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 2. 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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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씀 2. 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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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회의 말씀 세계

- '성경적'이라는 표현

제대로 된 교회는 어디나 '성경적'이라는 표현을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회의 '성경적'과 타 교회들의 '성경적'이라는 표현은 근본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공회의 '성경적'이라는 표현에는 원어와 어떤 신학서도 참고하지 않을 때를 말합니다. 정상적이며 정통 노선을 견지하는 교회치고 '신학'을 부정하고 '원어'를 부정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공회는 성경 한 권만 가지고 전부를 삼았습니다.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신 이상 타 독서나 타 학문과 달리 신앙 세계만은 성경 하나면 그 저자이신 하나님으로 다 해결이 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야 말로 극단에서도 극단일 것입니다.


타 노선의 '성경적'은 성경을 목표로 하며 중심에 둔다는 상징적 의미입니다. 실제 실행적 물리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공회의 성경적은 성경 안으로 들어 가고, 타 노선의 성경적은 성경의 최 외곽을 돌고 있는 위성적 개념입니다. 따라서 공회와 타 노선의 비교에서 '신학'이라는 이름을 평범하게 사용하는 교단 또는 실제로 여러 신학서를 접하는 노선들과 공회의 비교는 '성경:신학'의 구도로 비교가 되기 때문에 성경에 대한 집중 순도와 성경을 접하는 절대 시간에 있어서 공회와 비교가 될 수 없습니다.


신학지상주의 또는 신학절대주의에 빠진 일반 관념을 가진 분들을 위해 한 말씀을 더 드리고 나간다면 '신학'이라는 표현의 '학'은 여러 학자의 설명을 살피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인간의 것은 당연히 그렇게 할수록 지혜롭고 효용이 있지만 하나님 저자인 성경을 그렇게 대하는 순간 그 접근은 하나님과 멀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학의 이상과 목표와 그 내용이 비록 '성경'에 있다고 하나 학문이란 손을 대는 순간부터 성경 자체보다 신학의 학을 접해야 하는 시간과 독서 분량이 더 많아 집니다. 하나님이 저자인 성경의 경우는 성경을 직접 접하는 것과 성경을 읽은 사람의 책을 통해 다시 성경으로 돌아 오는 방법은 비교 자체가 곤란해 집니다.


- 성경의 깊이

성경 그 자체를 상대한다 해도 암기력이 좋고 시간이 있는 사람은 성경을 거의 다 외울 수 있습니다. 기계적으로 외운 것 그 자체가 성경을 더 안다고 표현한다면 신앙은 녹음기가 제일 앞 설 것이고 그 다음에는 선천적 암기 능력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을 막아 놓기 위해 성경 기록의 원칙 중 하나는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성경의 내용을 깨닫는 면은 불가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깨달았다 하는 말을 하기는 쉽습니다.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성령의 감화 역사는 내증이기 때문에 객관화가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열매로 나무를 아는 방법 하나와 성경의 전체가 한 성경의 깨달음을 스스로 검증하도록 만들어 두셨습니다.


성경의 깊은 곳으로 들어 가는 것은 누구든 노력하고 그렇다고 말할 수 있으나 실제 그렇게 되었는지 여부는 성경 전체와 맞춰 볼 때 바로 검증이 됩니다. 성경은 단일성의 하나님께서 단일성으로 기록했으니 이를 진리성이라고도 합니다. 어느 한 부분을 아무리 깊게 들어 가도 다른 부분에서 모순이 나오면 잘못 된 것입니다. 저자이신 성령의 인도가 아니고는 성경의 겉을 열고 안으로 들어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성경만 가지고 깨닫고 간 종들은 더러 있습니다. 최권능 목사님과 같은 분들은 신학교의 공부 시간을 앉아 있지 못하고 시내로 튀쳐 나가 복음을 외쳤습니다. 또 시골 무식한 이들은 성경만 읽고 자기 현실에서 실행으로 살았습니다. 김현봉 목사님과 같은 분들도 신학은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시대의 유명한 주남선 손양원 주기철 목사님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런데 성경만으로 사는 것은 끝까지 견지했으나 그 교훈의 전체를 맞춰 보면 그 깊이는 쉽게 비교할 수 있습니다. 최권능 목사님보다는 김현봉 목사님이, 그리고 그보다는 백영희 노선의 깊이는 비교가 곤란할 만큼 깊습니다. 현재까지 나타 난 어떤 노선과 비교해 봐도 그렇습니다. 사람의 노력과 능력으로 갈 수 있는 세계가 아닌 세계, 그 세계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걸어 갈 그 길의 한계는 그 뒤를 따르는 우리에게 단숨에 달려 갈 길이 된다는 점에서 신앙 노선의 역량이라 할 것입니다.


