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을 대리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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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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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9 00:00
한종희 목사님은 박윤선의 인정을 받고 대신한 것은 아니나, 결과적으로 박윤선을 대신하여 백영희 신앙 노선을 기존 신학에서 맞선 경우였습니다. 원래 명석했고 공부도 잘했으며 많이 했습니다. 늘 지식 욕구에 불 타고 있으면서 한 편으로 박윤선 목사님을 가장 존경했고 평생의 스승으로 삼았으므로 한종희 목사님은 박윤선 목사님의 입장에 충실했습니다. 본인의 표현대로 박 목사님의 교리 전체를 다 수긍하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또 전체적으로 박윤선 신학을 공회 내에서 대변했던 인물입니다. 따라서 박윤선 대 백영희의 신앙 노선이라는 것은 마땅히 토론할 사안이 많고 그 과정에 박윤선의 입장에서 원하는 대로 백 목사님을 비판한 것이 한 목사님입니다. 그런데 박윤선 목사님은 세계 신학의 정통 과정을 역사적으로 또 당시 상황에서 한국 교회 내에서 대변하는 분입니다.
공회는 한종희 목사님의 소신 있는 발표와 행동 때문에 목회 현장에서는 애매히 공격을 받고 복음 운동에 큰 피해를 입었지만, 공회의 노선과 교리 교훈 입장에서는 모두가 입을 닫고 몸을 사리는데 한 목사님만이 끝 장을 볼 자세로 박윤선 목사님에게 배운 것으로 공회를 비판했고 그 과정에서 박 목사님의 지도를 받았으니 공회로서는 박윤선이라는 가장 적합한 인물을 통해 역사와 세계 신학을 상대로 제대로 된 모의고사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공회는 무식하고 우물 안의 개구리인데도 불구하고 노선과 교리 체계가 역사적인 것으로 확신하게 된 수입을 얻게 됩니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아는 이치에 의해 공회는 박윤선 목사님도 안고 갈 수 있어 박 목사님의 재회 제안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렇다면 박 목사님을 대리하여 공회를 비판한 한 목사님도 마땅히 공회의 품은 안고도 넘칠 수 있어야 진정한 진리의 세계를 논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이단비판이라는 책자로 유명한 박영관 목사님도 20여 년 전에 공회가 품었고 이제는 그 진원지며 중심지인 한 목사님도 품을 시점이라고 봤습니다. 특히 백 목사님의 전기를 마무리 하고 출간하는 입장에서 한 목사님의 신앙 생애는 백 목사님의 전기와 공회의 노선 차원을 대외에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사안으로 봤습니다. 한 목사님은 지혜로운 분이고 교계 정치에도 대가적인 분이어서 답변자와 그 분의 신앙 전기를 본 연구소가 출간하게 될 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너무 잘 아셨고, 그 면을 염두에 두고 본인의 젊은 날에 실수나 서툰 점을 말년에 회고를 통해 그 분대로는 힘껏 바로 잡았습니다. 성경 해석의 깨달음은 여전히 백 목사님을 동의할 수 없으나 그 것은 많은 교리 논점 중에 하나일 뿐이고 그런 차이는 박윤선 목사님과도 존재하는 문제이며, 더 중요한 구원 도리의 핵심을 비롯하여 백 목사님의 신앙 차원 등 많은 면에서 존경을 표하고 있습니다.
이런 태도를 굳이 여기서 무엇이라고 규정할 것도 없이 이미 내용적으로는 신앙 생애를 통해 잘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분의 현재 자세와 표현에 대해 감사할 뿐이고 한 편으로 그 분이 아직 부분적으로 잘못 알고 계신 것은 향후 답변자가 별도의 기회에 대화를 통해 안내해 드리면 될 사안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일을 통해 국내에서 아직도 1960년대에 오해로 인해 발생한 표현을 답습하는 몇 사람에게 제대로 된 연원을 제공할 수 있다면 좋겠고 이후 다른 오해들에 대해서도 그러할 것입니다.
>> 신학 님이 쓰신 내용 <<
:
: 공회를 정죄했다가 회개한 줄 알았는데 교묘히 사과하고 이후 평생 자기의 실질적인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왜 백영희 연구소에서 그를 호평하는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물론 이번 전기를 통해 그분이 학설의 차이만 인정하고 백목사님의 전반에 대해서는 정평하고 은사로 기억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보지만 그렇다고 전기를 출간할 정도일까요?
