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와 시골의 무력감, 패배감, 열등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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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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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9 00:00
답변자에게는 이 홈도 하나의 교회입니다. 답변자가 직원으로 있고 또 목회의 일부를 맡고 있는 교회의 교인이 답변자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하면 남의 말이 아니니 성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 때문에 몇 말씀 덧붙입니다.
공회의 자랑과 장점은 주일과 예배와 말씀 생활을 위해 세상을 다 접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공회인들의 심리적 저변에는 공회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세상은 무조건 포기해야 하며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하는 점이 아쉽습니다. 어쨌든 공회의 설교와 교회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세상 기준에 야심 있고 실력 있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은 들어 오지도 않거니와 들와 왔다가도 얼마 있지 않으면 떠나 버립니다.
답변자는 공회 중심이었던 서부교회 핵심 직원으로 있었습니다. 원래 출신은 공회의 지역절 출발지인 거창이었고 그 곳 모든 교회들의 내막을 가족처럼 알고 있습니다. 해외 교회의 형편도 잘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쉬운 것은 우리는 나그네며 행인이니 세상은 눈에 보이면 보이는 것으로 끝을 내야 하는데 세상을 부러워 하거나 세상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아 우리를 좀 못 난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개는 소를 소로 보면 되고 소는 개를 개로 보면 그만인데 소가 개처럼 짖지 못한다고 아쉬워 하고 개가 소처럼 덩치가 크지 않다고 자괴감을 느끼면 이 것은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파는 것이니 어떻게 할 수가 없고, 그런 심리적 저변은 세상 문제에 그치지 않고 신앙의 근본을 흐리게 만들거나 신앙에 전력할 힘을 빼 버리는 문제가 있습니다.
답변자는 첫 목회지가 현 교회입니다. 지금은 수도권 외곽의 공업 지역 부근처럼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아주 전남 남해안의 어촌 마을이었고 지금도 그 교인들과 자녀들이 교회의 중심입니다. 잘 믿고 잘 살다가 어느 한 순간에 자식 교육을 위해 시내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면 그대로 가 버립니다. 가고 나서 후회해도 돌이 키는 것은 어렵고 곧 돌아 오거나 대책을 마련한다고 하는 것이 세월 속에 익어 져서 안주하게 됩니다. 타 교단은 극심하여 우리가 교계 소식을 통해 알고 있고 공회는 훨씬 나은 편이나 크게 보면 오십 보 백 보라는 말에 해당 될 정도였습니다.
답변자가 첫 목회지에 왔을 때 33세였는데 중고교를 졸업하면 모두 객지로 가는 것이 무조건 법처럼 되어 있어 가정 결손 문제로 남아 있던 20대 초반의 1명 외에는 미혼의 청년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 것은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학원조차 하나가 없는 이 시골에서 평범한 학생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잘 될 수도 있고 또 사람에 따라 잘 되려 할 것도 없이 살면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는데 모두가 전자는 불가능하고 후자는 패배의식에서 무력감과 열등감에 싸여 그리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자를 실험해 봤습니다.
당시 7세 유치원생 하나, 그 다음이 답변자 자녀 3살 2살..이 전부였습니다. 시골에서 사교육 없이 공회의 새벽예배나 5월집회까지 전부 다 참석하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좀 살폈습니다. 비록 공부를 해 보지 않아도 눈치가 있는 사람은 한두 가지만 슬쩍 봐도 결과를 보지 않고 확정을 내릴 수 있는데 교인이란 성경이 '양떼'라고 표현한 것처럼 이상하게도 알아야 할 것도 모르는 면이 있고 또 이 곳의 사회적 평균 수준이 그런 면을 기대하기 어려워 답변자로서는 공연한 세월을 좀 보냈습니다. 아내를 시켜 1년 정도 교인 학생 2명과 사택 아이 4명을 지도해 보게 했는데 공회 학생들은 집회 때 수백 페이지 교재를 들고 앉아 녹음 강의만 들을 수 있으니 이 상황을 조금 응용하면 천하 어떤 공부도 해 내지 못할 리는 없는 것이고 실제 그렇게 해서 이후 굳이 해 보지 않아도 될 결과를 초기에 단기간에 확인을 했습니다.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은 그 의미를 모르니 그 다음 해에도 조금 더 진행을 시켜 일반인들이 눈으로 보고 인정을 하도록 했고, 그러다 보니 아는 사람끼리는 낯이 뜨거울 정도의 창피할 일들이 밖으로 알려 졌습니다. 이제 시간이 좀 지났고 사례들이 많아서 일부는 확실히 인정하고 일부는 대략 알고 있고 일부는 최소한 과거처럼 의심하는 정도는 아닐 만큼 되었습니다. 보지 않고 믿으면 좋겠는데 주님이 도마에게는 손과 옆구리를 대어 주셨던 것처럼 그런 창피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 얻은 것이 있다면 눈 앞에 앉아 있는 교인의 수는 시골이라고 불리하지 않고, 시대의 변화나 교계의 흐름과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그 숫자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나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있습니다.
