩싸일 수 있으며 본인이 계시지 않는 상태에서 해명이나 대처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필기본의 공개나 출간은 반대한다는 요지를 간접으로 전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입장을 가지고 계십니까?
>> yilee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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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목회 형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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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에서 옛날식에 가까운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교인 대부분이 일상 생활에서 늘 접하는 일들을 제대로 하기 어려워 목회자로서 설교뿐 아니라 교인의 생활 지도까지 할 일이 많습니다. 병원을 찾는 것, 치료비를 계산하는 것, 중요 질병을 통고 받거나 수술을 해야 할 때 판단 문제, 자녀들의 학습 계획이나 진학 선택, 결혼과 가정 생활 속에서 살아 가며 일반적으로 나타 나는 문제들, 이웃 사이에 생기는 분쟁, 주거 마련이나 직업 변경, 사업하는 분들의 중요한 판단에서부터 행정이나 법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지도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
: 한국교회 초기의 모든 목회자들이 당연하게 다 맡아 왔던 일들인데 사회 전체의 교육과 여건 변경으로 지금 목회자들은 상담 정도에서 그치는 듯하나 답변자의 시골 바닷가 교인들의 관계는 말이 상담이지 거의 답변자가 판단을 하고 결정을 해야 합니다. 아다시피 이런 일은 잘 되면 그냥 고맙게 생각하고 돌아 서면 잊게 되나 만에 하나 잘못 되면 그 때는 교회 존립이나 목회자 재임 여부를 걸 만큼 대형 책임 문제로 비화 됩니다. 무슨 책임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한 개인과 가정에 중요한 문제이고 그 것이 그들의 신앙과 교회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늘 긴장 상태입니다.
:
: 어렵게 사는 분들에게 작은 일이 하나 잘못 되면 주일 출석이나 예배 생활에 영향을 받는 분들, 작은 돈을 잘못 처리하고 그 일을 수습하려면 장기 출타를 하게 되어 새벽예배를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 자녀들의 공부 방향과 내용을 잘못 지도하면 결국 진학하고 올라 가면서 다른 곳으로 빠져 버리는 경우 등이 무수한데 일이 발생한 다음에 붙들고 상담하고 지도하는 것보다 사전에 먼저 살펴서 소리 없이 잡고 나옵니다.
:
: 일반 교단의 목회자들과 달리 공회는 목회자가 회의나 각종 일정에 얽매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매주 11 회의 예배 인도가 기본이고 전부입니다. 그 대신 교인 전체를 신앙은 물론이고 그들의 신앙에 직결 되는 일반 생활 전체까지를 살피다 보면 사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시간도 마련하기 어려운 정도이고 책을 쓴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어렵습니다. 말씀하신 조직신학과 같은 교리서는 그 깊이 때문에 묵상도 많이 필요하고 또 내용과 내용 사이에 연결과 전체 균형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소위 신학교에서 이 분야를 강의하며 자기 연구 시간을 확보한 경우에나 가능하고, 일반 목회자들이 신학서를 출간할 때는 여러 책을 놓고 적당하게 재배치를 하는 정도인데 백영희 조직신학은 전혀 새롭게 적어 나가기 때문에 머리 속에는 늘 들어 있으나 객관적 도서로 출간하는 문제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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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목회와 연구의 병행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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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목사님으로부터 현재 맡고 있는 곳으로 1989년 3월에 보냄을 받을 때 답변자에게 맡겨 진 조직신학 정리라는 중요 업무 때문에 불가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목회 없는 연구는 죽은 연구! 이 한 마디로 답변자의 의문과 모든 짐을 절삭해 주셨고, 이 단쾌한 한 마디 때문에 오늘까지 별 어려움 없이 지내 오고 있습니다. 비록 능력 부족으로 늦어 지는 것은 잘 알고 있으나 부탁하신 분이 그런 수준임을 알면서도 달리 길이 없어 그 분은 맡겼고 그리고 답변자는 부탁 받은 것이 전부고 일단 맡았기 때문에 힘대로 하고 안 되는 것은 하나님께 맡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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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와 연구의 병행 원칙!'
: 이 한 마디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죽은 지식의 나열에 평생을 쏟고 자화자탄식으로 자기 벽에 갇혀 행복하게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전도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심방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교회에서 생활 속에서 가르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직접 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흙을 묻혀 가며 끌어 보지 않고, 그리고 내 놓는 말은 말쟁이 말이고 죽은 지식이고 심판만 마련하는 것이라는 이 원칙은 흔히 현장 중심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이 하나의 멋으로 표현하고 또 자기들 세계를 옹호하기 위해 활용 된다고 봅니다만 이 노선의 이 한 마디는 이 노선의 전부를 규정 짓고 있습니다.
