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대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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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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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1 00:00
1번 질문
'영'을 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주격이라는 뜻입니다. 나 전부가 아닌 주격만입니다.
'심신'을 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르고 살 때는 심신만 전부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옛사람' 나도 나라 할 수 있습니다. 나 아닌 나입니다. 참 나의 원수인데 나는 나입니다.
'심신 중에 지옥으로 버려 진 기능'도 나라고 할 수 있는가? 정확하게 말하면 나를 구성하는 일부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모두 모여서 내가 됩니다. 생물학적으로 출생한 3 kg 아이가 30 kg 초등학생이 되었다면 '나'의 몸무게가 늘어 난 것이지 30 kg짜리 몸을 가진 '나'라는 존재가 10 배 많아 지거나 불어 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나'의 힘이 세지고 덩치가 커 진 것입니다. 영어를 할 줄 알게 되 '나'와 우리 말만 하는 '나'는 차이가 없습니다. 영어라는 외국어 기술을 가진 '나'와 가지지 못한 '나'이니 기술은 달라도 '나'는 꼭 같은 나입니다.
택자가 천국에 갈 때 '나'는 무조건 다 갑니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가 가진 것 중에는 가져 가는 것도 있고 버려 두는 것도 있습니다. '나' 아닌 것만 버려 집니다. 나 아닌 것만 버려 지는데 어떻게 그 것을 나라고 하겠느냐? 그렇게 말한다면 그 말은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 살 때 그렇게 구별하지 않고 말하기 때문에 통상의 생활 회화 차원에서 본다면 나의 기능인데도 불구하고 나라고 말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밥 좀 들어 보라'는 말에는 밥그릇을 들고 있으라는 말만 있지 먹으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먹으라는 말입니다. 통상의 표현과 교리적 표현은 항상 구별하여야 하나 타인의 이해를 위해 또 서로의 대화를 위해 이런 면은 너그럽다면 좋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택자로서 지옥에 버려 진 나'라는 표현은 틀렸습니다.
2번 질문
기능적으로 지옥에 버려진 부분은 부활 시에 살아 나지 못하고 있다가 그대로 지옥으로 옮겨 집니다.
3번 질문
오늘은 눈과 귀와 입을 통해야 의사 소통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도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손만 살며시 잡는 것으로 대단히 많은 말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대방도 그 잡는 손을 살짝 뿌리 치거나 함께 잡거나 아니면 그 손에 힘을 다 빼 버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세상에서는 5 가지 감각을 통해 대화를 합니다. 우리가 육체를 벗게 되면 그리고 재림 후 신령한 유게를 입게 되면 세상의 오감으로 대화하던 것은 없어 집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아브라함의 '대화'라는 것을 오늘처럼 듣고 생각하고 그리고 입으로 발성하여 상대방이 듣는 방식에만 고착을 하기 때문에 모든 옿가 다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대화가 가능하려면 공기가 있어야 합니다. 음부와 낙원 사이에도 말이 넘나 들 수 있도록 대기가 있었을까? 그 곳이 물질의 공간계와 대기 환경이 있을까? 부자나 아브라함은 이미 육체를 벗은 상태인데 그들이 '야! 부자야!' '예, 아버지!' '잘 안 들린다 목소리 좀 크게 해라'... 이런 식의 대화였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리스 신화 꼴이 날 것입니다.
오늘도 뭐 같은 남녀 둘이 나쁜 짓을 하려고 커피 집에 마주 앉아서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고도 마음껏 말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언어 장애를 가진 벙어리들이 손을 사용하지 않고도 아주 재미 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까? 하물며 그 나라겠으며, 하물며 낙원과 음부에는 몸을 벗어 놓고 간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생각을 두뇌의 언어 통제 부분이 발성 기관을 통해 대화하는 차원은 분명하게 아닙니다.
바로 이런 나라에서는 만물이 그 누구와도 대화한다는 것을 단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타락 전에 실제 뱀이 하와와 최고 수준의 심리전을 담고 있는 대화를 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대화, 아브라함과 천사와의 대화는 인간의 육체와 신성 하나님과의 대화였거나 또는 천사라는 영물과이 대화였습니다. '삯이 소리 지르며'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신 말씀들과 '만물의 피곤함을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피조물이 굴복하는 것은 자기의 뜻이 아니요' '피조물이 탄식하며'라고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그 나라에서는 의사소통이 됩니다.
