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해석법 - 무저항주의의 마5:39절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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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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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4 00:00
1.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
- 부모에 대한 5계명의 예를 들면
부모 때문에 주님 따라 가는 길에 방해가 되면 마4:22, 눅9:60에서 부모를 버려 두고 떠나야 합니다. 주님 따라 가는 길에 방해가 되지 않는데 귀찮아서 부모를 버리면 딤전5:8에서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입니다. 엡6:1에서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하신 이 말씀이 부모를 두고 요약한 말씀입니다.
- 하나로 모든 것을 아는 이치
부모 문제는 출20장의 5계명과 딤전5:8에서 있는 힘을 다해 순종할 것을 말씀하시고, 눅9:60에서 버려 두라고 하셨지만 그 좌우의 이유와 종합을 엡6:1이 결론을 내렸으므로 알기 쉬운데 그렇다고 성경 전부를 이렇게 적다 보면 눅21:25 말씀처럼 다 쌓을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에 대한 이 좌우 극단의 말씀과 엡6:1의 결론 말씀을 하나 가지고 모든 성경을 이 원리로 살피면 좋겠습니다.
2. 성경은 무저항 무소유 무투쟁주의인가?
-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신앙주의입니다.
롬12:21에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악에게 져서 악의 것이 되도록 하와는 뱀에게 져 주고 뱀이 원하는 것을 내어 주며, 아담은 하와가 원한다면 죄 짓는 것도 하나님도 다 내어 주고 포기해야 하는가? 천부당 만부당입니다. 그런데 마5:39 이하에서 5 리 가자면 10 리를 가고, 속 옷을 원하면 아예 겉 옷까지 내어 주며 오른 뺨을 치면 왼 뺨까지 돌려 대라고 하셨는가?
- 신앙의 투쟁은 롬12:21입니다.
악으로 악을 이기지 않고
악에게 선으로 대하다가 지지도 않고
선으로 악을 상대하여 나의 선이 상대의 악을 이겨야 합니다.
- 질문하신 마5:39은 그 절수 안에 해답이 있습니다.
오른 뺨을 치는 자에게 왼 뺨을 내 주라 하신 39절의 초두에 먼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롬12:21에서는 악을 이기라 했는데 왜 여기는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했는가? 악한 자와 싸우는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자가 악으로 나를 칠 때 그 악한 자와 싸워 이기거나 그 악한 자에게 세상 것을 손해 보지 않으려 하다 보면 싸워서 이기든 지든 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악한 자에게 피동이 됩니다. 피동은 원동의 소산이니 넓게 보면 악한 자와 싸우는 의인들이 결국 악한 자와 눈 앞의 싸움에서는 이기는 수가 있다 해도 넓은 범위에서 악한 자처럼 의인도 악이 중심이 되어 이기게 되어 결국은 이기고도 지는 수가 생깁니다.
악한 자는 우리를 악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승리이니 우리의 오른 뺨을 쳐서 주먹 싸움에 피를 흘리게 하여 이기는 것도 당면 문제로 삼지만 그보다는 오른 뺨을 맞고 난 의인이 그 일 때문에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대처를 하게 되면 뺨 맞은 손해가 문제가 아니라 의인이 악인과 접하다 같은 악인 된다는 점입니다. 신사참배를 찬성한 이들의 악을 청산하려던 해방 후 고신 교단의 진리 운동가들이 겉으로는 신사참배 죄 문제로 싸웠으나 그 싸움의 내막은 고신 교단이든 그 반대 측의 총회 측이든 서로가 자기 중심으로 싸움이 계속 되었으니 오늘 고신이 그들은 신앙 순결을 지켰다 하나 현재 볼 때 역사가 보이듯이 고신과 총회 파는 다를 바가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 손양원 주남선 같은 이들은 바로 이런 면을 알았기 때문에 초기에 강력하게 고신의 중심에서 활동하다가 일선에서 발을 빼 버리거나 아니면 아예 고신에서 탈퇴를 해 버리고 맙니다. 이들은 악인과 싸우다 악인이 되는 훗날을 미리 본 지혜로운 이들입니다.