:
: 목사가 되고 싶은가? 반사를 하라. 반사가 되고 싶은가? 바로 골목으로 나가라.
: 지도자가 되고 싶은가? 가장 좋은 교인이 되라. 바른 교인이 되고 싶은가?
: 말씀을 듣고 자기 현실에서 실제 그대로 다 살아 보라. 다 해 보고 나서 받은 것이 신앙이다.
:
: 이런 원칙은 가장 쉽고 가장 어렵습니다. 전쟁으로 말하면 최전선을 다 누빈 사람만 국방부에 데려다 쓰지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를 누비지 않고 그 속에서 살아 나오지 않고 사관학교와 국방대학에서 책을 읽고 논문을 쓰고 뉴스에 나와서 중계방송을 하고 해설을 하는 사람, 다른 곳은 몰라도 공회 신앙에서는 사람으로 수에 치지를 않습니다. 답변자도 공부를 잘하지는 않았으나 중간은 했고 2류와 3류 사이에서 정규 과정은 제대로 구경을 다 해 봤기 때문에 최소한 어떻게 하더라는 것은 봤습니다. 조직신학을 맡은 이상 목회는 당연히 하지 못할 것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시골 까다로운 교회로 보냈고 신학과 목회를 한꺼번에 못을 박아 두고 분리 불가하게 만들어 두셨는데, 지난 세월을 놓고 볼 때 빨리 책을 적는 것이나 분량을 많이 적는 것이나 그 깊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딱 한 줄로 줄여 놓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 것은 목회를 떠나서는 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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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지금 초기화면에 정식 공지는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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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걸릴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조급하게 책을 출간하여 내 이름으로도 책이 한 권 나갔다고 선점적 효과에 몰두하거나 잠재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깔려 있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마치 모든 개척교회가 모두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따라 마지 못해 이렇게 하게 되었다고 하고, 목회자들도 하나님의 특별 인도에 끌려서 모두들 나왔다고 하는데, 그들의 이후 행동을 많이도 볼 것 없이 1 년만 지켜 보면 그들의 언행이 그들의 출발을 다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 노선의 조직신학 정리는 이 노선의 전부입니다. 이 노선 설교 10만 페이지의 최대공약수라고 할까, 답변자가 바로 이해했다면 이 세상 모든 숫자는 1과 2라는 숫자 둘이면 요약 될 것입니다. 하나는 짝수를 하나는 홀수를 줄이고 줄이고 거품을 빼고 빼면 마지막 남는 단위일 것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모든 동물의 구성은 DNA 최소 인자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C(시토신) 4 가지 염기로 추출할 수 있다는 것을 1976년에 배운 기억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화학시간에 배운 기억은 H(수소) He(헬륨) B(붕소) C(탄소) 이렇게 100가지 조금 넘는 원소로 만물이 구성 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이 원소 숫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원래 숫자에 약하고 그 숫자가 당시 듣기로 가끔 한두 개씩 새로 발견 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절대가 아니라 상대적 숫자가 되면 답변자는 100가지 조금 넘는다는 정도로 대략 넘어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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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회 조직신학의 정본은 사실 현재 출간 된 472 페이지도 너무 많습니다. 절반 이하로 줄여야 하는데 충분하게 시간을 갖지 못해서 조잡하게 늘어 난 것입니다. 원래 아는 사람일수록 적은 말로 표현하고, 모르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다만 상대방의 이해를 위해 설명을 하는 것은 평생 반복할 수 있으니 정본 조직신학은 더욱 줄이고, 그리고 사안 별로 별로 해설서는 아무리 최소화를 하려 해도 수천 페이지 이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최근 이 홈에 기능 구원에 대해 한 번씩 짚고 계신 '무명2'의 글만 가지고 봐도 이 노선의 핵심 중 하나인 '조직신학 > 구원론 > 건설구원론 > 기능구원' 이렇게 급격하게 범위를 좁혀 간 상태에서 '기능구원' 안에서도 그 내용이나 성격이라는 한 분야를 두고도 적을 내용이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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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이 홈에서 제공하는 10만 페이지의 백영희 설교는 성경을 읽고 성경을 설명하며 성경을 요약하여 우리에게 성경 그대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것이 '목회설교록'이라면, 이 번에는 백영희 설교에 담긴 공통점만 최소한으로 줄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 것이 '조직신학'입니다. 백영희 설교에 한 번이라도 언급 된 내용이 2백 페이지 안에, 많아야 5백 페이지 안에 다 담겨 있다 할 정도일 때 이를 교리라고 합니다. 페이지 자체는 중요한 것이 아니나 다만 페이지가 많아 지면 설교록이 되고, 너무 줄어서 왜 이렇게 표현한 것이 저 설교를 요약했거나 함축 되어 있는지 연결선이 끊어 진다면 또는 전체 내용끼리 한 몸처럼 연결 되고 하나 되지 않는다면 조직신학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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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결론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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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할 수 없는 시간, 답변자의 목회 환경에서 가능한 시기에
: 이미 출간 된 정도의 분량을 기준으로 큰 변동은 없을 듯하고
: 주로 모습에 대해 제안들이 들어 오는 바 최대한 반영하겠으며
: 조직신학 정본은 첫 출간을 기준으로 일부 수정 보완일 것이고
:
: 이 번의 출간이 아쉬워도 어느 정도 백영희 조직신학 정본의 모습을 갖춘다고 생각하여
: 이 번 책이 정리 되면 바로 이후에는 정본의 한 부분씩 각론 차원에서 깊이 살필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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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선배는 성경 하나로 가르쳤고 후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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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저 넘겨 받은 앞의 자료를 잘 보관하고 연구하고 사용하면서
