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지옥 갈 죄 문제와 천국의 실력을 쌓는 문제로 나누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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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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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1 00:00
이 문답의 대화에서 말하는 '집회 교재'는 1984년 8월 집회 설교를 말합니다.
: 영이 심신의 죄책을 모두 가져갔다고 아래의 글에 있습니다.이번집회 부록에서도
: 그러한 내용을 본것 같습니다.
->
심신의 죄책은 영이 다 걸머 졌습니다. 그 죄책은 영이 하나님과 끊어 져 죽음으로 갚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영이 죽었고 영이 죽음으로 우리와 하나님은 완전 단절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순서는 영의 죄책을 주님이 안고 대신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영을 죽음으로 내 몬 죄책이 영에게서 없어 졌고, 죄값이 없어 짐으로 영은 중생 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이 근거를 성령이 쥐고 우리 영을 살린 것입니다.
: 영이 심신의 `모든 죄책`을 가져갔다면 논리적으로 심신은 죄의 책임이 없는것은 아닌가요?
->
예수님의 대속으로 성령이 우리를 중생 시키는 과정에는 우리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세계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던져 진 '중생'을 손에 받아 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는 천국을 들어 가는 것까지만 해결했고, 나머지는 우리에게 다시 맡겨 졌습니다.
첫 아담의 에덴동산에서는 천국과 지옥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 졌습니다.
중생 된 우리에게는 천국만 확정 되고 천국 내에서의 자유를 가질 자유가 주어 졌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죄책을 다 가져 간 것은 영이든 심신에게든 지옥 갈 죄책만 완전히 해결한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가리는 죄책은 무조건 우리가 알지도 못할 때 전부 해결했으므로 이 문제를 가지고는 우리가 회고적으로 알고 감사만 하면 되고 천국이 해결 된 사람으로서 이제 지옥 갈 걱정은 접고 우리의 모든 염려 근심 역량 전부를 천국 내의 자기 신앙 건설에만 집중하면 되도록 된 것입니다.
: 아들이 빛이 1000억이 있어, 감옥에 갔는데 아버지에게 그 빛의책임이 가게 된다면
: 아들은 빛의 책임이 없어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
->
1천 억의 빚을 지고 감옥에 간 아들에게 아버지가 1천 억을 갚든지 대신 감옥에 들어 가게 된다면 아들은 감옥 밖을 나오게 됩니다. 그 아들이 감옥에 나오는 것은 전적 아버지의 대신 수고한 덕택입니다. 이 문제를 두고는 재론이 없고 조금도 남겨 진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지옥 고통을 해결한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므로 1천 억의 아들 빚을 갚는다고 1천 조를 갚은 셈입니다.
문제는 이 아들의 문제가 감옥에서 벗어 나는 것으로 끝 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역사 2천 년의 구원론이 늘 지옥에서 나오는 문제만 집중하다 보니 시야가 너무 좁아 져 버렸습니다. 감옥에 갇혀 희망이 전혀 없게 된 죄수로서는 감옥을 벗어 나는 문제에 생명을 걸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상은 따로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출옥의 기회에 모든 것을 걸고 산 죄수가 일단 감옥을 나온 뒤에 다시 생각해 보니 감옥에서 출옥에만 매달려 산 그 사고 방식이 그 죄수를 너무 소극적으로 만들었고 그를 수동적 최소화유아화 된 인격을 만들었습니다.
일단 출옥을 하고 나면 만사가 해결인가?
출옥으로 인해 감옥의 절망을 벗은 것은 더 없는 기쁨이요 다행이며 인생의 절정이겠지만
막상 감옥을 벗어 난 사람에게 세상은 창살 없는 또 하나의 또 다른 차원의 감옥입니다.
감옥에서 매일 맞고 매일 굶고 매일 족쇄에 매여 살았으니 우선 그 곳에서 벗어 나야 했으나
감옥을 나왔다 해도 한글만 알면 영어와 일어와 세계 언어가 창살이 되어 한글에 갇히고
감옥을 나왔다 해도 경제가 없으면 경제가 창살이 되어 경제력만큼만 자유가 주어 집니다.
