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지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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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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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9 00:00
1. 지적하신 내용들을 '수정' 게시판에 옮겨 두었다가 참고하겠습니다.
단순 교정뿐 아니라 내용에 대한 지적 제안 발언까지 '/초기화면/행정실/수정 게시판에 모으고 있습니다. 출간을 할 때마다 그 곳에서 관련 내용을 살펴 적극 반영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곳에만 있다 보면 실제 반영에서 누락 될 수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별도로 우리 모두가 생각할 점으로 대화하는 것이어서 당연히 이 곳에도 게재 되어야 합니다.
2. 최재현 목사님의 경우
최 목사님은 그 중심이 백 목사님과 이 노선을 사랑했기 때문에 이 노선의 사람이었을 뿐이고, 그 분의 지식과 각 사안에 대한 각론은 이 노선을 떠나 있었던 세월이 너무 오래 되어 이 노선을 거의 모르는 형편이었습니다. 늘 계약신학적 신학 체계를 그렇게 강조했던 분입니다.
양성원에 강의를 맡긴 것은 학생들이나 양성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최 목사님을 한국으로 불러 내어 목회자를 만들고 싶었던 목사님께서 한국에 올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물론 학벌이 좋기 때문에 양성원으로서도 인재 포진이라는 외형에 도움 되는 일입니다.
양성원에서 조직신학을 맡게 된 것은 최 목사님의 신청 때문에 허락하신 것이고 목사님께서는 조직신학을 가르치려다 보면 우리 교리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셨습니다. 당시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있기가 불편하고 어려울 정도였으나, 최 목사님이 워낙 인격적으로 좋은 분이고 한국으로 나와서 목회한다는 것을 생각도 못할 상황에서 순종했다는 점, 그리고 백 목사님께서 모든 제자들을 다 기른 다음에 최종적으로 가족들도 조금씩 신앙으로 이끌어 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그런 점 때문에 모두들 자제했던 상황입니다.
최 목사님이 한국에 들어 오셨던 것은 1984년이었고 교리 작업을 구체화 한 것은 1987년 초기입니다. 이 때 백 목사님은 서영준 목사님께 부탁했지 최 목사님께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양성원에서 조직신학 맡을 때 교안은 아마 찾아 보면 있을 듯하나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 자료에 대해서는 질문을 답하기 위해 찾으면 찾을 정도지 따로 읽어 보거나 찾아야 할 자료가 아닙니다. 최 목사님과는 개인적으로 가깝게 서로 내면을 알 만한 그런 기회를 가진 분들이 없습니다. 답변자가 제일 가까왔고 답변자에게 최 목사님은 모든 것을 총력 지원해 주신 제일의 후원자였으므로 최 목사님의 성함이 나오면 답변자로서는 최선과 최고의 예우를 다해야 하나 이 노선 조직신학을 두고 언급하거나 참고할 분은 아닙니다. 최 목사님은 전형적인 목회자이며 부흥강사적 은혜를 받은 분입니다. 신학이나 교리 체계에는 거리가 아주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공회의 조직신학
사실 공회의 의미 중에 의미는 이 노선 교리 체계이며 그 핵심은 구원론입니다. 모두가 받은 은혜도 너무 크고 주변과 비교해 보면 그 정리와 전파의 사명감을 느끼지 않은 분들이 별로 없을 것이며 신학이나 그런 쪽을 좀 아는 분들로서는 시도한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또 실제 조직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책들도 나왔습니다만 이런 모든 상황이 이 노선 내에는 이 노선의 조직신학의 체계화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신청도 많이 했고, 시도도 많이 했습니다.
목차 체계에 대해서는, 백 목사님의 평소 신앙이나 목회나 공회 정치나 설교 형태나 대소사의 일처리를 면밀히 살펴 보시면 별로 애매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자로서는, 그 분의 체질과 흐름에 맞서면서도 파격적으로 좀 해 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이 조직신학일 때는 조심에 조심이 더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백 목사님의 개인 노트 전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신학 조직신학 등 그 적으신 방향들이 다 있습니다. 작업의 우선 순위 때문에 일반 공개가 늦어 지고 있는데 그냥 보면 이 노선에서는 그리 더듬고 고민할 부분이 사실 별로 없습니다. 백 목사님이 직접 작성한 개혁주의와 한국 교회 상황이라는 개인 논문도 있습니다.
