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준비와 강단의 성령 인도 - 공회 공과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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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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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7 00:00
1. 예배가 산 예배가 되려면
① 롬12:1 말씀
예배를 두고 참고할 성구가 많으나 이 번 문답에서는 롬12:1을 특별히 소개하고 싶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여기 '산 제사 = 영적 예배'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원래 구약의 제사는 짐승을 잡아 죽여야만 제사가 됩니다. 짐승이 살아 뛰어 돌아 다니는 상황에서는 제사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어야 함을 예표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 구원을 완성한 신약에는 이제 짐승이 필요가 없고 이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구원을 받아 실제 구원 생활을 하는 것이 우리 할 일이니 구약의 제사가 신약에는 예배로 바뀌었고 구약의 제사가 짐승의 몸을 죽여야 했다면 신약의 우리는 우리 몸은 그대로 살려 두되 우리 속에 죽여야 할 옛 사람의 잘못 된 인격과 마음과 행위와 습관을 죽여야 하기 때문에 '산 제사'라고 했고 이 것을 신령한 예배의 내용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내 속에 죽일 요소를 죽일 수 있는가? 불교의 도나 세상 도덕 책의 윤리에 맞지 않는 인격이나 행위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가지고 그 말씀에 틀린 우리 옛 사람을 죽여서 우리가 말씀 대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예배가 되는 것이고 예배의 말씀은 바로 이 면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경 말씀을 읽고 깨닫고 그 말씀으로 나를 되돌아 볼 때 성령의 감화와 감동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설교의 외부는 '성경 말씀'이요 설교의 내부는 설교자가 아니라 성령의 감화와 감동이 설교를 인도하고 설교자는 조심스럽게 그 감동을 잘 전달해야 할 것입니다.
② 개교회 자유주의
앞에서 소개한 롬12:1 말씀의 뜻이 이제 소개한 대로라면
전국의 학교가 같은 교과서로 한 해의 정해 진 일정에 따라 천편일률적으로 가르치는 것처럼
전국의 교회가 같은 공과를 가지고 52 주의 정해 진 내용을 학습해 나가는 것은 문제입니다.
말하자면 신학교나 성경학교의 강의는 그렇게 할 수 있고 교회의 성경공부는 그렇게 할지라도
적어도 '교회'라면 각 교회는 성령님이 그 교회에게 대해서만 따로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고
적어도 '교회'가 교회라면 자기 교회에 그 시간에 원하는 말씀을 찾아 전해야 옳을 것입니다.
개교회 자유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얼핏 들으면 각 교회가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뜻이고 이런 표현은 멋대로 하자는 방종 방탕주의를 의미하는 듯한데 원래 뜻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각 사람과 각 가정과 각 교회에 주신 현실이 다르고 맡기는 사명이 다르기 때문에 천주교식으로 또는 기계적으로 무조건 맞춰 결정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원칙이 옳다면 '예배'의 말씀만은 설교자가 정해 진 예배 시간에 어떤 말씀을 전할 것인지를 기도하며 성령님의 감화와 감동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백 목사님은 설교 불과 몇 분 전에 그 시간에 전할 말씀을 확정하는 수가 많았습니다. 어떤 때는 몇 시간 전에 정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며칠 전부터 마음에 확정을 하는 수도 있었습니다. 이 분의 사례를 살피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 진 대로는 우리 나라에서 이 분만큼 성령의 인도를 밝게 보고 따라 간 분의 사례가 없기 때문에 참고하는 것입니다.
③ 여기서 잠깐 생각하실 것은
각 교회의 강단을 맡은 사람이 당연히 그 시간의 말씀에 대해 확신을 가진다면 설교 몇 분 전에 설교를 시작해도 되고 또 몇 시간 전에 결정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으나, 그 정도로 성령에 붙들려 사는 사람이 많겠는가? 또는 늘 그렇게 붙들려 살 수가 있겠는가? 이런 의문을 제기하게 됩니다.
