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과 신앙 - 입학생을 위한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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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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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8 00:00
1. 대학과 신앙 - 일반
예전부터 '대학'은 신앙의 무덤이라 할 만큼 청년의 신앙을 망쳤습니다.
- 교만
10 명 학생 중에 1 - 2 명만 대학을 들어 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경제와 학습 실력과 운까지 더해 져야 대학을 들어 갔습니다. 그래서 '대학생' '여대생'이라는 말은 대단히 특별한 사람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사회와 가정 분위기에서 12 년을 공부하고 20 세에 입학하는 청년에게는 교회를 다니던 신앙은 신앙이고 대학은 자기 속에 별도로 엄청 난 희망과 자부심을 심었습니다. 그렇게 바라던 소망을 이루는 바로 그 순간 교만이라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 저 깊은 속에 저절로 베어 들어 와서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잡고 그 인간의 평생의 근본 인식을 엘리트나 지성인으로 살게 했습니다. 조선 시대 양반의 장점이 아니라 양반의 폐단에 빠졌던 것입니다.
12 년을 고생하고 그 어려운 대학의 관문을 뚫고 들어 가며 온 사회와 언론과 학교와 주변이 떠들썩 하는 분위기 속에 대학생이 된 그 순간 그 어느 누구도 대학의 위험성이나 근본적 문제점에 대해 경고하는 이들은 없고 모두가 축하와 격려만 했으며 혹시 주의를 준다 해도 덕담이고 듣는 사람도 흘려 떠 내려 보냈습니다. '대학'이라는 인생 최대의 고비에 좌절한 사람에게는 절망감과 비굴함으로 짓밟고 그리고 합격한 사람에게는 붕 띄워서 귀신이 낚시에 걸어 버린 순간입니다.
- 교수
세계가 전혀 다른 대학에 들어 오게 되면 20 세의 청년에게 교수라는 존재는 교회에서 뵙던 목사님, 전도사님, 선생님, 집사님, 부모님, 선배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 최고의 지식을 가진 그 방면에 전문가이며 인생 전반에 대해 모든 이들을 가르치는 분으로 다가 섭니다. 대학에 대한 갈망과 사회 전체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콩닢 하나의 박사는 법과 경제와 역사 면에는 학생과 같을 수 있고, 역사 교수는 콩과 법에 대해서는 일반 학생과 같을 수 있는데 하나 좋으면 다 좋아 보이고, 하나 유식하면 이 세상 모두를 다 안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그 나이, 그 시절, 우리였으며 지금도 비슷합니다.
교수 역시 과거 학생 시절 자기를 알기 때문에 자기에게 배우는 학생들에게 자기 사상과 지식이 어떻게 마구 쏟아 져 들어 가서 평생에 인격을 만들어 자기 같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이미 자기는 이런저런 세월 속에 자기가 전문하는 지극히 작은 한 분야에서만 학생들을 가르칠 뿐인데도 그런 소리를 하지 않고 아는 척, 별별 소리를 다 쏟아 놓습니다.
아다시피, 복음은 머리 좋고 공부 많이 하고 듣고 본 것이 많은 이들은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과 말씀과 신앙을 이해하고 나서 믿으려 하기 때문에 제 꾀에 속아 신앙이라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대신, 무식한 이들은 무식해서 단순히 듣고 따라 가게 되는데 그리 하다 보니 세상 다른 면에서는 바보 노릇을 하고 속고 하지만 신앙 길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위대한 신앙인들이 됩니다. 교수라는 직업은 예전부터 믿는 사람의 숫자가 타 직업에 비해 아주 적고, 믿는 사람이 있다 해도 건성으로 가정 분위기 때문에 또는 도덕적으로 신사적으로 믿는 정도지 죽기살기로 무식하게 믿는 사람이 희귀합니다.
대학은 교수 한 사람에 따라 생사화복 흥망성쇠 전부가 결정 되는 사회니 강의실에서 학과에서 연구실에서 기타 학교의 여러 행사나 기회에서 교수는 학교의 전체 분위기를 결정합니다. 어느 대학 어느 학과 어떤 기회라 해도 대학 입학 전에 교회에서 시키면 무조건 순종하던 이 20 세의 청년들이 '교회란 꼭 다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시대인데 미신이냐!' '기독교는 자기들만 천국을 간다는데 이 것은 독선이다 배타적이다' 온갖 핀잔이 다 떨어 집니다. 직업 때문에 교수는 그들의 학교 행사가 주일을 끼고 움직이고 싶을 때 교회 때문에 못 가겠다 하면 소리 없이 또는 이렇게 대 놓고 말을 함부로 합니다. 이런 언행은 다 퇴직감입니다. 주일에 교회 간다는 말은 학생의 자기 신변 호소인데 기독교 비판을 왜 하는가? 아주 비이성적이며 비지성적이며 자기 독선의 극치적 표현입니다만 그렇게 나오는 것은 교수 직업에 이를 정도가 되면 다른 종교는 대충 봐 줄 수가 있는데 '믿으면 천국, 아니면 다 지옥'이라는 기독교의 표현과 신앙은 교수가 믿는 사람이든 아니든 거부적일 수밖에 없어 평소에 속에 잠재 되었던 자기 울분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 일정
고등학교 때까지는 학교의 일정이 딱 짜여 져 있고 가정도 그 일정에 따라 움직이며 모든 교회들도 학교의 일정에 맞춰 모든 일정을 맞춰 놓았으니 학생들은 양심 가책 없이 바쁜 중에도 그대로 신앙 생활을 하며 졸업 때까지 좋은 분위기 속에서 신앙 생활을 할 수가 있는데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일정이 천차만별입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강의 일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대학 첫 입학 순간 전후에 학교나 선배 등 여러 행사들이 신입생의 첫 설레는 마음을 잡기 위해 어지럽게 쏟아 집니다. 이런 순간에 학생은 한 번이니까, 또는 주변 모두에게 끌려 '어, 어, 어...' 하다가 그만 안 갈 자리도 한 번 가고 분위기에 휩쓸려 남학생에게 손도 한 번 잡히고, 잡히니까 부끄럽고 죄책감도 느끼는데 한 편으로는 묘하게 좋은 느낌도 있고
그래서 일정도 술도 연애도 커피 집에도 여행도... 흥청망청 주색잡기에 빠진 조선 양반들 나라 망하는 줄 모르고 경치 좋은 강변에서 낮술을 즐기다가 끝장이 난 것처럼 대학의 처음 일정과 분위기를 낭만적으로 무조건 열정적으로 멋 모르고 가다 보면 그 어느 교파의 어느 교회 출신에 어떤 신앙 있는 학생이라도 대학에 들어 가서는 지금까지 다져 놓은 자기 신앙의 근본이 흔들어 져 버립니다. 아무리 집이 튼튼해도 그 밟고 섰는 기반이 흔들리면 건축물이 내려 앉는 것은 기본입니다.
