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그 인도를 따라 가다가 생긴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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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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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2 00:00
1. 백영희 신앙 노선과 지역
- 하나님의 인도
하나님이 먼저 결정하고 우리는 뒤를 따르는 것이 옳은가, 우리가 결정하면 하나님은 사후 보고를 받고 또 우리가 결정한 일을 우리가 추진할 때 하나님은 뒤에서 돕는 후원이 옳은가? 앞의 경우가 믿음일 것입니다. 아마 이 문제를 부인하는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신앙 생활에서 하나님의 결정을 항상 먼저 살피고 그 뜻을 알고 난 후에 순종하며 따라 가는 걸음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공회는 처음부터 그렇게 출발했고 현재도 그런 면을 유지하는 곳만 내부적으로 공회라고 합니다. 공회의 이름에 들어 있는 뜻이 그렇습니다.
- 지역과 교회
하나님께서 옮긴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공회는 인민군의 남하를 듣고서도 또는 빨치산 점령 치하조차도 옮기지 않고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6.25 전쟁에 피난을 못 간 교회 지도자 이야기는 있으나 피난을 가지 않은 지도자 이야기는 주남선 손양원 목사님 정도 외에는 없습니다. 공산치하의 상황을 알면서도 가지 않은 분은 손양원 한 분 정도입니다. 공회 초기 교회들은 전쟁 전에 모두 적접지역에 있어 그들의 잔혹함을 알면서도 다가 오는 그들을 피하지 않고 전체 교인이 현지를 사수했습니다. 죽이겠다는 원수가 온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타 교단, 타 교회, 타 신앙 지도자들은 모두 피난에 나섰지만 공회는 그 사실은 여러 사실 중에 하나일 뿐이고, 최종의 결정은 하나님께서 피난을 기뻐하시는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공회는 이 정도로 신중하고 이 정도로 생사를 걸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는 곳이어서 현실이나 환경에 쉽게 요동을 받지 않으며 또한 교회의 제반 결정을 두고 자기 생각을 쉽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모르면 그 자리에서 기도하고 살필 뿐이지 결론을 쉽게 내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평화 시에 교회를 하나 개척해도 인원과 돈이 있다 하여 전략 지역을 덥썩 붙들고 보는 식이 없습니다.
- 공회와 선교
아마 선교라는 표현이 없는 유일의 교회는 공회뿐일 것입니다. 있는 곳에서 있는 힘을 다하고, 있는 힘을 다하다가 그 다음 단계로 인도하면 그 다음 단계를 순종하는 식입니다. 교인 한 사람의 일반 생활도, 교회 개척도, 또 목회자 한 사람을 기르는 것과 선교에 이르기까지 항상 이 원칙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선교'라는 것이 현실 도피인지, 현실 실패의 피난처인지, 철 없는 해외 체험인지, 이름을 남기고 싶은 명예심인지, 모험에 용감한 영웅주의인지, 교회의 해외 지사 확충인지 그렇지 않고 정말 하나님께서 이끌고 가시니 따라 가는 것인지? 소수는 하나님의 인도일 것같고 대다수는 이제 설명한 이런 경우일 것 같습니다.
공회는 눈이 어둡지 않고 밝기로 이름 있는 교회인데도 아직까지 선교사는 단 한 번도 파송해 본 적이 없습니다. 공회 교회의 역량과 숫자가 전성기였던 1980년대에는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처럼 국내 모든 교회들이 해외 선교에 집중할 때인데 공회는 입 밖에 그런 단어를 낸 적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뚜렷하게 이끌면 따라 가나, 하나님께서 앞 서지 않는데 사람이 기획하고 추진하는 일은 매사에 기본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무식하게 믿는다고 표현하면 맞을 것입니다. 백 목사님 임종까지 그 입에서 실제 선교 파송은 없었습니다. 본인들이 저질러 놓고 나서 승인을 부탁하면 격려 차원에서 그런 표현을 한 적은 있으나 공회라는 노선은 기본적으로 전도지 선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주신 현실을 훅 뛰어 넘어 저 멀리 날라 가는 것을 철저히 금하고 겨자씨 하나가 움을 틔우고 자라 가는 생명력의 성장을 굳게 붙들고 있습니다.
