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려울 때는 가장 원칙대로 - 주일학교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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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려울 때는 가장 원칙대로 - 주일학교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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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혼, 출산, 교육의 사회적 추세

- 세상 결혼

주님 오실 말세는 노아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마24:37에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38절에서는 노아의 때에 대표적 죄로 먹고 마시고 장가 가고 시집 가는 것을 꼽았습니다.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 하는 대상으로 결혼했다고 했습니다.


- 좋은 음식

지금 먹고 마시는 것은 노아 때보다 주님 오셨을 때보다 그리고 지난 역사와 비교할 때 이렇게 넘치고 다양한 적은 없었습니다. 로마나 중국의 황제가 오늘 우리 서민의 식탁만큼 다양하게 먹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시골 어느 밥상에도 세계 모든 나라의 최고급 식자재가 최상의 상태로 올려 져 있습니다. 계절도 없습니다. 맛에 맛을 더하고 멋과 기술이 더하고 있습니다. 극빈층 아이들은 주변의 아동 시설에서 자유롭게 먹을 수 있고, 아이들이 먹기가 싫어 음식으로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 번식과 결혼

이렇게 잘 먹으면 몸이 좋아 집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잘 먹이면 새끼를 치고 열매를 잘 맺습니다. 사람도 잘 먹여 놓으면 몸이 조숙해 집니다. 보기에도 좋습니다. 남녀가 서로 일찍 만나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건이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 절정의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짐승이나 식물과 달라서 상대를 고르는 취향이 개입 됩니다. 아무나 붙들고 살면 마찬 가지인데 공연히 생긴 것을 따지고 복잡해 진 사회와 어지럽게 된 문화까지 기준에 넣어 상대방을 선택하는 일이 고등 수학을 푸는 것처럼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목격 되는 것은 이미 지금 21세기 인류는 지난 수천 년 살아 온 조상들과 비교할 때 종자 자체가 달라 졌습니다. 변종이며 진화론 입장에서 보면 돌연변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세상과 교계는 발전이라 하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괴물이며 변태입니다. 먹고 자라고 이성을 알 정도가 되면 결혼하고 모두가 비슷한 20 세 안팎에서 결혼하면 아이를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이런 과정이 하나님께서 만든 원래 인류 사회의 모습이며 교회의 주일학교는 이런 상황을 무대로 삼아 시작 되고 유지 되어 왔습니다. 물이 있으니 물고기가 넘치고 식물이 돋아 나고 그 뒤를 이어 곤충이 번성하고 새와 작은 짐승들이 살고 그 위에 소와 양과 맹수들이 자리를 잡고 그 제일 꼭대기에 우리 인간이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창세기 1장의 구도입니다. 그런데 20세기를 지나면서 이 근본 토대가 변형을 시작했고 21세기 오늘에는 분명히 천지가 개벽을 했습니다.


물이 없어도 물고기가 살고, 식물과 곤충이 없어도 동물이 살고, 메마른 대지 위에 인간들이 먹고 마시고 취하고 즐기고 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주선에서는 지금 실제 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이 극단적 예외가 아니라 결혼 문제로 들어 오면 예전의 40대는 손주를 볼 나이인데 우리 주변에 결혼하지 않은 40대가 흔합니다. 30대의 결혼은 과거에 아주 특수한 경우였는데 이제 이 특수한 상황이 일반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국이 출산을 막고 나서서 한민족의 존립을 우려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것이 우리의 주일학교 무대입니다.


- 양심과 신앙

초등학교 교사는 자기의 결혼을 미루며 아이를 낳지 않으면서 우리 사회를 향해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떠들 수 있습니다. 미술 교사가 자기 아이는 국영수만 집중 시키고 미술 음악은 제쳐 두게 하면서 학교에서는 미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발표회에서는 인간에게 예술이 생명이라고 떠들 수 있습니다.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세상 양심과 같을까! 주일학교를 걱정하는 사람, 주일학교 선생님들, 목회자들께 오늘 뜨겁고 무거운 주제로 소리를 높여 보겠습니다. 목회자들의 결혼 연령과 평균 출산률을 두고 강단에서 과연 할 말이 있을까요? 주일학교 문제를 향하여. 목회자들의 결혼 연령이 비교적 20대 후반에서 자리를 잡는 이유는 모두들 아실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신학교나 전도사 시절에 여반 청년들을 지도하는 관계로 결혼에 있어서 남 다른 특혜를 누리는 면이 있습니다. 어쨌든 목회자들의 결혼 연령은 외부적으로 보기에는 무난해 보입니다. 문제는 출산 숫자입니다. 우리 사회의 추세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가 함께 1 - 2 명만 낳다 보니까 아이들 자체가 없어 지는데 교회가 주일학교를 걱정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비양심입니다. 비신앙입니다. 결혼할 상대를 찾는 바로 그 사회적 추세가 아이를 적게 낳고 늦게 낳는 추세로 이어 지고, 그리고 이제 마지막 남은 단계가 아이의 교육 과정인데 1 - 2 명을 낳아 둔 그 아이들을 기르는 방식이 목회자나 교인들이나 세상 사람들이나 모두가 아이 좋도록 아이의 학습에만 맞추어 진행을 하다 보니 일반적으로 요즘 학생들의 일상 생활에서 청소년 학생기에 주일학교와 중고등부의 예배가 들어 갈 여지가 없습니다. 주말에는 1박2일의 장거리 체험 학습이나 활동을 해야 하고 평일에는 학교의 빡빡한 일정에 숨 돌릴 틈이 없습니다.


