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 순종하는 기본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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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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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1 00:00
1. '믿음'에 대한 본문
눅17:7 말씀은 5절에서 믿음에 대해 질문하는 제자들에게 믿음을 가르치면서 더해 주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믿음이면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것을 배웠는데 '큰 믿음' '작은 믿음' '많은 믿음' '적은 믿음'이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제자들은 믿음이 적어서 뭔가 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시원찮지만 그래도 믿음은 좀 있다고 생각했고 그 믿음이 작고 적어서 별로 효력이 없으니 믿음의 효력을 볼 수 있도록 믿음을 뭉떵 더해 주셔서 일을 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주님은 '믿음'이란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믿음이 살았느냐 죽었느냐는 것이 문제니 일단 산 믿음, 생명이 있는 믿음, 하나님께 붙들려 순종하는 믿음이라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겨자씨'라는 비유를 들었습니다. 아주 어마어마하게 작은 씨가 겨자씨입니다. 그런데 씨라는 것은 그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과 연결 되어 움직이는 생명성이 있다면 그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는 믿음으로 자라 간다. 그러나 집채 만한 믿음이라 해도 그 속에 생명이 없다면 인간 놀음은 해도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는 아예 기대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교계적으로 100 개 교단의 총회장들이 간부가 되고 100만 명의 성도들이 여의도 광장에 모여 구국기도회를 개최하면 겉보기는 참으로 엄청 난 믿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엑스포 74 운동처럼 기독교인이 한꺼번에 모여서 세를 과시하기 위해 그렇게 모인 것은 믿음처럼 보이나 인간의 운동입니다. 아무리 크고 대단하게 보이나 이 노선은 그 당시 그런 운동을 가리켜 태산처럼 큰 믿음인데 그 믿음 안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없으니 죽은 믿음이고 생명이 없다면 덩치는 아무리 커 봐야 송장 무더기요 공원 묘지일 뿐이라고 탄식을 좀 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주기철 목사님의 평양 감옥처럼 손 목사님의 여수 감옥처럼 비록 한 성도가 아무도 모르는 옥 중에서 고요히 주님과 연결 되어 고난의 세월을 보내며 그 곳에서 한국교회의 신앙 자유를 기도할 때 하나님은 미국과 원자탄을 동원하여 일본을 깨트리고 그 기도의 소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런 숨은 성도의 생명 있는 한 마음씨, 기도 하나, 그 소원 하나를 우리는 겨자씨 믿음이라고 합니다.
2. 질문하신 말씀은 7절입니다.
간단히 넘어 갈 수 있는 본문으로 보입니다만 5절과 6절에서는 믿음을 가르치되 그 속에 생명의 유무가 문제지 믿음의 덩치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신 다음, 7절에서는 이제 믿음이 자라 가는 면을 설명했습니다. 만일 믿음에 생명력이 있어 인간의 소원이나 인간의 자율을 배제하고 하나님께 제대로 연결 된 참 믿음을 가졌다면, 이제 그 믿음이 자꾸 자라 가야 하는데 그 믿음이 자라 가는 방법은 '자세'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자세인가? 겸손입니다. 교만의 반대 말입니다. 열심히 길을 걸어 가다가 자기 생각에 이제 많이 걸어 왔다, 애를 썼다, 이 만하면 나도 좀 수고를 했구나 라는 이런 생각이 들어 가면 이 생각이 바로 자기 만족이며 자기 만족은 더 이상의 충성과 열심과 순종을 해 나가지 않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자기 만족, 이 것을 교만이라 합니다. 원래 교만이라는 단어는 자기 자리를 벗어 난 것을 말하는데, 인간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주님의 대속의 은혜를 생각하면 늘 부족하여 더 달려 가야 할 남은 길이 보여야 하는데 그만 충분하게 일을 했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의 발전이 없고 그 자리에 앉아 버리면 그 자리는 자기 자리가 아니므로 교만한 자의 자리가 됩니다.
이런 뜻을 쉬운 비유로 만들어 우리를 가르친 것이 7절입니다. 하루 종일 수고하고 돌아 온 종이 있다면, 그 종이 저녁에 돌아 오면 그 집 아들처럼 발을 뻗고 드러 눕고 부모나 일꾼들이 밥상을 바치면 앉아서 먹을 처지인가? 종이라는 신분이 그런 자리를 가졌는가? 종이란 자기를 사느라고 돈을 들인 주인 때문에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돌아 와도 또 집 안에서 수종 들고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고, 모든 할 일을 다한 다음에는 내일 일을 위해 또 먹어 둬야 하는 것인데, 우리는 주님이 피 흘려 사신 종들이니 얼마나 수고를 하고 땀을 흘려야 내 몸 값에 조금 보탬이 될까, '무익한 종이라' 이 평가가 옳습니다.
