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이란 그렇게 함부로 쉽게 내딛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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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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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1 00:00
신앙의 자기 발전이란 평생 중단이 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몸은 20 세의 성인까지 자라 가다가 이후 성장을 멈추지만 신령한 신앙의 인격이란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계속 자라 가야 정상입니다. 언제든지 그 성장을 멈추면 난쟁이나 앉은뱅이라는 신앙이 됩니다.
여기에 비하여 교회의 발전의 경우, 교회가 외형적으로 몸집을 키우거나 교회의 여러 부작용과 시행착오가 있는 것은 당연히 늘 고치며 보충하여 자라 가야 하지만 교회의 교리나 교회의 근본 흐름이 자라 가는 문제는 교회사를 살펴 볼 때 한 세대에 한 걸음을 내딛거나 몇 세대에 한 걸음을 내딛는 정도로 어렵고 신중한 면이 있습니다.
모세가 마련한 40 년의 기반 위에 여호수아가 그 실행에 한 걸음을 그의 평생을 통해 내딛었고, 다윗이 마련한 평생의 준비를 가지고 솔로몬이 성전 건축의 실행에 나섰습니다. 여호수아와 솔로몬의 평생은 발전이라기 보다 모세와 다윗의 발전을 구체화 한 정도라고 여겨 집니다. 신약에 들어 와서 우리가 공통적으로 잘 아는 삼위일체의 교리 한 번의 요약에 300여 년이 걸려 한 걸음을 내딛었고, 그 교리에 이어 진 다음 신인양성일위라는 교리의 다음 발자욱 하나에 126년이 걸립니다. 칼빈 이후 5백여 년에 이루어 진 교리의 발전에 대해 답변자가 그 다음 발걸음을 내딛겠다는 희망과 의지를 가지게 되면 그 당연하고 좋은 의도의 결과는 실질적인 발전을 이루는 대신 착오나 오해나 시행착오를 거쳐 곁길을 가는 서툰 일이 되기 쉬울 듯합니다. 아폴리나리스라는 분이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신데도 어떻게 인간이 되어 왔을까 라는 문제를 풀기 위해 날래게 한 마디를 했다가 역사에 죄인이 되었습니다.
연구 그 자체는 어떤 면이든 살펴 볼 수 있고 노력이라는 것은 생명의 본질에 속한 발로이므로 늘 발전을 향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법이나, 답변자나 이 홈을 방문하는 우리들의 '발전관'은 늘 발전에 앞서 현재 서 있는 자리를 굳게 다지고 신중에 신중을 더하여 향후 실제 발전의 기회가 주어 진다면 제대로 된 발전을 향해 한 걸음을 딛지 함부로 내딛어 놓고 나서 '현재에서 자리를 옮겼으므로 발전'이라는 강변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질문자의 제안처럼 이 번 기회는 답변자에게 무수한 생각을 하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발전'이야 이런 일의 유무에 따라 답변자의 실제 발전이 있다면 발전하는 것이지만 이 홈이라는 기관 또는 단체가 부산연구소와 정통성이나 서로 견주며 의식하는 그런 부정적이고 소극적 자세에서 이제는 독자적으로 질주해야 할 시점인가? 마치 한국의 수백 개 교단들이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간판 하나에 매달려 서로 정통성 시비를 벌이고 일반 교인과 불신자들이 볼 때 왜 저렇게 많은 교파가 그 간판 하나에 매달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할 백 목사님은 '총공회'라는 자신의 신앙걸음을 확실하게 표시를 냈습니다. 이런 점을 참고할 때 총공회라는 간판 하나를 사용하는 타 공회와 타 연구 기관들과 이름에까지 붙들리거나 도토리 키재기를 하다가 주변으로부터 싸운다는 말을 듣거나 또는 상대편 아이에게 고자질을 당해 교무실에 불려 가는 모습처럼 되는 이런 일을 26 년째 또 계속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렇게까지 오해를 받고 실제 법정 문제가 생기도록까지 되었으니 이제는 질문자 제안처럼 그런 과도한 의리, 사은, 충직...이라는 표현을 내려 놓고 이제는 이 노선의 앞을 향해 제대로 달려 봐야 할까? 깊이 고민해 보겠습니다.