>> 부족한 자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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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님 답변하신 내용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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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포 입은 부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알기 쉽게 표현하였으므로 마치 이 세상의 어느 수용소에 갇힌 사람과 그 수용소를 내려다 보는 사무실에서 그와 대화하듯 적었지만 이 말씀은 음부와 지옥에서 영원히 고생할 불택자와 낙원과 천국에서 영생할 택자 사이에도 일어 날 일이고, 동시에 천국 갈 택자가 자기가 실수하여 아깝게도 지옥에 버리고 갈 자기의 일부, 자기 생활과 요소와 실력과 기능과 삶의 일부가 지옥 불에서 고통할 때 천국에 있는 자기와 대화일 수도 있습니다."
: 부분을 읽으면서 저자신 아직 기능구원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이 부족해서(없어서) 나오는 의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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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라는 존재는 내속에 있는 대속의 은혜로 중생된 나의 영의 나, 나의 심신의 나, 옛사람의 나, 택자로서 지옥에 버려진 나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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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기능적으로 지옥에 버려진 부분은 부활시에는 어떻게 되는지요, 그때도 지옥의 나와 부활의 내가 대화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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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요소와 기능이라고 하면, 완전체가 아니라 일부분일 것 같은데, 대화라는 용어에서 혼란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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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홈의 주옥같은 자료들 그리고 주옥같은 목사님 답변글 열심히 읽고 깨달음의 은혜를 누리도록 마음다하고 목숨다하고 뜻 다하여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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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ilee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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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먼저 요약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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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1) 홍포입은 부자는 단정적으로 택자라고 말씀하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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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은 어느 부분이나 쉽게 단정하지 않습니다. 아주 명확하지 않을 때는 내적으로 단정하지만 외부 타인의 입장과 연구와 훗날을 봐서 연구 과제로 돌립니다. 음부에 있는 홍포 입은 부자는 택자가 지옥에 영원히 버릴 자기 생의 일부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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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2) 택자의 행위가 죽은 다음 구제받을 방법이 있다고 말씀하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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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의 행위는 그 현실에 한 번 지나 가면 다시는 되 돌릴 수 없습니다.
: : 사람 자체는 한 번 죽으면 다시는 구원이 없습니다.
: : 더듬을 것도 없고 재론도 필요 없습니다. 구원론의 근간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의 유일의 원인이며 기준이듯이, 사람에게는 한 번 죽으면 두 번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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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명)
: : 6.25 전쟁 때는 우리 편과 적만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 가지입니다만 지금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은 남한에 있는데 북의 세력이 있고, 북쪽에 있는데 남한 세력이 있습니다. 다음 성구들로 살펴 볼 때 우리 안에는 구원 받은 참 나와 버리고 가야 할 나 아닌 내가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내 속에 두 사람이 있음을 알 때 비로소 성경 전부는 한 말씀도 빠짐 없이 내 안에 있는 나를 고치는 말씀이 되고 내가 바로 고쳐 져야 비로소 남을 고치는 데 제대로 나갈 수 있습니다. 나를 두부를 자르듯 둘로 자르지 말고, 영은 전부고 몸과 마음의 자체도 전부가 참 나지만 몸과 마음 속에는 중생 후에도 죄를 짓는 성향이 있습니다. 여기 관련 된 것이 겉사람이며 옛사람이며 우리가 총력을 기울여 평생 싸울 우리의 대적입니다. 