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20장 - 첫째부활과 둘째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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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3 00:00
1. (택자)신자는 모두다 첫째 부활에 참예한다.
2. (택자)신자는 모두다 둘째 사망에 참예한다.
3. (불택자)불신자는 모두다 둘째 부활에 참예한다.
4. (불택자)불신자는 모두다 둘째 사망에 참예한다.
질문1. 위 주장은 이치에 다 옳습니까? 아니면 틀린 부분이 있습니까?
요한계시록 20:4-6에 보면
목 베임을 받은 자, 짐승과 우상경배를 아니한 자, 표를 받지 아니한 자를
대표적으로 첫째부활에 참예한다고 했습니다. 앞의 세 종류는 전부 행위를 언급했는데
어떻게 신자 전부가 첫째부활에 참예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질문2. 요한계시록20:4-6절의 성구만으로는
위 1번 주장의 “신자는 모두다 첫째 부활에 참예한다”고 단정짓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행위가 진실하고 죽음이나 짐승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자가 첫째부활한다고 했으므로)
1번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다른 성구나 무슨 확실한 근거가 있는지요?
목 베임을 받은 자를 일반적으로 순교자로 표현을 했을 때
첫째 부활하는 자는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릴 수가 없다
순교자라도 죄의 기능은 지옥에 버리고 가야 하는데
목 베임을 받은 자가 첫째부활은 참예하고 둘째사망에는 참예하지 않는다면
질문3. 6절의 둘째사망은 불신자나 10절에 마귀가 들어가는 불과 유황 못 불못
즉 둘째사망과 그 의미가 다른, 기본구원적으로 우리의 심신자체가 둘째사망
즉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말씀인지요?
아니면 의의 기능은 둘째 사망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적으로 6절에 둘째 사망이 그들(목 베임받은 자의 의의 기능을 “그들을”로 표현한 것인지?)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다고 한 것인지요?
요한계시록 2:11절의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도 신자의 의의 기능은(이겼으므로) 둘째 사망이 없고 죄의 기능은(졌으므로) 둘째 사망이 있다로 결론을 내리면 되는지요?
질문4. 신자 안의 죄의 기능과 의의 기능으로 나누어서 의의 기능은 둘째 사망이 없고 죄의 기능은 둘째 사망이 있다로 보지 않고, 기능을 분리하지 않고 인격 자체, 사람자체를 두고 첫째부활과 둘째 사망을 정의내릴 수는 없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기능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요한계시록 20장의 첫째부활과 둘째 사망을 해석할 수 없는 것인지요?
질문5. 신자가 죄의 기능을 버리고 가는 둘째 사망과 10절에 마귀가 가는 불과 유황 못과 불택 불신자가 가는 둘째 사망 곧 불못, 지옥은 다 같은 장소인가요? 아니면 다른 곳인가요? 아니면 같은 장소에 다른 구역인가요?
천국의 층이 여럿이듯 지옥의 층도 여럿인지요?
마귀가 가는 지옥과 신자가 죄의 기능을 버리고 가는 지옥은 같은 곳인지요? 다른 곳인지요?
2. (택자)신자는 모두다 둘째 사망에 참예한다.
3. (불택자)불신자는 모두다 둘째 부활에 참예한다.
4. (불택자)불신자는 모두다 둘째 사망에 참예한다.
질문1. 위 주장은 이치에 다 옳습니까? 아니면 틀린 부분이 있습니까?
요한계시록 20:4-6에 보면
목 베임을 받은 자, 짐승과 우상경배를 아니한 자, 표를 받지 아니한 자를
대표적으로 첫째부활에 참예한다고 했습니다. 앞의 세 종류는 전부 행위를 언급했는데
어떻게 신자 전부가 첫째부활에 참예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질문2. 요한계시록20:4-6절의 성구만으로는
위 1번 주장의 “신자는 모두다 첫째 부활에 참예한다”고 단정짓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행위가 진실하고 죽음이나 짐승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자가 첫째부활한다고 했으므로)
1번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다른 성구나 무슨 확실한 근거가 있는지요?
