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책임 범위, 자녀의 자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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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책임 범위, 자녀의 자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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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모의 노력

백 목사님은 7남매 자녀 전부가 세상은 다 버리고 늘 목회 일선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만 소망했습니다. 그 분의 소망은 희망 사항에서 그치지 않고 중학교를 다니고 있던 딸을 신학교에 데리고 가서 주님의 종이 되라고 기숙사 생활을 시켰습니다. 1950년의 전쟁 직전으로 기억 되는 시기 당시 부산의 고려신학교에는 고신의 유명한 박인순 조수옥과 같은 일제 평양 출옥여성도들이 공부를 할 때였는데 그런 종들이 되라는 바람이었습니다.


아버지 명령이어서 큰 딸은 그렇게 했으나 기숙사 방으로 들어 오면 천장만 쳐다 보고 밖으로 나가면 고향 하늘만 쳐다 보고 한숨 짓는 딸을 본 출옥 여성도들이 백 목사님께 애원을 해서 돌려 보냈습니다. 올해 6월에 돌아 가신 막내 딸이 이화여대를 막 들어 갔을 때 아버지는 열 살이나 차이 나는 거제동교회 전도사님으로 목회하는 분께 결혼을 하라 했는데 거부하자 사찰 집사님을 학교 기숙사로 보내어 자퇴를 시키고 짐을 싸서 부산으로 데려 왔었습니다.


2. 부모의 한계

어릴 때는 매로 다스려 강제할 수 있습니다. 10대가 되면 매를 줄이고 달래야 할 때입니다. 20대가 되면 이미 역사적으로는 호적상 부모와 자식이지만 그 자녀는 이제 자기 인생을 하나님 앞에 따로 살아 가야 하는 자유성의 인간이 됩니다. 백 목사님은 최선을 다했으나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는 다른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녀들은 이 곳에 기록할 수 없는 아픔과 사연이 많았습니다. 그 분들이 극구 싫어 하기 때문에 상기 2가지 예만 들었습니다. 한 이야기는 설교록에 공개 되어 있고, 한 이야기는 본인이 늘 주변에 간증을 해서 어느 정도 공개가 된 이야기입니다. 나머지는 답변자만 개인적으로 아는 일이어서 더 이상 설명이 곤란함을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백 목사님은 머리가 굵어 진 아들이라도 그가 너무 완벽해서 손 댈 기회가 없자 핑계를 대어 장작으로 매를 친 분입니다. 고난은 사람을 만들고 매는 자식을 만든다는 경험과 성경 그대로 했던 분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평생 목사가 되지 못한 죄 때문에 백 목사님을 아버지라 부르기 어려워 했고, 미국 생활 10년이 넘어 한국에 한 번 나왔을 때 예배당 입구에 있는 사택에 귀국 기간을 머물면서 예배당 5층 집무실에 계신 아버님을 5분 정도 한 번 뵌 것이 전부였습니다. 당시 답변자가 좀 뵙지 그러시냐고 할 때 그 분들 말씀이 '이 선생님이 아들이지 우리야 아들....'이라고 말씀을 흐렸고 답변자는 백 목사님의 사생활을 잘 알기 때문에 고개 숙여 죄송할 뿐이었지 그 어떤 말씀도 올리지를 못했습니다.


3. 자녀의 공부

백 목사님은 '세상 공부가 주님과 자녀를 떼어 놓는 것'이라는 점을 누가 가르쳐 주었더라면 하는 탄식을 평생했습니다. 백 목사님은 신앙 초기에 자녀들이 공부를 잘 하여 주님의 일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자녀들이 공부도 출중했고 또 신앙도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자기 판단으로 자기 진로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 되자 부모로서 교훈은 할 수 있으나 강제할 수는 없고 자녀들은 각각 자기들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 분들의 공통점은 '목회는, 할려면 아버지처럼 해야 한다. 아버지의 목회는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길이다. 나는 그렇게 할 자신은 없다. 주변에 수 많은 목회자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목회한다는 것은 교회를 상대로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런 식 목회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하겠다. 그러나 세상에서 돈을 벌면 몰라도 교회를 상대로 그렇게 한다는 것은 양심에 어긋 난다.'라는 입장이었습니다.

백 목사님의 사생활과 숨겨 진 고난을 아는 사람이면 그 자녀들이 타락하거나 세상 사람이 되지 않았다는 것만 가지고도 대단한 신앙임을 알 수 있고, 그 자녀들이 그런 부정적인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의 신앙을 갖고 있는 바 이는 특별한 신앙가들이라고 평가합니다. 답변자 정도가 그 가정의 직계 자녀가 되었더라면 무신론이 아니라 반기독교 선봉에 섰을 정도입니다.

