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분들의 특별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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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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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5 00:00
1. 손양원의 세계
손 목사님의 평생 일화 중에 가장 눈여겨 봐야 할 점은 아직까지 교계에서 한 번도 거론 된 적이 없었고 또 순교 기념관이나 애양원 측에서도 언급 된 적이 없습니다. 답변자는 같은 동네에 살기 때문에 그 곳의 핵심 관련자들께 여러 차례 이런 점을 제기했습니다.
일제 경찰의 고문은 일본인 특유의 지독하고 끝 장을 보는 잔인함 때문에 당해 본 분들은 신앙의 수준이 있어 간단히 설명하고 마는데 고문 현장을 지켜 본 가족들은 전부 치를 떨고 노년에까지 그 때를 생각하면 몸서리를 치면서 입으로 옮기는 것도 꺼리는 정도입니다. 하여튼 모두들 극단적인 고문 이야기를 하지만 손 목사님의 경우는 고문을 아예 받지도 않았습니다.
손 목사님은 순교를 기다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순교 이전에 고문과 고형을 통해 주님의 대속의 사랑을 느끼고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을 기회를 찾았는데 고문의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옥중 고생이라는 표현만 남아 있습니다. 가끔 고문 이야기가 나오는데 면밀히 살펴 보면 짐작이거나 신빙성이 떨어 집니다. 가장 확실한 증언은 백영희 목사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같은 시대에 살았고 같은 수준에서 같은 사람의 상황을 남 달리 보는 면이 있습니다. 고난과 고문을 기다리는 손 목사님에게는 하나님께서 따로 시험하고 말 것도 없어 그런 세계를 그냥 면제 시켜 초월을 한 것입니다. 손 목사님의 세계에서 제일 귀하고 값 진 부분은 바로 이런 세계입니다.
또 한 가지는 마지막 임종 부분에 대한 모습입니다. 당신의 육체를 이 땅 위에서 복음 위해 잘 사용했고 남을 것도 없이 다 비워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냥 둬도 죽을 몸이 될 상황에서 순교의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불러 가셨습니다. 세상에 더 살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세상에 살 모든 힘과 기회는 하나님 앞에 이미 다 쏟아 전제와 같이 부음이 되었고 마지막 남은 육체의 호흡만 순교로 거두어 가시는 것입니다. 다른 순교자들에게도 꼭 같이 적용 되는 원칙입니다. 계11:7에서 증인은 오늘 우리 믿는 사람을 말하고, 믿는 사람이 제대로 바로 믿는다면 이 땅 위에 할 일을 다하고 나서 불러 가시지 할 일이 남은 상태에서 불러 가지 않는다는 성경 깨달음을 가지고 손 목사님의 죽는 순간을 1960년 11월에 정밀 분석했고 애양원에 집회를 인도하는 과정에서 아직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을 통해 확인한 것입니다.
2. 주남선 목사님
주 목사님은 처참하게 고문을 받았고 너무 잔인했기 때문에 그 당시를 잘 볼 수 있었던 3째 아들 주경효 장로님은 80 세가 넘어서도 그 때만 이야기를 하면 극히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고문을 받지 않고 통과한 손 목사님의 신앙이 이 면을 두고 주 목사님보다 낫다는 뜻은 아닙니다. 손 목사님은 이 면으로 아주 특별하게 사용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주 목사님은 어떤 고문이든 포근하게 잘 받아서 죽을 정도로 당하고도 일어 설 때는 한 숨 잘 잤다고 말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6.25 전쟁 때에 주 목사님은 인민군들의 점령이 가까울 때 미동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가까울수록 더 힘 있게 전도를 하고 다녔고 그들이 점령을 했을 때 그 지역의 처단 1호였음에도 불구하고 점령지 안을 마음껏 돌아 다니면서 심방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 손 목사님은 교회를 지킨다고 피난은 가지 않았으나 애양원 안에서 숨어 계셨지 내 놓고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공산주의 점령지 안에서의 활동을 보면 손 목사님은 은거하셨고 주 목사님은 물 만난 고기처럼 돌아 다녔습니다.
