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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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설명입니다.

분류
편집부 0
본문: 사도행전 3장 6절∼10절

제목: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원문: 1986.09.24.수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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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요점)


참고: 공과의 성경 본문 요점


서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본론:

1. 예수의 이름, 그 능력과 믿음

2. 예수의 이름으로 받은 7가지

1)앉은뱅이가 받은 치료 5가지

2)사도들이 받은 복 2가지

3. 예수의 이름 5가지의 효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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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공과의 배경이 된 성경 본문은 행3:1-16인데,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다가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가 성전 문에 앉아서 구걸하는 것을 보고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고, 앉은뱅이는 곧 일어서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일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할 때 그들은 '우리가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예수의 이름과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이 사람을 낫게 했다고 증거한 것이 간략한 내용입니다.


많이 배워서 아는 대로 성경의 모든 이적은 표적이며, 이는 오늘 우리의 구원 도리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는 인생으로 나서 한 번도 참된 사람 노릇을 해 보지 못한 사람들을 가리켰으니 믿는 우리들 대부분이 이에 해당합니다. 사람으로 났으나 사람 노릇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사람이 사도들을 만나 인간 병을 완전히 고쳐 새롭게 되었으니, 이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된 것인데, 이 공과는 바로 그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제목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목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지만 공과의 원문 설교를 살펴보면 공과의 중심 내용은 ‘예수의 이름’에 대한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과 전체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서론에서는 제목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고, 본론에서는 1대지에서 공과의 중심인 ‘예수의 이름’의 능력과 그 능력을 받는 방편인 믿음을 설명하고 있고, 2대지는 예수의 이름으로 ‘치료한 실제 내용’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으며, 3대지에서 다시 ‘예수의 이름의 능력, 효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서 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서론에서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목의 뜻을 하나씩 해석하고 있습니다.

‘나사렛’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장소인데 이를 표시한 것은 예수님의 도성인신이 우연이나 돌발, 혹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인위적 자연적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 계획하신 예정과 하나님의 계약을 따라 많은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사실이라는 것을 나타내신 말씀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것이 그러하고 우리 구원의 모든 섭리 역사가 다 그러하듯이 예수님의 도성인신도 하나님의 철두철미한 절대 예정의 순서를 따라 되어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나타난 결과, 되어진 사실을 보고 놀라지만 이는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성의 결과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수’는 도성인신 신인양성일위이신 주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 공로를 설정하신 것을 가리킨 것이라 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성경에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는 하나님이 사람 되신 신인양성일위로의 도성인신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신 것이 '도성인신'이고, 도성인신은 하나님과 사람이 한 인격과 같은 격위를 이루신 '신인양성일위'로 오신 것입니다. 오셔서 하신 일은 대형 대행 대화친의 공로를 설정하사 사죄 칭의 화친의 공로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뜻이니 곧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을 가지신 것과 이 세 가지 직책을 가지고 우리를 역시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시는 이 일을 하시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을 감당하는 것은 자신이 제사장 선지자 왕이 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을 제사장 선지자 왕의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그리스도의 나라 즉 제사장 선지자 왕의 성격의 나라라 합니다.


본론


1. 예수의 이름, 그 능력과 믿음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낫게 한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 능력을 끌어온 것은 이 이름을 믿는 믿음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서론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본론 1대지는 ‘예수의 이름’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름이란 역사(役事)를 말합니다. 역사란 일, 움직임, 활동, 작용, 즉 이루어 놓은 공로를 말합니다. 예수의 이름이란 예수님이 하신 일을 말하는 것인 곧 예수님이 설정하신 대속의 공로를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사죄 칭의 화친이며, 이 세 가지 공로로 인하여 우리에게 오게 된 것이 영감과 진리입니다. 간단하게 3가지로 줄이면 피와 성령과 진리인데 이 셋은 떨어질 수 없는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성령과 진리도 함께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사죄 칭의 화친 3가지이고, 성령과 진리가 늘 함께 있으니 세밀하게 말하면 5가지입니다. 따라서 이 공과에서 ‘예수의 이름’이라 할 때는 사죄 칭의 화친 영감 진리 5가지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낫게 한 것은 ‘예수의 이름’ 즉 사죄 칭의 화친 영감 진리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 능력을 끌어온 것은 사도들의 믿음입니다. 이 일은 표적입니다. 표적은 구원의 도리와 뜻을 담아 보여 주시는 기적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가 예수의 이름 5가지 능력으로 일어선 것은, 나면서부터 참사람 노릇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앉은뱅이 같은 사람이 인간병을 고쳐 사람다운 참사람이 되는 것은 예수의 이름 5가지의 능력과 그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표적이라는 뜻입니다.


