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히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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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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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도 직접 오셔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필기본은 정확성이 없고 진의 전달이 잘못 되면 큰 오해를 사게 되는데 대처조차 할 수 없다는 요지로 파악하고 설명 드립니다.


1, 정확성 문제


현재 이 홈의 /초기화면/활용자료/'검토본' 게시판에는 백 목사님 설교의 필기 시기 자료를 일체 올리고 있습니다. 그 게시판의 제목은 '검토본'이라고 되어 있고 그 제목에는 '필기본이어서 내용에 실수나 잘못이 있습니다. 지적과 수정을 부탁합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자료의 소제목에는 '스캔원본 - 원본해독 - (필기 형태의 설교 자료)' 이렇습니다.


필기 원본을 스캔해서 제공하고, 타이핑을 하여 올리면서 '필기' '실수나 잘못'이라는 전제를 달았습니다. 그런데 이 자료를 가지고 시비를 하고 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미친ㄴ이 아닐까요? 제 정신 아닌 사람의 억지까지 겁을 내서 주저해야 한다면 이 홈도 이 노선도 포기를 해야 할 것이고, 성경도 함께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 질 듯합니다. 아다시피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이 정확무오합니까?


성경이 사본과 번역 과정을 통해 틀림 없이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정확무오한 성경이라는 교리를 외치고 있습니다. 사본과 번역의 정확무오가 아니라 원본의 원래 성경은 정확무오이니 그 정확무오를 사본과 번역의 오류와 실수를 헤집고 들어 가서 찾아 내겠다는 뜻입니다. 하물며 백 목사님의 10 년치 녹음본 자료가 있고 이 것이 모든 것을 말하는 정본인데 필기본이라는 이름을 걸어 놓고 필기의 오류를 가지고 대적할까 봐 떤다면 대화가 될 수 없는 주장입니다. 필기 자료를 혼자 보며 즐기려는 이유든지 아니면 그런 논란을 일으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잘못 된 동기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정확성' 문제는 문제가 아닙니다. 말로서 성립도 될 수 없습니다.


2. 진의 전달의 문제점


지금까지 공회는 백 목사님 생전에 설교하고 가르친 당사자 백영희라는 실존 인물을 모시고 그가 한국 교계의 언론과 관심과 방문의 한 중간에서 높임을 극도로 받던 순간에 그의 설교 지난 날 녹음본 10 년치를 가지고도 이단 시비로 고통을 겪었으며 늘 해명하면 사과해 놓고 또 그런 표현을 일삼았습니다. 즉, 정확하게 살피고 양심껏 따지는 비판자는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었고 이단이라는 도장을 몇 번이나 찍어 댔느냐는 것으로 실적을 삼으려는 이들이 엉겁결에 한 건을 올리려고 뒤집어 씌워서 생긴 것이 공회의 오해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아무리 실존 인물과 현재 증거 되는 강단의 당시 상황과 지난 날 모든 자료를 가지고 있어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필기본으로 만일 비판하고 들어 온다면 우리로서는 반증과 함께 그들에게 낙인을 찍을 수 있는 더 좋은 기회입니다. 증인의 증언을 조작해서 뒤집어 씌우는 사례는 봐도 필기 노트를 증거로 삼아 그러는 경우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가 바보가 되고 스스로 사기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대처의 역량


백 목사님 사후 23 년이 지나고 24 년에 접어 들면서 백 목사님 생전보다 공회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대해 대처하고 사과를 받아 무릎을 꿇리는 일은 갈수록 더 쉽고 실적도 더 많고 이제는 아예 총공회와 이 노선을 찬양하는 소리를 많이 들어 황송하지 비판을 받아 이 노선이 왜소해 지거나 불리해 질까 하는 염려는 없는 시기입니다.


공회 소속 목회자 한 분이 인터넷을 다 훑어 눈에 띈 것은 단 하나도 빼지 않고 모조리 다 자진 삭제를 시키고 있습니다. 삭제 대상은 개인이나 일반 교회 수준이 아니라 권위 있는 단체까지 포함 되어 있습니다. 한국 교계에 제일 오래 되고 유명한 곳까지 전화를 해서 직접 확인하자 무슨 말이냐고 펄쩍 뛰며 오해라고 극구 비판을 부인하는 정도입니다.


