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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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합니다 9 0

1.천년왕국에 대해 칼빈은 무천년설을 주장했다고 하는데 정말인가요?


2.공회는 성경대로 재림 후 천년왕국이 임하는 것을 받아들인다고 알고 있는데 이는 일반신학에서 전천년설인가요, 후천년설인가요? 


3.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역사적 전천년설은 무엇인가요?


4.저는 개인적으로 재림 후 천년왕국이 임할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회 안에도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칼빈도 그러하다며. 이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 주면 좋을까요?


미리 감사드립니다.

궁금합니다 2024.02.18 17:12  
개혁주의 교회는 종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한국교회가 이 사회로부터 무시와 조롱 그리고 냉대를 당하게 된 결정적 배경에는 이단(Heresy)인 다미선교회의 ‘휴거’ 소동을 일으킨 사건(1992년 10월 28일)으로 한국교회에 깊게 자리 잡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 비극이다.

그런데 이러한 종말의 신학적, 사회적 문제는 그 당시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ing) 중이기에 인터넷과 유튜브의 동영상을 보면 쉽게 찾아 읽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아직도 이러한 거짓 신학 사상에 놀아나고 주장하는 목사들과 신자들이 많은 것에 한국교회는 신학적 반성이 필요하고 특히 개혁주의 교회를 추구하면서 비성경적이고 비신학적인 ‘휴거’를 주장한다면 반드시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간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개혁주의 역사(장 칼뱅, 헤르만 바빙크, 앤서니 후크마가 가장 대표적 인물)는 ‘무천년설’이고 오늘날 다수의 교파들(정교회, 천주교회, 성공회, 루터교회, 유럽의 개혁교회 또는 미국의 장로교회, 감리교회)도 ‘무천년설’이다.

그리고 한국장로교회를 대표하는 교단들인 예장통합, 예장합신, 예장백석의 공식적인 종말론 입장이 ‘무천년설’이고 이 교단들의 신학교인 장로회신학대학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은 종말론을 ‘무천년설’로 가르치지만 한심하게도 이 신학교 출신들 중에 종말론 세미나 강사로 활동하면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휴거’를 주장하는 목사들이 상당수가 있고 따르는 목사와 신학생도 많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한국장로교회의 보수 교단인 예장합동과 예장고신은 무천년설, 전천년설, 후천년설이 혼재되어 있고 보수신학의 거장이었던 죽산과 정암이 ‘역사적 전천년설’을 주장한 것이 오늘날 한국장로교회에 큰 영향력을 주었다.

이러한 비참한 현실에서 몇 년 전에 예장고신의 출판국에서 출판한 ‘평신도를 위한 요한계시록 공과(2010년)’를 무천년설 입장에서 나온 것은 환영할 일로 한국장로교회는 거짓된 종말론 바이러스에서 치유되어 ‘천년왕국론’이 여러 입장 중 하나로 ‘무천년설’이 아니라 ‘무천년설’이 성경적, 역사적, 개혁주의 입장인 것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가르쳐야 할 사명이 신학자와 목회자들에게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천년설’의 중요성을 잘 알기 위해서 앤서니 후크마가 작성한 ‘개혁주의 종말론(부흥과개혁사)’이 바른 책이고 신약학자 최갑종은 ‘무천년설’에 대해서 “오리겐, 어거스틴, 칼빈, 카이퍼, 바빙크, 벌코프 등의 뒤를 이은 무천년설 주장자들은, 요한계시록 20장에 나타나는 『천년』을 예수님의 초림으로부터 재림까지의 기간을 가리키는 일종의 상징적이고 영적인 숫자로 해석하며, 천년왕국을 예수님의 재림 후에 이 땅에 펼쳐질 지상적인 왕국으로 보기보다, 오히려 예수님의 초림, 십자가와 부활, 승천 등을 통하여 죄와 사탄의 세력을 근본적으로 멸하시고, 만유의 『주』로서 높아지신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교회와 온 세상을 다스리는 구속사적이며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로 본다. 그리고 장차 예수님이 재림할 때까지 사탄의 세력이 완전히 격파당하고, 신자와 불신자의 시간적 간격 없이 그 때 모든 죽은 자들이 일시에 부활하게 되며, 이어 이들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과 구원을 결정하고 그런 다음 영원한 신천지가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입장인 ‘무천년설’이 매우 성경적이고 정통적 기독교 역사로 믿는 자가 진정한 개혁주의자(칼빈주의자)라 할 수 있기에 개혁주의 시초인 칼뱅은 자신의 강요 3권 25장 5절에서 “천년왕국이라는 별개의 기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통치기간으로 간주”라 하였고 오늘날 다수의 요한계시록 전공자들도 ‘무천년설’을 주장한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가르침이다.

