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목사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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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목사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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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단 총공회는 '원로'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모세가 120세로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충성하다 갔습니다. 수십 년을 수고했으니 허리 좀 펴고 젊을 때 다니지 못한 곳을 좀 다니자는 그런 인식은 세상 것이고 성경을 안다면 입에 담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신 주님이 사람 되어 십자가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했는데 그 값으로 구원 받은 우리가 쉴 시간을 찾고 과로 과충 했다 하여 은퇴를 하려 든다면 크나 큰 죄가 됩니다. 다만 자기가 잘 살지를 못해서 늙음으로 교회에 짐이 된다면 당연히 더 나은 목회자를 모시도록 비키는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공회 신앙은 목회자가 갈수록 더 겸손해 지고 갈수록 경험이 생겨서 더 나아 지고 갈수록 은혜를 받아서 은혜가 더해 져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삼습니다. 연로하여 무능해 지고 교회를 위해서 후임에게 자리를 넘긴다면 이미 자기의 평생 목회는 낙제라는 인식으로 우리는 상대합니다.


2. 그렇다 해도 '원로 목사님'은 필요합니다.

백 목사님은 지금 나이로 말하면 100세 정도까지 살았습니다. 그 마지막 새벽 강단까지 그 분의 생애에 절정의 은혜와 실력과 충성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럴 정도가 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죽는 순간까지 갈수록 자라 가며 교회를 맡아 충성한다는 것은 우리의 변치 않을 목표지만, 실제 우리가 그렇게 되지 못할 때 교회를 위해 물러 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현재 공회에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물러 나야 하는데도 버티고 앉아서 죽도록 충성한다는데 교인에게 짐만 더 지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회에는 1등이 되지 못하고 2등이라도 하기 위해 원치 않으나 원로 목사님으로 계시는 어른들이 계십니다.


이 원로 목사님들이 자기의 젊을 때의 실수를 기억하고, 자기가 은혜를 받았을 때를 기억하여 후임 목사님과 교회에게 도움이 되도록 처신과 지도와 양보와 헌신을 잘 한다면 교회는 큰 보배를 모시며 교회의 생명 역사는 희망이 있습니다. 공회의 교훈이면 이런 좋은 관계의 원로가 곳곳마다 넘쳐야 합니다. 적어도 타 교단에서는 원로 문제라는 것은 거의 다 불행하고 부정적인 면으로 진행 되는데 공회는 아직까지 괜찮은 관계로 진행이 된다고 듣고 있습니다. 덕수교회의 송종섭 목사님, 동성로교회의 신도관 목사님, 만덕교회의 류차연 목사님 등의 경우는 잘 알지는 못해도 틀림 없이 이상적으로 잘 협조 되며 진행 되고 있을 듯합니다. 원로는 후임을 아끼고, 후임은 원로에게 지극히 잘 하고, 교회는 원로와 후임이 동시에 계시는 바람에 더욱 좋은 경우일 것입니다.


3. 원로와 후임의 바른 관계

질문 말미에 '당회'나 '제직회'의 회원이 될 수 있는지 또는 발언권이나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등을 질문하셨는데,


타 교단은 원로 목사님은 당회나 제직회의 회원이 될 수 없습니다. 은퇴를 해야 원로 목사님이 되는데 일단 원로 목사님이 되면 기본적으로 그 동안 교회에 수고를 했고 공로가 있기 때문에 예우를 해 드린다는 것이 전부이고 법적으로는 교회 법이 은퇴를 하면 모든 권한을 중지 시킵니다. 물론 어느 군소 교단이나 특수한 교회는 자체 법을 따로 만들어 원로의 권한을 법적으로 확보를 해 두기도 합니다.


문제는 교회는 그 법이 어떤 법이든 상관 없이 교인이 싫으면 길이 없습니다. 교인이 싫어 하는데 법과 제도로 권리를 행사하려 들면 교인은 시험에 들 것이고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공회는 법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는 대통령이 싫고말고를 떠나 일단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 경찰 검찰 국세청 군대를 동원해서 반대하는 사람을 잡아 족치면 항복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습니다. 교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습니다. 장로님이 불국사나 선암사 절로 가버리면 경찰을 보내서 압송을 하겠습니까?


타 교단은 법과 제도를 먼저 만들어 놓고 집행을 합니다. 그래서 원로 목사라는 호칭도 법과 제도에 의하여 결정하고 예우를 해 드리는 대신, 원로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후임이 자기 권한을 이용해서 원로를 눌러 버리거나 쫓아 낼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이 물 밑에서 싸우게 되면 교회는 엉망이 되는데 한국 교회의 원로가 있는 교회에 이런 문제는 아주 허다합니다. 마치 한국의 가정마다 시어머니 며느리 문제가 없는 곳이 없는 것처럼 교회도 원로와 후임의 관계는 거의 그렇습니다.