이 홈은 답변자를 비롯하여 이 홈의 운영 주체의 개인 이야기를 피하는 것은 개인 이야기는 많을수록 강할수록 드러날수록 이 홈이 추구하고자 하는 이 노선의 가치와 내용을 제곱 반비례로 흐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해도 이 홈의 전체 신뢰를, 이 홈의 인력에 대한 오해 때문에 잃게 된다면, 그리고 그런 분들이 이 노선의 첫 걸음에 계신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설명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이 정도에서 이 홈 전체를 위해 이 주제는 그쳤으면 합니다. 주님 주신 은혜는 외부에 공개를 하고 나면 이상하게 내면의 주님 자리가 비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간증이라는 것을 마치 죽을 사람의 유언처럼 듣기 어려운 곳이 이 노선입니다. 간증을 통해 화기애애하게 은혜롭게 교회와 신앙 생활에 유익을 얻는다는 말을 들으면 이 노선의 사람들은 그 교회나 그 교인들은 하나님을 만나 본 적도 없는가, 라고 할 정도입니다.
>> 교인 님이 쓰신 내용 <<
:
: 신풍교회 교인입니다. 자녀분들의 현황은 알고 있습니다.
:
:
: : : 과연 자제분들이 육체노동을 하며 이 노선을 따르고 있는건지 궁금합니다.
: : : 만일 남의 자식은 사회에서 홀대하는 육체 노동을 추천하고,
: : : 자신의 자식은 대학교육을 시키고 사무직을 지향한다면 모순이 아닌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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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체 노동을 하는가?
:
: 4명 중 직업이 확정된 사람은 1명인데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세멘 칠하고 다닙니다. 목사님이 제일 자랑스러워 하고 성공한 자녀로 소개합니다. 늘 자랑합니다. 처음부터 현장을 부탁했는데 본인이 대학 4년을 마치고 나서 하겠다고 해서 늦어졌을 뿐입니다. 대학 다니면서 학교에 들어간 돈과 학교에서 번 돈을 계산해서 돈이 좀 남았다고 합니다.
: 4명 중 1명은 군복무 중입니다. 가지 않아도 되는데 사서 고생한다고 갔습니다. 대통령과 청와대 헤드테이블에 앉은 사진에는 옆에 김연아 그 옆에 교육부장관 등과. 로스쿨과 의대원을 택하려다 둘다 주일이 걸려서 포기하고 지금 백만원대만 벌면 가정과 교회 위해 살겠다는 분입니다. 지금도 휴가 오면 교회 창고를 다 뒤져서 정리하는 등 지저분한 일이나 노동을 피하지 않습니다.
: 4명 중 1명은 사시 1차를 19세에 합격했고 최연소 합격기록이었습니다. 시골 집에서 6개월 자습으로 이룬 결과였고 신림동을 구경삼아 가본적도 없습니다. 불편한 가족의 대소변 목욕 전부 간병하다가 6개월 기간을 주자 합격했는데 이후 몇번만에 최종합격을 하지 못하자 교인들에게 덕되지 않는다고 목사님이 포기시키고 교회의 타지 분교로 보냈습니다. 이런 학생들은 로스쿨로 돌리면 간단한데 시험이 주일이어서 포기하고 현재 월 백만원 버는 임시 직장을 갖고 분교를 돕고 있습니다. 어떤 식이든 한 가정을 위해 필요한 고정적인 생활 대책만 마련되면 연구소를 위해 평생 일할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분은 지금도 연구소 일은 물론 교인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헌법재판소 위헌 소송 2건을 받아냈는데 교육부와 전국 16개교육청을 상대한 것이며 교회 학생들을 위해 손을 댔고 관련 분야의 수험 판도를 바꾼 사건입니다. 다른 건은 국회가 법을 통과시키자말자 바로 위헌을 받아냈습니다. 교인 한 분의 경제 문제를 도와 드리기 위해서 한 일인데 위헌 결정에 이르는 과정에 예사롭지 않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서울대 입시제도의 변경을 이끌어냈던 적도 있습니다. 모두 교인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교인들의 세상 생활과 연구소를 돕는 일을 맡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4명 중 1명도 주일시험 때문에 임시직으로 현재 만족하고 있습니다. 복제연구로 국제적 지명도가 있는 곳에 핵심 인력이었는데 연구직은 시간을 많이 뺏긴다고 포기시켰습니다. 국영 스위스 TV에 인터뷰? 나온 적이 있습니다. 해외 관련 학술지에 이름을 올리는 등 그 분야로 나갔다면 유망했는데 지금 교회에 직원처럼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에 전기 통신 문제가 생기면 지붕이든 벽이든 오르내리고 기술자처럼 일하고 있습니다.