그리고 이 용어는 천년왕국이 없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기에 성경적 상담학자로 유명한 제이 아담스는 자신의 책인 The Time Is at Hand에서 제안하기를 ‘실현된 천년설(Realized Millennialism)’로 대치할 것을 주장하였고 이 용어는 후크마도 인용하였고 개혁주의가 권장해야 할 용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0장에 6번 나오는 ‘천년’이라는 말에 근거해서 나온 ‘천년왕국론(Millenium)’은 신학의 본질(삼위일체론, 구원론, 성경론)은 아니지만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 입장에 따라 성경해석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고 현실적으로 이단 시비도 결정적으로 종말론의 문제였음을 알아야 하고 현대의 이단들이 종말론이라는 배경에서 나온 것을 본다면 무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믿는 찬송가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265장)”를 부르고 가사인 “주 예수의 나라 이땅에 곧 오겠네 오겠네”라는 표현은 바른 종말론(무천년설)을 전해 주지만 찬송가 “하나님의 나팔소리(168장)”는 가사 중에 “주의 택한 모든 성도 구름 타고 올라가 공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는 잘못된 찬양으로 절대 부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신약학자로 유명한 F.F. 브루스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의 “우리가 항상 주님과 함께 있을 것(새번역성경)”이라 하는데 이는 ‘공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 축복의 절정을 나타내는 것이기에 ‘휴거’를 주장하는 자들이 얼마나 이 본문을 잘 못 알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다시 강조하지만 개혁주의(사실상 칼빈주의)와 기독교 역사 그리고 다수 교파의 공식적인 종말론인 ‘무천년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개혁주의가 아니고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간판을 사용하지 말고 목회자들은 교회에서 그동안 오염된 종말론을 정화하기 위해서 ‘무천년설’을 공부하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 즉 교회는 시작부터가 ‘종말론적 신앙 공동체’로 시작한 사실이 중요하기에 바른 종말 이해가 너무 중요하고 종말론은 전천년설이나 후천년설처럼 ‘복잡’할수록 문제가 생기고 무천년설과 같이 ‘간단’할수록 정답이라는 것이다.

링크 :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661


이 글에 대해 틀린 점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외부 2024.02.18 19:08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Goodfaith 는 능동적순종을 부정하는 정이철씨가 운영하는 곳입니다.
저는 저곳은 시험들까봐 쳐다보지도 않는 곳입니다. 정통신학쪽에서도 꺼려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순종은 예수님의 대속의 50%인데..이걸 부정하는 노선과 저는 대화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너무 혼탁하게 느껴져서, 저는 시험들까봐 쳐다보지도 않고,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올라오면 빨리 삭적해 버립니다.
연구 2024.02.19 09:28  
정이철? 이 쪽을 최근에 이름을 들었고 몇 가지 글을 접해 봤습니다.
어떤 주제든 최대한 고함을 질러 놓고 마구 단정을 해 놓고 보는 곳으로 읽혔습니다. 알고 보면 1백 년 전의 한국교회가 건전했을 때 배운 이들의 아류일 뿐인데 마치 아닌 것처럼 또는 새로운 것을 주장하는 것처럼 만사 주장이 그러했습니다. 새로운 곳이 많아 지고 인물도 많아 지는데 이럴 때는 그들의 말을 따라 가지 말고, 어느 교단 어느 교회에서 어떻게 걸어 왔는지를 살피면 아주 쉽게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평생에 한글 전용을 주장한 분이 어느 날 한자 혼용을 주장하면 이 분의 주장과 별도로 이 분이 왜 입장을 바꿨는지 파악하기 전까지는 이 분의 주장에 빠져 드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돈이 배경인가? 전향을 한 것인가? 전향을 했다면 정말 전향을 하기는 했는가... 개혁주의의 기치를 꺼내들고 소리를 높이는 곳에게 이 곳이 늘 궁금한 이야기입니다. 박윤선처럼 진실 되이 한 걸음으로 나름 걸어 간 분들의 주장은 파악도 쉽고, 혹시 오류가 있다면 살펴 볼 가치라도 있습니다. 오락가락만 한 분의 오류를 붙들고 연구하다 그 분이 입장을 또 바꾸면? 오락가락만 하는 분이 옳은 말을 하다가 자고 나서 또 다른 소리를 하면? 지금 현재 교계의 거의 모든 논란에 나선 이들의 거의 전부가 그렇습니다.
담당 10 2024.02.18 21:37  
1. 일반적으로 칼빈이 무천년설을 주장했다고 말을 합니다. 흔히 그런 줄 아는데, 실제로 칼빈이 "무천년설"을 직접 주장했다거나, 그러한 근거가 되는 문헌이 확실히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신학과 교리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는 항상 시대적 상황을 항상 살펴보아야 오해가 없습니다.

