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성' - 넓게, 멀리, 균형 있게 보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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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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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6 00:00
1. 아이와 사회성
1) 사회성에 대한 오해
- '단어' 선택에서부터
어떤 단어를 대할 때도 기본적으로 단어의 뜻을 주목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성경의 사랑은 신앙에 유익하도록 도울 때를 말하는 것이니 '사랑 = 구원 = 예수'인데, 남녀 이성의 애정이나 육체로 사는 세상의 어려움을 돕는 '복지 = 구제 = 사랑'으로 내용을 바꾸면 성경과 신앙과 구원은 없어 지고, 두고 갈 세상 놀이가 됩니다.
- '사회성'이라는 표현
자기 자체의 실력과 함께 다른 사람과의 관계성이라는 것은 사람이 살아 가는 중요한 양면입니다. 자기 실력이 없는 사람의 사회성은 구걸이며 처참한 것입니다. 사회성은 없고 자기 실력이 좋은 사람은 외로운 호랑이입니다. 당장은 좋으나 멀리 보면 외톨이 독불장군입니다. 가진 실력을 써 먹지 못하게 되고, 주변을 전부 적이나 남으로 돌리게 됩니다. 그 끝이 좋지 못합니다. 실력과 사회성을 함께 가지게 된다면 이상적일 것입니다. 어릴수록 자기 실력만 실력으로 보게 되나 경험이 생기면 사회성이라는 것은 자기 주변을 자기로 만드는 것이니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도 없습니다.
우선 사회성이라는 것은 크게 4 가지 정도에 영향을 받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모르는 사람을 상대할수록, 주변 환경과 여건이 많이 변할수록, 시간이 흘러 갈수록 사회성은 늘어 갑니다. 몰라서 그렇지 고아원 출신 아이들은 대단히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사회성이 생깁니다. 반대로 유복한 가정에서 조용히 자란 이들은 50대라 해도 10 세의 고아만도 못합니다. 일반적 평가입니다. 문제는 고아의 사회성은 남을 활용하거나 악용하는 면으로 발전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이런 사회성은 반사회성이라고 말합니다. 유복하게 조용하게 자란 사람은 인사 예절 양보 순서 등 많은 면에서 굉장히 사회성이 있다고 보이는데 그 내용은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모르는 철부지 유치원의 잠꼬대여서 정작 결정적일 때 자기 인생 전부나 아니면 주변의 수 없는 사람을 낭떠러지에 던지는 불장난을 합니다.
- '우리의' 사회성
이 홈에서 질문하시니 최소한 우리의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안내합니다. 성경을 기준으로 신앙에 유익하도록 넓게, 멀리, 균형 있게 보며 사회성을 먼저 규정한 다음에 살펴 보겠습니다.
사회성의 가장 첫 걸음이요 기본은 신앙의 사회성이며 그 다음이 가정의 사회성입니다. 하나님을 상대하며 신앙 생활에 기본 면을 말합니다. 이 면은 신앙 자체가 좋은지 여부와 다른 면을 말합니다. 미신을 믿는 우리 조상들은 그 신은 허황 되었으나 그런 신도 신이라 해서 그 신에게 조심했고 정성을 다했습니다. 이 것이 신앙의 사회성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 생활을 하면서 미신의 귀신 앞에서도 하지 못할 정도로 막 가고 있습니다. 어른 앞에서도 민망하여 하기 어려운 일을 예배당, 예배 시간에, 강단 위에서도 하고 있습니다. 사회성의 근본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사회성의 둘째 걸음이 가정의 사회성입니다. 과거 학교가 없고 무식하고 가난하던 시절에는 부모가 있었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었으며 형과 동생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가정의 사회성이 뿌리채 내려 안고 있습니다. 없다 할 만한 세상입니다. '제 아버님의 성함은 홍 자, 길 자, 동 자입니다.'라는 이런 표현은 멋 있게 보이는지 아무나 흔하게 사용하는데 정작 내용적으로 부모를 대하는 기본 자세나 언행은 회사의 자기 윗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나 학생이 교수를 상대하는 것이나 장사가 손님을 상대하는 것과 비교하면 아주 허무한 정도입니다.
- 사회성이라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과의 관계를 말합니다. 낳아 주고 자기를 위해 몸을 다 바치는 '다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물건을 하나 사 가지고 가는 손님에게 대하는 것보다 더 고맙게 깍듯하게 대해야 하고, 내 돈을 받고 공부를 가르치는 학교 교사나 교수에게 대하는 것보다 더 존중하고 조심해야 하며, 내가 한 달 동안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댓가로 월급을 받는 회사의 윗 사람을 대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사회성이야 안 믿는 사람들이 모르니까 그냥 넘어 간다 해도, 부모 없는 사람은 없는데 부모와 가족과의 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이 골목 밖에 나가서 이웃과 회사와 학교와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두고 논한다는 것은 사회성이라는 단어를 두고는 언급할 자격도 없고, 또 그 것이 바로 될 리도 없습니다.
2) 진정한 사회성
- 그 시작은 가정
가정은 남자와 여자가 부모가 되어 시작합니다. 이 둘의 관계는 극단적입니다. 이 둘의 관계가 원만하다면 대문 밖에 그 어떤 사람을 상대해도 넉넉히 잘 상대할 수 있습니다. 부부 생활과 그 관계가 대충이니까 밖에서도 그런 것입니다. 가정은 부모와 자녀라는 극단적인 다른 세대가 살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가 정말 제대로 돌아 가고 있다면 이 아이는 사회 어디 내 놓아도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아이는 아직 결혼 전이지만 부모를 보면서 남녀의 극단적 차이와 그 둘의 조화를 배울 수 있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자기가 당사자입니다.