지방교회 분들은 그 날 그 예배에 둘러 앉았을 때 바로 그 시간에 설교할 사람을 결정한다는 정도로 눈이 밝다고 하시는데 그런 것은 조금 열심히 믿고 바로 믿어 보려고 노력하는 교회라면 실제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구조적으로 늘 그렇게 해야 한다고 못을 박아 놓으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교회도 많고 차라리 성경공부 식으로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받으면서 그 시간에 그 성경 공부 내용 안에서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고 감동을 주시는 은혜를 찾는다면 지방교회가 원래 희구한 목표에 달성하는 데 더욱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과로 미리 설교를 준비하고도 그 것이 성경공부가 되지 않고 설교가 되게 하려면 바로 이런 자세라야 합니다. 어디까지나 평소 성경 전체에 대한 기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그리고 다가 오는 시간의 강단 담당자는 누가 맡을 것인지를 두고도 늘 바뀔 수도 있고 정해 놓은 그대로 갈 수도 있음을 알고 마음 준비를 해야 하고, 만일 그 시간에 그 강단에 서야 할 사람이 섰다면 그 시간에 전하라는 말씀을 전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을 두고 신앙이 어리고 준비가 부족하여 갑자기 서게 되면 전할 수 있는 말씀이 없어 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공과로 미리 준비를 하거나 다른 설교 자료로 준비를 하여 '예배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 설교를 준비할 실력도 되지 않으니 공과나 설교 자료 등을 활용하여 일단 예배 시간에 성경공부를 인도한다는 마음으로 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섰는데 실제 성경을 가르치다가 그 과정에서 전하는 사람에게 특별하게 전할 마음이 감동 되거나 또는 분명히 그 시간에 새롭게 주시는 감사나 느낌이나 은혜가 있다면 바로 그 것이 예배 설교가 됩니다.
좋기는 성경만 가지고도 다른 것을 참고하지 않고 설교할 수 있도록 백 목사님처럼 미리 준비가 된 분들은 설교 시간 몇 분 전까지도 그 날의 설교를 어떤 것으로 해야 할지 마음으로 계속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설교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일반 교인이나 설교다운 설교를 하는 것이 아직 서툰 목회 초보자로서는 성경도 모르면서 맨 몸으로 강단을 맞이 하다가 자기 속에 떠 오르는 세상 이야기는 자기 주관의 취향을 영감인 줄 착각하여 전하게 된다면 이는 강단을 무시하는 죄가 될 것입니다.
2. 질문을 구체적으로 살핀다면
① 예배 설교를, 공과 순서대로 할 수 있는가?
1공과로 1월 1주를 설교하고, 2공과로 1월 2주에 설교하는 방식으로 할 수가 있는가 라는 질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단, 불교처럼 천주교처럼 하나의 의식이 되어 '순서대로 무조건 간다'라는 식이 되면 성경공부에 그치게 되고 그 것도 많이 하다 보면 천주교가 되고 천주교가 깊어 지면 불교가 됩니다.
설교자의 실력이 없고 영안이 어두워 공과를 순서대로 하겠다고 한다면 할 수는 있습니다. 자기가 부족하니 설교다운 설교를 하지 못하겠고 그렇다고 예배와 설교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을 때 우리는 예배와 설교를 마치 성경공부 시간에 성경 강좌를 하는 것처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마음에는 부족해서 이렇게 밖에 하지 못하나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성령님이 설교자의 마음을 붙들고 감동하사 겉으로는 성경공부 같아도 속으로는 성령님이 우리 교회에 이 시간에 필요한 말씀을 직접 깨닫거나 전하고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자세, 그런 기도, 그런 노력, 그런 소망을 가지고 그렇게 한다면 설교의 최선은 아니나 설교의 차선은 될 수 있습니다.
선 무당 사람 잡는다는 말처럼, 차선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 해서 최선을 하려고 매 시간 설교를 성령님의 직접 인도를 받으려 노력하는 것은 누구도 말리거나 딴 말을 할 수가 없는 사안입니다만, 성경도 평소 읽지 않고 세상에 휩쓸려 자기 마음도 어지러운 주제에 강단 알기를 우습게 알고 멍석만 보면 염병하는 사람처럼 마이크만 있으면 노래 가락이 절로 나오는 숙련자처럼 설교 기사가 되어 예배 시간에 강단에 올라 가서 무슨 말이든지 줄줄 해 대면서 그 말 전부가 설교인 줄 알거나 심지어 자기 머리에 퍼뜩 생각 나는 것은 성령님이 오셔서 직접 알려 주신 영감이라고 성령을 팔게 되면 이 병은 병원으로 말하면 정신과 병원에 입원감이고 종교적으로 보면 이런 짓을 자주 하다 보면 신 내린 무당 되기 알맞습니다.
