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례 시행과 백영희 - 1년 1회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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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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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8 00:00
1. 말씀 속에 들어 온 성례
신약은 기본적으로 형식보다 실질을, 외형보다 내용을, 절차보다 은혜를 치중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례는 주님의 부탁이 특별하여 천주교를 개혁할 때 수 없는 것을 폐지하면서도 성례는 그 모습까지 조심하고 살려 왔습니다.
백 목사님은 성례 시행은 직접 접해 본 교인들로서는 1 년에 1 회 정도 이상하기 어렵다 할 만큼 많은 준비와 조심, 그리고 성례의 은혜가 한 해를 계속하거나 어떤 이들에게는 평생을 붙들고 갈 만큼 굉장했습니다. 바로 이런 은혜 면 때문에 길은 정통 개혁주의에 섰으나 교인의 충성도나 순종성 등을 두고는 사이비로 오해를 받을 만큼 되었습니다. 사실 신앙의 은혜가 제대로 잘 전해 지면 갈4:15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에게 눈이라도 빼 주고 싶은 상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 목사님이 인도하는 성례의 은혜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백 목사님의 성례는 장로교의 전통 모습을 조금 단순화하되 기본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성례를 준비하는 과정의 조심 때문에 성령의 객관적 은혜가 컸다고 느껴 지고, 특히 성례를 집전하며 전하는 말씀은 참예하는 이들에게 죄와 싸우되 십자가에서 죽는 고통을 각오하고 싸울 결심과 변화를 불러 일으켰고, 부활의 주님께 붙들려 신앙의 바른 생활을 실행하게 만들었습니다. 백 목사님의 평소 목회와 교회 운영과 모든 것이 늘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그 말씀 속에 다 녹아져 있었는데 성례는 그 성례 형식이 더해지면서 평소 예배의 말씀과는 아주 차원이 달랐습니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 전 교인의 준비와 목사님 자신의 준비에 들어 가는 기간과 노력이 많았기 때문에 1 년 1 회가 겨우 시행 되었습니다. 어떤 경우는 1 개월에 몇 번의 시행도 있었으나 그런 경우는 순회하는 타 교회를 포함한 것이지 한 교회 내의 성례는 1 년 1 회라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2. 참고로
답변자는 여러 특별한 기회에 미국의 정통 성례식을 포함하여 한 번씩 타 교회 성례를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참석했던 그 성례는 역사와 전통에 손 꼽는 청교도적인 교회였고 또 참예했던 분들이 목회자나 신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로 준비하고 그 정도로 성례를 참예한다면 공회 목회자나 교인들은 매일 성례를 해도 그보다는 나을 듯했습니다. 당시 참예했던 분들은 세계적으로도 정평 있게 개혁주의 정통 신앙에 자부심을 가졌고 개혁주의 성례론에 전문가들이라 할 정도였습니다.
백 목사님의 성례에는 고전 11장 27절에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가 되지 않도록 평소 주의를 시켰는데 말하자면 그 기준이 마치 평생에 한 번뿐이 세례를 위해 준비하듯이 매년의 성례 참석의 자세와 준비는 그러했습니다. 바른 준비로 참예하면 한 해에 필요한 은혜를 다 받는다 할 만하지만, 만일 회개하지 않고 함부로 성례에 참석했다가 실제 죽거나 장애자가 되어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거나 기타 알고 모르는 많은 고난을 당하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보통 교인들의 인식이었으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조심했습니다.
>> gratia 님이 쓰신 내용 <<
:
: 안녕하세요, 총공회인은 아니지만 이곳과 관련해서 여러가지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
: 궁금한 것이 있어서 질문드립니다.
: 정통신학에서는 은혜의 통상적인 수단으로 예배에 있어서 말씀설교와 성례를 중요시합니다. 로마 카톨릭은 미신적인 성례중심의 예배로 나아갔고, 그것은 여러가지 문제들을 일으켰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예배에 있어서 말씀설교 중심의 예배로 회복시켜 놓았다고 평합니다.
:
: 정통신학의 입장에서보면, 말씀설교와 성례모두 동일하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개혁해서 탄생하고 이어져온 오늘날의 개신교회들의 예배 현장을 보면, 로마 카콜릭의 반동때문인지는 몰라도, 말씀설교는 강조되는데, 성례가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모습들을 봅니다. 특히, 예배시에 성찬은 더욱 그러합니다. 의례 행하는 종교행사나 의식정도로 지나치는 것같습니다.