목 베임을 받은 자를 일반적으로 순교자로 표현을 했을 때
첫째 부활하는 자는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릴 수가 없다
순교자라도 죄의 기능은 지옥에 버리고 가야 하는데
목 베임을 받은 자가 첫째부활은 참예하고 둘째사망에는 참예하지 않는다면
질문3. 6절의 둘째사망은 불신자나 10절에 마귀가 들어가는 불과 유황 못 불못
즉 둘째사망과 그 의미가 다른, 기본구원적으로 우리의 심신자체가 둘째사망
즉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말씀인지요?
아니면 의의 기능은 둘째 사망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적으로 6절에 둘째 사망이 그들(목 베임받은 자의 의의 기능을 “그들을”로 표현한 것인지?)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다고 한 것인지요?
요한계시록 2:11절의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도 신자의 의의 기능은(이겼으므로) 둘째 사망이 없고 죄의 기능은(졌으므로) 둘째 사망이 있다로 결론을 내리면 되는지요?
질문4. 신자 안의 죄의 기능과 의의 기능으로 나누어서 의의 기능은 둘째 사망이 없고 죄의 기능은 둘째 사망이 있다로 보지 않고, 기능을 분리하지 않고 인격 자체, 사람자체를 두고 첫째부활과 둘째 사망을 정의내릴 수는 없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기능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요한계시록 20장의 첫째부활과 둘째 사망을 해석할 수 없는 것인지요?
질문5. 신자가 죄의 기능을 버리고 가는 둘째 사망과 10절에 마귀가 가는 불과 유황 못과 불택 불신자가 가는 둘째 사망 곧 불못, 지옥은 다 같은 장소인가요? 아니면 다른 곳인가요? 아니면 같은 장소에 다른 구역인가요?
천국의 층이 여럿이듯 지옥의 층도 여럿인지요?
마귀가 가는 지옥과 신자가 죄의 기능을 버리고 가는 지옥은 같은 곳인지요? 다른 곳인지요?
기능 구원 - 답변 완료 (내용 일부 수정 -> 행정실)
이 글의 제일 초두에 '2차 생명'으로 적을 부분을 '1차 생명'으로 적었는데
이 글의 아래11703번'에서 '교인2'께서 오류를 지적하여 바로 수정했습니다.
11703번의 지적한 글에는 원래 오류와 지적이 남아 있어 그대로 두겠습니다. - 행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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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체적으로
택 불택 간에 아이가 태어 납니다. 1차 생명입니다.
출생은 해도 영은 원죄로 죽었으니, 1차 사망입니다.
택자는 살아 가다가 영이 중생합니다. 2차 생명입니다.
중생 후 죄를 지으면 그 심신 요소는, 2차 사망입니다.
주님 오시면 택자 우리들만이 1차 부활합니다.
1천 년이 지난 뒤 불택자들이 2차 부활합니다.
2. 질문하신 내용 중에
1번 - 맞습니다.
택자들만 주님 오실 때 부활합니다. 이 것이 1차 부활입니다.
2번 - 맞습니다.
택자들은 살아 생전에 중생을 하는데 중생한 후 평생을 살다 보면 한 번은 불순종할 때도 있고 그런 죄가 있을 때의 해당 된 심신의 요소는 둘째 사망에 빠집니다.
3번 - 맞습니다.
믿지 않고 가는 불택자는 모두 주님 오시고 천년 왕국이 지나고 나면 그 때 지옥으로 가는 심판을 받기 위해 부활하는데 이 것이 2차 부활입니다.
4번 - 아닙니다.
둘째 사망이란 택자가 중생하고 믿음 생활을 하다가 다시 죄를 지으면 그 때 죄를 지을 때 해당 된 심신의 요소에만 해당 되는 표현입니다.
5번 - 같은 곳입니다.
3. 성구 인용에 대하여 안내 드립니다.
(1) '계20:4-6' 문제
계20:1-3은 천년왕국을 말합니다. 주님 오실 때 사단은 무저갱에 넣었고 우리 택자들은 부활하여 주님과 천년왕국을 다스리며 불택자들은 부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질문하신 4절부터 나오는 이들은 택자들이니 주님과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받은 경우를 말한다 했습니다. 택자 전부가 그렇게 될 수 있는가? 질문자의 지적은 그런 것 같습니다. 여기서 다시 연구적 반론을 드린다면 주님을 위해 베드로처럼 십자가에 못이 박혀 죽었는데 상대가 목을 치지 않아서 목이 붙은 채로 순교했다면 계20:4에 들지 않을 것인가? 십자가에 목이 박히는 고난과 함께 어떤 이들은 그 마지막에 화형까지 더하여 받은 더 큰 고난의 순교자들도 있는데 이들은 목이 붙어 있었다는 이유로 계20:4의 첫째 부활에서 빠질 것인가?
