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4:31, 신앙 걸음의 사전 계산 - 공회 소속의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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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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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9 00:00
1. 세상과 우리의 전투
신앙의 세계는 이 땅 위에서 주님을 모신 우리와 세상의 임금 악령의 싸움입니다. 주님은 이미 악령을 이겼기 때문에 직접 싸울 것이 없고 우리 안에서 우리의 도움이 있을 때만 돕습니다. 따라서 신앙의 싸움에서는 우리가 자기 현실의 모든 신앙 문제를 결정하는 임금이며 상대는 악령입니다.
악령은 우리로 하여금 죄만 짓게 하면 이깁니다. 우리는 죄를 짓게 할 때 죄를 짓지 않으면 이깁니다. 우리는 주님 뜻을 찾아 살면 이깁니다. 악령은 그런 우리를 막아야 이깁니다. 벧후2:19의 법칙에 따라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입니다. 우리가 지면 그 현실에 관련 된 우리의 심신의 모든 기능과 실력은 악령에게 붙들려 영원히 지옥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기면 우리의 심신의 기능과 실력은 물론 이 세상을 지배한 악령이 가진 현실의 모든 것이 우리의 소유가 되고 악령을 이긴 영광까지 갖게 됩니다.
2. 싸우기 전에 먼저
문제는 싸움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문제는 싸움만 하면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는 666의 악령입니다. 하나님 빼 놓고는 이 땅 위에 그 어떤 교회나 성도라도 넉넉히 요리를 할 수 있는 타락한 '천사'의 실력을 가진 악령이 적장입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한미방위조약과 같은 하나님의 도우심의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들어 가면 이깁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모시고 들어 가는 우리 주변에 악령은 꽃과 노래와 춤판을 벌여 놓을 터인데 그 것을 보는 순간 잡놈 출신인 우리의 시선이 모신 하나님과 그 환경의 환란을 사이에 두고 어디를 향할 것인가? 이 계산을 해 봐야 합니다.
또 이 싸움을 지도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적과 싸우다가 꼭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우리의 명예나 돈이나 지식은 던져 주라고 귀뜸을 할 것인데 그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만일 그 때 돈 명예 지식을 버리기 아쉬워 망설이다 보면 하나님은 돕지도 못하고 그 틈을 타서 악령이 우리를 삼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어서가 아니고 우리가 질 수밖에 없는 전쟁도 아닙니다. 선택은 전적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싸우기 전이 아니라 막상 싸움이 시작 되었을 때 나의 자세 나의 행동이 어떨 것인가? 사전에 잘 계산한 다음에 승산이 있으면 돌진하여 승리를 쟁취하면 됩니다. 돌진해 들어 가다가 멈추면 즉시 사로 잡히게 됩니다.
3. 공회 교회의 신앙 생활은
타 교단처럼 적당히 율동을 섞고 남녀 무리의 아름다운 교제가 있고 해외 선교 체험 행사가 있고 각종 편의 시설과 넉넉함과 주말 프로그램과 인생의 각박함을 느슨하게 풀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설교가 있다면 그렇게 고민할 것이 없고 그냥 뛰어 들면 됩니다.
그런데 공회 교회는 그 출석하는 첫 문에서 이 교회는 출석하기 어렵다는 안내문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예배 시간도 빠르니 예배를 드리려 가려면 마치 출근하듯 학교 가듯 시험 날 시험장을 달려 가듯 바쁘게 준비를 해야 하고, 5월의 바쁜 시기에 한 주간 집회도 가고, 술 담배를 해결하지 못하면 장로는 커녕 집사도 받을 수 없고 심지어 세례조차 수십 년을 미룹니다. 또 설교는 남도 모르고 나도 몰랐던 먼지 같은 죄를 마구 털어 냅니다. 옛날 X-ray로 폐결핵이나 잡아 내는 진찰만 하고 건강하다고 판정하는 타 교회와 비교한다면 공회 교회의 강단은 CT를 넘어 서고 MRI를 넘어 서고 PET 촬영을 통해 세포의 변화를 짚어 냅니다. PET로 촬영하면 암 환자가 엄청나게 많고 X-ray로 촬영하면 암 환자는 거의 없습니다.