출옥을 했다고 바깥 세상 전부가 자기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력만큼 자유를 누립니다.
소경은 보는 자유가 없고, 귀머거리는 듣는 즐거움이 없고, 앉은뱅이는 이동 자유가 없으니
감옥 속에 있던 죄수에게 출옥은 알고 보면 그가 가질 전부가 아니라 그가 가질 1번이었고
1단계 문제를 해결하면 드 넓은 세상에서 어떤 식으로 사느냐는 2단계 문제가 봉착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이 영과 심신의 죄책을 완전히 제거했다고 할 때 이 '죄'의 범위는 지옥을 가야 하는 문제에만 해당이 됩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중생 된 우리가 오늘 해야 할 일이 있고 투쟁해야 할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우리를 무료로 구출해서 그 대문 앞에 우리를 세워 두었습니다. 감옥에서 나왔다는 해방감으로 전부를 삼고 그 감옥 문 앞에 앉아 지나 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며 평생 노숙자처럼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에게 세상이란 감옥 밖이라는 의미만 있습니다. 어떤 출옥자는 요셉처럼 천하를 자유할 수도 있습니다. 이 발전적, 이 긍정적, 이 적극적 의미의 '죄책'은 주님이 우리에게 남겨 두셨습니다.
즉, 부자 아버지가 죄수 아들을 출옥까지만 전적 해결해 주고 출옥 이후의 생활은 보일 듯 보이지 않을 듯 숨바꼭질을 하며 지켜 보고 있습니다. 아들 스스로 살아 보려고 노력하면 소리 없이 후원해 주고, 아들이 스스로 해결 할 수 없는 큰 고난이 생기면 소리 없이 제거해 주고 있습니다. 왜? 아들 스스로 자기 힘을 기르라는 것입니다. 출옥은 아들 스스로 해결할 수가 전혀 없어 아버지가 전적 나섰지만, 출옥 후에는 이제 아들이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이 과정에 아버지가 나서면 이루는 것은 많아도 아들 자체는 무능한 존재가 됩니다. 아버지가 출옥 후의 아들 문제를 두고는 아들에게 책임을 1차 맡겨 놓고 지켜 봅니다. 이 문제를 '죄책'이라고 표현을 해도 되고 '성화 문제'라고 해도 됩니다.
우선 '죄'의 실체와 내용을 제대로 알게 되면 모든 문제는 연관 되어 저절로 수월하게 해결 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자의 지적은 '죄'를 지옥 문제로만 좁게 보셨다고 생각합니다. 중생 된 후에도 우리가 짓는 심신의 죄는 천국의 자유에 걸림이 되는 문제입니다. 책임도 그 문제에만 해당 됩니다.
: 중생시, 심신의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죄값이 영에게 전가되고,예수님의 대속이 사죄칭의
: 화친으로 영을 살린다면, 예수님의 대속이 심신의 죄값에 대해 적용될 필요가 없는것은
: 아닌지?
->
위에서 설명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이번집회 설교록부록을 읽었을땐, 심신의 죄책이 없는것으로 많이 느껴졌습니다.
: 저도 예전엔 예수님의 대속이 당연시 `영-마음-몸`의 죄값을 모두 지불했다고 생각을
: 했었는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서 또 이번 8월집회 부록을 보면서 좀 혼란스러운면이
: 있는것 같습니다.
: 저는 당연히 기본구원시 영의 완전중생과 심신의 법적구원-형체구원을 믿습니다.
: 그런데 세부적으로 대속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헷깔리는것 같습니다.
->
위에서 설명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질문자 님이 쓰신 내용 <<
:
: 영이 심신의 죄책을 모두 가져갔다고 아래의 글에 있습니다.이번집회 부록에서도
: 그러한 내용을 본것 같습니다.
:
: 영이 심신의 `모든 죄책`을 가져갔다면 논리적으로 심신은 죄의 책임이 없는것은 아닌가요?