루터와 칼빈 당시, 카톨릭의 종말론은 연옥설과 공로구원이었습니다. 연옥설이란, 천국과 지옥 사이에 연옥이라는 곳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신앙이 애매한 사람들이 연옥에 들어가게 되며, 부족한 공로를 채우고 나면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공로를 채우는 일을 돕기 위하여, 후손들이 기도를 하거나, 면죄부를 사는데 힘쓰기도 했습니다.
공로구원이란, 자기 공로로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톨릭은 선행을 강조하는데, 그 모든 것이
구원받기 위한 행위입니다.

루터나 칼빈과 같은 당시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카톨릭의 종말론에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은혜구원, 십자가의 공로에 대해서 강조했습니다. 당시는 천년왕국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던 시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비교적 그런 논의는 불분명하였고, 구원론에 대한 논의가 강조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니 현재의 신앙, 현재의 은혜, 현재의 공로에 대한 논쟁들 속에 후대의 사람들이 "루터 칼빈은 무천년설이다"정도로 이해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실제로 천년왕국에 대한 기록이 있는 요한계시록에 대하여, 칼빈의 주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칼빈의 정확한 견해는 알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2. 공회의 종말론에 대해서는 이전 답변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해당 답변은 다른 담당께서 링크로 안내해주시거나, 따로 설명해주실 것입니다.


3. 두 가지 모두 천년왕국 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습니다. 차이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 예수 그리스도께서 7년 환란 전에 공중 재림하셔서 믿는 자들을 데려가신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대 환란 이후 그리스도께서 지상 재림하셔서 천년왕국을 다스린다고 믿습니다.

- 역사적 전천년설 : 7년 환란 후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께서 천년동안 다스릴 것인데, 아직 최후의 심판 전이기 때문에 성도와 불신자가 함께 존재합니다.


4. 신앙은 신비의 영역입니다. 우리에게 알려주신 만큼만 알 수 있습니다. 보는 측면에 따라, 전천년도, 후천년도, 무천년도 모두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성경이 알려주신 만큼만 생각하고 오늘의 신앙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칼빈이라는 시대적인 인물이 요한계시록 주석을 쓰지 않았고, 종말론에 대한 분명한 견해 없이 생을 마감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여기에 대한 오해 때문에 후대의 신학자들은 종말론에 대해 지금까지도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신학"이라는 학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성경을 연구할 때, "신앙"이 "신학"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칼빈을 단순히 뛰어난 신학자 정도로 알고 있는데, 사실 그는 뜨거운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 해석에 있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만큼만 말하고, 하나님이 멈추시는 곳에는 나도 멈추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주석, 설교, 저서를 보면 그의 신앙이 드러납니다.

칼빈의 견해에 대해서는 "1번 답변"에서 말씀드린 바 있고, 공회의 입장은 "2번 답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궁금합니다 2024.02.19 00:07  
칼뱅은 자신의 강요 3권 25장 5절에서 “천년왕국이라는 별개의 기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통치기간으로 간주”라 하였다.

윗글에 이 말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궁금합니다 2024.02.19 00:13  
칼빈에게 종말론이 있는가?(칼빈의 종말론, 우리의 종말론)
[기독교보 2009-06-09 23:21:32]조회 : 54

칼빈출생 500주년 신학포럼 지상중계 (5)

 

한국의 종말론에서 과거에는 전천년설적인 해석이 우세하였지만 근래에 이르러서는 무천년설이 강력하게 대두됨으로써 신학도들이 매우 혼란스러워 한다. 이때에 칼빈의 종말사상을 통하여 우리의 종말론이 어떠해야할지를 가름해 보기로 하자.

 

칼빈은 계시록 주석을 쓰지 않았으며, 기독교 강요에서 종말론을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다른 종말적 구절들에서 어떻게 해석하였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그의 종말론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한정건 교수 / 구약학

 

1. 천년왕국에 대한 개요(계 20장)

 

요한계시록 20장에 나타나는 천년왕국 구절은 용이 잡혀 천년동안 무저갱에 감금당하며, 그 기간동안 죽은 성도가 살아서(이것을 첫째 부활이라고 함)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한다. 천년 후에는 그 용이 놓여 세상을 미혹하여 곡과 마곡의 전쟁을 일으킨다. 백보좌에 앉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심판할 때에 죽은 자들이 모두 살아나 함께 영원한 불 못에 던지운다(이를 둘째 사망이라 부름).