순차적으로 공과를 가르치되, 그 대신 잘 준비하고 잘 전하면서 준비 과정에서부터 혹시 다른 말씀을 성령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지 늘 긴장하고 살펴야 합니다. 1 년에 51주를 이미 순차적으로 했다 해도 52주차에 만일 확실하게 오늘은 다른 말씀을 전하는 것이 옳으면 그렇게 해야 하고 그 날도 같은 본문과 내용을 가르치되 그 대신 그 공과 내용에 강조할 부분이 있거나 다른 부분을 보탤 사안이 깨달아 진다면 그 설교자의 설교는 비록 좀 서툴고 어리지만 어디까지나 영감 설교입니다. 가장 위험한 것이 제 주관 제 생각 제 말빨을 믿고 지꺼리는 것이고 그 다음 위험한 것은 좋은 설교를 정해 놓고 무조건 순서 따라 가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설교자가 되기 전에 이미 성경을 다 아는 사람이 되었고 매 예배 시간이 올 때마다 기도하면서 그 시간에 전할 말씀을 직접 받아 원고 없이 바로 전할 수 있다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설교자는 평소 성경을 중심으로 잡고 공과나 설교록 내용 등으로 자기가 먼저 은혜를 받으면서 그 것을 원고 삼아 설교를 준비하되 동시에 자기 속에 성령님의 특별하신 인도나 다른 인도가 있는지 살피는 것입니다.
② 공회의 주일학교 공과
공회의 공과는 장년반 예배에 이 번 주일에 설교한 내용을 요약했다가 다음 주일 주일학생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이 것은 앞에 설명한 차선의 원칙입니다. 일반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제시한 것일 뿐 절대의 원칙은 절대로 아닙니다.
주일학교 반사들이 중학교 1학년 학생도 있고, 이제 처음 믿어 아직 학습을 받지도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천차 만별의 신앙에 그들의 직업과 가정 환경도 천차 만별입니다. 그런데도 한 교회 한 예배의 원칙에 따라 우리는 주일 오전 8시 30분이면 한 자리에 앉아 모든 반사가 함께 가르칩니다. 부장은 통반을 인도하고 반사들은 분반 공부 시간에 자기 반을 따로 가르칩니다. 이 예배의 순서나 방법까지도 만일 무조건 그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천주교를 거쳐 불교로 가게 됩니다. 그렇다고 매 주일 예배의 방법과 순서와 내용은 무조건 달라 져야 하는가? 그래야만 성령의 인도를 실시간으로 받고 사는 사람인가? 실제 그렇게 해 보면 실제 그렇게 되는 사람은 희귀하고 대부분은 엉망이 됩니다. 고전14:33에서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한 사람씩 따로 예배를 드리게 하지 않고 교회는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도록 해 놓았으니 모든 사람이 함께 하나의 예배를 드리려면 어지러움과 방종과 제각각의 자율은 억제 시켜야 합니다. 그런 모든 면을 고려해서 하나의 모범안을 제시한 것이 예배의 형식입니다. 이 예배의 모습을 절대화하면 이단이 되고 이 예배를 어지럽게 하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가 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좋은 형식이 있으면 그 것을 갖추고 존중하되 항상 그 시간에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각 교회와 각 강단을 맡은 사람들은 최종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공회는 일반적으로 전주의 장년반 설교 내용을 다음 주의 주교 설교의 공과로 삼습니다. 이렇게 한다면 일단 타 교단이 전국 교회를 상대로 십 년이고 수십 년이고 수백 년이고 학교 교과서처럼 과정을 밟게 하는 그런 기계적이고 생명 없는 방식에 비해 매주 새로운 은혜를 찾는 것이니 참신하고 살아 있고 성령의 현실 인도를 늘 찾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한 주간 전의 장년반 설교에 매인다는 점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도 그 날 주교 부장이 만일 한 주간 전에 장년반 설교 내용을 오늘 주교 설교 내용으로 삼는 것은 내 마음에 허락이 되지 않고 오늘은 저 말씀을 증거하고 싶다고 한다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앞에 소개한 것처럼 그 것이 부장의 또 다른 주관에 빠진 착각이어서는 안 됩니다.
>> 91 님이 쓰신 내용 <<
:
: 질문.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공과'로 드리는 예배는 그저 성경공부일 뿐 예배가 될 수 없나요?
