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 '부활'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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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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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5 00:00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39절∼49절
제목: 부활
원문: 1980.06.08.주일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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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요약)
1. 부활 소망의 기독교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
(세상은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
2. 부활 영광의 차이
(존재와 존재의 차이)
(사람과 사람의 차이)
(사람의 차이는 실력의 차이)
(세상 차이는 한 순간)
(부활의 능력의 차이)
(부활의 능력은 영광)
3. 부활 영광 마련의 시기
(부활의 영광의 소망치)
(부활의 영광 마련 시기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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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활 소망의 기독교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
기독교가 이종교와 다른 많은 것 중에 중요한 하나는 부활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죽음 너머 세계를 말합니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게 되어 있고, 죽음으로 끝남이 아닌 죽음 너머 부활이 있으니, 그러므로 죽음은 이승의 마지막이면서 내세의 영원한 시작이 되는 것인데 부활은 영원한 내세의 자기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부활이 없다면 모든 사람 가운데 믿는 사람이 가장 불쌍한 것은 믿는 사람은 순전히 부활의 때를 소망하고 부활 준비로 이 세상을 살기 때문입니다. 부활만을 바라보고 준비하며 일생을 살았는데 부활이 없다면 그의 일생은 전부 헛일한 것이 되니 이보다 더한 허무가 없고 비참하고 불쌍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알든 모르든, 믿든 안 믿든 부활은 있고, 이는 변할 수 없는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세상은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
부활을 믿는 기독자에게 세상은 무엇인가? 세상은 부활 너머 영원한 세계를 준비하는 한 과정일 뿐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나그네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의 세상 생활은 세상을 위한 생활이 아닌 부활의 소망을 준비하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세상을 살되 우리의 방향은 부활이어야 하고, 목표는 부활 너무 무궁세계라야 하며, 따라서 우리 모든 생활의 손익 계산의 기준은 부활 너머 심판과 무궁세계라야 합니다.
세상은 지나가면 그만이며 세상의 모든 것은 잠시 푸르다가 시드는 풀과 같고 세상의 모든 영광은 열흘 붉기도 어려운 풀의 꽃과 같기 때문입니다. 재물은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이며, 권세는 10년 가기가 어렵고 그 이상 간다 해도 그 결과는 너무도 비참하게 되는 것을 수많은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보고 일고 있습니다. 세상 명예며 영광이라는 것도 한쪽이 영광이면 한쪽에서는 이를 갈고 복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세상 영광입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 그 본인과 가족에게는 영광인데 은메달 딴 사람에게는 억울하여 잠을 자지 못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너무도 허무한 세상의 모든 것들입니다. 솔로몬의 탄식처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이 세상만 보고 사는 세상의 모든 생활입니다.
이런 모든 사실을 너무도 또렷하게 실질적으로 보면서 알고 있는 믿는 사람이 그러면서도 세상을 욕망하고 산다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생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자의 세상 생활은 부활을 향한, 부활을 목표한, 부활의 손익 계산을 따지는 생활이 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실 생활에 쫓겨 이렇게 살지 못하면 인식이라도 이렇게 가져야 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부활 준비에 전력할 수 있는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 기도라도 간절히 해야 할 것입니다.
2. 부활 영광의 차이
(존재와 존재의 차이)
세상에는 수많은 존재가 있고 존재마다 그 존재의 지능과 실력에 따라 가치의 차이가 있으며 그 가치의 차이에 따라 대우의 차이가 있게 됩니다. 모래는 모래만큼의 가치에 따라 사람이나 짐승들이 마구 밟고 다닙니다. 잡초는 잡초만큼의 대우로 사람들이 마구 베고 뜯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참새는 잡초보다는 나은 존재이기 때문에 공중을 날며 사람들에게도 잡초보다는 나은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소는 사람들이 일도 시키고 잡아먹기도 하지만 참새보다는 비싼 대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만물과 달리 만물의 영장으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사람을 풀이나 참새나 소처럼 대하다가는 큰 죄가 됩니다. 존재의 차이이며 존재의 가치의 차이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차이)
사람이면 다 같은 사람인가? 사람과 사람의 차이는 어떤 면에서 종이 한 장 차이라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의 차이는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유식한 사람과 무식한 사람, 유능한 사람과 무능한 사람의 차이는 금전적으로는 계산하기 어려울 만큼 큰 차이가 있습니다.