학생들만의 분위기나 일정만 가지고도 허물어 지기 쉬운데 곳곳에 교수님이 최종적으로 무게를 잡고 떡 버티고 있으니 대학이라는 이름, 자기 학과의 지도 교수님의 방침, 그 밑에 조폭들처럼 소리 없이 형성 된 그 학과의 분위기, 그런 큰 범위 내에서 촐랑거리는 선배나 동급 학생들 중에 설치는 것들에 이끌려 과거와 다른 일정과 분위기에 빠지는 순간 이 학생의 신앙은 이제 씨름이나 레슬링으로 말하면 상대방에게 허리를 잡혀 허공에 뜬 상태입니다. 어느 쪽으로든 어느 날 한꺼번에 끝장 날 상황입니다. 대학 입학과 그 첫 3 월의 표정을 봐서 진지하고 근심이 있는 학생이면 희망이 있고 들뜬 좋은 얼굴에 걸음이 가볍다면 끝장은 이미 났다고 보면 됩니다.
- 강의
교수들의 자기 전공 분야에 대한 지식은 학생들이 볼 때는 대단한 것 같으나 실은 그렇지도 못합니다. 알아 갈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서 왠 만한 고참 교수가 아니면 사실 벌망아지 정도입니다. 50대 교수라면 이제 좀 아는 정도고, 60대 교수라면 이제 사회가 말하는 정도의 그런 수준이 됩니다. 40대 교수라면 철 없는 수준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강의를 듣는 학생들과 비교하면 구름이든 별이든 땅강아지에게 높기는 다 하늘처럼 높은 법입니다. 고등학교까지 12 년 동안은 시험 준비를 위해 듣고 익혔으니 모두가 똑 같은 소리를 배우고 시험을 칠 때 얼마나 잘 기억했는지를 평가합니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그런 것에 신경 쓸 것 없이 무슨 소리든지 교수 마음대로 다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역사 교수가 역사를 가르치다가 기독교를 비판한다든지, 경제 교수가 경제를 가르치다가 정권을 비판하고 부자를 비판한다든지, 문학 교수가 시를 가르치다가 느닷없이 평양은 지상낙원이라서 시가 우수하고 남한에는 제국주의 식민지여서 시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든지 그 무슨 소리를 하든지 자유인데 그 소리들이 고등학교 교과서까지만 듣고 배운 학생들에게 교수가 원래 자기 가르칠 것만 가르치지 않고 한 번씩 곁 가지가 되는 별별 소리를 다 해 댈 수가 있는데 이런 것을 듣다 보면 생전에 처음 듣는 논리가 나오고, 감추어 놓았던 비밀이 쏟아 지고, 그 말대로 하면 다 잘 되겠다 싶고, 교수는 모르는 것이 없고 옳다고 느껴 집니다.
이 것이 사이비 집단의 세뇌 교육과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대학과 학문은 자유지만 실질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20 세 새내기들은 교수들의 강의와 사상 앞에서는 흰 종이에 검정 물 들이기처럼 쉬운 것입니다. 한결 같은 것은 교수의 강의는 '기독교에 극단적으로 비판'적입니다. 그 소리가 옳든 그르든 그렇습니다. 기독교에 우호적인 교수라면 '도덕적 기독교, 사회 봉사적 기독교'를 주입 시키니 인권이나 민주화나 사회주의 활동을 하는 곳으로 가르쳐 놓습니다. 그 동안 교회에서 말씀, 천국, 구원, 교회 중심으로 배운 것은 안팎으로 속속 들이 다 무너 져 내리는 것입니다.
- 기독교 단체
지금은 취업 준비에 바빠서 분위기가 달라 졌다는 말을 듣습니다만 예전에는 대학에 들어 가면 각 대학 별 기독교 단체가 교회를 다니는 남녀 학생들을 모집합니다. 원하던 대학에 들어 왔는데 믿는 선배들이 모이라 하니 선뜻 가게 됩니다. 특히 착하고 신앙 있는 학생들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대학은 보통 멀리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학 주변의 일반 교회에 자리를 잡는 경우보다 과거에는 대학 내의 기독교 써클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확실히 많았고, 요즘은 대학 주변의 교회들의 활동도 있다고 하나 예전과 다른 것이 대학 안이든 밖이든 그 대학의 학생들이 좋아 하는 대로 일정도 내용도 모든 구성도 다 그리 되어 있으니 넓게 말하면 원래 다니던 교회를 떠나 타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게 되면 하나의 기독교 대학 단체에 가입하는 것과 비슷해 집니다.
이 곳의 맹점은 같은 학교도 학습력도 나이도 또 객지라는 것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비슷한 20대들이 모이기 때문에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끼리끼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원래 자라 나던 교회는 남녀노소가 있으니 모두를 좋게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곳이 가정이며 생명이 있고 자라남이 있다면 당연한 것인데, 대학을 입학하면서는 모든 면에서 꼭 같은 또래끼리 모이니 뭘 해도 척척 다 맞습니다. 그러니 신이 나고 그러니 뭘 해도 효력이 있습니다. 이 함정에 빠져 20대를 또는 청년의 시기를 오래 동안 보내고 나면 신앙이 기형이 됩니다. 한 면으로 보면 훌륭하고 넘치는데 그 외에 다른 면은 다 잊어 버립니다.
