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5:25의 큰 아들, 잘못 된 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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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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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9 00:00
둘째는 안팎이 죄인이었습니다. 돌아 온 둘째는 그 중심이 이제 돌이 켜 의인이 되었습니다. 첫째는 평생 의인의 모습을 가졌습니다. 누가 봐도 그러했습니다. 본인도 자기의 지난 날을 설명하며 의인으로 성실히 살았음을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첫째의 의는 자기가 중심이 되고 주인이 되고, 의의 행위는 자기를 위해 치장 된 외부 모습이었습니다. 속에는 악이 들어 있었고 겉에는 의로 둘러 싸여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는 경우에 우리는 경건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공회 교훈이 의와 죄, 선과 악, 그리고 경건을 단어적 의미까지 늘 규정하고 살펴 설명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경우 때문입니다. 둘째가 나간 것은 속은 악이고 겉은 죄였으니 이 인간이 나간 것은 불경건이었습니다. 첫째는 둘째가 돌아 왔을 때에야 그 깊은 속이 다 나오고 있었습니다. 욥이 1차 시험에서는 그 중심이 드러 나지 않았으나 2차 시험이 오자 깊은 속이 다 들어 났던 것과 같습니다. 둘째의 돌아 온 날에 첫째는 그 평생의 의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그 하나님 때문에 그 말씀을 지켜 의인으로 산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 자기 중심으로 자기의 계산 때문에 아버지 슬하에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깊은 속을 볼 때 첫째는 자기 살아 가는 생존의 방식을 아버지 슬하가 유리하다 본 것입니다.
아다시피 기본구원은 알지도 못할 때 무조건 해결이 된 상태에서 우리가 믿었기 때문에 논외로 돌려 놓고, 우리는 건설구원만 가지고 따지고 노력합니다. 첫째 아들에게 건설구원, 구원 건설, 신앙 향상, 신앙 건설이 있었겠는가? 결론적으로 없었습니다. 건설구원은 우리 보기에는 세월이 가고 노력을 하고 이것저것 갖다 붙일 때마다 자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 자라기도 합니다. 문제는 진정한 건설구원은 전적 은혜라야 하는데 이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신적 역사로 그렇게 만들어 주셔야만 됩니다.
그런데 중심에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은 함께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안팎이 다 틀린 둘째나, 깊은 속은 틀렸으나 거의 대부분과 겉은 아주 좋은 상태의 첫째가 우리 보기에는 아주 차이가 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둘다 기본구원은 있고 둘다 건설구원은 0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째에게는 둘째처럼 허송하지 않은 세월, 아버지 밑에 묵묵하게 순종했던 이력, 밭을 갈면서 생긴 심신의 실력과 기능 등이 엄청 나게 쌓여 있었습니다. 이 쌓여 있던 것이 그 깊은 속에 자기 중심 때문에 대기만 되어 있고 성화로 변화 받지는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둘째 때문에 자기 속을 다 드러 내고 그리고 아버지께서 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말씀하신 설명을 듣고 자기 깊은 속이 얼마나 창피하고 더럽고 잘못 된 줄을 철저히 알고 그 날에 둘째는 남이 알기로 돌이켰고 첫째는 남 모르게 아버지만 알고 자기 속을 철저히 회개하고 돌아 섰다면 그 순간에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성화가 이루어 집니다. 그러나 첫째가 회개한다면 그 많은 세월에 순종해 두었던 것이 그 순간 한꺼번에 다 성화에 동참합니다. 그러나 둘째는 이제 그 날에 빈 손 들고 첫 걸음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우리는 이해가 되지 않든 억울하든 속으로 분하든 아니면 야욕을 가지고 있든, 어쨌든 순종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속까지 바로 되면 발전도 빠르고 더 좋겠으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 속에 잘못 된 것은 따로 고칠 기회를 갖게 됩니다. 불신자 시절에 술 먹고 노름하고 나쁜 짓만 하던 사람에 비해 그 시절에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한 사람이 있다면, 이 둘의 불신 시절 행동은 전부 신앙 건설에 상관이 없으나 두 사람이 돌이켜 교회를 다니고 신앙 출발을 시작하면 평소 절제나 인간적 노력이 대단했던 사람은 마치 오래 동안 믿었던 사람처럼 신앙의 발전이 가파르게 나타 나고 믿지 않을 때도 인간 말종으로 살았던 이들은 대개 평생 그렇게 삽니다.