 

무천년기설은 이 천년기간은 상징적인 숫자이며,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전기간동안에 있는 상황으로 본다. 후천년설(천년왕국 후에 재림)은 교회시대 어느 시점에 땅위에 평화가 건설된다고 본다. 전천년설(천년왕국 전에 재림)은 재림 후에 이 세상에 천년왕국이 있을 것으로 본다. 그 왕국에 참여하는 사람은 첫째, 부활한 성도(왕으로 통치함)이며, 둘째 세상 나라(통치받는 사람 그리고 나중에 사탄의 미혹으로 배반하는 사람이 있어야 함)이다. 오늘날 후천년설을 지지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따라서 전천년설과 무천년설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성경적이며, 칼빈은 어느 것을 지지하는지 살펴보자.

 

 


2. 천년왕국에 연관된 구약의 구절들

 

⑴ 사 2:1-5: 메시아의 통치권이 전 세계에 미치며, 열방이 시온에 순례오고, 나라 사이는 전쟁이 없는 평화가 이루어지며, 풍족한 소산을 누린다(미가 4:5을 근거로 하여). 무천년설은 예수님 초림적인 사건, 전천년설은 재림 이후의 천년왕국 모습으로 본다. 칼빈은 이것은 우리시대(교회)로 볼 수 없으며, 예수님의 재림 때에 완전한 통치와 평화가 있을 것으로 주장한다.

 

⑵ 사 11:6-9: 짐승과 짐승 사이, 그리고 짐승과 사람 사이의 평화가 깃들고, 거기는 해됨과 상함이 없고,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할 것이다. 무천년설은 대체로 교회시대에 영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며, 전천년설은 재림 후 만물의 회복(천년왕국적 모습)으로 본다. 칼빈은 재림이후의 자연의 완전한 회복으로 본다.

 

⑶ 사 60장: ‘너’라고 불리는 시온 성에 각 나라 왕들이 자기의 특산품들을 가지고 와서 섬긴다. 그 도성은 해와 달이 필요 없으니 하나님이 친히 빛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슬픔과 고통도 없다(60:19-20; 계 21:23과 같은 묘사임). 무천년설은 현재 교회의 모습으로, 전천년설 재림 이후의 새예루살렘, 특히 천년왕국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칼빈은 현 교회로는 볼 수 없으며, 미래의 회복된 교회의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문제의 핵심은 과연 미래의 회복된 새예루살렘에 세속적인 왕들이 존재할 수 있느냐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21장의 그 새예루살렘에도 왕들이 보물들을 가지고 성으로 몰려오는 모습이 꼭 같이 그려져 있다(계 21:24-26).

 

⑷ 사 65:16-25: 세상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하고, 모든 환란이 없으며, 온 세상엔 하나님 종교밖에 없다. 전쟁이 없는 평화와 풍족한 소산이 있으며, 짐승의 세계까지 평화가 깃든다. 그런데 그곳에 사람이 오래 산다(100살에 죽은 자가 어린아이로 간주됨). 무천년설은 교회의 모습으로 보며, 전천년설은 재림 이후의 천년왕국으로 본다(계 20장의 천년왕국 동안에 죽음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음, 계 21:5). 칼빈은 현 교회의 모습일 수 없으며, 미래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회복될 세상이라고 주장한다.

 

이상의 모든 구절에서 칼빈은 무천년설 쪽을 한 곳에서도 지지하지 않는다. 모두 재림 이후의 모습으로 보며, 따라서 전천년설의 주장과 거의 일치한다.

 


3. 다니엘서의 전쟁과 성도의 환란에 관한 구절들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니엘서와 그 외에 유사한 종말적 전쟁의 구절들을 세상 마지막 때에 있을 대전쟁과 적그리스도에 의한 성도들의 환란으로 보지 않고 교회시대 전반에 있을 전쟁, 혹은 교회가 영적으로 사탄과 싸우는 투쟁으로 본다. 그러나 칼빈은 다니엘서 구절들을 지나칠 정도로 문자적-역사적으로 해석한다. 다니엘 2장의 신상이 파괴되는 것을 로마 나라의 멸망과 세상 마지막 때에 있을 세상의 심판으로 본다(무천년설은 예수님의 초림적 사건으로 해석함).