공회는 개별 교회가 원로 제도를 만들어서 시행하는 곳도 있는 듯한데, 일반적으로는 아직 없습니다. 없는 것이 좋습니다. 원로든 뭐든 제도로 설치를 하게 되면 우선은 좋은데 수도 없는 상황이 발생할 때 제도가 들어서 교회의 좋은 길을 거의 다 막게 됩니다. 따라서 되든 안 되든 법 없이 그냥 배운 말씀과 양심을 가지고 조금 살펴 보면 좋겠습니다.


4. 예를 들면

세 살 먹은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후임이 원로의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할 수 있는 대로는 일단 대화를 해서 잘 설득해 봐야 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기도하고 맡길 뿐입니다. 이미 은퇴를 한 이상 자기는 그 교회에 대한 직접 책임은 없습니다. 책임 문제를 거론하기 전에 은퇴를 해야 하는 데까지 이른 자신은 이미 하나님 앞에 그 교회에 대한 능력을 잃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눈에 보이는 것이 있으니 말은 해야 합니다. 말을 하되 후임에게 직접 권해 보는 것으로 그쳐야 합니다. 그 이상으로 행동하면 간섭이 됩니다. 간섭은 성경이 죄로 규정해 놓았습니다. 이 것은 가정의 부모도 나이 든 자식에게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반대로, 후임은 만사에 스스로 원로를 찾아 묻고 배우고 살핀다면 자기 복입니다. 다만 무조건 원로 시키는 대로는 할 수 없습니다. 미리 원로에게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최대한 배우고 싶으나 어떤 것은 배운 대로 순종할 수가 없는 경우도 있을 터이니 이해를 해 주시라고. 후임은 하고 싶으나 교인들을 그렇게 이끌 힘이 없으면 늦어 질 수도 있는 것이고 원로의 생각에 후임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양해를 구한 다음 원로를 자주 찾을수록 잘 배울수록 후임에게는 그가 가 보지 못한 다른 세계를 미리 확인 할 수 있으니 비록 잘 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큰 일을 내거나 실수하는 일은 대부분 막을 수 있습니다.


5. 그래서

원로는 은퇴 한 이상 후임이나 교인들의 눈에 원로의 역할이나 활동이 아주 사라 지고

후임은 사라 진 원로를 늘 찾아 배우고 순종하려 하여 마치 원로가 계속 목회하듯 하고

교인들은 후임을 부모처럼 원로를 조상처럼 함께 잘 모시게 된다면


원로가 혼자 현직을 목회할 때보다, 후임이 생긴 이후 교회는 더욱 발전하고 좋아 져야 자연스런 일입니다. 원로는 은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기의 부족 때문입니다. 그러나 후임 때문에 원로는 자기 혼자 감당하지 못한 것을 비로소 감당하게 되고, 남들이 보면 사라 져 없어 졌는데 모두에게 은혜롭게 된다면 좋습니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것이 타락 한 후부터 하나님과 맞서는 '자기 중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 주관 자기 중심 자기 이익을 위해서 죽을 때까지 본능적으로 방어에 나서고 때로는 선제 공격까지 하기 때문에 원로가 있는 교회가 평안을 갖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특히 땅이 좁고 외침이 많은 우리의 민족성은 원로와 후임의 좋은 관계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신앙이라는 것은 그 정도의 옛사람을 넘어 서지 않고는 조금도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생각 하나만 바꾸면 아주 쉬운 일이고 모두에게 좋은 일인데, 생각 하나를 바꾸지 못해서 모두에게 고통입니다. 현재 우리는 어느 날 생각하지 못한 초고령 사회를 살고 있으며 이 때문에 교회마다 어느 날 원로 문제는 급증하고 있습니다.


6. 이제 교계의 전체 분위기에 맞서 한 말씀을 드립니다.

답변자는 목회할 자녀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씀 드립니다. 한국 상황에서는 원로 문제를 세습으로 풀어야 합니다. 세습이라 하여 다 좋은 것은 아니나 적어도 한국의 우리 민족성이 옛사람으로 깔려 있고 이 것을 하루 아침에 개조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교회를 잘 이끌어 왔던 교회가 후임을 역시 좋게 만나는 것은 거의 어렵고, 원로가 후임을 잘 끌어야 하는데 남의 자식이 되면 이차 함수처럼 삼차 제곱 함수처럼 고등 수학 풀기보다 어렵게 꼬여 버립니다. 차라리 아버지가 자식을 후임으로 세우면 적어도 제 자식에게 교회를 착취하는 법을 가르칠 목회자는 적고 대부분 제 자식은 제대로 된 목회자를 만들이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그 자식도 직장 잡기 어려운데 좋은 교회를 만든 아버지가 원로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또 아버지기 때문에 비교적 이해 충돌의 대결 상태로 보지 않고 선의로 상대합니다.