꼭 같은 사람의 모양을 가져, 이목구비 수족 오장육부가 있고 그 속에 지정의 희로애락의 마음까지 가진 사람인데 어떤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필요 없고 짐만 되어 차라리 없었으면 하는 사람도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차라리 물건이면 내다버리기라도 하겠고 소나 말 같은 짐승이면 팔면 돈이라도 얼마 생기겠는데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도 하지 못하는, 참으로 짐이요 두통거리인 사람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실력 있고 인품 있어 가족들은 물론 사회의 많은 사람들과 더하여 나라의 모든 백성들에게도 없어서는 안 되는 필요한 인물로 존경 받는 사람도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사람의 차이는 실력의 차이)
다 같은 사람이라는 형상을 가진 사람인데 왜 사람과 사람의 차이가 이렇게 크게 나는가? 지능의 실력 차이 때문입니다. 실력 있는 사람은 실력이 있으니 가치가 있는 것이고, 가치가 있으니 그 가치에 따라 대우할 수밖에 없고, 실력 없는 사람은 실력이 없으니 가치가 적고 가치가 적으니 그 적은 가치만큼 대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배운 것 없고 게으르고 다른 사람 생각할 줄 모르고 술이나 먹고 노름이나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어느 가정, 어느 회사, 어느 사회에서도 대우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이 배워 아는 것이 많고 부지런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겸손하며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가족들도 회사도 사회에서도 국가에서도 다 인정을 할 것입니다. 고철덩어리와 금덩어리는 그 값의 차이가 엄청나게 많을 것입니다. 고철덩어리와 금덩어리를 값을 같이 칠 수는 없습니다. 가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 차이는 한 순간)
문제는 세상이 아니라 부활 너머입니다. 세상은 무능해도 한 세상 유능해도 한 세상입니다. 세상은 부해도 한 세상 가난해도 한 세상입니다. 세상은 유식해도 한 세상 무식해도 한 세상일 뿐입니다. 지나가면 아무것도 없는 허무한 것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내세를 믿지 않는 무신론주의자들은 세상을 막살이로 살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들의 말대로 주어진 운명을 따라 자기 실력껏 살다가 죽으면 그만으로 사는 것이 세상만 아는 무신론주의자들의 생활입니다. 그래서 가장 잔인할 수 있고 막가파로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무신론주의자들, 공산주의자들입니다. 무신론자들보다는 차라리 이종교를 믿는 사람들, 심지어 미신을 섬기는 사람이라도 무신론자들보다는 낫습니다. 그들은 정확히는 모르지만 사람 이상의 어떤 신적인 존재를 믿고 있고, 희미하여 할 수 없지만 어렴풋이나마 내세를 믿기 때문에 막살이로 함부로 살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한 성령의 역사와 성경 말씀 진리를 통하여 인생의 근본은 물론 모든 존재의 근본과 영원 무궁세계를 알고 있습니다. 영원한 무궁세계가 어떻게 펼쳐질지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하나 어떤 방향으로 무궁세계가 영원토록 전개될는지 윤곽적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인생이 무엇이며 세상은 무엇이며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믿는 사람은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만물의 영장이며, 세상은 영원한 내세를 준비하는 한 과정의 기간이며 장소요, 죽음 너머에는 부활이 있고, 부활 너머 심판이 있어 세상에서 행한 대로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고, 심판 받은 그대로 무궁세계에서 영원토록 살게 되는데, 영원한 무궁세계 천국에서의 성도와 성도의 차이가 이 세상과는 비교 못할 만큼 무한히 크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만 사람과 사람의 차이가 심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서의 사람과 사람의 차이는 무한하다 할 만큼 차이가 많습니다. 세상 차이는 잠깐이지만 천국 차이는 영원입니다. 세상 차이는 노력에 따라, 환경 변화에 따라 바뀔 수도 있지만 천국의 차이는 세상에서 만들어진 그대로 다시는 영원토록 변함이 없고, 오히려 영원으로 갈수록 그 차이는 더 벌어지게 되는 것이 천국의 차이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정말 알고 믿는다면 믿는 사람의 세상 생활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를 것인데, 오늘 이 시대 수많은 믿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은 이름만 믿고 무늬만 믿는 사람이지 실제 믿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니, 내가 세상에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탄식하신 예수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의 능력의 차이)