오늘 내 속에 나의 옛사람에게 나의 심신의 시간과 정력과 활동과 삶과 기능과 경력을 뺏기지 않으면 내가 천국 갈 때 그 모든 것을 가져 가고 그 것으로 천국의 내 영생의 차원이 높아 질 것이나 오늘 세상에서 내 속의 옛사람에게 그런 것들을 모두 내어 주면 홍포입은 부자의 탄식을 구경해야 할 것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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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3:9-10, 너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 : 롬7:22-23,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 :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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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다시 설명 드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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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 수술은 나 속을 칼로 찢고 들어 가서 나의 일부를 떼 내어 버림으로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택자 자체는 무조건 천국입니다. 그러나 그 택자가 가지고 있던 담배 피우던 습관, 주먹질할 때 사용 된 그 힘, 돈을 사랑했던 욕심, 자기 중심으로 신앙생활에 매진했던 경력처럼 이런 것들은 나 안에 나의 일부지만 이런 부분은 도려서 지옥에 던져 버려야 합니다. 이 던져 진 부분들이 오늘은 음부에서 재림 후에는 지옥에서 고통 중에 호소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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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님의 대속은 죄를 지은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책임, 죄로 죽은 죽음, 사탄의 지배권을 십자가에 대신 죽음으로 모두 제거를 해서 우리를 되 살려 놓은 것입니다. 절도죄로 감옥 속에 있는 아들을 위해 부모가 절도 피해금을 물어 주고, 그 죄인이 감옥에 들어 앉아 있어야 하는 형벌을 대신 다 받고, 검찰과 피해자에게 벌금과 합의금까지 다 지불을 하여 무사히 가정으로 돌아 온 경우를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아들을 감옥에 가두어 두는 원인을 다 제거한 것처럼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 갈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예수님이 대신 모두 해결했습니다. 우리의 지난 죄뿐 아니라 우리가 죽을 때까지 지을 죄까지, 우리 안에 곳곳에 숨어 있고 뻗쳐 있는 모든 죄에 속한 요소와 성향을 전부 다 수술로 걷어 내 버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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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렇게 내 속에서 거두어 들인 죄의 찌꺼기들은 어떻게 되는가? 당연히 사탄이 가야 할 지옥에 함께 던져 집니다. 그런데 이 찌꺼기들이 원래 찌꺼지였습니까? 나의 일부요 나의 요소요 나의 힘이요 내 속에서 나를 구성하고 수고하던 나의 생의 일부입니다. 이 것들이 잘려 나가고 이 것들이 영원히 지옥에서 불 타고 있을 때, 오늘처럼 이런 우리 생활에서는 앓던 이를 빼면 속이 시원할 뿐이지만 잘 관리해서 성한 이로 가질 수 있었던 치아를 사소한 실수로 빼버리고 나면 항상 속만 시원할까요 아니면 늘 그 부분 때문에 불편하고 아쉬움이 남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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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포 입은 부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알기 쉽게 표현하였으므로 마치 이 세상의 어느 수용소에 갇힌 사람과 그 수용소를 내려다 보는 사무실에서 그와 대화하듯 적었지만 이 말씀은 음부와 지옥에서 영원히 고생할 불택자와 낙원과 천국에서 영생할 택자 사이에도 일어 날 일이고, 동시에 천국 갈 택자가 자기가 실수하여 아깝게도 지옥에 버리고 갈 자기의 일부, 자기 생활과 요소와 실력과 기능과 삶의 일부가 지옥 불에서 고통할 때 천국에 있는 자기와 대화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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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복음 16장에서 부자는 몇 가지 이유로 살펴 볼 때 택자와 불택자의 대화가 아니라 택자의 버려 진 자기와 천국에 있는 택자 자신과의 대화를 아브라함과 나사로 그리고 부자로 표시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천주교의 연옥설은 아예 근방에도 올 수 없는 문제이고, 한 번 죽으면 그 것으로 우리의 구원 기회는 완전히 끝이 나는데 그 정도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실은 우리의 기능과 우리의 실력은 오늘도 매 현실마다 그 현실에서 하늘에 갈 때 가져 갈 것과 우리가 하늘에 갈 때 버리고 가야 할 자기가 결정 되는 것이니,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축소하여 기록해 주심과 한 성구는 한 가지만 설명할 때도 있으나 한 성구가 많은 차원을 동시에 설명할 때도 있음을 살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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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복음 15장 1절의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말씀도, 우리 교회를 다니다가 시험에 들어 출석하지 않는 교인 1 명 그 사람에 대한 말씀이며 또한 아직까지 아무 교회도 다니지 않고 있는 어느 불신자 1 명 그 사람에게도 해당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미 믿는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교회를 빠지거나 교회 출석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만 해당한다고 생각하면 그 말씀이 우리 자신에게 가르치는 말씀은 놓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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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교회를 잘 다니고 있지만 우리 속에 각자 말씀에 붙들리지 않는 단점, 성격, 습관 그런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것도 자기 속에 잃어 버린 양입니다. 