영원 전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사람이 때가 되어 중생이 되고 부르심을 받아 믿는 사람이 되었으면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는 죄 없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 행하는 의로운 사람으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화친의 사람으로, 신앙양심을 통해 알려주시는 성령의 감화 감동 영감을 소멸치 않고 영감에 붙들려 사는 사람으로, 참된 이치인 진리의 말씀으로 사는 사람으로 이렇게 살기만 하면 모든 인간병은 치료되어 참사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이름이 낫게 하는 것이고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낫게 하는 것입니다.


2. 예수의 이름으로 받은 7가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면서 사도들은 앉은뱅이를 일으켰고 앉은뱅이는 완전히 치료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세밀하게 분석해 보면 앉은뱅이가 치료함을 받은 것은 5가지이고,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도들이 받은 것은 2가지입니다.


1)앉은뱅이가 받은 치료 5가지


첫째는 앉은뱅이 병이 나은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지만 완전히 나아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마음대로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의 신세만 지고 살던 사람이 이제는 자립할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평생 부모에게, 형제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두통거리, 고민거리로 짐만 되었던 사람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생활을 하면 이 모든 것을 다 고쳐 이제는 사람답게 살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빛이 되고 사람을 구원하는 참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성전에 출입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몸이 온전치 못한 사람은 성전 출입을 하지 못했습니다. 성전에 출입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구원은 없는 것입니다. 신령한 신약시대는 육신의 장애 때문에 성전 출입을 못 하는 경우는 없으나 사람이 참사람이 되지 못하고 인간병이 들어 있는 사람은 믿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구원은 없는 것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는 예수의 이름으로 병을 고쳐 성전에 출입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으며 구원을 이루어가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예수의 이름으로 자기를 고쳐 참사람이 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셋째는 구걸자를 구제하는 자 되게 했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은 구걸 외에는 먹고 살 길이 없습니다. 제 힘으로 먹고 살 길이 없으니 남의 것을 구걸하는데, 구걸은 다른 사람이 땀 흘려 번 것을 얻어먹는 것이니 정상적인 사람이 할 짓이 못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앉은뱅이는 달리는 살아갈 방법이 없으니 구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성전 문에 앉아서 구걸하는데 성전 문까지 가는 데도 제 힘으로는 못 가고 남의 힘을 빌려 메여 가야 했습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 한 분에게만 받고 모든 피조물에게는 주기만 하는 시은의 위치에 있는 것이 정상이지만 믿는 사람이라도 인간병이 들어 있으면 별 수 없이 하나님 아닌 피조물들에게 구걸하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외형은 땀 흘려 일하고 부지런히 농사짓고 장사하여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받을 것을 받는 것 같으나 하나님 떠난 인생의 모든 생활은 그 속에 들어가 보면 전부 구걸하는 생활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한 분에게 받는 것이 아니면 전부 피조물들에게 이런 모양 저런 형태로 득을 보고 이익을 보려는 것이 모든 인생의 구걸하는 생활인 것입니다.