우리는 둘째처럼 망나니로 살거나, 아니면 괜찮게 보이는 부분은 첫째처럼 사실 그속을 들여다 보면 너무 외식쟁이여서 고개 들 수 없습니다. 눅15장에서 우리는 둘째의 회개만 많이 연구하지만 실은 첫째의 회개가 우리에게는 더 큰 숙제입니다.
질문 내용을 줄여서 답변했습니다. 필요한 부분은 다시 질문해 주십시오.
>> 비밀아닌비밀 님이 쓰신 내용 <<
:
:
:
:
: 실시간 예배 들은 사람입니다.
:
: 예배 인도해주시는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
: 다름이 아니라, 질문이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
: 첫째아들의 속은 결국, 먼 나라에 있는 사상, 말투, 야망이라고 배웠습니다.
:
: 그러면 첫째아들의 겉행동은 의인이지만..
:
: 속마음은 의인이 아닌 죄인이라고 봐야 하는지요?
:
: 아니라면 어떻게 봐야하는지요?
:
: 의인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어지는데요,
:
: 누가복음 15장 31절말씁에
:
: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
: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 이 말씀과는 어떻게 연관을 지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
: 내 것이 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 분명 '네' 라는 단수로써 기본구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듯한데요.
: 그럼 건설구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 허나,
: 겉보다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 분명 첫째 아들은 의로운 행위를 하나, 순전한 의가 아니므로...
: 아버지의 것이 다 첫째 아들이 될 수 있는 건설 구원을 이룰 수 있나?
: 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질문드립니다.
:
:
: 첫째아들의 무엇에 대한 건설구원인가요?
:
: 건설구원은 속마음이 온전치 못해도 의로운 행위로써도 건설구원이 있는건가요?
: 건설구원도 여러가지 측면이 있는건가요?
:
: 아니면, 이 첫째아들은... 먼나라에 간 둘째아들 즉,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자기 동생에 한해서,
: 미움과 못마땅함이 있어 먼나라를 간 것에 대해 속으로 고소해하고,
: 또한 돌아옴으로 그리 반기지 않은 것이고,
:
: 다른 사람들에게 대해선, 다른 사건에 대해선,,, 순전한 마음과 행동을 한 거인가요?
:
:
: 첫째 아들이 저와 참 많이 닮아 있는 거 같아..
: 저의 건설구원이 어느정도 이루어졌었을지, 앞으로 어떻게 이루어나갈지,...
: 어떻게 회개를 할지... 생각이 지나갑니다.
: 겉과 속이 다르고
: 겉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더 없는 칭찬과 의와 성실과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 말을 듣지만,
: 형제가 구원이루는 거에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 내 자리를 뺏기는 건 아닐까? 라는 염려와 경계만을 하고 있는
: 저를 보니
: 솔직히 첫째 아들보다 더하여,,
: 그런 후하게 대접하는 둘째아들을 보고
: 겉으로 노하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부글부글 끓는 저를 보니
:
: 또한 특정인을 참으로 미워하고 그의 구원에 별로이 상관을 하지 않는 ,
: 함께 살지 말길 바라는 저를 보니...
: 딱 첫째 아들보다 가증스러운 저를 보고...
: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글을 씁니다.
:
: 제가 잘못 알고 생각하는 점 알려주시고, 또한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 답변부탁드립니다.
:
:
:
문제는 첫째의 의는 자기가 중심이 되고 주인이 되고, 의의 행위는 자기를 위해 치장 된 외부 모습이었습니다. 속에는 악이 들어 있었고 겉에는 의로 둘러 싸여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는 경우에 우리는 경건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공회 교훈이 의와 죄, 선과 악, 그리고 경건을 단어적 의미까지 늘 규정하고 살펴 설명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경우 때문입니다. 둘째가 나간 것은 속은 악이고 겉은 죄였으니 이 인간이 나간 것은 불경건이었습니다. 첫째는 둘째가 돌아 왔을 때에야 그 깊은 속이 다 나오고 있었습니다. 욥이 1차 시험에서는 그 중심이 드러 나지 않았으나 2차 시험이 오자 깊은 속이 다 들어 났던 것과 같습니다. 둘째의 돌아 온 날에 첫째는 그 평생의 의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그 하나님 때문에 그 말씀을 지켜 의인으로 산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 자기 중심으로 자기의 계산 때문에 아버지 슬하에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깊은 속을 볼 때 첫째는 자기 살아 가는 생존의 방식을 아버지 슬하가 유리하다 본 것입니다.
