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4가지 종류와 요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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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4가지 종류와 요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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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나와 죄의 4 가지 차원

(1) 말씀을 어긴 '죄'

- 요나의 죄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을 죄의 4 가지 차원 중에 제 1단계 '죄'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명확한 명령은 '말씀'으로 임하기 때문에 '말씀을 어긴 죄'라고 보통 쉽게 설명합니다. 요나의 경우


욘1: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욘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이렇게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 그 것을 쳐서 외치라! 2 가지 명령을 어겼습니다.


- 요나의 사죄 생활

요나는 물고기 뱃 속에 들어 가게 되고 2장에서 회개하자 하나님께서는 3장에서 다시 같은 말씀을 합니다.


욘3:1, '여호와의 말씀이 두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욘3: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욘3: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이 것은 요나가 '말씀을 어긴 죄를 회개'한 '사죄 생활'이며 요나의 '회개'입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어긴 '불의'의 죄

- 요나의 '불의'의 죄

모든 말씀은 우리의 외부 행위를 요구하는 명확한 명령이 있는데 그 명령에는 반드시 속에 담고 있는 뜻이 있습니다. 학교를 가라 하는 부모의 명령은 학교 대문을 통과하라는 외부 행동을 명령하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뜻은 공부를 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 쳐서 외치라,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공격은 선전포고를 한 다음에 쳐서 죽이지 일본군처럼 기습하지 않기를 보여 주기 위해 단순히 가서 외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현 상태로는 전멸 재앙을 당해야 하니 최종적으로 요나가 가서 외쳐서 회개를 시켜 망하지 않게 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3장에서 '니느웨로 가라' 한 말씀과 '외치라'는 말씀에는 순종했으나 요나의 마음에는 니느웨가 회개할 리는 없고 자기가 외치고 나면 곧 이어 하나님은 하늘에서 불벼락을 내려 다 죽여 버릴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는 말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했으나 그 외침 뒤에 숨어 있는 뜻은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여 화를 피하는 것이고 요나는 그 외침은 곧 이어 질 전멸 재앙의 불가피한 사전 통고였을 뿐이니 요나의 외침의 뜻은 니느웨의 무너 짐이었습니다.


욘3:10,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욘4:1,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욘4:2,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면 다 되는가? 이 것은 1단계요 1학년이요 초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뜻이 들어 있으니 말씀대로 한다 해도 그 뜻과 다르면 불의가 됩니다.

불의라고 하는 것은 명령을 바로 어기는 것은 아니나 자기 마음대로 산다는 면을 말합니다.


(3) 하나님과 '원수 된 죄'

- 요나가 하나님과 '원수' 됨

명령은 받들었으나 하나님의 뜻을 받들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요나 뜻대로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구해 주시게 되자 이제는 요나가 4:5에서 하나님과 정식으로 맞서게 됩니다. 기어코 니느웨 죽는 꼴을 보고야 말겠다며 초막을 지어 놓고 쳐다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요나는 각기 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하나님과 불목, 원수, 연결이 끊어 짐이라고 합니다. 만일 요나가 니느웨가 요나의 회개 소리를 듣고 돌아 켜서 화를 면하게 되어야 한다고까지 생각했다 하더라도 죄 중에 명령을 어긴 죄와 제 마음대로 사는 불의의 죄만 해결이 됩니다. 만일 요나가 니느웨가 돌이 킬 때 원수의 나라며 이방 나라인 니느웨가 잘 되는 것이 뭔가 배 아프고 아쉬웠다면 내나 그 것이 하나님과는 동행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몸으로는 명령을 지키고, 마음 중심에서는 그 뜻도 받들되, 우리의 인격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과 희로애락이 같아야 하고 하나님과 밀착이 되어 하나여야 합니다. 그런데 요나는


욘4:5, '요나가 성에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앉되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 하니라'

이 행동으로 요나는 하나님과 아주 갈라 서서 이제는 니느웨와 하나님이 원수 되었던 그 상태에서 니느웨를 빼 내고 그 자리에 자기가 들어 앉은 상황입니다.


(4) 소망 없는 '절망의 죄'

- 요나의 절망

욘4:8에서 요나는 죽여 달라고 대 듭니다. 그리고 니느웨에게 회개하는 소망이나 가능성이나 그런 미래는 없어야 한다고 밀어 붙이고 있습니다. 이 것은 '소망'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 누구라도 우리로서는 소망 없는 사람으로 끝장 낼 사람으로 생각하거나 그렇게 되도록 만들거나 그리 되기를 바란다면 절망의 죄에 빠지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스스로에게도 그렇습니다. 나야 뭘 하겠느냐는 생각은 한 면으로는 겸손이지만 그 겸손의 바로 옆에는 자기에게 명령 어긴 죄와 자기 마음대로 산 불의의 죄와 하나님과 원수 되어 사이가 끊어 진 죄, 이런 죄보다 더 무섭고 죄 중의 죄라 할 수 있는 '절망의 죄'가 버티고 있습니다.