한 가지 참고하실 것은 '피동'이라는 것은 원동의 소산이며, 북 이스라엘 10 지파가 감정에 북받쳐 한 번 욱하다가 그 길로 끝장이 났다는 역사적 교훈입니다. 원고 1 명이 꼬챙이로 옆구리를 찌른다 해서 KTX 기차가 선로를 함부로 바꾼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더욱 신중해야 할 문제입니다. 어쨌든 어제 재미있는 결론을 받아 봤습니다. 지금 많은 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백영희 이름을 팔아서 막대한 거금을 모은다는 말이 무슨 우리 사회의 객관적 판단처럼 들리는 정도인데 그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매월 80만 원으로 6 명의 식구가 연명하던 가정이 그들에게 장애 보상비로 나온 4~5억 원의 돈을 여기에 연보한 실명과 그 구체적 내역과 지금까지 사용한 비용을 공개해야 하느냐. 지금 원고 청구대로 이 홈의 이름에서 '백영희목회연구소'를 '백영희신앙을 연구하는 목회연구소'라고 바꾸면 끝이 나지만 8 글자를 한 자도 바꾸지 않으려면 그 내역을 공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야 하나, 이런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소송에서 벗어 나려면 답변자와 그 주변에서 숨어 희생한 분들이 자랑을 해야 하는데 이 땅 위에서 남들이 수고했다고 말을 하는 순간 그 명예가 하늘에서 무엇이 되는 줄을 아는데 이 복음 운동과 각자의 명예를 사이에 두고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 신학도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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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홈이 백영희 자료와 연구와 발표에 충실한 것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타 신학교를 다니는 지인이나 관련 신학자들을 통해 이 곳을 소개받고 이 곳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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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이 곳의 자료가 양심적이며 복음적이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며 또 답변자의 안내가 백영희 신앙에 충실하다는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백영희 목사님의 신앙이 오늘도 발전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답변자가 '과거의 백영희'에서 '오늘의 백영희'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무슨 연유에선지 무슨 트라우마 때문인지 답변자가 백 목사님의 어제에 집착하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초기화면에 띄운 공지를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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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님! 그 자녀분들이 직간접으로 단결하여 그렇게까지 내몬다면 이제는 오늘의 백영희를 연구하여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어떨지요? 백 목사님의 자료는 이미 세기적 자료입니다. 어디까지 얼마나 더 잘 다듬고 정교하게 만들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주님 오실 때까지 시대를 감당하려면 각 시대를 맡은 종들은 지난 날의 귀한 자료에 오늘의 상황을 분석하고 지도하며 그 과정에서 오늘에 필요한 새로운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증거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리와 정리가 넘치다 못해 붙들려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건의합니다. 최근에 발언 게시판에서 의미있는 연구를 봤습니다. 바로 그런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가 오늘에 이어지고 더 복되기를 축복하며 꼭 좋은 기회로 삼기 바랍니다.
여기에 비하여 교회의 발전의 경우, 교회가 외형적으로 몸집을 키우거나 교회의 여러 부작용과 시행착오가 있는 것은 당연히 늘 고치며 보충하여 자라 가야 하지만 교회의 교리나 교회의 근본 흐름이 자라 가는 문제는 교회사를 살펴 볼 때 한 세대에 한 걸음을 내딛거나 몇 세대에 한 걸음을 내딛는 정도로 어렵고 신중한 면이 있습니다.
모세가 마련한 40 년의 기반 위에 여호수아가 그 실행에 한 걸음을 그의 평생을 통해 내딛었고, 다윗이 마련한 평생의 준비를 가지고 솔로몬이 성전 건축의 실행에 나섰습니다. 여호수아와 솔로몬의 평생은 발전이라기 보다 모세와 다윗의 발전을 구체화 한 정도라고 여겨 집니다. 신약에 들어 와서 우리가 공통적으로 잘 아는 삼위일체의 교리 한 번의 요약에 300여 년이 걸려 한 걸음을 내딛었고, 그 교리에 이어 진 다음 신인양성일위라는 교리의 다음 발자욱 하나에 126년이 걸립니다. 칼빈 이후 5백여 년에 이루어 진 교리의 발전에 대해 답변자가 그 다음 발걸음을 내딛겠다는 희망과 의지를 가지게 되면 그 당연하고 좋은 의도의 결과는 실질적인 발전을 이루는 대신 착오나 오해나 시행착오를 거쳐 곁길을 가는 서툰 일이 되기 쉬울 듯합니다. 아폴리나리스라는 분이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신데도 어떻게 인간이 되어 왔을까 라는 문제를 풀기 위해 날래게 한 마디를 했다가 역사에 죄인이 되었습니다.