우리가 다 같이 죽음까지 각오하기는 어려운 신앙이지만 답변자 신앙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첫 은혜를 받고 좋을 때는 멋 모르고 뛰어 다녔고, 철이 좀 들고 나서부터는 죽음 앞에서도 주님을 인정할 수 있을까 라는 대목에서 망설인 적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누가 답변자 목을 바로 쳐 죽인다면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문과 고형으로 장시간을 고통스럽게 당해야 한다면 답변자는 주님의 능력으로 어떻게 해 주시면 몰라도 제 각오를 가지고는 아직도 자신이 없습니다.
'목 베임'이 몸과 머리의 절단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주님을 위한 참혹한 죽음을 말하는가? 만일 후자를 말한다면 더 옳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좀 넓게 본다면 '목 베임'이라는 것은 사람이 죽는 최후의 순간 한 번만을 두고 말한다고 볼 것인가 아니면 어느 한 순간이나 어느 한 사건이나 어느 한 시대적인 환란도 포함할 수 있을 것인지 문제로 나아 가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신사참배 때 죽기를 각오하고 감옥에 갔으나 6 년 옥고 끝에 죽지 않고 나온 분들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그들의 그 당시 상황으로 보면 목회자로서 목은 잘려 나갔고 희망이 없다고 보였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항복을 했는데 출옥성도들은 끝까지 버텼으니 그들의 그 당시 신앙은 목 베임을 당한 것입니다. 오늘 이 나라의 개와 돼지도 학대 받지 않을 법적 보장을 받는데 하물며 우리가 아직까지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만으로 학대 받을 상황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각 교단에서 똑 바른 소리를 하다가 제명을 당하는 이들은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자기 교단의 신학자나 교계 지도자로 우뚝 설 기회를 그들이 증거하는 예수님의 증거 때문에 박윤선 목사님이 고신에서 제거를 당하는 경우 우리는 그 분의 임종 순간은 아니라 해도 그 분의 젊은 시절 가장 중요한 고비에 주를 위해 목 베임을 당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는 성경을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는 기본 구원 하나만을 가지고 읽는다면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하는데 이런 성구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믿는 성도들이 모두 첫째 부활에 참예할 것이나 그 부활한 성도의 모습은 전부가 다를 것입니다. 평생 1 % 정도 믿은 분은 그 몸과 마음과 영은 하나가 되어 부활을 하지만 그 분의 신앙 생애의 99 %는 유황 불구덩이에 버리고 자기의 1 %만 가지고 부활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지 않았든지, 목 베임을 당했든지, 표를 받지 않은 생애나 그런 요소나 그런 삶만 첫째 부활의 순간 우리가 가지고 부활할 것입니다.
반대로 주님을 위해 목 베임을 실제 당한 성도가 있는데 만일 이 분이 평소 요나처럼 신앙 생활을 꾀쟁이로 하고 겁장이나 시기심에 살다가 마지막에 회개하고 목을 베였다면? 당연히 그도 첫째 부활에 참예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의 목 베임은 더할 수 없이 훌륭한 성도의 행위지만 그 분이 그 이전에 늘 자기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해 온 과거는 부활할 때 주님과 왕 노릇할 때 그런 요소나 삶이나 부분들은 다 유황불구덩이에 버려야 할 것입니다.
(2) 상기 질문에 관련한 성구를 부탁하셨는데
계2:23,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고 했습니다. 관련 성구는 많습니다. 한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의 택불택으로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것은 기본구원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천국 갈 우리 택자들을 향하여, 구원 받고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를 향하여 심는 대로 거둔다 하셨고 계2:23에서는 행위대로 갚아 준다고 했습니다. 23절의 앞 부분에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핀다고 하신 다음에 행위대로 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상대의 몸의 행위만 보지만 주님은 우리의 생각까지 살펴 잘못 된 생각과 바로 된 생각을 구별하십니다. 당연히 심신의 언행심사 하나하나가 전부 행동록에 의해 별도로 심판을 받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성경 거의 전부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명령하고 금지하는 내용에 관련 된 것입니다.