: 아들이 빛이 1000억이 있어, 감옥에 갔는데 아버지에게 그 빛의책임이 가게 된다면
: 아들은 빛의 책임이 없어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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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생시, 심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값이 영에게 전가되고,예수님의 대속이 사죄칭의
: 화친으로 영을 살린다면, 예수님의 대속이 심신의 죄값에 대해 적용될 필요가 없는것은
: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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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집회 설교록부록을 읽었을땐, 심신의 죄책이 없는것으로 많이 느껴졌습니다.
: 저도 예전엔 예수님의 대속이 당연시 `영-마음-몸`의 죄값을 모두 지불했다고 생각을
: 했었는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서 또 이번 8월집회 부록을 보면서 좀 혼란스러운면이
: 있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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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당연히 기본구원시 영의 완전중생과 심신의 법적구원-형체구원을 믿습니다.
: 그런데 세부적으로 대속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헷깔리는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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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ilee 님이 쓰신 내용 <<
: :
: : 1. 심신의 죄책은 두 갈레로 이루어 집니다.
: :
: :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것은 심신의 직접 행위죄였고, 아담의 영은 주격 책임을 진 것입니다. 심신의 행위에 대해 영이 책임을 졌다는 말은 말로 그치지 않고 영이 죽음으로 책임을 진 것이니 심신의 행위가 죄를 짓는 순간 아담의 영은 하나님과 끊어 졌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영과 관계를 끊었고 아담의 영은 하나님의 이 조처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에 항의할 수 없고 순응해야 했습니다.
: :
: : 그렇다면 심신의 죄를 아담의 영이 책임을 진 상태에서 죄를 실제 지었던 심신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의 죄는 하나의 책임이 따르는 것이므로 영이 심신의 모든 죄책을 졌고 그 결과 영이 하나님과 끊어 짐으로, 아담의 심신은 자연스럽게 그리고 결과적으로 하나님과 끊어 졌습니다. 영이 하나님과 심신의 연결을 맡았는데 영이 죽었으니 심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어떤 것도 받아 가질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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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아담의 심신의 별도 죄 책임
: : - 그 영은 주격 책임을 지고 아담의 심신의 행위죄를 다 가져 갔고 그래서 죽었고
: : - 그 영이 심신의 죄책을 가져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 심신은 독자 생존이나 독자적으로 하나님과 연결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고사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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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다면 심신은 결과적으로만 고사를 당하고, 심신의 직접 죄책은 영이 가져 갔다는 결론이 나오는 상태에서 심신 역시 별도의 자율적 인격 존재가 전제 된다면 죄 지은 책임을 어떤 형태로든지 져야 하지 않을까 라는 문제가 제기 됩니다.
: :
: : 나무 막대기처럼 자기 의지가 없는 존재는 책임이 없고 심판도 없으나 심신은 영들을 선택하는 의지와 책임이 있으니 심신이 영을 벗어 나서 선악과를 먹은 죄와 오늘도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심신의 책임은 직접 별도로 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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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심신의 기능 중 특별한 경우
: : 심신이 의로 살며 만드는 의의 기능과 죄로 살아 죄의 기능을 만드는 경우는 천국과 지옥으로 분리 되는 것이니 이는 각 교인의 성화의 차이며 아주 간단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기능 중에서도 피아노 기능이나 운전 기능처럼 그 자체는 죄나 의가 될 수 없고 그 기능이 어떻게 쓰였느냐에 따라 죄와 의가 되는 경우는, 기능 그 자체를 가지고 또 다시 내면을 살펴야 합니다. 물론 기능을 만들 때 명백히 죄와 의로 나뉘면 그 기능 자체를 분리하기 쉬우나 그 기능만 가지고는 죄와 의로 나눌 수 없다면 우리는 에덴동산의 일반 과실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생명과와 선악과는 생사를 나누지만 일반 과실은 그 과실을 먹은 것이 세상을 살아 가는 자연 은혜였습니다. 일반 과실을 먹은 것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으나 일단 먹었다면 그 것은 내 속에 힘이 되고 그 힘을 어디에 사용했느냐에 따라 책임 문제가 따릅니다. 이와 같이 기능도 그 기능 자체가 죄와 의로 나뉘지 않고 그 기능을 어디에 사용했느냐에 따라 달라 지는 경우는 기능을 다시 내면적으로 분석하여 그 기능 자체는 마치 형체처럼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고 그 기능을 어디에 썼느냐에 따라 행위와 이력은 죄와 의로 분리 될 것입니다.
