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서 개정에 관한 질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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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2
0
2012.10.20 00:00
I. 윗글에 추가할 부분
2.
(6) 단일교회
- 교회론에서 보충되어야 할 내용일 것 같습니다.
5. 그리고 대단히 미안한 부탁이지만
책 표지 앞면에 저자의 이름을 표시해 주십시오. 그래야 일반성을 가집니다.
목차를 외부적 모양을 취하였다면 같은 맥락에서 표지와 디자인 그리고 저자표시도
따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직신학서의 포교를 위해선 어쩔수 없다고 봅니다.
II. 답변에 대한 의견
1. 최재현 목사님의 조직신학 초판에 대하여 궁금한 이유
백영희 목사님께서 초판의 어떤 면을 보시고 그렇게 악평을 하셨으며, 그리고 중단까지 시키셨는지 그면을 보고 싶어서 였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야 그와 같은 실수를 다시 안할수 있는 희망성이 있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2. 조직신학서 이름 앞에 붙은 서명에 대한 저의 의견
이목사님의 의견과 의중을 충분히 이해도 하고 동감도 합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상관 없으나 외부에 계신 분들의 거부감은 분명히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음의 글은 제가 드릴 입장도 또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라는 입장도 아니고, 또 그럴만한 시기도 아니지만 제 입장에서 한번쯤은 언급하고 넘어가야 될 부분이어서 말씀드립니다.
(1) 백영희 조직신학 이라 이름한다 하여 '칼빈 조직신학'과 같은 명성을 얻게 된다는 것에는 동의 할수 없습니다.
(2) 마찬가지로 안 붙인다 하여 '칼빈 조직신학'이란 이름에서 칼빈이 차지하는 그와 같은 권위를 잃을 것이란 의견에도 동의 할수 없습니다.
(3) 다른 이들이 자기 것으로 사용하면서 백목사님의 비중이 작아지리란 점에 대해서
일부 동감이 되긴하나, 저의 좁은 사견으로는 결국은 원전을 찾게 될 것이고, 원저자를 안드러낼래야 안드러 낼수는 없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3. 저의 의견입니다.
(1) 다른 곳의 사례를 참고한다면, 전혀 다른 별칭을 붙이는 건 어떨가 하는 생각입니다.
칼바르트의 "교회 교의학"은 조직신학이란 이름이 아니었고 전혀 새로운 이름이었습니다.
프란시스 튜레틴의 "변증신학 강요" 도 전혀 새로운 이름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백영희 목사님의 조직신학도 저희 총공회만의 교훈과 교리를 잘 드러내어 한 단어로 명명할 그 이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을 찾는 것이 더 일반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참고로, 칼바르트는 기독교 인이 아닌 것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튜레틴은 기독교인은 맞으나"타락후 선택설"을 맞다고 인정할 정도로 어린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책이 세상을 정복한 점만 놓고서 그 방편은 지혜롭게 참고할만 해서 소개해 드린 것입니다.
(2) 백영희 목사님의 조직신학
이런 명칭은 어떻습니까?
(3) 총공회 조직신학
이런 명칭도 어떻습니까?
(4) 신본주의 조직신학
이런 명칭도 어떻습니까?
(5) 그리고 옆에 백영희 신학 요약본 이라는 부제목을 다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6) 현재의 조직신학서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신다면, 적어도 밑의 출판사 명에서라도 백목사님께서 남겨주신 대로 목회연구소라고 명명함으로써 백영희 목사님의 이름은 빼야 되지 않을까도 생각합니다.
더 생각해 보면 여러가지 대안이 나올수 있을 것 같습니다.
4.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제가 이영인 목사님의 의중을 이해 못해서가 아니라...
누구 못지 않게 이해하고 동감하고 있지만, 조직신학이란 일반론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 일반론에 맞추는 외형을 갖추어야 되지 않을까 해서 입니다. 그저 저의 편견 일수 있으나 누가 봐도 일반적 이진 않고 오히려 거부감이 더 들 것으로 생각됩니다.
칼빈신학이란 이름에선 거부감이 안드는데 백영희 조직신학이란 명칭에서는 거부감이나 아래로 깔아보고자 하는 그런 선입견이나 첫 인상을 가진다면 그것이 그들의 잘못이라 할지라도, 일반적으로 할수 있음에도 그렇게 못한 저희의 부담도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감히 언급해 봅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훗날 후배들이 이런 균형잡힌 의견들을 다 고려하였고, 그랬음에도 그런 후에 지금의 제목을 가지고 간 저희들의 결정을 동의할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의견을 드리는 면도 있습니다.
2.
(6) 단일교회
- 교회론에서 보충되어야 할 내용일 것 같습니다.
5. 그리고 대단히 미안한 부탁이지만
책 표지 앞면에 저자의 이름을 표시해 주십시오. 그래야 일반성을 가집니다.
