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리사적 평가 2. 영원 완전의 칭의

문의답변      


1. 교리사적 평가 2. 영원 완전의 칭의

분류
yilee 0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신학을 제대로 했다면 질문하신 분처럼 의문과 대화가 이어 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 목사님 반복되는 질문이어서 죄송한면이 많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번 질문을 통해서

: 교리의 여러면을 생각하게 되고, 교리의 체계성-연결성-논리성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 됩니다.


->

이 교훈과 교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답변자로서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떤 반복은 아는 내용을 공고히 다지는 과정이며, 어떤 반복은 옳은 길을 찾아 가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어떤 반복은 무의미한 단순 반복이라 해도 우리는 어둡고 진리는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손 닿을 데 있으나 손에 잡고 알아 볼 때까지는 주변을 더듬습니다. 가끔 생각할 수 있고 알 만한 것을 반복한다고 느낄 때는 오히려 과제를 드리며 답변을 미루는 수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우리는 서로 배우며 대화하면서 알아 간다고 생각합니다.


: 기독교가 참진리인지 알고 싶어서 신학교에 갔었는데,


->

신학은 신앙을 모르는 소경들의 문고리 찾기입니다. 신학을 해서 뭔가 실제 써 먹을 데가 있다면 할 만하지만 '신앙'을 위해서는 대단히 조심하며 삼가해야 할 위험한 곳이 '신학'의 '학'이라는 동네입니다. 무조건 틀렸다 할 수는 없으나 현재의 신학이라는 체계와 내용 그리고 그 실제 상황은 순수한 신앙이 더러워 지기 꼭 알 맞을 만한 위험을 두루 내포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참 진리인가? 이 것을 알고 싶다면 성경 하나 들고 무조건 세상 현실 속으로 뛰어 내려 보면 좋습니다. 절벽에서 맨 땅에 해딩한다는 세상 표현이 있는데 사실 신앙이라는 것은 목숨을 걸고 자기 생을 걸고 부딪혀 봐야 압니다. 종이가 불에 타는 원리를 제대로 알려면 물리학을 알아야 하지만 성냥을 종이에 그어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좀 무식하게 안내하여 대단히 죄송하나 세상 다른 것은 학문으로 접근하나 바로 시행을 해 봐서 판별하나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신앙의 세계라는 것은 이론과 학문과 세상식 탐구로 찾는 것은 대단히 불합리합니다. 최권능 목사님의 방식, 김현봉 목사님의 노선, 무디 선생님의 방식이 그리운 시절입니다.


: 백목사님교리체계가 2000년

: 모든 신학(어거스틴-펠라기우스-반펠라기우스-칼빈-알미니안-웨슬리-워치만니-구원파 등)

: 체계의 중심이 되고,모든신학의 완성형형태인것을 깨닫기시작하면서,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기독교가 참진리이지 않을까 생각을

: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

백영희 교리 체계는

'어거스틴'의 놀라운 진리 세계를 그대로 다 담아 내면서도 한 걸음 더 발전을 시켰고

'펠라기우스' 교리 체계의 근본 헛점을 막아 그들도 모르던 그들의 오해를 해결해 주었고

'반펠라기우스' 교리의 애매한 절충안을 인간적 타협에 그치지 않도록 불을 밝혀 주었으며

'칼빈'이라는 정통 교리의 도도한 흐름의 끝이 늘 아쉬웠는데 맵시 있게 마무리를 했고

'웨슬리'라는 열심쟁이 복음 운동을 곁 길로 가지 않고 칼빈의 선상으로 돌아 오게 했으며

'니'의 높고 깊은 신앙에서 몇 곳의 아쉬운 연결 문제를 보완하고 그 이상을 구현케 했으며

'구원파'가 스스로 이단 취급 받기 딱 좋게 된 곡해 부분을 정확히 해결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어거스틴 - 칼빈의 정통 교리 체계에 대해서는 한 걸음 더 나아 가는 연결선 상에 있고

펠라기우스 - 웨슬리의 곡해 오류 체계에 대해서는 그 고장을 고쳐 돌아 오게 하는 길이며

니의 길에는 그 높은 이상의 세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을 이해하고 협조할 수 있고

구원파처럼 이단 의심을 받거나 이단이라도 무조건 정죄하지 않고 돌아 올 길을 제시합니다.

사람에게 배우지 않고도 성경 하나로 이런 세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니고는 생각할 수가 없으니 백영희 신앙 세계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전능과 그 역사의 능력과 단일의 진리 세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세계를 접한 이들을 이 홈은 pkist(백파) > 'PAIK'IST / 'PAIK'ian(공회인)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질문하신 신학도께서도 이런 세계가 손에 닿을 상황인 듯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를 알고 나면 이 홈은 이제까지 붙들고 나온 교리 교훈 세계를 그대로 거머 쥐면서 동시에 이 세상 현실 속에 뛰어 들어 주변 교인들의 어려운 환경 속에 실행하는 생활의 신앙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노선에서 가진 지식이 들어 자신을 크게 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질문내용.:

: 1.기본구원시 심신이 사죄만 입고, 칭의를 입지 않았다면

: 천국에는 가나, 건설구원은 전혀 이룰수 없는 것입니까?