3. 모두 초월로 사신 분들
일제 때 손 목사님의 기록은 참으로 돋 보입니다. 6.25 전쟁 때 주 목사님의 모습은 참으로 돋 보입니다. 주 목사님의 일제 때 고난이 옅거나 부족하지 않았고, 전쟁 때 손 목사님의 신앙을 주눅 들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일제 때는 손 목사님을 유별 나게 사용했고, 전쟁 때는 주 목사님을 유별 나게 사용했다고 보입니다.
한 편으로, 애양원은 나환자를 철조망 안에 수용했던 시설이며 손 목사님으로서는 애양원 밖에 나가서 고의로 활동할 필요는 없었다고 보입니다. 그렇게 하다 붙들려 죽는다면 과잉 행동이 될 듯합니다. 주 목사님은 거창군이라는 지역 사회의 한 가운데 있는 교회를 맡았고 그 모든 교인은 일반 사회인입니다. 전쟁에 피난을 간 교인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교인들이 많은 상태에서 그들을 심방하고 돌아 보는 것은 주 목사님으로서는 피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순교의 기회가 확실하게 올 것이어서 기쁘하시고 다닌 것입니다.
1945년 해방 후 1950년의 전쟁 이전까지 이미 북한에서 공산주의의 탄압을 피해 내려 온 사람들이 허다했고, 그들에 의하여 공산주의는 일본과 비교할 수 없도록 가혹하고 일본은 세계 지도국이며 문명국을 자랑해야 하기 때문에 겉으로 어느 정도 법과 절차라도 있는데 공산주의란 잔인무도하기 이를 데가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상이 어떻게 요동 되고 위험해도 자기 속에 가진 신앙이 인도하는 대로 자유했지 환경에 붙들리거나 제재 받지 않았습니다.
3. 답변을 좀 간추렸습니다.
워낙 유명한 분들이어서 일반적인 사항은 충분하게 알려 졌다고 생각합니다. 답변자는 여러 상황으로 두 분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입장입니다. 두 분의 가족들과도 여러 차례 전화를 했고, 또 두 분 밑에서 직접 신앙 생활을 했던 핵심 교인들을 다양하게 만났으며 두 분이 맡은 교회들은 답변자에게 개인적으로 많은 사연이 얽혀 있습니다.
답변자로서 이제 설명한 내용은 대단히 중요하나 일반적으로 이런 면은 묻혀 있는 듯합니다. 신앙의 세계가 높아 지게 되면 원수를 사랑했다거나 환자들의 고름을 빨았다거나 일제 때 투쟁을 했다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높고 어려운 문제나 이런 정도는 세상의 타 종교나 복지 과정에서나 독립 운동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설명한 내용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특별할 때만 목격 될 수 있는, 일반 순교자나 유명 신앙인들에게서도 잘 발견하기 어려운 점일 것입니다.
부족한 우리는 고통 없이 바로 죽여 준다고 해도 떨 것인데
그런 수준 위에는 장기간 고난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 위에는 인간이 견딜 수 없는 한계를 넘는 고난도 있고
그 위에는 사망과 고난이 근처에 올 수도 없는 세계를 가진 분들도 있습니다.
초, 중, 고, 대학 수준으로 나눈다면 우리는 초등학교 주변에도 가지 못하고 두고 갈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로 진리를 파는데 그런 수준을 넘어 서느냐는 것으로 고민할 상황일 것입니다. 과거에는 워낙 가난해서 이 문제는 없었는데 이제는 모두가 잘 살다 보니 이 유치원 시험도 통과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듯합니다.
>> 목회 님이 쓰신 내용 <<
:
: 6.25 전쟁에 점령지를 피하지 않은 분들이 주남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 정도로 생각됩니다. 교회사와 전기책을 통해 익히 알려진 분들이나 두 분을 나란히 비교해 주십시오. 장점과 특별한 점이 어떤지... 손 목사님에 비해 주 목사님은 사실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손 목사님의 평생 일화 중에 가장 눈여겨 봐야 할 점은 아직까지 교계에서 한 번도 거론 된 적이 없었고 또 순교 기념관이나 애양원 측에서도 언급 된 적이 없습니다. 답변자는 같은 동네에 살기 때문에 그 곳의 핵심 관련자들께 여러 차례 이런 점을 제기했습니다.