- 교회의 개척
교회 개척에 하나님의 뜻을 앞 세우지 않은 경우는 없으나 개척의 훗날 전개를 보면 하나님의 뜻이 앞 서 가고 목회자와 교인들이 그 뒤를 따르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교단을 새로 시작하면서도 다 그런 표현들이 있습니다. 경우는 있었으나 이 것은 선교가 아닌데도 먼 곳에서 고생하면서도 이 노선을 사모하는 이들에게 그 곳의 기독교 사회가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선교'라는 표현을 입에 담아 그들을 격려하는 뜻일 뿐이었습니다.
2. 백영희, 김현봉의 교회들
- 각자의 출발지
백영희 김현봉이라는 인물은 교단을 만들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고 그럴 리도 없는 신앙들입니다. 주어 진 현실에서 주님의 뜻을 찾아 한 걸음씩 순종함으로 전부를 삼았습니다. 그래서 애초부터 서로를 알게 되면서 궁금했고 연락을 가졌고 확인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전혀 뜻하지 않게 백 목사님은 거창 출신으로 부산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목사님께 배운 분들이 많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주변에 교회들이 분포하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김 목사님은 서울에만 계셨기 때문에 그 분을 따르는 교회들이 주로 서울에 있어야 하는데 전체적으로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경남북에서는 서울로 이주하는 경우가 적었고 또 인구 비례로 볼 때 믿는 사람이 아주 적었으나 전남북은 교인의 인구 비율도 높고 수도권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김 목사님을 따르는 교회들은 전남북에 집중 되어 있었습니다.
- 전쟁의 여파
백 목사님은 어디를 돌아 다니는 분이 아닌데 해방 직후에는 출옥 성도들의 추천 때문에 전국적으로 이름 높은 사경회 강사였고, 전쟁 시기에는 서부교회를 맡고 있던 중 부산으로 피난 온 전국 교인들과 지도자들을 접하게 되면서 그 이름은 전국은 물론 특히 서울 지역에 유명하게 되어 전쟁이 끝나면서 서울에 연이어 공회 교회들이 세워 지게 됩니다. 이 때문에 공회는 경남북에 분포도가 많으면서 수도권에도 독자적으로 교회들이 생기게 됩니다.
- 김현봉 목사님 쪽의 내부
백 목사님이 김 목사님과 상관 없이 전국적인 강사였고 서울에는 직접 개척한 교회들이 잘 출발하고 있던 시기에 백 목사님과 김 목사님이 직접 교류하게 되자 당시 김현봉 목사님 밑에 있으면서 김 목사님과 백 목사님을 서로 연결 시켰던 김 목사님의 제자 한 분이 백 목사님의 등장으로 김 목사님의 후계가 논의 된다면 백 목사님이 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고 이로 인해 김 목사님께 백 목사님을 무고를 해서 김 목사님은 백 목사님을 멀리 하게 되고 백 목사님은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지내게 됩니다. 그 무고한 목사님은 훗날 김 목사님 사후에 그 곳의 교인 대부분을 붙들고 교단을 설립하게 되지만 그렇게 되기 훨씬 전에 백 목사님은 김 목사님이 아랫 사람 말에 영향을 받을 정도라면 굳이 더 이상 가깝게 할 수가 없다고 판단을 했고 또한 김 목사님의 후계를 원했던 목사님이 백 목사님을 너무 위협적으로 생각하여 김 목사님께도 무고를 하고 기타 여러 분쟁적 언행을 하게 되자 백 목사님은 그 목사님에게 '너는 서울을 맡으라, 나는 부산을 맡겠다'라고 통고를 합니다. 1963-4년경의 일이고 이후 백 목사님은 공회 외부 사경회 인도를 아주 거절해 버립니다.