: 여기서 말하는 공과란 교단에서 만든 공과를 말합니다. (성경의 인물, 사건 등으로 정리한 공과)
: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 선에서는 예배란 하나님께 영감을 받아 그것을 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듣기로는 백목사님께서도 예배 전에 영감을 받아 준비해 온 설교 말고 다른 설교를 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공과로 드리는 예배는 예배가 아니고 성경공부일 수 밖에 없나요? 교회에 어떤 분께서 그러한 입장을 가지고 계시고 저 또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러한 거 같지만 정확히 판단할 수 없어 여기에 질문을 올립니다. 또 생각해보니 백목사님 당시 서부교회는 주일설교 후 다음 주에 그것을 공과로 만들어 주일학교에서 설교를 하였다고 하는데 이것도 성경공부일 뿐인지 궁금합니다. 말이 길어졌는데 가장 궁금한 것은 예배를 드리는 설교자가 영감을 받아 전할 때가 진정한 예배라 생각되는데 이것이 아닐 경우 예배가 될 수 없는지요. (공과란 미리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지금 이 문제가 저의 신앙생활에 있어 혼란을 주기에 빠른 답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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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롬12:1 말씀
예배를 두고 참고할 성구가 많으나 이 번 문답에서는 롬12:1을 특별히 소개하고 싶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여기 '산 제사 = 영적 예배'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원래 구약의 제사는 짐승을 잡아 죽여야만 제사가 됩니다. 짐승이 살아 뛰어 돌아 다니는 상황에서는 제사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어야 함을 예표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 구원을 완성한 신약에는 이제 짐승이 필요가 없고 이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구원을 받아 실제 구원 생활을 하는 것이 우리 할 일이니 구약의 제사가 신약에는 예배로 바뀌었고 구약의 제사가 짐승의 몸을 죽여야 했다면 신약의 우리는 우리 몸은 그대로 살려 두되 우리 속에 죽여야 할 옛 사람의 잘못 된 인격과 마음과 행위와 습관을 죽여야 하기 때문에 '산 제사'라고 했고 이 것을 신령한 예배의 내용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내 속에 죽일 요소를 죽일 수 있는가? 불교의 도나 세상 도덕 책의 윤리에 맞지 않는 인격이나 행위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가지고 그 말씀에 틀린 우리 옛 사람을 죽여서 우리가 말씀 대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예배가 되는 것이고 예배의 말씀은 바로 이 면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경 말씀을 읽고 깨닫고 그 말씀으로 나를 되돌아 볼 때 성령의 감화와 감동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설교의 외부는 '성경 말씀'이요 설교의 내부는 설교자가 아니라 성령의 감화와 감동이 설교를 인도하고 설교자는 조심스럽게 그 감동을 잘 전달해야 할 것입니다.
② 개교회 자유주의
앞에서 소개한 롬12:1 말씀의 뜻이 이제 소개한 대로라면
전국의 학교가 같은 교과서로 한 해의 정해 진 일정에 따라 천편일률적으로 가르치는 것처럼
전국의 교회가 같은 공과를 가지고 52 주의 정해 진 내용을 학습해 나가는 것은 문제입니다.
말하자면 신학교나 성경학교의 강의는 그렇게 할 수 있고 교회의 성경공부는 그렇게 할지라도
적어도 '교회'라면 각 교회는 성령님이 그 교회에게 대해서만 따로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고
적어도 '교회'가 교회라면 자기 교회에 그 시간에 원하는 말씀을 찾아 전해야 옳을 것입니다.
개교회 자유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얼핏 들으면 각 교회가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뜻이고 이런 표현은 멋대로 하자는 방종 방탕주의를 의미하는 듯한데 원래 뜻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각 사람과 각 가정과 각 교회에 주신 현실이 다르고 맡기는 사명이 다르기 때문에 천주교식으로 또는 기계적으로 무조건 맞춰 결정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원칙이 옳다면 '예배'의 말씀만은 설교자가 정해 진 예배 시간에 어떤 말씀을 전할 것인지를 기도하며 성령님의 감화와 감동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백 목사님은 설교 불과 몇 분 전에 그 시간에 전할 말씀을 확정하는 수가 많았습니다. 어떤 때는 몇 시간 전에 정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며칠 전부터 마음에 확정을 하는 수도 있었습니다. 이 분의 사례를 살피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 진 대로는 우리 나라에서 이 분만큼 성령의 인도를 밝게 보고 따라 간 분의 사례가 없기 때문에 참고하는 것입니다.
