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 - 지향하는 목표치와 현실적 차이 (답변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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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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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1 00:00
1. 지방교회 몇 가지 주요 주장
- 한 지방 한 교회
지방교회의 이 주장은 개혁교회의 '단일교회론'과 이론과 목표치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개혁교회도 그런 교리는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으나 현실적으로 어떤 교회든지 그 이상을 실현한 곳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주 가끔 잠깐씩은 그런 곳들이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애양원교회는 상당히 근접했었습니다. 그런데 애양원도 조금 깊게 연구해 보니까 내면에서는 표시 없는 불만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것이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의 교회 모습입니다.
지방교회의 한 지방 한 교회 원칙은 지방교회조차도 지키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그 분들의 초기에는 잠깐 가능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나 실제 양심껏 깊이 들어 가 보면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12 제자를 데리고 목회한 교회도 단일 교회를 이루지 못하셨습니다. 인간은 혼자 교회를 세워도 속에서는 옛사람과 새사람으로 나뉘어 이랬다저랬다 변덕을 하며 자충우돌을 합니다. 두 사람이 모인 교회? 일시면 몰라도 지속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서울지방에만 해도 6개 큰 구역으로 나누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6 곳 중에서도 모임이 좀 커지면 다시 세분화하여 따로 모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지방교회의 한 지방 한 교회론은 그 분들의 희망이며 노력일 뿐입니다. 그 분들 외의 교회들을 교파 분열과 교회 분열 등으로 탈선했고 그 분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이미 지방교회에 계신 많은 분들이 이탈하고 있는데 이 분들의 이탈이 일시를 정해 놓고 갑자기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점진적으로 내부 균열이 있었고 어느 시점에 겉으로 드러 난 것입니다. 한 지역에 하나만 모인 그 교회 내에서도 두 교회로 나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탈한 분들은 그 이탈한 행위가 옳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지역에 지방교회 하나가 있다가 이탈측과 잔류측으로 나뉜 것입니다. 이미 그 분들 내부에서조차 단일 교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단을 만들지 않는다! 바로 그 말이 그런 식의 교단이 하나 생겨 진 것입니다. 이런 표현은 하나의 말 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분들께 달리 표현하여 좋게 순화할 수 있는 표현이 없어 할 수 없이 이렇게 말씀 드립니다. 국가로 말하면 주권 국민 영토가 있으면 국가로 본다는 상식이 있습니다. 국토를 가지고 국민들이 자신들의 주권을 엄연히 행사하고 있으면서 우리는 왕정국도 아니며 공화국도 아니며 시민국도 아니다, 우리는 그 어떤 나라도 만들거나 유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제1, 제2, 제3의 국가 형태는 부인하되 제4의 국가형태를 창설학 있는 것입니다.
- 지방교회의 신언
지난 28일 주일날 '신언'이라는 표현을 처음 들었습니다. 돌아 가면서 말씀을 전한다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들었습니다만 3 분씩 말씀을 전한다는데, 이런 식은 지방교회만의 창조적 첫 시도는 아니고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다 보면 이런 일은 신령하게 진지하게 정말 치열하게 믿으려는 곳에서는 그런 단계를 거쳐 가거나 그런 상황을 한 번씩 가지게 됩니다. 답변자도 교인 신앙의 훈련을 위해, 그런 방법은 아주 가끔 한 번씩 사용합니다.
아마 대학생 모임 등의 선교 단체에서는 흔한 것으로 예전부터 들어 왔습니다. 직접 자기의 체험적 신앙, 자기를 인도하시는 주님께 붙들려 주변 형제들에게 전하는 것, 그 것의 은혜스럽고 그 것의 신앙에 유익 되는 점은 지방교회와 전혀 상관 없는 곳곳에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다만 지방교회는 그 것을 제도화한 듯합니다.
제도화하면 그 어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초기에는 장점이 탁월하게 많고, 세월이 지나 가면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 나게 됩니다. 어느 정도의 문제점이 지방교회 내에 있을까? 지방교회 제일 핵심들일수록 잘 파악하고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늘 노력하실 분들입니다.
다른 곳에서 사용하지 않는 방법은 항상 처음 시행할 때 신선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게 됩니다. 그 것은 대단히 유익하고 좋은 방법이나 방법론에 있어서 하나의 방법은 그 다음에 또 다른 방법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갈수록 효력을 잃게 됩니다. 이 것을 기술 신앙이라 합니다. 신앙은 신앙일 때 가장 원만하고 좋습니다. 성경은 돌아 가며 3 분씩 자기 경험을 신언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전체를 향해 꾸준히 설명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는 다 옳고 다른 방법은 다 틀렸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방교회를 다녀도 평생 지방교회가 가르치는 것은 모르고 다니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 분들 때문에 지방교회가 너무 오해 되고 있는 듯합니다.