건강이 진심으로 걱정 되면 비싼 돈을 내고 PET으로 검사할 것이고 행복하게 웃다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생각하는 막살이 인생이라면 당연히 X-ray 검사나 하고 말 터인데 답변자 알기로 X-ray 검사는 요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자기 육체의 건강에 진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체는 PET을 들이 대며 전자현미경으로 검진을 받는데 왜 우리의 신앙과 영생의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 낙관할까? 방심이며 천대며 사실은 유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회 신앙은 어렵습니다. 진지합니다. 적어도 공회의 출발은 그렇고 또 여전히 공회 교회의 정식은 그렇습니다. 그렇다 보니 공회 교회 중에서는 아주 느슨하고 헤이하다는 평을 받는 교회조차 외부에서 출석을 시작하다 보면 뭔가 빡빡하고 붙들리는 느낌을 많이 갖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공회 신앙을 시작할 때 타 교회를 다닐 때와 공회 교회의 분위기를 미리 잘 비교하여 신앙에 유익하다면 언제까지 어디까지 어떻게까지 갈 수 있는지를 사전에 계산을 했어야 합니다.
부산서 서울을 가겠다고 출발한 가족 소풍에 연료비를 2만 원만 가졌다면 밀양이나 다녀 와야 합니다. 서울이란 야무진 꿈은 몽상입니다. 5만 원 정도면 대구까지일 것입니다. 서울이면 20만 원은 있어야 합니다. 공회 교회를 다니려면 세상 친구는 물론 신앙의 친구들도 정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육군사관학교나 서울대 물리학과를 다니는 것과 지방의 3류 대학 농대를 다니는 것은 대학 생활 4년이 여러 면에서 다를 듯합니다. 4년 동안 죽었다고 생각할 각오라면 도전해 볼 수 있지만 미팅을 다니고 전국을 배낭여행하며 선배들과 밤을 새며 인생을 논하고 데모로 날이 새고 4년의 인생을 마음껏 즐기려면 학교와 학과를 바꾸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4. 오랜 경험을 통해
교계에 손 꼽는 유명 목사님들, 그들은 주변과 비교하면 수도자라 할 만큼 존경을 받는 분들인데도 공회 생활 10 년을 결국 채우지 못하고 나가는 것을 봤습니다. 훌륭한 자녀의 앞 날을 위해 공부를 시켜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1971년 답변자의 학습 지원을 탈락 시키며 매주 1 독씩 1 년에 50 독을 해서 세례 받은 분의 이야기를 들려 주며 내년에 보자 했던 분입니다.
교계 곳곳에 그 얼굴과 그 이름과 그 제자의 활동을 잘 볼 수 있는 유명한 목사님은 오랜 세월 노력해서 해외에서 받은 박사학위로 이화여대 아신대 등에서 가르치고 싶고 스스로 신학교를 세워 소신 있게 이 시대의 스승으로 활동하고 싶었는데 부산의 뒷골목의 한옥 방 한 칸에서 무식한 시골 조사 몇 앉혀 놓고 가르치는 것만 하고 외부 활동을 그만 두라는 압력이 가해지자 견디지 못하고 탈퇴를 했습니다. 이 분은 1972년에 답변자가 참석한 사경회 강사였고 답변자가 지금 이 홈에서 안내하는 공회의 기본 교리의 전체 흐름과 핵심 되는 이치 그리고 이 교리의 세계 교회사적 의미를 심어 놓은 분입니다. 그 분은 1988년 공회를 떠나면서 삼분설을 부인하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노선의 겉 모습은, 경건을 추구하거나 진실을 추구하는 분들에게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실제 자신의 것으로 만드려고 현실 속에 뛰어 들어 가는 순간, 남들이 노력하고 투쟁할 때 옆에서 듣고 본 것과 달리 자신의 내면에 생각 못한 많은 불편과 압력이 발생합니다. 견디지 못하면 어떤 이유를 대든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알면 버릴 수 없고 붙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노선의 가치성은 이미 충분하게 객관적으로 세월을 통해 입증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각자 자기의 것으로 실제 가지고 누리느냐는 문제입니다. 그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리 각자의 용도에 따라 자기의 자유성의 판단에 따라 각각 다릅니다. 이 노선 밖에서 훌륭하게 자기 몫을 감당하는 교파도 있고 교회도 있습니다. 이 노선은 좋으나 이 노선 안에서 자기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자기 처지를 비관하다가 포기하는 분들도 허다합니다. 답변자가 안내하고 싶은 것은 이 노선은 밖에서 보듯이 그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과거 한국 교회에 유명한 분들이 줄줄이 중도 탈락했던 곳입니다. 군대로 말하면 방위병이나 보충병 훈련소가 아닙니다. 해병대나 특전사 정도의 그런 중급 군대도 아닙니다. 공회 노선은 혼자 적국 전부를 상대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드는 곳입니다. 계10:10 말씀처럼 듣고 깨달을 때는 달지만 그 지식을 소화 시켜 자기 것으로 실제 삼는 과정에서는 쓰디 쓴 잔을 각오해야 합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따르겠다 했으나 십자가란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다 말다 기도하며 준비하는 그런 느슨한 목표가 아닙니다. 제자들끼리 패싸움 해 가며 좌우 정승 자리 노리며 눈 도장 찍고 올라 가는 그런 고갯길이 아닙니다.