- 왼 뺨까지 내어 주고 겉 옷까지 내어 줄지라도
악한 자의 악에게는 지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자가 악으로 나를 물들이려 할 때 지지 않는 방법은 악한 자에게 자기 중심의 악으로 대적하지 않는 것입니다. 악에게 악 면에서 지지 않으려면 내가 가진 것 중에 포기할 수 있는 세상 것은 무엇이든 다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예배당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문제를 두고 서로가 자기가 옳다 하며 자기 중심이 되고 서로가 예배당 건물 때문에 싸우다 보면 신앙을 손해 보고 진리 운동에 차질이 생기는 더 큰 손해가 발생합니다. 이 때 건물과 복음 운동, 건물과 자기 중심의 교권을 사이에 두고 건물을 가지려다가 자기 중심의 악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건물을 내어 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구하고 살펴 보고 비교하고 따져 보지 않고 상대방이 달라고 하면 무조건 내어 주는 것이 기독교인가? 잘못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관리 보관하라고 한다면 아합이라는 왕이 요구를 해도 나봇은 자기 포도원을 '분깃'이었으므로 죽어도 내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어 주는 것을 기뻐하신다면 아브라함은 소돔이라는 에덴동산을 내어 주고 자기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였던 가나안으로 향했습니다. 주님께 피동 되지 악한 자에게 피동 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3. 결론적으로
왼 뺨까지 돌려 대라는 지시는 39 절 초두에 '악한 자를 대적'하는 방법론 때문에 예를 든 것입니다. 악한 자의 악에게 피동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세상 어떤 것이라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함을 말씀했습니다.
악한 자와 싸우는 방법을 두고 롬12:21처럼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면 간단명료할 터인데 왜 '대적하지 말라'는 오해하기 쉬운 말씀을 하셨는가? 악은 성경 전체를 통해 창세기 2장에 에덴동산을 주시며 선악과를 두시고 먹지 말도록 명령하셨고 3장에서 하와가 뱀에게 미혹 받고 선악과를 먹은 첫 죄악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악을 대적함'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하와는 악한 자가 뱀을 통해 선악과를 먹게 하려고 창3:1에서 말을 시작할 때 어떻게 싸웠어야 했는가? 어떤 전법으로 이겨야 했던가? 창2:15에서 하와는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는 존재이므로 뱀이 접근을 하면 '대적하여 이기려고'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쫓아 내 버려야 했습니다. 또는 뱀이 선악과를 두고 말을 시작할 때 뱀 네 입에 담을 말이 아니라며 그 입을 다물게 했어야 합니다. 대적할 것이 아니라 그 악한 자가 유1:6에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천사가 악령이 되어 에덴동산에 와서 하와를 하나님과 아담에게 붙들려 살 그 위치를 벗어 나게 한 것이 선악과를 두고 유혹할 때 내면 싸움이었습니다.
칼을 들고 적을 쳐서 이겨야 할 전쟁도 있고
칼을 들고 쳐서 이기는 문제 이전에 시작하지 말아야 할 전쟁도 있고
그런 전쟁이 일어 나는 것 자체를 미리 막았어야 하는 전쟁도 있습니다.
노아 홍수를 두고, 당대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홍수 심판이 오지 않으면 아니 되도록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는 일만 하고 있었으니 그들의 홍수 대처법은 방주를 만들기 전에 또는 높은 산으로 도망을 가기 전에 노아처럼 의인으로 살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시대의 완악함을 인하여 이미 홍수를 주시려고 확정이 되었다면 방주 만드는 것이 전력할 전투였습니다. 홍수 심판이 오지 않도록 했어야 했고, 홍수가 예보 되었으면 방주를 120년간 마련하는 것이 대적하며 싸워 이기는 것인데, 이제 홍수가 시작 되었으면 그 어떤 전투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도 우선 피난길이 있는 듯하나 그 결국은 뻔한 일입니다.
>> 목회자 님이 쓰신 내용 <<
:
: 답변자 설교를 실시간으로 듣고 있는 목회자입니다. 오리 가자 하면 십리를 가고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까지 대라는 산상보훈의 황금률은 늘 의문이었습니다. 그 이상은 흠모할 만한데 그 실행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 오늘 새벽 말씀을 다시 정리해서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말씀 실행에 중대한 문제입니다. 형제들도 함께 알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저 자신도 오늘 설교의 핵심이 아니어서 좀 놓친 부분이 있습니다.
:
: 문답방에 주해나 교리 자료를 얼른 정리하여 책으로 나왔으면 합니ㅏㄷ.
- 부모에 대한 5계명의 예를 들면
부모 때문에 주님 따라 가는 길에 방해가 되면 마4:22, 눅9:60에서 부모를 버려 두고 떠나야 합니다. 주님 따라 가는 길에 방해가 되지 않는데 귀찮아서 부모를 버리면 딤전5:8에서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입니다. 엡6:1에서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하신 이 말씀이 부모를 두고 요약한 말씀입니다.