가정이 바로 되면 가정 사회성이 생기고, 모든 사회성의 근본이며 가장 어려운 가정 사회성이 바로 되면 대문 밖의 사회성이라는 것은 구구단 외운 사람에게 곱하고 나누기를 하듯 그렇게 쉽습니다. 가정과 사회가 다른 것처럼 되는 것은 가정교육의 실패입니다. 밥 주고, 같이 놀고, 대충 맞춰 주고, 자란 후에는 서로 바빠서 자기 생활을 하는 것으로 가정인 줄 알고, 이런 가정을 가정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가정의 사회성과 사회의 사회성이 다른 줄 아는 것입니다.
- 사회를 축소한 가정
아이를 두고 부모가 자기 가정을 자기 가정으로만 보지 말고 세상을 축소한 가정, 세상 사람들이 각계 각층으로 대표를 보내어 만든 가정이라고 보고 그렇게 아이를 교육하고 길러 본다면 기본적으로 학교를 가거나 군대를 가거나 어디 외국을 가 봐야 사회성이 자란다는 그런 이야기는 쉽게 입에 담지 못합니다.
부모가 가정에서 일반 가정의 그런 부모와 같은 부모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아이가 살아 가야 하는 평생에 그 아이보다 윗 사람을 상대할 때 그렇게 상대하면 어떤 불이익이 있는지, 어떤 앞 날에 상황이 전개 될지를 시간이 있을 때 차분하게 풀어서 실감 있게 대화를 하고 주입을 시켜야 합니다. 아버지가 사 온 장난감을 아이가 좋아 하지 않는다고 뿌리 치는 행동을 한다면 보통 달래어 수습에 바쁘거나 아니면 홧김에 혼을 낸다거나 하는 2 가지로 나타 납니다. 바로 이 가정이 가정 사회성의 개념이 없어 그 아이로 하여금 문 밖에 나갔을 때 가정과 다른 세계를 만나게 하며 그 세계에서 새로운 사회를 배워야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정도라면, 그런데 장난감 선물을 뿌리 친다면 그 자리에서든지 아니면 다음에 다른 기회에 그 아이를 앉혀 놓고 그 하나의 상황을 가지고 아버지가 회사에서 사장님이 사 주는 선물을 그렇게 했을 때 어떤 일이 생길지를 두고 대화하면 그 아이에게 사회성은 제대로 심는 것입니다.
-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자연계시
불신자의 관찰로도 자기를 다스린 자는 가정을 살릴 수 있고, 가족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 나라를 다스리며, 자기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사람이 천하를 조용하게 만들 수 있따는 결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상황을 제대로 살피면 가정마다 한두 명만 낳고 돈이 넘치고 전체 가족 단위에서 아이들이 귀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라 나는 과정에서 부모와 충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그 내면을 보면 과거 가정은 모든 여건이 어려운데 부모가 부모 자리에 있고 자식은 많은 식구들 중에 자기 자리를 알고 그 속에서 자라며 가족 내의 사회성을 제대로 익혔습니다. 요즘 아이들을 그대로 예전 가족 안에 갖다 놓는다면 순간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사회성의 최소한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하여 예전 사람은 가정에서 사회성의 기본을 거의 다 배운 다음에 문 밖으로 나갑니다. 문 밖에 나가서 배우는 사회라는 것은 한 번 겪어 보면 바로 알기 때문에 따로 사회성이라는 것을 따질 필요도 없었습니다.
- 사회성을 요약하면
윗 사람에게 잘못 대들면 여러 가지 손해가 있다는 것을 알고 미리 알아서 기는 것이니 부모 밑에서 가정 생활을 정상적으로 한 사람이면 가정에서 이미 익힐 일입니다. 사회성이란 아랫 사람에게는 반발을 고려하며 적당히 다스리는 것인데 가정에서 이런 면이 잘못 될 때 자기 속에서 어떤 마음이 생기는지를 스스로 보고 또 여러 친척들을 비교해 보면서 저절로 익히는 것입니다. 동료는 자기의 친구이면서 자기의 경쟁자이므로 우정과 견제를 소리 없이 잘 배합하는 것인데 가정에서 형제는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그런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이 것을 확대하면 아이들의 학교 생활이 되는데 교사들은 학교에서 한 반의 학생들을 상대해 보면 학생들의 가정 교육은 단번에 눈에 들어 오게 됩니다. 교사가 눈에 보이지 않고, 교사의 말을 우습게 알거나, 친구 관계 등에서 파행적 모습이 보이면 두 말 할 것도 없는 가정 교육 문제입니다. 가정 교육이 잘못 된 경우라 해도 예전에는 학교에서 일부라도 영향을 미쳐서 선도할 여지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가정 교육이 잘못 된 아이를 교사나 교장이나 학교라는 체제가 개입하여 선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반대로 가정 교육이 잘 된 좋은 아이들이 학교 생활을 거치면서 가족의 눈을 떠난 학교 내의 넓고 내밀한 세계에서 별별 잘못 된 것을 보고 듣게 되면서 나쁜 쪽으로 버리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 교사, 학교, 인성
바로 길러 놓은 아이를 교사가 자기 사상으로 아이들의 가치관을 물들이려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는 것이 현재 우리 나라 교육계의 현실입니다. 분명한 것은 현재 우리 나라의 교육계의 다수를 점령한 이들은 사상 단체입니다. 그들의 다른 면은 다 두고, 신앙을 두고는 기독교를 극단적으로 비판하는 이들입니다. 또한 이들은 나이가 많으면 무조건 구습에 기득권만 가지고 나쁜 사람이라고 인식을 심고 그 대신 젊은 사람은 무조건 창조적이며 발전적이며 양심적이라고 기초 지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 것이 사회성인가? 부모로부터 배운 것을 다 버리고, 교회의 신앙 지식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집단이 규정하고 그들의 주류에 휩쓸려야 사회성이 있다는 말이 나오는 정도입니다.