성도의 자세가 이렇게 될 때 그 믿음이 비로소 자라게 됩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고 설쳐도 그 속에는 하나님께 붙들려 생명 있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인지, 아니면 교회를 무대로 놀아 보는 것인지 밥 벌이 차원에서 목회하는 것인지 남녀가 쌍쌍이 어울려 다니는 재미로 성가대를 하는 것인지 그 내면을 잘 살펴 정말 주님의 뜻에 붙들려 생명 있는 믿음으로 한 것이면 아무리 그 활동이 작아 보여도 이는 겨자씨처럼 생명력을 가졌으니 이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 된 것이어서 하나님의 능력이 그 생명을 통해 쏟아 져 들어 오게 될 것이고, 생명 없는 활동들은 교회 안에서 움직이든 믿음의 이름으로 움직이든 그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인간 놀음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생명 유무 문제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 이제 믿음이 자라 가는 문제인데 자라 가는 것은 겸손의 자세, 단순히 몸을 숙이는 겸손이 아니라 자기를 대속하신 주님과 자기를 비교할 때 몸 둘 바를 모르는 그런 깨달음에서 나오는 자세를 말합니다.
3. 결론적으로
질문하신 7절은 우리 신앙 생활에서 우리가 가질 자세를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늘 주님 앞에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지고 자기를 돌아 봐야 하고, 그렇게 돌아 본다면 어떤 수고와 어떤 공로가 있다 해도 자기를 정평정가 해 볼 때 자기는 아무 쓸 데 없는 종임을 깨닫게 되고, 그런 자기라는 것을 알게 되면 지난 날에 한 것도 부끄럽고, 앞으로 더욱 더 잘하기 위해 분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겸손의 자세로 순종'할 것을 가르친 말씀입니다. 순종 하나로 우리는 평생을 살아야 하는데 그 순종의 배경에는 이런 '무익한 종의 바른 자세, 겸손이라는 바탕'이 있어야 신앙이 자라 간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잘 깨닫고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느끼지 못할 분들을 위해서 답변을 좀 길게 적었습니다.
>> 순종 님이 쓰신 내용 <<
:
: 누가복음 17장 7절~10절 말씀
:
: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
: 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
: 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같이
: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뿐이라 할지니라
:
: 이 말씀에 관하여 궁금한 것이 있어 글을 적어 봅니다.
:
: 이말씀은 순종에 관한 말씀인지요.
: 아니면 저의 생각에는 겸손에 관한 말씀 같습니다.
:
: 너무 어린신앙이라 제 생각을 어찌 신뢰조차 할수 없습니다.
:
:
눅17:7 말씀은 5절에서 믿음에 대해 질문하는 제자들에게 믿음을 가르치면서 더해 주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믿음이면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것을 배웠는데 '큰 믿음' '작은 믿음' '많은 믿음' '적은 믿음'이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제자들은 믿음이 적어서 뭔가 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시원찮지만 그래도 믿음은 좀 있다고 생각했고 그 믿음이 작고 적어서 별로 효력이 없으니 믿음의 효력을 볼 수 있도록 믿음을 뭉떵 더해 주셔서 일을 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주님은 '믿음'이란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믿음이 살았느냐 죽었느냐는 것이 문제니 일단 산 믿음, 생명이 있는 믿음, 하나님께 붙들려 순종하는 믿음이라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겨자씨'라는 비유를 들었습니다. 아주 어마어마하게 작은 씨가 겨자씨입니다. 그런데 씨라는 것은 그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과 연결 되어 움직이는 생명성이 있다면 그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는 믿음으로 자라 간다. 그러나 집채 만한 믿음이라 해도 그 속에 생명이 없다면 인간 놀음은 해도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는 아예 기대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교계적으로 100 개 교단의 총회장들이 간부가 되고 100만 명의 성도들이 여의도 광장에 모여 구국기도회를 개최하면 겉보기는 참으로 엄청 난 믿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엑스포 74 운동처럼 기독교인이 한꺼번에 모여서 세를 과시하기 위해 그렇게 모인 것은 믿음처럼 보이나 인간의 운동입니다. 아무리 크고 대단하게 보이나 이 노선은 그 당시 그런 운동을 가리켜 태산처럼 큰 믿음인데 그 믿음 안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없으니 죽은 믿음이고 생명이 없다면 덩치는 아무리 커 봐야 송장 무더기요 공원 묘지일 뿐이라고 탄식을 좀 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주기철 목사님의 평양 감옥처럼 손 목사님의 여수 감옥처럼 비록 한 성도가 아무도 모르는 옥 중에서 고요히 주님과 연결 되어 고난의 세월을 보내며 그 곳에서 한국교회의 신앙 자유를 기도할 때 하나님은 미국과 원자탄을 동원하여 일본을 깨트리고 그 기도의 소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런 숨은 성도의 생명 있는 한 마음씨, 기도 하나, 그 소원 하나를 우리는 겨자씨 믿음이라고 합니다.
2. 질문하신 말씀은 7절입니다.
