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의 선교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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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의 선교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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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번 기회에 제대로 정리를 해 보려 했으나 이 정도로 일단 안내를 하겠습니다. 선교에 대해 현재 국내의 과열 분위기에서 제대로 말하려면 분란이 예상 되고 오해 없게 하려면 분량을 적게 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 선교학 총론


1. 선교의 사명

주님 십자가로 살려 주신 생명의 복음이니 피 흘려 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마28:19-20이나 행1:8의 말씀은 선교를 두고 모두가 아는 성구입니다. 가까운 곳을 전하면 전도라 하고, 먼 곳으로 가면 선교라 합니다. 교회는 세계 모든 족속으로 믿는 사람을 만들고 가르치되 땅 끝까지 세상 끝 날까지 해야 합니다. 이 것은 우리 사명입니다.


2. 선교의 순서

① 자기 선교

선교가 대단한 사명임에는 틀림이 없고 실제 선교는 전쟁의 최전선 상황이어서 그 희생은 후방에서 글로 설명하기는 곤란하지만, 의외로 그 원리는 너무 간단합니다. 제대로 된 선교는 자기 속에 불신과 강퍅을 꺾는 일로 시작합니다. 자기 내면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고쳐 놓지 못하여 미개척 분야를 두고, 남을 가르친다고 나서거나 심지어 주변은 놔 두고 명예심으로 먼 곳부터 가는 것은 선교의 본질인 전도를 몰라서 생기는 일입니다.

물론 신앙의 만사가 단계적으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 주님의 인도는 천차만별이지만 원리만은 진리 문제이니 확실하게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에게는 전하지 않고 남을 가르치려는 문제 때문에 복음운동의 외은 넓어 지고 크지고 있으나 실제로는 엄청 나게 축소가 되었습니다. 자기 내부를 간과한 선교는 요즘 흔한 해외체험이나 자기 개발의 수단으로까지 전락하게 됩니다. 자기를 선교하지 않은 사람이 남을 선교할 수 없고, 자기를 선교한 사람이 남을 전도하게 되며, 자기 선교에서 겪은 고난과 승리 범위 내에서 이웃과 타국에까지 전도를 하고 그 효력을 갖게 됩니다.

일단 이렇게 요약합니다. 교인 생활을 제대로 한 사람이 훌륭한 목회자가 될 가능성이 있듯이 자기를 선교해 본 실상만큼 먼 나라의 전도가 선교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② 가족 선교

자기를 선교해 본 사람이 실제 남을 전도하는 첫 단계로 가정과 생활 속의 이웃을 접촉하게 됩니다. 유교나 불교를 믿는 부모와 친척을 선교하지 못한 사람이 불교국 태국이나 회교국에 전도하러 간다거나, 무신론을 가진 지성인 형제들을 선교하지 못하면서 무신론의 본산인 중국 공산 국가에 전도하러 간다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가족의 구성이 불교 유교 무신론이었으나 지금은 친척 집안으로 범위를 많이 넓혀야 이런 선교 대상들을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변까지 모두 철저한 신앙가라면 직장이나 학교나 이웃 동네로 범위를 넓혀야 하고, 실제 그렇게 해 본 사람은 해외 선교를 할 시간과 여력이 없어 생활 속에서 선교사 노릇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 선교라는 표현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선교란 자기 회개를 씨앗으로 삼고, 가족과 이웃을 전도하는 움싹의 단계를 거친 다음에, 이제 먼 곳에서 ‘선교’라고 읽히고 보이고 일컫는 활동을 하게 됩니다. 씨는 심지 않고, 움도 돋지 않고, 선교라는 고사목이나 치장목을 배달 시켜 정원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현재 우리 교계에 차고 넘치는 선교 동산은 이런 상황이 아닐까? 선교가 아니라 잘 사는 나라의 문화인들이 배가 불러 해외 여행이나 해외 체험 심지어 오지 탐험을 가면서 선교라는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은 아닌가. 돈벌이나 실적이나 여러 더러운 목적을 이루려고 선교에 봇물이 터진 오늘, 진정한 선교사들이 가꾸는 정원조차 짓밟히는 일을 자주 듣습니다.