이 노선은 처음부터 이런 면에서 거리가 멀었으나 타 교단들은 모두 이런 운동을 장려까지 했으나 1970년대에 엄청 나게 대학의 학생 선교회가 학생 신앙을 끓어 오르게 했다가 뒤에 보니 결과가 좋지 않아서 소리 없이 견제를 하고 차단을 하였고 지금은 일반 교회들이 대학 선교회 학생 모임들보다 더 좋게 학생들을 위해 프로그램을 운영해 버리니 이제는 대학의 선교 이름의 학생 신앙 단체들이 크게 위축이 되었다는 말도 듣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집에서만 밥을 먹을 때가 건강식이고 좋았습니다. 바깥에서 밥을 먹기 시작하면 입맛을 버립니다. 그리고 입맛을 끌기 위해 밖에서는 여러 가지를 넣습니다. 건강에 다 좋지 않은 것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좁게 보면 대학을 들어 감으로 일시 동안은 아주 모든 면에서 어른스러워 지고 듬직해 보이고 이제는 자발적으로 신앙 수련회를 간다는 소리도 들리고 해서 교회도 부모도 자기도 다 좋아 보였는데 대학이 주는 인격적 교만과 건방짐, 교수와 강의와 대학의 분위기가 젖어 들며 자기 속과 겉을 흔들어 놓고, 그리고 대학생이 출석하는 교회나 학교 내의 신앙 단체는 20 세 이전까지 자기가 다니던 교회의 가정적 식탁을 외식 식탁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처음은 좋은데 몇 달을 가면, 몇 년을 가면, 대학을 들어 간 학생은 신앙이 다 죽는다는 소리가 나옵니다.
2. 대학 간 선배들의 신앙
- 교회에 잘 보이지 않는 경우
다니던 교회를 떠나 덮어 놓고 먼 곳으로 대학을 가서 교회를 옮겼으니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됩니다. 시골이나 중소 도시의 경우입니다. 본 교회를 출석하지 못해도 가야 할 정도라면 아주 특별한 경우라야 하는데 오로지 점수만 가지고 사회가 말하는 좀 나은 곳을 들어 가기 위해 목숨을 걸어 댑니다. 대학 선택에서부터 신앙이란 요소는 전혀 들어 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믿는 사람도 이사 가고, 출장 가고, 전근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나 전근이나 출장이라는 것을 시도때도 없이 불쑥불쑥 간다면 그 사람은 가족을 책임 질 사람이 아니고 그 인생을 장난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정말 갈 정도인가? 갈 수 있습니다. 가지 않아도 될 것인가?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전국에 300 개가 넘는 대학이 깔려 있습니다. 이제는 왠 만하면 자기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거리나 최소한 주일을 본 교회에서 지킬 수 있는 거리에 괜찮은 대학들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20 세의 이 대학 입학생들은 무조건 수도권으로 가야 하고, 같은 지방대라 해도 타 지방으로 가서 객지 생활을 해 봐야 하는 가출 심리적 충동에 넘치고 있습니다. 상담을 해 보면 10 명 중에 9 명 정도의 학생들은 왜 가정과 본 교회를 아예 끊고 그렇게까지 가야 했는지 이유가 없습니다.
- 취업 학업에 전력하는 경우
등록금이 비싸니 돈도 벌고 또 진로가 어려우니 입학 때부터 공부에 주력한다는 사회 변화상을 들었습니다. 대학 입시 전에도 공부에 빠져서 교회에 잘 보이지 않는 학생들은 생깁니다. 이런 현상은 중학교 입학과 고교 입학을 두고 일어 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까지도 교회에 열심히 활동하는 선배들은 대개 공부가 좀 먼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 대학을 다녀도 되는데 멀리 떠난 경우입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학교를 다닌다 해도 어학, 학점 관리, 각종 자격증 취득 때문에 성실한 선배들이 대학에 들어 간 이후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학생들은 고교 때까지는 교회를 철 없이 다닌 경우입니다. 이제 자기 앞 길에 자기 인생이 현실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니까 소위 먹고 살 문제가 크게 되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철이 들기 시작한 것이니 좋은 현상입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보면 지금의 행동이 잘못 된 것이 아니라 지난 날 교회를 다니기를 장난으로 놀기 식으로 멋 모르고 다녔던 것입니다. 그 선배의 과거 신앙이 잘못 되었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 가서 제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이제 거품은 빠지고 세상으로 돌아 가고 있는 것입니다.
3. 질문에 대해 구체적으로 안내합니다.
- 대학이란
* 학원입니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대학이란 학원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교수와 교사가 다른가? 총장과 교장이 다른가? 야유회와 소풍이 다른가? 같습니다. 괜히 대학의 권위를 위해 표현만 얹어 놓은 것입니다. 간판을 화려하게 꾸며 놓은 것입니다. 오늘도 국회의원 51 %가 대학의 총장을 교장으로 그리고 초등학교 교장을 총장으로 명칭 변경을 해 버리면 그리 되는 것입니다. 학교와 학원이 다른가? 왜 다르며 뭐가 다른가? 가르치고 배우고, 돈이 가고 오고, 꼭 같습니다. 괜히 간판이나 이름이나 무슨 인식에 끌려 다니다 보니까 괴상한 세상이 되고 자기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대학은 국가가 인정했고 학원은 아니라고 할까요? 학원도 학원법에서 인정한 것입니다. 대학은 공교육이다고 할까요? 공교육과 사교육 중에 어느 것이 더 나을까요? 공교육이 나을 수도 있고 사교육이 나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신앙이 아닌, 세상 문제를 두고는 무조건 이렇다저렇다 하거나 이 것이 낫고 저 것은 무조건 못하다 할 것이 없습니다.