: 칭의와 화목은 입지 않았으나 사죄입은자가, 말씀데로 살기위해 노력한다면

: 그 부분은 건설구원이나 성화가 될수는 없는 것인지?

:


->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성자 하나님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이런 가정이란 연구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성자 예수님을 더 잘 알기 위해서 우리의 부족하고 모순 많은 방법을 한 번씩 사용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삼위일체신데 2위 하나님이 없다는 가정은 있을 수도 없고 그런 가정 속에서 연구하는 것이 발전적으로 좋을 리는 없으나, 2위 하나님이 없었다면 죄에 빠진 우리를 구원할 길은 없었고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발만 구르고 쳐다만 봤어야 했습니다. 2위 성자 예수님이 만일 인성을 입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이 지은 죄를 하나님이 힘으로 그냥 없다고 치면 욥기 1장의 사탄이 단번에 하나님의 공의에 호소를 하며 고함을 지를 것입니다. '당신이 워낙 힘 있는 분이어서 제가 어떻게 할 수는 없으나, 하나님 당신은 무법이며 부당하며 어지러운 분입니다.'라는 사탄의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세상 정권자가 자기 가족이나 자기 편을 두호하듯이 하나님도 그렇게 하실까? 하나님은 지공과 지성의 존재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런 원리를 가지고 사죄만 입고 칭의가 없는 상태를 연구하면 쉽게 칭의라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죄는 죄만 씻었다는 뜻입니다. 칭의라는 표현이 성경에 또 등장하는 것은 무심코 그냥 적다 보니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의로운 사람이라야 의로운 나라에서 의롭게 살아 갑니다. 의가 없다면 그 나라에서는 연료 없는 차량처럼, 전기 나간 형광등처럼 됩니다. 칭의가 없는데도 칭의 부분은 우리의 힘으로 노력해서 약간이라도 의를 만드려고 한다면, 마치 불신자가 요즘 주5일 근무제 때문에 주일을 '안식'하는 경우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들의 일요일이 붉은 글씨의 공휴일이 되었고 그 날 일을 시키려 하면 노동법이 엄하게 임금을 매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신자조차 오늘의 일요일을 마치 구약의 안식일처럼 편히 쉬고 있습니다. 그들의 의로운 행동은 우연의 일치며 그 안식 행위는 인간의 인적 요소가 만든 인간 수평선 아래의 것이므로, 시공을 초월한 하나님의 세계에는 들어 갈 수도 없고 그 곳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 2.알미니안 구원론은 사죄를 과거 현재만 입었고, 미래는 입지않았다고 보고있습니다.

: 칭의부분은 과거 현재만 입었는지에 대해 거의 언급이 없는것 같습니다.

: 기본구원시 사죄와 칭의 화목은 심신의(이분론이던 삼분론이던) 과거현재미래까지

: 입는것이 개혁주의와 총공회신앙노선인데...

: 알미니안의 논리데로 기본구원시 사죄와 칭의와 화목을 `과거 현재(예수님믿는 그순간)`

: 만 입는것이 옳을수가 있는 것인지?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

알미니안처럼 첫 출발이 너무 많이 삐뚤어 진 신앙에 대해서는 그 이름과 핵심 몇 가지만 들어 두고 지나 갑니다. 그들을 일일이 파악을 하려면 유한한 시간과 노력을 손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알미니안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확실히 아는 것은 펠라기우스의 아들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선택 예정 주권 구원 은혜를 부인합니다. 사람이 실수해서 죄를 지었으니 사람이 다시 열심히 노력하면 자기가 잃은 구원을 찾을 수 있다는 사상을 근저에 깔고 그리고 여러 논리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알미니안은 결과론적으로 보면 사람이 노력하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는 데 이릅니다. 펠라기우스와 알미니안의 이런 사상의 중간에는 천주교라는 단체가 1천여 년의 세월 속에 중간 다리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하기도 어려운 논리로 온갖 소리를 다하지만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전적 은혜로 무조건 천국을 갈 수밖에 없느냐? 인간의 어떤 행동 어떤 짓도 천국 가기로 예정 된 택자의 구원을 막을 수 있느냐? 이런 질문에 대해 그들은 인간의 노력이 천국 구원에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과거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열심히 회개하고 자선하고 노력하는 면을 강조하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죽는 그 순간까지 지을 모든 죄와 그 순간까지 해결해야 할 모든 칭의와 화친과 소망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미리 예수님의 대속에서 해결해 두지 않고 우리에게 맡겨 진 부분이 있다면 우리의 구원은 '절대' 구원이 아니라 '요동적'이며 '유동적'이며 '상대적'이며 '변동 가능성'이 있는 불완전한 구원이 됩니다. 지옥 갈 사람이 천국에 들어 가는 기본구원의 세계를 두고는 우리가 이 땅 위에 사람으로 존재하는 순간부터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모든 죄를 주님이 미리 아시고 미리 십자가에 끌어다 그 곳에서 못을 박고 사죄로 모든 값을 다 해결했으며 우리의 영원 무궁토록 필요한 칭의를 미리 만들고 중생 때 입혀 주셨으니 이 칭의는 벗고 싶다고 벗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태어 난 아이가 가출을 하고 평생 부모를 다시 보지 않는다 해도 그 아이가 그 부모의 자식이라는 사실만은 변경하거나 흐릴 수가 없습니다. 그 자식이 부모의 재산 양육 교육 등 모든 면에서는 이웃만도 못한 상태로 살았다 해도 그의 신분 그 자체는 조금도 변할 수가 없습니다.