교계의 선교 단체들이 오랫동안 묻어 둔 문제들이 가끔 표출 되면서 선교의 속살과 지난 날을 고스란히 드러 내는 소식을 자주 접합니다. 지금 우리는 실제 선교는 희귀하고 대부분은 허위 과대 과장 광고나 행사성의 잘못 된 선교에 휩싸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③ 주님의 인도

자기가 자기의 오랜 세월 굳어 진 옛 습관을 회개 시켜 보고, 가족과 이웃의 오랜 불신앙 전통들을 타파하고 생활 속에서 그들 속에 복음 생활을 심어 본 사람이라면 최전선 군인의 긴장과 희생을 압니다. 자기의 평소 생활을 일년 내내 계속해 본 사람이, 이제는 자기가 살아 보지 못한 딴 세계를 향해 주님이 전도하라고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교는 전도라는 표현으로 바꾸어야 선교가 선교답게 될 것입니다. 선교지로 향한 것이 누구의 결정이었는가? 누가 그 나라 그 민족 그 곳에 전도를 보내는가? 주님인가 자기인가, 주님인가 선교 단체의 기획인가? 모두가 주님의 인도와 예비라고 말은 하지만 정말 주님이 먼저 인도하시고 정말 해외 전도인들은 그 주님의 뜻을 뒤 따르고 있는가? 자기 회개와 생활 속의 다른 사람을 전도하고 신앙인으로 길러 보는 일을 전쟁의 군인처럼 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말의 뜻도 모르고 느낌도 없을 것이나, 해 본 사람들은 가 보지 않은 선교지를 미리 가 본 듯이 담담히 나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국내의 개척으로 예를 듭니다. 그 수도 없는 개척들이 정말 주님의 인도인가, 아니면 세상 할 일이 없는 이들이 교회를 무대로 자기 개인 사업을 하는 것일까? 개척의 순간은 모든 면으로 너무 막막하여 주님께 매 달리지 않는 이들이 없고 그런 과정에서 모두들 주님의 뜻을 따랐다고 하는데 그런 개척자들이 몇 년이 지난 뒤에 언행으로 그들의 결과로 그들의 출발을 되짚어 보면 이 것은 종교 사업이지 주님의 인도란 애초부터 생각할 것도 없었다는 자책이 들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인도를 끝까지 우기는 분들을 위해 가룟 유다를 떠올려 보시기를 청합니다. 예수님이 은 30에 팔려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것은 구원 계획의 필연이며 예정입니다. 예언대로 주님은 가셨지만 가룟유다는 주님이 아니라 은 30에 이익을 생각했고 그의 행위는 그 예언을 이루는데 사용이 되기는 했으나 불행하게 사용 되었으니 복음 운동에 사용이 되기는 했어도 잘못 사용 된 이들을 경계로 주시려고 가룟유다의 결과를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현재 주신 자리에서 식구를 책임 지고, 학업이나 직업을 가졌다면 자기 현실에서 말씀대로 진실 되이 살기 위해 충성하고, 자기 교회에서 교인으로 있는 힘을 다하다 보면 내일 일은 알지 못하고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다 하신 대로 선교처럼 알지 못하는 먼 나라에 사명은 생각할 여지가 없어야 합니다.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의 내면 기록들을 살펴 보면 자기 회개를 거치지 않고 고국에서 자기 가족과 이웃을 전도해 보지 않은 분들이 너무 많았고 그 분들이 여선교사 기숙사에서 서로 대치를 하고 남 선교사와 대립 관계를 가져 선교부의 내부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우리에게는 고마운 선교사였으나 그들 자신에게는 자기를 선교하기 위해 자기 회개를 먼저 노력했어야 했고, 만일 그들이 가족과 이웃 사이에서 제대로 선교를 해 보려 했다면 해외에 나와서 함께 전도하는 전도인들끼리 세상식으로 다투고 나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말로는 선교사였으나 준비 되지 않고, 자기 선교와 이웃 전도를 거치지 않은 해외 선교사들은 해외에 나가서 비로소 자기를 회개하고 이웃 전도를 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며 그제야 철이 드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이들은 이 땅 위에서 선교사의 영광을 받지만 하나님 앞에서도 과연 그런 선교사일지는 누구도 함부로 말하지 못합니다.


