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인사 원칙 - 목회자 이동을 중심으로
| 분류 |
|---|
yilee
0
2014.05.29 00:00
1. 백영희 신앙노선의 '인사' 원칙
① 신앙의 유익 원칙
어떤 단체든지 심지어 교회들까지도 인사 문제는 돈과 명예와 권리 문제가 반드시 그 중심에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 됩니다. 공회는 크게 보면 '구원 유익'을 위해, 실무적으로는 '신앙 유익'의 원칙에 따라 엄하게 관리해 왔습니다. 힘이 미치지 못하면 포기할지라도 힘이 있는 한 인사 원칙은 진정한 '교회와 개인의 신앙의 유익'에 철저합니다.
② 변동 대처의 원칙
살아 생전의 사람이란 그 신앙이 변동적이므로 그 누구라 해도 '불변'의 직책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천주교의 교황이나 신부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교회의 신학자나 목사나 어떤 교인이라도 그 직책을 항상 보장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경험 상 목회자는 2 년 정도를 기준으로 그리고 일반 교인의 일반 직책이라 해도 최소한 1 년에 한 번은 임면을 살피고 있습니다.
신앙의 유익 원칙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각자 양심에 맡겨 두지만, 변동 대처의 원칙은 얼마든지 조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목회자는 매 2년마다 시무투표를 통해 교회 담임의 가부를 결정하고, 교인의 직책은 매 1년마다 새로 정하고 있습니다. 타 교단처럼 '항존직'이라는 개념은 기본적으로 천주교식이며 그 사람은 절대 타락 탈선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회는 비록 그런 표현이나 소망은 가질지라도 그런 실행은 배제합니다.
③ 신앙의 자유 원칙
상기 2 가지 원칙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바른 길이겠지만 문제는 이해관계가 걸리면 누구나 다 돌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제 그렇게 적용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공회는 백영희 생전에는 그 분의 지도력이 탁월하여 큰 문제가 없었으나 그 분의 사후에는 각 교회와 교인들이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 바, 상기 원칙은 신앙의 노선으로 가지되 그 실행은 각 교회와 교인과 목회자가 개별적으로 책임 질 일이며 강제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공회는 이런 신앙의 노선 면을 벗어 나는 교회나 개인에게는 '권면에서 그치되' 권면을 듣지 않으므로 상대방이 공회 노선에서 벗어 난다고 판단 되면 이후 한 공회 소속 여부나 공회적 교류의 지속 여부는 각자 알아서 결정합니다.
2. 인사 문제를 두고 주의할 점
① 조심 원칙
우리가 만사 조급해서 졸속으로 처리하여 차라리 처리하지 않음이 더 나을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국 사람의 기질이 그렇고, 한국 교회가 더욱 그러하고, 공회 신앙인들은 그 성급함이 이루 말로 표현을 못합니다. 눈에 번뜩하면 목부터 쳐 놓고 나서 그 사람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확인을 하는 정도입니다. 우리의 칼이 너무 예리하고 우리의 경험과 성향이 너무 충독적이어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상대가 그 직책에서 죄를 짓고 실수를 해도, 과연 죄가 맞는지 또 그 실수가 정말 실수인지 모두가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판단을 해야 합니다. 대개 늦은 것은 답답한 정도지만 성급한 것은 회복할 수 없는 파탄을 초래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람을 임명할 때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또 한 번 세웠으면 웬만하면 기다리고 이해적으로 살펴 봐야 하고, 실제 잘못을 했을지라도 그렇게 넘어 지며 엎어 져 가며 걸음마를 배운다는 점을 목회자끼리도, 교인끼리도, 또 목회자와 교인 사이에서도 모두 당연히 이해할 만한데, 우리 한국 사람이 이런 점에 너무 단점이 많고 한국의 교회는 유별 나며 공회인들은 아주 기이할 만큼 성급합니다. 아이를 낳자 말자 돈 벌어 오지 않는다고 생떼를 쓰며 제명을 하자는 정도입니다.
인사 문제를 두고 '성급함'을 주의하고 '조심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 공회는 세례는 남자는 군대를 갔다 오고 여자는 시집을 가야 허락할 정도로 미련하게 우직합니다. 목회자는 그가 신학을 했든지 말았든지 그가 교인 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세월 속에 지켜 보며, 목회를 출발해도 목사 안수에 수십 년을 지켜 보는 편입니다. 반사나 구역장처럼 안 믿는 사람을 전도하고 지도하는 직책은 가장 쉽게 허락하지만 권세나 명예가 따를 직책은 최대한 신중한 편입니다.
② 책임 원칙
공회의 직책은 그 어떤 직책이든지 그 직책과 관련 된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자기 책임을 제한 없이 지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사는 자기 교회 교인의 강아지가 감기에 걸려도 목사 자신 속에 회개할 바를 찾는 정도이며, 회계 집사는 교회의 경제에 문제가 생기면 자기 경제의 부정에서 시작 되었는지 자기의 경제관부터 돌아 보는 정도입니다.
직책이 주는 권리와 자유는 최대한 줄이거나 없애고, 직책 때문에 가져야 하는 책임은 하나님 앞에 최대한 다 끌어다가 지는 자세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직책을 세울 때 축하의 사진이나 잔치나 그런 인사를 하지 않아 왔습니다. 최근에 불신 가족이나 타 교단 친인척 때문에 축하 행사를 허락하는 공회도 있지만 공회의 근본 정신은 아예 그런 면이 없습니다. 장로나 권사가 되었다고 교인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는 식은 교회 타락의 극치라는 생각입니다.