충현교회는 극단적인 경우지만, 일반적으로 부모 자식으로 이어 진 교회들은 무난합니다. 최선이라는 말은 아니니 반론은 삼가시기 바랍니다. 차선으로서 다른 안보다는 조금 낫다는 것입니다. 일단 공회의 경우는 거의 다 성공적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좀 좋은 면이 있다 싶으니 한국교회를 삼키고 싶은 귀신들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아들이 목회를 잇기만 하면 무조건 평양과 같은 짓이라고 생 난리를 하는데, 그 난리를 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꼭 닮은 점은 평양의 김씨 세습은 옹호한다는 점입니다.


백영희 목사님은 1982년에 편찮게 되고 임종을 고려해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후임자로 막내 딸 부부를 기도 중에 확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자녀가 먼저 돌아 가시는 바람에 후임이 되지는 못했지만 후임이 되었다면 총공회는 정말 오늘 모습과는 너무 다른 굉장한 공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이 모양은 아니었을 것이고 어느 정도 좋은 모습을 유지했을 것입니다. 총공회의 성공 사례 하나 때문에 모든 교회들의 후임은 원로의 자녀가 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초등학교 1학년을 다시 다녀 보시기를 권합니다. 자녀가 잘 이었다고 모든 교회에 다 좋은 것이 아니며, 다른 교회들이 다 실패를 했다고 자기 교회까지도 실패한다는 논리는 비과학적이며 독선적인 주장입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우리의 약점과 단점과 부족점 때문에 한 교회를 비약적으로 발전 시켰거나 특별하게 목회를 잘한 목회자가 있는 교회라면, 그리고 그 목회자가 아들을 후임으로 기른다면, 한국 교회로서는 전체 교회가 잘 지켜 봐 주고 협조하면 차선이 될 수 있다는 일반론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 일반교인 님이 쓰신 내용 <<

:

: 어떤 한교회의 목사님이 오랜기간 그 교회를 아주 성경적으로 그리고 권위있게 교육 및 양육을 한 후 원로목사님이 되었다는 가정하에....

:

: 그 교회에 젊은 약간의 경험도 부족한 목사님께서 부임하셨다는 전제하에 문의드리려 합니다.

:

: 물론 상기 내용은 본교회의 내용도 아니며 타교회의 내용도 아닌 단순히 궁금함에 의하여 문의드리는 것이오니 괜한 질문의 내용으로 억측이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 원로목사님을 모시던 많은 교인들은 목사님의 교훈을 좋아 할 수 있습니다.

: 교회의 모든 행정과 지도도 원로목사님의 의중을 더 묻고 그에 따라 행동을 취할 수도 있을것입니다.

: 이렇다면 교회의 모든 치리들이 담임목사를 무시한 처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물론 젊으신 담임목사님은 원로목사님께 이것저것 상의하여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과연 원로목사님의 교회에서의 역할은 어디까지가 적정한 것일까요?

: 원로목사님은 당회의 일원이 되기도 하는 것인지요?

:

: 제직회에서 결의된 것을 혹 원로목사님이 그 결의된 것을 뒤집을 수도 있는 것인지요?

:

: 총공회에서의 원로목사의 위치는 어떤것인지 궁금합니다.
원로목사의 교회에서의 역활
어떤 한교회의 목사님이 오랜기간 그 교회를 아주 성경적으로 그리고 권위있게 교육 및 양육을 한 후 원로목사님이 되었다는 가정하에....


그 교회에 젊은 약간의 경험도 부족한 목사님께서 부임하셨다는 전제하에 문의드리려 합니다.


물론 상기 내용은 본교회의 내용도 아니며 타교회의 내용도 아닌 단순히 궁금함에 의하여 문의드리는 것이오니 괜한 질문의 내용으로 억측이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원로목사님을 모시던 많은 교인들은 목사님의 교훈을 좋아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모든 행정과 지도도 원로목사님의 의중을 더 묻고 그에 따라 행동을 취할 수도 있을것입니다.

이렇다면 교회의 모든 치리들이 담임목사를 무시한 처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젊으신 담임목사님은 원로목사님께 이것저것 상의하여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원로목사님의 교회에서의 역할은 어디까지가 적정한 것일까요?

원로목사님은 당회의 일원이 되기도 하는 것인지요?


제직회에서 결의된 것을 혹 원로목사님이 그 결의된 것을 뒤집을 수도 있는 것인지요?


총공회에서의 원로목사의 위치는 어떤것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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