* 직업훈련소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믿지 않고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대학에 가서 사람이 되니 만들어 지니 별별 소리를 다하는데 대학이 사람을 만든다는 소리도 우스운 이야기고 또 사람을 만들겠다는 대학이 있다면 참으로 건방진 소리입니다. 평양의 김일성 대학도 사람을 만드는데 그 대학이 만든 사람을 우리가 사람으로 봅니까? 태평양 전쟁 시기에 일본의 대학이 만들어 놓은 사람을 우리가 사람으로 봅니까? 살인마 살인 기계 미친 인간을 만든 곳으로 봅니다. 대학이란, 그 누구 무슨 소리를 해도 믿는 사람에게는 세상을 살아 가면서 경제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 경제 생활에 필요한 직업 훈련을 하는 곳이라고만 알아 두면 좋겠습니다. 교수 입에서 애국이 나오고 인류가 나오고 정치적 견해가 나오면 너는 네 소리 해라, 나는 성경에서 배운 것만 내 사상이고 내 가치관이라 이렇게 단정하고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대학을 가면 일반적으로 취업에 유리합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인생 통계로 보면 반반입니다. 반반보다 조금 나을 정도입니다. 크게 유리한 것은 아직 답변자가 보지 못했습니다. 좋은 학과를 가면 유리합니다. 유리함, 거기까지입니다. 이왕이면 좋은 교수님을 만나고 훌륭한 강의를 듣는다면 좋겠지만 공부란 예로부터 자기 자세입니다. 자기 자세에 따라 90이 달렸고, 가르치는 사람은 10 정도입니다. 정말 훌륭한 강의나 교수는 방송통신대학입니다. 1970년대부터 백 목사님께 배운 지혜였는데 정말정말 절표한 지혜입니다. 전국에 나가는 방송이니 방송 강의는 교수 선정과 강의 내용이 좋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전도할 기회입니다.
학교가 바뀌고 만나는 사람이 바뀌면 우리에게는 전도의 기회가 생깁니다. 한 편으로는 직업 활동을 위해 소리 없이 움직이고, 한 편으로는 소리 없이 전도할 사람을 찾고 기도하고 노력하면 그 사람의 대학 생활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크신 인도를 주실 것입니다.
* 마음껏 신앙 생활을 할 기회입니다.
고교 3학년까지는 쓸 데 없는 수 많은 시간을 묶여서 허비했습니다. 대학은 자기가 갈 진로만 잡고 주력하면 자기 일정과 시간을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습니다. 19 세까지 읽지 못한 성경, 평일의 교회 충성, 그 어떤 분야든지 원도 없이 한도 없이 신앙에 매진할 수 있습니다. 외양간에 묶인 천리마가 풀린 것처럼 신앙으로만 질주하십시오. 물론 세상과 친구와 허무한 것에 그렇게 해도 얼마든지 기회는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신앙에 주력해야 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16 년 공부 중에 대학 4 년만이 가장 보람 차고 이 기간을 통해 신앙을 두고 배우던 학생이 이제 목사님이 될 정도의 학생으로 완전히 장성할 수 있습니다.
*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질문해 주십시오.
이 번 글을 좀 자세히 적은 이유는 지금 대학 진학철이기 때문에 함께 참고할 분들을 생각했습니다. 이 정도의 글은 서론입니다. 이제 대학 입학 절차가 진행 되고 대학 생활이 시작 되면, 과거 그 많은 신앙의 학생들을 다 잡아 삼킨 대학이라는 곳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일단 여기서 질문을 해서 양 쪽의 의견을 들어 보고 나서 판단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질문하신 분을 위해, 또 모든 다른 학생들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겠습니다. 대학의 수 없는 강의들이 질문하신 학생을 공격할 것입니다. 그 것을 다 알고 넘어 서고 이길 수 있을 때 질문하신 학생은 대학의 장점은 골라 뽑아 나오고 대학의 단점으로부터는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털고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훗날 그 경험은 다른 후배와 교인들을 바로 지도할 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대학이란 그 자체가 죄나 의는 아닙니다. 바로 사용하면 복이고 잘못 접하면 화가 됩니다. 다만 통계적으로 대단히 위험한 시기이나 신앙 생활에는 사실 위험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 예비대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 얼마 뒤면 대학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 그런데 같이 교회를 다니던 형, 누나들이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교회를 나오지 않는 모습들을 자주 보는데요
: 저도 그렇게 될까봐 조금 걱정이 되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구체적으로 조언을 구하고 싶어서 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 대학교 가서는 세상지식을 제일 많이 배우는 곳이라 생각되는데 제가 지금 목표로 하는 것을 이루려면 대학을 거쳐야 가능한거 같아서 대학을 지원을 하였는데요
: 안다니데 되면 제일 좋지만 다니게 된다면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제일 조심하고 주의해야 될 것들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리고 대학생활 하는데 신앙을 더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하면 그런 기회들을 잘 찾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 더군다나 제가 부모님이 믿지 않고 저 혼자 다니고 있는 거라서 더욱 걱정이 됩니다.
: 제가 열심히 해서 부모님들도 전도를 하고 싶은데 자세한 조언좀 부탁드립니다.
예전부터 '대학'은 신앙의 무덤이라 할 만큼 청년의 신앙을 망쳤습니다.
- 교만
10 명 학생 중에 1 - 2 명만 대학을 들어 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경제와 학습 실력과 운까지 더해 져야 대학을 들어 갔습니다. 그래서 '대학생' '여대생'이라는 말은 대단히 특별한 사람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사회와 가정 분위기에서 12 년을 공부하고 20 세에 입학하는 청년에게는 교회를 다니던 신앙은 신앙이고 대학은 자기 속에 별도로 엄청 난 희망과 자부심을 심었습니다. 그렇게 바라던 소망을 이루는 바로 그 순간 교만이라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 저 깊은 속에 저절로 베어 들어 와서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잡고 그 인간의 평생의 근본 인식을 엘리트나 지성인으로 살게 했습니다. 조선 시대 양반의 장점이 아니라 양반의 폐단에 빠졌던 것입니다.