백 목사님 생전보다 그 사후가 대처 능력이 더 탁월한 이유는 원래 우리는 깨끗하며 옳기 때문이고, 그리고 대처하는 능력이야 목사님의 지도가 있던 때와 비교할 수 없으나 목사님 생전은 목사님이 당사자니 그 분의 신앙 수준에서 늘 머뭇거리거나 용서하였고 이런 선의를 악의로 바꾼 사례가 많았으나 목사님이 계시지 않는 오늘은 이 노선을 비판하는 상대방에게 실제 법적 조처를 하고 나설 이들도 더러 있고 또 그렇게 하기 전에 상대방이 백 목사님이 계실 때는 그런 시대의 성자에게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나중에 다급하면 용서해 달라고 한 마디만 하면 해결 될 것이라는 그런 배짱과 악한 꾀를 가졌기 때문에 나쁜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총공회 내에도 분쟁이 생기면 공회 원칙을 반하면서까지 법적 조처하고 싸우는 사례를 듣고 있으니 그들이 허위 비판을 하는 자신들을 그냥 두리라고 생각할 리가 없어서 목사님 생전보다 오히려 일처리가 쉬워 지고 있습니다.


4. 필기본의 의미는


10 년치의 녹음본을 제대로 연구하려면 그 교훈 교리가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으로 그렇게 되었는지를 살펴야 제대로 연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신인양성일위라고 요약이 되었으나 구약 전체를 통해 연구하지 않으면 신약만 가지고 부족한 것처럼, 또한 칼빈의 교리 발표와 정리가 이전 시대인 루터와 위클립 또는 어거스틴까지 면밀히 살피지 않고는 칼빈 교리 자체의 연구가 엉뚱하게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녹음본 10 년치의 자료 연구가 제대로 되기 위해 필기본은 반드시 살펴야 합니다.


답변자는 개인적으로 1950년대와 1960년대 자료를 계속해서 살피고 있습니다. 너무 필요함을 절절이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날의 궤적을 제대로 짚어 보면 그 궤적은 현 좌표의 내용을 알기 쉽고 그 좌표의 다음을 살필 수 있습니다. 물론 영안이 너무 밝은 분들은 현 좌표만 보고도 지난 날의 궤적을 산술해 내고 진로 방향까지 짚어 내는 경우도 있으나 일반 우리의 실력으로는 그렇지를 못하고 또 두 면이 함께 노력하면 손해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 공회인 님이 쓰신 내용 <<

:

: 백 목사님의 유족 중에는 필기본은 정확성이 없고 아버님의 진의가 잘못 전달 되어 불요한 시비에 휩싸일 수 있으며 본인이 계시지 않는 상태에서 해명이나 대처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필기본의 공개나 출간은 반대한다는 요지를 간접으로 전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입장을 가지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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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ilee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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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목회 형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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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골에서 옛날식에 가까운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교인 대부분이 일상 생활에서 늘 접하는 일들을 제대로 하기 어려워 목회자로서 설교뿐 아니라 교인의 생활 지도까지 할 일이 많습니다. 병원을 찾는 것, 치료비를 계산하는 것, 중요 질병을 통고 받거나 수술을 해야 할 때 판단 문제, 자녀들의 학습 계획이나 진학 선택, 결혼과 가정 생활 속에서 살아 가며 일반적으로 나타 나는 문제들, 이웃 사이에 생기는 분쟁, 주거 마련이나 직업 변경, 사업하는 분들의 중요한 판단에서부터 행정이나 법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지도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 :

: : 한국교회 초기의 모든 목회자들이 당연하게 다 맡아 왔던 일들인데 사회 전체의 교육과 여건 변경으로 지금 목회자들은 상담 정도에서 그치는 듯하나 답변자의 시골 바닷가 교인들의 관계는 말이 상담이지 거의 답변자가 판단을 하고 결정을 해야 합니다. 아다시피 이런 일은 잘 되면 그냥 고맙게 생각하고 돌아 서면 잊게 되나 만에 하나 잘못 되면 그 때는 교회 존립이나 목회자 재임 여부를 걸 만큼 대형 책임 문제로 비화 됩니다. 무슨 책임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한 개인과 가정에 중요한 문제이고 그 것이 그들의 신앙과 교회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늘 긴장 상태입니다.

: :

: : 어렵게 사는 분들에게 작은 일이 하나 잘못 되면 주일 출석이나 예배 생활에 영향을 받는 분들, 작은 돈을 잘못 처리하고 그 일을 수습하려면 장기 출타를 하게 되어 새벽예배를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 자녀들의 공부 방향과 내용을 잘못 지도하면 결국 진학하고 올라 가면서 다른 곳으로 빠져 버리는 경우 등이 무수한데 일이 발생한 다음에 붙들고 상담하고 지도하는 것보다 사전에 먼저 살펴서 소리 없이 잡고 나옵니다.