: - 잘 요약하여 오늘을 감당하면서도 이후까지 이어 지게 만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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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시대에 비교를 하지는 못하겠으나 하나님 주신 위치에 충성은 될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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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동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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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겉으로는 표내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여기에 눈과 귀를 열고 있습니다. 조직신학은 칼빈의 기독교강요 초판처럼 간단하게 시작했으나 내용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역사적인 중요 출간이 오래동안 지연되었을까? 여기 문답게시판의 자료만 참고해도 곳곳에 신학 각분야를 훑지 않은 것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내용의 깊이와 세부적인 내용들을 많이 담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궁금한 것이 많은데 수고하는 종께 실례가 될까 해서 이만 줄입니다. 고대합니다.
>> yilee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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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목회 형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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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에서 옛날식에 가까운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교인 대부분이 일상 생활에서 늘 접하는 일들을 제대로 하기 어려워 목회자로서 설교뿐 아니라 교인의 생활 지도까지 할 일이 많습니다. 병원을 찾는 것, 치료비를 계산하는 것, 중요 질병을 통고 받거나 수술을 해야 할 때 판단 문제, 자녀들의 학습 계획이나 진학 선택, 결혼과 가정 생활 속에서 살아 가며 일반적으로 나타 나는 문제들, 이웃 사이에 생기는 분쟁, 주거 마련이나 직업 변경, 사업하는 분들의 중요한 판단에서부터 행정이나 법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지도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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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 초기의 모든 목회자들이 당연하게 다 맡아 왔던 일들인데 사회 전체의 교육과 여건 변경으로 지금 목회자들은 상담 정도에서 그치는 듯하나 답변자의 시골 바닷가 교인들의 관계는 말이 상담이지 거의 답변자가 판단을 하고 결정을 해야 합니다. 아다시피 이런 일은 잘 되면 그냥 고맙게 생각하고 돌아 서면 잊게 되나 만에 하나 잘못 되면 그 때는 교회 존립이나 목회자 재임 여부를 걸 만큼 대형 책임 문제로 비화 됩니다. 무슨 책임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한 개인과 가정에 중요한 문제이고 그 것이 그들의 신앙과 교회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늘 긴장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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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렵게 사는 분들에게 작은 일이 하나 잘못 되면 주일 출석이나 예배 생활에 영향을 받는 분들, 작은 돈을 잘못 처리하고 그 일을 수습하려면 장기 출타를 하게 되어 새벽예배를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 자녀들의 공부 방향과 내용을 잘못 지도하면 결국 진학하고 올라 가면서 다른 곳으로 빠져 버리는 경우 등이 무수한데 일이 발생한 다음에 붙들고 상담하고 지도하는 것보다 사전에 먼저 살펴서 소리 없이 잡고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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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교단의 목회자들과 달리 공회는 목회자가 회의나 각종 일정에 얽매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매주 11 회의 예배 인도가 기본이고 전부입니다. 그 대신 교인 전체를 신앙은 물론이고 그들의 신앙에 직결 되는 일반 생활 전체까지를 살피다 보면 사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시간도 마련하기 어려운 정도이고 책을 쓴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어렵습니다. 말씀하신 조직신학과 같은 교리서는 그 깊이 때문에 묵상도 많이 필요하고 또 내용과 내용 사이에 연결과 전체 균형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소위 신학교에서 이 분야를 강의하며 자기 연구 시간을 확보한 경우에나 가능하고, 일반 목회자들이 신학서를 출간할 때는 여러 책을 놓고 적당하게 재배치를 하는 정도인데 백영희 조직신학은 전혀 새롭게 적어 나가기 때문에 머리 속에는 늘 들어 있으나 객관적 도서로 출간하는 문제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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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목회와 연구의 병행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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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목사님으로부터 현재 맡고 있는 곳으로 1989년 3월에 보냄을 받을 때 답변자에게 맡겨 진 조직신학 정리라는 중요 업무 때문에 불가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목회 없는 연구는 죽은 연구! 이 한 마디로 답변자의 의문과 모든 짐을 절삭해 주셨고, 이 단쾌한 한 마디 때문에 오늘까지 별 어려움 없이 지내 오고 있습니다. 비록 능력 부족으로 늦어 지는 것은 잘 알고 있으나 부탁하신 분이 그런 수준임을 알면서도 달리 길이 없어 그 분은 맡겼고 그리고 답변자는 부탁 받은 것이 전부고 일단 맡았기 때문에 힘대로 하고 안 되는 것은 하나님께 맡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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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와 연구의 병행 원칙!'