지금 서울시교육청은 초등학생이 파머를 하고 화장을 하고 옷을 업소 여자처럼 입고 동성연애를 해도 불이익을 주거나 눈치를 주지 말라는 방향으로 교육의 자유성 자율성 인간의 존엄성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잘못 된 것은 죄라고 하고 세상 것이라 해도 자연스러운 것을 거스리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1 %가 세상의 가치와 법과 제도와 방향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세상이란 갈수록 악화 됩니다. 원리가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성이라는 단어는 그 단어 자체가 대단히 조심해야 할 표현입니다. 사회성이라는 표현이 예전의 부모들이 학교를 다닐 때 생각한 사회성인지 아니면 이미 그 내용이 정반대로 바뀌어 있는지도 봐야 합니다. 답변자 생각으로는 거의 모든 것이 다 뒤집어 져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이라도 어른 말은 좀 들어 본 다음에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그리고 살펴서 건의도 하며 신중히 자기 안을 밀고 나가야 지혜롭고 서로에게 좋고 어린 사람에게도 유익한 법입니다.
3) 실무적으로
- 예전의 경우
답변자의 20대 초반에 군생활을 했습니다. 사회성이라는 표현과 관련하여 나온 첫 단어는 술과 담배였습니다. 전혀 할 수 없다고 딱 잘라 버리니까 단번에 주변에서 '네 특별한 상황은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사회성이 그렇게 없으면 네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 그들이 처음에는 협박으로 다그치다가 단호하게 나가니까 강제로 해서 될 상황이 아님을 알고 진심으로 좋게 걱정해 준 이야기입니다. 당시 남자들의 세계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 술 한 잔과 담배 하나를 권하면서 바로 친하게 됩니다. 이 것을 그들은 사회성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 대신 윗 사람에게 조심하고 아래 사람을 살피고 동료 사이에 의리와 여러 면을 조정하는 것은 술 담배를 하지 않던 답변자가 훨씬 좋았습니다. 바로 이런 면 때문에 그들이 답변자의 개인 상황은 나쁘지 않고 좋게 보고 있었으나 문제는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내면을 보여 줄 기회가 없이 바로 잠깐 상대하고 헤어 져야 할 일이 있는데 얼마나 손해를 많이 보겠느냐는 충고였습니다.
- 유대인의 경우
유럽 역사에서 나찌 외에도 유대인들은 'Jewish'라는 유대인 표현 하나에 목숨을 걸 때도 있고 평생 모은 재산을 몰수 당한 적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처음 만나는 이에게 'I'm a Jew.'라는 표현을 앞에 내놓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들은 일반 개념으로 생각할 때 사회 생활에서 가장 불리한 자기 약점을 먼저 드러 냅니다. 그런데 현재 세계는 그들의 손에 있습니다. 구약만 믿는 그들이 세상만 보고도 그렇게 하는데 믿는 우리는 사회생활에 적합한 사회성, 이 단어를 놓고 그 단어 안에 있는 내용을 심각히 먼저 따지지 않고 그냥 사회성이라는 표현과 분위기에만 따라 가다 보면 나중에 엉뚱한 사람이 된다는 점을 먼적 살폈으면 합니다.
- 현재 우리 환경에서 본다면
아이의 사회성을 위해 만일 부모가 의지가 있고 지식이 있다면 아이의 사회성을 위해서는 학교를 보내지 말아야 할 상황입니다. 아이들이 자기 또래 아이들이 전부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고 게임을 하고 또 그들 세계를 휩쓰는 유행에 노출 될 때 그런 것을 다 이겨낼 수가 있는가? 옛날의 아이들이 고무줄로 놀고 술레잡기를 하며 노는 것은 훗날에 추억이 될 수가 있으나 요즘 아이들이 알고 듣고 말하고 손에 익히고 눈과 머리에 담아 두는 것은 결혼한 부부끼리도 문을 닫아 놓고 봐야 할 정도의 것입니다. 한 번 담고 나면 빠져 나갈 수 없는 것, 이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한 것을 굳이 보고 그 것을 이겨야 하는가? 이런 회의를 느낍니다.
그런 세계를 피하고 싶어도 이제는 대로에 TV에 옷에 모든 종류의 책에까지 깔아 놓았기 때문에 외면을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그렇게 피할 수 없는 것만 듣고 봐도 세상의 나쁜 것은 충분히 파악이 될 터인데 10대의 아이들이 그들 세계의 엉망이며 파행적인 것을 부모가 버젓이 허락하고 오히려 북돋우고 교사가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이성에 눈을 뜨도록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세계를 알면서 일부러 그 곳에 풀어 놓는다는 것은 그 아이가 아주 훌륭하여 요셉 같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실수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교회와 신앙과 성경과 우리 믿어 온 기독교 자체를 요즘 세상식으로 바꾸든지, 그렇게 바꿀 수 없다면 부모가 자기 손으로 아이 수준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세상에 밀어 넣는 일은 대단히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일입니다. '사회성'이 문제라면 답변자 생각에는 더더욱 학교를 보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보내야 한다면 세상이 어디까지 미쳐 있는지를 아이에게 겪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역사이니 거부를 할 수 없어 마치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간 다니엘처럼 애굽의 바로 왕궁에 들어 가 살아야 하는 모세처럼 보내지 않을 수 없으면 보내되, 그러나 모세에게는 어머니의 지혜와 신앙이 늘 모세를 지켜 보고 있었고 다니엘은 어려도 스스로 천하를 맞설 수 있었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처럼 자기 가진 세상 지식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세상 공부를 하고 그 공부를 주 위해 버린다면 찬성을 할 수 있겠으나 세상 지식이 좋아서 세상 지식을 위해 신앙을 손해 보는 사람들이 겉으로 말할 때는 주를 위해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인물이 나와야 하고 또 지식이 출중하면 복음을 위해 유익하지 않겠느냐고 논리를 세우나 그런 사람들은 나중에 세상에 빠져 신앙을 버렸지 신앙을 위해 세상과 자기 세상 지식을 버릴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다니엘 요셉 모세와 같은 사람은 외국 나라를 자원해서 유학을 간 것이 아니라 보내 졌기 때문에 가서 살았고, 그 곳이 하나님 주신 환경이어서 그 현실 속에서 하나님 붙들고 다시 세상을 버리고 나온 것입니다. 지금 세상을 좀 멀리 할 수 있는데도 세상 속으로 들어 가는 것은 소돔을 향한 롯이며, 모압을 향한 나오미 가족입니다.