이렇게 구걸하던 사람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간병을 고치고 나면 이제는 받는 것은 하나님 한 분에게만 받고, 모든 피조물에게는 하나님께 받은 것을 주기만 하는 시은의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나 참으로 인간병을 고친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은 받는 것은 하나님 한 분에게만 받고 모든 사람에게는 주기만 하는 것입니다. 주는 것도 주는 것이고 받는 것도 주기 위해서 받지 참 자기 유익을 위해서 받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걸자가 구제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넷째는 온간 불행한 자가 최고의 만족자가 되었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였으니 그의 생활은 만족이란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 중에 가장 불행한 자였을 것입니다. 사는 것이 고통이었고 원망이었을 것입니다. 죽지 못해 사는 목숨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스스로 살아갈 힘이 없으니 고통이고 남에게 짐만 되니 고통입니다. 앉은뱅이로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미래의 희망이란 꿈도 꿀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낙망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앉은뱅이 병을 고치고 나니 이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습니다. 성전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걸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립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구제하는 사람도 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신감과 소망이 충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모든 불행이 행복으로 바뀌었고 그동안의 모든 절망과 낙망이 가장 희망이 넘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 가운데 가장 기쁨이 충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믿는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인간 병을 고치고 나면 이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가장 멸시받고 천대 받던 사람이 가장 존귀한 인기 독점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앉은뱅이라 불쌍하니 동정하고, 말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무슨 죄가 많아서 나면서 앉은뱅이로 났을까, 불쌍하다 가련하다, 저래 가지고 어떻게 살까, 나 같으면 차라리 죽어 버리겠다…’ 별별 시선들, 수군거림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스스로도 그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앉은뱅이 병을 고치고 난 다음에는 이 모든 것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가장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나은 앉은뱅이를 주목했습니다. 기뻤고 감사했고 희망이 넘치는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의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 인간병을 고치고 나면 이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사도들이 받은 복 2가지


나은 앉은뱅이만 복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은 앉은뱅이가 5가지 큰 치료를 받고 복을 받았다면 앉은뱅이를 낫게 한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2가지 큰 수입을 했으니


하나는 사람 수입입니다. 앉은뱅이를 수입한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 앉은뱅이 병을 고친 이 사람이 병을 고침 받고 난 다음에는 평생 자기를 메도 다녔던 사람은 찾지도 않았고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꼭 붙들고 놓지 않았습니다. 평생을 성전에 메다 놓고 다시 메고 오고 한 그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를 구걸하게만 한 사람들이었고, 더 나쁜 경우는 앉은뱅이가 구걸한 것을 나눠먹는 자들이었습니다. 앉은뱅이로 있을 때는 그들이 필요했고 그들과 동업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병을 고치고 난 다음에는 그들의 도움은 더 이상 필요가 없었습니다. 구걸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제는 떳떳하게 가족의 한 일원으로, 사회의 한 일원으로 당당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사람 노릇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소망이 넘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를 평생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준 사람,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해 준 구원의 은인, 구걸하는 위치에서 이제는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위치로 만들어 준 사람, 가장 큰 기쁨과 존귀와 넘치는 소망을 가지게 해 준 사도들! 바로 이들이 이 앉은뱅이의 은인이었고 스승이었습니다. 나은 앉은뱅이는 사도들의 만 한 마디에 죽고 사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영광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그들의 능력으로 앉은뱅이를 낫게 한 것이 아니었지만 앉은뱅이를 낫게 한 모든 영광은 사도들에게 돌아갔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 영광을 받지 않고 예수의 이름에 그 영광을 다 돌렸습니다. 그러나 사도들도 같은 영광을 받은 것은 말할 것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 구원의 영광입니다. 인간 구원의 길은 영광이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은 것이지만 그러나 구원 받은 사람들이 자기를 구원하기 위해 수고한 복음의 일꾼들에게 가지는 감사하는 마음은 세상 그 어떤 영광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차원의 섞임 없는 영광입니다. 주님이 걸어가신 걸음이 이 걸음이며, 그래서 기독교는 영광의 도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참된 이치입니다. 참된 이치인 진리는 시공을 초월하며 시대를 초월합니다. 어디서든지 이 이치는 그대로 이루어지며 언제든지 이 이치는 변함이 없습니다. 사도들의 초대교회 시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과거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이치는 오늘도 변함없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오늘도 인간병을 고쳐 참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길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며, 이렇게 인간병을 고치고 나면 고침 받은 사람이 받는 5가지 복과 고치는 데 쓰임 받은 복음의 일꾼이 받는 2가지 복은 변함없이 그대로 있게 되는 것입니다. 천지는 변해도 변치 않는 하나님의 계약입니다.