3. 좁은 의미의 선교

70년대부터 국내 교회는 ‘전도회’를 ‘선교회’로 이름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선교를 그만큼 열망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실제로는 선교의 환상과 명예에서 비롯 된 잘못 된 모습들이었습니다. 장사꾼이 자기 물건을 최대한 잘 보이게 하려는 행위와 같았습니다. 지금은 장소적으로 실제 해외로 가는 선교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도’일 뿐인데 왜 ‘선교’라는 단어가 전도 세계에 나타 나기 시작했을까? 생활 속에 전도와 비교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난 때문이었습니다. 생활을 하면서는 갈 수 없는 먼 곳, 평소 말과 글로는 알 수 없는 언어, 서로의 생각과 행동과 생활이 본 적도 없는 딴 세계, 여기에 더하여 예수님을 들어 보지 못한 이방 종교라는 환경이 한꺼번에 주어 진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단순히 불신 이웃에게 전하는 것과 너무 차이가 많았으니 전도 중에서 ‘특수 임무’라 하여 선교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은 휴대폰이 있고 이메일이 있고 TV에 라디오를 통해 세계 어디에 가 있든 심지어 지구 밖의 우주에서도 한 동네처럼 서로 소식을 주고 받습니다. 또한 세계 거의 모든 나라와 민족이 서로 외국어를 배워 말과 글로 대화가 됩니다. 한 편으로 유엔과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며 이제는 세계 모든 나라와 민족과 부족이 선교사라는 이름은 정치적 이유로 테러를 하면 몰라도 그 이름 때문에 예전처럼 이름 없이 죽어 가는 경우는 없습니다. 20세기를 거치며 이미 땅 끝까지 복음은 전파 되었습니다.

지금 터키 이집트를 선교 대상국으로 생각하고 이란 이라크 등을 생명을 걸고 가야 하는 선교지라 하지만 터키는 사도행전의 사도 바울로 인해 2천 년 전에 신약 교회의 중심지였고, 애굽은 주님이 출생하자 말자 선교하러 갔던 곳이고 그 이전에는 모세가 3500여 년 전에 복음을 전하여 그 나라에 복음 모르는 이는 없습니다. 이란과 이라크는 다니엘 에스라 에스더와 같은 많은 선지들이 복음을 외쳐 모두가 하나님을 두려워 했던 곳입니다. 망한 교회, 타락한 복음운동, 속화 된 교파를 재건하러 가는 것이라고 말해야 맞습니다. 지역적으로 역사적으로 본다면 한국의 선교사들보다 그들은 비교할 수 없는 오랜 세월 전에 훌륭한 교회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반론이 나오기를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에는 믿지 않고 있으니 선교의 대상이라 하겠습니다. 그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맞다면 현재 이 나라에는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많습니까? 선교할 대상이 이제는 별로 없습니까? 현재 우리 나라에는 80% 이상이 불신자고 20%라는 교인들조차 세상 목적으로 교회를 나왔거나 습관적으로 오고 가는 정도지 이미 신앙을 포기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들을 두고 교회의 교육 대상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선교의 대상이라고 해야 할까? 망설여 질 정도입니다.


여전히 오늘도 선교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다만 선교의 역사 때문에 선교에 대한 잘못 된 환상과 명예심으로 무분별하게 선교를 나가는 이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현 시점은 선교를 강조하기 보다 선교의 본질을 돌아 볼 때라고 생각합니다.


4. 선교자에게 주신 막대한 사명

① 전할 것이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알려 진 내용은 생략하고 여기서는 대단히 무거운 이야기를 하나 더 적습니다. 선교사가 자유주의 신학에 물이 들면 마12:45 말씀대로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고 하신 대로 오늘이 바로 이런 악한 세대며, 오늘의 선교지에서 선교사가 감리교를 전하면 그 지역의 교회가 알미니안의 신앙으로 주력할 것이니 전적 은혜라는 하나님의 세계는 너무 황폐해 질 것이고, 선교사가 교권과 노회 총회의 정치를 익힌 장로교 출신이라면 처음 선교지에서는 전도에 힘을 쓰지만 차차 교회가 자리를 잡게 되면 더 큰 귀신이 그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한국에서 배우고 익힌 교권 싸움에 당회 노회 총회의 정치 체계로 그 지역의 양떼를 다 잡아 먹는 이리 떼로 돌변을 할 것이며, 각각 옳은 대로 하라고 배운 침례교인이 선교지에서 교인들을 전도하면 그들의 신앙을 제 멋대로 방종 방탕하게 믿게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출신 목회자가 해외에 가면 방언을 비판하고 물질 축복을 저주하며 천국 복음만 외치게 될까?

