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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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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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11.07.22 00:00
습관적으로 넘어지는 죄가 몇가지 있습니다.
그 죄를 지을때마다 낙심이 너무 됩니다.
더욱더 마음이 힘든것은, 이제 그 죄를 고쳐도 `너무 늦게 고친거다`라는 마음이 생겨
다시 그 죄와 싸워 이겨려는 마음조차 안들때가 있습니다. 자포자기라고나 할까요..
하나님은 제가 죽는 하루 전날까지 끊지 못하는 죄가 있다 하더라도,
죽는 당일에 그 죄를 끊는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크게 기뻐하시는지?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다시는 그 죄를 안짓겠다 다짐하고 그 죄를 정말 안지으면
하나님은 기뻐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그 죄를 지을때마다 낙심이 너무 됩니다.
더욱더 마음이 힘든것은, 이제 그 죄를 고쳐도 `너무 늦게 고친거다`라는 마음이 생겨
다시 그 죄와 싸워 이겨려는 마음조차 안들때가 있습니다. 자포자기라고나 할까요..
하나님은 제가 죽는 하루 전날까지 끊지 못하는 죄가 있다 하더라도,
죽는 당일에 그 죄를 끊는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크게 기뻐하시는지?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다시는 그 죄를 안짓겠다 다짐하고 그 죄를 정말 안지으면
하나님은 기뻐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악습은 평생의 투쟁 대상입니다.
1. 모든 성도의 고민임을 우선 아셨으면.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들에게는 이런 말을 해 드리지 못하나 싸워 보며 좌절해 보신 분에게는 죄와 싸울 때의 또 하나의 무기로 가지시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우리 속에는 어떤 죄든 죽는 날까지 우리를 그냥 두지 않게 되고
깨어 있는 성도는 어떤 죄와 싸우든지 투쟁 없이 지나 가는 때는 없습니다.
2. 죄가 악습이라는 이름까지 가졌을 때.
죄는 그 어떤 죄든지 '습성'을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내게는 첫 죄지만 그 죄는 죄의 태생이 아담의 타락이므로 오늘 우리를 건들이는 죄는 자그마치 6천 년의 역사를 가진 끈질긴 놈들입니다. 만만하게 보면 큰 일 납니다. 6천 년 죄라는 저력의 이 죄가 만일 내 몸에 들어와서 죄의 이력을 늘이게 되면 그 때부터는 참으로 큰 일입니다. 그래서 첫 죄를 제대로 끊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6천 년의 저력이 있다 해도 내게 처음 닥칠 때 사정 없이 무자비하게 끊어 버리면 다시는 내게 힘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처음 또는 몇 번을 당하게 되면 6천 년의 외부 경력에다 나를 이긴 몇 번의 경험까지 쌓고 나를 다시 공격하게 되면 이 죄는 '악습'이라는 이름까지 어깨에 붙이게 됩니다.
일반 군인이라 해도 정규 군인은 오합지졸이나 민병대나 학도병과는 다른데 그 정규 군인의 어깨에 특전사나 UDT 교육 견장이 붙는 날에는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죄가 악습의 이름까지 자랑스럽게 붙인 상태에서 나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면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만 잘 믿는 사람들은 그런 죄가 드물고 신앙이 답보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것이 많은 차이지 완전히 떨쳐 버린 사람은 역사적으로 성자라는 이름으로 남는 몇 사람뿐입니다.