주일학교 관계자들로서는 결혼과 출산과 일반 교육은 전부 이 세상 일반 추세를 이해하고 자신들도 그렇게 하다가 주일 날 주일학교 예배 시간만은 예전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해 버리면 불신자들은 물론 일반 교인들까지도 그 말이 귀에 들어 갈 리가 없고 그 논리가 양심과 신앙 앞에 설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2. 어떻게 해야 할까?

- 교회 내의 결혼과 출산만 정상화 되어도

주일학교는 단번에 기반이 잡힙니다. 20대의 결혼으로 잃을 것은 20대의 죄 지을 기회고, 얻을 것은 평생 나와 함께 살 이 땅 위에 가장 큰 선물인 아내며 남편이 될 것입니다. 잃을 것은 아이 없는 외로움일 것이며 얻을 것은 희망과 소망을 품은 아이들의 울음 소리일 것입니다. 울음이란 생명의 생생한 표시입니다.


답변자 경험에 아이 없는 완전 시골과 지방의 중소 도시의 도심에 한 가정으로 시작한 개척 교회의 경우를 직접 겪었습니다. 10 년이 걸려서 주일학교의 기반을 잡았고 20 년이 되니까 주변 모두가 눈을 뜨고 쳐다 볼 상황이 생겼습니다. 10 년에 기반을 잡는다면 비록 능력 있는 목회라 할 수는 없겠으나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현상은 될 것으로 봅니다.


사도행전 2장의 역사나 백영희 목사님의 서부교회나 미국의 무디와 같은 정도의 경우는 우리가 흉내 내지 못할지라도 오늘 주일학생이 시골에도 개척교회에도 교회의 3 분의 1에서 절반을 차지할 수 있다면 적어도 주일학교의 '유지'라고는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일단 유지만 하고 있다면 언제든지 때를 주실 때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주일학교를 속속 폐쇄하고 있으며 유지하고 있다 해도 그 내용을 보면 주일학교가 아니라 주일 어린이집이나 주일 놀이학교에 그치고 있다고 보입니다. 가끔 주일학교 부흥의 사례가 보도 되고 있으나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열심과 숫자만 특별하지 그 속은 모두 세상 것으로 채워 져 있습니다. 이 노선이 예전부터 강조하고 늘 중심에 두고 설명하는 주일학교는 연령만 어릴 뿐이지 교회의 예배 모임입니다.


- 주일학교 문제니 당연히 주교 선생님들이 앞 장을 서야 합니다.

골목으로 아이들을 전도하러 나가야 할까? 과거에 골목마다 아이들이 넘쳤던 때는 그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습니다. 모두가 일찍 결혼했고 아이들을 많이 낳던 시기에는 골목마다 필요한 것이 '전도' 하나뿐이었습니다.


오늘의 골목은 모두가 출산을 기피하여 텅 빈 골목이 되어 있습니다. 이 골목을 다니며 아이가 없으니 아이를 낳아라고 떠들 것이 아니라, 주교 선생님들이 지금 마음 속에는 이성을 그리고 찾고 고르고 있을 터이며 남 몰래 여러 가지 죄를 짓고 있을 터인데, 그런 비생산적이고 잘못 된 자신을 버리고 당장에 결혼을 해 버리면 됩니다. 신앙을 기준으로 결혼하려면 결혼 상대는 주변에 널렸습니다. 세상 모든 조건을 다 맞추고 제 취향을 다 만족 시키고 그리고 신앙까지 맞추려고 하니 자신들이 창조주 하나님이 되어 아담을 만들 듯이 새로 만들면 모를까 그 전에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신앙에 유리한 조건을 앞 세우고 세상 모든 조건을 낮추어 버리면 결혼 상대는 흔합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많이 낳으면 주일학교는 저절로 됩니다.