베드로 자체는 예수님의 사도였지만 그 사람 속에는 걸핏하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 가는 옛사람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 배반의 요소, 이해득실을 따지는 사리사욕, 인내하지 못하는 불신적인 요소는 베드로 자체가 천국 갈 때 그런 요소들도 다 안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잘못 산 부분들은 제거가 되고 지옥에 던져 집니다. 이런 요소들이 음부에서 고통을 받고 그다음 낙원에 있는 베드로에게로 돌아 갈 수 있는가? 이 곳과 그 곳 사이에는 큰 구렁이 끼어 있어 건너 갈 수 없다고 단정이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한 사람이 지옥을 가든, 한 사람의 잘못 산 부분이 지옥에 가든 사람은 한 번 죽으면 그 것으로 두 번 기회는 없습니다. 구원은 무조건 단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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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잃은 양의 비유에서는 아직 믿지 않는 사람도 해당하고 또 믿는 우리 속에 말씀을 떠난 요소도 해당이 됩니다만, 홍포 입은 부자의 경우는 몇 가지 면에서 볼 때 택자의 잘못 된 일부가 던져 진 경우로 생각합니다. 워낙 교리적으로 미개척 분야여서 이 노선의 설명을 읽어 볼 것도 없이 칼부터 들고 설칠 이들이 많아서 양면을 다 설명하며 기초 원리부터 설명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더듬을 것도 없이 택자 우리 속에 있는 요소 중에 지옥에 버리고 갈 부분을 두고 말한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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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본문에서 지옥을 가고 천국을 가게 된 근거와 배경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대속이 아니고 전적 은혜 유무로 결정 된 것이 아니고 나사로의 행동과 부자의 행동의 결과에 따라 결정이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이 천국과 지옥을 가는 것은 그 사람이 평생 무슨 짓을 했던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천국을 가는 택자인 경우에 한해서만 그 사람의 행동에 따라 천국에 갈 때 많이 가져 갈 부분이 있고 적게 가져 갈 부분이 있으니 이 차이는 우리 각자의 세상 생활의 결과에 따른 보응과 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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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궁금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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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말씀에서
: : : 백영희 목사님은 홍포입은 부자를 택자라고 하셨습니다.
: : : (첫번째 궁금한 것이, 택자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단정적으로 택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 : : 택자인 홍포입은 부자가 음부(연옥?)에 간다면
: : : 거기서 회개하면 부활의 날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 : : 그러니까 연옥 개념으로 백영희 목사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 : : (물론 천주교에서 이미 말하고 있는 연옥이라는 표현 때문에 좀 그런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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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우리 목사님이 택자도 음부에 간다고 너무 강하게 말씀하시니까
: : : 복음이 설 자리가 잃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 : : 그런데 천주교에서 말하는 연옥은 성경적이지 않다고 말씀하시면서 부활의 날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을 입을 텐데 그 때까지 홍포입은 부자의 행위가 음부에서 고통을 당하면서 회개하다고 부활의 날 천국에 간다고 지나가듯 설교를 하시네요.
: : : 목사님이 너무 강하게 택자도 음부에 간다고만 말씀하셨는데
: : : 이런 말씀만 듣다가 연옥 비슷한 것이 있다고 하니 차라리 복음으로 들리는 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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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제 생각에 우리 목사님이 복음(기본구원)을 제대로 증거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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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궁금한 것을 2가지 요약한다면
: : : 1)홍포입은 부자는 단정적으로 택자라고 말씀하셨는지요
: : : 2)택자의 행위가 죽은 다음 구제받을 방법이 있다고 말씀하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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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을 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주격이라는 뜻입니다. 나 전부가 아닌 주격만입니다.
'심신'을 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르고 살 때는 심신만 전부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옛사람' 나도 나라 할 수 있습니다. 나 아닌 나입니다. 참 나의 원수인데 나는 나입니다.
'심신 중에 지옥으로 버려 진 기능'도 나라고 할 수 있는가? 정확하게 말하면 나를 구성하는 일부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모두 모여서 내가 됩니다. 생물학적으로 출생한 3 kg 아이가 30 kg 초등학생이 되었다면 '나'의 몸무게가 늘어 난 것이지 30 kg짜리 몸을 가진 '나'라는 존재가 10 배 많아 지거나 불어 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나'의 힘이 세지고 덩치가 커 진 것입니다. 영어를 할 줄 알게 되 '나'와 우리 말만 하는 '나'는 차이가 없습니다. 영어라는 외국어 기술을 가진 '나'와 가지지 못한 '나'이니 기술은 달라도 '나'는 꼭 같은 나입니다.