일제 경찰의 고문은 일본인 특유의 지독하고 끝 장을 보는 잔인함 때문에 당해 본 분들은 신앙의 수준이 있어 간단히 설명하고 마는데 고문 현장을 지켜 본 가족들은 전부 치를 떨고 노년에까지 그 때를 생각하면 몸서리를 치면서 입으로 옮기는 것도 꺼리는 정도입니다. 하여튼 모두들 극단적인 고문 이야기를 하지만 손 목사님의 경우는 고문을 아예 받지도 않았습니다.
손 목사님은 순교를 기다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순교 이전에 고문과 고형을 통해 주님의 대속의 사랑을 느끼고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을 기회를 찾았는데 고문의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옥중 고생이라는 표현만 남아 있습니다. 가끔 고문 이야기가 나오는데 면밀히 살펴 보면 짐작이거나 신빙성이 떨어 집니다. 가장 확실한 증언은 백영희 목사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같은 시대에 살았고 같은 수준에서 같은 사람의 상황을 남 달리 보는 면이 있습니다. 고난과 고문을 기다리는 손 목사님에게는 하나님께서 따로 시험하고 말 것도 없어 그런 세계를 그냥 면제 시켜 초월을 한 것입니다. 손 목사님의 세계에서 제일 귀하고 값 진 부분은 바로 이런 세계입니다.
또 한 가지는 마지막 임종 부분에 대한 모습입니다. 당신의 육체를 이 땅 위에서 복음 위해 잘 사용했고 남을 것도 없이 다 비워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냥 둬도 죽을 몸이 될 상황에서 순교의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불러 가셨습니다. 세상에 더 살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세상에 살 모든 힘과 기회는 하나님 앞에 이미 다 쏟아 전제와 같이 부음이 되었고 마지막 남은 육체의 호흡만 순교로 거두어 가시는 것입니다. 다른 순교자들에게도 꼭 같이 적용 되는 원칙입니다. 계11:7에서 증인은 오늘 우리 믿는 사람을 말하고, 믿는 사람이 제대로 바로 믿는다면 이 땅 위에 할 일을 다하고 나서 불러 가시지 할 일이 남은 상태에서 불러 가지 않는다는 성경 깨달음을 가지고 손 목사님의 죽는 순간을 1960년 11월에 정밀 분석했고 애양원에 집회를 인도하는 과정에서 아직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을 통해 확인한 것입니다.
2. 주남선 목사님
주 목사님은 처참하게 고문을 받았고 너무 잔인했기 때문에 그 당시를 잘 볼 수 있었던 3째 아들 주경효 장로님은 80 세가 넘어서도 그 때만 이야기를 하면 극히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고문을 받지 않고 통과한 손 목사님의 신앙이 이 면을 두고 주 목사님보다 낫다는 뜻은 아닙니다. 손 목사님은 이 면으로 아주 특별하게 사용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주 목사님은 어떤 고문이든 포근하게 잘 받아서 죽을 정도로 당하고도 일어 설 때는 한 숨 잘 잤다고 말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6.25 전쟁 때에 주 목사님은 인민군들의 점령이 가까울 때 미동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가까울수록 더 힘 있게 전도를 하고 다녔고 그들이 점령을 했을 때 그 지역의 처단 1호였음에도 불구하고 점령지 안을 마음껏 돌아 다니면서 심방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 손 목사님은 교회를 지킨다고 피난은 가지 않았으나 애양원 안에서 숨어 계셨지 내 놓고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공산주의 점령지 안에서의 활동을 보면 손 목사님은 은거하셨고 주 목사님은 물 만난 고기처럼 돌아 다녔습니다.
3. 모두 초월로 사신 분들
일제 때 손 목사님의 기록은 참으로 돋 보입니다. 6.25 전쟁 때 주 목사님의 모습은 참으로 돋 보입니다. 주 목사님의 일제 때 고난이 옅거나 부족하지 않았고, 전쟁 때 손 목사님의 신앙을 주눅 들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일제 때는 손 목사님을 유별 나게 사용했고, 전쟁 때는 주 목사님을 유별 나게 사용했다고 보입니다.