현 체계를 유지한 것에 대해서는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다만 제자 입장에서 이 노선의 특별한 점은 그 특별한 점 때문에 교리의 일반 외형과 그 모습에서조차 아주 다르게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는 혼자의 고민이었습니다. 백 목사님이 연구소에 주신 이름은 처음은 '서부교회 편집실'이었고 그 다음은 '목회연구소'였습니다. 여기까지만 이름을 주셨는데 목회연구소 앞에 '백영희'를 붙인 것은 답변자였습니다. 제자로서 그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훗날 원저자가 흐려지고 편집 기능만 가진 사람들의 이름이 원저자를 대신하겠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설교록을 출간할 때도 국내외 최고 지성들 쪽에서 '백영희 목사'라고 해야 어법상 맞다고 해서 3 권의 설교록에 '목사' 직책이 들어 간 적이 있었는데, 기어코 그 분들과 말싸움에서 답변자가 이기고 결국 '목사'를 빼고 '백영희'만 표시했습니다. 이미 백 목사님의 이름은 '백영희' 이름 석 자로 역사에 남을 것이고 그 설교록의 출간은 그 책이 출간 될 때마다 역사 기록 차원이라는 의미로 '루터 목사님'이 아니라 '루터'로 불리는 것처럼, '칼빈 목사님'이 아니라 '칼빈'으로 불리는 것처럼 백영희 설교록은 '백영희 목사님'이 아니라 '백영희'라는 인물, 신앙 노선, 그런 신앙의 차원이 되어야 하겠다는 자세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자세는 그러했지만 구체적 논리 싸움에서는 '목사' 직책을 붙이려면 '목사님'으로는 붙여도 답변자 손에 '목사님'이라는 성함에 '님'을 뗀다는 것은 이단자 아니고는 양심상 그리 못한다고 했습니다. 일일이 표시하지 않고 있는 내용이 너무 많습니다. 설명이 많으면 곤란할 상황들이 많아서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윗 글의 지적 내용에 중요한 것이 너무 많아서 답변을 하다가 길어 졌습니다. 그러나 한 번쯤 짚어 둘 내용이었습니다.
>> 무명2 님이 쓰신 내용 <<
:
: 1. 요약과 정리란 의미의 조직신학 정의에 동의합니다.
:
: 이 것이 '목회설교록'이라면, 이 번에는 백영희 설교에 담긴 공통점만 최소한으로 줄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 것이 '조직신학'입니다. 백영희 설교에 한 번이라도 언급 된 내용이 2백 페이지 안에, 많아야 5백 페이지 안에 다 담겨 있다 할 정도일 때 이를 교리라고 합니다.(yilee, 2012-10-15)
:
:
: 2. 중요한 교리 중 빠진 것이 없어야 한다는 면에서 건의나 문의 드립니다.
:
: 이미 조직신학서에 담겨져 있는지는 모르오나 다음의 내용들이 비중있게 제 위치에서 다뤄져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
:
: (1) 현실관 : 86년 여름집회, 88년 여름집회
: - 별도 장(chapter) 또는 개별주권섭리의 하위단
: - 시험관도 같이 다뤄져야 한다면 별도로 떼어내야 하지 않을까도 생각합니다.
:
: (2) 세상관
: - 제6장 교회론 에서 다루고 일부 다루고 계십니다만 저희가 배운 세상의 정의와 세상에 대한 관을 별도로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 - 위치는, 현재의 제6장도 좋다고 생각하고 별도 장(chapter)로 분리해도 좋을듯하고, 위의 현실관 안에 같이 넣는 것도 무리가 없어 보이고, 인죄론에 포함시키는 것도 나을듯 하나, 인죄론이 너무 많이진단 생각도 있습니다.
:
: (3) 양심론
: - 양심과 신앙양심 그리고 새벽별(영감)을 만나기 까지의 과정 설명
: - 인죄론의 마음 부분을 다룰때 다뤄야져야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 (4) 새사람과 옛사람
: - 인죄론 부분에서 다뤄져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 (5) 신앙관
: - 신본주의와 인본주의, 기쁨-감사-충성, 복음주의
: - 총공회의 본질인 거룩이 곧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와 함께 다뤄여쟈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 교회론, 현실관 등에서 다룰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별도 장으로 떼어내야 할 정도하고도 보입니다.