(3) 목 베임을 받은 순교자를 예로 든다면
그런 훌륭한 순교자라 해도 베드로처럼 마지막 순간에 도망을 가다가 회개하고 돌아 와서 순교하는 경우도 있으니 순교자라는 이름이 그 분의 평생 잘못 산 부분까지 전부 의로운 과거로 되 살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행동은 매 현실에서 한 번 하고 나면 그 것으로 끝입니다. 평생 산 것의 총합을 두고 의인이다 죄인이다 이렇게 총평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분설하여 내면을 보면 바울의 불신 시절은 천하에 제일 못 된 악인이었고 베드로는 그런 적이 너무 많았고 우리 주변에도 귀한 성자들의 뒷 이야기를 알고 나면 그 분들에게서 가족 실패처럼 교권 투쟁에서 눈이 가려 교계를 망친 이력들이 있으니 그런 잘못 된 부분들은 모두 제거가 되고 지옥에 던져 져야 합니다.
이 잘못 된 부분들을 제거하여 지옥에 버리는 것을 둘째 사망이라 합니다.
그리고 택자의 잘못 된 부분들이 던져 지는 바로 그 곳이 사탄과 불택자가 불 타는 지옥입니다.
지옥은 하나님과 말씀에 상관이 없는 모든 것들을 영원히 형벌로 태우는 곳입니다. 사탄 자체, 불택자 자체, 택자의 잘못 산 부분까지 하나님과 말씀에 상관 없는 부분은 모두가 같습니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릴 권세가 없다 하심은 이미 택자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법적 구원을 받은 상태에서 택자들이 중생 후에 말씀대로 살고자 목 베임과 같은 여러 고난까지 통과한 생애는 겉 보기에는 인간의 수고에 그치는 것같아도 그 내면은 절대 완전의 대속이 장악을 하고 붙들고 계시므로 한 번 현실에서 말씀에 붙들려 실행하므로 의의 기능이 되고 의인의 생애가 된 부분은 다시는 그 어떤 것도 침노하거나 번복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평생도 하나님 앞에 단번이지만, 한 사람의 매 순간도 하나님 앞에 단번입니다.
현실마다 진 것은 죄의 기능이고
현실마다 이긴 것은 의의 기능이니
매 현실에 해당 된 것은 그 매 현실이 영원한 성패로 천국과 지옥으로 갈려 버리고 확정 됩니다.
(4) 성도의 생을 기능 별로 나누지 않는다면?
성경 전체는 1500년 전으로, 또는 500년 전으로 돌아 가서 한 세대 전체의 혼란을 일으 킬 대형 사고로 이어 집니다. 사람에게 목이 없다면? 사람에게 면역 체계가 없다면... 이런 가정은 짐작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정도는 아닙니다. 기능 구원을 모르는 분들은 계20장의 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 정도의 혼란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마5: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이런 성구에서도 당장에 오해나 억해로 나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사복음서의 본격적인 교훈의 첫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마태복음 5장 산상보훈 전부가 다 섞갈릴 것입니다. 이 부분이 그리 된다는 말은 이후 전부와 이전의 구약 전부가 그리 됩니다. 다윗의 실수는 다윗이라는 인물이 의인이라는 점에서 다 묻어 질 수 있는 부분인가? 반대로, 사울은 못 된 사람이라 해도 그도 하나님께 붙들려 살았던 순간이 있고 이스라엘 구원의 대표로 활동한 기간이 분명히 있는데 사울에게서는 쓸모 있는 부분이 전혀 없는가? 이런 결론으로 갑니다.
이 노선의 교리 교훈의 깊이를 더하는 질문이며 발전적 방향에서 답변하느라고 마치 토론처럼 글을 적어 죄송하나 사실 좋은 분위기라면 논쟁법이 연구에는 나은 면이 있습니다.
>> 교인 님이 쓰신 내용 <<
:
: 1. (택자)신자는 모두다 첫째 부활에 참예한다.