아다시피 기본구원은 알지도 못할 때 무조건 해결이 된 상태에서 우리가 믿었기 때문에 논외로 돌려 놓고, 우리는 건설구원만 가지고 따지고 노력합니다. 첫째 아들에게 건설구원, 구원 건설, 신앙 향상, 신앙 건설이 있었겠는가? 결론적으로 없었습니다. 건설구원은 우리 보기에는 세월이 가고 노력을 하고 이것저것 갖다 붙일 때마다 자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 자라기도 합니다. 문제는 진정한 건설구원은 전적 은혜라야 하는데 이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신적 역사로 그렇게 만들어 주셔야만 됩니다.
그런데 중심에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은 함께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안팎이 다 틀린 둘째나, 깊은 속은 틀렸으나 거의 대부분과 겉은 아주 좋은 상태의 첫째가 우리 보기에는 아주 차이가 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둘다 기본구원은 있고 둘다 건설구원은 0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째에게는 둘째처럼 허송하지 않은 세월, 아버지 밑에 묵묵하게 순종했던 이력, 밭을 갈면서 생긴 심신의 실력과 기능 등이 엄청 나게 쌓여 있었습니다. 이 쌓여 있던 것이 그 깊은 속에 자기 중심 때문에 대기만 되어 있고 성화로 변화 받지는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둘째 때문에 자기 속을 다 드러 내고 그리고 아버지께서 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말씀하신 설명을 듣고 자기 깊은 속이 얼마나 창피하고 더럽고 잘못 된 줄을 철저히 알고 그 날에 둘째는 남이 알기로 돌이켰고 첫째는 남 모르게 아버지만 알고 자기 속을 철저히 회개하고 돌아 섰다면 그 순간에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성화가 이루어 집니다. 그러나 첫째가 회개한다면 그 많은 세월에 순종해 두었던 것이 그 순간 한꺼번에 다 성화에 동참합니다. 그러나 둘째는 이제 그 날에 빈 손 들고 첫 걸음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우리는 이해가 되지 않든 억울하든 속으로 분하든 아니면 야욕을 가지고 있든, 어쨌든 순종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속까지 바로 되면 발전도 빠르고 더 좋겠으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 속에 잘못 된 것은 따로 고칠 기회를 갖게 됩니다. 불신자 시절에 술 먹고 노름하고 나쁜 짓만 하던 사람에 비해 그 시절에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한 사람이 있다면, 이 둘의 불신 시절 행동은 전부 신앙 건설에 상관이 없으나 두 사람이 돌이켜 교회를 다니고 신앙 출발을 시작하면 평소 절제나 인간적 노력이 대단했던 사람은 마치 오래 동안 믿었던 사람처럼 신앙의 발전이 가파르게 나타 나고 믿지 않을 때도 인간 말종으로 살았던 이들은 대개 평생 그렇게 삽니다.
우리는 둘째처럼 망나니로 살거나, 아니면 괜찮게 보이는 부분은 첫째처럼 사실 그속을 들여다 보면 너무 외식쟁이여서 고개 들 수 없습니다. 눅15장에서 우리는 둘째의 회개만 많이 연구하지만 실은 첫째의 회개가 우리에게는 더 큰 숙제입니다.
질문 내용을 줄여서 답변했습니다. 필요한 부분은 다시 질문해 주십시오.
>> 비밀아닌비밀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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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시간 예배 들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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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 인도해주시는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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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름이 아니라, 질문이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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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아들의 속은 결국, 먼 나라에 있는 사상, 말투, 야망이라고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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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첫째아들의 겉행동은 의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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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마음은 의인이 아닌 죄인이라고 봐야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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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라면 어떻게 봐야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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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인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어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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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 15장 31절말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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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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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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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말씀과는 어떻게 연관을 지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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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것이 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 분명 '네' 라는 단수로써 기본구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듯한데요.
: 그럼 건설구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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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나,
: 겉보다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 분명 첫째 아들은 의로운 행위를 하나, 순전한 의가 아니므로...
: 아버지의 것이 다 첫째 아들이 될 수 있는 건설 구원을 이룰 수 있나?