3. 구체적으로 질문을 안내한다면
정말 제대로 믿어 보려 하면 전국 어디서 믿든 이 노선에 연결은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난 날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최근 새로 이 노선을 알게 되는 분들에게는 새로울 수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백영희 김현봉의 이름 정도가 되면 지연 인연 혈연 등의 복잡한 세상 관계는 일단 아주 초월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지역적으로 양분 되어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은 그냥 우연의 일치입니다. 우리가 이런 표현을 사용할 때는 하나님께서 따로 운영하신 일이지 사람의 생각과 노력이 개입 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 해도 가장 가깝게 영향을 끼친 것은 경남북 사람들은 좋은 일에나 나쁜 일에나 별로 변동이 없어 복음을 잘 받아 들이지도 않았고 그래서 지금도 믿는 사람은 얼마 없습니다. 다만 한 번 믿었다 하면 제대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서 여간 바람이 불어도 잘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전국을 휩쓴 교계의 여러 운동들이 부산 경남 또는 경북 쪽에서는 미미한 편입니다. 어떤 때는 이런 성향이 좋게 작용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주 나쁘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 신학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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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경건과 성경에 최고를 찾아 묻다보면 이병규 김석준 목사님의 성함들이 나옵니다. 거기서 더 나가면 김현봉 백영희 목사님의 이름이 나옵니다. 산 위에 동리여서 평생 숨어 살아도 다 드러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료들을 살피다보니까 흥미로운 사실이 나옵니다.
:
: 김현봉 목사님의 활동과 그 후계들의 지역적 특징을 살펴보면 호남향우회라 할 만큼 편중되어 있습니다. 경상도에는 부산 경남 울산 대구 경북이라는 5개 광역시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겨우 4개뿐입니다. 전체 100여개는 대부분 전라도와 수도권에만 분포되어 있는데 이 교회들의 연원을 살펴보니까 전남북에 근거를 둔 교회들이 수도권으로 진출했거나 교단 본부가 서울에 있어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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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에 총공회는 전국 분포도가 고르게 보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호남지역에 교회들이 진출하기 시작했고 원래는 거창 부산 남해와 같은 경상도 지방에 편중이 되어 있습니다. 교단 본부가 부산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50년대부터 서울에 개척을 시작해서 수도권에도 많은 교회들이 분포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우나 내용적으로 보면 호남 지역에는 교회가 너무 약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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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실지 모르나 합동과 통합 교단의 분리, 합동 내에서 개혁측의 분리 등 우리나라의 교단 분열사를 보면 지역적 분포는 심각할 수준입니다. 지금은 합동과 통합이 전국적 분포도를 가진 것처럼 보이나 역사와 실제 내용을 보면 확실하게 지역 편중현상은 뚜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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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봉 목사님이나 백 목사님이 지역에 매일 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호적으로 보려 해도 오해 소지는 많습니다. 자세히 안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하나님의 인도
하나님이 먼저 결정하고 우리는 뒤를 따르는 것이 옳은가, 우리가 결정하면 하나님은 사후 보고를 받고 또 우리가 결정한 일을 우리가 추진할 때 하나님은 뒤에서 돕는 후원이 옳은가? 앞의 경우가 믿음일 것입니다. 아마 이 문제를 부인하는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신앙 생활에서 하나님의 결정을 항상 먼저 살피고 그 뜻을 알고 난 후에 순종하며 따라 가는 걸음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공회는 처음부터 그렇게 출발했고 현재도 그런 면을 유지하는 곳만 내부적으로 공회라고 합니다. 공회의 이름에 들어 있는 뜻이 그렇습니다.
- 지역과 교회
하나님께서 옮긴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공회는 인민군의 남하를 듣고서도 또는 빨치산 점령 치하조차도 옮기지 않고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6.25 전쟁에 피난을 못 간 교회 지도자 이야기는 있으나 피난을 가지 않은 지도자 이야기는 주남선 손양원 목사님 정도 외에는 없습니다. 공산치하의 상황을 알면서도 가지 않은 분은 손양원 한 분 정도입니다. 공회 초기 교회들은 전쟁 전에 모두 적접지역에 있어 그들의 잔혹함을 알면서도 다가 오는 그들을 피하지 않고 전체 교인이 현지를 사수했습니다. 죽이겠다는 원수가 온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타 교단, 타 교회, 타 신앙 지도자들은 모두 피난에 나섰지만 공회는 그 사실은 여러 사실 중에 하나일 뿐이고, 최종의 결정은 하나님께서 피난을 기뻐하시는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공회는 이 정도로 신중하고 이 정도로 생사를 걸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는 곳이어서 현실이나 환경에 쉽게 요동을 받지 않으며 또한 교회의 제반 결정을 두고 자기 생각을 쉽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모르면 그 자리에서 기도하고 살필 뿐이지 결론을 쉽게 내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평화 시에 교회를 하나 개척해도 인원과 돈이 있다 하여 전략 지역을 덥썩 붙들고 보는 식이 없습니다.