택자가 천국에 갈 때 '나'는 무조건 다 갑니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가 가진 것 중에는 가져 가는 것도 있고 버려 두는 것도 있습니다. '나' 아닌 것만 버려 집니다. 나 아닌 것만 버려 지는데 어떻게 그 것을 나라고 하겠느냐? 그렇게 말한다면 그 말은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 살 때 그렇게 구별하지 않고 말하기 때문에 통상의 생활 회화 차원에서 본다면 나의 기능인데도 불구하고 나라고 말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밥 좀 들어 보라'는 말에는 밥그릇을 들고 있으라는 말만 있지 먹으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먹으라는 말입니다. 통상의 표현과 교리적 표현은 항상 구별하여야 하나 타인의 이해를 위해 또 서로의 대화를 위해 이런 면은 너그럽다면 좋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택자로서 지옥에 버려 진 나'라는 표현은 틀렸습니다.
2번 질문
기능적으로 지옥에 버려진 부분은 부활 시에 살아 나지 못하고 있다가 그대로 지옥으로 옮겨 집니다.
3번 질문
오늘은 눈과 귀와 입을 통해야 의사 소통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도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손만 살며시 잡는 것으로 대단히 많은 말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대방도 그 잡는 손을 살짝 뿌리 치거나 함께 잡거나 아니면 그 손에 힘을 다 빼 버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세상에서는 5 가지 감각을 통해 대화를 합니다. 우리가 육체를 벗게 되면 그리고 재림 후 신령한 유게를 입게 되면 세상의 오감으로 대화하던 것은 없어 집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아브라함의 '대화'라는 것을 오늘처럼 듣고 생각하고 그리고 입으로 발성하여 상대방이 듣는 방식에만 고착을 하기 때문에 모든 옿가 다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대화가 가능하려면 공기가 있어야 합니다. 음부와 낙원 사이에도 말이 넘나 들 수 있도록 대기가 있었을까? 그 곳이 물질의 공간계와 대기 환경이 있을까? 부자나 아브라함은 이미 육체를 벗은 상태인데 그들이 '야! 부자야!' '예, 아버지!' '잘 안 들린다 목소리 좀 크게 해라'... 이런 식의 대화였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리스 신화 꼴이 날 것입니다.
오늘도 뭐 같은 남녀 둘이 나쁜 짓을 하려고 커피 집에 마주 앉아서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고도 마음껏 말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언어 장애를 가진 벙어리들이 손을 사용하지 않고도 아주 재미 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까? 하물며 그 나라겠으며, 하물며 낙원과 음부에는 몸을 벗어 놓고 간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생각을 두뇌의 언어 통제 부분이 발성 기관을 통해 대화하는 차원은 분명하게 아닙니다.
바로 이런 나라에서는 만물이 그 누구와도 대화한다는 것을 단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타락 전에 실제 뱀이 하와와 최고 수준의 심리전을 담고 있는 대화를 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대화, 아브라함과 천사와의 대화는 인간의 육체와 신성 하나님과의 대화였거나 또는 천사라는 영물과이 대화였습니다. '삯이 소리 지르며'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신 말씀들과 '만물의 피곤함을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피조물이 굴복하는 것은 자기의 뜻이 아니요' '피조물이 탄식하며'라고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그 나라에서는 의사소통이 됩니다.
>> 부족한 자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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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님 답변하신 내용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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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포 입은 부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알기 쉽게 표현하였으므로 마치 이 세상의 어느 수용소에 갇힌 사람과 그 수용소를 내려다 보는 사무실에서 그와 대화하듯 적었지만 이 말씀은 음부와 지옥에서 영원히 고생할 불택자와 낙원과 천국에서 영생할 택자 사이에도 일어 날 일이고, 동시에 천국 갈 택자가 자기가 실수하여 아깝게도 지옥에 버리고 갈 자기의 일부, 자기 생활과 요소와 실력과 기능과 삶의 일부가 지옥 불에서 고통할 때 천국에 있는 자기와 대화일 수도 있습니다."
: 부분을 읽으면서 저자신 아직 기능구원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이 부족해서(없어서) 나오는 의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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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라는 존재는 내속에 있는 대속의 은혜로 중생된 나의 영의 나, 나의 심신의 나, 옛사람의 나, 택자로서 지옥에 버려진 나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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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기능적으로 지옥에 버려진 부분은 부활시에는 어떻게 되는지요, 그때도 지옥의 나와 부활의 내가 대화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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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요소와 기능이라고 하면, 완전체가 아니라 일부분일 것 같은데, 대화라는 용어에서 혼란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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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홈의 주옥같은 자료들 그리고 주옥같은 목사님 답변글 열심히 읽고 깨달음의 은혜를 누리도록 마음다하고 목숨다하고 뜻 다하여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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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먼저 요약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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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1) 홍포입은 부자는 단정적으로 택자라고 말씀하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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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은 어느 부분이나 쉽게 단정하지 않습니다. 아주 명확하지 않을 때는 내적으로 단정하지만 외부 타인의 입장과 연구와 훗날을 봐서 연구 과제로 돌립니다. 음부에 있는 홍포 입은 부자는 택자가 지옥에 영원히 버릴 자기 생의 일부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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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2) 택자의 행위가 죽은 다음 구제받을 방법이 있다고 말씀하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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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의 행위는 그 현실에 한 번 지나 가면 다시는 되 돌릴 수 없습니다.
