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진행이 어려운 경우의 대처 및 가능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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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목회자(설교자)의 예배진행시 진행이 어려운 여러 경우에 대한 대처 및 허용 가능 여부
- 예배 진행을 위해 강단에 서는 분은 자타로 인해 예배 진행이 어렵거나 일시 중단되는 일들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여러 경우들을 생각할 때 공회는 목회자 또는 설교자들의 대처는 어떻게 해야 되며 어느 범위는 할 수 있고 어느 경우는 금해야 되는지 안내 부탁드립니다.
1. 개인으로 인한
- 설교중 개인의 건강으로 인해 예배 진행이 어려워 중단이나 강단을 이탈할 경우(쓰러지거나, 목소리가 잠겨 안나오는 등.. )
- 개인이 조절하지 못하는 긴급한 위생문제가 있는 경우
2. 타인으로 인한
- 설교 중 예배 방해로 인한 경우(고성, 집회, 훼방)
- 강단에 올라가 설교자를 치는 경우(폭행, 끌어내리는 등)
- 예배중 교인에게 응급 문제가 생길 경우(교인들이 자체 해결이 불가능 할 경우, 건강 위독, 위급사항 등)
3. 환경으로 인한
- 자연재해로 인해 진행이 어려운 경우(태풍, 홍수, 지진 등)
- 국가나 정부, 지자체 등 사회가 예배 중 진행을 막을 경우
- 전쟁, 화재, 응급사항의 경우
4. 기타
- 일반적으로 예배는 시작하면 끝나기까지 중단이 없이 계속되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앞에 여러 경우들을 제외하고 공회에 예배가 중단되거나 일시중단하여 재개하는 경우나 어떤 경우들은 가능하며 어떤 경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행을 하는 등 여러 사례들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백목사님이 집회때 설교 시작하나 설교가 안나와 중단하여 기도부탁하고 기도후 설교 진행되는 경우 등..)
성경은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실제로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도 사람이기 때문에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공회 안에서도 설교하다가 쓰러진 경우가 있습니다. 설교 시간에 말씀을 강하게 외치시다가 뇌출혈로 쓰러져서 2년 정도 고생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대구에서 목회하시던 분입니다.
어떤 분은 교인의 예배 방해를 두고 보지 못해서 설교하다가 강단에서 내려와 교인과 붙어 싸운 일도 있다고 합니다. 젊은 목회자였을 때 일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 사람이고, 교역자도 사람이니 누구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하셨습니다.
언제 어떻게 어떤 상황이 생길지 알 수 없는 일을 가장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은, 미리 준비, 예비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이런 일은 허다하게 발생합니다. 갑자기 심정지 상태가 된다든지, 지진이나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런 일들은 예측이 거의 어렵고 갑작스럽게 발생합니다. 이런 때를 대비해서 미리 준비하는 것이 체계적인 조직과 교육, 그리고 연습입니다. 심폐소생술, 지진이나 화재를 대비하는 민방위, 소방 교육과 훈련 같은 것이 그런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것도 강단에서도 이런 위급한 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예비가 중요합니다.
질문하신 네 가지 경우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개인으로 인한
설교 중에 설교자 개인의 건강 문제로 갑자기 예배 진행이 불가능하게 될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젊은 사람도 예외가 될 수는 없으나 일반적으로는 어느 정도 연세가 좀 든 분들에게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평소에 제2, 제3 정도까지 설교 예비자를 미리 정해 두는 것입니다. 교인 중에 설교를 할 수 있을 만한 분을 미리 선정해서 평소에 설교를 한 번씩 시키고,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그런 분이 바로 대처할 수 있게 예비를 해 두는 것입니다. 심폐소생이나 소방훈련처럼 설교 강단을 두고 연습을 할 수는 없지만, 평소에 설교를 한 번씩 시키면 본인의 신앙에도 유익이 많고, 위급한 상황에 그런 사람이 강단에 서게 되면 전체 교인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어렵지 않게 정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지혜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황 판단이 중요하고 눈치도 빨라야 합니다. 교인들이 다 그럴 수는 없지만, 신앙이 좀 앞선 분들은 이런 때를 대비해서, 한편으로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도록 집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분위기를 늘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일을 잘 살펴서 대처하라고 세우는 직분이 집사나 장로, 주교나 중간반 부장 같은 역할입니다. 설교자의 위급한 응급 상황은 예비 설교자를 한두 사람 정해 두면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2. 타인으로 인한 경우
1) 강단의 위해, 예배 방해의 경우
이런 경우는 주로 여러 심각한 원인으로 감정이 격해질 때 발생합니다. 아무리 감정이 격해져도 강단만큼은 극히 조심해야 하는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심각한 일을 저지르는 경우를 세상에서는 흔하게, 교회 안에서도 가끔 보게 됩니다. 특히 교회 강단을 향해 감정을 함부로 폭발시키면 참혹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실제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끝이 아주 비참하게 되는 경우를 답변자도 몇 사람 알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런 정도의 일이 발생한다면 결과는 거의 대개는 교회 분리로 이어집니다. 가장 좋기는 이렇게까지 되기 전에 서로 합의해서 나누어지는 것이 가장 좋은데, 대개 보면 겉은 진리를 말하고 노선을 말하면서 속은 교회 재산이나 감정 문제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최대한 서로 협의하고 합의해서 조용히 결말을 내서 예배 방해까지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서로의 신앙에도 손해가 적습니다.