:
: 여기는 시골이고 사택이 교회 안에 있는데 대문도 없고 방문도 다 열려있고 모든 교인들이 사무실처럼 드나들며 보낸 세월이 20년이 넘습니다. 자식들을 뒤로 빼돌리고 교인들을 고생하라는 정도는 아닙니다. 지우시면 할말은 없으나 걱정하는 분들을 생각해서 그냥 두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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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의 자랑과 장점은 주일과 예배와 말씀 생활을 위해 세상을 다 접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공회인들의 심리적 저변에는 공회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세상은 무조건 포기해야 하며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하는 점이 아쉽습니다. 어쨌든 공회의 설교와 교회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세상 기준에 야심 있고 실력 있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은 들어 오지도 않거니와 들와 왔다가도 얼마 있지 않으면 떠나 버립니다.
답변자는 공회 중심이었던 서부교회 핵심 직원으로 있었습니다. 원래 출신은 공회의 지역절 출발지인 거창이었고 그 곳 모든 교회들의 내막을 가족처럼 알고 있습니다. 해외 교회의 형편도 잘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쉬운 것은 우리는 나그네며 행인이니 세상은 눈에 보이면 보이는 것으로 끝을 내야 하는데 세상을 부러워 하거나 세상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아 우리를 좀 못 난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개는 소를 소로 보면 되고 소는 개를 개로 보면 그만인데 소가 개처럼 짖지 못한다고 아쉬워 하고 개가 소처럼 덩치가 크지 않다고 자괴감을 느끼면 이 것은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파는 것이니 어떻게 할 수가 없고, 그런 심리적 저변은 세상 문제에 그치지 않고 신앙의 근본을 흐리게 만들거나 신앙에 전력할 힘을 빼 버리는 문제가 있습니다.
답변자는 첫 목회지가 현 교회입니다. 지금은 수도권 외곽의 공업 지역 부근처럼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아주 전남 남해안의 어촌 마을이었고 지금도 그 교인들과 자녀들이 교회의 중심입니다. 잘 믿고 잘 살다가 어느 한 순간에 자식 교육을 위해 시내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면 그대로 가 버립니다. 가고 나서 후회해도 돌이 키는 것은 어렵고 곧 돌아 오거나 대책을 마련한다고 하는 것이 세월 속에 익어 져서 안주하게 됩니다. 타 교단은 극심하여 우리가 교계 소식을 통해 알고 있고 공회는 훨씬 나은 편이나 크게 보면 오십 보 백 보라는 말에 해당 될 정도였습니다.
답변자가 첫 목회지에 왔을 때 33세였는데 중고교를 졸업하면 모두 객지로 가는 것이 무조건 법처럼 되어 있어 가정 결손 문제로 남아 있던 20대 초반의 1명 외에는 미혼의 청년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 것은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학원조차 하나가 없는 이 시골에서 평범한 학생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잘 될 수도 있고 또 사람에 따라 잘 되려 할 것도 없이 살면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는데 모두가 전자는 불가능하고 후자는 패배의식에서 무력감과 열등감에 싸여 그리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자를 실험해 봤습니다.