4) 문제는
학교만 가지 않으면 다 해결이 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학교만 가면 해결이 다 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죄 지을 인간은 집에 가둬 놓고 살아도 어떻게라도 다 습득하게 되고, 가정에서 많이 눌러서 지연을 시켜 놓으면 나중에 댐이 터지듯 한 번에 큰 사고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리 물에 가서 수영을 하고 물을 익히라고 해 놓으면 한 여름 어느 날에 아이가 물에 빠져 시체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아이와 가정 여건과 신앙과 제반 상황을 봐 가며 결정해야 할 일입니다. 최소한 사회성 문제는 전혀 상관 없다는 점을 먼저 설명하고 싶습니다.
요약하면
- 사회성은 가정의 부모의 손에 가장 많이 달려 있습니다.
- 교회를 다니는 학생은 교회에서 일반 사회성을 대폭 보충할 수 있습니다.
- 일반 세상이 요즘 기준으로 말하는 사회성은 반사회성이라 할 만한 상황이 심각합니다.
- 다만 피치 못할 경우는 하나님의 인도라고 믿고 잘 지도하며 거쳐야 합니다.
- 모든 것은 한 아이 별로 부모가 결정할 일입니다.
>> 아이엄마 님이 쓰신 내용 <<
:
: 5살 막내를 둔 다자녀엄마입니다.
: 남편의 의견으로 올해 병설 유치원에 보냈지만 아이가 가기싫어하고 갑자기 아토피가 생겨 그만두었습니다.
: 집에서 두란노 어린이성경을 50-100페이지정도 읽어주고 성경암송도 합니다. 찬송가cd(1993년에 산것)와 유니게 성경암송 cd를 하루종일 틀어놓습니다.
: 2-3시되면 9살 형이 오면 같이 딱지치기하고 놉니다.
: 자기전에 형이 저와 성경을 읽고나면 같이 예배봅니다. 기도도 제법합니다.
:
: 남편이 6살부터는 어린이집을 보내라고 합니다. 같은 구역식구중에 어린이집 원장님이 있어서요. 저도 하반기부터는 일을 하라고 합니다.
:
: 아이들이 맑은데 흐리고싶지가 않는데 주위사람들이 사회성을 자꾸 말합니다. 교회에서도 잘놀고 합니다. 형제들이 많아서 괜찮은데 아이가 또래와 어울리지 않으면 뒤쳐질거란식의 이야기를 많이합니다.
: 아이들을 온실에서 키울거냐구요.
: 또 제가 일을 나가면 방학때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는 훤하구요.
: 이 사이트에서 많은걸 읽고 공감하다보니 어머니의 역할의 중요성을 많이 느겼어요.
: 물론 5살아이가 심심해 할때도 많이 있기는 합니다.
: 그래서 지하철타고 큰시장에 가기도 하고 집에서 여러체험학습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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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찍히 다른 자녀들도 홈스쿨을 하고싶지만 남편의 반대로 못하고 잇습니다.
: 남편이 머리이기에 순종하는데 맑던 아이들이 어두어져오는 것을 보면 많이 힘드네요.
: 그래도 목사님께서 네자녀들을 초등학교 보내신것을 보고 초등학교는 보내려고 하지요.
: 조은 사이트를 운영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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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성에 대한 오해
- '단어' 선택에서부터
어떤 단어를 대할 때도 기본적으로 단어의 뜻을 주목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성경의 사랑은 신앙에 유익하도록 도울 때를 말하는 것이니 '사랑 = 구원 = 예수'인데, 남녀 이성의 애정이나 육체로 사는 세상의 어려움을 돕는 '복지 = 구제 = 사랑'으로 내용을 바꾸면 성경과 신앙과 구원은 없어 지고, 두고 갈 세상 놀이가 됩니다.
- '사회성'이라는 표현
자기 자체의 실력과 함께 다른 사람과의 관계성이라는 것은 사람이 살아 가는 중요한 양면입니다. 자기 실력이 없는 사람의 사회성은 구걸이며 처참한 것입니다. 사회성은 없고 자기 실력이 좋은 사람은 외로운 호랑이입니다. 당장은 좋으나 멀리 보면 외톨이 독불장군입니다. 가진 실력을 써 먹지 못하게 되고, 주변을 전부 적이나 남으로 돌리게 됩니다. 그 끝이 좋지 못합니다. 실력과 사회성을 함께 가지게 된다면 이상적일 것입니다. 어릴수록 자기 실력만 실력으로 보게 되나 경험이 생기면 사회성이라는 것은 자기 주변을 자기로 만드는 것이니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도 없습니다.