: 이 한 마디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죽은 지식의 나열에 평생을 쏟고 자화자탄식으로 자기 벽에 갇혀 행복하게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전도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심방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교회에서 생활 속에서 가르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직접 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흙을 묻혀 가며 끌어 보지 않고, 그리고 내 놓는 말은 말쟁이 말이고 죽은 지식이고 심판만 마련하는 것이라는 이 원칙은 흔히 현장 중심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이 하나의 멋으로 표현하고 또 자기들 세계를 옹호하기 위해 활용 된다고 봅니다만 이 노선의 이 한 마디는 이 노선의 전부를 규정 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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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가 되고 싶은가? 반사를 하라. 반사가 되고 싶은가? 바로 골목으로 나가라.
: 지도자가 되고 싶은가? 가장 좋은 교인이 되라. 바른 교인이 되고 싶은가?
: 말씀을 듣고 자기 현실에서 실제 그대로 다 살아 보라. 다 해 보고 나서 받은 것이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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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원칙은 가장 쉽고 가장 어렵습니다. 전쟁으로 말하면 최전선을 다 누빈 사람만 국방부에 데려다 쓰지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를 누비지 않고 그 속에서 살아 나오지 않고 사관학교와 국방대학에서 책을 읽고 논문을 쓰고 뉴스에 나와서 중계방송을 하고 해설을 하는 사람, 다른 곳은 몰라도 공회 신앙에서는 사람으로 수에 치지를 않습니다. 답변자도 공부를 잘하지는 않았으나 중간은 했고 2류와 3류 사이에서 정규 과정은 제대로 구경을 다 해 봤기 때문에 최소한 어떻게 하더라는 것은 봤습니다. 조직신학을 맡은 이상 목회는 당연히 하지 못할 것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시골 까다로운 교회로 보냈고 신학과 목회를 한꺼번에 못을 박아 두고 분리 불가하게 만들어 두셨는데, 지난 세월을 놓고 볼 때 빨리 책을 적는 것이나 분량을 많이 적는 것이나 그 깊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딱 한 줄로 줄여 놓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 것은 목회를 떠나서는 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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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걸릴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조급하게 책을 출간하여 내 이름으로도 책이 한 권 나갔다고 선점적 효과에 몰두하거나 잠재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깔려 있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마치 모든 개척교회가 모두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따라 마지 못해 이렇게 하게 되었다고 하고, 목회자들도 하나님의 특별 인도에 끌려서 모두들 나왔다고 하는데, 그들의 이후 행동을 많이도 볼 것 없이 1 년만 지켜 보면 그들의 언행이 그들의 출발을 다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 노선의 조직신학 정리는 이 노선의 전부입니다. 이 노선 설교 10만 페이지의 최대공약수라고 할까, 답변자가 바로 이해했다면 이 세상 모든 숫자는 1과 2라는 숫자 둘이면 요약 될 것입니다. 하나는 짝수를 하나는 홀수를 줄이고 줄이고 거품을 빼고 빼면 마지막 남는 단위일 것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모든 동물의 구성은 DNA 최소 인자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C(시토신) 4 가지 염기로 추출할 수 있다는 것을 1976년에 배운 기억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화학시간에 배운 기억은 H(수소) He(헬륨) B(붕소) C(탄소) 이렇게 100가지 조금 넘는 원소로 만물이 구성 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이 원소 숫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원래 숫자에 약하고 그 숫자가 당시 듣기로 가끔 한두 개씩 새로 발견 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절대가 아니라 상대적 숫자가 되면 답변자는 100가지 조금 넘는다는 정도로 대략 넘어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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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회 조직신학의 정본은 사실 현재 출간 된 472 페이지도 너무 많습니다. 절반 이하로 줄여야 하는데 충분하게 시간을 갖지 못해서 조잡하게 늘어 난 것입니다. 원래 아는 사람일수록 적은 말로 표현하고, 모르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다만 상대방의 이해를 위해 설명을 하는 것은 평생 반복할 수 있으니 정본 조직신학은 더욱 줄이고, 그리고 사안 별로 별로 해설서는 아무리 최소화를 하려 해도 수천 페이지 이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최근 이 홈에 기능 구원에 대해 한 번씩 짚고 계신 '무명2'의 글만 가지고 봐도 이 노선의 핵심 중 하나인 '조직신학 > 구원론 > 건설구원론 > 기능구원' 이렇게 급격하게 범위를 좁혀 간 상태에서 '기능구원' 안에서도 그 내용이나 성격이라는 한 분야를 두고도 적을 내용이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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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이 홈에서 제공하는 10만 페이지의 백영희 설교는 성경을 읽고 성경을 설명하며 성경을 요약하여 우리에게 성경 그대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것이 '목회설교록'이라면, 이 번에는 백영희 설교에 담긴 공통점만 최소한으로 줄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 것이 '조직신학'입니다. 