3. 이제 우리의 최전선을 향하여
전투에서는 항상 지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1 보 후퇴에 2 보 전진이 있었다면 1 보 후퇴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고 2 보 전진에 소망을 가지고 과거 1 보 후퇴한 그 후퇴도 다음에는 이길 기회를 잡는 것입니다. 세상 전투에서는 1 보 후퇴를 했다가 2 보 전진을 하게 되면 1 보 후퇴를 작전 상 후퇴라 해서 1 보 후퇴는 아무 문제가 없고 오히려 꾀 많은 장군이라고 칭송을 받지만, 신앙 세계에서는 2 보 전진을 했다 해도 1 보 후퇴는 늘 회개의 대상이며 부끄러운 것입니다. 참 신앙은 계시록 6장의 백마 운동입니다. 오로지 승리에서 승리만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질문자나 답변자처럼 잘 믿고 싶어도 그렇지 못한 우리의 일반 생활은 일진 일퇴를 거듭하는 정도이고 가끔 1 보 후퇴 후에 2 보 전진이 있어 그래도 세월 전체를 두고 보면 약간의 발전은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홈을 운영하고 있고 그래서 이런 홈이라도 찾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잘 믿어 보려고 조금 힘 쓰는 사람들에게 사실 악령이 사용하는 가장 무서운 무기는 우리의 양심에게 '습관적으로 죄를 반복하면서 무슨 예수를 믿는다고...' 라는 낙심의 죄, 자포자기를 유도하는 낙망의 죄를 슬쩍 심으려 합니다. 이 죄는 겉 보기에는 죄처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신앙 있는 사람의 양심처럼, 또는 아주 고상하기까지 보이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이 놈이 1 보 후퇴한 후에 그래도 2 보 전진으로 나갈 기회를 빼앗고 아주 주저 앉혀 버리는 가장 지독한 놈입니다.
우리의 수준은 주님이 아십니다. 애가 타지만 우리에게 맡겨 놓은 우리의 자유성 때문에 우리 스스로 죄와 싸워 이기는 것처럼 해 보라고 간접으로 후방에서 보이지 않게 응원만 하시지 전면에 나서지를 않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마태복음 18장에서 70 번씩 7 번을 실수하고 넘어진다 해도, 다시 일으켜 세워 전선으로 나가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가 믿는 것이며, 우리에게 평생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그 어떤 죄를 반복했다 해도, 돌아 서면 더욱 무섭게 더욱 끈질기게, 죄의 악습보다 의를 향한 나의 소망과 집념이 더 끈질기게 되도록 은혜를 구하면서 내 속에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신을 분석하여 북진통일의 그 날을 외치며 죽어간 국군용사들처럼, 자유대한을 그리며 만주에서 죽어간 독립투사들처럼, 우리의 신앙 투쟁도 그리 되어야 합니다.
>> 초신자 님이 쓰신 내용 <<
:
: 습관적으로 넘어지는 죄가 몇가지 있습니다.
: 그 죄를 지을때마다 낙심이 너무 됩니다.
: 더욱더 마음이 힘든것은, 이제 그 죄를 고쳐도 `너무 늦게 고친거다`라는 마음이 생겨
: 다시 그 죄와 싸워 이겨려는 마음조차 안들때가 있습니다. 자포자기라고나 할까요..
:
: 하나님은 제가 죽는 하루 전날까지 끊지 못하는 죄가 있다 하더라도,
: 죽는 당일에 그 죄를 끊는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크게 기뻐하시는지?
:
: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다시는 그 죄를 안짓겠다 다짐하고 그 죄를 정말 안지으면
: 하나님은 기뻐하시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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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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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성도의 고민임을 우선 아셨으면.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들에게는 이런 말을 해 드리지 못하나 싸워 보며 좌절해 보신 분에게는 죄와 싸울 때의 또 하나의 무기로 가지시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우리 속에는 어떤 죄든 죽는 날까지 우리를 그냥 두지 않게 되고
깨어 있는 성도는 어떤 죄와 싸우든지 투쟁 없이 지나 가는 때는 없습니다.
2. 죄가 악습이라는 이름까지 가졌을 때.
죄는 그 어떤 죄든지 '습성'을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내게는 첫 죄지만 그 죄는 죄의 태생이 아담의 타락이므로 오늘 우리를 건들이는 죄는 자그마치 6천 년의 역사를 가진 끈질긴 놈들입니다. 만만하게 보면 큰 일 납니다. 6천 년 죄라는 저력의 이 죄가 만일 내 몸에 들어와서 죄의 이력을 늘이게 되면 그 때부터는 참으로 큰 일입니다. 그래서 첫 죄를 제대로 끊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6천 년의 저력이 있다 해도 내게 처음 닥칠 때 사정 없이 무자비하게 끊어 버리면 다시는 내게 힘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처음 또는 몇 번을 당하게 되면 6천 년의 외부 경력에다 나를 이긴 몇 번의 경험까지 쌓고 나를 다시 공격하게 되면 이 죄는 '악습'이라는 이름까지 어깨에 붙이게 됩니다.