: 2. (택자)신자는 모두다 둘째 사망에 참예한다.
: 3. (불택자)불신자는 모두다 둘째 부활에 참예한다.
: 4. (불택자)불신자는 모두다 둘째 사망에 참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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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1. 위 주장은 이치에 다 옳습니까? 아니면 틀린 부분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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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계시록 20:4-6에 보면
: 목 베임을 받은 자, 짐승과 우상경배를 아니한 자, 표를 받지 아니한 자를
: 대표적으로 첫째부활에 참예한다고 했습니다. 앞의 세 종류는 전부 행위를 언급했는데
: 어떻게 신자 전부가 첫째부활에 참예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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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2. 요한계시록20:4-6절의 성구만으로는
: 위 1번 주장의 “신자는 모두다 첫째 부활에 참예한다”고 단정짓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 (행위가 진실하고 죽음이나 짐승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자가 첫째부활한다고 했으므로)
: 1번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다른 성구나 무슨 확실한 근거가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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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베임을 받은 자를 일반적으로 순교자로 표현을 했을 때
: 첫째 부활하는 자는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릴 수가 없다
: 순교자라도 죄의 기능은 지옥에 버리고 가야 하는데
: 목 베임을 받은 자가 첫째부활은 참예하고 둘째사망에는 참예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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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3. 6절의 둘째사망은 불신자나 10절에 마귀가 들어가는 불과 유황 못 불못
: 즉 둘째사망과 그 의미가 다른, 기본구원적으로 우리의 심신자체가 둘째사망
: 즉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말씀인지요?
: 아니면 의의 기능은 둘째 사망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적으로 6절에 둘째 사망이 그들(목 베임받은 자의 의의 기능을 “그들을”로 표현한 것인지?)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다고 한 것인지요?
: 요한계시록 2:11절의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도 신자의 의의 기능은(이겼으므로) 둘째 사망이 없고 죄의 기능은(졌으므로) 둘째 사망이 있다로 결론을 내리면 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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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4. 신자 안의 죄의 기능과 의의 기능으로 나누어서 의의 기능은 둘째 사망이 없고 죄의 기능은 둘째 사망이 있다로 보지 않고, 기능을 분리하지 않고 인격 자체, 사람자체를 두고 첫째부활과 둘째 사망을 정의내릴 수는 없는 것입니까?
: 그렇다면 기능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요한계시록 20장의 첫째부활과 둘째 사망을 해석할 수 없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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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5. 신자가 죄의 기능을 버리고 가는 둘째 사망과 10절에 마귀가 가는 불과 유황 못과 불택 불신자가 가는 둘째 사망 곧 불못, 지옥은 다 같은 장소인가요? 아니면 다른 곳인가요? 아니면 같은 장소에 다른 구역인가요?
: 천국의 층이 여럿이듯 지옥의 층도 여럿인지요?
: 마귀가 가는 지옥과 신자가 죄의 기능을 버리고 가는 지옥은 같은 곳인지요? 다른 곳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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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제일 초두에 '2차 생명'으로 적을 부분을 '1차 생명'으로 적었는데
이 글의 아래11703번'에서 '교인2'께서 오류를 지적하여 바로 수정했습니다.
11703번의 지적한 글에는 원래 오류와 지적이 남아 있어 그대로 두겠습니다. - 행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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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체적으로
택 불택 간에 아이가 태어 납니다. 1차 생명입니다.
출생은 해도 영은 원죄로 죽었으니, 1차 사망입니다.
택자는 살아 가다가 영이 중생합니다. 2차 생명입니다.
중생 후 죄를 지으면 그 심신 요소는, 2차 사망입니다.
주님 오시면 택자 우리들만이 1차 부활합니다.
1천 년이 지난 뒤 불택자들이 2차 부활합니다.
2. 질문하신 내용 중에
1번 - 맞습니다.
택자들만 주님 오실 때 부활합니다. 이 것이 1차 부활입니다.
2번 - 맞습니다.
택자들은 살아 생전에 중생을 하는데 중생한 후 평생을 살다 보면 한 번은 불순종할 때도 있고 그런 죄가 있을 때의 해당 된 심신의 요소는 둘째 사망에 빠집니다.