 

다니엘 7장에서 넷째 짐승은 로마제국이며, 열 뿔은 로마 제국의 원로회, 그리고 작은 뿔은 시저와 그 뒤를 잇는 황제들로 본다(기독교강요에서는 다니엘 7장 25절의 적그리스도를 로마 교황으로 단정함). 다니엘 11장 41절-12장 13절의 구절도 ‘그 왕’을 로마 원로원(집단 지도체제)으로 해석하고, 로마에 의해 성도들에게 환란이 있을 것으로 해석한다(단지 같은 묘사가 있는 다니엘 9장 27절은 예수님 초림으로 봄. 이와 관련이 있는 마 24장 15절 이하의 구절도 로마 재림 직전에 있을 적그리스도에 의한 성도들의 대환란으로 본다.

 

이상의 그의 성경해석원리를 볼 때에 칼빈이 계시록을 주석했으면 분명히 당시 혹은 세상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의 역할과 성도들의 환란으로 해석했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의 해석은 무천년설과 거리가 멀다.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계시록 전체에 있는 전쟁과 성도들의 환란을 교회 전기간 동안 있는 일반적인 전쟁 혹은 교회와 사탄의 영적인 투쟁으로 본다(어떤 사람은 주전 70년 사건으로 한정짓기도 함). 이것은 천년왕국과 더불어 계시록과 그와 연관이 있는 다른 모든 성경 구절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원리를 취한 것이다. 반면 전천년설은 철저하게 역사적으로 해석하여, 실제 그런 전쟁과 환란이 마지막 때에 있을 것으로 본다.

 

칼빈은 성경을 철저하게 문자적-역사적(literal- historical interpretation)으로 해석하였다. 그는 선지서들의 예언을 영해하는 것을 극히 경계했다. 그러한 그의 해석원리는 무천년설과 거기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종말론도 이런 해석원리위에 세워져야 한다.

링크 : https://kirs.kr/index.php?document_srl=6442

고신의 개혁주의 학술원에 있는 글입니다. 여기서  칼빈은 전천년설을 주장했다고 나옵니다.
궁금합니다 2024.02.19 00:19  
이 글로 보면 칼빈은 역사적 전천년설을 믿고 있었다 볼 수 있을까요?
궁금합니다 2024.02.19 00:26  
어떤 이들은 전천년설이나 무천년설이나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하기도 하지만 전천년설을 믿거나 무천년설을 믿으므로 우리 신앙의 자세가 달라질 부분이 있을까요? 이 부분이 제일 궁금합니다.
담당 2024.02.19 09:21  
(신앙 세계에서 상식)
학자란, 자기 혼자 무슨 소리든지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학자의 숫자만큼 학설이 나옵니다. 세상 것도 그렇고 신앙의 세계에서도 사람마다 자기 생각으로 말을 하기 때문에 학설은 한이 없습니다. 앞에 사람이 말한 것에 뒷 사람이 발전을 시키는 수도 있지만 적당히 섞어서 제3의 것처럼 만들어 가며 한도 없는 주장들이 난무합니다. 이런 주장들을 모두 살펴 보고 그리고 자기 말을 더해 보겠다는 것이 학문의 세계이며 학자라 하며 박사란 그런 자격 비슷한 것입니다. 학교마다 학과마다 교수마다 다 다르니, 성경 하나 외에는 대충 흐름만 보고 마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세상 살아 가는 데도 좋고 신앙에도 좋습니다. 빠져 들면 헤어 나지 못합니다. 공회 노선 외에는 아마 거의 모든 교회들조차 '학문'의 세계에 매료 되고 또 강조를 합니다. 이 곳만은 아주 무식하게 그런 세계를 줄여 버리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이 곳의 이런 입장도 또 하나의 학문이며 주장이라고 비판하면?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이 곳의 주장은 아마 다른 곳의 주장과는 차원이 다를 듯합니다.