:
: (7) 하나님 사랑과 뱀의 사랑
: - 사랑관을 좀 더 자세히 다뤄 주셨으면 합니다.
: - 사랑에 대한 정의가 너무도 잘못되어 다른 곳의 교리가 저렇게 변질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너무도 폐해가 큽니다.
: -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사랑을 받는 것)과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설명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 신론에서 다루기엔 내용이 다른 곳과 중첩적이라 어디에 둬야 할지 고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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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외형 체계를 외부와 같이 하신 결정에 동의합니다 만...
:
: 사실 처음에 지금의 목차를 받아 보았을때 의외 였습니다. 외부 목차와 거의 동일해서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목차와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체계를 가져 가신 것에 이내 동의했고 지금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
: 다만, 만약 우리만의 교훈과 교리로 목차를 가져 간다면 어떻게 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도 제시도 해주셨으면 좋았겠다 생각합니다.(부록으로라도)
: 그렇게 했다면, 제가 2번에서 언급한 내용들 혹은 언급은 안되었어도 더 중요한 교리가 빠짐 없이 외부 체계와 목차대로 제 위치를 찾아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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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기우 일순 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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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백목사님께서 지금의 목차를 보신다면 어떻게 평가하실까를 이목사님께서는 너무도 많이 살피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 기억에 최재현 목사님께 조직신학을 맡기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초안을 보시고 하신 평가가
:
: "우리 것으로 출발하였으나 박형룡 조직신학으로 돌아가버리고, 우리의 새로운 움싹을 다 가리워 놓았다"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
: 저는 그 당시의 초안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혹시 아신다면 참고할 수 있도록 공개해주셨으면 합니다. 그것을 보아야 지금의 조직신학 목차에 대한 저만의 최종 평가를 내릴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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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목차 체계가 잘못되었다가 아니라 당시의 백목사님의 평가를 존중하는 면에서 항상 궁금하고 고민중에 있었습니다. 알아야 그 부분이 해결될 것 같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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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교정뿐 아니라 내용에 대한 지적 제안 발언까지 '/초기화면/행정실/수정 게시판에 모으고 있습니다. 출간을 할 때마다 그 곳에서 관련 내용을 살펴 적극 반영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곳에만 있다 보면 실제 반영에서 누락 될 수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별도로 우리 모두가 생각할 점으로 대화하는 것이어서 당연히 이 곳에도 게재 되어야 합니다.
2. 최재현 목사님의 경우
최 목사님은 그 중심이 백 목사님과 이 노선을 사랑했기 때문에 이 노선의 사람이었을 뿐이고, 그 분의 지식과 각 사안에 대한 각론은 이 노선을 떠나 있었던 세월이 너무 오래 되어 이 노선을 거의 모르는 형편이었습니다. 늘 계약신학적 신학 체계를 그렇게 강조했던 분입니다.
양성원에 강의를 맡긴 것은 학생들이나 양성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최 목사님을 한국으로 불러 내어 목회자를 만들고 싶었던 목사님께서 한국에 올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물론 학벌이 좋기 때문에 양성원으로서도 인재 포진이라는 외형에 도움 되는 일입니다.
양성원에서 조직신학을 맡게 된 것은 최 목사님의 신청 때문에 허락하신 것이고 목사님께서는 조직신학을 가르치려다 보면 우리 교리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셨습니다. 당시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있기가 불편하고 어려울 정도였으나, 최 목사님이 워낙 인격적으로 좋은 분이고 한국으로 나와서 목회한다는 것을 생각도 못할 상황에서 순종했다는 점, 그리고 백 목사님께서 모든 제자들을 다 기른 다음에 최종적으로 가족들도 조금씩 신앙으로 이끌어 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그런 점 때문에 모두들 자제했던 상황입니다.