우선 사회성이라는 것은 크게 4 가지 정도에 영향을 받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모르는 사람을 상대할수록, 주변 환경과 여건이 많이 변할수록, 시간이 흘러 갈수록 사회성은 늘어 갑니다. 몰라서 그렇지 고아원 출신 아이들은 대단히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사회성이 생깁니다. 반대로 유복한 가정에서 조용히 자란 이들은 50대라 해도 10 세의 고아만도 못합니다. 일반적 평가입니다. 문제는 고아의 사회성은 남을 활용하거나 악용하는 면으로 발전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이런 사회성은 반사회성이라고 말합니다. 유복하게 조용하게 자란 사람은 인사 예절 양보 순서 등 많은 면에서 굉장히 사회성이 있다고 보이는데 그 내용은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모르는 철부지 유치원의 잠꼬대여서 정작 결정적일 때 자기 인생 전부나 아니면 주변의 수 없는 사람을 낭떠러지에 던지는 불장난을 합니다.
- '우리의' 사회성
이 홈에서 질문하시니 최소한 우리의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안내합니다. 성경을 기준으로 신앙에 유익하도록 넓게, 멀리, 균형 있게 보며 사회성을 먼저 규정한 다음에 살펴 보겠습니다.
사회성의 가장 첫 걸음이요 기본은 신앙의 사회성이며 그 다음이 가정의 사회성입니다. 하나님을 상대하며 신앙 생활에 기본 면을 말합니다. 이 면은 신앙 자체가 좋은지 여부와 다른 면을 말합니다. 미신을 믿는 우리 조상들은 그 신은 허황 되었으나 그런 신도 신이라 해서 그 신에게 조심했고 정성을 다했습니다. 이 것이 신앙의 사회성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 생활을 하면서 미신의 귀신 앞에서도 하지 못할 정도로 막 가고 있습니다. 어른 앞에서도 민망하여 하기 어려운 일을 예배당, 예배 시간에, 강단 위에서도 하고 있습니다. 사회성의 근본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사회성의 둘째 걸음이 가정의 사회성입니다. 과거 학교가 없고 무식하고 가난하던 시절에는 부모가 있었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었으며 형과 동생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가정의 사회성이 뿌리채 내려 안고 있습니다. 없다 할 만한 세상입니다. '제 아버님의 성함은 홍 자, 길 자, 동 자입니다.'라는 이런 표현은 멋 있게 보이는지 아무나 흔하게 사용하는데 정작 내용적으로 부모를 대하는 기본 자세나 언행은 회사의 자기 윗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나 학생이 교수를 상대하는 것이나 장사가 손님을 상대하는 것과 비교하면 아주 허무한 정도입니다.
- 사회성이라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과의 관계를 말합니다. 낳아 주고 자기를 위해 몸을 다 바치는 '다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물건을 하나 사 가지고 가는 손님에게 대하는 것보다 더 고맙게 깍듯하게 대해야 하고, 내 돈을 받고 공부를 가르치는 학교 교사나 교수에게 대하는 것보다 더 존중하고 조심해야 하며, 내가 한 달 동안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댓가로 월급을 받는 회사의 윗 사람을 대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사회성이야 안 믿는 사람들이 모르니까 그냥 넘어 간다 해도, 부모 없는 사람은 없는데 부모와 가족과의 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이 골목 밖에 나가서 이웃과 회사와 학교와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두고 논한다는 것은 사회성이라는 단어를 두고는 언급할 자격도 없고, 또 그 것이 바로 될 리도 없습니다.
2) 진정한 사회성
- 그 시작은 가정
가정은 남자와 여자가 부모가 되어 시작합니다. 이 둘의 관계는 극단적입니다. 이 둘의 관계가 원만하다면 대문 밖에 그 어떤 사람을 상대해도 넉넉히 잘 상대할 수 있습니다. 부부 생활과 그 관계가 대충이니까 밖에서도 그런 것입니다. 가정은 부모와 자녀라는 극단적인 다른 세대가 살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가 정말 제대로 돌아 가고 있다면 이 아이는 사회 어디 내 놓아도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아이는 아직 결혼 전이지만 부모를 보면서 남녀의 극단적 차이와 그 둘의 조화를 배울 수 있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자기가 당사자입니다.
가정이 바로 되면 가정 사회성이 생기고, 모든 사회성의 근본이며 가장 어려운 가정 사회성이 바로 되면 대문 밖의 사회성이라는 것은 구구단 외운 사람에게 곱하고 나누기를 하듯 그렇게 쉽습니다. 가정과 사회가 다른 것처럼 되는 것은 가정교육의 실패입니다. 밥 주고, 같이 놀고, 대충 맞춰 주고, 자란 후에는 서로 바빠서 자기 생활을 하는 것으로 가정인 줄 알고, 이런 가정을 가정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가정의 사회성과 사회의 사회성이 다른 줄 아는 것입니다.
- 사회를 축소한 가정
아이를 두고 부모가 자기 가정을 자기 가정으로만 보지 말고 세상을 축소한 가정, 세상 사람들이 각계 각층으로 대표를 보내어 만든 가정이라고 보고 그렇게 아이를 교육하고 길러 본다면 기본적으로 학교를 가거나 군대를 가거나 어디 외국을 가 봐야 사회성이 자란다는 그런 이야기는 쉽게 입에 담지 못합니다.
부모가 가정에서 일반 가정의 그런 부모와 같은 부모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아이가 살아 가야 하는 평생에 그 아이보다 윗 사람을 상대할 때 그렇게 상대하면 어떤 불이익이 있는지, 어떤 앞 날에 상황이 전개 될지를 시간이 있을 때 차분하게 풀어서 실감 있게 대화를 하고 주입을 시켜야 합니다. 아버지가 사 온 장난감을 아이가 좋아 하지 않는다고 뿌리 치는 행동을 한다면 보통 달래어 수습에 바쁘거나 아니면 홧김에 혼을 낸다거나 하는 2 가지로 나타 납니다. 바로 이 가정이 가정 사회성의 개념이 없어 그 아이로 하여금 문 밖에 나갔을 때 가정과 다른 세계를 만나게 하며 그 세계에서 새로운 사회를 배워야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정도라면, 그런데 장난감 선물을 뿌리 친다면 그 자리에서든지 아니면 다음에 다른 기회에 그 아이를 앉혀 놓고 그 하나의 상황을 가지고 아버지가 회사에서 사장님이 사 주는 선물을 그렇게 했을 때 어떤 일이 생길지를 두고 대화하면 그 아이에게 사회성은 제대로 심는 것입니다.