백영희 설교에 한 번이라도 언급 된 내용이 2백 페이지 안에, 많아야 5백 페이지 안에 다 담겨 있다 할 정도일 때 이를 교리라고 합니다. 페이지 자체는 중요한 것이 아니나 다만 페이지가 많아 지면 설교록이 되고, 너무 줄어서 왜 이렇게 표현한 것이 저 설교를 요약했거나 함축 되어 있는지 연결선이 끊어 진다면 또는 전체 내용끼리 한 몸처럼 연결 되고 하나 되지 않는다면 조직신학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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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결론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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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할 수 없는 시간, 답변자의 목회 환경에서 가능한 시기에
: 이미 출간 된 정도의 분량을 기준으로 큰 변동은 없을 듯하고
: 주로 모습에 대해 제안들이 들어 오는 바 최대한 반영하겠으며
: 조직신학 정본은 첫 출간을 기준으로 일부 수정 보완일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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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번의 출간이 아쉬워도 어느 정도 백영희 조직신학 정본의 모습을 갖춘다고 생각하여
: 이 번 책이 정리 되면 바로 이후에는 정본의 한 부분씩 각론 차원에서 깊이 살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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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선배는 성경 하나로 가르쳤고 후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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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저 넘겨 받은 앞의 자료를 잘 보관하고 연구하고 사용하면서
: - 잘 요약하여 오늘을 감당하면서도 이후까지 이어 지게 만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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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시대에 비교를 하지는 못하겠으나 하나님 주신 위치에 충성은 될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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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동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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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겉으로는 표내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여기에 눈과 귀를 열고 있습니다. 조직신학은 칼빈의 기독교강요 초판처럼 간단하게 시작했으나 내용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역사적인 중요 출간이 오래동안 지연되었을까? 여기 문답게시판의 자료만 참고해도 곳곳에 신학 각분야를 훑지 않은 것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내용의 깊이와 세부적인 내용들을 많이 담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궁금한 것이 많은데 수고하는 종께 실례가 될까 해서 이만 줄입니다. 고대합니다.
왜 조직신학이라는 역사적 출간이 지연되는가?
겉으로는 표내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여기에 눈과 귀를 열고 있습니다. 조직신학은 칼빈의 기독교강요 초판처럼 간단하게 시작했으나 내용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역사적인 중요 출간이 오래동안 지연되었을까? 여기 문답게시판의 자료만 참고해도 곳곳에 신학 각분야를 훑지 않은 것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내용의 깊이와 세부적인 내용들을 많이 담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궁금한 것이 많은데 수고하는 종께 실례가 될까 해서 이만 줄입니다.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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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표내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여기에 눈과 귀를 열고 있습니다. 조직신학은 칼빈의 기독교강요 초판처럼 간단하게 시작했으나 내용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역사적인 중요 출간이 오래동안 지연되었을까? 여기 문답게시판의 자료만 참고해도 곳곳에 신학 각분야를 훑지 않은 것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내용의 깊이와 세부적인 내용들을 많이 담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궁금한 것이 많은데 수고하는 종께 실례가 될까 해서 이만 줄입니다.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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