2. 공회의 실행 세계

- 실행의 오도

말씀은 알고 실행이 없다는 말은 기독교를 비판하는 무신론 반신론자들로부터 좌익 공산주의까지 교회를 비판할 때 들고 나오는 말입니다. 그들은 기독교인의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을 돌려 대지 않는다면서 그런 말을 합니다. 성경의 말씀과 그 실행은 작은 죄인을 큰 죄인 만드는 것으로 오해한 것인데 오해가 아니라 실은 악용입니다. 문제는 교회가 그런 말을 들으며 자각을 하고 5 리를 가자면 10 리를 간다고 나섰다는 사실입니다. 외부의 적기독이 내부의 적기독을 만들어 안팎에서 귀신 놀음을 하며 굿판을 벌이는 일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제 교회의 최고 중심에 있다는 정통 보수 교단들까지 결국 이런 놀음에 삼켜 장단을 맞추고 있습니다.


- 신앙의 근본 실행

공회는 누가 뭐라 하든지 그런 데 흔들리지 않습니다. 공회의 실행은 말씀에 대한 실행입니다. 말씀 전부를 다 지켜야 하지만 인간의 부족으로 한꺼번에 다 지킬 수가 없어 가장 급한 것 중요한 것 그리고 누구든지 마음 먹으면 실행할 수 있는 지극히 작은 것부터 실행을 했습니다. 십계명은 모르는 교회가 없고 신앙의 근간입니다. 일제 신사참배와 6.25 전쟁을 통해 공회는 한국교회사에 유래 없는 고난 속에 평소 신앙 생활을 그대로 다 했습니다. 신사참배 때는 주일학생까지 전 교인이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해방을 맞았고, 전시에는 한국의 모든 지도자가 다 도망 갈 때 공회 교인들은 평소처럼 예배 드리고 주교 학생까지 인민군들에게 전도할 정도였습니다. 그 어떤 실행보다 이런 실행을 통해 순교자도 순생자도 대거 배출이 되었고 그 것이 너무 당연하여 연구도 책자화도 심지어 전달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나왔습니다. 모두가 다 그렇게 살았으므로 자기 이야기였으니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공회의 실행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교회를 교회로, 신앙의 대상이 어지러 지고 잘못 되는 이런 1계명 2계명에 대한 문제들 즉 신앙의 초보며 근간이며 타협과 고려의 여지가 없는 실행에 있어 아무리 비교해 봐도 현존의 교회들과 비교하면 확연하게 실행을 하는 교회입니다. 시대적 양대 환란 외에도 평소 생활 속에서 제사나 주일이나 예배 때문에 당하는 공회 교인들의 평소 고난은 한국교회 신사참배 출옥성도들이 감탄해 마지 않은 정도입니다.