③ 여기서 잠깐 생각하실 것은
각 교회의 강단을 맡은 사람이 당연히 그 시간의 말씀에 대해 확신을 가진다면 설교 몇 분 전에 설교를 시작해도 되고 또 몇 시간 전에 결정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으나, 그 정도로 성령에 붙들려 사는 사람이 많겠는가? 또는 늘 그렇게 붙들려 살 수가 있겠는가? 이런 의문을 제기하게 됩니다.
지방교회 분들은 그 날 그 예배에 둘러 앉았을 때 바로 그 시간에 설교할 사람을 결정한다는 정도로 눈이 밝다고 하시는데 그런 것은 조금 열심히 믿고 바로 믿어 보려고 노력하는 교회라면 실제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구조적으로 늘 그렇게 해야 한다고 못을 박아 놓으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교회도 많고 차라리 성경공부 식으로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받으면서 그 시간에 그 성경 공부 내용 안에서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고 감동을 주시는 은혜를 찾는다면 지방교회가 원래 희구한 목표에 달성하는 데 더욱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과로 미리 설교를 준비하고도 그 것이 성경공부가 되지 않고 설교가 되게 하려면 바로 이런 자세라야 합니다. 어디까지나 평소 성경 전체에 대한 기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그리고 다가 오는 시간의 강단 담당자는 누가 맡을 것인지를 두고도 늘 바뀔 수도 있고 정해 놓은 그대로 갈 수도 있음을 알고 마음 준비를 해야 하고, 만일 그 시간에 그 강단에 서야 할 사람이 섰다면 그 시간에 전하라는 말씀을 전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을 두고 신앙이 어리고 준비가 부족하여 갑자기 서게 되면 전할 수 있는 말씀이 없어 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공과로 미리 준비를 하거나 다른 설교 자료로 준비를 하여 '예배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 설교를 준비할 실력도 되지 않으니 공과나 설교 자료 등을 활용하여 일단 예배 시간에 성경공부를 인도한다는 마음으로 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섰는데 실제 성경을 가르치다가 그 과정에서 전하는 사람에게 특별하게 전할 마음이 감동 되거나 또는 분명히 그 시간에 새롭게 주시는 감사나 느낌이나 은혜가 있다면 바로 그 것이 예배 설교가 됩니다.
좋기는 성경만 가지고도 다른 것을 참고하지 않고 설교할 수 있도록 백 목사님처럼 미리 준비가 된 분들은 설교 시간 몇 분 전까지도 그 날의 설교를 어떤 것으로 해야 할지 마음으로 계속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설교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일반 교인이나 설교다운 설교를 하는 것이 아직 서툰 목회 초보자로서는 성경도 모르면서 맨 몸으로 강단을 맞이 하다가 자기 속에 떠 오르는 세상 이야기는 자기 주관의 취향을 영감인 줄 착각하여 전하게 된다면 이는 강단을 무시하는 죄가 될 것입니다.
2. 질문을 구체적으로 살핀다면
① 예배 설교를, 공과 순서대로 할 수 있는가?
1공과로 1월 1주를 설교하고, 2공과로 1월 2주에 설교하는 방식으로 할 수가 있는가 라는 질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단, 불교처럼 천주교처럼 하나의 의식이 되어 '순서대로 무조건 간다'라는 식이 되면 성경공부에 그치게 되고 그 것도 많이 하다 보면 천주교가 되고 천주교가 깊어 지면 불교가 됩니다.
설교자의 실력이 없고 영안이 어두워 공과를 순서대로 하겠다고 한다면 할 수는 있습니다. 자기가 부족하니 설교다운 설교를 하지 못하겠고 그렇다고 예배와 설교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을 때 우리는 예배와 설교를 마치 성경공부 시간에 성경 강좌를 하는 것처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마음에는 부족해서 이렇게 밖에 하지 못하나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성령님이 설교자의 마음을 붙들고 감동하사 겉으로는 성경공부 같아도 속으로는 성령님이 우리 교회에 이 시간에 필요한 말씀을 직접 깨닫거나 전하고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자세, 그런 기도, 그런 노력, 그런 소망을 가지고 그렇게 한다면 설교의 최선은 아니나 설교의 차선은 될 수 있습니다.