최 목사님이 한국에 들어 오셨던 것은 1984년이었고 교리 작업을 구체화 한 것은 1987년 초기입니다. 이 때 백 목사님은 서영준 목사님께 부탁했지 최 목사님께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양성원에서 조직신학 맡을 때 교안은 아마 찾아 보면 있을 듯하나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 자료에 대해서는 질문을 답하기 위해 찾으면 찾을 정도지 따로 읽어 보거나 찾아야 할 자료가 아닙니다. 최 목사님과는 개인적으로 가깝게 서로 내면을 알 만한 그런 기회를 가진 분들이 없습니다. 답변자가 제일 가까왔고 답변자에게 최 목사님은 모든 것을 총력 지원해 주신 제일의 후원자였으므로 최 목사님의 성함이 나오면 답변자로서는 최선과 최고의 예우를 다해야 하나 이 노선 조직신학을 두고 언급하거나 참고할 분은 아닙니다. 최 목사님은 전형적인 목회자이며 부흥강사적 은혜를 받은 분입니다. 신학이나 교리 체계에는 거리가 아주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공회의 조직신학
사실 공회의 의미 중에 의미는 이 노선 교리 체계이며 그 핵심은 구원론입니다. 모두가 받은 은혜도 너무 크고 주변과 비교해 보면 그 정리와 전파의 사명감을 느끼지 않은 분들이 별로 없을 것이며 신학이나 그런 쪽을 좀 아는 분들로서는 시도한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또 실제 조직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책들도 나왔습니다만 이런 모든 상황이 이 노선 내에는 이 노선의 조직신학의 체계화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신청도 많이 했고, 시도도 많이 했습니다.
목차 체계에 대해서는, 백 목사님의 평소 신앙이나 목회나 공회 정치나 설교 형태나 대소사의 일처리를 면밀히 살펴 보시면 별로 애매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자로서는, 그 분의 체질과 흐름에 맞서면서도 파격적으로 좀 해 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이 조직신학일 때는 조심에 조심이 더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백 목사님의 개인 노트 전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신학 조직신학 등 그 적으신 방향들이 다 있습니다. 작업의 우선 순위 때문에 일반 공개가 늦어 지고 있는데 그냥 보면 이 노선에서는 그리 더듬고 고민할 부분이 사실 별로 없습니다. 백 목사님이 직접 작성한 개혁주의와 한국 교회 상황이라는 개인 논문도 있습니다.
현 체계를 유지한 것에 대해서는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다만 제자 입장에서 이 노선의 특별한 점은 그 특별한 점 때문에 교리의 일반 외형과 그 모습에서조차 아주 다르게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는 혼자의 고민이었습니다. 백 목사님이 연구소에 주신 이름은 처음은 '서부교회 편집실'이었고 그 다음은 '목회연구소'였습니다. 여기까지만 이름을 주셨는데 목회연구소 앞에 '백영희'를 붙인 것은 답변자였습니다. 제자로서 그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훗날 원저자가 흐려지고 편집 기능만 가진 사람들의 이름이 원저자를 대신하겠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설교록을 출간할 때도 국내외 최고 지성들 쪽에서 '백영희 목사'라고 해야 어법상 맞다고 해서 3 권의 설교록에 '목사' 직책이 들어 간 적이 있었는데, 기어코 그 분들과 말싸움에서 답변자가 이기고 결국 '목사'를 빼고 '백영희'만 표시했습니다. 이미 백 목사님의 이름은 '백영희' 이름 석 자로 역사에 남을 것이고 그 설교록의 출간은 그 책이 출간 될 때마다 역사 기록 차원이라는 의미로 '루터 목사님'이 아니라 '루터'로 불리는 것처럼, '칼빈 목사님'이 아니라 '칼빈'으로 불리는 것처럼 백영희 설교록은 '백영희 목사님'이 아니라 '백영희'라는 인물, 신앙 노선, 그런 신앙의 차원이 되어야 하겠다는 자세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자세는 그러했지만 구체적 논리 싸움에서는 '목사' 직책을 붙이려면 '목사님'으로는 붙여도 답변자 손에 '목사님'이라는 성함에 '님'을 뗀다는 것은 이단자 아니고는 양심상 그리 못한다고 했습니다. 일일이 표시하지 않고 있는 내용이 너무 많습니다. 설명이 많으면 곤란할 상황들이 많아서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윗 글의 지적 내용에 중요한 것이 너무 많아서 답변을 하다가 길어 졌습니다. 그러나 한 번쯤 짚어 둘 내용이었습니다.