연구 그 자체는 어떤 면이든 살펴 볼 수 있고 노력이라는 것은 생명의 본질에 속한 발로이므로 늘 발전을 향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법이나, 답변자나 이 홈을 방문하는 우리들의 '발전관'은 늘 발전에 앞서 현재 서 있는 자리를 굳게 다지고 신중에 신중을 더하여 향후 실제 발전의 기회가 주어 진다면 제대로 된 발전을 향해 한 걸음을 딛지 함부로 내딛어 놓고 나서 '현재에서 자리를 옮겼으므로 발전'이라는 강변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질문자의 제안처럼 이 번 기회는 답변자에게 무수한 생각을 하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발전'이야 이런 일의 유무에 따라 답변자의 실제 발전이 있다면 발전하는 것이지만 이 홈이라는 기관 또는 단체가 부산연구소와 정통성이나 서로 견주며 의식하는 그런 부정적이고 소극적 자세에서 이제는 독자적으로 질주해야 할 시점인가? 마치 한국의 수백 개 교단들이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간판 하나에 매달려 서로 정통성 시비를 벌이고 일반 교인과 불신자들이 볼 때 왜 저렇게 많은 교파가 그 간판 하나에 매달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할 백 목사님은 '총공회'라는 자신의 신앙걸음을 확실하게 표시를 냈습니다. 이런 점을 참고할 때 총공회라는 간판 하나를 사용하는 타 공회와 타 연구 기관들과 이름에까지 붙들리거나 도토리 키재기를 하다가 주변으로부터 싸운다는 말을 듣거나 또는 상대편 아이에게 고자질을 당해 교무실에 불려 가는 모습처럼 되는 이런 일을 26 년째 또 계속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렇게까지 오해를 받고 실제 법정 문제가 생기도록까지 되었으니 이제는 질문자 제안처럼 그런 과도한 의리, 사은, 충직...이라는 표현을 내려 놓고 이제는 이 노선의 앞을 향해 제대로 달려 봐야 할까? 깊이 고민해 보겠습니다.
한 가지 참고하실 것은 '피동'이라는 것은 원동의 소산이며, 북 이스라엘 10 지파가 감정에 북받쳐 한 번 욱하다가 그 길로 끝장이 났다는 역사적 교훈입니다. 원고 1 명이 꼬챙이로 옆구리를 찌른다 해서 KTX 기차가 선로를 함부로 바꾼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더욱 신중해야 할 문제입니다. 어쨌든 어제 재미있는 결론을 받아 봤습니다. 지금 많은 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백영희 이름을 팔아서 막대한 거금을 모은다는 말이 무슨 우리 사회의 객관적 판단처럼 들리는 정도인데 그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매월 80만 원으로 6 명의 식구가 연명하던 가정이 그들에게 장애 보상비로 나온 4~5억 원의 돈을 여기에 연보한 실명과 그 구체적 내역과 지금까지 사용한 비용을 공개해야 하느냐. 지금 원고 청구대로 이 홈의 이름에서 '백영희목회연구소'를 '백영희신앙을 연구하는 목회연구소'라고 바꾸면 끝이 나지만 8 글자를 한 자도 바꾸지 않으려면 그 내역을 공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야 하나, 이런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소송에서 벗어 나려면 답변자와 그 주변에서 숨어 희생한 분들이 자랑을 해야 하는데 이 땅 위에서 남들이 수고했다고 말을 하는 순간 그 명예가 하늘에서 무엇이 되는 줄을 아는데 이 복음 운동과 각자의 명예를 사이에 두고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 신학도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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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홈이 백영희 자료와 연구와 발표에 충실한 것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타 신학교를 다니는 지인이나 관련 신학자들을 통해 이 곳을 소개받고 이 곳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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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이 곳의 자료가 양심적이며 복음적이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며 또 답변자의 안내가 백영희 신앙에 충실하다는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백영희 목사님의 신앙이 오늘도 발전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답변자가 '과거의 백영희'에서 '오늘의 백영희'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무슨 연유에선지 무슨 트라우마 때문인지 답변자가 백 목사님의 어제에 집착하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초기화면에 띄운 공지를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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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님! 그 자녀분들이 직간접으로 단결하여 그렇게까지 내몬다면 이제는 오늘의 백영희를 연구하여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어떨지요? 백 목사님의 자료는 이미 세기적 자료입니다. 어디까지 얼마나 더 잘 다듬고 정교하게 만들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주님 오실 때까지 시대를 감당하려면 각 시대를 맡은 종들은 지난 날의 귀한 자료에 오늘의 상황을 분석하고 지도하며 그 과정에서 오늘에 필요한 새로운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증거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리와 정리가 넘치다 못해 붙들려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건의합니다. 최근에 발언 게시판에서 의미있는 연구를 봤습니다. 바로 그런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가 오늘에 이어지고 더 복되기를 축복하며 꼭 좋은 기회로 삼기 바랍니다.