: :
: : 지금까지 심신 자체를 형체로 보고 그 심신의 활동에 관련한 것만 기능으로 봤는데, 기능 역시 또 다시 분석하고 들어 간다면 기능의 형체 면과 기능의 내용 면으로 나눌 수 있음은 자연스러울 듯합니다. 죄를 짓고 만든 운전 기능이라도 그 기능을 의로 사용할 수도 있고 또 다시 죄 짓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기능 내면을 살펴야 할 시점입니다. 이 문제는 처음 제기 되는 것이어서 이 정도의 개념만 확인하고 다음 기회에 추가하겠습니다. 바로 이런 점이 오늘 우리의 시급히 살필 문제들 중에 하나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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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개별 님이 쓰신 내용 <<
: : : 1984년 8월 집회 84.8.9.목후 설교 중에서 심신의 죄는 영이 중생 전 책임진 것이라는
: : : 설명에 대해 질문합니다. 중생 후의 심신의 죄까지 영이 책임을 짐으로 심신의 죄는
: : : 전부 영이 지게 된다면 심신은 별도로 책임 질 일이 없습니까? 또한 심신의 기능 중에서
: : : 피아노나 운전 기능을 가졌다면 이 기능은 죄로 쓰일 수도 있고 의로 쓰일 수도 있는데
: : : 이런 기능은 기능 구원에서 어떻게 됩니까?
: 영이 심신의 죄책을 모두 가져갔다고 아래의 글에 있습니다.이번집회 부록에서도
: 그러한 내용을 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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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의 죄책은 영이 다 걸머 졌습니다. 그 죄책은 영이 하나님과 끊어 져 죽음으로 갚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영이 죽었고 영이 죽음으로 우리와 하나님은 완전 단절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순서는 영의 죄책을 주님이 안고 대신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영을 죽음으로 내 몬 죄책이 영에게서 없어 졌고, 죄값이 없어 짐으로 영은 중생 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이 근거를 성령이 쥐고 우리 영을 살린 것입니다.
: 영이 심신의 `모든 죄책`을 가져갔다면 논리적으로 심신은 죄의 책임이 없는것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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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대속으로 성령이 우리를 중생 시키는 과정에는 우리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세계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던져 진 '중생'을 손에 받아 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는 천국을 들어 가는 것까지만 해결했고, 나머지는 우리에게 다시 맡겨 졌습니다.
첫 아담의 에덴동산에서는 천국과 지옥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 졌습니다.
중생 된 우리에게는 천국만 확정 되고 천국 내에서의 자유를 가질 자유가 주어 졌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죄책을 다 가져 간 것은 영이든 심신에게든 지옥 갈 죄책만 완전히 해결한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가리는 죄책은 무조건 우리가 알지도 못할 때 전부 해결했으므로 이 문제를 가지고는 우리가 회고적으로 알고 감사만 하면 되고 천국이 해결 된 사람으로서 이제 지옥 갈 걱정은 접고 우리의 모든 염려 근심 역량 전부를 천국 내의 자기 신앙 건설에만 집중하면 되도록 된 것입니다.
: 아들이 빛이 1000억이 있어, 감옥에 갔는데 아버지에게 그 빛의책임이 가게 된다면
: 아들은 빛의 책임이 없어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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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 억의 빚을 지고 감옥에 간 아들에게 아버지가 1천 억을 갚든지 대신 감옥에 들어 가게 된다면 아들은 감옥 밖을 나오게 됩니다. 그 아들이 감옥에 나오는 것은 전적 아버지의 대신 수고한 덕택입니다. 이 문제를 두고는 재론이 없고 조금도 남겨 진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지옥 고통을 해결한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므로 1천 억의 아들 빚을 갚는다고 1천 조를 갚은 셈입니다.