한 편으로, 애양원은 나환자를 철조망 안에 수용했던 시설이며 손 목사님으로서는 애양원 밖에 나가서 고의로 활동할 필요는 없었다고 보입니다. 그렇게 하다 붙들려 죽는다면 과잉 행동이 될 듯합니다. 주 목사님은 거창군이라는 지역 사회의 한 가운데 있는 교회를 맡았고 그 모든 교인은 일반 사회인입니다. 전쟁에 피난을 간 교인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교인들이 많은 상태에서 그들을 심방하고 돌아 보는 것은 주 목사님으로서는 피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순교의 기회가 확실하게 올 것이어서 기쁘하시고 다닌 것입니다.
1945년 해방 후 1950년의 전쟁 이전까지 이미 북한에서 공산주의의 탄압을 피해 내려 온 사람들이 허다했고, 그들에 의하여 공산주의는 일본과 비교할 수 없도록 가혹하고 일본은 세계 지도국이며 문명국을 자랑해야 하기 때문에 겉으로 어느 정도 법과 절차라도 있는데 공산주의란 잔인무도하기 이를 데가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상이 어떻게 요동 되고 위험해도 자기 속에 가진 신앙이 인도하는 대로 자유했지 환경에 붙들리거나 제재 받지 않았습니다.
3. 답변을 좀 간추렸습니다.
워낙 유명한 분들이어서 일반적인 사항은 충분하게 알려 졌다고 생각합니다. 답변자는 여러 상황으로 두 분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입장입니다. 두 분의 가족들과도 여러 차례 전화를 했고, 또 두 분 밑에서 직접 신앙 생활을 했던 핵심 교인들을 다양하게 만났으며 두 분이 맡은 교회들은 답변자에게 개인적으로 많은 사연이 얽혀 있습니다.
답변자로서 이제 설명한 내용은 대단히 중요하나 일반적으로 이런 면은 묻혀 있는 듯합니다. 신앙의 세계가 높아 지게 되면 원수를 사랑했다거나 환자들의 고름을 빨았다거나 일제 때 투쟁을 했다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높고 어려운 문제나 이런 정도는 세상의 타 종교나 복지 과정에서나 독립 운동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설명한 내용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특별할 때만 목격 될 수 있는, 일반 순교자나 유명 신앙인들에게서도 잘 발견하기 어려운 점일 것입니다.
부족한 우리는 고통 없이 바로 죽여 준다고 해도 떨 것인데
그런 수준 위에는 장기간 고난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 위에는 인간이 견딜 수 없는 한계를 넘는 고난도 있고
그 위에는 사망과 고난이 근처에 올 수도 없는 세계를 가진 분들도 있습니다.
초, 중, 고, 대학 수준으로 나눈다면 우리는 초등학교 주변에도 가지 못하고 두고 갈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로 진리를 파는데 그런 수준을 넘어 서느냐는 것으로 고민할 상황일 것입니다. 과거에는 워낙 가난해서 이 문제는 없었는데 이제는 모두가 잘 살다 보니 이 유치원 시험도 통과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듯합니다.
>> 목회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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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에 점령지를 피하지 않은 분들이 주남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 정도로 생각됩니다. 교회사와 전기책을 통해 익히 알려진 분들이나 두 분을 나란히 비교해 주십시오. 장점과 특별한 점이 어떤지... 손 목사님에 비해 주 목사님은 사실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선다씽
백 목사님은 설교하실 때 인용하는 분들이 몇 사람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외국 사람으로서는 성프란스시와 선다씽이 유독 많이 보입니다. 국내인으로서는 손양원 주기철 주남선 목사님 정도입니다. 본받을 신앙으로 회자되는 이런 분들의 특징도 궁금하고 왜 다른 유명한 분들도 많은데 전혀 언급하지 않을까요?
성프란시스와 선다씽과 백 목사님을 비교한다면 교회사에 어떤 의미들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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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목사님은 설교하실 때 인용하는 분들이 몇 사람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외국 사람으로서는 성프란스시와 선다씽이 유독 많이 보입니다. 국내인으로서는 손양원 주기철 주남선 목사님 정도입니다. 본받을 신앙으로 회자되는 이런 분들의 특징도 궁금하고 왜 다른 유명한 분들도 많은데 전혀 언급하지 않을까요?
성프란시스와 선다씽과 백 목사님을 비교한다면 교회사에 어떤 의미들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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