부활 영광의 차이는 실력의 차이인데 이 실력을 공과에서는 능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 능력 삼은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 능력 삼는 방법은 자기의 모든 움직임이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몸은 내 몸이라 눈은 내 눈이고 입은 내 입이며 수족은 내 수족인데 그 모든 움직임은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라 하시는 것만 보고 하나님이 말하라 하시는 말만 하고, 하나님이 가라 하시는 곳에만 가고 하나님이 생각하라 하시는 것만 생각하고…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고 아버지의 말씀이며 내가 하는 일은 내 일이 아니라 아버지의 일을 내가 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들이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내 능력 삼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는 외부적인 모습은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알고 믿고 그 말씀대로 내가 모든 심신의 언행심사를 하고, 이 생활이 계속되어 질 때 이제는 이 말씀이 나를 주장하여 내 모든 언행심사를 말씀으로 하는 것이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동거동행 동고동락의 생활이 되는 것이니, 겉으로는 사람인데 실제로는 하나님으로 사는 생활이 믿는 사람의 절정의 생활입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으니, 사도 바울이 이렇게 살았고 백 목사님 같은 분들이 이렇게 사신 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심히 어려워 일반 성도인 우리는 흉내도 내기 어렵지만 부활 영광의 차이는 여기서 결정되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능력은 영광)
부활의 능력의 차이를 영광의 차이라 했습니다. 영광이라는 것은 은택을 입은 사람이 있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나로 인한 혜택을 받은 사람이 적으면 영광도 적고 많으면 영광도 많습니다. 나로 인한 은혜를 입은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영광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영광이라는 것은 억지나 강제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영광은 받는 사람에게는 영광이고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은 감사입니다. 감사가 넘치면 찬송이 됩니다. 감사하고 찬송하는 사람이 많으면 영광이 많은 것입니다.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이 없으면 영광은 없는 것입니다.
부자가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그 재물로 다른 사람에게 베푼 것이 없고 혜택 준 것이 없으면 감사는 없을 것이니 그 부자는 욕심 많은 부자는 될지라도 영광은 없을 것입니다. 자기만 아는 돼지 같은 사람이라고 뒤에서 쑥덕거리며 욕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많지 않은 물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남을 위해 쓴 것이 있고 혜택을 입은 사람이 있으면 감사가 있을 것이고 그만큼 그에게는 영광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차이는 영광의 차이니,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 능력 삼는 모든 생활은 영광의 성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동하고 정함으로 하나님의 전지전능의 지능을 내 것 삼는 것은 그것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밟고 나를 높이고 나를 세우고 나를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고,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낮고 천한 사람으로 오시되 가장 낮은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고난 받고 죽으신 것처럼, 그러므로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입은 모든 존재는 하늘에 있는 존재나 땅에 있는 존재나 땅 아래 있는 존재들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처럼,
하나님으로 동하고 정하여 하나님의 모든 능력을 내 능력 삼은 우리의 생활은 자기 아닌 타를 위한 생활이 되어, 나의 물질, 나의 수고, 나의 노력, 나의 희생이 위로는 하나님 아버지를 위함이 되고 옆으로 아래로는 타를 위한 모든 생활이 진정 되어 질 때, 나의 그 혜택을 받은 모든 사람은 진정 섞임 없이 나를 좋아하고 나를 사모하고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게 되며, 그들 속에는 진정한 감사가 넘치고 넘쳐 찬송이 나오게 될 것이니 이것이 우리의 부활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 희생 자기 십자가 없이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영광의 나라이며 우리 구원은 영광의 구원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부활 영광 마련의 시기
(부활의 영광의 소망치)
이 보배로운 부활의 영광을 우리는 어디까지, 얼마나 마련할 수 있는가? 소망적으로는 예수님과 같은 능력과 영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이 소망의 실상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예정 속에 정해져 있을 것이고, 실제적으로는 우리의 모든 노력 여하에 따라서 되어질 것이니, 자기 전심전력을 다하여 이 소망의 실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 할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부활의 영광 마련 시기는 현실)
부활의 능력, 부활 영광을 이루는 시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며, 바로 지금 자기 현실입니다. 매순간 만나지는 바로 지금 이 순간 자기 현실에 당면한 말씀 하나를 순종하면 지극한 부활의 영광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 순간 당면한 말씀 하나를 어기면 부활의 영원한 수치가 마련되는 것이니, 우리의 영원한 모든 구원은 바로 자기 당면한 현실 이 순간에 달렸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은 귀중한 보배입니다. 있는 힘을 다하여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생활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힘써 노력할 일입니다.