- 그 영에 대한 것
무술을 배우면 처음에는 수 많은 기초 동작을 배웁니다. 그런데 경지를 넘어 서면 그 모든 기초 동작들이 자기의 신경과 근육과 온 몸에 녹아 져 들어 와서 아무 기초 동작도 발견 되지 않는데도 그 기초 동작이 추구한 목표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사활의 대속에 감격하여 녹아 지고 죽어 지고 몸부림을 치고 그 세계 속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세계를 통해 무한에 이미 들어 간 사람, 그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굳이 주님이 죽었다 살았다 그런 말을 담을 것도 없이 이제는 사활 대속의 주님과 하나 되어 그 위의 세계에서 누리고 살 수 있습니다. 아마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와 같은 분들은 그렇게 살았을지 몰라도 그 밑에 다른 분들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고 그냥 먼 나라 꿈 이야기를 들을 때 앙모하는 마음으로 은혜를 받은 정도가 아닐까! 한국의 선수 하나가 이룰 수 없는 꿈의 목표를 도달할 때 온 국민이 함께 전율을 느끼며 자기가 이제는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된 듯이 느낍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대화할 때 신 나게 설명을 합니다. 마치 자기가 이룬 것처럼.
워치만 니는 그럴 것 같지 않고, 위트니스 리의 설교는 들어 봤는데 그 분 자신도 앙모하는 정도이지 실제 그렇게 되었다고 느끼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런 정도의 세계를 가진 분은 아니었다고 느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에 감사해서 전율하고 주님의 부활에 감사하고 그 부활에 연합한 자가 되어 살려고 늘 긴장하고 최선을 다하는 분으로 봤습니다.
말로만 말한다면 성경을 아는 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자다! 이렇게 말한다면 모두가 난리가 나고 또 이단 소리가 나오겠지만 성경 안에 역사하는 영감 역사를 모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구약성도밖에 되지 않으니 당연한 가르침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성경 없는 영감이 있는가? 성경이 약화 되거나 성경이 사라 진 영감은 주관입니다. 사활의 대속, 그 대속이 생명을 주시는 영을 누리게 합니다. 그 대속을 살필수록 새길수록 그 대속을 붙들고 몸부림 칠 때 바로 그 정도가 영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것이 반복이 되다 보면 사활과 대속은 입에 담지도 않고 사는데 이미 그는 세상과 사망을 초월하고 세상에서 천국생활을 미리 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신앙이 되려면 여러 주변에 따르는 증거들이 잇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세계를 가졌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세계의 근방에도 갈 수 없는 분들이 그런 세계를 가졌거나 가진 것처럼 행동에 나서게 되면 어느 지방교인의 비판처럼 모두가 죄의식도 없고 회개도 없고 죄를 초월한 듯한데 오히려 죄 속에 깊이 묻혀 있더라는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지방교회는 잘 모르겠으나 비슷하게 주장하는 분들에게서는 이런 현상이 아주 두드러지게 발견 됩니다.
어쨌든 교훈과 그 지향만은 더 깊게 더 높게 나가려고 하는 이상 그 자체를 비판할 수 없습니다.
사활, 그 대속을 너무 새겨 이제는 자기의 전부가 되어 버려 구별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면 그 영을 알고 누리는 단계가 올 것입니다. 그런 세계를 증거하는 것은 가능하나 그렇게 된 여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유심히 시간을 갖고 관찰하면 이상향을 하나 던져 본 것인지 실제 누리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신앙은 겉보기에 일상 생활을 평범하게 하는 듯해도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역사, 인간이 노력해서 이루고 말고 하는 차원을 넘어 서는 역사가 있습니다. 이런 증거를 가지고 좀 살펴 보면 판단은 어렵지 않을 듯합니다. 답변자가 조금씩 알아 가는 기회를 갖고 있는데 아직 그런 점을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좋은 면들이 나오고 있으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하늘의 증거, 인간과 세상을 초월한 역사. 꾸준히 살피다 보면 나올 터인데 아직 잘 보지 못했습니다.