공회는 이 것이 십자가의 기본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제일 큰 십자가를 먼저 지고 가셨고 그 다음을 각 직책이나 책임을 가진 이들이 그 직책에 메인 십자가를 지고 가는데, 교회가 탈선을 하면 세상 직책이 권세나 명예나 돈을 뜻하여 축하를 받는 것처럼 교회 직책도 그렇게 상대하기 쉬운데 이 것이 출발부터 큰 죄를 지을 행위로 봅니다.
③ 신본 원칙
어떤 직책도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로지 하나님 중심의 신본으로만 처리하고 인간 중심의 인본을 배제해야 합니다. 자기나 자기에게 가까운 사람을 위해 자기도 모르게 유리하게 결정하는 본능을 초월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개인 감정이나 세상의 자기 성향을 교회 일을 하면서 차단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여당을 좋아 하는 목회자가 설교 중에 여당을 지지하지 않기 어렵고, 야당을 좋아 하는 목회자가 설교 시간에 데모를 선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오로지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의 길만 보고 나가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 우선 양보할 수도 있고 져 줄 수도 있으나 그런 기술적인 문제는 각자 알아서 할 일이며 여기서는 원칙론만 설명합니다. 세상의 정치가나 공무원이나 그 어떤 종류의 직책을 가져도 그 직책에서 참으로 공정하기 어렵고 원래 목적에 충실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 운동이므로 이런 모든 사적 문제는 사정 없이 십자가에 못을 박아야 하고, 그렇게 못을 박은 사람의 직책만이 복음직입니다.
3. 교역자 이동
① 상기 원칙에 따라
공회는 공회 초기에 매 2 년을 기준으로 목회자들을 이동 시켰습니다. 매 2 년이라는 숫자는 공회의 단순한 신앙 경험을 반영했습니다. 한국 교회를 중심으로 어느 교단이든지 '신앙은 3 년을 계속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 것입니다.
사실 작심 3 일이라는 말도 있고, 석 달이 고비라는 말도 있습니다. 실제 우리 대부분이 어떤 일에건 그렇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단체성을 고려할 때 3 일이나 3 개 월에 한 번씩 인사 이동을 하려 든다면 사람을 정신 차리게 하는 장점은 있으나 혼란으로 인한 손실이 그 이상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세상 정권처럼 5 년을 보장하거나 심지어 타 교단처럼 10 년씩 또는 그 이상을 보장하게 되면 3 년 고비를 넘기기 어려운 목회자의 불충과 교만 때문에 교회 내에는 상한 심령과 썩어 가는 면들이 너무 심할 것으로 봤습니다. 이 때 '3 년'이라는 표현은 햇수로 3 년이니 '만 2 년'입니다.
교회의 총 책임 직책에 해당 하는 교역자를 매 2 년마다 이동을 시킬 정도라면 그 교역자의 관리 범위에 있는 다른 직책은 매 1 년마다 임면을 새로 한다 해도 교회의 혼란은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일 어느 교회가 6 개 월마다 직책을 바꾸거나 매 2 년마다 교인 직책을 바꾸겠다면 그 교회는 그럴 이유가 있다고 인정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오랜 경험으로 볼 때 1 년 단위가 여러 면에서 유익했고, 목회자는 2 년이면 적절했습니다.
공회의 교회들이 어릴 때는 스스로 자기 결정이 어려웠습니다. 세 살에게 자치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아동 학대가 되지 자치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십대가 되었다면 부모와 의논하여 해결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20대가 된다면 자기 인생의 대부분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를 자신이 가져야 할 것입니다.
공회는 1950년대에 내부적으로 형성이 되었습니다. 그 때도 무조건은 아니나 이동의 원칙은 있었습니다. 1960년대에 들어 서면서 한 교회에 오래 두어도 자기 발전을 스스로 해 나가며 자기 수정에 노력하는 교역자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동 주기는 빨라 졌습니다. 그리고 1970년에 들어 서면서부터는 매 2 년이 하나의 규칙이 된 정도였습니다.
② 이동의 장점
- 교역자를 깨웁니다.
그 어느 곳에든, 그 어느 생물이든, 새로운 현실을 맞으면 긴장을 합니다. 어떤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두고 생명은 본능적으로 생존력을 발동 시킵니다. 스스로 조심하고 깨어 살필 때 목회자는 저절로 하나님 앞에 자기를 살피게 됩니다. 그러나 몇 년이 흐르고 이제 교회가 파악이 되고 주변과 환경 전체가 익어 지게 되면 우리는 그 경험으로 더욱 더 충성을 하는 효율성에 나가지 않고 오히려 편하게 쉬며 누릴 자리를 찾는 안일욕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 속에 경험과 숙련을 통해 발전을 할 수 있는데도 오히려 후퇴하고 부패해 집니다. 이 것을 깨우는 방법이 교역자 이동입니다. 교역자 이동은 교역자의 근무 환경뿐 아니라 온 가족의 생활 환경 전체가 송두리째 뽑혀 다른 곳으로 가게 됩니다. 목회자에게는 극단적인 처방입니다. 가혹한 일입니다. 그래서 타 교단에서는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면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공회는 '신앙 유익'의 원칙에 따라 사람의 예전보다 타락할 수 있는 '변동성의 존재'이므로 교역자 이동으로 교역자를 관리했습니다.
- 교역자를 기릅니다.
인간적으로는 근무지와 생활지를 아주 옮긴다는 것은 극히 불편하고 고통이 따르지만, 목회자의 목회 실력을 기르는 면으로 말한다면 너무 유익합니다. 도시 교회와 시골 교회를 경험해 보고, 개척 교회와 기성 교회를 겪어 보며, 까다로운 교회와 순종적인 교회를 거쳐 보면서 목회자는 한 교회만 알고 맡은 경우와 비교 못할 만큼 실력이 자라게 됩니다.