문제는 이 아들의 문제가 감옥에서 벗어 나는 것으로 끝 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역사 2천 년의 구원론이 늘 지옥에서 나오는 문제만 집중하다 보니 시야가 너무 좁아 져 버렸습니다. 감옥에 갇혀 희망이 전혀 없게 된 죄수로서는 감옥을 벗어 나는 문제에 생명을 걸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상은 따로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출옥의 기회에 모든 것을 걸고 산 죄수가 일단 감옥을 나온 뒤에 다시 생각해 보니 감옥에서 출옥에만 매달려 산 그 사고 방식이 그 죄수를 너무 소극적으로 만들었고 그를 수동적 최소화유아화 된 인격을 만들었습니다.
일단 출옥을 하고 나면 만사가 해결인가?
출옥으로 인해 감옥의 절망을 벗은 것은 더 없는 기쁨이요 다행이며 인생의 절정이겠지만
막상 감옥을 벗어 난 사람에게 세상은 창살 없는 또 하나의 또 다른 차원의 감옥입니다.
감옥에서 매일 맞고 매일 굶고 매일 족쇄에 매여 살았으니 우선 그 곳에서 벗어 나야 했으나
감옥을 나왔다 해도 한글만 알면 영어와 일어와 세계 언어가 창살이 되어 한글에 갇히고
감옥을 나왔다 해도 경제가 없으면 경제가 창살이 되어 경제력만큼만 자유가 주어 집니다.
출옥을 했다고 바깥 세상 전부가 자기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력만큼 자유를 누립니다.
소경은 보는 자유가 없고, 귀머거리는 듣는 즐거움이 없고, 앉은뱅이는 이동 자유가 없으니
감옥 속에 있던 죄수에게 출옥은 알고 보면 그가 가질 전부가 아니라 그가 가질 1번이었고
1단계 문제를 해결하면 드 넓은 세상에서 어떤 식으로 사느냐는 2단계 문제가 봉착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이 영과 심신의 죄책을 완전히 제거했다고 할 때 이 '죄'의 범위는 지옥을 가야 하는 문제에만 해당이 됩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중생 된 우리가 오늘 해야 할 일이 있고 투쟁해야 할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우리를 무료로 구출해서 그 대문 앞에 우리를 세워 두었습니다. 감옥에서 나왔다는 해방감으로 전부를 삼고 그 감옥 문 앞에 앉아 지나 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며 평생 노숙자처럼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에게 세상이란 감옥 밖이라는 의미만 있습니다. 어떤 출옥자는 요셉처럼 천하를 자유할 수도 있습니다. 이 발전적, 이 긍정적, 이 적극적 의미의 '죄책'은 주님이 우리에게 남겨 두셨습니다.
즉, 부자 아버지가 죄수 아들을 출옥까지만 전적 해결해 주고 출옥 이후의 생활은 보일 듯 보이지 않을 듯 숨바꼭질을 하며 지켜 보고 있습니다. 아들 스스로 살아 보려고 노력하면 소리 없이 후원해 주고, 아들이 스스로 해결 할 수 없는 큰 고난이 생기면 소리 없이 제거해 주고 있습니다. 왜? 아들 스스로 자기 힘을 기르라는 것입니다. 출옥은 아들 스스로 해결할 수가 전혀 없어 아버지가 전적 나섰지만, 출옥 후에는 이제 아들이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이 과정에 아버지가 나서면 이루는 것은 많아도 아들 자체는 무능한 존재가 됩니다. 아버지가 출옥 후의 아들 문제를 두고는 아들에게 책임을 1차 맡겨 놓고 지켜 봅니다. 이 문제를 '죄책'이라고 표현을 해도 되고 '성화 문제'라고 해도 됩니다.
우선 '죄'의 실체와 내용을 제대로 알게 되면 모든 문제는 연관 되어 저절로 수월하게 해결 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자의 지적은 '죄'를 지옥 문제로만 좁게 보셨다고 생각합니다. 중생 된 후에도 우리가 짓는 심신의 죄는 천국의 자유에 걸림이 되는 문제입니다. 책임도 그 문제에만 해당 됩니다.