합의가 되기 전, 강단을 맡은 쪽에서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갑작스럽게 상대 쪽에서 이런 일을 벌이면 대처가 참 어렵습니다. 한 번은 대책 없이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후는 철저히 대비를 해야 합니다. 예배를 방해하는 목적으로 예배당에 들어오는 사람은 들어오지 못하게 아예 예배당 입구에서부터 최대한 막아서 예배 방해 때문에 어린 신앙의 사람들이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상대 쪽의 수가 많아서 막지 못하면, 별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최대한 노력해서 합의를 하고, 하는 데까지 해도 안 되면 조용히 따로 나와서 개척을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선은 빼앗기는 것 같은데, 정말 길이 옳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결과가 환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2) 교인의 위급한 상황
예배 도중에 교인 중 누군가 위급한 상황이 생길 경우는, 안내가 119에 신고하고, 주변 분들이 최대한 조용히, 환자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밖으로 모시고 나가서 할 수 있는 조처가 있으면 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면 119를 기다려야 하고, 늦으면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모셔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도 꼭 필요한 인원 외에 다른 분들은 최대한 예배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설교자가 설교를 중단하지 않고 주변에서 최대한 표시를 적게 내고 조용하게 정리하는 것이 가장 좋고, 상황이 심각해서 설교자가 안내를 해야 할 상황이면 간단하게 안내한 후 다시 설교를 이어가면 됩니다. 이럴 때 주변 사람이 너도나도 나서면 예배가 흐트러지기 쉽고, 설교자가 당황해도 그리되기 쉽습니다. 최대한 침착하게 차분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3. 환경으로 인한
1) 전쟁, 전염병, 정부의 탄압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중요한 일이므로 어떤 경우도 중단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자연재해나 국가나 정부가 막고, 전쟁, 전염병 등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예배는 드려야 합니다. 다만, 예배드리는 도중에 이런 일들이 발생하면 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대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의 형태는 천태만상이기 때문에 일일이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상황 판단’이 중요하고 그에 따른 대처가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로 정부에서 강제로 예배를 막았습니다. 코로나 전염병을 핑계로 내세웠지만 속은 정치적인 목적의 교회 탄압이었습니다. 그런 시류를 타고 대부분의 교계는 앞을 다투어 ‘이런 시기에는 예배로 모이지 않는 것이 신앙’이라고 목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다 끝나고 난 지금 그들은 얼굴을 제대로 들고 다니기 어려울 것이고 그래야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는 것인데,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큰소리치고 교권을 잡는 것이 교회의 역사입니다.
코로나 3년 동안 공회는 예배를 한 번도 빼지 않았습니다. 교인은 각자의 신앙에 따라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을지라도 교역자는 그래서는 안 되기 때문에, 몇 사람이라도 예배를 드렸고, 목사 혼자라도 예배드릴 자세를 견지했습니다.