목회자 한 사람의 충성과 실력은 한 교회의 복과 부흥으로 연결 됩니다. 타 교단은 교역자 이동을 하고자 해도 구성원 전체의 이해 득실에 따라 피 비린 내 나는 전쟁이 벌어 질 터이고 교단이 공중 분해가 될 터이어서 손을 댈 수도 없습니다. 공회는 백영희라는 인물의 지도를 모든 교역자와 교회들이 함께 안심하고 따를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고, 이 시기에 그는 그 자신에게 가장 엄한 십자가를 메웠고 그 다음 교회에 책임을 많이 가진 목회자들에게 그 짐을 지웠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고 또 그 결과가 모든 면에서 은혜로웠기 때문에 그런 시절을 가졌습니다.
- 교회도 마찬 가지입니다.
교인은 강단에 선 교역자를 향해 잘한다 못한다 이렇다 저렇다고 평을 합니다. 또는 한 목회자에게 맹종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목회자들을 거쳐 보면 안목이 생깁니다. 인간의 경영과 실력으로 목회하는 사람,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이끄는 사람, 설교의 장점과 심방의 은혜를 따로 가진 분들 등을 겪으며 한 목회자에게서 이 장점으로 배우고 저 목회자에게서 저런 단점을 거쳐 보며 조심하고 또 다른 목회자에게서 과거 몰랐던 것을 배우고 자라게 됩니다.
목회자 이동 때문에 공회 교인들은 교인 자리에 앉으니 교인이라고 말은 해도 그 속에 평가와 비판력과 구별력은 목회자를 쉽게 능가하는 이들이 전국에 허다합니다. 또 그런 지식이 세월을 통해 자기 실력으로 전환이 되어 평생 교인으로만 살 줄 생각했던 분들이 세상 같으면 새 직업이나 새로운 영역에서 출발 할 수 없다고 생각 되는 시기에 목회자로 출발하고 훌륭한 목회자가 된 경우가 허다합니다. 공회의 목회자 양성은 고교생이나 대학생을 데려다가 신대원에서 기르는 방식이 아니라 한 교회의 교인으로 살다가 자연스럽게 목회자로 출발할 시점이 되면 바로 목회자로 등용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공회의 목회자 이동이 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훌륭한 목회자가 훌륭한 교인을 길렀고, 못 난 교역자가 부임해서는 못 난 교역자가 되지 않도록 교훈을 줬으며, 이 면의 장점을 가진 목회자에게 이 과목을 수강했고, 저 장점을 가진 교역자에게 저 과목을 실습하고 실제 배운 결과가 되었으니 전국 공회 교회들은 전국에 있는 목회자 양성원이 되었고 전국의 목회자들은 전국 교회에서 전국 교인들에게 양성원의 각 과목 별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공회만큼 많은 신학자를 보유하고 많은 신학교를 운영하며 많은 과목을 제공하고 많은 학생들을 정말 제대로 양성한 사례는 역사에 그리 흔치 않을 듯 합니다. 답변자 알기로 신약 2천년 역사에 다섯 손가락 꼽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글을 적으며 이 대목에서는 '총공회 만세!'를 부르고 싶은데 또 누가 자기 교단 유일주의에 빠졌다고 비판거리로 삼을까 봐서 자제하겠습니다. 그러나 세계 신학계의 흐름과 세계 교회와 목회자 세계를 제대로 읽는 사람이라면 입을 다물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4. 공회의 교역자 이동 현황
현재 공회는 백 목사님 사후라는 과도기를 거치고 있습니다. 이미 26 년 정도를 지나다 보니 어느 정도 방향은 잡힌 듯합니다. 물론 곳곳에 불안정한 면은 있지만 대체로 흐름은 나오고 있습니다.
① 초기
백 목사님이 인사권을 가지고 전국 교회와 교역자의 형편을 봐 가며 기를 때는 그림 같고 꿈 같은 시기였습니다. 시골 10 명 교회 목회자가 서울 수백 명 교회의 담임으로도 가고, 덕유산에서 지게 지며 전도사를 하던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전도사가 광화문 네거리 건너 편에 총리 가정 장관 가정 재벌 가정 고위 관료가 주축이 된 내수동교회 담임 목회자로도 부임하여 권위 있게 목회하는 그런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또 서울 최고의 교회에 목회자로 있다가 시골에 가서 몇 년씩 자기를 돌아 보기도 했습니다. 사고 친 목회자들은 그 교회를 떠나 자숙을 하며 다시 출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전국의 목회자들이 그런 세월 속에 피로도가 쌓이고 또 교회는 웬만한 목회자라면 그 목회자만 붙들고 조용하게 있고 싶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백 목사님 사후에 전국 교회는 일시 교역자 이동이 원칙적으로 없다 할 만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간의 세월이 지나 가자 그 좋다고 생각한 목회자가 3 년, 4 년의 세월을 통해 얼마나 이상하게 변질이 되는지를 겪으며 과거 잦은 교체가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고, 또 목회자들도 웬만하면 있던 교회를 있고 싶었으나 자기가 새로워 지지 않으면 교인들의 인내가 한계가 있고 교인들의 불평이 잦게 되면 그 자리가 가시 방석이 됨을 깨닫고 과거 이동제도가 백 목사님의 인사권 행사에 그친 것이 아님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② 현재 흐름
이런 과도기를 거치며 공회는 대개 인사 이동을 어느 정도 의논하고 조율하는 운영위원회를 활용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각 교회가 직접 목회자를 섭외하기도 했지만 역시 공회 별로 전체 의논을 어느 정도 거치지 않을 수가 없음을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도 교회 환경이 달라 지면 또 변화를 거치겠지만 현재까지를 본다면 다음 상황으로 보시면 될 듯합니다.
