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적에서 시작하여 볼 수 없는 적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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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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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5 00:00
1. 세상사를 통한 참고
미개하던 시절은 우리 가족과 강 건너 가족이 서로 먹을 것과 농토를 놓고 노예가 되느냐 주인이 되느냐는 문제로 생사 결판을 냈습니다. 무기와 전법은 미개했으나 그 대신 왜 싸워야 하며 누가 적인지 우리 편인지는 본능이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 참 단순했습니다. 대신 사람을 마치 개잡듯이 잔인했고 지저분했습니다.
세상이 발전하면서 싸움도 발전을 합니다. 일대 일의 싸움에 제3자를 끌어 들였으니 품앗이나 외상의 개념입니다. 말하자면 외교가 전쟁의 방법이 됩니다. 무기의 발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싸우는 방법이 발전 되다 보니 미개국 시절에는 머리 수와 덩치만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급격히 지능화가 됩니다.
주먹과 주먹의 육체 싸움이 머리와 머리의 지능의 마음 싸움이 되면서부터는 적이 누군지 왜 싸우는지 이 전투의 실체가 무엇이며 이해가 어떻게 되는지 우리처럼 머리 나쁜 사람이나 마음이 착한 순진한 사람은 설명을 들어도 알 수가 없는 상태가 됩니다.
2. 귀신의 666의 싸움
악령의 수준을 성경은 '6'으로 표시합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7'로 표시를 했으니 이 땅 위에서 하나님 한 분을 빼고는 그 어떤 인간이든지 악령의 수준을 넘어 설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 투쟁은 그 종국적 대상이 악령입니다. 악령이 6에 6에 6이니 666입니다. 하나님 한 분을 빼고 인간이 생각하고 상대하려면 가히 이해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고차원입니다.
그 귀신이 우리의 신앙이 어릴 때는 어린 신앙을 삼키는 데 충분한 최소한의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처음부터 과도한 방법을 사용하면 교회의 생명은 면역력을 가지게 되므로 교회를 삼키는 데 충분하다면 그 이상의 방법은 있다 해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도 우리를 길러 가시는데 우리는 자유성을 길러 가야 하기 때문에 어린 상태에서 자기 학습을 통해 길러 가십니다. 기르시는 하나님과 가로 막는 귀신이 교회의 어린 상태에서 훗날 말세까지를 보고 역사 세계의 전쟁을 치르기 때문에 그 가운데 있는 우리는 몇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중에 질문과 관계 된 것은, 악령이 과거에는 아주 미개한 저급의 전법으로 우리를 삼켰으나 갈수록 고급의 발전 된 방법으로 우리를 상대합니다.
3. 우리가 싸울 대상
- 일제 때까지
역사적으로 신사참배라고 하는 환란까지는 역사 2천 년이든 성경 역사 4천 년까지 거슬러 올라 가든 같습니다. 형들 앞에 선 요셉, 사자굴 앞에 선 다니엘, 헤롯 앞에 선 요한, 황제 앞에 선 로마 교인, 천주교 화형대에 매인 중세 교인과 일본의 박해 앞에 선 1940년대 한국 교회는 별로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 1945년의 공산주의
해방 후 북한 교회는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되 인민을 착취하는 교회의 범죄 행위는 방치할 수 없다는 공산당의 숙제를 풀어야 했습니다. 이래 보면 종교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인데 저렇게 보면 교회를 말살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숙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산정현교회의 한상동 목사와 조만식 장로입니다. 지금은 아무도 믿지 않는 상식이나 당시로서는 이 문제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조만식이라는 민족 제1의 애국자며 실력자며 신앙인이 당시 이 문제를 전혀 풀 수가 없어 김일성에게 농락을 당했고 결국 완패했습니다. 교회의 인민 착취 여부는 공산당이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종교 자유니 뭐니 하는 말은 교회를 사로 잡는 오랏줄이었습니다.