- 하나로 모든 것을 아는 이치
부모 문제는 출20장의 5계명과 딤전5:8에서 있는 힘을 다해 순종할 것을 말씀하시고, 눅9:60에서 버려 두라고 하셨지만 그 좌우의 이유와 종합을 엡6:1이 결론을 내렸으므로 알기 쉬운데 그렇다고 성경 전부를 이렇게 적다 보면 눅21:25 말씀처럼 다 쌓을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에 대한 이 좌우 극단의 말씀과 엡6:1의 결론 말씀을 하나 가지고 모든 성경을 이 원리로 살피면 좋겠습니다.
2. 성경은 무저항 무소유 무투쟁주의인가?
-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신앙주의입니다.
롬12:21에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악에게 져서 악의 것이 되도록 하와는 뱀에게 져 주고 뱀이 원하는 것을 내어 주며, 아담은 하와가 원한다면 죄 짓는 것도 하나님도 다 내어 주고 포기해야 하는가? 천부당 만부당입니다. 그런데 마5:39 이하에서 5 리 가자면 10 리를 가고, 속 옷을 원하면 아예 겉 옷까지 내어 주며 오른 뺨을 치면 왼 뺨까지 돌려 대라고 하셨는가?
- 신앙의 투쟁은 롬12:21입니다.
악으로 악을 이기지 않고
악에게 선으로 대하다가 지지도 않고
선으로 악을 상대하여 나의 선이 상대의 악을 이겨야 합니다.
- 질문하신 마5:39은 그 절수 안에 해답이 있습니다.
오른 뺨을 치는 자에게 왼 뺨을 내 주라 하신 39절의 초두에 먼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롬12:21에서는 악을 이기라 했는데 왜 여기는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했는가? 악한 자와 싸우는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자가 악으로 나를 칠 때 그 악한 자와 싸워 이기거나 그 악한 자에게 세상 것을 손해 보지 않으려 하다 보면 싸워서 이기든 지든 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악한 자에게 피동이 됩니다. 피동은 원동의 소산이니 넓게 보면 악한 자와 싸우는 의인들이 결국 악한 자와 눈 앞의 싸움에서는 이기는 수가 있다 해도 넓은 범위에서 악한 자처럼 의인도 악이 중심이 되어 이기게 되어 결국은 이기고도 지는 수가 생깁니다.
악한 자는 우리를 악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승리이니 우리의 오른 뺨을 쳐서 주먹 싸움에 피를 흘리게 하여 이기는 것도 당면 문제로 삼지만 그보다는 오른 뺨을 맞고 난 의인이 그 일 때문에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대처를 하게 되면 뺨 맞은 손해가 문제가 아니라 의인이 악인과 접하다 같은 악인 된다는 점입니다. 신사참배를 찬성한 이들의 악을 청산하려던 해방 후 고신 교단의 진리 운동가들이 겉으로는 신사참배 죄 문제로 싸웠으나 그 싸움의 내막은 고신 교단이든 그 반대 측의 총회 측이든 서로가 자기 중심으로 싸움이 계속 되었으니 오늘 고신이 그들은 신앙 순결을 지켰다 하나 현재 볼 때 역사가 보이듯이 고신과 총회 파는 다를 바가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 손양원 주남선 같은 이들은 바로 이런 면을 알았기 때문에 초기에 강력하게 고신의 중심에서 활동하다가 일선에서 발을 빼 버리거나 아니면 아예 고신에서 탈퇴를 해 버리고 맙니다. 이들은 악인과 싸우다 악인이 되는 훗날을 미리 본 지혜로운 이들입니다.
- 왼 뺨까지 내어 주고 겉 옷까지 내어 줄지라도
악한 자의 악에게는 지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자가 악으로 나를 물들이려 할 때 지지 않는 방법은 악한 자에게 자기 중심의 악으로 대적하지 않는 것입니다. 악에게 악 면에서 지지 않으려면 내가 가진 것 중에 포기할 수 있는 세상 것은 무엇이든 다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예배당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문제를 두고 서로가 자기가 옳다 하며 자기 중심이 되고 서로가 예배당 건물 때문에 싸우다 보면 신앙을 손해 보고 진리 운동에 차질이 생기는 더 큰 손해가 발생합니다. 이 때 건물과 복음 운동, 건물과 자기 중심의 교권을 사이에 두고 건물을 가지려다가 자기 중심의 악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건물을 내어 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구하고 살펴 보고 비교하고 따져 보지 않고 상대방이 달라고 하면 무조건 내어 주는 것이 기독교인가? 잘못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관리 보관하라고 한다면 아합이라는 왕이 요구를 해도 나봇은 자기 포도원을 '분깃'이었으므로 죽어도 내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어 주는 것을 기뻐하신다면 아브라함은 소돔이라는 에덴동산을 내어 주고 자기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였던 가나안으로 향했습니다. 주님께 피동 되지 악한 자에게 피동 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3. 결론적으로
왼 뺨까지 돌려 대라는 지시는 39 절 초두에 '악한 자를 대적'하는 방법론 때문에 예를 든 것입니다. 악한 자의 악에게 피동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세상 어떤 것이라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함을 말씀했습니다.
