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구원 건설구원과 시간으로 구원을 나누는 것의 차이점을 알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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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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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4 00:00
일반적으로 구원을 구분할때 과거(칭의 중생 자녀됨) - 현재(성화) - 미래(영화)
로 시간의 순서대로 구분합니다.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에도 정통기독교의 구원을 과거 - 현재 - 미래로 구분하는
시간성의 개념이 내포되어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영인목사님께서는 정통기독교에서 시간으로 구원을 구분하는 것으로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본질에 많이 부족하다고 표현하신것을 얼핏본것같습니다.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은 시간의 개념보다는 은혜와(칼빈주의) 행위(알미니안)로 구원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설명되어진부분이 많은것입니까?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시간의 개념으로만(과거 현재 미래) 설명한것이 아니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싶습니다.
일반교단에서 자칫 잘못하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의개념으로만
이해하기 쉬울것 같습니다.
로 시간의 순서대로 구분합니다.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에도 정통기독교의 구원을 과거 - 현재 - 미래로 구분하는
시간성의 개념이 내포되어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영인목사님께서는 정통기독교에서 시간으로 구원을 구분하는 것으로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본질에 많이 부족하다고 표현하신것을 얼핏본것같습니다.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은 시간의 개념보다는 은혜와(칼빈주의) 행위(알미니안)로 구원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설명되어진부분이 많은것입니까?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시간의 개념으로만(과거 현재 미래) 설명한것이 아니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싶습니다.
일반교단에서 자칫 잘못하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의개념으로만
이해하기 쉬울것 같습니다.
시간 흐름은 이미 알려졌고, 은혜와 행위의 문제가 문제였습니다.
5백 년 이상 상식이 되어 온 '구원론'은, 이미 중생하므로 중생이라는 것이 과거가 된 사람에게는 성화라는 현재가 진행 된다는 것이었고, 미래 어느 날에 죽으면 천국에서 영원히 영화롭게 살 몸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시간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가지고 구원을 살펴 본 것은 칼빈 이후 장로교에서는 상식이었습니다.
중생, 성화, 영화라는 3 단계를 5백 년 전에 미리 다 공개를 해 놓았으므로 이 3 가지를 과거 구원과 현재 구원과 미래 구원이라는 이름을 새로 붙여 마치 새 것을 깨달은 것처럼 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습니다. 내용이 같으면 먼저 깨닫고 가르친 선배의 표현을 존중하는 것이 사은에도 옳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혼동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과거 현재 미래 구원을 말하는 분들은 기존 정통의 구원론의 중생 성화 영화는 시간적으로 진행하는 구원론의 내용을 말한 것이라고 한 마디만 하면 되는 일입니다. 단 한 줄이면 끝날 설명을 가지고 구원론의 새 역사를 적은 듯이 저서들을 쏟아 놓으면 참으로 황당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이 과거 현재 미래 구원을 설명하는 분들의 내용이 중생 성화 영화의 관계가 단순히 시간의 선후 문제가 아니라 중생은 이미 받았으니 염려하지 말고, 영화는 성화의 뒤에 무조건 따라 오는 것이니 이도 염려할 것이 아니며, 우리 성도의 재세 기간에 목숨 바쳐 전력할 일은 중생한 우리에게 맡겨 진 우리의 매 현실의 신앙 투쟁 문제고 이 문제는 각자 스스로 충성과 희생한 행동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5백 년의 구원론과 차이가 나는 문제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차이가 아니라 은혜로 주어진 것과 내 노력으로 해야 할 것이 구원론의 수천 년 난제인 '은혜'와 '행위'의 차이인 것입니다. 이 난제를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으로 해결하고 설명해 놓았는데, 이 노선의 수고를 엿 본 분들이 시간 개념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슬픈 것입니다.
>> 동천교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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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구원을 구분할때 과거(칭의 중생 자녀됨) - 현재(성화) - 미래(영화)
: 로 시간의 순서대로 구분합니다.
: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에도 정통기독교의 구원을 과거 - 현재 - 미래로 구분하는
: 시간성의 개념이 내포되어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하지만 이영인목사님께서는 정통기독교에서 시간으로 구원을 구분하는 것으로는
: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본질에 많이 부족하다고 표현하신것을 얼핏본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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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은 시간의 개념보다는 은혜와(칼빈주의) 행위(알미니안)로 구원을
: 이해하는 측면에서 설명되어진부분이 많은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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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시간의 개념으로만(과거 현재 미래) 설명한것이 아니라고 하신 이유가
: 무엇인지 알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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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교단에서 자칫 잘못하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의개념으로만
: 이해하기 쉬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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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백 년 이상 상식이 되어 온 '구원론'은, 이미 중생하므로 중생이라는 것이 과거가 된 사람에게는 성화라는 현재가 진행 된다는 것이었고, 미래 어느 날에 죽으면 천국에서 영원히 영화롭게 살 몸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시간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가지고 구원을 살펴 본 것은 칼빈 이후 장로교에서는 상식이었습니다.
중생, 성화, 영화라는 3 단계를 5백 년 전에 미리 다 공개를 해 놓았으므로 이 3 가지를 과거 구원과 현재 구원과 미래 구원이라는 이름을 새로 붙여 마치 새 것을 깨달은 것처럼 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습니다. 내용이 같으면 먼저 깨닫고 가르친 선배의 표현을 존중하는 것이 사은에도 옳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혼동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과거 현재 미래 구원을 말하는 분들은 기존 정통의 구원론의 중생 성화 영화는 시간적으로 진행하는 구원론의 내용을 말한 것이라고 한 마디만 하면 되는 일입니다. 단 한 줄이면 끝날 설명을 가지고 구원론의 새 역사를 적은 듯이 저서들을 쏟아 놓으면 참으로 황당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이 과거 현재 미래 구원을 설명하는 분들의 내용이 중생 성화 영화의 관계가 단순히 시간의 선후 문제가 아니라 중생은 이미 받았으니 염려하지 말고, 영화는 성화의 뒤에 무조건 따라 오는 것이니 이도 염려할 것이 아니며, 우리 성도의 재세 기간에 목숨 바쳐 전력할 일은 중생한 우리에게 맡겨 진 우리의 매 현실의 신앙 투쟁 문제고 이 문제는 각자 스스로 충성과 희생한 행동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5백 년의 구원론과 차이가 나는 문제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차이가 아니라 은혜로 주어진 것과 내 노력으로 해야 할 것이 구원론의 수천 년 난제인 '은혜'와 '행위'의 차이인 것입니다. 이 난제를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으로 해결하고 설명해 놓았는데, 이 노선의 수고를 엿 본 분들이 시간 개념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슬픈 것입니다.
>> 동천교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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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구원을 구분할때 과거(칭의 중생 자녀됨) - 현재(성화) - 미래(영화)
: 로 시간의 순서대로 구분합니다.
: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에도 정통기독교의 구원을 과거 - 현재 - 미래로 구분하는
: 시간성의 개념이 내포되어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하지만 이영인목사님께서는 정통기독교에서 시간으로 구원을 구분하는 것으로는
: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본질에 많이 부족하다고 표현하신것을 얼핏본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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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은 시간의 개념보다는 은혜와(칼빈주의) 행위(알미니안)로 구원을
: 이해하는 측면에서 설명되어진부분이 많은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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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시간의 개념으로만(과거 현재 미래) 설명한것이 아니라고 하신 이유가
: 무엇인지 알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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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교단에서 자칫 잘못하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의개념으로만
: 이해하기 쉬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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