- 공회와 선교
아마 선교라는 표현이 없는 유일의 교회는 공회뿐일 것입니다. 있는 곳에서 있는 힘을 다하고, 있는 힘을 다하다가 그 다음 단계로 인도하면 그 다음 단계를 순종하는 식입니다. 교인 한 사람의 일반 생활도, 교회 개척도, 또 목회자 한 사람을 기르는 것과 선교에 이르기까지 항상 이 원칙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선교'라는 것이 현실 도피인지, 현실 실패의 피난처인지, 철 없는 해외 체험인지, 이름을 남기고 싶은 명예심인지, 모험에 용감한 영웅주의인지, 교회의 해외 지사 확충인지 그렇지 않고 정말 하나님께서 이끌고 가시니 따라 가는 것인지? 소수는 하나님의 인도일 것같고 대다수는 이제 설명한 이런 경우일 것 같습니다.
공회는 눈이 어둡지 않고 밝기로 이름 있는 교회인데도 아직까지 선교사는 단 한 번도 파송해 본 적이 없습니다. 공회 교회의 역량과 숫자가 전성기였던 1980년대에는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처럼 국내 모든 교회들이 해외 선교에 집중할 때인데 공회는 입 밖에 그런 단어를 낸 적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뚜렷하게 이끌면 따라 가나, 하나님께서 앞 서지 않는데 사람이 기획하고 추진하는 일은 매사에 기본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무식하게 믿는다고 표현하면 맞을 것입니다. 백 목사님 임종까지 그 입에서 실제 선교 파송은 없었습니다. 본인들이 저질러 놓고 나서 승인을 부탁하면 격려 차원에서 그런 표현을 한 적은 있으나 공회라는 노선은 기본적으로 전도지 선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주신 현실을 훅 뛰어 넘어 저 멀리 날라 가는 것을 철저히 금하고 겨자씨 하나가 움을 틔우고 자라 가는 생명력의 성장을 굳게 붙들고 있습니다.
- 교회의 개척
교회 개척에 하나님의 뜻을 앞 세우지 않은 경우는 없으나 개척의 훗날 전개를 보면 하나님의 뜻이 앞 서 가고 목회자와 교인들이 그 뒤를 따르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교단을 새로 시작하면서도 다 그런 표현들이 있습니다. 경우는 있었으나 이 것은 선교가 아닌데도 먼 곳에서 고생하면서도 이 노선을 사모하는 이들에게 그 곳의 기독교 사회가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선교'라는 표현을 입에 담아 그들을 격려하는 뜻일 뿐이었습니다.
2. 백영희, 김현봉의 교회들
- 각자의 출발지
백영희 김현봉이라는 인물은 교단을 만들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고 그럴 리도 없는 신앙들입니다. 주어 진 현실에서 주님의 뜻을 찾아 한 걸음씩 순종함으로 전부를 삼았습니다. 그래서 애초부터 서로를 알게 되면서 궁금했고 연락을 가졌고 확인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전혀 뜻하지 않게 백 목사님은 거창 출신으로 부산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목사님께 배운 분들이 많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주변에 교회들이 분포하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김 목사님은 서울에만 계셨기 때문에 그 분을 따르는 교회들이 주로 서울에 있어야 하는데 전체적으로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경남북에서는 서울로 이주하는 경우가 적었고 또 인구 비례로 볼 때 믿는 사람이 아주 적었으나 전남북은 교인의 인구 비율도 높고 수도권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김 목사님을 따르는 교회들은 전남북에 집중 되어 있었습니다.