: 중생시, 심신의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죄값이 영에게 전가되고,예수님의 대속이 사죄칭의
: 화친으로 영을 살린다면, 예수님의 대속이 심신의 죄값에 대해 적용될 필요가 없는것은
: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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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설명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이번집회 설교록부록을 읽었을땐, 심신의 죄책이 없는것으로 많이 느껴졌습니다.
: 저도 예전엔 예수님의 대속이 당연시 `영-마음-몸`의 죄값을 모두 지불했다고 생각을
: 했었는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서 또 이번 8월집회 부록을 보면서 좀 혼란스러운면이
: 있는것 같습니다.
: 저는 당연히 기본구원시 영의 완전중생과 심신의 법적구원-형체구원을 믿습니다.
: 그런데 세부적으로 대속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헷깔리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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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설명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질문자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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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이 심신의 죄책을 모두 가져갔다고 아래의 글에 있습니다.이번집회 부록에서도
: 그러한 내용을 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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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이 심신의 `모든 죄책`을 가져갔다면 논리적으로 심신은 죄의 책임이 없는것은 아닌가요?
: 아들이 빛이 1000억이 있어, 감옥에 갔는데 아버지에게 그 빛의책임이 가게 된다면
: 아들은 빛의 책임이 없어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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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생시, 심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값이 영에게 전가되고,예수님의 대속이 사죄칭의
: 화친으로 영을 살린다면, 예수님의 대속이 심신의 죄값에 대해 적용될 필요가 없는것은
: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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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집회 설교록부록을 읽었을땐, 심신의 죄책이 없는것으로 많이 느껴졌습니다.
: 저도 예전엔 예수님의 대속이 당연시 `영-마음-몸`의 죄값을 모두 지불했다고 생각을
: 했었는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서 또 이번 8월집회 부록을 보면서 좀 혼란스러운면이
: 있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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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당연히 기본구원시 영의 완전중생과 심신의 법적구원-형체구원을 믿습니다.
: 그런데 세부적으로 대속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헷깔리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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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ilee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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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심신의 죄책은 두 갈레로 이루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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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것은 심신의 직접 행위죄였고, 아담의 영은 주격 책임을 진 것입니다. 심신의 행위에 대해 영이 책임을 졌다는 말은 말로 그치지 않고 영이 죽음으로 책임을 진 것이니 심신의 행위가 죄를 짓는 순간 아담의 영은 하나님과 끊어 졌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영과 관계를 끊었고 아담의 영은 하나님의 이 조처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에 항의할 수 없고 순응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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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다면 심신의 죄를 아담의 영이 책임을 진 상태에서 죄를 실제 지었던 심신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의 죄는 하나의 책임이 따르는 것이므로 영이 심신의 모든 죄책을 졌고 그 결과 영이 하나님과 끊어 짐으로, 아담의 심신은 자연스럽게 그리고 결과적으로 하나님과 끊어 졌습니다. 영이 하나님과 심신의 연결을 맡았는데 영이 죽었으니 심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어떤 것도 받아 가질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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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아담의 심신의 별도 죄 책임