- 실행의 작은 출발

믿는 사람이면 그 누구라도 바로 실행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며 생활 속에 당연한 것이 있습니다. 여자로 말하면 일찍 결혼해서 아이 많이 낳는 것입니다. 오늘 시대의 풍조에 휩쓸려 이런 실행 같지도 않은 실행조차 큰 실행처럼 여겨 지는 것이 한탄스럽습니다만 굳이 다른 노선과 비교하라 한다면 바로 이런 실행이 그 어떤 큰 실행보다 중요합니다. 지극히 작은 것이 충성 된 자는 지극히 큰 것에도 충성 되는 이치입니다. 남자라면 곡괭이 들고 얼굴에 땀이 나도록 땅을 파고 지게를 지고 노동 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제대로 믿고 살려고 한다면 사실 남의 세상, 남의 세계, 이 땅 위에서 제대로 대접 받고 즐기고 누리고 살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대부분 교인들은 가장 험하고 고 된 일을 하게 됩니다. 공회는 이런 면에 있어 어느 교회보다 경쟁력이 있습니다.


3. 공회의 경쟁력


- 목회자로 예를 들면

경쟁력 같은 단어는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만, 굳이 표현하자면 공회가 다른 노선의 교인이나 목회자들과 비교할 상황이라면 공회의 강점은 첫째 성경을 많이 읽고 접하는 시간이 확실히 많기 때문에 대개 영안이 밝은 편이고, 성경 외의 것은 신학이든 일반 책이든 확실하게 접하는 것이 적어 그만큼 오염과 어두움을 많이 걷어 냈다는 것입니다. 공회의 두 번째 강점은 말씀 그대로 실행하되 신사와 하나님, 무신론과 신앙, 주일과 세상 일 등을 두고 신앙의 근본 문제이므로 단호하게 지켜 나온 역사가 타 교회와 비교하면 탁월하고 또한 그 반대 면이라 할 정도의 생활 속에 사소한 문제 즉 땀 흘려 일하고 아이 낳는 그런 평소 사소한 문제를 두고 말씀대로 살면서 희생과 손해를 당연히 생각하며 말씀의 생활화가 된 점입니다.


목회자의 경우 다른 교인들보다 그 비교가 쉬운데 타 교단의 목회자들은 공회 목회자의 생활처럼 생활을 하게 하면 다 두고라도 땀 흘려 일하고 자기 가정 하나의 일상 생활에서 견디지 못합니다. 목회자의 양성 과정이 타 교단과는 전혀 달리 별도의 양성 과정이 없고 교인 생활을 잘하는 것을 보고 교인 생활을 잘하는 사람을 목회자로 바로 임명하기 때문입니다. 신학이나 어떤 체제를 통해 만들어 지지 않습니다. 교인으로 가장 교인답게 제대로 교인 생활을 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앞으로 목회자가 될 가장 좋은 교인이고 그에게 사명이 주어 졌을 때 바로 목회자 이름을 붙이고 출발합니다.


땅을 제일 잘 파는 사람이 교인보다 목사고, 제일 고생 가운데 믿어 본 사람이 목사고, 가장 어려운 가운데도 끝까지 믿고 나갈 사람이 목사고, 세상을 가장 많이 잘 버려 보고 믿었던 사람이 목사입니다. 백 목사님의 후계자로 공식 거명 되었던 유일한 인물이 서영준 목사님이었는데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1970년대 초반에 사시 1차를 간단히 합격하고 나가던 차에 백 목사님은 불러서 노동과 좌판 장사를 시켰습니다. 서 목사님은 막노동을 제일 잘했던 분이고 골목에서 물건 파는 보다리 장사를 제일 잘한 분입니다. 그 분의 학벌과 세상 실력은 공회에서는 쓰일 곳도 없고 기회도 없습니다. 그 분과 1977년 여름에 함께 짐을 져 볼 기회가 있었는데 도저히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공회의 저력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백 목사님만큼 건설 노동 현장에서 일을 잘하는 분은 없습니다. 서부교회의 건축물은 당시 한국 내 건축물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조건에서 지어 졌다고 했는데 그 설계에서부터 그 건물을 위해 세멘과 모래를 배합하고 삽자루 끝이 움직이는 것까지 그는 가장 말단의 노동자의 노동 자세와 지게 지는 법과 노동 실무에 선생이었습니다. 당시 서부교회에는 건축업을 하는 각계각층 교인이 많았으나 그 분의 지시에는 입만 벌리고 감탄하며 순종할 뿐이었습니다. 교인들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고생하는 말단 노동과 장사하는 그 수고를 모두 다 겪어 보고 그런 속에서 배운 말씀을 실제 실행해 보고, 그리고 이 것을 신앙의 첫 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이 되지 않고 앞으로 질주하는 신앙을 공회에서는 신앙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생존, 사회의 근간, 가정의 기초, 신앙의 초보, 믿는 사람의 첫 발자욱에 대해 공회는 강합니다. 타 교단 신학자 목사님 유명한 성자 성녀들과 직접 비교할 일은 많았습니다. 공회는 솔직하게 성경 하나밖에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이고, 배운 대로 실행하는 우직한 곳입니다. 타 분야에서는 아주 미개하고 뒤떨어 질 불리한 사안이 신앙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기 좋은 조건만 모여 졌습니다. 공회의 역량은 여기에 있습니다. 타 교단 출신으로서는 목회자 신학자 교단의 지도자 수준의 인물들조차 첫 발을 딛기 어려워 망설이는 곳입니다. 합동에 유명한 목사님 한 분이 공회에 오셨다 몇 달도 채우지 못하고 솔직히 힘이 들어 안 되겠다고 하고 돌아 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주제연구' 방에 어느 분이 좋은 면으로 체험담을 적어