실제 우리의 신앙이 그렇고, 교회가 교회답다면 당연히 그런 것이고, 공회 교회는 적어도 한국교계의 분위기에서는 제일 어려운 곳입니다. 미국에서는 수 세기 전에 청교도들에게서 비슷한 모습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종교 개혁기에 그런 교회들이 좀 많았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14:31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 외부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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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회 교회를 다니려면 가벼운 마음을 버리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라는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면을 고려해야 할까요? 신중한 자세라는 말도 사실 좀 어렵습니다. 예시를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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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ilee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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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가 60여 년 흘러 가고 TV 오락물이 넘치다 보니 군대가 병정놀이나 체험 훈련장처럼 되었습니다. 여자가 사관학교를 가서 소꼽장난을 하고 해병대는 인기가 좋아서 지원자도 줄을 잇는다고 합니다. 실제 전쟁을 겪었던 6.25 직후 세 끼 밥을 먹지 못하던 시절에는 군에 갈 때가 되면 온 식구들이 펑펑 울고 초상집처럼 되었습니다. 죽든지 장애자가 되어 평생 병신으로 살든지, 만일 멀쩡하게 돌아 온다면 그 배 고파 허덕일 아들을 생각할 때 부모와 온 식구들은 반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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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땅 위에서 천국을 향하는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은 신앙을 가지는 순간, 한 교회를 결정하는 순간, 그 신앙과 그 교회의 성향에 따라 즉각 6.25 백마고지 전투 한 가운데 내 던져지는 군인과 같습니다. 감리교는 육탄 돌격대가 되는 것이고, 장로교는 정예 일선부대가 되는 것이고, 침례교는 적의 후방을 노리는 특전사로 싸우는 것이고, 순복음교회로 출석하면 총알이 빗발치는 전선에서 나팔을 불며 독전하겠다는 것입니다. 신학교를 간다면 소대장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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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벧전5:8은 우리 사방에 배 고프고 악에 받친 우는 사자가 신앙의 사람의 신앙을 삼키려 곳곳을 수색한다고 했고, 마10:16에서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믿는 순간 어린 양이 되고 주변 환경은 갑자기 이리 떼가 된다며 근심하셨으니, 바울을 통해 빌2:12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주머니에 돈이 두둑한 상태에서 시내 어느 가게를 들어 갈까 망설이듯이, 놀이동산 어느 코스를 먼저 갈까 행복해 하듯이, 마트에서 어느 물건을 살까 꿈결같은 마음에 설레듯이 주변에 가득 찬 교회들 중에 어느 교회를 골라 볼까 고려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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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설은 어떨까, 교인들의 사교 분위기는 어떨까, 목회자와 강단의 프로그램은 어떨까, 그래도 하나님 앞에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 할 것이나 그렇다고 신학교 강좌처럼 골치가 아프면 그 것도 문제입니다. 그럴 때 가장 부담 없고 현명한 방법은 몇몇 유명한 곳들을 가 보는 것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그렇다고 한 번 발을 딛으면 예전에는 마치 남자에게 손목을 잡힌 여자처럼 다른 교회를 가 볼 수 없는 시절이 아닙니다. 지금은 연애하다 손 잡고 몇 번 놀았다고 해서 내 여자라고 했다가는 미친 ㄴ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심지어 어떻게 실수로 아이를 가졌다 해도 병원 가서 감기약 처방 받듯이 깨끗하게 예전으로 돌아 갑니다. 논 것은 논 것이고 결혼은 별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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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사는 경력 직원의 이름으로, 학교는 편입의 이름으로, 결혼은 교제라는 이름으로 예전 같으면 한 번으로 평생을 각오할 일을, 이제는 얼마나 소개서에 많은 회사와 학교와 거친 곳이 있는지를 두고 경쟁력이라고 하는 시대입니다. 한 교회로 평생을 끝 내는 사람이 있다면 요즘은 박물관 전시할 대상일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변화처럼 세상의 소속 선택의 자유처럼 세상의 거주 이전의 자유처럼 교회도 그런 대상일까요? 그렇다면 질문자의 고민은 맞고 공회는 문제가 대단히 많은 곳입니다. 말하자면 고인 물이 되어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 나지 않는 썩은 물입니다. 그러나 공회 교회는 세상 다른 것은 다 그렇게 되어도 신앙의 세계와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 소속만은 조선시대 결혼처럼 그 때의 충신이 왕을 모시듯 한 번이면 끝이지 두 번이 있거나 변경이 있거나 동시에 여러 곳을 둘러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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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편단심, 명경지심...