3번 - 맞습니다.
믿지 않고 가는 불택자는 모두 주님 오시고 천년 왕국이 지나고 나면 그 때 지옥으로 가는 심판을 받기 위해 부활하는데 이 것이 2차 부활입니다.
4번 - 아닙니다.
둘째 사망이란 택자가 중생하고 믿음 생활을 하다가 다시 죄를 지으면 그 때 죄를 지을 때 해당 된 심신의 요소에만 해당 되는 표현입니다.
5번 - 같은 곳입니다.
3. 성구 인용에 대하여 안내 드립니다.
(1) '계20:4-6' 문제
계20:1-3은 천년왕국을 말합니다. 주님 오실 때 사단은 무저갱에 넣었고 우리 택자들은 부활하여 주님과 천년왕국을 다스리며 불택자들은 부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질문하신 4절부터 나오는 이들은 택자들이니 주님과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받은 경우를 말한다 했습니다. 택자 전부가 그렇게 될 수 있는가? 질문자의 지적은 그런 것 같습니다. 여기서 다시 연구적 반론을 드린다면 주님을 위해 베드로처럼 십자가에 못이 박혀 죽었는데 상대가 목을 치지 않아서 목이 붙은 채로 순교했다면 계20:4에 들지 않을 것인가? 십자가에 목이 박히는 고난과 함께 어떤 이들은 그 마지막에 화형까지 더하여 받은 더 큰 고난의 순교자들도 있는데 이들은 목이 붙어 있었다는 이유로 계20:4의 첫째 부활에서 빠질 것인가?
우리가 다 같이 죽음까지 각오하기는 어려운 신앙이지만 답변자 신앙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첫 은혜를 받고 좋을 때는 멋 모르고 뛰어 다녔고, 철이 좀 들고 나서부터는 죽음 앞에서도 주님을 인정할 수 있을까 라는 대목에서 망설인 적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누가 답변자 목을 바로 쳐 죽인다면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문과 고형으로 장시간을 고통스럽게 당해야 한다면 답변자는 주님의 능력으로 어떻게 해 주시면 몰라도 제 각오를 가지고는 아직도 자신이 없습니다.
'목 베임'이 몸과 머리의 절단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주님을 위한 참혹한 죽음을 말하는가? 만일 후자를 말한다면 더 옳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좀 넓게 본다면 '목 베임'이라는 것은 사람이 죽는 최후의 순간 한 번만을 두고 말한다고 볼 것인가 아니면 어느 한 순간이나 어느 한 사건이나 어느 한 시대적인 환란도 포함할 수 있을 것인지 문제로 나아 가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신사참배 때 죽기를 각오하고 감옥에 갔으나 6 년 옥고 끝에 죽지 않고 나온 분들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그들의 그 당시 상황으로 보면 목회자로서 목은 잘려 나갔고 희망이 없다고 보였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항복을 했는데 출옥성도들은 끝까지 버텼으니 그들의 그 당시 신앙은 목 베임을 당한 것입니다. 오늘 이 나라의 개와 돼지도 학대 받지 않을 법적 보장을 받는데 하물며 우리가 아직까지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만으로 학대 받을 상황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각 교단에서 똑 바른 소리를 하다가 제명을 당하는 이들은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자기 교단의 신학자나 교계 지도자로 우뚝 설 기회를 그들이 증거하는 예수님의 증거 때문에 박윤선 목사님이 고신에서 제거를 당하는 경우 우리는 그 분의 임종 순간은 아니라 해도 그 분의 젊은 시절 가장 중요한 고비에 주를 위해 목 베임을 당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는 성경을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는 기본 구원 하나만을 가지고 읽는다면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하는데 이런 성구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믿는 성도들이 모두 첫째 부활에 참예할 것이나 그 부활한 성도의 모습은 전부가 다를 것입니다. 평생 1 % 정도 믿은 분은 그 몸과 마음과 영은 하나가 되어 부활을 하지만 그 분의 신앙 생애의 99 %는 유황 불구덩이에 버리고 자기의 1 %만 가지고 부활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지 않았든지, 목 베임을 당했든지, 표를 받지 않은 생애나 그런 요소나 그런 삶만 첫째 부활의 순간 우리가 가지고 부활할 것입니다.