>> 형제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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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목사님의 설교록을 읽어보면 대부분의 말씀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과 진리의
: 말씀과 성령님의 영감을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양식과 힘으로 삼아 택자가 하나님과 연결되고 하나되어 언제나 하나님께 완전히 피동되어 모든 일과 환경에서 하나님께서 감사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그 사람안에서 이루어져야(건설구원) 한다는 하는 말씀으로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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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성경을 읽으면서 백목사님의 가름침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참된 구원을 길을 택자에게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되어 진정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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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교회의 위트니스리의 가르침은 핵심 중 첫째는 지방입장(한 지방에 하나의 교회만 존재함)입니다. 이로 인해 교파의 교회들을 여로보함의 죄들에 가담하는 것으로 가르치며 육신에 속한 분열이라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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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는 집회 방식인데. 한 사람이 설교하는 방식에서 여러 사람이 말하는 방식
: (위트니스리의 교제를 모든 지방교회들에서 사용하여 여러 사람이 말 함, 이것을 지방교회은 신언이라 함) 입니다. 이런 신언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이 건축되어 진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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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는 그 영에 대한 것입니다. 그 영은 완결되신 영이시며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영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방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심과 부활하심을 이야기 하면 낮은 복음으로 간주됩니다. 그 영을 모르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지방교회안에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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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트니스 리는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것은 생명주는 영이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며 지금은 그 영의 시대이기 때문에 그 영을 누리기만 하면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고전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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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화셔서 생명주는 영이 되셨기에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면 공기와 같은 생명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얻게 되기 때문에 항상 주님의 이름을 불러 그 영을 누려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영 안에는 아버지와 주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영을 누리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의 경륜(뜻) 이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
: 그래서 현재의 지방교회의 가름침은 대부분이 그 영에 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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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제가 성경을 읽으면서 항상 느끼는 부분은 그 영은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며
: 택자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심과 부활을 증거하고 계시며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며 고난 가운데서 택자들을 위로하시며 택자들을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고 굳건히 세워주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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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부분에서 목사님의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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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 지방교회의 절대적인 가름침인 현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 대속을 증거하고 양식 삼는 것은 복음을 잘 깨닫지 못한 것이며 현재는 오직 완결되신 그 영을 알고 누려야 한다는 위트니스리의 핵심적인 가름침을 어떻게 생각하시는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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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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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지방 한 교회
지방교회의 이 주장은 개혁교회의 '단일교회론'과 이론과 목표치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개혁교회도 그런 교리는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으나 현실적으로 어떤 교회든지 그 이상을 실현한 곳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주 가끔 잠깐씩은 그런 곳들이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애양원교회는 상당히 근접했었습니다. 그런데 애양원도 조금 깊게 연구해 보니까 내면에서는 표시 없는 불만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것이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의 교회 모습입니다.
지방교회의 한 지방 한 교회 원칙은 지방교회조차도 지키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그 분들의 초기에는 잠깐 가능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나 실제 양심껏 깊이 들어 가 보면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12 제자를 데리고 목회한 교회도 단일 교회를 이루지 못하셨습니다. 인간은 혼자 교회를 세워도 속에서는 옛사람과 새사람으로 나뉘어 이랬다저랬다 변덕을 하며 자충우돌을 합니다. 두 사람이 모인 교회? 일시면 몰라도 지속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서울지방에만 해도 6개 큰 구역으로 나누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6 곳 중에서도 모임이 좀 커지면 다시 세분화하여 따로 모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지방교회의 한 지방 한 교회론은 그 분들의 희망이며 노력일 뿐입니다. 그 분들 외의 교회들을 교파 분열과 교회 분열 등으로 탈선했고 그 분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이미 지방교회에 계신 많은 분들이 이탈하고 있는데 이 분들의 이탈이 일시를 정해 놓고 갑자기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점진적으로 내부 균열이 있었고 어느 시점에 겉으로 드러 난 것입니다. 한 지역에 하나만 모인 그 교회 내에서도 두 교회로 나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탈한 분들은 그 이탈한 행위가 옳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지역에 지방교회 하나가 있다가 이탈측과 잔류측으로 나뉜 것입니다. 이미 그 분들 내부에서조차 단일 교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단을 만들지 않는다! 바로 그 말이 그런 식의 교단이 하나 생겨 진 것입니다. 이런 표현은 하나의 말 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분들께 달리 표현하여 좋게 순화할 수 있는 표현이 없어 할 수 없이 이렇게 말씀 드립니다. 국가로 말하면 주권 국민 영토가 있으면 국가로 본다는 상식이 있습니다. 국토를 가지고 국민들이 자신들의 주권을 엄연히 행사하고 있으면서 우리는 왕정국도 아니며 공화국도 아니며 시민국도 아니다, 우리는 그 어떤 나라도 만들거나 유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제1, 제2, 제3의 국가 형태는 부인하되 제4의 국가형태를 창설학 있는 것입니다.