: :

: : 일반 교단의 목회자들과 달리 공회는 목회자가 회의나 각종 일정에 얽매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매주 11 회의 예배 인도가 기본이고 전부입니다. 그 대신 교인 전체를 신앙은 물론이고 그들의 신앙에 직결 되는 일반 생활 전체까지를 살피다 보면 사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시간도 마련하기 어려운 정도이고 책을 쓴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어렵습니다. 말씀하신 조직신학과 같은 교리서는 그 깊이 때문에 묵상도 많이 필요하고 또 내용과 내용 사이에 연결과 전체 균형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소위 신학교에서 이 분야를 강의하며 자기 연구 시간을 확보한 경우에나 가능하고, 일반 목회자들이 신학서를 출간할 때는 여러 책을 놓고 적당하게 재배치를 하는 정도인데 백영희 조직신학은 전혀 새롭게 적어 나가기 때문에 머리 속에는 늘 들어 있으나 객관적 도서로 출간하는 문제는 어렵습니다.

: :

: :

: :

: : 2. 목회와 연구의 병행 원칙

: :

: : 백 목사님으로부터 현재 맡고 있는 곳으로 1989년 3월에 보냄을 받을 때 답변자에게 맡겨 진 조직신학 정리라는 중요 업무 때문에 불가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목회 없는 연구는 죽은 연구! 이 한 마디로 답변자의 의문과 모든 짐을 절삭해 주셨고, 이 단쾌한 한 마디 때문에 오늘까지 별 어려움 없이 지내 오고 있습니다. 비록 능력 부족으로 늦어 지는 것은 잘 알고 있으나 부탁하신 분이 그런 수준임을 알면서도 달리 길이 없어 그 분은 맡겼고 그리고 답변자는 부탁 받은 것이 전부고 일단 맡았기 때문에 힘대로 하고 안 되는 것은 하나님께 맡길 뿐입니다.

: :

: : '목회와 연구의 병행 원칙!'

: : 이 한 마디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죽은 지식의 나열에 평생을 쏟고 자화자탄식으로 자기 벽에 갇혀 행복하게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전도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심방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교회에서 생활 속에서 가르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직접 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흙을 묻혀 가며 끌어 보지 않고, 그리고 내 놓는 말은 말쟁이 말이고 죽은 지식이고 심판만 마련하는 것이라는 이 원칙은 흔히 현장 중심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이 하나의 멋으로 표현하고 또 자기들 세계를 옹호하기 위해 활용 된다고 봅니다만 이 노선의 이 한 마디는 이 노선의 전부를 규정 짓고 있습니다.

: :

: : 목사가 되고 싶은가? 반사를 하라. 반사가 되고 싶은가? 바로 골목으로 나가라.

: : 지도자가 되고 싶은가? 가장 좋은 교인이 되라. 바른 교인이 되고 싶은가?

: : 말씀을 듣고 자기 현실에서 실제 그대로 다 살아 보라. 다 해 보고 나서 받은 것이 신앙이다.

: :

: : 이런 원칙은 가장 쉽고 가장 어렵습니다. 전쟁으로 말하면 최전선을 다 누빈 사람만 국방부에 데려다 쓰지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를 누비지 않고 그 속에서 살아 나오지 않고 사관학교와 국방대학에서 책을 읽고 논문을 쓰고 뉴스에 나와서 중계방송을 하고 해설을 하는 사람, 다른 곳은 몰라도 공회 신앙에서는 사람으로 수에 치지를 않습니다. 답변자도 공부를 잘하지는 않았으나 중간은 했고 2류와 3류 사이에서 정규 과정은 제대로 구경을 다 해 봤기 때문에 최소한 어떻게 하더라는 것은 봤습니다. 조직신학을 맡은 이상 목회는 당연히 하지 못할 것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시골 까다로운 교회로 보냈고 신학과 목회를 한꺼번에 못을 박아 두고 분리 불가하게 만들어 두셨는데, 지난 세월을 놓고 볼 때 빨리 책을 적는 것이나 분량을 많이 적는 것이나 그 깊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딱 한 줄로 줄여 놓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 것은 목회를 떠나서는 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 :

: :

: :

: : 3. 지금 초기화면에 정식 공지는 했으나

: :

: : 얼마나 걸릴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조급하게 책을 출간하여 내 이름으로도 책이 한 권 나갔다고 선점적 효과에 몰두하거나 잠재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깔려 있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마치 모든 개척교회가 모두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따라 마지 못해 이렇게 하게 되었다고 하고, 목회자들도 하나님의 특별 인도에 끌려서 모두들 나왔다고 하는데, 그들의 이후 행동을 많이도 볼 것 없이 1 년만 지켜 보면 그들의 언행이 그들의 출발을 다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 노선의 조직신학 정리는 이 노선의 전부입니다. 이 노선 설교 10만 페이지의 최대공약수라고 할까, 답변자가 바로 이해했다면 이 세상 모든 숫자는 1과 2라는 숫자 둘이면 요약 될 것입니다. 하나는 짝수를 하나는 홀수를 줄이고 줄이고 거품을 빼고 빼면 마지막 남는 단위일 것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모든 동물의 구성은 DNA 최소 인자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C(시토신) 4 가지 염기로 추출할 수 있다는 것을 1976년에 배운 기억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화학시간에 배운 기억은 H(수소) He(헬륨) B(붕소) C(탄소) 이렇게 100가지 조금 넘는 원소로 만물이 구성 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이 원소 숫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원래 숫자에 약하고 그 숫자가 당시 듣기로 가끔 한두 개씩 새로 발견 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절대가 아니라 상대적 숫자가 되면 답변자는 100가지 조금 넘는다는 정도로 대략 넘어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 :