말씀을 버리고, 내 멋대로 살고, 하나님과 연결까지 끊어 버렸다 해도 돌아 온 둘째처럼 아버지 집을 향해 소망을 가지고 한 걸음을 딛게 되면 이는 4 가지 죄 중에 4번 째가 되는 절망의 죄에는 빠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절망의 죄에만 붙들리지 않고 소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어느 지경에 빠졌을지라도 다시 출발하고 새로 시작하고 생명을 심어 기를 수 있습니다.


2. 가룟 유다의 죄

같은 원리로 본다면, 예수님을 판 유다가 평소 연보궤에 돈을 훔친 것이 말씀 어긴 1단계의 죄라면, 예수님을 넘겨줄 방책을 의논하고 유월절 만찬 자리에서 제 갈 길을 간 것이 자기 마음대로 산 2단계의 불의의 죄가 되고, 예수님을 잡으러 온 것이 3단계의 원수 된 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넘겨 준 뒤에 자살을 한 것은 4단계의 절망의 죄가 됩니다. 성경으로 본다면,


죄 - 요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불의- 눅22:4,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줄 방책을 의논하매'

요13: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원수- 눅22:48,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절망- 마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3. 백영희 '죄론'은

단순히 관념적이거나 이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백영희의 모든 깨달음 세계 거의 전부가 그러하지만 이 죄론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깨달은 것으로 그 시대를 감당했다면 오늘의 우리에게 또 다시 감당할 시대적 사명이 있고 그 사명에 맞게끔 알려 주신 것을 외쳤습니다. 상기 설명을 자세히 냉정히 읽어 보신다면 4 가지 죄의 차원들은 또 하나의 학설을 만들어 성과를 만드려는 것이 아닙니다.


죄론에서부터 어느 신학의 부문이든 마찬 가지지만, 역사에 괜찮은 책이 하나 나온다면 그 책 하나의 부족한 점을 보충해 가며 발전을 시키는 것이 옳은데 괜히 자기 이름을 내려고 또 하나의 책을 적고, 그 책을 적으며 앞 사람 것을 배끼지 않았음을 말하려고 꼭 같은 말을 함부로 이리저리 둘러 해 놓으면


-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책 하나를 냄으로 인해 어지럽게 만든 이 죄가 보통이 아니고

- 그 죄의 근본은 자기라는 것을 나타 내기 위한 자기 중심의 악이니 악한 짓을 한 것이고

- 교회는 한 몸인데 남이 먼저 깨달은 것이 제 것인 줄 모르는 이 죄는 교회론의 죄입니다.

- 또 말과 책으로 남달리 뭔가 내려는 것은 명예처럼 두고 갈 세상 것이니 죽을 짓을 한 것이고

- 심지어 뻔히 남의 것을 조합해서 자기가 내고 만든 죄는 죄질이 보통 나쁜 것이 아닙니다.


죄론처럼 복잡한 것도 없습니다만 죄론은 이미 칼빈과 초기 개혁가들에 의해 천주교에서 탈출한 후에 좋은 방향을 잡아 놓았는데 칼빈주의자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이 칼빈이 만든 책이나 방향 외에 온갖 것을 퍼특 머리에 무엇이 떠오를 때마다 한 사람씩 다 쏟아 내 놓으니 그들 때문에 오히려 일반인들은 죄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소선을 가지고 대선을 막은 꼴이 되었습니다.


백영희는 평생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이런 꼴이 될까 싶어 전전긍긍했고, 어지간하면 먼저 나온 것을 사용하려고 무리까지 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런 면도 보통 장점이라 할 수 없는 특이한 점입니다. 전천년설 후천년설이라는 단어는 새로 고쳐 만들 정도인데도 뜻만 달리 설명하고 기존 신학의 틀이랄까 집 자체를 부수지는 않았습니다. 삼위일체로부터 많은 교리를 두고 그 깨달음의 수준이 낮아서 여간 불편하다 해도, 교회는 하나며 성경이 단일 진리를 가르치고 계시니 기본구원처럼 특별하게 단어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만 그렇게 했다는 점에서 죄론을 두고 특별히 한 번 짚어 보고 싶습니다.


>> 신학도 님이 쓰신 내용 <<

:

: 죄를 연구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을 돌이키는 중요한 일인데 죄에 대해 모두가 한 마디씩을 다해서 어지럽습니다. 백목사님의 죄론은 명확하고 실생활에서도 적용하기 좋습니다. 최근 요나서를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경우로 4가지 죄를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설교시간 말씀에는 방향이 달라서 그랬는지 이면을 잘 잡기 어려웠습니다.
죄의 4가지 종류와 요나서
죄를 연구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을 돌이키는 중요한 일인데 죄에 대해 모두가 한 마디씩을 다해서 어지럽습니다. 백목사님의 죄론은 명확하고 실생활에서도 적용하기 좋습니다. 최근 요나서를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경우로 4가지 죄를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설교시간 말씀에는 방향이 달라서 그랬는지 이면을 잘 잡기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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