악한 자와 싸우는 방법을 두고 롬12:21처럼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면 간단명료할 터인데 왜 '대적하지 말라'는 오해하기 쉬운 말씀을 하셨는가? 악은 성경 전체를 통해 창세기 2장에 에덴동산을 주시며 선악과를 두시고 먹지 말도록 명령하셨고 3장에서 하와가 뱀에게 미혹 받고 선악과를 먹은 첫 죄악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악을 대적함'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하와는 악한 자가 뱀을 통해 선악과를 먹게 하려고 창3:1에서 말을 시작할 때 어떻게 싸웠어야 했는가? 어떤 전법으로 이겨야 했던가? 창2:15에서 하와는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는 존재이므로 뱀이 접근을 하면 '대적하여 이기려고'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쫓아 내 버려야 했습니다. 또는 뱀이 선악과를 두고 말을 시작할 때 뱀 네 입에 담을 말이 아니라며 그 입을 다물게 했어야 합니다. 대적할 것이 아니라 그 악한 자가 유1:6에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천사가 악령이 되어 에덴동산에 와서 하와를 하나님과 아담에게 붙들려 살 그 위치를 벗어 나게 한 것이 선악과를 두고 유혹할 때 내면 싸움이었습니다.
칼을 들고 적을 쳐서 이겨야 할 전쟁도 있고
칼을 들고 쳐서 이기는 문제 이전에 시작하지 말아야 할 전쟁도 있고
그런 전쟁이 일어 나는 것 자체를 미리 막았어야 하는 전쟁도 있습니다.
노아 홍수를 두고, 당대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홍수 심판이 오지 않으면 아니 되도록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는 일만 하고 있었으니 그들의 홍수 대처법은 방주를 만들기 전에 또는 높은 산으로 도망을 가기 전에 노아처럼 의인으로 살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시대의 완악함을 인하여 이미 홍수를 주시려고 확정이 되었다면 방주 만드는 것이 전력할 전투였습니다. 홍수 심판이 오지 않도록 했어야 했고, 홍수가 예보 되었으면 방주를 120년간 마련하는 것이 대적하며 싸워 이기는 것인데, 이제 홍수가 시작 되었으면 그 어떤 전투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도 우선 피난길이 있는 듯하나 그 결국은 뻔한 일입니다.
>> 목회자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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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변자 설교를 실시간으로 듣고 있는 목회자입니다. 오리 가자 하면 십리를 가고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까지 대라는 산상보훈의 황금률은 늘 의문이었습니다. 그 이상은 흠모할 만한데 그 실행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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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새벽 말씀을 다시 정리해서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말씀 실행에 중대한 문제입니다. 형제들도 함께 알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저 자신도 오늘 설교의 핵심이 아니어서 좀 놓친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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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답방에 주해나 교리 자료를 얼른 정리하여 책으로 나왔으면 합니ㅏㄷ.
왼뺨까지 돌려대라는 무저항 평화주의와 마5:39절
답변자 설교를 실시간으로 듣고 있는 목회자입니다. 오리 가자 하면 십리를 가고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까지 대라는 산상보훈의 황금률은 늘 의문이었습니다. 그 이상은 흠모할 만한데 그 실행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새벽 말씀을 다시 정리해서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말씀 실행에 중대한 문제입니다. 형제들도 함께 알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저 자신도 오늘 설교의 핵심이 아니어서 좀 놓친 부분이 있습니다.
문답방에 주해나 교리 자료를 얼른 정리하여 책으로 나왔으면 합니ㅏ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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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자 설교를 실시간으로 듣고 있는 목회자입니다. 오리 가자 하면 십리를 가고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까지 대라는 산상보훈의 황금률은 늘 의문이었습니다. 그 이상은 흠모할 만한데 그 실행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새벽 말씀을 다시 정리해서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말씀 실행에 중대한 문제입니다. 형제들도 함께 알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저 자신도 오늘 설교의 핵심이 아니어서 좀 놓친 부분이 있습니다.
문답방에 주해나 교리 자료를 얼른 정리하여 책으로 나왔으면 합니ㅏ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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