당시 7세 유치원생 하나, 그 다음이 답변자 자녀 3살 2살..이 전부였습니다. 시골에서 사교육 없이 공회의 새벽예배나 5월집회까지 전부 다 참석하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좀 살폈습니다. 비록 공부를 해 보지 않아도 눈치가 있는 사람은 한두 가지만 슬쩍 봐도 결과를 보지 않고 확정을 내릴 수 있는데 교인이란 성경이 '양떼'라고 표현한 것처럼 이상하게도 알아야 할 것도 모르는 면이 있고 또 이 곳의 사회적 평균 수준이 그런 면을 기대하기 어려워 답변자로서는 공연한 세월을 좀 보냈습니다. 아내를 시켜 1년 정도 교인 학생 2명과 사택 아이 4명을 지도해 보게 했는데 공회 학생들은 집회 때 수백 페이지 교재를 들고 앉아 녹음 강의만 들을 수 있으니 이 상황을 조금 응용하면 천하 어떤 공부도 해 내지 못할 리는 없는 것이고 실제 그렇게 해서 이후 굳이 해 보지 않아도 될 결과를 초기에 단기간에 확인을 했습니다.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은 그 의미를 모르니 그 다음 해에도 조금 더 진행을 시켜 일반인들이 눈으로 보고 인정을 하도록 했고, 그러다 보니 아는 사람끼리는 낯이 뜨거울 정도의 창피할 일들이 밖으로 알려 졌습니다. 이제 시간이 좀 지났고 사례들이 많아서 일부는 확실히 인정하고 일부는 대략 알고 있고 일부는 최소한 과거처럼 의심하는 정도는 아닐 만큼 되었습니다. 보지 않고 믿으면 좋겠는데 주님이 도마에게는 손과 옆구리를 대어 주셨던 것처럼 그런 창피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 얻은 것이 있다면 눈 앞에 앉아 있는 교인의 수는 시골이라고 불리하지 않고, 시대의 변화나 교계의 흐름과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그 숫자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나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있습니다.
이 홈은 답변자를 비롯하여 이 홈의 운영 주체의 개인 이야기를 피하는 것은 개인 이야기는 많을수록 강할수록 드러날수록 이 홈이 추구하고자 하는 이 노선의 가치와 내용을 제곱 반비례로 흐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해도 이 홈의 전체 신뢰를, 이 홈의 인력에 대한 오해 때문에 잃게 된다면, 그리고 그런 분들이 이 노선의 첫 걸음에 계신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설명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이 정도에서 이 홈 전체를 위해 이 주제는 그쳤으면 합니다. 주님 주신 은혜는 외부에 공개를 하고 나면 이상하게 내면의 주님 자리가 비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간증이라는 것을 마치 죽을 사람의 유언처럼 듣기 어려운 곳이 이 노선입니다. 간증을 통해 화기애애하게 은혜롭게 교회와 신앙 생활에 유익을 얻는다는 말을 들으면 이 노선의 사람들은 그 교회나 그 교인들은 하나님을 만나 본 적도 없는가, 라고 할 정도입니다.
>> 교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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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풍교회 교인입니다. 자녀분들의 현황은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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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과연 자제분들이 육체노동을 하며 이 노선을 따르고 있는건지 궁금합니다.
: : : 만일 남의 자식은 사회에서 홀대하는 육체 노동을 추천하고,
: : : 자신의 자식은 대학교육을 시키고 사무직을 지향한다면 모순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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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체 노동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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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명 중 직업이 확정된 사람은 1명인데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세멘 칠하고 다닙니다. 목사님이 제일 자랑스러워 하고 성공한 자녀로 소개합니다. 늘 자랑합니다. 처음부터 현장을 부탁했는데 본인이 대학 4년을 마치고 나서 하겠다고 해서 늦어졌을 뿐입니다. 대학 다니면서 학교에 들어간 돈과 학교에서 번 돈을 계산해서 돈이 좀 남았다고 합니다.
: 4명 중 1명은 군복무 중입니다. 가지 않아도 되는데 사서 고생한다고 갔습니다. 대통령과 청와대 헤드테이블에 앉은 사진에는 옆에 김연아 그 옆에 교육부장관 등과. 로스쿨과 의대원을 택하려다 둘다 주일이 걸려서 포기하고 지금 백만원대만 벌면 가정과 교회 위해 살겠다는 분입니다. 지금도 휴가 오면 교회 창고를 다 뒤져서 정리하는 등 지저분한 일이나 노동을 피하지 않습니다.