제목: 부활
원문: 1980.06.08.주일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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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요약)
1. 부활 소망의 기독교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
(세상은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
2. 부활 영광의 차이
(존재와 존재의 차이)
(사람과 사람의 차이)
(사람의 차이는 실력의 차이)
(세상 차이는 한 순간)
(부활의 능력의 차이)
(부활의 능력은 영광)
3. 부활 영광 마련의 시기
(부활의 영광의 소망치)
(부활의 영광 마련 시기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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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활 소망의 기독교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
기독교가 이종교와 다른 많은 것 중에 중요한 하나는 부활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죽음 너머 세계를 말합니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게 되어 있고, 죽음으로 끝남이 아닌 죽음 너머 부활이 있으니, 그러므로 죽음은 이승의 마지막이면서 내세의 영원한 시작이 되는 것인데 부활은 영원한 내세의 자기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부활이 없다면 모든 사람 가운데 믿는 사람이 가장 불쌍한 것은 믿는 사람은 순전히 부활의 때를 소망하고 부활 준비로 이 세상을 살기 때문입니다. 부활만을 바라보고 준비하며 일생을 살았는데 부활이 없다면 그의 일생은 전부 헛일한 것이 되니 이보다 더한 허무가 없고 비참하고 불쌍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알든 모르든, 믿든 안 믿든 부활은 있고, 이는 변할 수 없는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세상은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
부활을 믿는 기독자에게 세상은 무엇인가? 세상은 부활 너머 영원한 세계를 준비하는 한 과정일 뿐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나그네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의 세상 생활은 세상을 위한 생활이 아닌 부활의 소망을 준비하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세상을 살되 우리의 방향은 부활이어야 하고, 목표는 부활 너무 무궁세계라야 하며, 따라서 우리 모든 생활의 손익 계산의 기준은 부활 너머 심판과 무궁세계라야 합니다.
세상은 지나가면 그만이며 세상의 모든 것은 잠시 푸르다가 시드는 풀과 같고 세상의 모든 영광은 열흘 붉기도 어려운 풀의 꽃과 같기 때문입니다. 재물은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이며, 권세는 10년 가기가 어렵고 그 이상 간다 해도 그 결과는 너무도 비참하게 되는 것을 수많은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보고 일고 있습니다. 세상 명예며 영광이라는 것도 한쪽이 영광이면 한쪽에서는 이를 갈고 복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세상 영광입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 그 본인과 가족에게는 영광인데 은메달 딴 사람에게는 억울하여 잠을 자지 못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너무도 허무한 세상의 모든 것들입니다. 솔로몬의 탄식처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이 세상만 보고 사는 세상의 모든 생활입니다.
이런 모든 사실을 너무도 또렷하게 실질적으로 보면서 알고 있는 믿는 사람이 그러면서도 세상을 욕망하고 산다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생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자의 세상 생활은 부활을 향한, 부활을 목표한, 부활의 손익 계산을 따지는 생활이 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실 생활에 쫓겨 이렇게 살지 못하면 인식이라도 이렇게 가져야 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부활 준비에 전력할 수 있는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 기도라도 간절히 해야 할 것입니다.
