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 공회 입장은 2. 영의 하나님 전속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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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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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9 00:00
1. 겉으로도 명확하면 성경신학, 겉은 불명하고 속이 명확하면 조직신학
- 성경신학의 명확성
성구에 명확한데 성경 전체에 널려 있어 일반인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어려우면 성경신학이 맡습니다. 성경신학은 신신학처럼 불신자와 대화하는 경우만 논란이 생기지 일반 교회끼리는 거의 충돌하지 않습니다. 학자들의 공명심이나 지나 친 의욕 때문에 성경신학 저서들이 우후죽순 돋아 나고 그 내용들이 백가쟁명처럼 들릴 뿐이지 면밀히 살펴 보면 대동소이입니다. 남들과 달리 보이지 실제로는 거의 같습니다. 꼭 다른 부분도 소수 있지만 이는 그렇게 두고 보면 될 정도입니다.
- 조직신학의 불명성
교리를 맡고 있는 조직신학은 그 첫 과제인 66권 성경을 규정하는데 수백 년이 걸렸고, 우리의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요약하는데 4백여 년이 걸렸습니다. 기본구원의 개념 정리에 1천 년이 걸렸고, 건설구원 하나에 5백여 년이 걸렸습니다. 3 - 4가지 중추 교리에 2천 년이 걸렸습니다. 성경신학은 지금 신학서를 전혀 접해 보지 않은 일반 교인 중에 좀 명철한 분에게 성경신학의 개념을 설명하고 저서를 지어 보라면 몇 달이면 뚝딱 만들어 낼 수 있고 그 완성도는 2천 년 내려온 성경신학의 주요 내용과 거의 같을 것입니다.
- 보충한다면
성경신학을 가볍게 본다는 것이 아니라 성경신학은 명확한 성구를 근거로 삼고 전체 성경의 많은 분량을 요약하는 일이기 때문에 해부학 정립에 해당한다면, 조직신학은 처음부터 성경신학이 명확한 성구로 정리한 후에 남은 부분들을 가지고 이면의 통일성 체계성을 찾는 것이니 마치 인체의 면역체계를 구성해 내는 것과 같고 오감의 인지와 전신의 반응 체계를 도식화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신학은 명확한 성구를 체계화하는 것이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성경적 성경신학이 가능한 것 같으나, 조직신학은 왠 만큼 성경에 달통하고 또 영안이 밝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성경에 근거도 없는 것을 가지고 공상과학을 그리는 것 같고 계시신학을 거부하고 사변신학으로 나가는 것 같게 보입니다. 그래서 교리 논쟁에서는 세계적인 학자들까지도 쉽게 뱉는 실수 중에 하나가 자기의 교리 주장은 성경에 있다며 근거를 대고 남의 주장은 사변이며 소설이며 헬라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논변합니다. 어떻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는지 참으로 의심스럽기 그지 없으나 그들이 모이면 교계가 인정하는 신학 여론이 형성 되고 그 여론이 개떼처럼 짖으면 소란스런 일들이 많아 지기 때문에 왠 만하면 구체적 사안을 두고는 이런 표현을 하지 않습니다.
- 결론적으로
66권 정경론이나 삼위일체처럼 교리 체계의 최우선이며 교리의 전부라 할 정도의 이런 분야를 두고 명확한 성구를 제시하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이들에게 네 마음이 있다는 명확한 증거를 대라는 말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마음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어느 병원에 입원한 사람일 것입니다. 교리에 명확한 성구가 있다면 교리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그 교리의 형성 과정에 수백 년씩 또는 1천 년씩 걸릴 수가 없습니다. 교리의 세계가 그렇습니다.
2. 영의 하나님 전속에 대해
마음 = 영혼 = 혼이라고 하는 세계는 하나님이신 성령과 악령이 서로 쟁탈전을 벌이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마음 안에 마음의 주인이며 영적 존재로만 된 영이라는 존재는 만들 때부터 하나님만 사용하고 하나님만 상대합니다. 이 영이 우리의 심신이 범죄했을 때 소유격인 우리의 마음과 몸의 죄를 책임 지고 하나님 앞에 죽었습니다. 이 영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아 났으니 이를 중생이라 합니다. 이 중생 된 영이 우리의 마음과 몸을 다시 하나님 앞으로 끌어 오려고 마음과 1차 싸움을 하는데 이 마음 속에는 악령이 여전히 버티며 예전처럼 붙들고 있으려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영과 악령이 싸우는 곳입니다. 죄를 짓고 회개했다가 하루 일흔 번씩이라도 또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이라는 존재는 그 자체가 죄를 직접 짓거나 그 영 자체를 악령이 붙들어 종을 삼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죄를 지을 때 우리 마음을 붙들지 못하고 악령에게 빼앗기게 되는 경우는 있습니다.