: 4명 중 1명은 사시 1차를 19세에 합격했고 최연소 합격기록이었습니다. 시골 집에서 6개월 자습으로 이룬 결과였고 신림동을 구경삼아 가본적도 없습니다. 불편한 가족의 대소변 목욕 전부 간병하다가 6개월 기간을 주자 합격했는데 이후 몇번만에 최종합격을 하지 못하자 교인들에게 덕되지 않는다고 목사님이 포기시키고 교회의 타지 분교로 보냈습니다. 이런 학생들은 로스쿨로 돌리면 간단한데 시험이 주일이어서 포기하고 현재 월 백만원 버는 임시 직장을 갖고 분교를 돕고 있습니다. 어떤 식이든 한 가정을 위해 필요한 고정적인 생활 대책만 마련되면 연구소를 위해 평생 일할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분은 지금도 연구소 일은 물론 교인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헌법재판소 위헌 소송 2건을 받아냈는데 교육부와 전국 16개교육청을 상대한 것이며 교회 학생들을 위해 손을 댔고 관련 분야의 수험 판도를 바꾼 사건입니다. 다른 건은 국회가 법을 통과시키자말자 바로 위헌을 받아냈습니다. 교인 한 분의 경제 문제를 도와 드리기 위해서 한 일인데 위헌 결정에 이르는 과정에 예사롭지 않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서울대 입시제도의 변경을 이끌어냈던 적도 있습니다. 모두 교인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교인들의 세상 생활과 연구소를 돕는 일을 맡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4명 중 1명도 주일시험 때문에 임시직으로 현재 만족하고 있습니다. 복제연구로 국제적 지명도가 있는 곳에 핵심 인력이었는데 연구직은 시간을 많이 뺏긴다고 포기시켰습니다. 국영 스위스 TV에 인터뷰? 나온 적이 있습니다. 해외 관련 학술지에 이름을 올리는 등 그 분야로 나갔다면 유망했는데 지금 교회에 직원처럼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에 전기 통신 문제가 생기면 지붕이든 벽이든 오르내리고 기술자처럼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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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시골이고 사택이 교회 안에 있는데 대문도 없고 방문도 다 열려있고 모든 교인들이 사무실처럼 드나들며 보낸 세월이 20년이 넘습니다. 자식들을 뒤로 빼돌리고 교인들을 고생하라는 정도는 아닙니다. 지우시면 할말은 없으나 걱정하는 분들을 생각해서 그냥 두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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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목사님의 후손들
백 목사님은 가능한 고등교육을 지양하고, 대학교육도 될 수 있으면 반대하셨다는데..
그 후손들은 어찌하여 상상할 수도 없는 석학이 그리 배출되었는지요..
백 목사님이 허락하셨을리는 없고..
그렇다면 후손들이 백 목사님의 가르침에 역행하였다는 건가요..
언뜻 봐서는 이해하기 어렵군요..
그 내막을 알고 싶습니다..
이영인 목사님의 가정사를 여쭙는 것은 실례가 되는 것이라 묻지 않는 것이 예의이겠지만,
답변을 훑어보면 육체노동을 직업으로 그리 권하시던데..
과연 자제분들이 육체노동을 하며 이 노선을 따르고 있는건지 궁금합니다.
(답변 안 하셔도 됩니다..)
만일 남의 자식은 사회에서 홀대하는 육체 노동을 추천하고,
자신의 자식은 대학교육을 시키고 사무직을 지향한다면 모순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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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목사님은 가능한 고등교육을 지양하고, 대학교육도 될 수 있으면 반대하셨다는데..
그 후손들은 어찌하여 상상할 수도 없는 석학이 그리 배출되었는지요..
백 목사님이 허락하셨을리는 없고..
그렇다면 후손들이 백 목사님의 가르침에 역행하였다는 건가요..
언뜻 봐서는 이해하기 어렵군요..
그 내막을 알고 싶습니다..
이영인 목사님의 가정사를 여쭙는 것은 실례가 되는 것이라 묻지 않는 것이 예의이겠지만,
답변을 훑어보면 육체노동을 직업으로 그리 권하시던데..
과연 자제분들이 육체노동을 하며 이 노선을 따르고 있는건지 궁금합니다.
(답변 안 하셔도 됩니다..)
만일 남의 자식은 사회에서 홀대하는 육체 노동을 추천하고,
자신의 자식은 대학교육을 시키고 사무직을 지향한다면 모순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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