③ 각 공회 별 교역자 이동
- 부산공회1
초기에는 대구의 백순희 사모님이 내적으로 결정하면 외적으로는 인천의 이재순 목사님이 자신의 결정처럼 시행했습니다. 백순희 사모님은 철저하게 충성도를 보시는 분이었습니다. 물론 이재순 목사님의 의견도 반영은 했습니다. 그 분이 움직이지 않으면 손발이 곤란해 지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분들은 이재순 목사님의 결정으로 봤고, 조금 아는 분들은 두 분의 협의 정도로 봤고, 내면을 아는 분들은 백순희 사모님의 결정에 이재순 목사님의 역할이 큰 정도로 봤을 듯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재순 목사님은 가셨고, 백순희 사모님도 팔순을 넘기며 여러 면에서 예전처럼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여전히 부공1 거의 모든 교회나 교역자들이 사모님의 안면을 정면으로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웬만하면 그 의견이 반영이 된다고 보나 그렇다고 과거처럼 사모님이 척척 이동을 지시할 정도는 아닌 듯합니다. 26 년의 세월도 있고 서로 함께 내려 온 관계를 통해 자연스런 이동 구조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어느 한 목회자가 한 교회에서 너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면 대체로 그대로 가는 정도이고 꼭 문제가 있다면 류정현 정정표 목사님 등을 통해 백순희 사모님 앞에서 조율하고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부공1 교회는 외부적으로 15개가 된다고 보이나 실제로는 10여 개로 보면 될 정도입니다. 부공1에 함께 있다가 15 년 정도 해어진 부공4의 경우는 10개 미만으로 보이며 이 곳은 김삼암 목사님이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내리는 결정이 아마 거의 유일한 결정일 것으로 봅니다. 과거 백 목사님 생전의 모습과 유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부공1 교회들은 백 목사님 생전이나 지금이나 시무투표를 그대로 시행하고 있지만 시무투표의 결과를 인사에 어떻게 반영하는지 문제는 교인들이 거의 손을 대지 못하고 의사만 표시하고, 그 결과를 보며 최종 결정은 앞에서 설명한 대로 가져 가는 식입니다.
- 부산공회2
부공2도 시무투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53개 정도의 교회가 가입한 부공2는 서부교회가 전체 교세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짐작합니다. 일단 서부교회는 제외해야 할 것이고 50여 개의 교회가 매 2년의 시무투표 결과나 또는 평소 인사 이동을 해야 할 중대한 일이 생기면 각 교회가 공회의 위원회와 협의하여 결정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보는 물론 어느 정도 각 교회나 교역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 목사님들이 있어서 인사에 영향을 미칩니다. 현재 부공2 내에서 소리 없이 하나의 세력을 만들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들은 부공2를 설립하던 초기의 몇 분 목사님들입니다. 초기에는 인사권에 확실히 개입을 했고 지금은 좀 약화가 되었다는 점에서 실명으로 거론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부산공회3
이 홈을 운영하고 있는 부공3의 경우는 8 개 교회와 3개 분교로 이루어 져 있고 8 개 교회 중에 2 개 교회는 현재 부공3의 신앙 노선에 대해 연구 기회를 갖겠다는 입장이어서 연구소 지원과 공회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함께 긴밀히 협의할 때나 지금이나 부공3은 이 노선의 원칙에 철저합니다. 인사 문제는 각 교역자와 교회의 결정입니다.
시무투표에서 불신임이 된 경우는 불신임을 결정한 교회에 전임자의 유임과 이동을 한 번 더 확인하도록 부탁한 후 각 교회는 자기 목회자 결정권을 행사하고 각 목회자는 자기 목회지를 선임할 결정권을 가집니다. 각 교회와 교역자의 의지 확인이 되면 이후 교회를 포기하거나 교역자를 포기할지라도 또는 어떤 희생이 있다 해도 공회의 더 큰 원칙인 개교회 자유주의를 위해 더 이상 의논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 온 결과 현재까지 부공3은 한 번도 교역자 이동이 없었습니다. 물론 새로운 개척을 위해 신규 이동은 있었습니다. 공회 출발의 세월이 부산공회에서는 가장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역자 이동이 없어 이 번 6월에는 2 곳의 교회가 한 달을 기한으로 단기 이동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동이 없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인지를 한 번쯤 이렇게 살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 대구공회
대구공회는 적어도 최근까지는 시무투표 없이 26년을 내려 왔습니다. 각 교회에서 교역자 이동을 원하면 주로 공회에 연락을 하여 관련 위원회가 조정을 했다고 듣고 있습니다. 물론 각 교회끼리 직접 의논하고 공회는 보고를 받은 정도도 있었을 것이나 대체로 공회의 조정 기능이 전체 공회들 중에 가장 잘 이루어 졌다고 듣고 있습니다.
- 서울공회
서울공회는 현재 공회라는 단체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숫자도 10개 미만일 것이고 각 교회는 전체 공회가 모인 자리에서 인사 문제를 의논해야 할 필요도 거의 느끼지 않을 듯합니다.
>> 부공 님이 쓰신 내용 <<
:
: 백목사님 생전에는 교역자 이동이 많았다 들었습니다.