백 목사님은 반지식주의가 아닙니다. 일반론적으로 세상 지식은 신앙의 원수라고 가르칩니다. 이 것은 경험이며 통계입니다. 교리적으로 정확하게 말하면 세상 지식은 잘 사용하면 복음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잘못 사용하면 신앙을 삼킵니다. 그런데 통계적으로 세상 지식을 잘 사용한다고 나서도 대개는 세상 지식에 삼킵니다. 그래서 강단에서 원론적으로 목회 심정적으로 세상 공부를 통렬히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가끔 공부를 하라고 했던 인물도 있었습니다. 억지로 시킨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 편으로 자기 판단이 서고 자기 길을 꼭 가겠다면 백 목사님은 그 어느 누구를 상대로도 강제한 적은 없습니다. 총공회는 한 교회가 교단 소속을 옮길 때, 그 교회 주일학생 하나라도 신앙의 확신을 가지고 소속을 달리 하겠다고 한다면 그의 의사를 살려 기존 교회는 그 주교생 하나에게 맡기고 교단을 옮기고 싶은 99%의 교인들은 빈 손으로 나가서 개척하라고 가르친 분입니다.

자녀들의 어린 시기에는 집에 계실 때가 없었고, 자녀들이 자기 진로를 가지고 공부를 하겠다고 단호하게 입장을 밝힐 때는 아버지로서 막지 않았으며 그 때 부산의 서부교회 경제는 자녀들의 공부에 대해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자녀가 교회에 그들의 입장을 명확하게 하면 교회는 함부로 거부하지 못합니다.

또한 7남매 자녀들이 그 후에 손주들을 지도하고 교육 시키는 것은 할아버지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지도 책임과 책임의 범위 문제를 두고 더욱 거리가 먼 사안입니다. 만일 백 목사님께 전권을 주셨다면 그 분은 1960년이 되던 시점에 모든 자녀들에게 세상 공부를 모두 중단 시키고 목회가 아니라 거리의 전도인을 만들었을 분입니다. 백 목사님의 신앙 생애의 한 쪽을 보면 질문자께서 지적하신 부분은 누구라도 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신앙 생애의 다른 부분을 공평하게 보셨다면 아마 이 답변은 사실 필요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꼭 같은 길을 걸으면서 식물학자는 도로에 널브러진 이름 모를 풀들을 세세히 기억하며 몇 시간을 강의할 만큼 기억하고 비교할 듯합니다. 그 식물학자 옆을 걸어 간 토목 전문가는 도로와 그 주변 지반과 주변 건설 현장을 한 번만 보고도 전부 그려 낼 것입니다. 실제 바둑하는 사람들이 바둑 한 판을 두고 끝이 난 상태에서 다 엎어 버리고 처음부터 순서를 따라 재구성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설교록 하나를 한 자리에서 함께 읽고, 백영희 신앙 생애라는 하나의 책을 읽고도 2가지 다른 의견은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성경도 한 권이며 그 성경은 정확한데도 신앙의 모든 문제를 두고 극단적 양론이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질문 내용은 답변자가 백 목사님을 멀리서 보며 설교만 들을 때 마음 속에 들어 있던 의문이었습니다. 그러나 1977년에 서부교회로 갔고, 1982년 서부교회의 직원이 되었고, 1984년 5월부터 그 가족분들과 숙식을 함께 하며 점점 그 분들 전부를 알아 가면서 답변자는 오늘 이 홈을 통해 그 가족들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변호할 의무와 책임을 갖게 되었으며, 사석이라면 듣는 분들이 차마 더 이상 듣기 어려운 고난의 세월을 설명할 수 있고 이런 공석에서는 필요한 최소 내용만 소개합니다.


4. 성경에서

사사시대의 마지막 사사가 엘리와 사무엘로 이어 집니다. 엘리는 자식들에게 '그리 말라 여호와께 범죄하면' 길이 없다고 질책한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엘리는 인삿말만 그리 했습니다. 자식의 죄를 두고 하나님께서 엘리에게도 책임을 함께 물어 멸문을 당합니다. 사무엘의 경우는 자녀를 책망한 대목이 성경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에게 자녀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가장 중심에 두신 것은 '자유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일반 기독교도 그 '자유'의 의미를 잘못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단어의 중요성은 알기 때문에 기독교의 '자유' 사랑은 그 끝이 없는 정도입니다. 이 노선은 '자유'에 대해 그 지식과 그 샐행에 있어 유례가 없을 정도입니다. 전원일치라는 의결 제도를 만든 가장 저변에는 '자유성' 때문입니다. 부모가 목숨을 걸고 자녀를 바로 길러야 한다는 것과 족쇄를 씌워 평양처럼 강제수용소를 운영해야 한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특히 목회자는 자기 자녀를 전체 교인 중에 하나처럼 상대해야 하는 제한이 있습니다. 백 목사님은 '공인' '공적 책임'이라는 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 분입니다. 그런데 목사는 자기 자녀에 대해 사적 부모에 앞 서 전체 교인을 자녀로 생각하고 자기 자녀도 그들 중에 하나로 상대해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는 '공적인 인물 = 공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실제 그 분은 답변자를 7남매 자녀보다 분명히 더 가깝게 더 사랑했으며 답변자처럼 고백하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어서 이 노선에는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는 감히 '나는 백 목사님의 아들이다'라는 표현을 서슴 없이 하고 자랑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5. 답변의 객관성