목차를 외부적 모양을 취하였다면 같은 맥락에서 표지와 디자인 그리고 저자표시도
따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직신학서의 포교를 위해선 어쩔수 없다고 봅니다.
II. 답변에 대한 의견
1. 최재현 목사님의 조직신학 초판에 대하여 궁금한 이유
백영희 목사님께서 초판의 어떤 면을 보시고 그렇게 악평을 하셨으며, 그리고 중단까지 시키셨는지 그면을 보고 싶어서 였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야 그와 같은 실수를 다시 안할수 있는 희망성이 있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2. 조직신학서 이름 앞에 붙은 서명에 대한 저의 의견
이목사님의 의견과 의중을 충분히 이해도 하고 동감도 합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상관 없으나 외부에 계신 분들의 거부감은 분명히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음의 글은 제가 드릴 입장도 또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라는 입장도 아니고, 또 그럴만한 시기도 아니지만 제 입장에서 한번쯤은 언급하고 넘어가야 될 부분이어서 말씀드립니다.
(1) 백영희 조직신학 이라 이름한다 하여 '칼빈 조직신학'과 같은 명성을 얻게 된다는 것에는 동의 할수 없습니다.
(2) 마찬가지로 안 붙인다 하여 '칼빈 조직신학'이란 이름에서 칼빈이 차지하는 그와 같은 권위를 잃을 것이란 의견에도 동의 할수 없습니다.
(3) 다른 이들이 자기 것으로 사용하면서 백목사님의 비중이 작아지리란 점에 대해서
일부 동감이 되긴하나, 저의 좁은 사견으로는 결국은 원전을 찾게 될 것이고, 원저자를 안드러낼래야 안드러 낼수는 없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3. 저의 의견입니다.
(1) 다른 곳의 사례를 참고한다면, 전혀 다른 별칭을 붙이는 건 어떨가 하는 생각입니다.
칼바르트의 "교회 교의학"은 조직신학이란 이름이 아니었고 전혀 새로운 이름이었습니다.
프란시스 튜레틴의 "변증신학 강요" 도 전혀 새로운 이름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백영희 목사님의 조직신학도 저희 총공회만의 교훈과 교리를 잘 드러내어 한 단어로 명명할 그 이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을 찾는 것이 더 일반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참고로, 칼바르트는 기독교 인이 아닌 것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튜레틴은 기독교인은 맞으나"타락후 선택설"을 맞다고 인정할 정도로 어린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책이 세상을 정복한 점만 놓고서 그 방편은 지혜롭게 참고할만 해서 소개해 드린 것입니다.
(2) 백영희 목사님의 조직신학
이런 명칭은 어떻습니까?
(3) 총공회 조직신학
이런 명칭도 어떻습니까?
(4) 신본주의 조직신학
이런 명칭도 어떻습니까?
(5) 그리고 옆에 백영희 신학 요약본 이라는 부제목을 다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6) 현재의 조직신학서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신다면, 적어도 밑의 출판사 명에서라도 백목사님께서 남겨주신 대로 목회연구소라고 명명함으로써 백영희 목사님의 이름은 빼야 되지 않을까도 생각합니다.
더 생각해 보면 여러가지 대안이 나올수 있을 것 같습니다.
4.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제가 이영인 목사님의 의중을 이해 못해서가 아니라...
누구 못지 않게 이해하고 동감하고 있지만, 조직신학이란 일반론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 일반론에 맞추는 외형을 갖추어야 되지 않을까 해서 입니다. 그저 저의 편견 일수 있으나 누가 봐도 일반적 이진 않고 오히려 거부감이 더 들 것으로 생각됩니다.
칼빈신학이란 이름에선 거부감이 안드는데 백영희 조직신학이란 명칭에서는 거부감이나 아래로 깔아보고자 하는 그런 선입견이나 첫 인상을 가진다면 그것이 그들의 잘못이라 할지라도, 일반적으로 할수 있음에도 그렇게 못한 저희의 부담도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감히 언급해 봅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훗날 후배들이 이런 균형잡힌 의견들을 다 고려하였고, 그랬음에도 그런 후에 지금의 제목을 가지고 간 저희들의 결정을 동의할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의견을 드리는 면도 있습니다.
조직신학서 개정에 관한 질문1
조직신학서 (요약본)에 다음의 내용이 담겨져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미 나온 조직신학서의 목차를 보면, 다른 조직신학서의 체계와 목차와 비슷한 목차를 가진것 처럼 보입니다.
다음의 주제는 별도의 챕터 혹은 개별주권섭리의 하위단으로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 문의 드립니다.
1. 현실관 : 86년 여름집회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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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서 (요약본)에 다음의 내용이 담겨져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미 나온 조직신학서의 목차를 보면, 다른 조직신학서의 체계와 목차와 비슷한 목차를 가진것 처럼 보입니다.
다음의 주제는 별도의 챕터 혹은 개별주권섭리의 하위단으로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 문의 드립니다.
1. 현실관 : 86년 여름집회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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