: :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도...
: : 불사이군이요 불사이부의 길이 신앙의 길이며 교회 선택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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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도 공회 교회가 소속이 어렵고 소속 변경에 눈치가 보인다면 너무 반가운 소식입니다. 속은 몰라도 겉은 제법 폼이라도 잡고 있다는 뜻입니다. 종교라면, 신앙이라면, 영생의 문제라면, 적어도 기독교의 교회 소속과 신앙 노선의 선택이라면 결혼 선택보다는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수십 년 살고 마는 결혼에 비해 영원을 결정하는 문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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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은 하셨으나 답변보다 그냥 이런저런 공회의 내심을 말씀 드려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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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외부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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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변에 공회 교회를 다니는 분들이 좀 있습니다. 소속이 자유롭지 못하고 뭔가 붙들린 듯한 느낌인데, 저만 그럴까요... 교회는 출입 그 자체가 편해야 하지 않을까요. 공회를 열심히 주장하는데 막상 공회 교회를 다니는 것은 좀 주저합니다. 좋으면 들어가고 또 나와야 할 일이 있으면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혹 어떤 보이지 않는 그런 의무가 많아서일까요?
신앙의 세계는 이 땅 위에서 주님을 모신 우리와 세상의 임금 악령의 싸움입니다. 주님은 이미 악령을 이겼기 때문에 직접 싸울 것이 없고 우리 안에서 우리의 도움이 있을 때만 돕습니다. 따라서 신앙의 싸움에서는 우리가 자기 현실의 모든 신앙 문제를 결정하는 임금이며 상대는 악령입니다.
악령은 우리로 하여금 죄만 짓게 하면 이깁니다. 우리는 죄를 짓게 할 때 죄를 짓지 않으면 이깁니다. 우리는 주님 뜻을 찾아 살면 이깁니다. 악령은 그런 우리를 막아야 이깁니다. 벧후2:19의 법칙에 따라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입니다. 우리가 지면 그 현실에 관련 된 우리의 심신의 모든 기능과 실력은 악령에게 붙들려 영원히 지옥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기면 우리의 심신의 기능과 실력은 물론 이 세상을 지배한 악령이 가진 현실의 모든 것이 우리의 소유가 되고 악령을 이긴 영광까지 갖게 됩니다.
2. 싸우기 전에 먼저
문제는 싸움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문제는 싸움만 하면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는 666의 악령입니다. 하나님 빼 놓고는 이 땅 위에 그 어떤 교회나 성도라도 넉넉히 요리를 할 수 있는 타락한 '천사'의 실력을 가진 악령이 적장입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한미방위조약과 같은 하나님의 도우심의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들어 가면 이깁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모시고 들어 가는 우리 주변에 악령은 꽃과 노래와 춤판을 벌여 놓을 터인데 그 것을 보는 순간 잡놈 출신인 우리의 시선이 모신 하나님과 그 환경의 환란을 사이에 두고 어디를 향할 것인가? 이 계산을 해 봐야 합니다.
또 이 싸움을 지도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적과 싸우다가 꼭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우리의 명예나 돈이나 지식은 던져 주라고 귀뜸을 할 것인데 그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만일 그 때 돈 명예 지식을 버리기 아쉬워 망설이다 보면 하나님은 돕지도 못하고 그 틈을 타서 악령이 우리를 삼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어서가 아니고 우리가 질 수밖에 없는 전쟁도 아닙니다. 선택은 전적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싸우기 전이 아니라 막상 싸움이 시작 되었을 때 나의 자세 나의 행동이 어떨 것인가? 사전에 잘 계산한 다음에 승산이 있으면 돌진하여 승리를 쟁취하면 됩니다. 돌진해 들어 가다가 멈추면 즉시 사로 잡히게 됩니다.