2. 부활 영광의 차이
(존재와 존재의 차이)
세상에는 수많은 존재가 있고 존재마다 그 존재의 지능과 실력에 따라 가치의 차이가 있으며 그 가치의 차이에 따라 대우의 차이가 있게 됩니다. 모래는 모래만큼의 가치에 따라 사람이나 짐승들이 마구 밟고 다닙니다. 잡초는 잡초만큼의 대우로 사람들이 마구 베고 뜯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참새는 잡초보다는 나은 존재이기 때문에 공중을 날며 사람들에게도 잡초보다는 나은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소는 사람들이 일도 시키고 잡아먹기도 하지만 참새보다는 비싼 대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만물과 달리 만물의 영장으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사람을 풀이나 참새나 소처럼 대하다가는 큰 죄가 됩니다. 존재의 차이이며 존재의 가치의 차이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차이)
사람이면 다 같은 사람인가? 사람과 사람의 차이는 어떤 면에서 종이 한 장 차이라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의 차이는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유식한 사람과 무식한 사람, 유능한 사람과 무능한 사람의 차이는 금전적으로는 계산하기 어려울 만큼 큰 차이가 있습니다.
꼭 같은 사람의 모양을 가져, 이목구비 수족 오장육부가 있고 그 속에 지정의 희로애락의 마음까지 가진 사람인데 어떤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필요 없고 짐만 되어 차라리 없었으면 하는 사람도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차라리 물건이면 내다버리기라도 하겠고 소나 말 같은 짐승이면 팔면 돈이라도 얼마 생기겠는데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도 하지 못하는, 참으로 짐이요 두통거리인 사람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실력 있고 인품 있어 가족들은 물론 사회의 많은 사람들과 더하여 나라의 모든 백성들에게도 없어서는 안 되는 필요한 인물로 존경 받는 사람도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사람의 차이는 실력의 차이)
다 같은 사람이라는 형상을 가진 사람인데 왜 사람과 사람의 차이가 이렇게 크게 나는가? 지능의 실력 차이 때문입니다. 실력 있는 사람은 실력이 있으니 가치가 있는 것이고, 가치가 있으니 그 가치에 따라 대우할 수밖에 없고, 실력 없는 사람은 실력이 없으니 가치가 적고 가치가 적으니 그 적은 가치만큼 대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배운 것 없고 게으르고 다른 사람 생각할 줄 모르고 술이나 먹고 노름이나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어느 가정, 어느 회사, 어느 사회에서도 대우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이 배워 아는 것이 많고 부지런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겸손하며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가족들도 회사도 사회에서도 국가에서도 다 인정을 할 것입니다. 고철덩어리와 금덩어리는 그 값의 차이가 엄청나게 많을 것입니다. 고철덩어리와 금덩어리를 값을 같이 칠 수는 없습니다. 가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 차이는 한 순간)
문제는 세상이 아니라 부활 너머입니다. 세상은 무능해도 한 세상 유능해도 한 세상입니다. 세상은 부해도 한 세상 가난해도 한 세상입니다. 세상은 유식해도 한 세상 무식해도 한 세상일 뿐입니다. 지나가면 아무것도 없는 허무한 것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내세를 믿지 않는 무신론주의자들은 세상을 막살이로 살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들의 말대로 주어진 운명을 따라 자기 실력껏 살다가 죽으면 그만으로 사는 것이 세상만 아는 무신론주의자들의 생활입니다. 그래서 가장 잔인할 수 있고 막가파로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무신론주의자들, 공산주의자들입니다. 무신론자들보다는 차라리 이종교를 믿는 사람들, 심지어 미신을 섬기는 사람이라도 무신론자들보다는 낫습니다. 그들은 정확히는 모르지만 사람 이상의 어떤 신적인 존재를 믿고 있고, 희미하여 할 수 없지만 어렴풋이나마 내세를 믿기 때문에 막살이로 함부로 살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한 성령의 역사와 성경 말씀 진리를 통하여 인생의 근본은 물론 모든 존재의 근본과 영원 무궁세계를 알고 있습니다. 영원한 무궁세계가 어떻게 펼쳐질지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하나 어떤 방향으로 무궁세계가 영원토록 전개될는지 윤곽적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인생이 무엇이며 세상은 무엇이며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믿는 사람은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만물의 영장이며, 세상은 영원한 내세를 준비하는 한 과정의 기간이며 장소요, 죽음 너머에는 부활이 있고, 부활 너머 심판이 있어 세상에서 행한 대로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고, 심판 받은 그대로 무궁세계에서 영원토록 살게 되는데, 영원한 무궁세계 천국에서의 성도와 성도의 차이가 이 세상과는 비교 못할 만큼 무한히 크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만 사람과 사람의 차이가 심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서의 사람과 사람의 차이는 무한하다 할 만큼 차이가 많습니다. 세상 차이는 잠깐이지만 천국 차이는 영원입니다. 세상 차이는 노력에 따라, 환경 변화에 따라 바뀔 수도 있지만 천국의 차이는 세상에서 만들어진 그대로 다시는 영원토록 변함이 없고, 오히려 영원으로 갈수록 그 차이는 더 벌어지게 되는 것이 천국의 차이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정말 알고 믿는다면 믿는 사람의 세상 생활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를 것인데, 오늘 이 시대 수많은 믿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은 이름만 믿고 무늬만 믿는 사람이지 실제 믿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니, 내가 세상에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탄식하신 예수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의 능력의 차이)