- 전쟁의 여파
백 목사님은 어디를 돌아 다니는 분이 아닌데 해방 직후에는 출옥 성도들의 추천 때문에 전국적으로 이름 높은 사경회 강사였고, 전쟁 시기에는 서부교회를 맡고 있던 중 부산으로 피난 온 전국 교인들과 지도자들을 접하게 되면서 그 이름은 전국은 물론 특히 서울 지역에 유명하게 되어 전쟁이 끝나면서 서울에 연이어 공회 교회들이 세워 지게 됩니다. 이 때문에 공회는 경남북에 분포도가 많으면서 수도권에도 독자적으로 교회들이 생기게 됩니다.
- 김현봉 목사님 쪽의 내부
백 목사님이 김 목사님과 상관 없이 전국적인 강사였고 서울에는 직접 개척한 교회들이 잘 출발하고 있던 시기에 백 목사님과 김 목사님이 직접 교류하게 되자 당시 김현봉 목사님 밑에 있으면서 김 목사님과 백 목사님을 서로 연결 시켰던 김 목사님의 제자 한 분이 백 목사님의 등장으로 김 목사님의 후계가 논의 된다면 백 목사님이 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고 이로 인해 김 목사님께 백 목사님을 무고를 해서 김 목사님은 백 목사님을 멀리 하게 되고 백 목사님은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지내게 됩니다. 그 무고한 목사님은 훗날 김 목사님 사후에 그 곳의 교인 대부분을 붙들고 교단을 설립하게 되지만 그렇게 되기 훨씬 전에 백 목사님은 김 목사님이 아랫 사람 말에 영향을 받을 정도라면 굳이 더 이상 가깝게 할 수가 없다고 판단을 했고 또한 김 목사님의 후계를 원했던 목사님이 백 목사님을 너무 위협적으로 생각하여 김 목사님께도 무고를 하고 기타 여러 분쟁적 언행을 하게 되자 백 목사님은 그 목사님에게 '너는 서울을 맡으라, 나는 부산을 맡겠다'라고 통고를 합니다. 1963-4년경의 일이고 이후 백 목사님은 공회 외부 사경회 인도를 아주 거절해 버립니다.
3. 구체적으로 질문을 안내한다면
정말 제대로 믿어 보려 하면 전국 어디서 믿든 이 노선에 연결은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난 날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최근 새로 이 노선을 알게 되는 분들에게는 새로울 수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백영희 김현봉의 이름 정도가 되면 지연 인연 혈연 등의 복잡한 세상 관계는 일단 아주 초월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지역적으로 양분 되어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은 그냥 우연의 일치입니다. 우리가 이런 표현을 사용할 때는 하나님께서 따로 운영하신 일이지 사람의 생각과 노력이 개입 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 해도 가장 가깝게 영향을 끼친 것은 경남북 사람들은 좋은 일에나 나쁜 일에나 별로 변동이 없어 복음을 잘 받아 들이지도 않았고 그래서 지금도 믿는 사람은 얼마 없습니다. 다만 한 번 믿었다 하면 제대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서 여간 바람이 불어도 잘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전국을 휩쓴 교계의 여러 운동들이 부산 경남 또는 경북 쪽에서는 미미한 편입니다. 어떤 때는 이런 성향이 좋게 작용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주 나쁘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 신학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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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경건과 성경에 최고를 찾아 묻다보면 이병규 김석준 목사님의 성함들이 나옵니다. 거기서 더 나가면 김현봉 백영희 목사님의 이름이 나옵니다. 산 위에 동리여서 평생 숨어 살아도 다 드러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료들을 살피다보니까 흥미로운 사실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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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봉 목사님의 활동과 그 후계들의 지역적 특징을 살펴보면 호남향우회라 할 만큼 편중되어 있습니다. 경상도에는 부산 경남 울산 대구 경북이라는 5개 광역시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겨우 4개뿐입니다. 전체 100여개는 대부분 전라도와 수도권에만 분포되어 있는데 이 교회들의 연원을 살펴보니까 전남북에 근거를 둔 교회들이 수도권으로 진출했거나 교단 본부가 서울에 있어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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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에 총공회는 전국 분포도가 고르게 보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호남지역에 교회들이 진출하기 시작했고 원래는 거창 부산 남해와 같은 경상도 지방에 편중이 되어 있습니다. 교단 본부가 부산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50년대부터 서울에 개척을 시작해서 수도권에도 많은 교회들이 분포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우나 내용적으로 보면 호남 지역에는 교회가 너무 약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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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실지 모르나 합동과 통합 교단의 분리, 합동 내에서 개혁측의 분리 등 우리나라의 교단 분열사를 보면 지역적 분포는 심각할 수준입니다. 지금은 합동과 통합이 전국적 분포도를 가진 것처럼 보이나 역사와 실제 내용을 보면 확실하게 지역 편중현상은 뚜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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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봉 목사님이나 백 목사님이 지역에 매일 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호적으로 보려 해도 오해 소지는 많습니다. 자세히 안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현교회와 총공회의 지역 불균형 문제
한국의 경건과 성경에 최고를 찾아 묻다보면 이병규 김석준 목사님의 성함들이 나옵니다. 거기서 더 나가면 김현봉 백영희 목사님의 이름이 나옵니다. 산 위에 동리여서 평생 숨어 살아도 다 드러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료들을 살피다보니까 흥미로운 사실이 나옵니다.