- 1945년 후 남한 교회
일본이 망하고 한국 교회의 전도인이며 후원인인 미국의 남한 통치를 두고 남한 교회는 복음의 전성기를 마련할 발판으로 보았습니다. 공회는 미국의 남한 통치가 남한의 불신 세상에게는 먹여 주고 발전을 시켜 주는 구세주가 될 것이나 한국 교회는 미국의 타락한 세속주의에게 통째로 먹히는 참담한 결과가 될 것으로 내다 보았습니다. 공회는 시대적으로 바뀌는 적을 알았고, 교계는 몰랐습니다. 교계는 희망조차 없을 만큼 탈선의 길을 걸었고 현재 한국에는 교회가 없다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공회는 알았고 배웠으나 원래 신앙의 자질이 형편 없어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알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에게는 소망이라도 있습니다.
- 1989년까지의 한국 사회
80년대 당시에 남침 위협을 언급하면 군사 정부에 속았거나 그 하수인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소련과 중국과 북한의 내부 자료들이 속속 공개 되면서 70년대와 80년대의 한국은 위기의 순간이 수 없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웃던 이들이 비웃음을 받아야 하고, 그들이 비웃든 말든 공회는 세상의 허풍은 허풍으로, 세상의 위협은 위협으로 분리해서 파악하고 대비해 왔으니 1975년 봄 집회는 공회가 마치 6.25 발발 소식을 듣고 긴장하던 그런 자세였고 80년대에도 그러했던 때가 더러 있었습니다. 백 목사님의 생존 마지막까지 이런 일이 계속 되었는데
- 1990년대의 한국 사회
백 목사님이 돌아 가신 1989년의 다음 해인 1990년 10월에 동독이 망하고 서독이 독일 전부를 통일합니다. 서독의 승리가 아니라 소련이 망해서 생긴 일입니다. 백 목사님의 사후 바로 다음 해에 1백여 년의 역사를 가진 공산주의는 밑둥이 썩어 넘어 집니다. 지금 남아서 준동하는 좌파 활동은 쓰러 진 고목에서 기어 나온 각종 벌레들과 부산물들이 사방 천지를 어지럽히는 모습입니다. 하나의 세력으로서 공산주의는 1990년이 사망일입니다. 문제는 하나의 단결 된 모습이 쓰러 지면서 수도 없는 작은 미세 입자들로 나뉘어 져 지금은 공산주의 사상에 물이 들어 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바로 이 면까지를 보면서 백 목사님은 공산주의가 자유진영을 마침내 이길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미국 영국 유럽은 물론 남한 사회도 적화가 절반 이상이 되었다 할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 참으로 고약한 '최악의 조합'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자유진영과 공산국가의 일대 일로 싸우던 시절은 사실 적이 하나였고 눈으로 파악이 되었는데 겉 보기에 공산 국가가 없어 지고 모두 망해 버린 지금, 겉 보기에 자본주의 자유진영은 승리하고 역사에 유래를 찾아 볼 수가 없고 과거 상상으로도 생각하지 못한 풍요가 넘치고 있는데, 정작 신앙으로 살아야 할 우리에게는 최악의 조합으로 탄생한 고약한 적을 두고 있습니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눈 위에 서릿발이 선다더니, 넘어 진 자리가 맨홀이라더니, 공산주의가 하나의 세력으로서는 망하고 없어 졌는데 그 곳에서 유출 된 쓰레기들이 미세 먼지가 되어 자본주의 사회 어느 한 곳도 빼지 않고 전부를 뒤 덮어 버렸습니다. 이제 공산주의식으로 말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교회가 없고, 강단이 없고, 그렇지 않은 반공주의자가 없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반공 자유 진영 내의 자유는 모두가 죄 지을 자유, 썩을 자유, 망할 자유, 남을 썩어 문드러지게 할 권리의 무한한 확보를 주장하면서 이 것이 자본주의의 참된 승리인 줄 알고 있습니다. 6.25 전쟁 당시 38선에 선 사람 꼴이 되었습니다. 양 쪽의 포화와 총탄을 모두 받아야 할 처지입니다.