선 무당 사람 잡는다는 말처럼, 차선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 해서 최선을 하려고 매 시간 설교를 성령님의 직접 인도를 받으려 노력하는 것은 누구도 말리거나 딴 말을 할 수가 없는 사안입니다만, 성경도 평소 읽지 않고 세상에 휩쓸려 자기 마음도 어지러운 주제에 강단 알기를 우습게 알고 멍석만 보면 염병하는 사람처럼 마이크만 있으면 노래 가락이 절로 나오는 숙련자처럼 설교 기사가 되어 예배 시간에 강단에 올라 가서 무슨 말이든지 줄줄 해 대면서 그 말 전부가 설교인 줄 알거나 심지어 자기 머리에 퍼뜩 생각 나는 것은 성령님이 오셔서 직접 알려 주신 영감이라고 성령을 팔게 되면 이 병은 병원으로 말하면 정신과 병원에 입원감이고 종교적으로 보면 이런 짓을 자주 하다 보면 신 내린 무당 되기 알맞습니다.
순차적으로 공과를 가르치되, 그 대신 잘 준비하고 잘 전하면서 준비 과정에서부터 혹시 다른 말씀을 성령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지 늘 긴장하고 살펴야 합니다. 1 년에 51주를 이미 순차적으로 했다 해도 52주차에 만일 확실하게 오늘은 다른 말씀을 전하는 것이 옳으면 그렇게 해야 하고 그 날도 같은 본문과 내용을 가르치되 그 대신 그 공과 내용에 강조할 부분이 있거나 다른 부분을 보탤 사안이 깨달아 진다면 그 설교자의 설교는 비록 좀 서툴고 어리지만 어디까지나 영감 설교입니다. 가장 위험한 것이 제 주관 제 생각 제 말빨을 믿고 지꺼리는 것이고 그 다음 위험한 것은 좋은 설교를 정해 놓고 무조건 순서 따라 가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설교자가 되기 전에 이미 성경을 다 아는 사람이 되었고 매 예배 시간이 올 때마다 기도하면서 그 시간에 전할 말씀을 직접 받아 원고 없이 바로 전할 수 있다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설교자는 평소 성경을 중심으로 잡고 공과나 설교록 내용 등으로 자기가 먼저 은혜를 받으면서 그 것을 원고 삼아 설교를 준비하되 동시에 자기 속에 성령님의 특별하신 인도나 다른 인도가 있는지 살피는 것입니다.
② 공회의 주일학교 공과
공회의 공과는 장년반 예배에 이 번 주일에 설교한 내용을 요약했다가 다음 주일 주일학생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이 것은 앞에 설명한 차선의 원칙입니다. 일반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제시한 것일 뿐 절대의 원칙은 절대로 아닙니다.
주일학교 반사들이 중학교 1학년 학생도 있고, 이제 처음 믿어 아직 학습을 받지도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천차 만별의 신앙에 그들의 직업과 가정 환경도 천차 만별입니다. 그런데도 한 교회 한 예배의 원칙에 따라 우리는 주일 오전 8시 30분이면 한 자리에 앉아 모든 반사가 함께 가르칩니다. 부장은 통반을 인도하고 반사들은 분반 공부 시간에 자기 반을 따로 가르칩니다. 이 예배의 순서나 방법까지도 만일 무조건 그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천주교를 거쳐 불교로 가게 됩니다. 그렇다고 매 주일 예배의 방법과 순서와 내용은 무조건 달라 져야 하는가? 그래야만 성령의 인도를 실시간으로 받고 사는 사람인가? 실제 그렇게 해 보면 실제 그렇게 되는 사람은 희귀하고 대부분은 엉망이 됩니다. 고전14:33에서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한 사람씩 따로 예배를 드리게 하지 않고 교회는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도록 해 놓았으니 모든 사람이 함께 하나의 예배를 드리려면 어지러움과 방종과 제각각의 자율은 억제 시켜야 합니다. 그런 모든 면을 고려해서 하나의 모범안을 제시한 것이 예배의 형식입니다. 이 예배의 모습을 절대화하면 이단이 되고 이 예배를 어지럽게 하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가 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좋은 형식이 있으면 그 것을 갖추고 존중하되 항상 그 시간에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각 교회와 각 강단을 맡은 사람들은 최종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공회는 일반적으로 전주의 장년반 설교 내용을 다음 주의 주교 설교의 공과로 삼습니다. 이렇게 한다면 일단 타 교단이 전국 교회를 상대로 십 년이고 수십 년이고 수백 년이고 학교 교과서처럼 과정을 밟게 하는 그런 기계적이고 생명 없는 방식에 비해 매주 새로운 은혜를 찾는 것이니 참신하고 살아 있고 성령의 현실 인도를 늘 찾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한 주간 전의 장년반 설교에 매인다는 점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도 그 날 주교 부장이 만일 한 주간 전에 장년반 설교 내용을 오늘 주교 설교 내용으로 삼는 것은 내 마음에 허락이 되지 않고 오늘은 저 말씀을 증거하고 싶다고 한다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앞에 소개한 것처럼 그 것이 부장의 또 다른 주관에 빠진 착각이어서는 안 됩니다.