12 년을 고생하고 그 어려운 대학의 관문을 뚫고 들어 가며 온 사회와 언론과 학교와 주변이 떠들썩 하는 분위기 속에 대학생이 된 그 순간 그 어느 누구도 대학의 위험성이나 근본적 문제점에 대해 경고하는 이들은 없고 모두가 축하와 격려만 했으며 혹시 주의를 준다 해도 덕담이고 듣는 사람도 흘려 떠 내려 보냈습니다. '대학'이라는 인생 최대의 고비에 좌절한 사람에게는 절망감과 비굴함으로 짓밟고 그리고 합격한 사람에게는 붕 띄워서 귀신이 낚시에 걸어 버린 순간입니다.
- 교수
세계가 전혀 다른 대학에 들어 오게 되면 20 세의 청년에게 교수라는 존재는 교회에서 뵙던 목사님, 전도사님, 선생님, 집사님, 부모님, 선배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 최고의 지식을 가진 그 방면에 전문가이며 인생 전반에 대해 모든 이들을 가르치는 분으로 다가 섭니다. 대학에 대한 갈망과 사회 전체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콩닢 하나의 박사는 법과 경제와 역사 면에는 학생과 같을 수 있고, 역사 교수는 콩과 법에 대해서는 일반 학생과 같을 수 있는데 하나 좋으면 다 좋아 보이고, 하나 유식하면 이 세상 모두를 다 안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그 나이, 그 시절, 우리였으며 지금도 비슷합니다.
교수 역시 과거 학생 시절 자기를 알기 때문에 자기에게 배우는 학생들에게 자기 사상과 지식이 어떻게 마구 쏟아 져 들어 가서 평생에 인격을 만들어 자기 같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이미 자기는 이런저런 세월 속에 자기가 전문하는 지극히 작은 한 분야에서만 학생들을 가르칠 뿐인데도 그런 소리를 하지 않고 아는 척, 별별 소리를 다 쏟아 놓습니다.
아다시피, 복음은 머리 좋고 공부 많이 하고 듣고 본 것이 많은 이들은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과 말씀과 신앙을 이해하고 나서 믿으려 하기 때문에 제 꾀에 속아 신앙이라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대신, 무식한 이들은 무식해서 단순히 듣고 따라 가게 되는데 그리 하다 보니 세상 다른 면에서는 바보 노릇을 하고 속고 하지만 신앙 길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위대한 신앙인들이 됩니다. 교수라는 직업은 예전부터 믿는 사람의 숫자가 타 직업에 비해 아주 적고, 믿는 사람이 있다 해도 건성으로 가정 분위기 때문에 또는 도덕적으로 신사적으로 믿는 정도지 죽기살기로 무식하게 믿는 사람이 희귀합니다.
대학은 교수 한 사람에 따라 생사화복 흥망성쇠 전부가 결정 되는 사회니 강의실에서 학과에서 연구실에서 기타 학교의 여러 행사나 기회에서 교수는 학교의 전체 분위기를 결정합니다. 어느 대학 어느 학과 어떤 기회라 해도 대학 입학 전에 교회에서 시키면 무조건 순종하던 이 20 세의 청년들이 '교회란 꼭 다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시대인데 미신이냐!' '기독교는 자기들만 천국을 간다는데 이 것은 독선이다 배타적이다' 온갖 핀잔이 다 떨어 집니다. 직업 때문에 교수는 그들의 학교 행사가 주일을 끼고 움직이고 싶을 때 교회 때문에 못 가겠다 하면 소리 없이 또는 이렇게 대 놓고 말을 함부로 합니다. 이런 언행은 다 퇴직감입니다. 주일에 교회 간다는 말은 학생의 자기 신변 호소인데 기독교 비판을 왜 하는가? 아주 비이성적이며 비지성적이며 자기 독선의 극치적 표현입니다만 그렇게 나오는 것은 교수 직업에 이를 정도가 되면 다른 종교는 대충 봐 줄 수가 있는데 '믿으면 천국, 아니면 다 지옥'이라는 기독교의 표현과 신앙은 교수가 믿는 사람이든 아니든 거부적일 수밖에 없어 평소에 속에 잠재 되었던 자기 울분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 일정
고등학교 때까지는 학교의 일정이 딱 짜여 져 있고 가정도 그 일정에 따라 움직이며 모든 교회들도 학교의 일정에 맞춰 모든 일정을 맞춰 놓았으니 학생들은 양심 가책 없이 바쁜 중에도 그대로 신앙 생활을 하며 졸업 때까지 좋은 분위기 속에서 신앙 생활을 할 수가 있는데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일정이 천차만별입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강의 일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대학 첫 입학 순간 전후에 학교나 선배 등 여러 행사들이 신입생의 첫 설레는 마음을 잡기 위해 어지럽게 쏟아 집니다. 이런 순간에 학생은 한 번이니까, 또는 주변 모두에게 끌려 '어, 어, 어...' 하다가 그만 안 갈 자리도 한 번 가고 분위기에 휩쓸려 남학생에게 손도 한 번 잡히고, 잡히니까 부끄럽고 죄책감도 느끼는데 한 편으로는 묘하게 좋은 느낌도 있고
그래서 일정도 술도 연애도 커피 집에도 여행도... 흥청망청 주색잡기에 빠진 조선 양반들 나라 망하는 줄 모르고 경치 좋은 강변에서 낮술을 즐기다가 끝장이 난 것처럼 대학의 처음 일정과 분위기를 낭만적으로 무조건 열정적으로 멋 모르고 가다 보면 그 어느 교파의 어느 교회 출신에 어떤 신앙 있는 학생이라도 대학에 들어 가서는 지금까지 다져 놓은 자기 신앙의 근본이 흔들어 져 버립니다. 아무리 집이 튼튼해도 그 밟고 섰는 기반이 흔들리면 건축물이 내려 앉는 것은 기본입니다.