: 현재는(각 공회별로) 교역자 이동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① 신앙의 유익 원칙
어떤 단체든지 심지어 교회들까지도 인사 문제는 돈과 명예와 권리 문제가 반드시 그 중심에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 됩니다. 공회는 크게 보면 '구원 유익'을 위해, 실무적으로는 '신앙 유익'의 원칙에 따라 엄하게 관리해 왔습니다. 힘이 미치지 못하면 포기할지라도 힘이 있는 한 인사 원칙은 진정한 '교회와 개인의 신앙의 유익'에 철저합니다.
② 변동 대처의 원칙
살아 생전의 사람이란 그 신앙이 변동적이므로 그 누구라 해도 '불변'의 직책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천주교의 교황이나 신부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교회의 신학자나 목사나 어떤 교인이라도 그 직책을 항상 보장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경험 상 목회자는 2 년 정도를 기준으로 그리고 일반 교인의 일반 직책이라 해도 최소한 1 년에 한 번은 임면을 살피고 있습니다.
신앙의 유익 원칙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각자 양심에 맡겨 두지만, 변동 대처의 원칙은 얼마든지 조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목회자는 매 2년마다 시무투표를 통해 교회 담임의 가부를 결정하고, 교인의 직책은 매 1년마다 새로 정하고 있습니다. 타 교단처럼 '항존직'이라는 개념은 기본적으로 천주교식이며 그 사람은 절대 타락 탈선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회는 비록 그런 표현이나 소망은 가질지라도 그런 실행은 배제합니다.
③ 신앙의 자유 원칙
상기 2 가지 원칙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바른 길이겠지만 문제는 이해관계가 걸리면 누구나 다 돌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제 그렇게 적용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공회는 백영희 생전에는 그 분의 지도력이 탁월하여 큰 문제가 없었으나 그 분의 사후에는 각 교회와 교인들이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 바, 상기 원칙은 신앙의 노선으로 가지되 그 실행은 각 교회와 교인과 목회자가 개별적으로 책임 질 일이며 강제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공회는 이런 신앙의 노선 면을 벗어 나는 교회나 개인에게는 '권면에서 그치되' 권면을 듣지 않으므로 상대방이 공회 노선에서 벗어 난다고 판단 되면 이후 한 공회 소속 여부나 공회적 교류의 지속 여부는 각자 알아서 결정합니다.
2. 인사 문제를 두고 주의할 점
① 조심 원칙
우리가 만사 조급해서 졸속으로 처리하여 차라리 처리하지 않음이 더 나을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국 사람의 기질이 그렇고, 한국 교회가 더욱 그러하고, 공회 신앙인들은 그 성급함이 이루 말로 표현을 못합니다. 눈에 번뜩하면 목부터 쳐 놓고 나서 그 사람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확인을 하는 정도입니다. 우리의 칼이 너무 예리하고 우리의 경험과 성향이 너무 충독적이어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상대가 그 직책에서 죄를 짓고 실수를 해도, 과연 죄가 맞는지 또 그 실수가 정말 실수인지 모두가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판단을 해야 합니다. 대개 늦은 것은 답답한 정도지만 성급한 것은 회복할 수 없는 파탄을 초래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람을 임명할 때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또 한 번 세웠으면 웬만하면 기다리고 이해적으로 살펴 봐야 하고, 실제 잘못을 했을지라도 그렇게 넘어 지며 엎어 져 가며 걸음마를 배운다는 점을 목회자끼리도, 교인끼리도, 또 목회자와 교인 사이에서도 모두 당연히 이해할 만한데, 우리 한국 사람이 이런 점에 너무 단점이 많고 한국의 교회는 유별 나며 공회인들은 아주 기이할 만큼 성급합니다. 아이를 낳자 말자 돈 벌어 오지 않는다고 생떼를 쓰며 제명을 하자는 정도입니다.
인사 문제를 두고 '성급함'을 주의하고 '조심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 공회는 세례는 남자는 군대를 갔다 오고 여자는 시집을 가야 허락할 정도로 미련하게 우직합니다. 목회자는 그가 신학을 했든지 말았든지 그가 교인 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세월 속에 지켜 보며, 목회를 출발해도 목사 안수에 수십 년을 지켜 보는 편입니다. 반사나 구역장처럼 안 믿는 사람을 전도하고 지도하는 직책은 가장 쉽게 허락하지만 권세나 명예가 따를 직책은 최대한 신중한 편입니다.
② 책임 원칙
공회의 직책은 그 어떤 직책이든지 그 직책과 관련 된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자기 책임을 제한 없이 지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사는 자기 교회 교인의 강아지가 감기에 걸려도 목사 자신 속에 회개할 바를 찾는 정도이며, 회계 집사는 교회의 경제에 문제가 생기면 자기 경제의 부정에서 시작 되었는지 자기의 경제관부터 돌아 보는 정도입니다.
직책이 주는 권리와 자유는 최대한 줄이거나 없애고, 직책 때문에 가져야 하는 책임은 하나님 앞에 최대한 다 끌어다가 지는 자세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직책을 세울 때 축하의 사진이나 잔치나 그런 인사를 하지 않아 왔습니다. 최근에 불신 가족이나 타 교단 친인척 때문에 축하 행사를 허락하는 공회도 있지만 공회의 근본 정신은 아예 그런 면이 없습니다. 장로나 권사가 되었다고 교인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는 식은 교회 타락의 극치라는 생각입니다.
공회는 이 것이 십자가의 기본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제일 큰 십자가를 먼저 지고 가셨고 그 다음을 각 직책이나 책임을 가진 이들이 그 직책에 메인 십자가를 지고 가는데, 교회가 탈선을 하면 세상 직책이 권세나 명예나 돈을 뜻하여 축하를 받는 것처럼 교회 직책도 그렇게 상대하기 쉬운데 이 것이 출발부터 큰 죄를 지을 행위로 봅니다.