: : 사람 자체는 한 번 죽으면 다시는 구원이 없습니다.
: : 더듬을 것도 없고 재론도 필요 없습니다. 구원론의 근간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의 유일의 원인이며 기준이듯이, 사람에게는 한 번 죽으면 두 번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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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전쟁 때는 우리 편과 적만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 가지입니다만 지금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은 남한에 있는데 북의 세력이 있고, 북쪽에 있는데 남한 세력이 있습니다. 다음 성구들로 살펴 볼 때 우리 안에는 구원 받은 참 나와 버리고 가야 할 나 아닌 내가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내 속에 두 사람이 있음을 알 때 비로소 성경 전부는 한 말씀도 빠짐 없이 내 안에 있는 나를 고치는 말씀이 되고 내가 바로 고쳐 져야 비로소 남을 고치는 데 제대로 나갈 수 있습니다. 나를 두부를 자르듯 둘로 자르지 말고, 영은 전부고 몸과 마음의 자체도 전부가 참 나지만 몸과 마음 속에는 중생 후에도 죄를 짓는 성향이 있습니다. 여기 관련 된 것이 겉사람이며 옛사람이며 우리가 총력을 기울여 평생 싸울 우리의 대적입니다. 오늘 내 속에 나의 옛사람에게 나의 심신의 시간과 정력과 활동과 삶과 기능과 경력을 뺏기지 않으면 내가 천국 갈 때 그 모든 것을 가져 가고 그 것으로 천국의 내 영생의 차원이 높아 질 것이나 오늘 세상에서 내 속의 옛사람에게 그런 것들을 모두 내어 주면 홍포입은 부자의 탄식을 구경해야 할 것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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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3:9-10, 너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 : 롬7:22-23,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 :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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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다시 설명 드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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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 수술은 나 속을 칼로 찢고 들어 가서 나의 일부를 떼 내어 버림으로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택자 자체는 무조건 천국입니다. 그러나 그 택자가 가지고 있던 담배 피우던 습관, 주먹질할 때 사용 된 그 힘, 돈을 사랑했던 욕심, 자기 중심으로 신앙생활에 매진했던 경력처럼 이런 것들은 나 안에 나의 일부지만 이런 부분은 도려서 지옥에 던져 버려야 합니다. 이 던져 진 부분들이 오늘은 음부에서 재림 후에는 지옥에서 고통 중에 호소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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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님의 대속은 죄를 지은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책임, 죄로 죽은 죽음, 사탄의 지배권을 십자가에 대신 죽음으로 모두 제거를 해서 우리를 되 살려 놓은 것입니다. 절도죄로 감옥 속에 있는 아들을 위해 부모가 절도 피해금을 물어 주고, 그 죄인이 감옥에 들어 앉아 있어야 하는 형벌을 대신 다 받고, 검찰과 피해자에게 벌금과 합의금까지 다 지불을 하여 무사히 가정으로 돌아 온 경우를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아들을 감옥에 가두어 두는 원인을 다 제거한 것처럼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 갈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예수님이 대신 모두 해결했습니다. 우리의 지난 죄뿐 아니라 우리가 죽을 때까지 지을 죄까지, 우리 안에 곳곳에 숨어 있고 뻗쳐 있는 모든 죄에 속한 요소와 성향을 전부 다 수술로 걷어 내 버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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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렇게 내 속에서 거두어 들인 죄의 찌꺼기들은 어떻게 되는가? 당연히 사탄이 가야 할 지옥에 함께 던져 집니다. 그런데 이 찌꺼기들이 원래 찌꺼지였습니까? 나의 일부요 나의 요소요 나의 힘이요 내 속에서 나를 구성하고 수고하던 나의 생의 일부입니다. 