부끄러웠습니다만 사실 객관적으로 본다면 그렇게 설명하는 것이 맞습니다.


>> 신학도 님이 쓰신 내용 <<

:

: 백목사님의 성경과 설교 실력은 신학자나 교단 중진들이 경이롭게 평가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한국 최고라 하고 어떤 분들은 세계적이라고 하고 어떤 분들은 역사적이라고 합니다. 교단 중진 어른들은 한국 최고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하고 세계적이나 역사적이라는 말은 신학자들 입에서 나오는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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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궁금한 것은 공회 신앙의 저력입니다. 공회의 내분이 격화된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으나 그것 때문에 백목사님의 권위를 낮추는 경우는 없다고 보입니다. 공회 신앙의 저력을 실감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단의 지도급 목회자들이 사석에서 진지하게 '우리는 공회 목사 말단에도 가지 못해'라고 말할 때는 한동안 멍했습니다. 저렇게 훌륭한 분들이 솔직하게 말할 때 까마득한 후배인 저희는 어리둥절합니다. 어떤 분들은 공회 출신교인이 자기 교회를 다닌다고 하시면서 평소 생활을 소개하는데 부목들은 근방에도 가지 못할 정도라고 합니다. 말을 못해서 그렇지 신앙으로는 목회자도 존경스러울 뿐이라고 합니다.

:

: 공회 신앙의 근본 저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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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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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 신앙의 근본 저력은 어디에 있는가?
백목사님의 성경과 설교 실력은 신학자나 교단 중진들이 경이롭게 평가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한국 최고라 하고 어떤 분들은 세계적이라고 하고 어떤 분들은 역사적이라고 합니다. 교단 중진 어른들은 한국 최고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하고 세계적이나 역사적이라는 말은 신학자들 입에서 나오는 것같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공회 신앙의 저력입니다. 공회의 내분이 격화된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으나 그것 때문에 백목사님의 권위를 낮추는 경우는 없다고 보입니다. 공회 신앙의 저력을 실감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단의 지도급 목회자들이 사석에서 진지하게 '우리는 공회 목사 말단에도 가지 못해'라고 말할 때는 한동안 멍했습니다. 저렇게 훌륭한 분들이 솔직하게 말할 때 까마득한 후배인 저희는 어리둥절합니다. 어떤 분들은 공회 출신교인이 자기 교회를 다닌다고 하시면서 평소 생활을 소개하는데 부목들은 근방에도 가지 못할 정도라고 합니다. 말을 못해서 그렇지 신앙으로는 목회자도 존경스러울 뿐이라고 합니다.


공회 신앙의 근본 저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배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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