기본구원은 주님이 우리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습니다. 성경입니다. 그러나 건설구원은 주님이 우리에게 그 책임을 엄히 묻습니다. 기본구원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는 대로 전할 뿐입니다. 내가 전하지 못하는 거리와 장소와 그런 시기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따로 정해 놓은 종들을 보내어 일점일획도 가감 없이 그가 믿어야 할 그 순간에 중생을 시킵니다. 문제는 신앙의 건설입니다. 이 것은 가르쳐야 하고 길러야 합니다. 누가 어느 길을 어떻게 가르치는가?

한국의 좌파 진보 신앙들이 해외에 선교로 간다면 그 곳에서는 성경이 정확무오하다고 가르칠까? 그 곳에서 전도한 사람들에게 성경을 절대로 그대로 곧이 곧대로 믿어서 안 된다고 가르칠까? 본국에서 예배당 돈을 손 댄 사람들이 선교지에 가서 본국의 후원금에는 손을 대지 않고 그 곳에서는 굶어 죽어도 깨끗하게 선교를 할까. 그런 도적 출신 선교사가 그 나라에서 전도한 이들에게는 도적질 하지 말라고 가르칠 때 성령이 그들을 그렇게 회개 시키실까?


참으로 죄송하고 고통스러우나 여기서 마태복음 23장 15절의 ‘선교의 중요성’ ‘선교의 폐단’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 자기 회개가 없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 우리가 평소 주변에서 전도를 하는 자세와 열심입니다.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 자기 회개는 없고, 주변에서는 따르는 이들이 없자 선교에 나섰습니다.

생기면 - 자기 속을 모르는 먼 곳의 사람들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 선교의 마지막이 이렇게 될 수 있다 하면 반대할 수 있을까요?


② 마7:17-18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 선교학 각론

1. 선교와 자세

선교사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 어리든지

- 사칭이은지

- 사람을 기르는 교훈이나 의에 격발이나 특별한 사유가 있는 예외적으로나 사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선교사들끼리 만났을 때는 서로 의사소통을 위해 당연히 기독교의 사회적 대화에 불편이 없도록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선교 업무와 상관 없는 이들에게 특히 선교 간 지역에서 그들에게 이런 단어를 사용하면, ‘너희는 미개하고 복음을 모르는 불쌍한 이들인데 나는 너희를 구원하러 온 천사’라고 자기 명함을 들이 미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보낸 간첩들은 국내에서나 외국에서는 간첩이라고 자기를 자랑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1978년 3월에 육군정보교육대에서 간첩을 교육 시키는 분들에게 직접 들은 말입니다. 검정 양복을 입고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특별한 행동을 한다고 합니다. 대만 간첩들은 엿장수처럼 하는데 그 사람인 줄 알고 봐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당시는 무슨 말인지도 물랐는데 한국의 간첩 대장이 아프칸에 선교 갔다 인질로 잡힌 선교사들을 빼내러 갔다가 세계 언론에 얼굴을 내밀어서 세계적 놀림의 대상이 된 소식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 사건을 당한 분들의 희생은 고귀했으나 한국교회의 선교와 선교사의 단면을 두고 하나님께서 만물 심판을 했다고 봤습니다.


선교사가 ‘선교’라는 이름을 ‘전도’로 바꿀 수 있을 때 그의 자세와 방향은 선교를 향해 나갈 수 있을 것이고, 선교사가 ‘선교’라는 이름을 내고 다닌다면 선교의 근방에도 가 보지 못했다는 혹평을 스스로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교사가 자기 입에서 ‘스승’이나 ‘스승의 날’을 자기 것인 줄 안다거나, 목회자가 교인에게 목사나 목회자의 책임이 아니라 권리나 명의나 명예를 생각했다면 이는 도살의 날을 준비하는 짐승과 같습니다.


2. 선교의 출발

- 목회자 출발과 동일하고

- 전도인 사명과 동일하며

- 일반 신앙 생활임을 알아야 합니다.


4. 선교의 내용

- 무엇을 전할 것인가

- 말보다 자기의 행동이 그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크고

- 말과 행동보다 선교사의 신앙 자체가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 선교지망생 님이 쓰신 내용 <<

:

: 성경적인 선교에 대해서 총론 각론 모두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

: 업무가 많으신데, 죄송합니다.
성경적인 선교에 대해 총론 각론 모두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성경적인 선교에 대해서 총론 각론 모두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업무가 많으신데,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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