나라에서 무력으로 막으면 막힐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당 문을 막으면 예배당 입구에서 예배드리면 되고, 입구를 막으면 주차장에서 예배드리면 되고, 주차장도 막으면 교회 주변 가까운 곳 예배드릴 수 있는 곳을 찾아 예배드리면 되고, 그것까지 다 막으면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예배드리되, 집에서도 특별히 장소를 찾아서 최대한 경건하게 예배다운 예배를 드리도록 노력하는 것이 예배에 대한 바른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설교록에는 6.25 전쟁 당시에도 한 번도 예배를 빠지지 않은 백 목사님의 말씀이 여러 번 나옵니다. 위천교회 계실 때는 전쟁 중에도 3개월간 매일 하루 세 번씩 종 치고 예배를 드렸고, 예배 도중에 인민군들이 총을 들고 들어와서 소리를 지르는데, 강단에서 ‘조용히 하고 거기 앉아서 예배드리라’고 호통을 치니까 그들이 ‘우리도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예배드리러 왔습니다.’ 하고 함께 예배를 드리고,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다 마친 후에 인민군에게 끌려가시다가 돌려보내서 왔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일반 목회자가 다 이렇게 해야 된다고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적어도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하고, 노력은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지진, 화재 같은 경우
지진이나 화재 같은 경우는 전염병이나 전쟁과는 상황이 좀 다를 수 있습니다. 극히 드문 일이고 지금까지 거의 없었던 일이지만, 예배 도중 갑자기 지진이 나거나 예배당에 화재가 나서 예배드릴 상황이 되지 못하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예배를 중단하고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이는 예배보다 자기 몸을 산 제사로 드리는 보이지 않는 예배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난리와 난리가 나는 이런 위급한 일들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이런 상황에 응용해 볼 수 있습니다. 평소에 예배를 예배답게 바로 드리면 다른 곳은 다 이런 위급상황이 발생해도 그 교회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십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사가 된 후에는 이스라엘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공회의 유력한 목사님이 백 목사님께, 믿는 장로님이 나라의 국방부 장관인데, 주일날 적군이 쳐들어왔으면, 그 장로 장관은 전쟁을 지휘하러 가야 되는지, 주일을 지켜야 되는지를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백 목사님의 답은, ‘마땅히 전쟁을 지휘하러 가야 한다, 그 장로는 주일을 지킬 준비가 안 되어 있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평소 그 장로님이 주일을 정말 바로 지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주일날 전쟁이 나게 하시지를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명쾌한 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셉이 그런 사람이었고, 다니엘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4. 기타
백 목사님 젊으셨을 때 거창군 가조면의 가조 집회에서 있었던 일이 설교록에 나옵니다. 설교하려고 강단에 서셨는데 하나님께서 도무지 말씀을 주시지 않아서 잠깐 멈추고 통성기도를 부탁하고 목사님도 기도하셨습니다. 당시 백 목사님은 병 고치는 능력이 커서 집회 때마다 병 고치려는 환자가 많이 모이는데, 그날도 강단 주변에는 환자들만 가득 있고 성한 사람들은 다 뒤로 밀려 나간 모습을 보면서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안 주시는 이유가 병 고치는 이것 때문이라면 앞으로는 진리만 전하겠고, 말씀을 전할 때 말씀 듣고 병 고침 받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로 알겠으니 말씀을 주시라고 기도했는데, 그날 집회에 말씀의 큰 은혜가 있었고, 그 이후부터 백 목사님은 수십 년 동안 병 고치는 일은 거의 하지 않으셨습니다.
부산의 북구에 있는 교회에서 있었던 일로 알고 있습니다. 예배 전에 한 분이 공회 찬송 71장 ‘네 어깨에 맨 대사업 이루기 전에는…’ 독창을 했는데, 그 찬송 가사가 백 목사님의 걸어온 신앙 걸음과 너무 같아서 목이 메어서 도무지 설교를 못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날 설교는 71장 찬송 가사가 백 목사님의 설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5. 참고로
설교 강단과 예배와 관련한 여러 위급한 상황의 대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런 문답이 참 중요한데,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교회들의 예배가 여기에 해당이 되는지는 의문입니다. 예배당에서 드럼을 치고 춤을 추고, 찬양이라는 미명으로 세상 유행가를 따라서 괴성을 질러대고 생쇼를 하면서 예배라고 하는데, 그런 교파, 그런 교회들에게, 그런 것을 예배라고 가르치고 배우고 그렇게 알고 있는 교파, 교회, 목사, 교인들에게 이런 내용들은 딴 세상이 아닐까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옳은 길은 가야 하고, 어두운 세상일수록 빛은 더 밝게 빛나게 되는 법이니, 빛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야 할 길이기 때문에 가는 것이 우리가 갈 길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