-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자연계시
불신자의 관찰로도 자기를 다스린 자는 가정을 살릴 수 있고, 가족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 나라를 다스리며, 자기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사람이 천하를 조용하게 만들 수 있따는 결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상황을 제대로 살피면 가정마다 한두 명만 낳고 돈이 넘치고 전체 가족 단위에서 아이들이 귀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라 나는 과정에서 부모와 충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그 내면을 보면 과거 가정은 모든 여건이 어려운데 부모가 부모 자리에 있고 자식은 많은 식구들 중에 자기 자리를 알고 그 속에서 자라며 가족 내의 사회성을 제대로 익혔습니다. 요즘 아이들을 그대로 예전 가족 안에 갖다 놓는다면 순간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사회성의 최소한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하여 예전 사람은 가정에서 사회성의 기본을 거의 다 배운 다음에 문 밖으로 나갑니다. 문 밖에 나가서 배우는 사회라는 것은 한 번 겪어 보면 바로 알기 때문에 따로 사회성이라는 것을 따질 필요도 없었습니다.
- 사회성을 요약하면
윗 사람에게 잘못 대들면 여러 가지 손해가 있다는 것을 알고 미리 알아서 기는 것이니 부모 밑에서 가정 생활을 정상적으로 한 사람이면 가정에서 이미 익힐 일입니다. 사회성이란 아랫 사람에게는 반발을 고려하며 적당히 다스리는 것인데 가정에서 이런 면이 잘못 될 때 자기 속에서 어떤 마음이 생기는지를 스스로 보고 또 여러 친척들을 비교해 보면서 저절로 익히는 것입니다. 동료는 자기의 친구이면서 자기의 경쟁자이므로 우정과 견제를 소리 없이 잘 배합하는 것인데 가정에서 형제는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그런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이 것을 확대하면 아이들의 학교 생활이 되는데 교사들은 학교에서 한 반의 학생들을 상대해 보면 학생들의 가정 교육은 단번에 눈에 들어 오게 됩니다. 교사가 눈에 보이지 않고, 교사의 말을 우습게 알거나, 친구 관계 등에서 파행적 모습이 보이면 두 말 할 것도 없는 가정 교육 문제입니다. 가정 교육이 잘못 된 경우라 해도 예전에는 학교에서 일부라도 영향을 미쳐서 선도할 여지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가정 교육이 잘못 된 아이를 교사나 교장이나 학교라는 체제가 개입하여 선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반대로 가정 교육이 잘 된 좋은 아이들이 학교 생활을 거치면서 가족의 눈을 떠난 학교 내의 넓고 내밀한 세계에서 별별 잘못 된 것을 보고 듣게 되면서 나쁜 쪽으로 버리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 교사, 학교, 인성
바로 길러 놓은 아이를 교사가 자기 사상으로 아이들의 가치관을 물들이려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는 것이 현재 우리 나라 교육계의 현실입니다. 분명한 것은 현재 우리 나라의 교육계의 다수를 점령한 이들은 사상 단체입니다. 그들의 다른 면은 다 두고, 신앙을 두고는 기독교를 극단적으로 비판하는 이들입니다. 또한 이들은 나이가 많으면 무조건 구습에 기득권만 가지고 나쁜 사람이라고 인식을 심고 그 대신 젊은 사람은 무조건 창조적이며 발전적이며 양심적이라고 기초 지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 것이 사회성인가? 부모로부터 배운 것을 다 버리고, 교회의 신앙 지식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집단이 규정하고 그들의 주류에 휩쓸려야 사회성이 있다는 말이 나오는 정도입니다.
지금 서울시교육청은 초등학생이 파머를 하고 화장을 하고 옷을 업소 여자처럼 입고 동성연애를 해도 불이익을 주거나 눈치를 주지 말라는 방향으로 교육의 자유성 자율성 인간의 존엄성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잘못 된 것은 죄라고 하고 세상 것이라 해도 자연스러운 것을 거스리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1 %가 세상의 가치와 법과 제도와 방향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세상이란 갈수록 악화 됩니다. 원리가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성이라는 단어는 그 단어 자체가 대단히 조심해야 할 표현입니다. 사회성이라는 표현이 예전의 부모들이 학교를 다닐 때 생각한 사회성인지 아니면 이미 그 내용이 정반대로 바뀌어 있는지도 봐야 합니다. 답변자 생각으로는 거의 모든 것이 다 뒤집어 져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이라도 어른 말은 좀 들어 본 다음에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그리고 살펴서 건의도 하며 신중히 자기 안을 밀고 나가야 지혜롭고 서로에게 좋고 어린 사람에게도 유익한 법입니다.
3) 실무적으로
- 예전의 경우
답변자의 20대 초반에 군생활을 했습니다. 사회성이라는 표현과 관련하여 나온 첫 단어는 술과 담배였습니다. 전혀 할 수 없다고 딱 잘라 버리니까 단번에 주변에서 '네 특별한 상황은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사회성이 그렇게 없으면 네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 그들이 처음에는 협박으로 다그치다가 단호하게 나가니까 강제로 해서 될 상황이 아님을 알고 진심으로 좋게 걱정해 준 이야기입니다. 당시 남자들의 세계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 술 한 잔과 담배 하나를 권하면서 바로 친하게 됩니다. 이 것을 그들은 사회성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 대신 윗 사람에게 조심하고 아래 사람을 살피고 동료 사이에 의리와 여러 면을 조정하는 것은 술 담배를 하지 않던 답변자가 훨씬 좋았습니다. 바로 이런 면 때문에 그들이 답변자의 개인 상황은 나쁘지 않고 좋게 보고 있었으나 문제는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내면을 보여 줄 기회가 없이 바로 잠깐 상대하고 헤어 져야 할 일이 있는데 얼마나 손해를 많이 보겠느냐는 충고였습니다.