바로 이 상황 때문에 엡2:1에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고 했는데 우리가 중생 되기 전에도 우리의 마음과 몸은 살아 움직였습니다. 우리가 중생이 된 뒤에도 우리 마음은 죄를 짓습니다. 그렇다면 중생 전에 죽어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우리의 영이 죽었던 것입니다. 아담의 몸과 마음이 범죄함으로 아담의 영이 자기 소유격인 심신의 범죄를 막지 못했고 이로 인해 아담은 죄인이 되었으니 영이 총 책임자로서 당연히 죽었던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정녕 죽었는데 아담의 몸과 마음은 900년을 넘게 살았습니다. 아담의 무엇이 죽었던가? 아담이 상징적으로 죽었다는 말인가? 아담의 마음이 죽어 아담은 미친 사람으로 살았던가? 우리가 믿기 전에는 마음 = 혼 = 영혼이 없고 죽었고 몸만 가지고 꿈틀거렸는가? 그렇지 않고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영이 죽었습니다.
따라서 이 영이라는 것은 아담의 범죄와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 오늘 우리의 신불신 상태를 비교할 때, 영은 죄의 책임을 지고 죽으면 죽었지 영이 마귀에게 붙들려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즉, 영이라는 존재는 하나님만 가지고 있고 하나님만 상대합니다.
그렇다면 영의 하나님 전속성은 성경에 명확한 사실인데 백영희 목사님은 너무나 많은 사안을 두고 교계와 논쟁을 했고 그로 인해 실제 싸울 문제는 뒤로 가고 공연히 분란만 남게 되어 여러 면에서 볼 때 논쟁 자체를 최소화할 시기가 되었다고 판단하게 된 1970년대부터는 최소한의 할 말만 하고 추가 논쟁은 피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를 향해서든지 공회를 정죄할 자신이 있으면 글로 발표를 하라고 했습니다. 글은 남게 되니 아직까지 글로 공회 노선을 정죄하고 그 정죄한 입장을 변경하지 않은 학자는 없습니다. 어느 교회 일반 교인들이 인터넷에 글을 척척 써대는 것은 이 곳에서 글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교단을 대표하거나 어느 신학을 책임 진 사람이 논문을 통해 정식으로 제기하면 공회는 성실하게 설명을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영의 하나님 전속성은 명확하나 백 목사님은 교계에 과제를 던지는 정도에서 머물기를 원하니 그렇게 해야 상대방도 여유 공간을 가지고 연구하게 되고 또 실수를 했을 때 물러 설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며, 만일 미리 너무 단호하게 표현하게 되면 실수로 말을 했거나 이미 과거에 반대 표현을 해 버리는 분들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가 된다고 생각하게 되고 이왕 죽을 바에는 미리 항복하면 훗날이 없고 싸우다 죽으면 혹시 이길 가능성이라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무모하게 대들게 되는데 사실 그런 이들은 어려서 그렇고 어리석어서 그러하니 그들을 너그럽게 사랑하고 품기 위해 '영의 하나님 전속'에 대해 애매한 듯이 명확한 성구가 없다는 표현을 가지고 이 노선의 교리 입장을 잘 살펴 주시라고 청한 것입니다.
>> 신학 님이 쓰신 내용 <<
:
: 엡2:1이하에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라는 성구가 총공회의 '영의 하나님 전속' 입장을 지지하는 성구라는데 이 입장을 확인해 주실 수 있습니까?