3. 공회 교회의 신앙 생활은
타 교단처럼 적당히 율동을 섞고 남녀 무리의 아름다운 교제가 있고 해외 선교 체험 행사가 있고 각종 편의 시설과 넉넉함과 주말 프로그램과 인생의 각박함을 느슨하게 풀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설교가 있다면 그렇게 고민할 것이 없고 그냥 뛰어 들면 됩니다.
그런데 공회 교회는 그 출석하는 첫 문에서 이 교회는 출석하기 어렵다는 안내문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예배 시간도 빠르니 예배를 드리려 가려면 마치 출근하듯 학교 가듯 시험 날 시험장을 달려 가듯 바쁘게 준비를 해야 하고, 5월의 바쁜 시기에 한 주간 집회도 가고, 술 담배를 해결하지 못하면 장로는 커녕 집사도 받을 수 없고 심지어 세례조차 수십 년을 미룹니다. 또 설교는 남도 모르고 나도 몰랐던 먼지 같은 죄를 마구 털어 냅니다. 옛날 X-ray로 폐결핵이나 잡아 내는 진찰만 하고 건강하다고 판정하는 타 교회와 비교한다면 공회 교회의 강단은 CT를 넘어 서고 MRI를 넘어 서고 PET 촬영을 통해 세포의 변화를 짚어 냅니다. PET로 촬영하면 암 환자가 엄청나게 많고 X-ray로 촬영하면 암 환자는 거의 없습니다.
건강이 진심으로 걱정 되면 비싼 돈을 내고 PET으로 검사할 것이고 행복하게 웃다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생각하는 막살이 인생이라면 당연히 X-ray 검사나 하고 말 터인데 답변자 알기로 X-ray 검사는 요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자기 육체의 건강에 진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체는 PET을 들이 대며 전자현미경으로 검진을 받는데 왜 우리의 신앙과 영생의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 낙관할까? 방심이며 천대며 사실은 유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회 신앙은 어렵습니다. 진지합니다. 적어도 공회의 출발은 그렇고 또 여전히 공회 교회의 정식은 그렇습니다. 그렇다 보니 공회 교회 중에서는 아주 느슨하고 헤이하다는 평을 받는 교회조차 외부에서 출석을 시작하다 보면 뭔가 빡빡하고 붙들리는 느낌을 많이 갖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공회 신앙을 시작할 때 타 교회를 다닐 때와 공회 교회의 분위기를 미리 잘 비교하여 신앙에 유익하다면 언제까지 어디까지 어떻게까지 갈 수 있는지를 사전에 계산을 했어야 합니다.
부산서 서울을 가겠다고 출발한 가족 소풍에 연료비를 2만 원만 가졌다면 밀양이나 다녀 와야 합니다. 서울이란 야무진 꿈은 몽상입니다. 5만 원 정도면 대구까지일 것입니다. 서울이면 20만 원은 있어야 합니다. 공회 교회를 다니려면 세상 친구는 물론 신앙의 친구들도 정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육군사관학교나 서울대 물리학과를 다니는 것과 지방의 3류 대학 농대를 다니는 것은 대학 생활 4년이 여러 면에서 다를 듯합니다. 4년 동안 죽었다고 생각할 각오라면 도전해 볼 수 있지만 미팅을 다니고 전국을 배낭여행하며 선배들과 밤을 새며 인생을 논하고 데모로 날이 새고 4년의 인생을 마음껏 즐기려면 학교와 학과를 바꾸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4. 오랜 경험을 통해
교계에 손 꼽는 유명 목사님들, 그들은 주변과 비교하면 수도자라 할 만큼 존경을 받는 분들인데도 공회 생활 10 년을 결국 채우지 못하고 나가는 것을 봤습니다. 훌륭한 자녀의 앞 날을 위해 공부를 시켜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1971년 답변자의 학습 지원을 탈락 시키며 매주 1 독씩 1 년에 50 독을 해서 세례 받은 분의 이야기를 들려 주며 내년에 보자 했던 분입니다.