반대로 주님을 위해 목 베임을 실제 당한 성도가 있는데 만일 이 분이 평소 요나처럼 신앙 생활을 꾀쟁이로 하고 겁장이나 시기심에 살다가 마지막에 회개하고 목을 베였다면? 당연히 그도 첫째 부활에 참예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의 목 베임은 더할 수 없이 훌륭한 성도의 행위지만 그 분이 그 이전에 늘 자기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해 온 과거는 부활할 때 주님과 왕 노릇할 때 그런 요소나 삶이나 부분들은 다 유황불구덩이에 버려야 할 것입니다.
(2) 상기 질문에 관련한 성구를 부탁하셨는데
계2:23,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고 했습니다. 관련 성구는 많습니다. 한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의 택불택으로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것은 기본구원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천국 갈 우리 택자들을 향하여, 구원 받고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를 향하여 심는 대로 거둔다 하셨고 계2:23에서는 행위대로 갚아 준다고 했습니다. 23절의 앞 부분에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핀다고 하신 다음에 행위대로 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상대의 몸의 행위만 보지만 주님은 우리의 생각까지 살펴 잘못 된 생각과 바로 된 생각을 구별하십니다. 당연히 심신의 언행심사 하나하나가 전부 행동록에 의해 별도로 심판을 받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성경 거의 전부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명령하고 금지하는 내용에 관련 된 것입니다.
(3) 목 베임을 받은 순교자를 예로 든다면
그런 훌륭한 순교자라 해도 베드로처럼 마지막 순간에 도망을 가다가 회개하고 돌아 와서 순교하는 경우도 있으니 순교자라는 이름이 그 분의 평생 잘못 산 부분까지 전부 의로운 과거로 되 살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행동은 매 현실에서 한 번 하고 나면 그 것으로 끝입니다. 평생 산 것의 총합을 두고 의인이다 죄인이다 이렇게 총평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분설하여 내면을 보면 바울의 불신 시절은 천하에 제일 못 된 악인이었고 베드로는 그런 적이 너무 많았고 우리 주변에도 귀한 성자들의 뒷 이야기를 알고 나면 그 분들에게서 가족 실패처럼 교권 투쟁에서 눈이 가려 교계를 망친 이력들이 있으니 그런 잘못 된 부분들은 모두 제거가 되고 지옥에 던져 져야 합니다.
이 잘못 된 부분들을 제거하여 지옥에 버리는 것을 둘째 사망이라 합니다.
그리고 택자의 잘못 된 부분들이 던져 지는 바로 그 곳이 사탄과 불택자가 불 타는 지옥입니다.
지옥은 하나님과 말씀에 상관이 없는 모든 것들을 영원히 형벌로 태우는 곳입니다. 사탄 자체, 불택자 자체, 택자의 잘못 산 부분까지 하나님과 말씀에 상관 없는 부분은 모두가 같습니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릴 권세가 없다 하심은 이미 택자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법적 구원을 받은 상태에서 택자들이 중생 후에 말씀대로 살고자 목 베임과 같은 여러 고난까지 통과한 생애는 겉 보기에는 인간의 수고에 그치는 것같아도 그 내면은 절대 완전의 대속이 장악을 하고 붙들고 계시므로 한 번 현실에서 말씀에 붙들려 실행하므로 의의 기능이 되고 의인의 생애가 된 부분은 다시는 그 어떤 것도 침노하거나 번복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평생도 하나님 앞에 단번이지만, 한 사람의 매 순간도 하나님 앞에 단번입니다.
현실마다 진 것은 죄의 기능이고
현실마다 이긴 것은 의의 기능이니
매 현실에 해당 된 것은 그 매 현실이 영원한 성패로 천국과 지옥으로 갈려 버리고 확정 됩니다.
(4) 성도의 생을 기능 별로 나누지 않는다면?