3. 예수의 이름 5가지의 효력


3대지의 내용은 예수의 이름 5가지를 벗어날 때의 결과와 5가지 안에 살 때의 효력을 간략하게 요점으로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①범죄함이 사죄 밖에 나감이니 사망뿐이고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사죄는 모든 죄를 도말해 준 것입니다. 대속 받은 사람은 사죄를 받은 사람이니 죄가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범죄하면 입혀 주신 사죄를 벗어버리는 것이 되니 이는 사죄 밖에 나가는 것이고 결과는 사망뿐입니다.


②의를 중지함이 실패와 파멸을 만들고

의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의의 값은 모든 성공과 건설입니다. 의를 중단하면 성공도 건설도 다 중단됩니다. 범죄한 사람에게는 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칭의의 공로로 의를 입혀 의롭다 하셨으니 믿는 사람은 다 의인이 되었습니다. 입혀 주신 의를 벗지 않고 의인으로 살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사는 것이 의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의를 중단하면 의를 중단하는 것이니 성공 대신 실패를, 건설 대신 파멸을 만들 뿐이라는 것입니다.


③신인화친 절단이 가난과 비참을 초래한다.

화친은 하나님과 연결시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여 원수 된 우리를 예수님이 죽기까지 화친하심으로 우리는 다시 하나님과 연결되었습니다. 이 연결을 끊지 않으면 하나님 모시고 사는 것이고, 하나님과 연결된 이 생활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영육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으며 평강과 기쁨이 충만한 생명의 생활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연결을 끊어버리면 그 즉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모든 부요도 평강도 존귀도 영광도 다 떠나 버립니다. 하나님과 연결은 죄를 지으면 끊어집니다.


④영감을 버리면 캄캄한 흑암에 싸이고

영감은 성령의 감화 감동입니다. 성령의 감화 감동은 우리 신앙양심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영감은 빛이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잡이입니다.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비치는 샛별 같은 것이 영감입니다. 영감이 우리 속에 역사하면 우리의 모든 것이 밝아집니다. 모든 사리 판단, 비판과 평가, 취사선택이 환하게 밝아집니다. 그러나 영감이 떠나면 캄캄한 암흑에 싸이게 됩니다. 모든 것이 다 어두워집니다. 모든 인간 관계도 사건 처리도 물질 관계도 전부 캄캄하게 어두워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사람이 되고, 하는 모든 것은 다 삐뚤어진 처리가 됩니다. 소경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버림 받은 사울 같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⑤진리를 떠나면 길을 잃어 밧줄에 걸리게 된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참된 이치이므로 진리입니다. 말씀을 떠나는 것은 곧 진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말씀은 빛이며 말씀은 길입니다. 어두운 밤에 등불같이 비취는 빛이 곧 말씀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떠나는 것은 빛을 잃는 것이고 길을 잃는 것입니다. 말씀을 떠나는 것은 눈을 감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빛이 없으면 모든 것을 바로 보지 못하게 되고 바로 보지 못하면 바로 알지 못하게 되고 바로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바로 할 수 없게 됩니다. 결국은 밧줄에 걸리고 구덩이에 빠져 죽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 5가지를 떠나는 반대로 5가지 안에 있으면, 5가지로 살면


①사죄 안에 있으면 사망 없는 평안이요

사죄는 죄를 다 도말해 주신 것이니,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죄 없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사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사망은 죄의 값이니 죄가 없는 곳에 사망이 있을 리 없습니다. 있는 죄를 다 도말했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으니 사망 없는 평안함만 있는 것입니다. 사망의 고통 사망의 영향 사망의 모든 세력과 위협은 죄가 있는 사람, 사죄를 벗어버린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사죄 안에 있으면 사망은 범접할 수 없습니다. 평안뿐입니다.


②칭의 안에 있으면 희망, 성공, 건설뿐이다.

칭의는 의를 입혀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 안에는 모든 성공이 다 있습니다. 입혀 주신 칭의를 벗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의의 생활을 하면 그 안에는 희망도 성공도 필요한 모든 건설도 다 있습니다.