교계 곳곳에 그 얼굴과 그 이름과 그 제자의 활동을 잘 볼 수 있는 유명한 목사님은 오랜 세월 노력해서 해외에서 받은 박사학위로 이화여대 아신대 등에서 가르치고 싶고 스스로 신학교를 세워 소신 있게 이 시대의 스승으로 활동하고 싶었는데 부산의 뒷골목의 한옥 방 한 칸에서 무식한 시골 조사 몇 앉혀 놓고 가르치는 것만 하고 외부 활동을 그만 두라는 압력이 가해지자 견디지 못하고 탈퇴를 했습니다. 이 분은 1972년에 답변자가 참석한 사경회 강사였고 답변자가 지금 이 홈에서 안내하는 공회의 기본 교리의 전체 흐름과 핵심 되는 이치 그리고 이 교리의 세계 교회사적 의미를 심어 놓은 분입니다. 그 분은 1988년 공회를 떠나면서 삼분설을 부인하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노선의 겉 모습은, 경건을 추구하거나 진실을 추구하는 분들에게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실제 자신의 것으로 만드려고 현실 속에 뛰어 들어 가는 순간, 남들이 노력하고 투쟁할 때 옆에서 듣고 본 것과 달리 자신의 내면에 생각 못한 많은 불편과 압력이 발생합니다. 견디지 못하면 어떤 이유를 대든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알면 버릴 수 없고 붙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노선의 가치성은 이미 충분하게 객관적으로 세월을 통해 입증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각자 자기의 것으로 실제 가지고 누리느냐는 문제입니다. 그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리 각자의 용도에 따라 자기의 자유성의 판단에 따라 각각 다릅니다. 이 노선 밖에서 훌륭하게 자기 몫을 감당하는 교파도 있고 교회도 있습니다. 이 노선은 좋으나 이 노선 안에서 자기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자기 처지를 비관하다가 포기하는 분들도 허다합니다. 답변자가 안내하고 싶은 것은 이 노선은 밖에서 보듯이 그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과거 한국 교회에 유명한 분들이 줄줄이 중도 탈락했던 곳입니다. 군대로 말하면 방위병이나 보충병 훈련소가 아닙니다. 해병대나 특전사 정도의 그런 중급 군대도 아닙니다. 공회 노선은 혼자 적국 전부를 상대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드는 곳입니다. 계10:10 말씀처럼 듣고 깨달을 때는 달지만 그 지식을 소화 시켜 자기 것으로 실제 삼는 과정에서는 쓰디 쓴 잔을 각오해야 합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따르겠다 했으나 십자가란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다 말다 기도하며 준비하는 그런 느슨한 목표가 아닙니다. 제자들끼리 패싸움 해 가며 좌우 정승 자리 노리며 눈 도장 찍고 올라 가는 그런 고갯길이 아닙니다.
실제 우리의 신앙이 그렇고, 교회가 교회답다면 당연히 그런 것이고, 공회 교회는 적어도 한국교계의 분위기에서는 제일 어려운 곳입니다. 미국에서는 수 세기 전에 청교도들에게서 비슷한 모습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종교 개혁기에 그런 교회들이 좀 많았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14:31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 외부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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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회 교회를 다니려면 가벼운 마음을 버리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라는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면을 고려해야 할까요? 신중한 자세라는 말도 사실 좀 어렵습니다. 예시를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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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땅 위에서 천국을 향하는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은 신앙을 가지는 순간, 한 교회를 결정하는 순간, 그 신앙과 그 교회의 성향에 따라 즉각 6.25 백마고지 전투 한 가운데 내 던져지는 군인과 같습니다. 감리교는 육탄 돌격대가 되는 것이고, 장로교는 정예 일선부대가 되는 것이고, 침례교는 적의 후방을 노리는 특전사로 싸우는 것이고, 순복음교회로 출석하면 총알이 빗발치는 전선에서 나팔을 불며 독전하겠다는 것입니다. 신학교를 간다면 소대장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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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벧전5:8은 우리 사방에 배 고프고 악에 받친 우는 사자가 신앙의 사람의 신앙을 삼키려 곳곳을 수색한다고 했고, 마10:16에서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믿는 순간 어린 양이 되고 주변 환경은 갑자기 이리 떼가 된다며 근심하셨으니, 바울을 통해 빌2:12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주머니에 돈이 두둑한 상태에서 시내 어느 가게를 들어 갈까 망설이듯이, 놀이동산 어느 코스를 먼저 갈까 행복해 하듯이, 마트에서 어느 물건을 살까 꿈결같은 마음에 설레듯이 주변에 가득 찬 교회들 중에 어느 교회를 골라 볼까 고려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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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설은 어떨까, 교인들의 사교 분위기는 어떨까, 목회자와 강단의 프로그램은 어떨까, 그래도 하나님 앞에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 할 것이나 그렇다고 신학교 강좌처럼 골치가 아프면 그 것도 문제입니다. 