③ 신본 원칙
어떤 직책도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로지 하나님 중심의 신본으로만 처리하고 인간 중심의 인본을 배제해야 합니다. 자기나 자기에게 가까운 사람을 위해 자기도 모르게 유리하게 결정하는 본능을 초월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개인 감정이나 세상의 자기 성향을 교회 일을 하면서 차단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여당을 좋아 하는 목회자가 설교 중에 여당을 지지하지 않기 어렵고, 야당을 좋아 하는 목회자가 설교 시간에 데모를 선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오로지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의 길만 보고 나가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 우선 양보할 수도 있고 져 줄 수도 있으나 그런 기술적인 문제는 각자 알아서 할 일이며 여기서는 원칙론만 설명합니다. 세상의 정치가나 공무원이나 그 어떤 종류의 직책을 가져도 그 직책에서 참으로 공정하기 어렵고 원래 목적에 충실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 운동이므로 이런 모든 사적 문제는 사정 없이 십자가에 못을 박아야 하고, 그렇게 못을 박은 사람의 직책만이 복음직입니다.
3. 교역자 이동
① 상기 원칙에 따라
공회는 공회 초기에 매 2 년을 기준으로 목회자들을 이동 시켰습니다. 매 2 년이라는 숫자는 공회의 단순한 신앙 경험을 반영했습니다. 한국 교회를 중심으로 어느 교단이든지 '신앙은 3 년을 계속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 것입니다.
사실 작심 3 일이라는 말도 있고, 석 달이 고비라는 말도 있습니다. 실제 우리 대부분이 어떤 일에건 그렇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단체성을 고려할 때 3 일이나 3 개 월에 한 번씩 인사 이동을 하려 든다면 사람을 정신 차리게 하는 장점은 있으나 혼란으로 인한 손실이 그 이상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세상 정권처럼 5 년을 보장하거나 심지어 타 교단처럼 10 년씩 또는 그 이상을 보장하게 되면 3 년 고비를 넘기기 어려운 목회자의 불충과 교만 때문에 교회 내에는 상한 심령과 썩어 가는 면들이 너무 심할 것으로 봤습니다. 이 때 '3 년'이라는 표현은 햇수로 3 년이니 '만 2 년'입니다.
교회의 총 책임 직책에 해당 하는 교역자를 매 2 년마다 이동을 시킬 정도라면 그 교역자의 관리 범위에 있는 다른 직책은 매 1 년마다 임면을 새로 한다 해도 교회의 혼란은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일 어느 교회가 6 개 월마다 직책을 바꾸거나 매 2 년마다 교인 직책을 바꾸겠다면 그 교회는 그럴 이유가 있다고 인정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오랜 경험으로 볼 때 1 년 단위가 여러 면에서 유익했고, 목회자는 2 년이면 적절했습니다.
공회의 교회들이 어릴 때는 스스로 자기 결정이 어려웠습니다. 세 살에게 자치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아동 학대가 되지 자치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십대가 되었다면 부모와 의논하여 해결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20대가 된다면 자기 인생의 대부분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를 자신이 가져야 할 것입니다.
공회는 1950년대에 내부적으로 형성이 되었습니다. 그 때도 무조건은 아니나 이동의 원칙은 있었습니다. 1960년대에 들어 서면서 한 교회에 오래 두어도 자기 발전을 스스로 해 나가며 자기 수정에 노력하는 교역자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동 주기는 빨라 졌습니다. 그리고 1970년에 들어 서면서부터는 매 2 년이 하나의 규칙이 된 정도였습니다.
② 이동의 장점
- 교역자를 깨웁니다.
그 어느 곳에든, 그 어느 생물이든, 새로운 현실을 맞으면 긴장을 합니다. 어떤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두고 생명은 본능적으로 생존력을 발동 시킵니다. 스스로 조심하고 깨어 살필 때 목회자는 저절로 하나님 앞에 자기를 살피게 됩니다. 그러나 몇 년이 흐르고 이제 교회가 파악이 되고 주변과 환경 전체가 익어 지게 되면 우리는 그 경험으로 더욱 더 충성을 하는 효율성에 나가지 않고 오히려 편하게 쉬며 누릴 자리를 찾는 안일욕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 속에 경험과 숙련을 통해 발전을 할 수 있는데도 오히려 후퇴하고 부패해 집니다. 이 것을 깨우는 방법이 교역자 이동입니다. 교역자 이동은 교역자의 근무 환경뿐 아니라 온 가족의 생활 환경 전체가 송두리째 뽑혀 다른 곳으로 가게 됩니다. 목회자에게는 극단적인 처방입니다. 가혹한 일입니다. 그래서 타 교단에서는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면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공회는 '신앙 유익'의 원칙에 따라 사람의 예전보다 타락할 수 있는 '변동성의 존재'이므로 교역자 이동으로 교역자를 관리했습니다.
- 교역자를 기릅니다.
인간적으로는 근무지와 생활지를 아주 옮긴다는 것은 극히 불편하고 고통이 따르지만, 목회자의 목회 실력을 기르는 면으로 말한다면 너무 유익합니다. 도시 교회와 시골 교회를 경험해 보고, 개척 교회와 기성 교회를 겪어 보며, 까다로운 교회와 순종적인 교회를 거쳐 보면서 목회자는 한 교회만 알고 맡은 경우와 비교 못할 만큼 실력이 자라게 됩니다.