: 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질문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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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아들의 무엇에 대한 건설구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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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구원은 속마음이 온전치 못해도 의로운 행위로써도 건설구원이 있는건가요?
: 건설구원도 여러가지 측면이 있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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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면, 이 첫째아들은... 먼나라에 간 둘째아들 즉,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자기 동생에 한해서,
: 미움과 못마땅함이 있어 먼나라를 간 것에 대해 속으로 고소해하고,
: 또한 돌아옴으로 그리 반기지 않은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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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들에게 대해선, 다른 사건에 대해선,,, 순전한 마음과 행동을 한 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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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아들이 저와 참 많이 닮아 있는 거 같아..
: 저의 건설구원이 어느정도 이루어졌었을지, 앞으로 어떻게 이루어나갈지,...
: 어떻게 회개를 할지... 생각이 지나갑니다.
: 겉과 속이 다르고
: 겉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더 없는 칭찬과 의와 성실과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 말을 듣지만,
: 형제가 구원이루는 거에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 내 자리를 뺏기는 건 아닐까? 라는 염려와 경계만을 하고 있는
: 저를 보니
: 솔직히 첫째 아들보다 더하여,,
: 그런 후하게 대접하는 둘째아들을 보고
: 겉으로 노하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부글부글 끓는 저를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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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특정인을 참으로 미워하고 그의 구원에 별로이 상관을 하지 않는 ,
: 함께 살지 말길 바라는 저를 보니...
: 딱 첫째 아들보다 가증스러운 저를 보고...
: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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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잘못 알고 생각하는 점 알려주시고, 또한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 답변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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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예배 말씀 중
실시간 예배 들은 사람입니다.
예배 인도해주시는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질문이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첫째아들의 속은 결국, 먼 나라에 있는 사상, 말투, 야망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면 첫째아들의 겉행동은 의인이지만..
속마음은 의인이 아닌 죄인이라고 봐야 하는지요?
아니라면 어떻게 봐야하는지요?
의인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어지는데요,
누가복음 15장 31절말씁에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과는 어떻게 연관을 지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 것이 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분명 '네' 라는 단수로써 기본구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듯한데요.
그럼 건설구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허나,
겉보다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분명 첫째 아들은 의로운 행위를 하나, 순전한 의가 아니므로...
아버지의 것이 다 첫째 아들이 될 수 있는 건설 구원을 이룰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질문드립니다.
첫째아들의 무엇에 대한 건설구원인가요?
건설구원은 속마음이 온전치 못해도 의로운 행위로써도 건설구원이 있는건가요?
건설구원도 여러가지 측면이 있는건가요?
아니면, 이 첫째아들은... 먼나라에 간 둘째아들 즉,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자기 동생에 한해서,
미움과 못마땅함이 있어 먼나라를 간 것에 대해 속으로 고소해하고,
또한 돌아옴으로 그리 반기지 않은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대해선, 다른 사건에 대해선,,, 순전한 마음과 행동을 한 거인가요?
첫째 아들이 저와 참 많이 닮아 있는 거 같아..
저의 건설구원이 어느정도 이루어졌었을지, 앞으로 어떻게 이루어나갈지,...
어떻게 회개를 할지... 생각이 지나갑니다.
겉과 속이 다르고
겉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더 없는 칭찬과 의와 성실과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만,
형제가 구원이루는 거에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내 자리를 뺏기는 건 아닐까? 라는 염려와 경계만을 하고 있는
저를 보니
솔직히 첫째 아들보다 더하여,,
그런 후하게 대접하는 둘째아들을 보고
겉으로 노하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부글부글 끓는 저를 보니
또한 특정인을 참으로 미워하고 그의 구원에 별로이 상관을 하지 않는 ,
함께 살지 말길 바라는 저를 보니...
딱 첫째 아들보다 가증스러운 저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글을 씁니다.
제가 잘못 알고 생각하는 점 알려주시고, 또한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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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첫째아들의 겉행동은 의인이지만..
속마음은 의인이 아닌 죄인이라고 봐야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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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과는 어떻게 연관을 지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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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건설구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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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첫째 아들은 의로운 행위를 하나, 순전한 의가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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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질문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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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구원은 속마음이 온전치 못해도 의로운 행위로써도 건설구원이 있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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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노하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부글부글 끓는 저를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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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첫째 아들보다 가증스러운 저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글을 씁니다.
제가 잘못 알고 생각하는 점 알려주시고, 또한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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