- 유대인의 경우
유럽 역사에서 나찌 외에도 유대인들은 'Jewish'라는 유대인 표현 하나에 목숨을 걸 때도 있고 평생 모은 재산을 몰수 당한 적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처음 만나는 이에게 'I'm a Jew.'라는 표현을 앞에 내놓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들은 일반 개념으로 생각할 때 사회 생활에서 가장 불리한 자기 약점을 먼저 드러 냅니다. 그런데 현재 세계는 그들의 손에 있습니다. 구약만 믿는 그들이 세상만 보고도 그렇게 하는데 믿는 우리는 사회생활에 적합한 사회성, 이 단어를 놓고 그 단어 안에 있는 내용을 심각히 먼저 따지지 않고 그냥 사회성이라는 표현과 분위기에만 따라 가다 보면 나중에 엉뚱한 사람이 된다는 점을 먼적 살폈으면 합니다.
- 현재 우리 환경에서 본다면
아이의 사회성을 위해 만일 부모가 의지가 있고 지식이 있다면 아이의 사회성을 위해서는 학교를 보내지 말아야 할 상황입니다. 아이들이 자기 또래 아이들이 전부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고 게임을 하고 또 그들 세계를 휩쓰는 유행에 노출 될 때 그런 것을 다 이겨낼 수가 있는가? 옛날의 아이들이 고무줄로 놀고 술레잡기를 하며 노는 것은 훗날에 추억이 될 수가 있으나 요즘 아이들이 알고 듣고 말하고 손에 익히고 눈과 머리에 담아 두는 것은 결혼한 부부끼리도 문을 닫아 놓고 봐야 할 정도의 것입니다. 한 번 담고 나면 빠져 나갈 수 없는 것, 이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한 것을 굳이 보고 그 것을 이겨야 하는가? 이런 회의를 느낍니다.
그런 세계를 피하고 싶어도 이제는 대로에 TV에 옷에 모든 종류의 책에까지 깔아 놓았기 때문에 외면을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그렇게 피할 수 없는 것만 듣고 봐도 세상의 나쁜 것은 충분히 파악이 될 터인데 10대의 아이들이 그들 세계의 엉망이며 파행적인 것을 부모가 버젓이 허락하고 오히려 북돋우고 교사가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이성에 눈을 뜨도록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세계를 알면서 일부러 그 곳에 풀어 놓는다는 것은 그 아이가 아주 훌륭하여 요셉 같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실수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교회와 신앙과 성경과 우리 믿어 온 기독교 자체를 요즘 세상식으로 바꾸든지, 그렇게 바꿀 수 없다면 부모가 자기 손으로 아이 수준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세상에 밀어 넣는 일은 대단히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일입니다. '사회성'이 문제라면 답변자 생각에는 더더욱 학교를 보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보내야 한다면 세상이 어디까지 미쳐 있는지를 아이에게 겪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역사이니 거부를 할 수 없어 마치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간 다니엘처럼 애굽의 바로 왕궁에 들어 가 살아야 하는 모세처럼 보내지 않을 수 없으면 보내되, 그러나 모세에게는 어머니의 지혜와 신앙이 늘 모세를 지켜 보고 있었고 다니엘은 어려도 스스로 천하를 맞설 수 있었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처럼 자기 가진 세상 지식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세상 공부를 하고 그 공부를 주 위해 버린다면 찬성을 할 수 있겠으나 세상 지식이 좋아서 세상 지식을 위해 신앙을 손해 보는 사람들이 겉으로 말할 때는 주를 위해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인물이 나와야 하고 또 지식이 출중하면 복음을 위해 유익하지 않겠느냐고 논리를 세우나 그런 사람들은 나중에 세상에 빠져 신앙을 버렸지 신앙을 위해 세상과 자기 세상 지식을 버릴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다니엘 요셉 모세와 같은 사람은 외국 나라를 자원해서 유학을 간 것이 아니라 보내 졌기 때문에 가서 살았고, 그 곳이 하나님 주신 환경이어서 그 현실 속에서 하나님 붙들고 다시 세상을 버리고 나온 것입니다. 지금 세상을 좀 멀리 할 수 있는데도 세상 속으로 들어 가는 것은 소돔을 향한 롯이며, 모압을 향한 나오미 가족입니다.
4) 문제는
학교만 가지 않으면 다 해결이 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학교만 가면 해결이 다 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죄 지을 인간은 집에 가둬 놓고 살아도 어떻게라도 다 습득하게 되고, 가정에서 많이 눌러서 지연을 시켜 놓으면 나중에 댐이 터지듯 한 번에 큰 사고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리 물에 가서 수영을 하고 물을 익히라고 해 놓으면 한 여름 어느 날에 아이가 물에 빠져 시체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아이와 가정 여건과 신앙과 제반 상황을 봐 가며 결정해야 할 일입니다. 최소한 사회성 문제는 전혀 상관 없다는 점을 먼저 설명하고 싶습니다.
요약하면
- 사회성은 가정의 부모의 손에 가장 많이 달려 있습니다.
- 교회를 다니는 학생은 교회에서 일반 사회성을 대폭 보충할 수 있습니다.
- 일반 세상이 요즘 기준으로 말하는 사회성은 반사회성이라 할 만한 상황이 심각합니다.
- 다만 피치 못할 경우는 하나님의 인도라고 믿고 잘 지도하며 거쳐야 합니다.