답변자는 말로 먹고 사는 말쟁이입니다. 말로야 무슨 말을 못하겠습니까? 지금 평양이 저 모양인데도 그 쪽에 대변인이 지상낙원이라고 자랑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 번 답변에는 아무래도 객관성이 제기 될 수 있을 듯하여 한 가지를 덧붙입니다. 답변자는 1990년에 백 목사님의 친동생에게 총공회 교단에서 2회나 제명을 당했습니다. 전도사 신분 자체의 박탈, 즉 파문을 당했으니 사형을 집행 당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총공회의 신학교인 양성원 교수직에서 파면을 당했습니다. 1997년 9월에는 백 목사님의 직계 자녀에게 3회의 제명을 당했습니다. 하나는 총공회 제명이었고, 하나는 양성원에서 다시 제명이었고, 하나는 목회연구소 연구부장에서 제명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제명이 아니라 인사상 불이익을 당해도 억울함을 참지 못하여 모두가 지난 날의 모든 은혜를 버리고 비판만 하고 살지만 답변자는 그들보다 신앙이 있어서가 아니라 백 목사님의 신앙 걸음과 그 분이 답변자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그 아내와 그 자녀들은 버려 진 것처럼 되었고 그로 인해 더 나은 신앙이 되지 못했으므로 이런 일들이 발생했기 때문에 답변자로서는 그렇게 하신 분들에 대해 안타깝고 죄송했을 뿐입니다.


6. 답변자의 경우

답변자 자녀들은 답변자가 백 목사님께 배워서 가지고 있는 지식과 행동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 또는 불행하게, 답변자는 백 목사님만큼 큰 은혜를 받지 못했고 불충하기 때문에 그 분의 100분의 1 정도로 목회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제게는 시간의 여유가 있습니다. 그 여유를 가지고 자녀들을 직접 지도하는 일은 거의 하지 못했지만 그들과 앞에서 설명한 이런 사례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답변자 자녀들은 그들에게 답변자가 아무 것도 해 주지 않고 있지만 그들은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목회자가 되거나 아니면 백영희목회연구소의 직원이 되어 하루 3끼 밥 먹는 것만 해결 되면 나머지 평생과 시간은 오로지 이 일에 몰두하는 것만 답변자 소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답변자가 말 한 마디만 하면 목회는 교인들의 입장이 있어서 안 되겠지만 연구소 직원으로서 목회자보다 더 어려운 가운데 평생 충성하는 것은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백 목사님의 큰 딸처럼 답변자 때문에 연구실에 앉아 한숨을 쉬고나 천정을 바라 보거나 돈 벌러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워 도로 가의 출근 차량을 보고 있다면 답변자는 그들이 연구소 직원으로 충성할 실력이 없어 채용하지 못합니다.

지금 기쁨이 충만해서 연구소 직원으로 지원을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이 연구소의 연보에서 생활비를 받는다는 것은 극단적으로 필요할 때는 최소한으로 받아야 하고, 될 수 있으면 그들이 세상 생활 속에서 돈을 벌어 처자식을 책임 지고 연구소 일은 공짜로 해 줘야 그들의 아버지 소원인 줄 알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이야기는 잊지 않도록 심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자녀들의 공부는 아내가 시켰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13세부터는 집에서 가르쳐 주거나 돈을 준 적은 단 1원도 없었습니다. 백 목사님은 누가 가르쳐 줬더라면 이라고 한탄을 하셨으나, 답변자는 그 분께 일찍부터 배웠으므로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것은 못해도 답변자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을 막는 것은 수월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졸업한 순간부터 답변자로부터 자녀들이 돈을 받은 것은 전혀 없습니다. 연구소에서 남에게 돈을 줘서라도 일을 시켜야 할 상황이 있다면 답변자 자녀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뺏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꼭 같은 기회가 있을 때는 답변자 자녀들은 후순위로 밀렸습니다.