③신인화친 안에는 풍성과 평강과 영광뿐이다.

화친은 하나님과 연결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그 연결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육으로 필요한 모든 것은 다 오게 되어 있습니다. 온갖 풍성과 평강과 영광이 다 있습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은 다 중단입니다. 하나님과 연결은 하나님이 먼저 끊는 수는 절대 없습니다. 나만 끊지 않으면 끊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연결은 죄를 범하면 끊어집니다.


④영감 생활은 어두운 것이 가까이 못 오는 광명 세계요

영감은 빛이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잡이입니다. 새벽별 같은 것입니다. 영감이 우리 속에 역사하면 우리의 모든 것이 환하게 밝아집니다. 영감이 역사하면 죄 마귀 사망 같은 어둠에 속한 것들이 가까이 오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광명의 세계입니다.


⑤진리의 걸음은 얽힌 밧줄이 풀리고 밀림 속 대로, 광야에서 내 집 가듯이 훨훨히 걷는 것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된 이치이며 진리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다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참된 이치로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말씀대로 사는 진리의 걸음은 모든 것일 실타래 풀리듯이 술술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밀림 속의 대로를 가듯이, 광야에서 자기 집 찾아가듯이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고난도 역경도 있는 것 같으나 깊이 세밀하게 정확하게 보면 진리의 걸음을 반대하거나 항거하거나 방해할 존재도 세력도 역사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공과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편집부님 공과설명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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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86-09-28(13공과)

본문:사도행전 3장 6절∼10절

제목: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요절: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행 3:16)


서론


제목의 뜻은 이러하다. 「나사렛」은 선지자의 예언대로 탄생하사 성경대로 이루어짐을 가리키고 「예수」는 도성인신 신인양성일위이신 주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 공로를 설정하신 것을 가리키고 「그리스도」는 영원 전 제사장, 선지자, 왕의 삼직을 가지시고 그리스도와 같은 삼직자를 만드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가리키심이다.


본론


1.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세 가지 공로와영감과 진리의 능력 역사로 완전히 낫게 하였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낫게 하였으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완전히 낫게 하였다.


2.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일곱 가지 큰 치료를 하였으니

①병자 낫게 하고

②하나님의 성전 출입하게 하고

③구걸자를 구제하는 자 되게 하고

④온갖 불행한 자를 최고의 만족자 되게 하고

⑤천대 받는 자를 제일 존귀한 자 인기 독점자로 치료하여 주었고(베드로 자신은)

⑤사람 수입과

⑦영광의 주목자 되었다.

이 성경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인생의 일곱 가지 치료와 성공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이름으로 치료된다. 천지는 변하여도 변치 않는 진리요 신인 계약이다.


3. ①범죄함이 사죄 밖에 나감이니 사망뿐이고

②의를 중지함이 실패와 파멸을 만들고

③신인화친 절단이 가난과 비참을 초래한다.

④영감을 버리면 캄캄한 흑암에 싸이고

⑤진리를 떠나면 길을 잃어 밧줄에 걸리게 된다.

(정반대로)

①사죄 안에 있으면 사망 없는 평안이요

②칭의 안에 있으면 희망, 성공, 건설뿐이다.

③신인화친 안에는 풍성과 평강과 영광뿐이다.

④영감 생활은 어두운 것이 가까이 못 오는 광명 세계요

⑤진리의 걸음은 얽힌 밧줄이 풀리고 밀림 속 대로와 광야에서 내집 가는 길을 훨훨히 걷는 자이다.


문답


1.인생의 최대 일곱 가지 비참이 무엇이뇨?

답:①인생병 ②성전 못 들어가는 것 ③구걸 ④심신 고통 ⑤멸시 천대 ⑥사람 빼앗기는 것⑦무시받고 조롱되는 것.

2.이 비참 일곱 가지를 무엇으로 완전히 회복으로 치료될 수 있느뇨?

답: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치료될 수 있읍니다.

3.이 길 외에 또 무슨 회복 길이 있느뇨?

답:절대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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