- 지방교회의 신언
지난 28일 주일날 '신언'이라는 표현을 처음 들었습니다. 돌아 가면서 말씀을 전한다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들었습니다만 3 분씩 말씀을 전한다는데, 이런 식은 지방교회만의 창조적 첫 시도는 아니고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다 보면 이런 일은 신령하게 진지하게 정말 치열하게 믿으려는 곳에서는 그런 단계를 거쳐 가거나 그런 상황을 한 번씩 가지게 됩니다. 답변자도 교인 신앙의 훈련을 위해, 그런 방법은 아주 가끔 한 번씩 사용합니다.
아마 대학생 모임 등의 선교 단체에서는 흔한 것으로 예전부터 들어 왔습니다. 직접 자기의 체험적 신앙, 자기를 인도하시는 주님께 붙들려 주변 형제들에게 전하는 것, 그 것의 은혜스럽고 그 것의 신앙에 유익 되는 점은 지방교회와 전혀 상관 없는 곳곳에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다만 지방교회는 그 것을 제도화한 듯합니다.
제도화하면 그 어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초기에는 장점이 탁월하게 많고, 세월이 지나 가면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 나게 됩니다. 어느 정도의 문제점이 지방교회 내에 있을까? 지방교회 제일 핵심들일수록 잘 파악하고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늘 노력하실 분들입니다.
다른 곳에서 사용하지 않는 방법은 항상 처음 시행할 때 신선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게 됩니다. 그 것은 대단히 유익하고 좋은 방법이나 방법론에 있어서 하나의 방법은 그 다음에 또 다른 방법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갈수록 효력을 잃게 됩니다. 이 것을 기술 신앙이라 합니다. 신앙은 신앙일 때 가장 원만하고 좋습니다. 성경은 돌아 가며 3 분씩 자기 경험을 신언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전체를 향해 꾸준히 설명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는 다 옳고 다른 방법은 다 틀렸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방교회를 다녀도 평생 지방교회가 가르치는 것은 모르고 다니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 분들 때문에 지방교회가 너무 오해 되고 있는 듯합니다.
- 그 영에 대한 것
무술을 배우면 처음에는 수 많은 기초 동작을 배웁니다. 그런데 경지를 넘어 서면 그 모든 기초 동작들이 자기의 신경과 근육과 온 몸에 녹아 져 들어 와서 아무 기초 동작도 발견 되지 않는데도 그 기초 동작이 추구한 목표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사활의 대속에 감격하여 녹아 지고 죽어 지고 몸부림을 치고 그 세계 속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세계를 통해 무한에 이미 들어 간 사람, 그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굳이 주님이 죽었다 살았다 그런 말을 담을 것도 없이 이제는 사활 대속의 주님과 하나 되어 그 위의 세계에서 누리고 살 수 있습니다. 아마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와 같은 분들은 그렇게 살았을지 몰라도 그 밑에 다른 분들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고 그냥 먼 나라 꿈 이야기를 들을 때 앙모하는 마음으로 은혜를 받은 정도가 아닐까! 한국의 선수 하나가 이룰 수 없는 꿈의 목표를 도달할 때 온 국민이 함께 전율을 느끼며 자기가 이제는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된 듯이 느낍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대화할 때 신 나게 설명을 합니다. 마치 자기가 이룬 것처럼.
워치만 니는 그럴 것 같지 않고, 위트니스 리의 설교는 들어 봤는데 그 분 자신도 앙모하는 정도이지 실제 그렇게 되었다고 느끼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런 정도의 세계를 가진 분은 아니었다고 느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에 감사해서 전율하고 주님의 부활에 감사하고 그 부활에 연합한 자가 되어 살려고 늘 긴장하고 최선을 다하는 분으로 봤습니다.