현재 답변자가 근무하는 교회는 시골이며 25년 답변자가 근속하고 있고 사택이 교회 내에 있으며 과거 1백 명 정도가 출석하고 최근에는 2백 명 가까이 출석하는 규모여서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는 매월 2백 만 원을 본 연구소 운영비로 지출해 오고 있으며 반대하거나 오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7. 육체 노동

답변자의 직업 지론은 지금 이 글을 적는 순간에도 노동 예찬론입니다. 주변에 듣는 분들은 예찬을 넘어 노동지상주의라고 할 것입니다. 자녀들이 연구소 직원으로 답변자처럼 평생을 이 하나만 몰두하면 좋겠다는 소원을 가졌는데 그렇게 하려면 육체 노동을 직업으로 가지게 되면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활동해도 가정을 책임 질 수 있는 직업을 가지게 되면 연구소에서 생활비를 받지 않고 전적 연구소 활동을 했으면 하는 소원이었습니다. 이 소원 때문에 그들이 답변자에게 돈을 받지 않고 그들 스스로 장학금을 받고 일을 해서 번 돈으로 공부하는 것은 답변자가 장려했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육체 노동의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중간중간 점검을 했었습니다. 답변자 역시 육체 노동은 제대로 거쳤습니다. 세월은 오래지 않았으나 2년 정도의 일하던 기간에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운방'이라 하면 아는 일인데 80kg 벽돌을 4-5층까지 하루 종일 다른 일 없이 나르는 일이었습니다. 자녀들의 10대 초반에 낮은 산 중턱에 있던 교회 자체 기도실의 자제를 도로까지 져 나르는 일을 하면서 교회에 막 노동을 직업으로는 하는 30대들에게 하루 일당을 주며 맡겼던 일을 맡겨 보았고 모두 잘 하는 것을 확인하고 속으로 안심을 했습니다. 언제든지 필요하면 노동을 하는 일에 나설 것이고 그런 최후의 수단이 확보 되어 있기 때문에 연구소에서 이 노선 연구 하나만을 위해 살도록 소원을 가지나, 아직 채용해야 하는 연구소 입장을 아는 답변자로서는 자녀들이 자기들의 평생 생활에 대해 자신 있는 실력을 갖추기 전에 연구소가 그들을 받아 들이면 그들이 살아 가다가 후회를 하게 될 때 연구소는 하나님과 그들의 인생에 대해 할 말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노선은 타 교회들과 달리 누가 연보한다면 받고 보는 곳이 아니라 받을 수 있는 관계인지 그 사람이 연보할 만한 실력이 있는지를 먼저 살피는 곳입니다.


많은 관심에 감사하고, 이 곳을 찾는 다양한 분들의 다양한 생각 때문에 여러 개인사를 한 번 담아 보았습니다.


>> 외부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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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목사님은 가능한 고등교육을 지양하고, 대학교육도 될 수 있으면 반대하셨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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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손들은 어찌하여 상상할 수도 없는 석학이 그리 배출되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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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목사님이 허락하셨을리는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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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후손들이 백 목사님의 가르침에 역행하였다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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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뜻 봐서는 이해하기 어렵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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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내막을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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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인 목사님의 가정사를 여쭙는 것은 실례가 되는 것이라 묻지 않는 것이 예의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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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변을 훑어보면 육체노동을 직업으로 그리 권하시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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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자제분들이 육체노동을 하며 이 노선을 따르고 있는건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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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변 안 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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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남의 자식은 사회에서 홀대하는 육체 노동을 추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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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자식은 대학교육을 시키고 사무직을 지향한다면 모순이 아닌가요..?
백 목사님의 후손들
백 목사님은 가능한 고등교육을 지양하고, 대학교육도 될 수 있으면 반대하셨다는데..


그 후손들은 어찌하여 상상할 수도 없는 석학이 그리 배출되었는지요..


백 목사님이 허락하셨을리는 없고..


그렇다면 후손들이 백 목사님의 가르침에 역행하였다는 건가요..


언뜻 봐서는 이해하기 어렵군요..


그 내막을 알고 싶습니다..


이영인 목사님의 가정사를 여쭙는 것은 실례가 되는 것이라 묻지 않는 것이 예의이겠지만,


답변을 훑어보면 육체노동을 직업으로 그리 권하시던데..


과연 자제분들이 육체노동을 하며 이 노선을 따르고 있는건지 궁금합니다.


(답변 안 하셔도 됩니다..)


만일 남의 자식은 사회에서 홀대하는 육체 노동을 추천하고,


자신의 자식은 대학교육을 시키고 사무직을 지향한다면 모순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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