이 것들이 잘려 나가고 이 것들이 영원히 지옥에서 불 타고 있을 때, 오늘처럼 이런 우리 생활에서는 앓던 이를 빼면 속이 시원할 뿐이지만 잘 관리해서 성한 이로 가질 수 있었던 치아를 사소한 실수로 빼버리고 나면 항상 속만 시원할까요 아니면 늘 그 부분 때문에 불편하고 아쉬움이 남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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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포 입은 부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알기 쉽게 표현하였으므로 마치 이 세상의 어느 수용소에 갇힌 사람과 그 수용소를 내려다 보는 사무실에서 그와 대화하듯 적었지만 이 말씀은 음부와 지옥에서 영원히 고생할 불택자와 낙원과 천국에서 영생할 택자 사이에도 일어 날 일이고, 동시에 천국 갈 택자가 자기가 실수하여 아깝게도 지옥에 버리고 갈 자기의 일부, 자기 생활과 요소와 실력과 기능과 삶의 일부가 지옥 불에서 고통할 때 천국에 있는 자기와 대화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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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복음 16장에서 부자는 몇 가지 이유로 살펴 볼 때 택자와 불택자의 대화가 아니라 택자의 버려 진 자기와 천국에 있는 택자 자신과의 대화를 아브라함과 나사로 그리고 부자로 표시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천주교의 연옥설은 아예 근방에도 올 수 없는 문제이고, 한 번 죽으면 그 것으로 우리의 구원 기회는 완전히 끝이 나는데 그 정도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실은 우리의 기능과 우리의 실력은 오늘도 매 현실마다 그 현실에서 하늘에 갈 때 가져 갈 것과 우리가 하늘에 갈 때 버리고 가야 할 자기가 결정 되는 것이니,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축소하여 기록해 주심과 한 성구는 한 가지만 설명할 때도 있으나 한 성구가 많은 차원을 동시에 설명할 때도 있음을 살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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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누가복음 15장 1절의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말씀도, 우리 교회를 다니다가 시험에 들어 출석하지 않는 교인 1 명 그 사람에 대한 말씀이며 또한 아직까지 아무 교회도 다니지 않고 있는 어느 불신자 1 명 그 사람에게도 해당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미 믿는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교회를 빠지거나 교회 출석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만 해당한다고 생각하면 그 말씀이 우리 자신에게 가르치는 말씀은 놓친다고 생각합니다.
: :
: : 우리는 교회를 잘 다니고 있지만 우리 속에 각자 말씀에 붙들리지 않는 단점, 성격, 습관 그런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것도 자기 속에 잃어 버린 양입니다. 베드로 자체는 예수님의 사도였지만 그 사람 속에는 걸핏하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 가는 옛사람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 배반의 요소, 이해득실을 따지는 사리사욕, 인내하지 못하는 불신적인 요소는 베드로 자체가 천국 갈 때 그런 요소들도 다 안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잘못 산 부분들은 제거가 되고 지옥에 던져 집니다. 이런 요소들이 음부에서 고통을 받고 그다음 낙원에 있는 베드로에게로 돌아 갈 수 있는가? 이 곳과 그 곳 사이에는 큰 구렁이 끼어 있어 건너 갈 수 없다고 단정이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한 사람이 지옥을 가든, 한 사람의 잘못 산 부분이 지옥에 가든 사람은 한 번 죽으면 그 것으로 두 번 기회는 없습니다. 구원은 무조건 단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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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잃은 양의 비유에서는 아직 믿지 않는 사람도 해당하고 또 믿는 우리 속에 말씀을 떠난 요소도 해당이 됩니다만, 홍포 입은 부자의 경우는 몇 가지 면에서 볼 때 택자의 잘못 된 일부가 던져 진 경우로 생각합니다. 워낙 교리적으로 미개척 분야여서 이 노선의 설명을 읽어 볼 것도 없이 칼부터 들고 설칠 이들이 많아서 양면을 다 설명하며 기초 원리부터 설명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더듬을 것도 없이 택자 우리 속에 있는 요소 중에 지옥에 버리고 갈 부분을 두고 말한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 :
: : 이 본문에서 지옥을 가고 천국을 가게 된 근거와 배경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대속이 아니고 전적 은혜 유무로 결정 된 것이 아니고 나사로의 행동과 부자의 행동의 결과에 따라 결정이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이 천국과 지옥을 가는 것은 그 사람이 평생 무슨 짓을 했던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천국을 가는 택자인 경우에 한해서만 그 사람의 행동에 따라 천국에 갈 때 많이 가져 갈 부분이 있고 적게 가져 갈 부분이 있으니 이 차이는 우리 각자의 세상 생활의 결과에 따른 보응과 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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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궁금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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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말씀에서
: : : 백영희 목사님은 홍포입은 부자를 택자라고 하셨습니다.