그럴 때 가장 부담 없고 현명한 방법은 몇몇 유명한 곳들을 가 보는 것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그렇다고 한 번 발을 딛으면 예전에는 마치 남자에게 손목을 잡힌 여자처럼 다른 교회를 가 볼 수 없는 시절이 아닙니다. 지금은 연애하다 손 잡고 몇 번 놀았다고 해서 내 여자라고 했다가는 미친 ㄴ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심지어 어떻게 실수로 아이를 가졌다 해도 병원 가서 감기약 처방 받듯이 깨끗하게 예전으로 돌아 갑니다. 논 것은 논 것이고 결혼은 별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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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사는 경력 직원의 이름으로, 학교는 편입의 이름으로, 결혼은 교제라는 이름으로 예전 같으면 한 번으로 평생을 각오할 일을, 이제는 얼마나 소개서에 많은 회사와 학교와 거친 곳이 있는지를 두고 경쟁력이라고 하는 시대입니다. 한 교회로 평생을 끝 내는 사람이 있다면 요즘은 박물관 전시할 대상일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변화처럼 세상의 소속 선택의 자유처럼 세상의 거주 이전의 자유처럼 교회도 그런 대상일까요? 그렇다면 질문자의 고민은 맞고 공회는 문제가 대단히 많은 곳입니다. 말하자면 고인 물이 되어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 나지 않는 썩은 물입니다. 그러나 공회 교회는 세상 다른 것은 다 그렇게 되어도 신앙의 세계와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 소속만은 조선시대 결혼처럼 그 때의 충신이 왕을 모시듯 한 번이면 끝이지 두 번이 있거나 변경이 있거나 동시에 여러 곳을 둘러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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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편단심, 명경지심...
: :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도...
: : 불사이군이요 불사이부의 길이 신앙의 길이며 교회 선택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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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도 공회 교회가 소속이 어렵고 소속 변경에 눈치가 보인다면 너무 반가운 소식입니다. 속은 몰라도 겉은 제법 폼이라도 잡고 있다는 뜻입니다. 종교라면, 신앙이라면, 영생의 문제라면, 적어도 기독교의 교회 소속과 신앙 노선의 선택이라면 결혼 선택보다는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수십 년 살고 마는 결혼에 비해 영원을 결정하는 문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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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은 하셨으나 답변보다 그냥 이런저런 공회의 내심을 말씀 드려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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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외부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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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변에 공회 교회를 다니는 분들이 좀 있습니다. 소속이 자유롭지 못하고 뭔가 붙들린 듯한 느낌인데, 저만 그럴까요... 교회는 출입 그 자체가 편해야 하지 않을까요. 공회를 열심히 주장하는데 막상 공회 교회를 다니는 것은 좀 주저합니다. 좋으면 들어가고 또 나와야 할 일이 있으면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혹 어떤 보이지 않는 그런 의무가 많아서일까요?
공회 교회는 출입이 왜 어려운지
주변에 공회 교회를 다니는 분들이 좀 있습니다. 소속이 자유롭지 못하고 뭔가 붙들린 듯한 느낌인데, 저만 그럴까요... 교회는 출입 그 자체가 편해야 하지 않을까요. 공회를 열심히 주장하는데 막상 공회 교회를 다니는 것은 좀 주저합니다. 좋으면 들어가고 또 나와야 할 일이 있으면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혹 어떤 보이지 않는 그런 의무가 많아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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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공회 교회를 다니는 분들이 좀 있습니다. 소속이 자유롭지 못하고 뭔가 붙들린 듯한 느낌인데, 저만 그럴까요... 교회는 출입 그 자체가 편해야 하지 않을까요. 공회를 열심히 주장하는데 막상 공회 교회를 다니는 것은 좀 주저합니다. 좋으면 들어가고 또 나와야 할 일이 있으면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혹 어떤 보이지 않는 그런 의무가 많아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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