학생들만의 분위기나 일정만 가지고도 허물어 지기 쉬운데 곳곳에 교수님이 최종적으로 무게를 잡고 떡 버티고 있으니 대학이라는 이름, 자기 학과의 지도 교수님의 방침, 그 밑에 조폭들처럼 소리 없이 형성 된 그 학과의 분위기, 그런 큰 범위 내에서 촐랑거리는 선배나 동급 학생들 중에 설치는 것들에 이끌려 과거와 다른 일정과 분위기에 빠지는 순간 이 학생의 신앙은 이제 씨름이나 레슬링으로 말하면 상대방에게 허리를 잡혀 허공에 뜬 상태입니다. 어느 쪽으로든 어느 날 한꺼번에 끝장 날 상황입니다. 대학 입학과 그 첫 3 월의 표정을 봐서 진지하고 근심이 있는 학생이면 희망이 있고 들뜬 좋은 얼굴에 걸음이 가볍다면 끝장은 이미 났다고 보면 됩니다.
- 강의
교수들의 자기 전공 분야에 대한 지식은 학생들이 볼 때는 대단한 것 같으나 실은 그렇지도 못합니다. 알아 갈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서 왠 만한 고참 교수가 아니면 사실 벌망아지 정도입니다. 50대 교수라면 이제 좀 아는 정도고, 60대 교수라면 이제 사회가 말하는 정도의 그런 수준이 됩니다. 40대 교수라면 철 없는 수준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강의를 듣는 학생들과 비교하면 구름이든 별이든 땅강아지에게 높기는 다 하늘처럼 높은 법입니다. 고등학교까지 12 년 동안은 시험 준비를 위해 듣고 익혔으니 모두가 똑 같은 소리를 배우고 시험을 칠 때 얼마나 잘 기억했는지를 평가합니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그런 것에 신경 쓸 것 없이 무슨 소리든지 교수 마음대로 다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역사 교수가 역사를 가르치다가 기독교를 비판한다든지, 경제 교수가 경제를 가르치다가 정권을 비판하고 부자를 비판한다든지, 문학 교수가 시를 가르치다가 느닷없이 평양은 지상낙원이라서 시가 우수하고 남한에는 제국주의 식민지여서 시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든지 그 무슨 소리를 하든지 자유인데 그 소리들이 고등학교 교과서까지만 듣고 배운 학생들에게 교수가 원래 자기 가르칠 것만 가르치지 않고 한 번씩 곁 가지가 되는 별별 소리를 다 해 댈 수가 있는데 이런 것을 듣다 보면 생전에 처음 듣는 논리가 나오고, 감추어 놓았던 비밀이 쏟아 지고, 그 말대로 하면 다 잘 되겠다 싶고, 교수는 모르는 것이 없고 옳다고 느껴 집니다.
이 것이 사이비 집단의 세뇌 교육과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대학과 학문은 자유지만 실질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20 세 새내기들은 교수들의 강의와 사상 앞에서는 흰 종이에 검정 물 들이기처럼 쉬운 것입니다. 한결 같은 것은 교수의 강의는 '기독교에 극단적으로 비판'적입니다. 그 소리가 옳든 그르든 그렇습니다. 기독교에 우호적인 교수라면 '도덕적 기독교, 사회 봉사적 기독교'를 주입 시키니 인권이나 민주화나 사회주의 활동을 하는 곳으로 가르쳐 놓습니다. 그 동안 교회에서 말씀, 천국, 구원, 교회 중심으로 배운 것은 안팎으로 속속 들이 다 무너 져 내리는 것입니다.
- 기독교 단체
지금은 취업 준비에 바빠서 분위기가 달라 졌다는 말을 듣습니다만 예전에는 대학에 들어 가면 각 대학 별 기독교 단체가 교회를 다니는 남녀 학생들을 모집합니다. 원하던 대학에 들어 왔는데 믿는 선배들이 모이라 하니 선뜻 가게 됩니다. 특히 착하고 신앙 있는 학생들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대학은 보통 멀리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학 주변의 일반 교회에 자리를 잡는 경우보다 과거에는 대학 내의 기독교 써클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확실히 많았고, 요즘은 대학 주변의 교회들의 활동도 있다고 하나 예전과 다른 것이 대학 안이든 밖이든 그 대학의 학생들이 좋아 하는 대로 일정도 내용도 모든 구성도 다 그리 되어 있으니 넓게 말하면 원래 다니던 교회를 떠나 타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게 되면 하나의 기독교 대학 단체에 가입하는 것과 비슷해 집니다.
이 곳의 맹점은 같은 학교도 학습력도 나이도 또 객지라는 것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비슷한 20대들이 모이기 때문에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끼리끼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원래 자라 나던 교회는 남녀노소가 있으니 모두를 좋게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곳이 가정이며 생명이 있고 자라남이 있다면 당연한 것인데, 대학을 입학하면서는 모든 면에서 꼭 같은 또래끼리 모이니 뭘 해도 척척 다 맞습니다. 그러니 신이 나고 그러니 뭘 해도 효력이 있습니다. 이 함정에 빠져 20대를 또는 청년의 시기를 오래 동안 보내고 나면 신앙이 기형이 됩니다. 한 면으로 보면 훌륭하고 넘치는데 그 외에 다른 면은 다 잊어 버립니다.