: : : (첫번째 궁금한 것이, 택자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단정적으로 택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 : : 택자인 홍포입은 부자가 음부(연옥?)에 간다면
: : : 거기서 회개하면 부활의 날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 : : 그러니까 연옥 개념으로 백영희 목사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 : : (물론 천주교에서 이미 말하고 있는 연옥이라는 표현 때문에 좀 그런데요.......)
: : :
: : : 우리 목사님이 택자도 음부에 간다고 너무 강하게 말씀하시니까
: : : 복음이 설 자리가 잃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 : : 그런데 천주교에서 말하는 연옥은 성경적이지 않다고 말씀하시면서 부활의 날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을 입을 텐데 그 때까지 홍포입은 부자의 행위가 음부에서 고통을 당하면서 회개하다고 부활의 날 천국에 간다고 지나가듯 설교를 하시네요.
: : : 목사님이 너무 강하게 택자도 음부에 간다고만 말씀하셨는데
: : : 이런 말씀만 듣다가 연옥 비슷한 것이 있다고 하니 차라리 복음으로 들리는 데요?
: : :
: : : 제 생각에 우리 목사님이 복음(기본구원)을 제대로 증거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 : :
: : : 궁금한 것을 2가지 요약한다면
: : : 1)홍포입은 부자는 단정적으로 택자라고 말씀하셨는지요
: : : 2)택자의 행위가 죽은 다음 구제받을 방법이 있다고 말씀하셨는지요
: : :
연옥?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말씀에서
백영희 목사님은 홍포입은 부자를 택자라고 하셨습니다.
(첫번째 궁금한 것이, 택자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단정적으로 택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택자인 홍포입은 부자가 음부(연옥?)에 간다면
거기서 회개하면 부활의 날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연옥 개념으로 백영희 목사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물론 천주교에서 이미 말하고 있는 연옥이라는 표현 때문에 좀 그런데요.......)
우리 목사님이 택자도 음부에 간다고 너무 강하게 말씀하시니까
복음이 설 자리가 잃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주교에서 말하는 연옥은 성경적이지 않다고 말씀하시면서 부활의 날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을 입을 텐데 그 때까지 홍포입은 부자의 행위가 음부에서 고통을 당하면서 회개하다고 부활의 날 천국에 간다고 지나가듯 설교를 하시네요.
목사님이 너무 강하게 택자도 음부에 간다고만 말씀하셨는데
이런 말씀만 듣다가 연옥 비슷한 것이 있다고 하니 차라리 복음으로 들리는 데요?
제 생각에 우리 목사님이 복음(기본구원)을 제대로 증거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궁금한 것을 2가지 요약한다면
1)홍포입은 부자는 단정적으로 택자라고 말씀하셨는지요
2)택자의 행위가 죽은 다음 구제받을 방법이 있다고 말씀하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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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말씀에서
백영희 목사님은 홍포입은 부자를 택자라고 하셨습니다.
(첫번째 궁금한 것이, 택자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단정적으로 택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택자인 홍포입은 부자가 음부(연옥?)에 간다면
거기서 회개하면 부활의 날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연옥 개념으로 백영희 목사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물론 천주교에서 이미 말하고 있는 연옥이라는 표현 때문에 좀 그런데요.......)
우리 목사님이 택자도 음부에 간다고 너무 강하게 말씀하시니까
복음이 설 자리가 잃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주교에서 말하는 연옥은 성경적이지 않다고 말씀하시면서 부활의 날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을 입을 텐데 그 때까지 홍포입은 부자의 행위가 음부에서 고통을 당하면서 회개하다고 부활의 날 천국에 간다고 지나가듯 설교를 하시네요.
목사님이 너무 강하게 택자도 음부에 간다고만 말씀하셨는데
이런 말씀만 듣다가 연옥 비슷한 것이 있다고 하니 차라리 복음으로 들리는 데요?
제 생각에 우리 목사님이 복음(기본구원)을 제대로 증거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궁금한 것을 2가지 요약한다면
1)홍포입은 부자는 단정적으로 택자라고 말씀하셨는지요
2)택자의 행위가 죽은 다음 구제받을 방법이 있다고 말씀하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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