목회자 한 사람의 충성과 실력은 한 교회의 복과 부흥으로 연결 됩니다. 타 교단은 교역자 이동을 하고자 해도 구성원 전체의 이해 득실에 따라 피 비린 내 나는 전쟁이 벌어 질 터이고 교단이 공중 분해가 될 터이어서 손을 댈 수도 없습니다. 공회는 백영희라는 인물의 지도를 모든 교역자와 교회들이 함께 안심하고 따를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고, 이 시기에 그는 그 자신에게 가장 엄한 십자가를 메웠고 그 다음 교회에 책임을 많이 가진 목회자들에게 그 짐을 지웠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고 또 그 결과가 모든 면에서 은혜로웠기 때문에 그런 시절을 가졌습니다.
- 교회도 마찬 가지입니다.
교인은 강단에 선 교역자를 향해 잘한다 못한다 이렇다 저렇다고 평을 합니다. 또는 한 목회자에게 맹종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목회자들을 거쳐 보면 안목이 생깁니다. 인간의 경영과 실력으로 목회하는 사람,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이끄는 사람, 설교의 장점과 심방의 은혜를 따로 가진 분들 등을 겪으며 한 목회자에게서 이 장점으로 배우고 저 목회자에게서 저런 단점을 거쳐 보며 조심하고 또 다른 목회자에게서 과거 몰랐던 것을 배우고 자라게 됩니다.
목회자 이동 때문에 공회 교인들은 교인 자리에 앉으니 교인이라고 말은 해도 그 속에 평가와 비판력과 구별력은 목회자를 쉽게 능가하는 이들이 전국에 허다합니다. 또 그런 지식이 세월을 통해 자기 실력으로 전환이 되어 평생 교인으로만 살 줄 생각했던 분들이 세상 같으면 새 직업이나 새로운 영역에서 출발 할 수 없다고 생각 되는 시기에 목회자로 출발하고 훌륭한 목회자가 된 경우가 허다합니다. 공회의 목회자 양성은 고교생이나 대학생을 데려다가 신대원에서 기르는 방식이 아니라 한 교회의 교인으로 살다가 자연스럽게 목회자로 출발할 시점이 되면 바로 목회자로 등용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공회의 목회자 이동이 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훌륭한 목회자가 훌륭한 교인을 길렀고, 못 난 교역자가 부임해서는 못 난 교역자가 되지 않도록 교훈을 줬으며, 이 면의 장점을 가진 목회자에게 이 과목을 수강했고, 저 장점을 가진 교역자에게 저 과목을 실습하고 실제 배운 결과가 되었으니 전국 공회 교회들은 전국에 있는 목회자 양성원이 되었고 전국의 목회자들은 전국 교회에서 전국 교인들에게 양성원의 각 과목 별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공회만큼 많은 신학자를 보유하고 많은 신학교를 운영하며 많은 과목을 제공하고 많은 학생들을 정말 제대로 양성한 사례는 역사에 그리 흔치 않을 듯 합니다. 답변자 알기로 신약 2천년 역사에 다섯 손가락 꼽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글을 적으며 이 대목에서는 '총공회 만세!'를 부르고 싶은데 또 누가 자기 교단 유일주의에 빠졌다고 비판거리로 삼을까 봐서 자제하겠습니다. 그러나 세계 신학계의 흐름과 세계 교회와 목회자 세계를 제대로 읽는 사람이라면 입을 다물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4. 공회의 교역자 이동 현황
현재 공회는 백 목사님 사후라는 과도기를 거치고 있습니다. 이미 26 년 정도를 지나다 보니 어느 정도 방향은 잡힌 듯합니다. 물론 곳곳에 불안정한 면은 있지만 대체로 흐름은 나오고 있습니다.
① 초기
백 목사님이 인사권을 가지고 전국 교회와 교역자의 형편을 봐 가며 기를 때는 그림 같고 꿈 같은 시기였습니다. 시골 10 명 교회 목회자가 서울 수백 명 교회의 담임으로도 가고, 덕유산에서 지게 지며 전도사를 하던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전도사가 광화문 네거리 건너 편에 총리 가정 장관 가정 재벌 가정 고위 관료가 주축이 된 내수동교회 담임 목회자로도 부임하여 권위 있게 목회하는 그런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또 서울 최고의 교회에 목회자로 있다가 시골에 가서 몇 년씩 자기를 돌아 보기도 했습니다. 사고 친 목회자들은 그 교회를 떠나 자숙을 하며 다시 출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전국의 목회자들이 그런 세월 속에 피로도가 쌓이고 또 교회는 웬만한 목회자라면 그 목회자만 붙들고 조용하게 있고 싶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백 목사님 사후에 전국 교회는 일시 교역자 이동이 원칙적으로 없다 할 만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간의 세월이 지나 가자 그 좋다고 생각한 목회자가 3 년, 4 년의 세월을 통해 얼마나 이상하게 변질이 되는지를 겪으며 과거 잦은 교체가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고, 또 목회자들도 웬만하면 있던 교회를 있고 싶었으나 자기가 새로워 지지 않으면 교인들의 인내가 한계가 있고 교인들의 불평이 잦게 되면 그 자리가 가시 방석이 됨을 깨닫고 과거 이동제도가 백 목사님의 인사권 행사에 그친 것이 아님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② 현재 흐름
이런 과도기를 거치며 공회는 대개 인사 이동을 어느 정도 의논하고 조율하는 운영위원회를 활용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각 교회가 직접 목회자를 섭외하기도 했지만 역시 공회 별로 전체 의논을 어느 정도 거치지 않을 수가 없음을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도 교회 환경이 달라 지면 또 변화를 거치겠지만 현재까지를 본다면 다음 상황으로 보시면 될 듯합니다.