:
:
: 총공회도 종교개혁자들이 닦아놓은 길 이후에, 백영희 목사님의 가르침을 중심하여 모여서 형성된 교회인데, 백영희목사님께서는 말씀설교만큼 성례를 강조하셨는가요?
:
: 백영희목사님께서는 말씀설교와 성례의 균형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셨는지, 무엇을 더 나아가서 말씀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 그리고 백목사님께서 계실 때 실제로 예배가운데 성찬을 매주 시행하셨는지, 한달에 한번 하셨는지, 세례시에는 어떻게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총공회교인이 아니다보니, 총공회소속이라면 자연스럽게 알게될 것들을, 저는 그 사정을 잘아시는 분께 들어야알 수 있음을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신약은 기본적으로 형식보다 실질을, 외형보다 내용을, 절차보다 은혜를 치중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례는 주님의 부탁이 특별하여 천주교를 개혁할 때 수 없는 것을 폐지하면서도 성례는 그 모습까지 조심하고 살려 왔습니다.
백 목사님은 성례 시행은 직접 접해 본 교인들로서는 1 년에 1 회 정도 이상하기 어렵다 할 만큼 많은 준비와 조심, 그리고 성례의 은혜가 한 해를 계속하거나 어떤 이들에게는 평생을 붙들고 갈 만큼 굉장했습니다. 바로 이런 은혜 면 때문에 길은 정통 개혁주의에 섰으나 교인의 충성도나 순종성 등을 두고는 사이비로 오해를 받을 만큼 되었습니다. 사실 신앙의 은혜가 제대로 잘 전해 지면 갈4:15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에게 눈이라도 빼 주고 싶은 상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 목사님이 인도하는 성례의 은혜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백 목사님의 성례는 장로교의 전통 모습을 조금 단순화하되 기본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성례를 준비하는 과정의 조심 때문에 성령의 객관적 은혜가 컸다고 느껴 지고, 특히 성례를 집전하며 전하는 말씀은 참예하는 이들에게 죄와 싸우되 십자가에서 죽는 고통을 각오하고 싸울 결심과 변화를 불러 일으켰고, 부활의 주님께 붙들려 신앙의 바른 생활을 실행하게 만들었습니다. 백 목사님의 평소 목회와 교회 운영과 모든 것이 늘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그 말씀 속에 다 녹아져 있었는데 성례는 그 성례 형식이 더해지면서 평소 예배의 말씀과는 아주 차원이 달랐습니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 전 교인의 준비와 목사님 자신의 준비에 들어 가는 기간과 노력이 많았기 때문에 1 년 1 회가 겨우 시행 되었습니다. 어떤 경우는 1 개월에 몇 번의 시행도 있었으나 그런 경우는 순회하는 타 교회를 포함한 것이지 한 교회 내의 성례는 1 년 1 회라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2. 참고로
답변자는 여러 특별한 기회에 미국의 정통 성례식을 포함하여 한 번씩 타 교회 성례를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참석했던 그 성례는 역사와 전통에 손 꼽는 청교도적인 교회였고 또 참예했던 분들이 목회자나 신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로 준비하고 그 정도로 성례를 참예한다면 공회 목회자나 교인들은 매일 성례를 해도 그보다는 나을 듯했습니다. 당시 참예했던 분들은 세계적으로도 정평 있게 개혁주의 정통 신앙에 자부심을 가졌고 개혁주의 성례론에 전문가들이라 할 정도였습니다.
백 목사님의 성례에는 고전 11장 27절에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가 되지 않도록 평소 주의를 시켰는데 말하자면 그 기준이 마치 평생에 한 번뿐이 세례를 위해 준비하듯이 매년의 성례 참석의 자세와 준비는 그러했습니다. 바른 준비로 참예하면 한 해에 필요한 은혜를 다 받는다 할 만하지만, 만일 회개하지 않고 함부로 성례에 참석했다가 실제 죽거나 장애자가 되어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거나 기타 알고 모르는 많은 고난을 당하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보통 교인들의 인식이었으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조심했습니다.
>> gratia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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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총공회인은 아니지만 이곳과 관련해서 여러가지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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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금한 것이 있어서 질문드립니다.