(칼빈의 주장)
성경은 우리 모두 알 듯이 하나뿐입니다. 필사 과정에 오류가 있다고 시비를 하지만 너무 전문적 분야이고 성경을 부인하는 쪽의 주장이니 폐일언하고, 우리는 일점일획도 가감이 없다고 믿습니다. 그런 곳을 교회라 합니다. 성경은 일점일획도 가감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성경의 단 한 곳도 예외 없이 읽는 이들마다 가르치는 이들마다 모두가 다르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파가 이렇게 많고 신학의 세계에서만 놓고 봐도 학설과 저서와 주장이 많아서 이제는 파악조차 어렵습니다. 사실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많기는 많지만 파악 자체가 어렵거나 불가능하지는 않았습니다. 기록으로 남겨진 사례가 아주 적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망할 ㄴ의 20세기가 온 세상을 모든 면으로 활짝 열어 젖혀 소위 '자유'라는 것을 풀어 놓게 되자 인류 역사 그들의 말로 수백 만 년에 발전하며 자란 것을 며칠 만에 또는 몇 년만에 발전을 시키면서 종류도 깊이도 또 차원도 너무 높게 많게 등장을 하게 되자 인간이 이제는 감조차 잡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인류 역사 수백 만년에 인간의 속도는 마속 = 말의 속도가 제일 빨랐습니다. 기관차의 초기에 말이 따라 잡아 열차 강도가 흔했습니다. 1백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기관차가 매년 속도를 거듭하다 이제 빛의 속도를 논하게 되었습니다. 마하의 속도까지는 감을 잡지만 그 이상이 되면 갑자기 우리의 생각과 계산과 감이 정전이 되어 뒤섞여 버립니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고 학교의 숫자, 학문과 학설과 박사와 교수의 숫자도 풀릴 대로 풀린 상태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이 무한이라 할 만한 세계를 인간에게 풀어 놓았고 휴대폰이 들어서 이제 각자의 손바닥과 눈에 세계의 한없는 정보와 주장이 무저갱을 열었습니다.

칼빈의 주장은 무엇이었는가?
'궁금하신 분'의 글을 읽으며 진정으로 저도 궁금해서 확인부터 하려 했던 날들이 생생합니다. 같은 입장 같은 절박함을 수도 없이 가졌던 시절의 저를 향해 오늘의 제가 설명하며 방향을 잡아 드리고 있으니 지켜 보시면서 이 글을 야단 친다거나 반박한다거나 밀쳐 낸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참고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칼빈'이 궁금한 분들은 오늘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 있고 특히 우리 나라에 제일 많다는 것은 너무 반가운 일입니다. 정말 제대로 믿어 보려는 사람들이라면 칼빈을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단 칼빈이 직접 말한 것을 먼저 확인하고 싶을 수밖에 없습니다. 공회에 철저한 분들은 '백영희의 가르친 표현'을 일차 확인부터 하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백영희가 천년왕국을 어떻게 말을 했느냐, 공회마다 공회 교회들마다 목회자들마다 모두들 이런저런 말을 하고 있지만 이 곳의 탄식은 제대로 말하는 경우를 아직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5천개 설교가 녹음으로 있고 녹취 타이핑으로 있어서 천년왕국을 검색하면 '주님이 오시면 세상이 끝나고, 이어 1천년 죄 없는 지상낙원'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 1차 표현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1차 확인은 녹음 녹취 기록 때문에 공회 안에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세계로 나가기 시작하면 지금 시작도 하지 않은 정도입니다. 칼빈의 경우는 남겨진 글들이 책으로 모아 출간 되었습니다. 1차 자료는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고 '담당10'의 성함은 연구소가 보수 신학계의 출간 된 책이나 자료를 확인해 드릴 때 공인할 만큼 실력이 있고 정확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칼빈이 평생 가르친 것은 다른 신학자에 비해서는 그 분량이 엄청나게 많고 중요하고 체계화가 되어 있으나, 그 것이 그렇게 명확했더라면 장로교를 반대하는 감리교만 존재했을 것입니다. 칼빈주의를 반대하면 알미니안의 감리교라 합니다. 칼빈을 추종해야 장로교입니다. 그런데 장로교 안에 칼빈의 입장을 두고 엇갈리는 주장이 그렇게 많습니다. 그렇게 많을 필요가 없는데 자꾸 말을 뗐다 붙이면서 복잡하게 만들고 급기야 A라는 학자가 자기가 한 말을 과연 기억이나 하는지 모를 만큼 세월 속에 또 다른 사람과 논쟁 속에 A의 입장조차 분화가 되며 몇 가지인지 모를 만큼 되어 버립니다. 이 곳이 가장 중점에 두고 있는 '삼분론'과 '중생론'과 '구원론'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일반 학설들을 파악하는 편인데 그런 몇 가지만 가지고 살펴 봐도 자기 학설을 유지하는 인간도 없고, 학설을 바꿀 때는 과거 발언을 자기가 일일이 지목하고 가짜라고 상표를 표시하든 틀린 부분을 고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말아야 하는데 앞만 보고 계속 말만 쏟아 내버리고 있으나 한 사람의 학설조차 인터넷에 들어 갔다 퍼져 나가고 인용 재활용이 되면서 그 사람의 한 가지 교리에 대해 주장이 종잡지도 못할 정도입니다.