간단히 넘어 갈 수 있는 본문으로 보입니다만 5절과 6절에서는 믿음을 가르치되 그 속에 생명의 유무가 문제지 믿음의 덩치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신 다음, 7절에서는 이제 믿음이 자라 가는 면을 설명했습니다. 만일 믿음에 생명력이 있어 인간의 소원이나 인간의 자율을 배제하고 하나님께 제대로 연결 된 참 믿음을 가졌다면, 이제 그 믿음이 자꾸 자라 가야 하는데 그 믿음이 자라 가는 방법은 '자세'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자세인가? 겸손입니다. 교만의 반대 말입니다. 열심히 길을 걸어 가다가 자기 생각에 이제 많이 걸어 왔다, 애를 썼다, 이 만하면 나도 좀 수고를 했구나 라는 이런 생각이 들어 가면 이 생각이 바로 자기 만족이며 자기 만족은 더 이상의 충성과 열심과 순종을 해 나가지 않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자기 만족, 이 것을 교만이라 합니다. 원래 교만이라는 단어는 자기 자리를 벗어 난 것을 말하는데, 인간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주님의 대속의 은혜를 생각하면 늘 부족하여 더 달려 가야 할 남은 길이 보여야 하는데 그만 충분하게 일을 했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의 발전이 없고 그 자리에 앉아 버리면 그 자리는 자기 자리가 아니므로 교만한 자의 자리가 됩니다.
이런 뜻을 쉬운 비유로 만들어 우리를 가르친 것이 7절입니다. 하루 종일 수고하고 돌아 온 종이 있다면, 그 종이 저녁에 돌아 오면 그 집 아들처럼 발을 뻗고 드러 눕고 부모나 일꾼들이 밥상을 바치면 앉아서 먹을 처지인가? 종이라는 신분이 그런 자리를 가졌는가? 종이란 자기를 사느라고 돈을 들인 주인 때문에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돌아 와도 또 집 안에서 수종 들고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고, 모든 할 일을 다한 다음에는 내일 일을 위해 또 먹어 둬야 하는 것인데, 우리는 주님이 피 흘려 사신 종들이니 얼마나 수고를 하고 땀을 흘려야 내 몸 값에 조금 보탬이 될까, '무익한 종이라' 이 평가가 옳습니다.
성도의 자세가 이렇게 될 때 그 믿음이 비로소 자라게 됩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고 설쳐도 그 속에는 하나님께 붙들려 생명 있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인지, 아니면 교회를 무대로 놀아 보는 것인지 밥 벌이 차원에서 목회하는 것인지 남녀가 쌍쌍이 어울려 다니는 재미로 성가대를 하는 것인지 그 내면을 잘 살펴 정말 주님의 뜻에 붙들려 생명 있는 믿음으로 한 것이면 아무리 그 활동이 작아 보여도 이는 겨자씨처럼 생명력을 가졌으니 이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 된 것이어서 하나님의 능력이 그 생명을 통해 쏟아 져 들어 오게 될 것이고, 생명 없는 활동들은 교회 안에서 움직이든 믿음의 이름으로 움직이든 그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인간 놀음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생명 유무 문제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 이제 믿음이 자라 가는 문제인데 자라 가는 것은 겸손의 자세, 단순히 몸을 숙이는 겸손이 아니라 자기를 대속하신 주님과 자기를 비교할 때 몸 둘 바를 모르는 그런 깨달음에서 나오는 자세를 말합니다.
3. 결론적으로
질문하신 7절은 우리 신앙 생활에서 우리가 가질 자세를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늘 주님 앞에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지고 자기를 돌아 봐야 하고, 그렇게 돌아 본다면 어떤 수고와 어떤 공로가 있다 해도 자기를 정평정가 해 볼 때 자기는 아무 쓸 데 없는 종임을 깨닫게 되고, 그런 자기라는 것을 알게 되면 지난 날에 한 것도 부끄럽고, 앞으로 더욱 더 잘하기 위해 분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겸손의 자세로 순종'할 것을 가르친 말씀입니다. 순종 하나로 우리는 평생을 살아야 하는데 그 순종의 배경에는 이런 '무익한 종의 바른 자세, 겸손이라는 바탕'이 있어야 신앙이 자라 간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잘 깨닫고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느끼지 못할 분들을 위해서 답변을 좀 길게 적었습니다.
>> 순종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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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 17장 7절~10절 말씀
:
: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
: 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
: 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같이
: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뿐이라 할지니라
:
: 이 말씀에 관하여 궁금한 것이 있어 글을 적어 봅니다.
:
: 이말씀은 순종에 관한 말씀인지요.
: 아니면 저의 생각에는 겸손에 관한 말씀 같습니다.
:
: 너무 어린신앙이라 제 생각을 어찌 신뢰조차 할수 없습니다.
:
:
순종.
누가복음 17장 7절~10절 말씀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
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
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뿐이라 할지니라
이 말씀에 관하여 궁금한 것이 있어 글을 적어 봅니다.
이말씀은 순종에 관한 말씀인지요.
아니면 저의 생각에는 겸손에 관한 말씀 같습니다.
너무 어린신앙이라 제 생각을 어찌 신뢰조차 할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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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장 7절~10절 말씀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
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
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뿐이라 할지니라
이 말씀에 관하여 궁금한 것이 있어 글을 적어 봅니다.
이말씀은 순종에 관한 말씀인지요.
아니면 저의 생각에는 겸손에 관한 말씀 같습니다.
너무 어린신앙이라 제 생각을 어찌 신뢰조차 할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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