어제의 백영희에서 오늘의 백영희로 발전할 기회?
이 홈이 백영희 자료와 연구와 발표에 충실한 것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타 신학교를 다니는 지인이나 관련 신학자들을 통해 이 곳을 소개받고 이 곳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적지 않습니다.
우선 이 곳의 자료가 양심적이며 복음적이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며 또 답변자의 안내가 백영희 신앙에 충실하다는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백영희 목사님의 신앙이 오늘도 발전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답변자가 '과거의 백영희'에서 '오늘의 백영희'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무슨 연유에선지 무슨 트라우마 때문인지 답변자가 백 목사님의 어제에 집착하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초기화면에 띄운 공지를 봤습니다.
목사님! 그 자녀분들이 직간접으로 단결하여 그렇게까지 내몬다면 이제는 오늘의 백영희를 연구하여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어떨지요? 백 목사님의 자료는 이미 세기적 자료입니다. 어디까지 얼마나 더 잘 다듬고 정교하게 만들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주님 오실 때까지 시대를 감당하려면 각 시대를 맡은 종들은 지난 날의 귀한 자료에 오늘의 상황을 분석하고 지도하며 그 과정에서 오늘에 필요한 새로운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증거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리와 정리가 넘치다 못해 붙들려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건의합니다. 최근에 발언 게시판에서 의미있는 연구를 봤습니다. 바로 그런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가 오늘에 이어지고 더 복되기를 축복하며 꼭 좋은 기회로 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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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홈이 백영희 자료와 연구와 발표에 충실한 것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타 신학교를 다니는 지인이나 관련 신학자들을 통해 이 곳을 소개받고 이 곳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적지 않습니다.
우선 이 곳의 자료가 양심적이며 복음적이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며 또 답변자의 안내가 백영희 신앙에 충실하다는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백영희 목사님의 신앙이 오늘도 발전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답변자가 '과거의 백영희'에서 '오늘의 백영희'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무슨 연유에선지 무슨 트라우마 때문인지 답변자가 백 목사님의 어제에 집착하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초기화면에 띄운 공지를 봤습니다.
목사님! 그 자녀분들이 직간접으로 단결하여 그렇게까지 내몬다면 이제는 오늘의 백영희를 연구하여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어떨지요? 백 목사님의 자료는 이미 세기적 자료입니다. 어디까지 얼마나 더 잘 다듬고 정교하게 만들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주님 오실 때까지 시대를 감당하려면 각 시대를 맡은 종들은 지난 날의 귀한 자료에 오늘의 상황을 분석하고 지도하며 그 과정에서 오늘에 필요한 새로운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증거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리와 정리가 넘치다 못해 붙들려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건의합니다. 최근에 발언 게시판에서 의미있는 연구를 봤습니다. 바로 그런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가 오늘에 이어지고 더 복되기를 축복하며 꼭 좋은 기회로 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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