- 모든 것은 한 아이 별로 부모가 결정할 일입니다.
>> 아이엄마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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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살 막내를 둔 다자녀엄마입니다.
: 남편의 의견으로 올해 병설 유치원에 보냈지만 아이가 가기싫어하고 갑자기 아토피가 생겨 그만두었습니다.
: 집에서 두란노 어린이성경을 50-100페이지정도 읽어주고 성경암송도 합니다. 찬송가cd(1993년에 산것)와 유니게 성경암송 cd를 하루종일 틀어놓습니다.
: 2-3시되면 9살 형이 오면 같이 딱지치기하고 놉니다.
: 자기전에 형이 저와 성경을 읽고나면 같이 예배봅니다. 기도도 제법합니다.
:
: 남편이 6살부터는 어린이집을 보내라고 합니다. 같은 구역식구중에 어린이집 원장님이 있어서요. 저도 하반기부터는 일을 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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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맑은데 흐리고싶지가 않는데 주위사람들이 사회성을 자꾸 말합니다. 교회에서도 잘놀고 합니다. 형제들이 많아서 괜찮은데 아이가 또래와 어울리지 않으면 뒤쳐질거란식의 이야기를 많이합니다.
: 아이들을 온실에서 키울거냐구요.
: 또 제가 일을 나가면 방학때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는 훤하구요.
: 이 사이트에서 많은걸 읽고 공감하다보니 어머니의 역할의 중요성을 많이 느겼어요.
: 물론 5살아이가 심심해 할때도 많이 있기는 합니다.
: 그래서 지하철타고 큰시장에 가기도 하고 집에서 여러체험학습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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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찍히 다른 자녀들도 홈스쿨을 하고싶지만 남편의 반대로 못하고 잇습니다.
: 남편이 머리이기에 순종하는데 맑던 아이들이 어두어져오는 것을 보면 많이 힘드네요.
: 그래도 목사님께서 네자녀들을 초등학교 보내신것을 보고 초등학교는 보내려고 하지요.
: 조은 사이트를 운영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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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양육문제
5살 막내를 둔 다자녀엄마입니다.
남편의 의견으로 올해 병설 유치원에 보냈지만 아이가 가기싫어하고 갑자기 아토피가 생겨 그만두었습니다.
집에서 두란노 어린이성경을 50-100페이지정도 읽어주고 성경암송도 합니다. 찬송가cd(1993년에 산것)와 유니게 성경암송 cd를 하루종일 틀어놓습니다.
2-3시되면 9살 형이 오면 같이 딱지치기하고 놉니다.
자기전에 형이 저와 성경을 읽고나면 같이 예배봅니다. 기도도 제법합니다.
남편이 6살부터는 어린이집을 보내라고 합니다. 같은 구역식구중에 어린이집 원장님이 있어서요. 저도 하반기부터는 일을 하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맑은데 흐리고싶지가 않는데 주위사람들이 사회성을 자꾸 말합니다. 교회에서도 잘놀고 합니다. 형제들이 많아서 괜찮은데 아이가 또래와 어울리지 않으면 뒤쳐질거란식의 이야기를 많이합니다.
아이들을 온실에서 키울거냐구요.
또 제가 일을 나가면 방학때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는 훤하구요.
이 사이트에서 많은걸 읽고 공감하다보니 어머니의 역할의 중요성을 많이 느겼어요.
물론 5살아이가 심심해 할때도 많이 있기는 합니다.
그래서 지하철타고 큰시장에 가기도 하고 집에서 여러체험학습도합니다.
솔찍히 다른 자녀들도 홈스쿨을 하고싶지만 남편의 반대로 못하고 잇습니다.
남편이 머리이기에 순종하는데 맑던 아이들이 어두어져오는 것을 보면 많이 힘드네요.
그래도 목사님께서 네자녀들을 초등학교 보내신것을 보고 초등학교는 보내려고 하지요.
조은 사이트를 운영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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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 막내를 둔 다자녀엄마입니다.
남편의 의견으로 올해 병설 유치원에 보냈지만 아이가 가기싫어하고 갑자기 아토피가 생겨 그만두었습니다.
집에서 두란노 어린이성경을 50-100페이지정도 읽어주고 성경암송도 합니다. 찬송가cd(1993년에 산것)와 유니게 성경암송 cd를 하루종일 틀어놓습니다.
2-3시되면 9살 형이 오면 같이 딱지치기하고 놉니다.
자기전에 형이 저와 성경을 읽고나면 같이 예배봅니다. 기도도 제법합니다.
남편이 6살부터는 어린이집을 보내라고 합니다. 같은 구역식구중에 어린이집 원장님이 있어서요. 저도 하반기부터는 일을 하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맑은데 흐리고싶지가 않는데 주위사람들이 사회성을 자꾸 말합니다. 교회에서도 잘놀고 합니다. 형제들이 많아서 괜찮은데 아이가 또래와 어울리지 않으면 뒤쳐질거란식의 이야기를 많이합니다.
아이들을 온실에서 키울거냐구요.
또 제가 일을 나가면 방학때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는 훤하구요.
이 사이트에서 많은걸 읽고 공감하다보니 어머니의 역할의 중요성을 많이 느겼어요.
물론 5살아이가 심심해 할때도 많이 있기는 합니다.
그래서 지하철타고 큰시장에 가기도 하고 집에서 여러체험학습도합니다.
솔찍히 다른 자녀들도 홈스쿨을 하고싶지만 남편의 반대로 못하고 잇습니다.
남편이 머리이기에 순종하는데 맑던 아이들이 어두어져오는 것을 보면 많이 힘드네요.
그래도 목사님께서 네자녀들을 초등학교 보내신것을 보고 초등학교는 보내려고 하지요.
조은 사이트를 운영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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