:
: 모든 교리가 성구의 직접 지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변교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근거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영의 하나님 전속에 대한 성구는 교리서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 성경신학의 명확성
성구에 명확한데 성경 전체에 널려 있어 일반인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어려우면 성경신학이 맡습니다. 성경신학은 신신학처럼 불신자와 대화하는 경우만 논란이 생기지 일반 교회끼리는 거의 충돌하지 않습니다. 학자들의 공명심이나 지나 친 의욕 때문에 성경신학 저서들이 우후죽순 돋아 나고 그 내용들이 백가쟁명처럼 들릴 뿐이지 면밀히 살펴 보면 대동소이입니다. 남들과 달리 보이지 실제로는 거의 같습니다. 꼭 다른 부분도 소수 있지만 이는 그렇게 두고 보면 될 정도입니다.
- 조직신학의 불명성
교리를 맡고 있는 조직신학은 그 첫 과제인 66권 성경을 규정하는데 수백 년이 걸렸고, 우리의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요약하는데 4백여 년이 걸렸습니다. 기본구원의 개념 정리에 1천 년이 걸렸고, 건설구원 하나에 5백여 년이 걸렸습니다. 3 - 4가지 중추 교리에 2천 년이 걸렸습니다. 성경신학은 지금 신학서를 전혀 접해 보지 않은 일반 교인 중에 좀 명철한 분에게 성경신학의 개념을 설명하고 저서를 지어 보라면 몇 달이면 뚝딱 만들어 낼 수 있고 그 완성도는 2천 년 내려온 성경신학의 주요 내용과 거의 같을 것입니다.
- 보충한다면
성경신학을 가볍게 본다는 것이 아니라 성경신학은 명확한 성구를 근거로 삼고 전체 성경의 많은 분량을 요약하는 일이기 때문에 해부학 정립에 해당한다면, 조직신학은 처음부터 성경신학이 명확한 성구로 정리한 후에 남은 부분들을 가지고 이면의 통일성 체계성을 찾는 것이니 마치 인체의 면역체계를 구성해 내는 것과 같고 오감의 인지와 전신의 반응 체계를 도식화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신학은 명확한 성구를 체계화하는 것이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성경적 성경신학이 가능한 것 같으나, 조직신학은 왠 만큼 성경에 달통하고 또 영안이 밝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성경에 근거도 없는 것을 가지고 공상과학을 그리는 것 같고 계시신학을 거부하고 사변신학으로 나가는 것 같게 보입니다. 그래서 교리 논쟁에서는 세계적인 학자들까지도 쉽게 뱉는 실수 중에 하나가 자기의 교리 주장은 성경에 있다며 근거를 대고 남의 주장은 사변이며 소설이며 헬라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논변합니다. 어떻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는지 참으로 의심스럽기 그지 없으나 그들이 모이면 교계가 인정하는 신학 여론이 형성 되고 그 여론이 개떼처럼 짖으면 소란스런 일들이 많아 지기 때문에 왠 만하면 구체적 사안을 두고는 이런 표현을 하지 않습니다.
- 결론적으로
66권 정경론이나 삼위일체처럼 교리 체계의 최우선이며 교리의 전부라 할 정도의 이런 분야를 두고 명확한 성구를 제시하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이들에게 네 마음이 있다는 명확한 증거를 대라는 말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마음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어느 병원에 입원한 사람일 것입니다. 교리에 명확한 성구가 있다면 교리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그 교리의 형성 과정에 수백 년씩 또는 1천 년씩 걸릴 수가 없습니다. 교리의 세계가 그렇습니다.
2. 영의 하나님 전속에 대해
마음 = 영혼 = 혼이라고 하는 세계는 하나님이신 성령과 악령이 서로 쟁탈전을 벌이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마음 안에 마음의 주인이며 영적 존재로만 된 영이라는 존재는 만들 때부터 하나님만 사용하고 하나님만 상대합니다. 이 영이 우리의 심신이 범죄했을 때 소유격인 우리의 마음과 몸의 죄를 책임 지고 하나님 앞에 죽었습니다. 이 영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아 났으니 이를 중생이라 합니다. 이 중생 된 영이 우리의 마음과 몸을 다시 하나님 앞으로 끌어 오려고 마음과 1차 싸움을 하는데 이 마음 속에는 악령이 여전히 버티며 예전처럼 붙들고 있으려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영과 악령이 싸우는 곳입니다. 죄를 짓고 회개했다가 하루 일흔 번씩이라도 또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이라는 존재는 그 자체가 죄를 직접 짓거나 그 영 자체를 악령이 붙들어 종을 삼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죄를 지을 때 우리 마음을 붙들지 못하고 악령에게 빼앗기게 되는 경우는 있습니다.