>> 무명2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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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약과 정리란 의미의 조직신학 정의에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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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것이 '목회설교록'이라면, 이 번에는 백영희 설교에 담긴 공통점만 최소한으로 줄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 것이 '조직신학'입니다. 백영희 설교에 한 번이라도 언급 된 내용이 2백 페이지 안에, 많아야 5백 페이지 안에 다 담겨 있다 할 정도일 때 이를 교리라고 합니다.(yilee, 201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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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중요한 교리 중 빠진 것이 없어야 한다는 면에서 건의나 문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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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조직신학서에 담겨져 있는지는 모르오나 다음의 내용들이 비중있게 제 위치에서 다뤄져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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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실관 : 86년 여름집회, 88년 여름집회
: - 별도 장(chapter) 또는 개별주권섭리의 하위단
: - 시험관도 같이 다뤄져야 한다면 별도로 떼어내야 하지 않을까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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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세상관
: - 제6장 교회론 에서 다루고 일부 다루고 계십니다만 저희가 배운 세상의 정의와 세상에 대한 관을 별도로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 - 위치는, 현재의 제6장도 좋다고 생각하고 별도 장(chapter)로 분리해도 좋을듯하고, 위의 현실관 안에 같이 넣는 것도 무리가 없어 보이고, 인죄론에 포함시키는 것도 나을듯 하나, 인죄론이 너무 많이진단 생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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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양심론
: - 양심과 신앙양심 그리고 새벽별(영감)을 만나기 까지의 과정 설명
: - 인죄론의 마음 부분을 다룰때 다뤄야져야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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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새사람과 옛사람
: - 인죄론 부분에서 다뤄져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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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신앙관
: - 신본주의와 인본주의, 기쁨-감사-충성, 복음주의
: - 총공회의 본질인 거룩이 곧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와 함께 다뤄여쟈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 교회론, 현실관 등에서 다룰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별도 장으로 떼어내야 할 정도하고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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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하나님 사랑과 뱀의 사랑
: - 사랑관을 좀 더 자세히 다뤄 주셨으면 합니다.
: - 사랑에 대한 정의가 너무도 잘못되어 다른 곳의 교리가 저렇게 변질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너무도 폐해가 큽니다.
: -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사랑을 받는 것)과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설명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 신론에서 다루기엔 내용이 다른 곳과 중첩적이라 어디에 둬야 할지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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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외형 체계를 외부와 같이 하신 결정에 동의합니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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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처음에 지금의 목차를 받아 보았을때 의외 였습니다. 외부 목차와 거의 동일해서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목차와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체계를 가져 가신 것에 이내 동의했고 지금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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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만약 우리만의 교훈과 교리로 목차를 가져 간다면 어떻게 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도 제시도 해주셨으면 좋았겠다 생각합니다.(부록으로라도)
: 그렇게 했다면, 제가 2번에서 언급한 내용들 혹은 언급은 안되었어도 더 중요한 교리가 빠짐 없이 외부 체계와 목차대로 제 위치를 찾아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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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기우 일순 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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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백목사님께서 지금의 목차를 보신다면 어떻게 평가하실까를 이목사님께서는 너무도 많이 살피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 기억에 최재현 목사님께 조직신학을 맡기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초안을 보시고 하신 평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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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것으로 출발하였으나 박형룡 조직신학으로 돌아가버리고, 우리의 새로운 움싹을 다 가리워 놓았다"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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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그 당시의 초안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혹시 아신다면 참고할 수 있도록 공개해주셨으면 합니다. 그것을 보아야 지금의 조직신학 목차에 대한 저만의 최종 평가를 내릴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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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목차 체계가 잘못되었다가 아니라 당시의 백목사님의 평가를 존중하는 면에서 항상 궁금하고 고민중에 있었습니다. 알아야 그 부분이 해결될 것 같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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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서 개정에 관한 질문1
조직신학서 (요약본)에 다음의 내용이 담겨져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미 나온 조직신학서의 목차를 보면, 다른 조직신학서의 체계와 목차와 비슷한 목차를 가진것 처럼 보입니다.
다음의 주제는 별도의 챕터 혹은 개별주권섭리의 하위단으로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 문의 드립니다.
1. 현실관 : 86년 여름집회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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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서 (요약본)에 다음의 내용이 담겨져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미 나온 조직신학서의 목차를 보면, 다른 조직신학서의 체계와 목차와 비슷한 목차를 가진것 처럼 보입니다.
다음의 주제는 별도의 챕터 혹은 개별주권섭리의 하위단으로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 문의 드립니다.
1. 현실관 : 86년 여름집회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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