===================================================================================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 목사님 반복되는 질문이어서 죄송한면이 많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번 질문을 통해서

: 교리의 여러면을 생각하게 되고, 교리의 체계성-연결성-논리성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 됩니다.

:

: 기독교가 참진리인지 알고 싶어서 신학교에 갔었는데, 백목사님교리체계가 2000년

: 모든 신학(어거스틴-펠라기우스-반펠라기우스-칼빈-알미니안-웨슬리-워치만니-구원파 등)

: 체계의 중심이 되고,모든신학의 완성형형태인것을 깨닫기시작하면서,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기독교가 참진리이지 않을까 생각을

: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

:

: 질문내용.

:

:

: 1.기본구원시 심신이 사죄만 입고, 칭의를 입지 않았다면

: 천국에는 가나, 건설구원은 전혀 이룰수 없는 것입니까?

: 칭의와 화목은 입지 않았으나 사죄입은자가, 말씀데로 살기위해 노력한다면

: 그 부분은 건설구원이나 성화가 될수는 없는 것인지?

:

: 2.알미니안 구원론은 사죄를 과거 현재만 입었고, 미래는 입지않았다고 보고있습니다.

: 칭의부분은 과거 현재만 입었는지에 대해 거의 언급이 없는것 같습니다.

: 기본구원시 사죄와 칭의 화목은 심신의(이분론이던 삼분론이던) 과거현재미래까지

: 입는것이 개혁주의와 총공회신앙노선인데...

:

: 알미니안의 논리데로 기본구원시 사죄와 칭의와 화목을 `과거 현재(예수님믿는 그순간)`

: 만 입는것이 옳을수가 있는 것인지?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심신도 의로워졌는것인지?
일반정통신학에서 칭의에 대해서 설명을 할때,영혼과 육체가 법적으로 의로워졌다고

합니다.(이신칭의) 하나님이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는 근거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셨을 뿐 아니라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여 우리의

의의 값을 지불하신 사실에 둡니다.


1.백영희목사님신학에서 기본구원시 중생한 영은 단일성의 성질이므로 단번에

의로워 졌습니다. 그러면 심신(마음과 몸)의 형체가 법적으로 형체적으로 구원을 받았는데,

심신의 형체도 의로워졌다고 보는것입니까?


예수님의 대속이 심신의 형체에 대해서 죄값을 모두 지불하셨고, 예수님이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심신의 의의 값을 지불하셔서, 심신이 의로워졌다고 보는것입니까?


천국에는 의로운존재만 들어가는데, 심신이 의로워지지 않았다면 심신은 천국에 못들어

가는것이 논리적으로 옳은것 같습니다.


질문핵심: 심신이 예수님의 율법의 온전한 순종으로 인해서 `의인`이 된것인지?


2.만약 심신의 죄값만 지불되고, 예수님이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셔서 의의값을 지불하지

않았다면, 심신은 죄값은 지불되어서 지옥에는 가지 않지만, 의가 없기 때문에 천국에는

못가는 것입니까?
---------------------------
쓰기 문의답변 초기목록
(1) 항목별 검색 주제별 | 가나다별 | test 주제별 정리
(2) 게시판 검색
(3) 통합 검색
번호제목이름날짜
  • 10763
    목회자
    2013.12.14토
  • 10762
    yilee
    2013.12.14토
  • 10761
    3공회교인
    2013.12.13금
  • 10760
    yilee
    2013.12.14토
  • 10759
    외부
    2013.12.10화
  • 10758
    yilee
    2013.12.11수
  • 10757
    외부00
    2013.12.10화
  • 10756
    신학
    2013.12.08일
  • 10755
    yilee
    2013.12.08일
  • 10754
    신학3
    2013.12.02월
  • 10753
    yilee
    2013.12.03화
  • 10752
    신학생
    2013.11.29금
  • 10751
    yilee
    2013.11.30토
  • 10750
    목회
    2013.11.23토
  • 10749
    yilee
    2013.11.24일
  • 10748
    신학도
    2013.11.22금
  • 10747
    yilee
    2013.11.23토
  • 10746
    신학생
    2013.11.20수
  • 10745
    yilee
    2013.11.21목
  • 10744
    신학생
    2013.11.22금
  • 10743
    yilee
    2013.11.23토
  • 10742
    회계집사
    2013.11.19화
  • 10741
    yilee
    2013.11.19화
  • 10740
    부산반사
    2013.11.19화
  • 10739
    yilee
    2013.11.1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