: : 공회 조직신학의 정본은 사실 현재 출간 된 472 페이지도 너무 많습니다. 절반 이하로 줄여야 하는데 충분하게 시간을 갖지 못해서 조잡하게 늘어 난 것입니다. 원래 아는 사람일수록 적은 말로 표현하고, 모르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다만 상대방의 이해를 위해 설명을 하는 것은 평생 반복할 수 있으니 정본 조직신학은 더욱 줄이고, 그리고 사안 별로 별로 해설서는 아무리 최소화를 하려 해도 수천 페이지 이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최근 이 홈에 기능 구원에 대해 한 번씩 짚고 계신 '무명2'의 글만 가지고 봐도 이 노선의 핵심 중 하나인 '조직신학 > 구원론 > 건설구원론 > 기능구원' 이렇게 급격하게 범위를 좁혀 간 상태에서 '기능구원' 안에서도 그 내용이나 성격이라는 한 분야를 두고도 적을 내용이 적지 않습니다.

: :

: : 현재 이 홈에서 제공하는 10만 페이지의 백영희 설교는 성경을 읽고 성경을 설명하며 성경을 요약하여 우리에게 성경 그대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것이 '목회설교록'이라면, 이 번에는 백영희 설교에 담긴 공통점만 최소한으로 줄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 것이 '조직신학'입니다. 백영희 설교에 한 번이라도 언급 된 내용이 2백 페이지 안에, 많아야 5백 페이지 안에 다 담겨 있다 할 정도일 때 이를 교리라고 합니다. 페이지 자체는 중요한 것이 아니나 다만 페이지가 많아 지면 설교록이 되고, 너무 줄어서 왜 이렇게 표현한 것이 저 설교를 요약했거나 함축 되어 있는지 연결선이 끊어 진다면 또는 전체 내용끼리 한 몸처럼 연결 되고 하나 되지 않는다면 조직신학은 아닙니다.

: :

: :

: :

: : 4. 결론적으로

: :

: : 약속할 수 없는 시간, 답변자의 목회 환경에서 가능한 시기에

: : 이미 출간 된 정도의 분량을 기준으로 큰 변동은 없을 듯하고

: : 주로 모습에 대해 제안들이 들어 오는 바 최대한 반영하겠으며

: : 조직신학 정본은 첫 출간을 기준으로 일부 수정 보완일 것이고

: :

: : 이 번의 출간이 아쉬워도 어느 정도 백영희 조직신학 정본의 모습을 갖춘다고 생각하여

: : 이 번 책이 정리 되면 바로 이후에는 정본의 한 부분씩 각론 차원에서 깊이 살필 생각입니다.

: :

: :

: :

: : 5. 선배는 성경 하나로 가르쳤고 후배는,

: :

: : - 거저 넘겨 받은 앞의 자료를 잘 보관하고 연구하고 사용하면서

: : - 잘 요약하여 오늘을 감당하면서도 이후까지 이어 지게 만든다면

: :

: : 앞 시대에 비교를 하지는 못하겠으나 하나님 주신 위치에 충성은 될 듯 싶습니다.

: :

: :

: :

: :

: :

: :

: :

: : >> 합동 님이 쓰신 내용 <<

: : :

: : : 겉으로는 표내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여기에 눈과 귀를 열고 있습니다. 조직신학은 칼빈의 기독교강요 초판처럼 간단하게 시작했으나 내용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역사적인 중요 출간이 오래동안 지연되었을까? 여기 문답게시판의 자료만 참고해도 곳곳에 신학 각분야를 훑지 않은 것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내용의 깊이와 세부적인 내용들을 많이 담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궁금한 것이 많은데 수고하는 종께 실례가 될까 해서 이만 줄입니다. 고대합니다.
왜 조직신학이라는 역사적 출간이 지연되는가?
겉으로는 표내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여기에 눈과 귀를 열고 있습니다. 조직신학은 칼빈의 기독교강요 초판처럼 간단하게 시작했으나 내용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역사적인 중요 출간이 오래동안 지연되었을까? 여기 문답게시판의 자료만 참고해도 곳곳에 신학 각분야를 훑지 않은 것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내용의 깊이와 세부적인 내용들을 많이 담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궁금한 것이 많은데 수고하는 종께 실례가 될까 해서 이만 줄입니다.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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