>> 91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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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공과'로 드리는 예배는 그저 성경공부일 뿐 예배가 될 수 없나요?
: 여기서 말하는 공과란 교단에서 만든 공과를 말합니다. (성경의 인물, 사건 등으로 정리한 공과)
: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 선에서는 예배란 하나님께 영감을 받아 그것을 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듣기로는 백목사님께서도 예배 전에 영감을 받아 준비해 온 설교 말고 다른 설교를 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공과로 드리는 예배는 예배가 아니고 성경공부일 수 밖에 없나요? 교회에 어떤 분께서 그러한 입장을 가지고 계시고 저 또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러한 거 같지만 정확히 판단할 수 없어 여기에 질문을 올립니다. 또 생각해보니 백목사님 당시 서부교회는 주일설교 후 다음 주에 그것을 공과로 만들어 주일학교에서 설교를 하였다고 하는데 이것도 성경공부일 뿐인지 궁금합니다. 말이 길어졌는데 가장 궁금한 것은 예배를 드리는 설교자가 영감을 받아 전할 때가 진정한 예배라 생각되는데 이것이 아닐 경우 예배가 될 수 없는지요. (공과란 미리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지금 이 문제가 저의 신앙생활에 있어 혼란을 주기에 빠른 답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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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 대하여
질문.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공과'로 드리는 예배는 그저 성경공부일 뿐 예배가 될 수 없나요?
여기서 말하는 공과란 교단에서 만든 공과를 말합니다. (성경의 인물, 사건 등으로 정리한 공과)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 선에서는 예배란 하나님께 영감을 받아 그것을 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듣기로는 백목사님께서도 예배 전에 영감을 받아 준비해 온 설교 말고 다른 설교를 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공과로 드리는 예배는 예배가 아니고 성경공부일 수 밖에 없나요? 교회에 어떤 분께서 그러한 입장을 가지고 계시고 저 또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러한 거 같지만 정확히 판단할 수 없어 여기에 질문을 올립니다. 또 생각해보니 백목사님 당시 서부교회는 주일설교 후 다음 주에 그것을 공과로 만들어 주일학교에서 설교를 하였다고 하는데 이것도 성경공부일 뿐인지 궁금합니다. 말이 길어졌는데 가장 궁금한 것은 예배를 드리는 설교자가 영감을 받아 전할 때가 진정한 예배라 생각되는데 이것이 아닐 경우 예배가 될 수 없는지요. (공과란 미리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지금 이 문제가 저의 신앙생활에 있어 혼란을 주기에 빠른 답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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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공과'로 드리는 예배는 그저 성경공부일 뿐 예배가 될 수 없나요?
여기서 말하는 공과란 교단에서 만든 공과를 말합니다. (성경의 인물, 사건 등으로 정리한 공과)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 선에서는 예배란 하나님께 영감을 받아 그것을 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듣기로는 백목사님께서도 예배 전에 영감을 받아 준비해 온 설교 말고 다른 설교를 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공과로 드리는 예배는 예배가 아니고 성경공부일 수 밖에 없나요? 교회에 어떤 분께서 그러한 입장을 가지고 계시고 저 또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러한 거 같지만 정확히 판단할 수 없어 여기에 질문을 올립니다. 또 생각해보니 백목사님 당시 서부교회는 주일설교 후 다음 주에 그것을 공과로 만들어 주일학교에서 설교를 하였다고 하는데 이것도 성경공부일 뿐인지 궁금합니다. 말이 길어졌는데 가장 궁금한 것은 예배를 드리는 설교자가 영감을 받아 전할 때가 진정한 예배라 생각되는데 이것이 아닐 경우 예배가 될 수 없는지요. (공과란 미리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지금 이 문제가 저의 신앙생활에 있어 혼란을 주기에 빠른 답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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