말로만 말한다면 성경을 아는 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자다! 이렇게 말한다면 모두가 난리가 나고 또 이단 소리가 나오겠지만 성경 안에 역사하는 영감 역사를 모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구약성도밖에 되지 않으니 당연한 가르침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성경 없는 영감이 있는가? 성경이 약화 되거나 성경이 사라 진 영감은 주관입니다. 사활의 대속, 그 대속이 생명을 주시는 영을 누리게 합니다. 그 대속을 살필수록 새길수록 그 대속을 붙들고 몸부림 칠 때 바로 그 정도가 영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것이 반복이 되다 보면 사활과 대속은 입에 담지도 않고 사는데 이미 그는 세상과 사망을 초월하고 세상에서 천국생활을 미리 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신앙이 되려면 여러 주변에 따르는 증거들이 잇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세계를 가졌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세계의 근방에도 갈 수 없는 분들이 그런 세계를 가졌거나 가진 것처럼 행동에 나서게 되면 어느 지방교인의 비판처럼 모두가 죄의식도 없고 회개도 없고 죄를 초월한 듯한데 오히려 죄 속에 깊이 묻혀 있더라는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지방교회는 잘 모르겠으나 비슷하게 주장하는 분들에게서는 이런 현상이 아주 두드러지게 발견 됩니다.
어쨌든 교훈과 그 지향만은 더 깊게 더 높게 나가려고 하는 이상 그 자체를 비판할 수 없습니다.
사활, 그 대속을 너무 새겨 이제는 자기의 전부가 되어 버려 구별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면 그 영을 알고 누리는 단계가 올 것입니다. 그런 세계를 증거하는 것은 가능하나 그렇게 된 여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유심히 시간을 갖고 관찰하면 이상향을 하나 던져 본 것인지 실제 누리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신앙은 겉보기에 일상 생활을 평범하게 하는 듯해도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역사, 인간이 노력해서 이루고 말고 하는 차원을 넘어 서는 역사가 있습니다. 이런 증거를 가지고 좀 살펴 보면 판단은 어렵지 않을 듯합니다. 답변자가 조금씩 알아 가는 기회를 갖고 있는데 아직 그런 점을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좋은 면들이 나오고 있으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하늘의 증거, 인간과 세상을 초월한 역사. 꾸준히 살피다 보면 나올 터인데 아직 잘 보지 못했습니다.
>> 형제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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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목사님의 설교록을 읽어보면 대부분의 말씀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과 진리의
: 말씀과 성령님의 영감을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양식과 힘으로 삼아 택자가 하나님과 연결되고 하나되어 언제나 하나님께 완전히 피동되어 모든 일과 환경에서 하나님께서 감사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그 사람안에서 이루어져야(건설구원) 한다는 하는 말씀으로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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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성경을 읽으면서 백목사님의 가름침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참된 구원을 길을 택자에게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되어 진정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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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교회의 위트니스리의 가르침은 핵심 중 첫째는 지방입장(한 지방에 하나의 교회만 존재함)입니다. 이로 인해 교파의 교회들을 여로보함의 죄들에 가담하는 것으로 가르치며 육신에 속한 분열이라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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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는 집회 방식인데. 한 사람이 설교하는 방식에서 여러 사람이 말하는 방식
: (위트니스리의 교제를 모든 지방교회들에서 사용하여 여러 사람이 말 함, 이것을 지방교회은 신언이라 함) 입니다. 이런 신언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이 건축되어 진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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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는 그 영에 대한 것입니다. 그 영은 완결되신 영이시며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영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방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심과 부활하심을 이야기 하면 낮은 복음으로 간주됩니다. 그 영을 모르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지방교회안에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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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트니스 리는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것은 생명주는 영이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며 지금은 그 영의 시대이기 때문에 그 영을 누리기만 하면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고전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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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화셔서 생명주는 영이 되셨기에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면 공기와 같은 생명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얻게 되기 때문에 항상 주님의 이름을 불러 그 영을 누려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영 안에는 아버지와 주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영을 누리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의 경륜(뜻) 이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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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현재의 지방교회의 가름침은 대부분이 그 영에 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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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제가 성경을 읽으면서 항상 느끼는 부분은 그 영은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며
: 택자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심과 부활을 증거하고 계시며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며 고난 가운데서 택자들을 위로하시며 택자들을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고 굳건히 세워주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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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부분에서 목사님의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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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 지방교회의 절대적인 가름침인 현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 대속을 증거하고 양식 삼는 것은 복음을 잘 깨닫지 못한 것이며 현재는 오직 완결되신 그 영을 알고 누려야 한다는 위트니스리의 핵심적인 가름침을 어떻게 생각하시는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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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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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사이트를 올린 이유가 무엇인지요?
출처: '일반자료/3135번, 3138번'
지방교회 사이트를 올린 이유가 무엇인지요?
지방교회 싸이트에서
'삼일하나님' '침례'에서만 보아도 이단설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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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일반자료/3135번, 3138번'
지방교회 사이트를 올린 이유가 무엇인지요?
지방교회 싸이트에서
'삼일하나님' '침례'에서만 보아도 이단설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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