칼빈은 5백 년 전에 자기 생전의 기록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습니다. 그러나 강조와 분량 때문에 제목만 남기고 간 부분도 있고 당시의 필요 때문에 오늘 우리가 보면 한 분야를 너무 많이 설명했고 우리에게는 말을 줄였으면 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그런데 당시를 감당한 칼빈은 당시에 필요해서 적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삼위일체를 모르고 죽었습니다. 삼위일체를 몰랐겠습니까? 주후 325년에 삼위일체라는 표현을 확정하고 이후 그 교리 표현을 우리가 상식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주후 325년에 확정할 그 교리의 이름을 몰랐고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삼위일체라는 공용 언어를 몰랐던 것이지 우리가 말하는 삼위일체의 실체는 역사 이후에 누가 바울만큼 알겠습니까? 바울이 당대를 위해 가르쳤고 오늘 우리를 위해 성경으로 남겨 놓은 것, 이 것에 어거스틴이 자기 당대를 위해 설명을 했고 1천년이 지나 칼빈이 또 그 당대를 위해 할 말을 다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2024년의 우리는 오늘을 맞서며 믿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역사 2천년의 교리가 차곡차곡 쌓여 가면서 교리의 끝없는 정보 위에서 우리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칼빈이 무슨 말을 했는가?
칼빈이 기본구원만 말을 했고 건설구원은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칼빈의 글을 제대로 읽어 보면 이 분이 모르는 것은 없었다 보입니다. 다만 자기가 더 강조한 것이 있고, 자기가 후배에게 남겨 둔 것이 있어서 마치 건설구원은 말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칼빈이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교리를 모르고 죽은 것처럼 말하고 또 그런 주장을 틀렸다고 가르쳤다는 말까지 하는데 비록 다 아는 것은 아니나 교리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은 그 분이 알고 갔습니다. 요약하면 '칼빈이 말한 것'은 '담당10'의 설명 정도가 이 곳에서 안내할 수 있는 정도이고, 아마 그 안내 정도면 더 이상 찾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충분할 듯합니다. '담당10'의 안내를 넘어 서려고 칼빈 관련 자료를 찾아 나서는 순간 그 누구든 광화문 네거리에서 길을 찾으러 출발한 유치원생 정도가 아닐까?


'담당10'께서 칼빈은 천년왕국에 대해 명확하게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칼빈학자들 사이에 천년왕국에 대해 별별 주장이 많을까? 칼빈이 후배들에게 남겨 놓은 빈 곳을 각자 채우다 보니 빈 종이에 그린 그림이 서로 다를 뿐입니다. 그렇다 해도 칼빈의 다른 면을 잘 알기 때문에 칼빈의 큰 울타리 안에서 그리지 그 울타리를 넘어 가지는 않을 듯합니다.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는 박윤선 등이 거친 곳이어서 한국의 보수 교계에서만은 세계 최고의 신학교처럼 되어 있는데 정작 미국에서는 그 학교 이름조차 모르는 교인이 대부분입니다. 어쨌든 한국 교계라는 좁은 우물에 사는 우리 기준으로 이 학교가 천년왕국은 없다.. 무천년설을 주장합니다. 이들이 칼빈을 쉽게 생각하고 그럴 분들이 아닌데 그렇다는 것은 칼빈이 천년왕국을 '담당10'의 안내처럼 천년왕국이 없다가 아니라 특별히 규정을 하지 않고 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규정을 하지 않고 가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말을 하지 않은 것과 규정을 하지 않은 것과 금지 시키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정작 박윤선 목사님은 웨스트민스터에서 공부를 하고 왔는데도 천년왕국은 예수님의 재림 뒤에 문자 그대로 1천년이 있다고 가르쳤을 것이고 이 분 때문에 한국 교회의 다수 주장은 재림 후 천년왕국으로 굳어져 왔습니다.

문제는, 이 것이 허황된 무릉도원처럼 유토피아처럼 꿈에나 그려 본 옛사람들의 미신적이고 몽환적인 희망사항으로 보이는 것이 요즘 청년들의 추세다 보니 자기가 믿어 지지 않는 천년왕국을 반대하기 위해 온갖 자료와 주장을 동원해서 '목적'을 두고 관철하는 식으로 학설을 내다 보니 별별 학설이 나오고 있습니다.