공회는 한종희 목사님의 소신 있는 발표와 행동 때문에 목회 현장에서는 애매히 공격을 받고 복음 운동에 큰 피해를 입었지만, 공회의 노선과 교리 교훈 입장에서는 모두가 입을 닫고 몸을 사리는데 한 목사님만이 끝 장을 볼 자세로 박윤선 목사님에게 배운 것으로 공회를 비판했고 그 과정에서 박 목사님의 지도를 받았으니 공회로서는 박윤선이라는 가장 적합한 인물을 통해 역사와 세계 신학을 상대로 제대로 된 모의고사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공회는 무식하고 우물 안의 개구리인데도 불구하고 노선과 교리 체계가 역사적인 것으로 확신하게 된 수입을 얻게 됩니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아는 이치에 의해 공회는 박윤선 목사님도 안고 갈 수 있어 박 목사님의 재회 제안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렇다면 박 목사님을 대리하여 공회를 비판한 한 목사님도 마땅히 공회의 품은 안고도 넘칠 수 있어야 진정한 진리의 세계를 논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이단비판이라는 책자로 유명한 박영관 목사님도 20여 년 전에 공회가 품었고 이제는 그 진원지며 중심지인 한 목사님도 품을 시점이라고 봤습니다. 특히 백 목사님의 전기를 마무리 하고 출간하는 입장에서 한 목사님의 신앙 생애는 백 목사님의 전기와 공회의 노선 차원을 대외에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사안으로 봤습니다. 한 목사님은 지혜로운 분이고 교계 정치에도 대가적인 분이어서 답변자와 그 분의 신앙 전기를 본 연구소가 출간하게 될 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너무 잘 아셨고, 그 면을 염두에 두고 본인의 젊은 날에 실수나 서툰 점을 말년에 회고를 통해 그 분대로는 힘껏 바로 잡았습니다. 성경 해석의 깨달음은 여전히 백 목사님을 동의할 수 없으나 그 것은 많은 교리 논점 중에 하나일 뿐이고 그런 차이는 박윤선 목사님과도 존재하는 문제이며, 더 중요한 구원 도리의 핵심을 비롯하여 백 목사님의 신앙 차원 등 많은 면에서 존경을 표하고 있습니다.
이런 태도를 굳이 여기서 무엇이라고 규정할 것도 없이 이미 내용적으로는 신앙 생애를 통해 잘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분의 현재 자세와 표현에 대해 감사할 뿐이고 한 편으로 그 분이 아직 부분적으로 잘못 알고 계신 것은 향후 답변자가 별도의 기회에 대화를 통해 안내해 드리면 될 사안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일을 통해 국내에서 아직도 1960년대에 오해로 인해 발생한 표현을 답습하는 몇 사람에게 제대로 된 연원을 제공할 수 있다면 좋겠고 이후 다른 오해들에 대해서도 그러할 것입니다.
>> 신학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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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회를 정죄했다가 회개한 줄 알았는데 교묘히 사과하고 이후 평생 자기의 실질적인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왜 백영희 연구소에서 그를 호평하는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물론 이번 전기를 통해 그분이 학설의 차이만 인정하고 백목사님의 전반에 대해서는 정평하고 은사로 기억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보지만 그렇다고 전기를 출간할 정도일까요?
한종희라는 인물
공회를 정죄했다가 회개한 줄 알았는데 교묘히 사과하고 이후 평생 자기의 실질적인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왜 백영희 연구소에서 그를 호평하는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물론 이번 전기를 통해 그분이 학설의 차이만 인정하고 백목사님의 전반에 대해서는 정평하고 은사로 기억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보지만 그렇다고 전기를 출간할 정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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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를 정죄했다가 회개한 줄 알았는데 교묘히 사과하고 이후 평생 자기의 실질적인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왜 백영희 연구소에서 그를 호평하는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물론 이번 전기를 통해 그분이 학설의 차이만 인정하고 백목사님의 전반에 대해서는 정평하고 은사로 기억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보지만 그렇다고 전기를 출간할 정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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