김현봉 목사님의 활동과 그 후계들의 지역적 특징을 살펴보면 호남향우회라 할 만큼 편중되어 있습니다. 경상도에는 부산 경남 울산 대구 경북이라는 5개 광역시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겨우 4개뿐입니다. 전체 100여개는 대부분 전라도와 수도권에만 분포되어 있는데 이 교회들의 연원을 살펴보니까 전남북에 근거를 둔 교회들이 수도권으로 진출했거나 교단 본부가 서울에 있어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에 총공회는 전국 분포도가 고르게 보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호남지역에 교회들이 진출하기 시작했고 원래는 거창 부산 남해와 같은 경상도 지방에 편중이 되어 있습니다. 교단 본부가 부산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50년대부터 서울에 개척을 시작해서 수도권에도 많은 교회들이 분포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우나 내용적으로 보면 호남 지역에는 교회가 너무 약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아실지 모르나 합동과 통합 교단의 분리, 합동 내에서 개혁측의 분리 등 우리나라의 교단 분열사를 보면 지역적 분포는 심각할 수준입니다. 지금은 합동과 통합이 전국적 분포도를 가진 것처럼 보이나 역사와 실제 내용을 보면 확실하게 지역 편중현상은 뚜렷합니다.
김현봉 목사님이나 백 목사님이 지역에 매일 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호적으로 보려 해도 오해 소지는 많습니다. 자세히 안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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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건과 성경에 최고를 찾아 묻다보면 이병규 김석준 목사님의 성함들이 나옵니다. 거기서 더 나가면 김현봉 백영희 목사님의 이름이 나옵니다. 산 위에 동리여서 평생 숨어 살아도 다 드러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료들을 살피다보니까 흥미로운 사실이 나옵니다.
김현봉 목사님의 활동과 그 후계들의 지역적 특징을 살펴보면 호남향우회라 할 만큼 편중되어 있습니다. 경상도에는 부산 경남 울산 대구 경북이라는 5개 광역시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겨우 4개뿐입니다. 전체 100여개는 대부분 전라도와 수도권에만 분포되어 있는데 이 교회들의 연원을 살펴보니까 전남북에 근거를 둔 교회들이 수도권으로 진출했거나 교단 본부가 서울에 있어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에 총공회는 전국 분포도가 고르게 보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호남지역에 교회들이 진출하기 시작했고 원래는 거창 부산 남해와 같은 경상도 지방에 편중이 되어 있습니다. 교단 본부가 부산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50년대부터 서울에 개척을 시작해서 수도권에도 많은 교회들이 분포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우나 내용적으로 보면 호남 지역에는 교회가 너무 약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아실지 모르나 합동과 통합 교단의 분리, 합동 내에서 개혁측의 분리 등 우리나라의 교단 분열사를 보면 지역적 분포는 심각할 수준입니다. 지금은 합동과 통합이 전국적 분포도를 가진 것처럼 보이나 역사와 실제 내용을 보면 확실하게 지역 편중현상은 뚜렷합니다.
김현봉 목사님이나 백 목사님이 지역에 매일 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호적으로 보려 해도 오해 소지는 많습니다. 자세히 안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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