많은 말을 적었지만 안내하는 제가 신학의 여러 주장에 진위를 구별하기 위해 여러 주장들을 확인하고 비교해 봤고, 칼빈의 1차 표현이 궁금했던 때가 있었으며, 마지막 결론은 그 때 그들이 그들의 시대를 감당하는 과정에 나온 활동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참고는 해도 그 이상으로 자세히 들여다 볼 정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들이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한 것은 '성경'이었고 그 성경은 오늘도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오늘의 우리는 천년왕국을 비롯해서 어떤 신앙의 주제를 가지고 논할 때도 '성경'을 먼저 절대 가치로 기준을 삼고, 그리고 이 성경을 가지고 당시를 감당했던 초대교회의 교부들이 남긴 기록, 칼빈이 남긴 기록, 또 한국 교회는 건전했던 해방 직전의 잠깐 등의 기록을 '참고'해 본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제 말씀 드린 이 정도의 기록을 참고하려면 별로 복잡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까지는 정보의 물량이 얼마 되지 않은 시절이어서 명확합니다. 박윤선, 이후 시대가 파악조차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 이후 시대는 사실 예수님을 믿지도 않는 신학자들이 입으로만 고함을 지르고 학설만 많이 펼쳐 놓고 있으니 이들의 주장은 파악의 대상이 아니라 무시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주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일도 지키지 않는 신학자들이 절대 정확무오의 진리를 탐구하되 죽은 뒤의 천국에 관한 세계를 연구한다면 참으로 말도 되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부모에게 대드는 유치원 학생이 공자의 효도론을 외우고 종알거리면 옹알이가 아닐까?

신학의 모든 분야는, 그래도 건전하게 이어 온 100년 전까지로 고전이라 규정하고 그 때까지의 자료는 많지 않으며 파악이 가능하며, 그 이후를 복잡하게 한 자료에게 흔들리지 않으면 진리 연구에는 불편함이 없겠다는 것이 이 곳의 사고방식입니다. 성경으로 돌아 가라는 칼빈 등의 상식적인 이야기를 오늘도 상식적으로 못 박아 놓고 그리고 백영희의 교리 체계와 성경 해석을 다시 읽어 보면 이제 가신 지가 36년째인데도 너무 많은 분야에서 과거 명확하게 가르친 것이 사실 명확한 것이 별로 없어서 설교에 참고할 것이 이렇게 없는지 탄식을 하다가, 이렇게 엄청나게 중요하고 많은 것을 가르쳤는데도 이런 무한할 만한 세계를 평생 들여다 보고 왔는데도 전혀 열어 보지 않고 언급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넘어 가려 했던 자신을 돌아 보며 아찔한 것이, 아마 저뿐 아니라 이 노선에 집중하는 분들의 공통된 경험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궁금'하신 분께서는 목회 여부에 상관 없이, 또 공회 소속에 상관 없이 이 글을 참고하면서 지난 날의 수 많은 학설의 난마에서 일단 벗어 나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의 지하철 안에 들어 가서 철도망 안내서를 들여다 보고 전광판을 보고 있으면 이보다 더 정확한 자료는 없으나 눈으로 보면서도 이 것이 뭔지를 전혀 몰라서 헤매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 보면 그렇습니다. 이럴 때 집에 일단 와서 지하철에 들어 가지 말고 지하철의 개괄도를 보고 동서남북과 각 끝에 동네 이름 몇 가지를 잘 익혀 두고 다시 지하철에 들어 가 보면 자기가 가야 할 곳을 대략 잡고 가는 데 편리해 보입니다.

천년왕국의 교리적 종류와 공회의 입장은 이미 제공 된 자료가 있습니다.
그 이상의 자료는 신학을 학문으로 하기 위해 필요할 정도일 것이고 신앙에 필요할 정도는 아닐 듯합니다. 신학을 학문으로 접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이 곳은 어떤 분에게도 어떤 자료조차 드릴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에 필요하다면 이 곳의 안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혹시 주변에 신앙의 대화나 관심이 특별한 분들끼리 이야기를 하다가 구체적으로 좀더 확인이 필요해서 이 곳에 질문을 했다 해도, 신앙의 실제 필요한 이상의 신학적 자료는 이 곳이 아예 외면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겉으로는 이 곳이 신학을 할 정도가 되지 않고 좀 무식해서 그렇다고 양해를 구해 왔으나, 내적으로는 아무리 따지고 따지고 뒤져 봐도 신학을 제대로 시작하는 순간 무저갱에 자기를 던져 넣는 일이 되어 할 수가 있다 해도 하지 않으며, 할 수 있는지 따지는 것조차 피하고 있는 것이 '공회' 노선의 백영희 신앙 길이고, 이 곳은 그런 자세와 걸음이 너무 좋아서 '백영희' 이름으로 이 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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