: : - 그 영은 주격 책임을 지고 아담의 심신의 행위죄를 다 가져 갔고 그래서 죽었고
: : - 그 영이 심신의 죄책을 가져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 심신은 독자 생존이나 독자적으로 하나님과 연결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고사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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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다면 심신은 결과적으로만 고사를 당하고, 심신의 직접 죄책은 영이 가져 갔다는 결론이 나오는 상태에서 심신 역시 별도의 자율적 인격 존재가 전제 된다면 죄 지은 책임을 어떤 형태로든지 져야 하지 않을까 라는 문제가 제기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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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 막대기처럼 자기 의지가 없는 존재는 책임이 없고 심판도 없으나 심신은 영들을 선택하는 의지와 책임이 있으니 심신이 영을 벗어 나서 선악과를 먹은 죄와 오늘도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심신의 책임은 직접 별도로 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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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심신의 기능 중 특별한 경우
: : 심신이 의로 살며 만드는 의의 기능과 죄로 살아 죄의 기능을 만드는 경우는 천국과 지옥으로 분리 되는 것이니 이는 각 교인의 성화의 차이며 아주 간단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기능 중에서도 피아노 기능이나 운전 기능처럼 그 자체는 죄나 의가 될 수 없고 그 기능이 어떻게 쓰였느냐에 따라 죄와 의가 되는 경우는, 기능 그 자체를 가지고 또 다시 내면을 살펴야 합니다. 물론 기능을 만들 때 명백히 죄와 의로 나뉘면 그 기능 자체를 분리하기 쉬우나 그 기능만 가지고는 죄와 의로 나눌 수 없다면 우리는 에덴동산의 일반 과실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생명과와 선악과는 생사를 나누지만 일반 과실은 그 과실을 먹은 것이 세상을 살아 가는 자연 은혜였습니다. 일반 과실을 먹은 것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으나 일단 먹었다면 그 것은 내 속에 힘이 되고 그 힘을 어디에 사용했느냐에 따라 책임 문제가 따릅니다. 이와 같이 기능도 그 기능 자체가 죄와 의로 나뉘지 않고 그 기능을 어디에 사용했느냐에 따라 달라 지는 경우는 기능을 다시 내면적으로 분석하여 그 기능 자체는 마치 형체처럼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고 그 기능을 어디에 썼느냐에 따라 행위와 이력은 죄와 의로 분리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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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까지 심신 자체를 형체로 보고 그 심신의 활동에 관련한 것만 기능으로 봤는데, 기능 역시 또 다시 분석하고 들어 간다면 기능의 형체 면과 기능의 내용 면으로 나눌 수 있음은 자연스러울 듯합니다. 죄를 짓고 만든 운전 기능이라도 그 기능을 의로 사용할 수도 있고 또 다시 죄 짓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기능 내면을 살펴야 할 시점입니다. 이 문제는 처음 제기 되는 것이어서 이 정도의 개념만 확인하고 다음 기회에 추가하겠습니다. 바로 이런 점이 오늘 우리의 시급히 살필 문제들 중에 하나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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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개별 님이 쓰신 내용 <<
: : : 1984년 8월 집회 84.8.9.목후 설교 중에서 심신의 죄는 영이 중생 전 책임진 것이라는
: : : 설명에 대해 질문합니다. 중생 후의 심신의 죄까지 영이 책임을 짐으로 심신의 죄는
: : : 전부 영이 지게 된다면 심신은 별도로 책임 질 일이 없습니까? 또한 심신의 기능 중에서
: : : 피아노나 운전 기능을 가졌다면 이 기능은 죄로 쓰일 수도 있고 의로 쓰일 수도 있는데
: : : 이런 기능은 기능 구원에서 어떻게 됩니까?
집회 교재를 읽으며 (심신의 별도 책임, 단순 기능에 대한 책임)
1984년 8월 집회 84.8.9.목후 설교 중에서 심신의 죄는 영이 중생 전 책임진 것이라는 설명에 대해 질문합니다. 중생 후의 심신의 죄까지 영이 책임을 짐으로 심신의 죄는 전부 영이 지게 된다면 심신은 별도로 책임 질 일이 없습니까? 또한 심신의 기능 중에서 피아노나 운전 기능을 가졌다면 이 기능은 죄로 쓰일 수도 있고 의로 쓰일 수도 있는데 이런 기능은 기능 구원에서 어떻게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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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8월 집회 84.8.9.목후 설교 중에서 심신의 죄는 영이 중생 전 책임진 것이라는 설명에 대해 질문합니다. 중생 후의 심신의 죄까지 영이 책임을 짐으로 심신의 죄는 전부 영이 지게 된다면 심신은 별도로 책임 질 일이 없습니까? 또한 심신의 기능 중에서 피아노나 운전 기능을 가졌다면 이 기능은 죄로 쓰일 수도 있고 의로 쓰일 수도 있는데 이런 기능은 기능 구원에서 어떻게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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