: 정통신학에서는 은혜의 통상적인 수단으로 예배에 있어서 말씀설교와 성례를 중요시합니다. 로마 카톨릭은 미신적인 성례중심의 예배로 나아갔고, 그것은 여러가지 문제들을 일으켰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예배에 있어서 말씀설교 중심의 예배로 회복시켜 놓았다고 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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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통신학의 입장에서보면, 말씀설교와 성례모두 동일하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개혁해서 탄생하고 이어져온 오늘날의 개신교회들의 예배 현장을 보면, 로마 카콜릭의 반동때문인지는 몰라도, 말씀설교는 강조되는데, 성례가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모습들을 봅니다. 특히, 예배시에 성찬은 더욱 그러합니다. 의례 행하는 종교행사나 의식정도로 지나치는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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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공회도 종교개혁자들이 닦아놓은 길 이후에, 백영희 목사님의 가르침을 중심하여 모여서 형성된 교회인데, 백영희목사님께서는 말씀설교만큼 성례를 강조하셨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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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영희목사님께서는 말씀설교와 성례의 균형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셨는지, 무엇을 더 나아가서 말씀하셨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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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백목사님께서 계실 때 실제로 예배가운데 성찬을 매주 시행하셨는지, 한달에 한번 하셨는지, 세례시에는 어떻게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총공회교인이 아니다보니, 총공회소속이라면 자연스럽게 알게될 것들을, 저는 그 사정을 잘아시는 분께 들어야알 수 있음을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성례에 관한 백목사님 입장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총공회인은 아니지만 이곳과 관련해서 여러가지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어서 질문드립니다.
정통신학에서는 은혜의 통상적인 수단으로 예배에 있어서 말씀설교와 성례를 중요시합니다. 로마 카톨릭은 미신적인 성례중심의 예배로 나아갔고, 그것은 여러가지 문제들을 일으켰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예배에 있어서 말씀설교 중심의 예배로 회복시켜 놓았다고 평합니다.
정통신학의 입장에서보면, 말씀설교와 성례모두 동일하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개혁해서 탄생하고 이어져온 오늘날의 개신교회들의 예배 현장을 보면, 로마 카콜릭의 반동때문인지는 몰라도, 말씀설교는 강조되는데, 성례가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모습들을 봅니다. 특히, 예배시에 성찬은 더욱 그러합니다. 의례 행하는 종교행사나 의식정도로 지나치는 것같습니다.
총공회도 종교개혁자들이 닦아놓은 길 이후에, 백영희 목사님의 가르침을 중심하여 모여서 형성된 교회인데, 백영희목사님께서는 말씀설교만큼 성례를 강조하셨는가요?
백영희목사님께서는 말씀설교와 성례의 균형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셨는지, 무엇을 더 나아가서 말씀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백목사님께서 계실 때 실제로 예배가운데 성찬을 매주 시행하셨는지, 한달에 한번 하셨는지, 세례시에는 어떻게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총공회교인이 아니다보니, 총공회소속이라면 자연스럽게 알게될 것들을, 저는 그 사정을 잘아시는 분께 들어야알 수 있음을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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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총공회인은 아니지만 이곳과 관련해서 여러가지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어서 질문드립니다.
정통신학에서는 은혜의 통상적인 수단으로 예배에 있어서 말씀설교와 성례를 중요시합니다. 로마 카톨릭은 미신적인 성례중심의 예배로 나아갔고, 그것은 여러가지 문제들을 일으켰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예배에 있어서 말씀설교 중심의 예배로 회복시켜 놓았다고 평합니다.
정통신학의 입장에서보면, 말씀설교와 성례모두 동일하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개혁해서 탄생하고 이어져온 오늘날의 개신교회들의 예배 현장을 보면, 로마 카콜릭의 반동때문인지는 몰라도, 말씀설교는 강조되는데, 성례가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모습들을 봅니다. 특히, 예배시에 성찬은 더욱 그러합니다. 의례 행하는 종교행사나 의식정도로 지나치는 것같습니다.
총공회도 종교개혁자들이 닦아놓은 길 이후에, 백영희 목사님의 가르침을 중심하여 모여서 형성된 교회인데, 백영희목사님께서는 말씀설교만큼 성례를 강조하셨는가요?
백영희목사님께서는 말씀설교와 성례의 균형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셨는지, 무엇을 더 나아가서 말씀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백목사님께서 계실 때 실제로 예배가운데 성찬을 매주 시행하셨는지, 한달에 한번 하셨는지, 세례시에는 어떻게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총공회교인이 아니다보니, 총공회소속이라면 자연스럽게 알게될 것들을, 저는 그 사정을 잘아시는 분께 들어야알 수 있음을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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