부활 영광의 차이는 실력의 차이인데 이 실력을 공과에서는 능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 능력 삼은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 능력 삼는 방법은 자기의 모든 움직임이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몸은 내 몸이라 눈은 내 눈이고 입은 내 입이며 수족은 내 수족인데 그 모든 움직임은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라 하시는 것만 보고 하나님이 말하라 하시는 말만 하고, 하나님이 가라 하시는 곳에만 가고 하나님이 생각하라 하시는 것만 생각하고…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고 아버지의 말씀이며 내가 하는 일은 내 일이 아니라 아버지의 일을 내가 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들이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내 능력 삼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는 외부적인 모습은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알고 믿고 그 말씀대로 내가 모든 심신의 언행심사를 하고, 이 생활이 계속되어 질 때 이제는 이 말씀이 나를 주장하여 내 모든 언행심사를 말씀으로 하는 것이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동거동행 동고동락의 생활이 되는 것이니, 겉으로는 사람인데 실제로는 하나님으로 사는 생활이 믿는 사람의 절정의 생활입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으니, 사도 바울이 이렇게 살았고 백 목사님 같은 분들이 이렇게 사신 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심히 어려워 일반 성도인 우리는 흉내도 내기 어렵지만 부활 영광의 차이는 여기서 결정되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능력은 영광)
부활의 능력의 차이를 영광의 차이라 했습니다. 영광이라는 것은 은택을 입은 사람이 있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나로 인한 혜택을 받은 사람이 적으면 영광도 적고 많으면 영광도 많습니다. 나로 인한 은혜를 입은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영광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영광이라는 것은 억지나 강제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영광은 받는 사람에게는 영광이고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은 감사입니다. 감사가 넘치면 찬송이 됩니다. 감사하고 찬송하는 사람이 많으면 영광이 많은 것입니다.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이 없으면 영광은 없는 것입니다.
부자가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그 재물로 다른 사람에게 베푼 것이 없고 혜택 준 것이 없으면 감사는 없을 것이니 그 부자는 욕심 많은 부자는 될지라도 영광은 없을 것입니다. 자기만 아는 돼지 같은 사람이라고 뒤에서 쑥덕거리며 욕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많지 않은 물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남을 위해 쓴 것이 있고 혜택을 입은 사람이 있으면 감사가 있을 것이고 그만큼 그에게는 영광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차이는 영광의 차이니,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 능력 삼는 모든 생활은 영광의 성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동하고 정함으로 하나님의 전지전능의 지능을 내 것 삼는 것은 그것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밟고 나를 높이고 나를 세우고 나를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고,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낮고 천한 사람으로 오시되 가장 낮은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고난 받고 죽으신 것처럼, 그러므로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입은 모든 존재는 하늘에 있는 존재나 땅에 있는 존재나 땅 아래 있는 존재들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처럼,
하나님으로 동하고 정하여 하나님의 모든 능력을 내 능력 삼은 우리의 생활은 자기 아닌 타를 위한 생활이 되어, 나의 물질, 나의 수고, 나의 노력, 나의 희생이 위로는 하나님 아버지를 위함이 되고 옆으로 아래로는 타를 위한 모든 생활이 진정 되어 질 때, 나의 그 혜택을 받은 모든 사람은 진정 섞임 없이 나를 좋아하고 나를 사모하고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게 되며, 그들 속에는 진정한 감사가 넘치고 넘쳐 찬송이 나오게 될 것이니 이것이 우리의 부활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 희생 자기 십자가 없이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영광의 나라이며 우리 구원은 영광의 구원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부활 영광 마련의 시기
(부활의 영광의 소망치)
이 보배로운 부활의 영광을 우리는 어디까지, 얼마나 마련할 수 있는가? 소망적으로는 예수님과 같은 능력과 영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이 소망의 실상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예정 속에 정해져 있을 것이고, 실제적으로는 우리의 모든 노력 여하에 따라서 되어질 것이니, 자기 전심전력을 다하여 이 소망의 실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 할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부활의 영광 마련 시기는 현실)
부활의 능력, 부활 영광을 이루는 시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며, 바로 지금 자기 현실입니다. 매순간 만나지는 바로 지금 이 순간 자기 현실에 당면한 말씀 하나를 순종하면 지극한 부활의 영광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 순간 당면한 말씀 하나를 어기면 부활의 영원한 수치가 마련되는 것이니, 우리의 영원한 모든 구원은 바로 자기 당면한 현실 이 순간에 달렸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은 귀중한 보배입니다. 있는 힘을 다하여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생활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힘써 노력할 일입니다.