③ 각 공회 별 교역자 이동
- 부산공회1
초기에는 대구의 백순희 사모님이 내적으로 결정하면 외적으로는 인천의 이재순 목사님이 자신의 결정처럼 시행했습니다. 백순희 사모님은 철저하게 충성도를 보시는 분이었습니다. 물론 이재순 목사님의 의견도 반영은 했습니다. 그 분이 움직이지 않으면 손발이 곤란해 지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분들은 이재순 목사님의 결정으로 봤고, 조금 아는 분들은 두 분의 협의 정도로 봤고, 내면을 아는 분들은 백순희 사모님의 결정에 이재순 목사님의 역할이 큰 정도로 봤을 듯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재순 목사님은 가셨고, 백순희 사모님도 팔순을 넘기며 여러 면에서 예전처럼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여전히 부공1 거의 모든 교회나 교역자들이 사모님의 안면을 정면으로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웬만하면 그 의견이 반영이 된다고 보나 그렇다고 과거처럼 사모님이 척척 이동을 지시할 정도는 아닌 듯합니다. 26 년의 세월도 있고 서로 함께 내려 온 관계를 통해 자연스런 이동 구조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어느 한 목회자가 한 교회에서 너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면 대체로 그대로 가는 정도이고 꼭 문제가 있다면 류정현 정정표 목사님 등을 통해 백순희 사모님 앞에서 조율하고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부공1 교회는 외부적으로 15개가 된다고 보이나 실제로는 10여 개로 보면 될 정도입니다. 부공1에 함께 있다가 15 년 정도 해어진 부공4의 경우는 10개 미만으로 보이며 이 곳은 김삼암 목사님이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내리는 결정이 아마 거의 유일한 결정일 것으로 봅니다. 과거 백 목사님 생전의 모습과 유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부공1 교회들은 백 목사님 생전이나 지금이나 시무투표를 그대로 시행하고 있지만 시무투표의 결과를 인사에 어떻게 반영하는지 문제는 교인들이 거의 손을 대지 못하고 의사만 표시하고, 그 결과를 보며 최종 결정은 앞에서 설명한 대로 가져 가는 식입니다.
- 부산공회2
부공2도 시무투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53개 정도의 교회가 가입한 부공2는 서부교회가 전체 교세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짐작합니다. 일단 서부교회는 제외해야 할 것이고 50여 개의 교회가 매 2년의 시무투표 결과나 또는 평소 인사 이동을 해야 할 중대한 일이 생기면 각 교회가 공회의 위원회와 협의하여 결정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보는 물론 어느 정도 각 교회나 교역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 목사님들이 있어서 인사에 영향을 미칩니다. 현재 부공2 내에서 소리 없이 하나의 세력을 만들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들은 부공2를 설립하던 초기의 몇 분 목사님들입니다. 초기에는 인사권에 확실히 개입을 했고 지금은 좀 약화가 되었다는 점에서 실명으로 거론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부산공회3
이 홈을 운영하고 있는 부공3의 경우는 8 개 교회와 3개 분교로 이루어 져 있고 8 개 교회 중에 2 개 교회는 현재 부공3의 신앙 노선에 대해 연구 기회를 갖겠다는 입장이어서 연구소 지원과 공회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함께 긴밀히 협의할 때나 지금이나 부공3은 이 노선의 원칙에 철저합니다. 인사 문제는 각 교역자와 교회의 결정입니다.
시무투표에서 불신임이 된 경우는 불신임을 결정한 교회에 전임자의 유임과 이동을 한 번 더 확인하도록 부탁한 후 각 교회는 자기 목회자 결정권을 행사하고 각 목회자는 자기 목회지를 선임할 결정권을 가집니다. 각 교회와 교역자의 의지 확인이 되면 이후 교회를 포기하거나 교역자를 포기할지라도 또는 어떤 희생이 있다 해도 공회의 더 큰 원칙인 개교회 자유주의를 위해 더 이상 의논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 온 결과 현재까지 부공3은 한 번도 교역자 이동이 없었습니다. 물론 새로운 개척을 위해 신규 이동은 있었습니다. 공회 출발의 세월이 부산공회에서는 가장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역자 이동이 없어 이 번 6월에는 2 곳의 교회가 한 달을 기한으로 단기 이동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동이 없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인지를 한 번쯤 이렇게 살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 대구공회
대구공회는 적어도 최근까지는 시무투표 없이 26년을 내려 왔습니다. 각 교회에서 교역자 이동을 원하면 주로 공회에 연락을 하여 관련 위원회가 조정을 했다고 듣고 있습니다. 물론 각 교회끼리 직접 의논하고 공회는 보고를 받은 정도도 있었을 것이나 대체로 공회의 조정 기능이 전체 공회들 중에 가장 잘 이루어 졌다고 듣고 있습니다.
- 서울공회
서울공회는 현재 공회라는 단체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숫자도 10개 미만일 것이고 각 교회는 전체 공회가 모인 자리에서 인사 문제를 의논해야 할 필요도 거의 느끼지 않을 듯합니다.
>> 부공 님이 쓰신 내용 <<
:
: 백목사님 생전에는 교역자 이동이 많았다 들었습니다.
: 현재는(각 공회별로) 교역자 이동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교역자 이동
백목사님 생전에는 교역자 이동이 많았다 들었습니다.
현재는(각 공회별로) 교역자 이동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
백목사님 생전에는 교역자 이동이 많았다 들었습니다.
현재는(각 공회별로) 교역자 이동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