이 노선은 처음부터 이런 면에서 거리가 멀었으나 타 교단들은 모두 이런 운동을 장려까지 했으나 1970년대에 엄청 나게 대학의 학생 선교회가 학생 신앙을 끓어 오르게 했다가 뒤에 보니 결과가 좋지 않아서 소리 없이 견제를 하고 차단을 하였고 지금은 일반 교회들이 대학 선교회 학생 모임들보다 더 좋게 학생들을 위해 프로그램을 운영해 버리니 이제는 대학의 선교 이름의 학생 신앙 단체들이 크게 위축이 되었다는 말도 듣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집에서만 밥을 먹을 때가 건강식이고 좋았습니다. 바깥에서 밥을 먹기 시작하면 입맛을 버립니다. 그리고 입맛을 끌기 위해 밖에서는 여러 가지를 넣습니다. 건강에 다 좋지 않은 것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좁게 보면 대학을 들어 감으로 일시 동안은 아주 모든 면에서 어른스러워 지고 듬직해 보이고 이제는 자발적으로 신앙 수련회를 간다는 소리도 들리고 해서 교회도 부모도 자기도 다 좋아 보였는데 대학이 주는 인격적 교만과 건방짐, 교수와 강의와 대학의 분위기가 젖어 들며 자기 속과 겉을 흔들어 놓고, 그리고 대학생이 출석하는 교회나 학교 내의 신앙 단체는 20 세 이전까지 자기가 다니던 교회의 가정적 식탁을 외식 식탁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처음은 좋은데 몇 달을 가면, 몇 년을 가면, 대학을 들어 간 학생은 신앙이 다 죽는다는 소리가 나옵니다.
2. 대학 간 선배들의 신앙
- 교회에 잘 보이지 않는 경우
다니던 교회를 떠나 덮어 놓고 먼 곳으로 대학을 가서 교회를 옮겼으니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됩니다. 시골이나 중소 도시의 경우입니다. 본 교회를 출석하지 못해도 가야 할 정도라면 아주 특별한 경우라야 하는데 오로지 점수만 가지고 사회가 말하는 좀 나은 곳을 들어 가기 위해 목숨을 걸어 댑니다. 대학 선택에서부터 신앙이란 요소는 전혀 들어 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믿는 사람도 이사 가고, 출장 가고, 전근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나 전근이나 출장이라는 것을 시도때도 없이 불쑥불쑥 간다면 그 사람은 가족을 책임 질 사람이 아니고 그 인생을 장난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정말 갈 정도인가? 갈 수 있습니다. 가지 않아도 될 것인가?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전국에 300 개가 넘는 대학이 깔려 있습니다. 이제는 왠 만하면 자기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거리나 최소한 주일을 본 교회에서 지킬 수 있는 거리에 괜찮은 대학들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20 세의 이 대학 입학생들은 무조건 수도권으로 가야 하고, 같은 지방대라 해도 타 지방으로 가서 객지 생활을 해 봐야 하는 가출 심리적 충동에 넘치고 있습니다. 상담을 해 보면 10 명 중에 9 명 정도의 학생들은 왜 가정과 본 교회를 아예 끊고 그렇게까지 가야 했는지 이유가 없습니다.
- 취업 학업에 전력하는 경우
등록금이 비싸니 돈도 벌고 또 진로가 어려우니 입학 때부터 공부에 주력한다는 사회 변화상을 들었습니다. 대학 입시 전에도 공부에 빠져서 교회에 잘 보이지 않는 학생들은 생깁니다. 이런 현상은 중학교 입학과 고교 입학을 두고 일어 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까지도 교회에 열심히 활동하는 선배들은 대개 공부가 좀 먼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 대학을 다녀도 되는데 멀리 떠난 경우입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학교를 다닌다 해도 어학, 학점 관리, 각종 자격증 취득 때문에 성실한 선배들이 대학에 들어 간 이후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학생들은 고교 때까지는 교회를 철 없이 다닌 경우입니다. 이제 자기 앞 길에 자기 인생이 현실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니까 소위 먹고 살 문제가 크게 되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철이 들기 시작한 것이니 좋은 현상입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보면 지금의 행동이 잘못 된 것이 아니라 지난 날 교회를 다니기를 장난으로 놀기 식으로 멋 모르고 다녔던 것입니다. 그 선배의 과거 신앙이 잘못 되었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 가서 제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이제 거품은 빠지고 세상으로 돌아 가고 있는 것입니다.
3. 질문에 대해 구체적으로 안내합니다.
- 대학이란
* 학원입니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대학이란 학원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교수와 교사가 다른가? 총장과 교장이 다른가? 야유회와 소풍이 다른가? 같습니다. 괜히 대학의 권위를 위해 표현만 얹어 놓은 것입니다. 간판을 화려하게 꾸며 놓은 것입니다. 오늘도 국회의원 51 %가 대학의 총장을 교장으로 그리고 초등학교 교장을 총장으로 명칭 변경을 해 버리면 그리 되는 것입니다. 학교와 학원이 다른가? 왜 다르며 뭐가 다른가? 가르치고 배우고, 돈이 가고 오고, 꼭 같습니다. 괜히 간판이나 이름이나 무슨 인식에 끌려 다니다 보니까 괴상한 세상이 되고 자기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대학은 국가가 인정했고 학원은 아니라고 할까요? 학원도 학원법에서 인정한 것입니다. 대학은 공교육이다고 할까요? 공교육과 사교육 중에 어느 것이 더 나을까요? 공교육이 나을 수도 있고 사교육이 나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신앙이 아닌, 세상 문제를 두고는 무조건 이렇다저렇다 하거나 이 것이 낫고 저 것은 무조건 못하다 할 것이 없습니다.
* 직업훈련소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믿지 않고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대학에 가서 사람이 되니 만들어 지니 별별 소리를 다하는데 대학이 사람을 만든다는 소리도 우스운 이야기고 또 사람을 만들겠다는 대학이 있다면 참으로 건방진 소리입니다. 평양의 김일성 대학도 사람을 만드는데 그 대학이 만든 사람을 우리가 사람으로 봅니까? 태평양 전쟁 시기에 일본의 대학이 만들어 놓은 사람을 우리가 사람으로 봅니까? 살인마 살인 기계 미친 인간을 만든 곳으로 봅니다. 대학이란, 그 누구 무슨 소리를 해도 믿는 사람에게는 세상을 살아 가면서 경제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 경제 생활에 필요한 직업 훈련을 하는 곳이라고만 알아 두면 좋겠습니다. 교수 입에서 애국이 나오고 인류가 나오고 정치적 견해가 나오면 너는 네 소리 해라, 나는 성경에서 배운 것만 내 사상이고 내 가치관이라 이렇게 단정하고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대학을 가면 일반적으로 취업에 유리합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인생 통계로 보면 반반입니다. 반반보다 조금 나을 정도입니다. 크게 유리한 것은 아직 답변자가 보지 못했습니다. 좋은 학과를 가면 유리합니다. 유리함, 거기까지입니다. 이왕이면 좋은 교수님을 만나고 훌륭한 강의를 듣는다면 좋겠지만 공부란 예로부터 자기 자세입니다. 자기 자세에 따라 90이 달렸고, 가르치는 사람은 10 정도입니다. 정말 훌륭한 강의나 교수는 방송통신대학입니다. 1970년대부터 백 목사님께 배운 지혜였는데 정말정말 절표한 지혜입니다. 전국에 나가는 방송이니 방송 강의는 교수 선정과 강의 내용이 좋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전도할 기회입니다.