바로 이 상황 때문에 엡2:1에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고 했는데 우리가 중생 되기 전에도 우리의 마음과 몸은 살아 움직였습니다. 우리가 중생이 된 뒤에도 우리 마음은 죄를 짓습니다. 그렇다면 중생 전에 죽어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우리의 영이 죽었던 것입니다. 아담의 몸과 마음이 범죄함으로 아담의 영이 자기 소유격인 심신의 범죄를 막지 못했고 이로 인해 아담은 죄인이 되었으니 영이 총 책임자로서 당연히 죽었던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정녕 죽었는데 아담의 몸과 마음은 900년을 넘게 살았습니다. 아담의 무엇이 죽었던가? 아담이 상징적으로 죽었다는 말인가? 아담의 마음이 죽어 아담은 미친 사람으로 살았던가? 우리가 믿기 전에는 마음 = 혼 = 영혼이 없고 죽었고 몸만 가지고 꿈틀거렸는가? 그렇지 않고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영이 죽었습니다.
따라서 이 영이라는 것은 아담의 범죄와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 오늘 우리의 신불신 상태를 비교할 때, 영은 죄의 책임을 지고 죽으면 죽었지 영이 마귀에게 붙들려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즉, 영이라는 존재는 하나님만 가지고 있고 하나님만 상대합니다.
그렇다면 영의 하나님 전속성은 성경에 명확한 사실인데 백영희 목사님은 너무나 많은 사안을 두고 교계와 논쟁을 했고 그로 인해 실제 싸울 문제는 뒤로 가고 공연히 분란만 남게 되어 여러 면에서 볼 때 논쟁 자체를 최소화할 시기가 되었다고 판단하게 된 1970년대부터는 최소한의 할 말만 하고 추가 논쟁은 피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를 향해서든지 공회를 정죄할 자신이 있으면 글로 발표를 하라고 했습니다. 글은 남게 되니 아직까지 글로 공회 노선을 정죄하고 그 정죄한 입장을 변경하지 않은 학자는 없습니다. 어느 교회 일반 교인들이 인터넷에 글을 척척 써대는 것은 이 곳에서 글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교단을 대표하거나 어느 신학을 책임 진 사람이 논문을 통해 정식으로 제기하면 공회는 성실하게 설명을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영의 하나님 전속성은 명확하나 백 목사님은 교계에 과제를 던지는 정도에서 머물기를 원하니 그렇게 해야 상대방도 여유 공간을 가지고 연구하게 되고 또 실수를 했을 때 물러 설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며, 만일 미리 너무 단호하게 표현하게 되면 실수로 말을 했거나 이미 과거에 반대 표현을 해 버리는 분들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가 된다고 생각하게 되고 이왕 죽을 바에는 미리 항복하면 훗날이 없고 싸우다 죽으면 혹시 이길 가능성이라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무모하게 대들게 되는데 사실 그런 이들은 어려서 그렇고 어리석어서 그러하니 그들을 너그럽게 사랑하고 품기 위해 '영의 하나님 전속'에 대해 애매한 듯이 명확한 성구가 없다는 표현을 가지고 이 노선의 교리 입장을 잘 살펴 주시라고 청한 것입니다.
>> 신학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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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엡2:1이하에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라는 성구가 총공회의 '영의 하나님 전속' 입장을 지지하는 성구라는데 이 입장을 확인해 주실 수 있습니까?
:
: 모든 교리가 성구의 직접 지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변교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근거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영의 하나님 전속에 대한 성구는 교리서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영의 하나님 전속에 대한 성구
엡2:1이하에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라는 성구가 총공회의 '영의 하나님 전속' 입장을 지지하는 성구라는데 이 입장을 확인해 주실 수 있습니까?
모든 교리가 성구의 직접 지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변교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근거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영의 하나님 전속에 대한 성구는 교리서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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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2:1이하에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라는 성구가 총공회의 '영의 하나님 전속' 입장을 지지하는 성구라는데 이 입장을 확인해 주실 수 있습니까?
모든 교리가 성구의 직접 지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변교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근거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영의 하나님 전속에 대한 성구는 교리서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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