일반 군인이라 해도 정규 군인은 오합지졸이나 민병대나 학도병과는 다른데 그 정규 군인의 어깨에 특전사나 UDT 교육 견장이 붙는 날에는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죄가 악습의 이름까지 자랑스럽게 붙인 상태에서 나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면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만 잘 믿는 사람들은 그런 죄가 드물고 신앙이 답보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것이 많은 차이지 완전히 떨쳐 버린 사람은 역사적으로 성자라는 이름으로 남는 몇 사람뿐입니다.
3. 이제 우리의 최전선을 향하여
전투에서는 항상 지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1 보 후퇴에 2 보 전진이 있었다면 1 보 후퇴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고 2 보 전진에 소망을 가지고 과거 1 보 후퇴한 그 후퇴도 다음에는 이길 기회를 잡는 것입니다. 세상 전투에서는 1 보 후퇴를 했다가 2 보 전진을 하게 되면 1 보 후퇴를 작전 상 후퇴라 해서 1 보 후퇴는 아무 문제가 없고 오히려 꾀 많은 장군이라고 칭송을 받지만, 신앙 세계에서는 2 보 전진을 했다 해도 1 보 후퇴는 늘 회개의 대상이며 부끄러운 것입니다. 참 신앙은 계시록 6장의 백마 운동입니다. 오로지 승리에서 승리만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질문자나 답변자처럼 잘 믿고 싶어도 그렇지 못한 우리의 일반 생활은 일진 일퇴를 거듭하는 정도이고 가끔 1 보 후퇴 후에 2 보 전진이 있어 그래도 세월 전체를 두고 보면 약간의 발전은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홈을 운영하고 있고 그래서 이런 홈이라도 찾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잘 믿어 보려고 조금 힘 쓰는 사람들에게 사실 악령이 사용하는 가장 무서운 무기는 우리의 양심에게 '습관적으로 죄를 반복하면서 무슨 예수를 믿는다고...' 라는 낙심의 죄, 자포자기를 유도하는 낙망의 죄를 슬쩍 심으려 합니다. 이 죄는 겉 보기에는 죄처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신앙 있는 사람의 양심처럼, 또는 아주 고상하기까지 보이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이 놈이 1 보 후퇴한 후에 그래도 2 보 전진으로 나갈 기회를 빼앗고 아주 주저 앉혀 버리는 가장 지독한 놈입니다.
우리의 수준은 주님이 아십니다. 애가 타지만 우리에게 맡겨 놓은 우리의 자유성 때문에 우리 스스로 죄와 싸워 이기는 것처럼 해 보라고 간접으로 후방에서 보이지 않게 응원만 하시지 전면에 나서지를 않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마태복음 18장에서 70 번씩 7 번을 실수하고 넘어진다 해도, 다시 일으켜 세워 전선으로 나가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가 믿는 것이며, 우리에게 평생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그 어떤 죄를 반복했다 해도, 돌아 서면 더욱 무섭게 더욱 끈질기게, 죄의 악습보다 의를 향한 나의 소망과 집념이 더 끈질기게 되도록 은혜를 구하면서 내 속에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신을 분석하여 북진통일의 그 날을 외치며 죽어간 국군용사들처럼, 자유대한을 그리며 만주에서 죽어간 독립투사들처럼, 우리의 신앙 투쟁도 그리 되어야 합니다.
>> 초신자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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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습관적으로 넘어지는 죄가 몇가지 있습니다.
: 그 죄를 지을때마다 낙심이 너무 됩니다.
: 더욱더 마음이 힘든것은, 이제 그 죄를 고쳐도 `너무 늦게 고친거다`라는 마음이 생겨
: 다시 그 죄와 싸워 이겨려는 마음조차 안들때가 있습니다. 자포자기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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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제가 죽는 하루 전날까지 끊지 못하는 죄가 있다 하더라도,
: 죽는 당일에 그 죄를 끊는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크게 기뻐하시는지?
:
: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다시는 그 죄를 안짓겠다 다짐하고 그 죄를 정말 안지으면
: 하나님은 기뻐하시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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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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