공과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편집부님 공과설명을 부탁드립니다.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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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80-06-15(24공과)
본문:고린도전서 15장 39절∼49절
제목:부활
요절: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 15:49)
1.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사는 모든 생활은 부활을 소망하고 사는 것이다. 부활이 없으면 가장 불쌍한 자라고 하신 것은 부활 위한 생활이요 세상을 위한 생활이 아닌 것을 말한다. 우리는 부활의 손익을 따져야 하지 세상 어떤 것의 손익을 따져 거기에 의거한 생활을 해서는안 된다.
2. 부활은 그 차이가 심히 많은 것을 말씀했다. 택자들은 예수님 재림 때에 다 부활은 하지만 구원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치 크게 차이가 있다. 부활의 능력은 하나님의 전부로 자기 것을 삼아 움직임이나 그 움직임의 실상은 하나님의 움직임이 된 그것이 부활의 능력이다. 그 능력의 성격은 영광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위로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모든 피조물들에게는 온갖 은택을 입혀 그들로 유익케 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인 것을 가리켜 영광의 구원이라고 말씀하셨다.
3. 이 보배로운 부활의 권능의 마련이 우리의 한계로서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해서 하늘에 속한 예수님과 같은 능력의 형체를 갖출 수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이 모든 능력 마련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현실의 한 생활 생활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세상은 다시 만날수 없는 단번만으로 지나가는 지극히 보배롭고 귀중한 현실이니 피조물대로 살지 말고 주로인하여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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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님 공과설명을 부탁드립니다.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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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80-06-15(24공과)
본문:고린도전서 15장 39절∼49절
제목:부활
요절: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 15:49)
1.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사는 모든 생활은 부활을 소망하고 사는 것이다. 부활이 없으면 가장 불쌍한 자라고 하신 것은 부활 위한 생활이요 세상을 위한 생활이 아닌 것을 말한다. 우리는 부활의 손익을 따져야 하지 세상 어떤 것의 손익을 따져 거기에 의거한 생활을 해서는안 된다.
2. 부활은 그 차이가 심히 많은 것을 말씀했다. 택자들은 예수님 재림 때에 다 부활은 하지만 구원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치 크게 차이가 있다. 부활의 능력은 하나님의 전부로 자기 것을 삼아 움직임이나 그 움직임의 실상은 하나님의 움직임이 된 그것이 부활의 능력이다. 그 능력의 성격은 영광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위로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모든 피조물들에게는 온갖 은택을 입혀 그들로 유익케 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인 것을 가리켜 영광의 구원이라고 말씀하셨다.
3. 이 보배로운 부활의 권능의 마련이 우리의 한계로서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해서 하늘에 속한 예수님과 같은 능력의 형체를 갖출 수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이 모든 능력 마련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현실의 한 생활 생활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세상은 다시 만날수 없는 단번만으로 지나가는 지극히 보배롭고 귀중한 현실이니 피조물대로 살지 말고 주로인하여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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