학교가 바뀌고 만나는 사람이 바뀌면 우리에게는 전도의 기회가 생깁니다. 한 편으로는 직업 활동을 위해 소리 없이 움직이고, 한 편으로는 소리 없이 전도할 사람을 찾고 기도하고 노력하면 그 사람의 대학 생활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크신 인도를 주실 것입니다.
* 마음껏 신앙 생활을 할 기회입니다.
고교 3학년까지는 쓸 데 없는 수 많은 시간을 묶여서 허비했습니다. 대학은 자기가 갈 진로만 잡고 주력하면 자기 일정과 시간을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습니다. 19 세까지 읽지 못한 성경, 평일의 교회 충성, 그 어떤 분야든지 원도 없이 한도 없이 신앙에 매진할 수 있습니다. 외양간에 묶인 천리마가 풀린 것처럼 신앙으로만 질주하십시오. 물론 세상과 친구와 허무한 것에 그렇게 해도 얼마든지 기회는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신앙에 주력해야 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16 년 공부 중에 대학 4 년만이 가장 보람 차고 이 기간을 통해 신앙을 두고 배우던 학생이 이제 목사님이 될 정도의 학생으로 완전히 장성할 수 있습니다.
*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질문해 주십시오.
이 번 글을 좀 자세히 적은 이유는 지금 대학 진학철이기 때문에 함께 참고할 분들을 생각했습니다. 이 정도의 글은 서론입니다. 이제 대학 입학 절차가 진행 되고 대학 생활이 시작 되면, 과거 그 많은 신앙의 학생들을 다 잡아 삼킨 대학이라는 곳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일단 여기서 질문을 해서 양 쪽의 의견을 들어 보고 나서 판단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질문하신 분을 위해, 또 모든 다른 학생들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겠습니다. 대학의 수 없는 강의들이 질문하신 학생을 공격할 것입니다. 그 것을 다 알고 넘어 서고 이길 수 있을 때 질문하신 학생은 대학의 장점은 골라 뽑아 나오고 대학의 단점으로부터는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털고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훗날 그 경험은 다른 후배와 교인들을 바로 지도할 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대학이란 그 자체가 죄나 의는 아닙니다. 바로 사용하면 복이고 잘못 접하면 화가 됩니다. 다만 통계적으로 대단히 위험한 시기이나 신앙 생활에는 사실 위험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 예비대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 얼마 뒤면 대학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 그런데 같이 교회를 다니던 형, 누나들이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교회를 나오지 않는 모습들을 자주 보는데요
: 저도 그렇게 될까봐 조금 걱정이 되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구체적으로 조언을 구하고 싶어서 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 대학교 가서는 세상지식을 제일 많이 배우는 곳이라 생각되는데 제가 지금 목표로 하는 것을 이루려면 대학을 거쳐야 가능한거 같아서 대학을 지원을 하였는데요
: 안다니데 되면 제일 좋지만 다니게 된다면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제일 조심하고 주의해야 될 것들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리고 대학생활 하는데 신앙을 더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하면 그런 기회들을 잘 찾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 더군다나 제가 부모님이 믿지 않고 저 혼자 다니고 있는 거라서 더욱 걱정이 됩니다.
: 제가 열심히 해서 부모님들도 전도를 하고 싶은데 자세한 조언좀 부탁드립니다.
곧 있으면 대학에 들어가게 됩니다..
얼마 뒤면 대학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그런데 같이 교회를 다니던 형, 누나들이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교회를 나오지 않는 모습들을 자주 보는데요
저도 그렇게 될까봐 조금 걱정이 되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구체적으로 조언을 구하고 싶어서 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가서는 세상지식을 제일 많이 배우는 곳이라 생각되는데 제가 지금 목표로 하는 것을 이루려면 대학을 거쳐야 가능한거 같아서 대학을 지원을 하였는데요
안다니데 되면 제일 좋지만 다니게 된다면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제일 조심하고 주의해야 될 것들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리고 대학생활 하는데 신앙을 더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하면 그런 기회들을 잘 찾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더군다나 제가 부모님이 믿지 않고 저 혼자 다니고 있는 거라서 더욱 걱정이 됩니다.
제가 열심히 해서 부모님들도 전도를 하고 싶은데 자세한 조언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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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면 대학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그런데 같이 교회를 다니던 형, 누나들이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교회를 나오지 않는 모습들을 자주 보는데요
저도 그렇게 될까봐 조금 걱정이 되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구체적으로 조언을 구하고 싶어서 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가서는 세상지식을 제일 많이 배우는 곳이라 생각되는데 제가 지금 목표로 하는 것을 이루려면 대학을 거쳐야 가능한거 같아서 대학을 지원을 하였는데요
안다니데 되면 제일 좋지만 다니게 된다면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제일 조심하고 주의해야 될 것들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리고 대학생활 하는데 신앙을 더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하면 그런 기회들을 잘 찾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더군다나 제가 부모님이 믿지 않고 저 혼자 다니고 있는 거라서 더욱 걱정이 됩니다.
제가 열심히 해서 부모님들도 전도를 하고 싶은데 자세한 조언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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