성경 전체는 1500년 전으로, 또는 500년 전으로 돌아 가서 한 세대 전체의 혼란을 일으 킬 대형 사고로 이어 집니다. 사람에게 목이 없다면? 사람에게 면역 체계가 없다면... 이런 가정은 짐작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정도는 아닙니다. 기능 구원을 모르는 분들은 계20장의 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 정도의 혼란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마5: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이런 성구에서도 당장에 오해나 억해로 나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사복음서의 본격적인 교훈의 첫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마태복음 5장 산상보훈 전부가 다 섞갈릴 것입니다. 이 부분이 그리 된다는 말은 이후 전부와 이전의 구약 전부가 그리 됩니다. 다윗의 실수는 다윗이라는 인물이 의인이라는 점에서 다 묻어 질 수 있는 부분인가? 반대로, 사울은 못 된 사람이라 해도 그도 하나님께 붙들려 살았던 순간이 있고 이스라엘 구원의 대표로 활동한 기간이 분명히 있는데 사울에게서는 쓸모 있는 부분이 전혀 없는가? 이런 결론으로 갑니다.
이 노선의 교리 교훈의 깊이를 더하는 질문이며 발전적 방향에서 답변하느라고 마치 토론처럼 글을 적어 죄송하나 사실 좋은 분위기라면 논쟁법이 연구에는 나은 면이 있습니다.
>> 교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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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택자)신자는 모두다 첫째 부활에 참예한다.
: 2. (택자)신자는 모두다 둘째 사망에 참예한다.
: 3. (불택자)불신자는 모두다 둘째 부활에 참예한다.
: 4. (불택자)불신자는 모두다 둘째 사망에 참예한다.
:
: 질문1. 위 주장은 이치에 다 옳습니까? 아니면 틀린 부분이 있습니까?
:
: 요한계시록 20:4-6에 보면
: 목 베임을 받은 자, 짐승과 우상경배를 아니한 자, 표를 받지 아니한 자를
: 대표적으로 첫째부활에 참예한다고 했습니다. 앞의 세 종류는 전부 행위를 언급했는데
: 어떻게 신자 전부가 첫째부활에 참예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 질문2. 요한계시록20:4-6절의 성구만으로는
: 위 1번 주장의 “신자는 모두다 첫째 부활에 참예한다”고 단정짓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 (행위가 진실하고 죽음이나 짐승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자가 첫째부활한다고 했으므로)
: 1번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다른 성구나 무슨 확실한 근거가 있는지요?
:
: 목 베임을 받은 자를 일반적으로 순교자로 표현을 했을 때
: 첫째 부활하는 자는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릴 수가 없다
: 순교자라도 죄의 기능은 지옥에 버리고 가야 하는데
: 목 베임을 받은 자가 첫째부활은 참예하고 둘째사망에는 참예하지 않는다면
:
: 질문3. 6절의 둘째사망은 불신자나 10절에 마귀가 들어가는 불과 유황 못 불못
: 즉 둘째사망과 그 의미가 다른, 기본구원적으로 우리의 심신자체가 둘째사망
: 즉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말씀인지요?
: 아니면 의의 기능은 둘째 사망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적으로 6절에 둘째 사망이 그들(목 베임받은 자의 의의 기능을 “그들을”로 표현한 것인지?)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다고 한 것인지요?
: 요한계시록 2:11절의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도 신자의 의의 기능은(이겼으므로) 둘째 사망이 없고 죄의 기능은(졌으므로) 둘째 사망이 있다로 결론을 내리면 되는지요?
:
: 질문4. 신자 안의 죄의 기능과 의의 기능으로 나누어서 의의 기능은 둘째 사망이 없고 죄의 기능은 둘째 사망이 있다로 보지 않고, 기능을 분리하지 않고 인격 자체, 사람자체를 두고 첫째부활과 둘째 사망을 정의내릴 수는 없는 것입니까?
: 그렇다면 기능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요한계시록 20장의 첫째부활과 둘째 사망을 해석할 수 없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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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5. 신자가 죄의 기능을 버리고 가는 둘째 사망과 10절에 마귀가 가는 불과 유황 못과 불택 불신자가 가는 둘째 사망 곧 불못, 지옥은 다 같은 장소인가요? 아니면 다른 곳인가요? 아니면 같은 장소에 다른 구역인가요?
: 천국의 층이 여럿이듯 지옥의 층도 여럿인지요?
: 마귀가 가는 지옥과 신자가 죄의 기능을 버리고 가는 지옥은 같은 곳인지요? 다른 곳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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