- 신앙의 순서대로

목회자가 그렇게 하시고, 주교 간부들이 그렇게 하시고, 주교 선생님들이 그렇게 하면 간단한 일입니다. 세상 사는 것을 전부 철저히 짜 맞추고 나서 남는 시간에 교회를 다니고 그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주일학교를 걱정하고 있으니 애당초부터 될 가능성도 없습니다.


해외 선교까지 나가는 시대에 해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자기를 통해 이 땅 위에 태어 나야 할 아이를 태어 나지도 못하게 가로 막고 있는 이 비복음을 먼저 해소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습니다. 결혼을 하고 싶고 아이를 낳고 싶은데 선교지의 안타까움에 불이 붙어 밖으로 나가는가? 결혼을 일찍 해서 아이에 붙들리는 것이 싫거나 그런 일을 늦추다가 남들이 해외에 나가서 역사에 남을 일들을 한다니까 신기하여 호기심에 군중심리에 선교사로 나가는가? 그 속에 들어 있는 심리를 파악하고 면접을 통해 걸러 내려 한다면 아마 지금 선교 지원자의 10 %도 통과하기 힘들 것입니다.


3. 가장 어려울 때는 비법을 찾지 말고 원칙을 찾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울 때는 특식도 먹을 수 있고 비방의 덕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어렵고 힘들고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사람들의 생각이 평소에도 비법과 특효약이 좋았으니 이 어려울 때는 더욱 더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는 듯합니다. 그 반대입니다. 평소에는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환경이므로 좀 독특한 것을 찾아 멋도 부리고 여유도 찾고 또 아주 좋은 기회를 잡아 볼 수도 있으나 사람이 생각할 때 길이 없다 할 만큼 다 막히는 이런 문제를 만날 때는 가장 쉽고 간단한 원리로 돌아 와서 처음부터 검토하는 것이 비법이며 특효약입니다.


과거 80년대까지의 서부교회 주일학교 전성 시기에는 20대 결혼에 3 - 4 명을 출산하던 시기여서 교회마다 주일학교가 보기 좋게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서부교회는 사실상 특별하지도 않은 것인데 마치 특별하게 보이던 비법을 사용했습니다. 주일학교를 세상 학교처럼 학년과 반을 나누어 1 년의 담임제로 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점을 봤습니다. 주일학교를 작은 교회로, 주일학교의 반들을 작은 교회 안에 또 하나의 작은 교회로 봤습니다. 각 반의 선생님에게 개척 교회 목회자처럼 출발하도록 부탁했습니다. 가장 평범하고 좋고 자연스러운, 그런데 좀 어려워 보이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방법의 결실은 역사적 사건으로 이어 졌습니다. 2천 년 기독교 역사의 최고 최대 사건으로 기록을 하게 됩니다. 이 것이 그 당시의 비법이었습니다.


오늘은 학교 자체가 없어 지고 있습니다. 아이 자체를 낳지 않습니다. 살아 가는 주거 여건만 찾아 도심의 외곽으로 먼 곳으로 집을 다 옮겨 버렸습니다. 한 골목에서 아이를 쓸어 담아 오기는 커녕 집집마다 들어 가서 훑어도 아이 자체가 없습니다. 있다 해도 주일에는 가족이 장거리 먼 여행을 떠나 버렸습니다. 교인들까지도.


이런 시기의 주일학교 타개책은 당장에는 아무 소용이 없고 누가 들어도 그런 말이야 누가 못해 라고 비웃을 처방, 그런데 가장 쉽고 간단한 이치로 소개합니다. 노아 때의 죄에 빠지지 않고 주님 오실 이 시대에 예고 된 죄들을 이길 수 있으며 우리의 관심인 주일학교가 부흥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 바로 선생님들의 결혼과 출산에서 찾아 보십시오. 주일학교뿐만 아니라 장년반 부흥의 지름길이며 교인들의 평소 생활이 결혼을 늦춘 사람과 일찍 한 사람을 신앙으로 살펴 보면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답변자 교회의 주일학생 숫자는 바로 옆에 있는 초등학교의 전체 학생수보다 많습니다. 선생님들의 평균 출산이 4- 5 명입니다.


>> 반사 님이 쓰신 내용 <<

:

: 침체되어있는 주일학교를 다시 부흥시킬 방법은 없는지요?

:
주일학교
침체되어있는 주일학교를 다시 부흥시킬 방법은 없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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