4. 오늘의 적
주 5일 근무제라는 자본주의의 활짝 핀 꽃 위에 생각하지도 않게 주일이 실종 되었습니다.
주 5일 근무제에 남들처럼 마음껏 놀지 못한다는 사람을 위해 좌파적 지원이 집중 되면서 주 5일 근무제에도 불구하고 주일을 지키려는 이들에게 주말의 무료 행사를 쏟아 부음으로 그 홍수에 떠내려 가게 해 버립니다. 만사가 이런 모습입니다.
미개하던 시절, 불과 일제 때까지만 해도 매를 들고 계명을 지키느냐 버리느냐는 단순한 싸움만 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 주신 자연은총을 얼마나 어떻게 누리느냐는 행복한 고민에 싸여 이미 교회와 신앙이 없어 져 버렸습니다. 생존을 담보하는 직장조차 주일 때문에 버린 것이 공회 신앙인데 이제는 세상을 향한 자기 성취감을 얻으려는 철 없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 스스로 주일날 시험을 치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세상의 과거 전쟁은 적과 아군이 뚜렷했고 싸우는 목적이 절체절명의 것이었는데, 이제는 누가 적인지 왜 싸우는지 누가 무엇을 얻는지도 모를 만큼 아주 어려운 시대인 것처럼 교회도 누가 적인지 언제 어떻게 싸워야 할지를 모를 만큼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군에 입대하는 신앙의 청년이 주일 날 보초를 서야 하는 문제로 고민을 했는데, 주일에 보초를 거부하는 것은 인권이 극도로 보장 되는 오늘 날 그리고 야당 쪽에서는 군대를 없애자는 말이 나오고 태극기를 밟아 버리는 분위기로 군대를 지켜 보고 있으니 사실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군인이 부대 생활을 하면서 자기 한 사람 빼놓고 부대 내 온 군인들이 온갖 음란 퇴폐 향락적인 말과 행동을 어지럽게 펼치는 한 가운데서 자기 사상과 말과 행동과 도덕을 깨끗하게 지키기란 어려워도 너무 어려울 듯합니다. 옆에 있는 군인들이 전부 20대 초반의 혈기 넘치는 죄인들인데 그들 입과 행동이 온갖 남녀 이성에 대한 농담과 표현으로 가득 채울 때 그 속에서 우리의 생각 하나까지 보초를 세워 그들의 언행이 더럽힐 수 없도록 싸우려면, 군 부대의 정문 앞에 보초 서는 싸움 이기기는 쉬우나 이런 퇴폐적 세상 언행에 물 들지 않으려는 싸움을 이기는 것은 군 생활 내내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싸워도 이길지 질지 모르는 전쟁입니다.
결혼의 경우도, 세상에 물 들어 있는 상대방과 결혼을 하여 부부가 원만하게 살아 가게 되면 한 사람이 요즘 세상에 익어 있는 언행심사와 생활을 하게 되고 그 상대방과 소리 없는 전쟁을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그리고 끝나지도 않을 뿐더러 구약 이스라엘 역사를 봐서 알지만 마침내 이방을 따라 가다가 망하는 결론으로 나가는 식입니다.
오늘 우리의 적은
공부를 얼마나 해야 하는가,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가, 어느 것을 언제 잘라 버릴 것인가?
어떤 직업을 택할 것인가, 얼마 정도만 벌 것인가... 이런 식의 싸움을 해야 할 것이고.
소위 문화 여가 생활이라는 것 전체가 가장 크고 무서운 적이 앞 세운 돌격대임을 알아야 할 것이니
바로 이런 것이 오늘 우리의 원수들인데 이미 교회가 입시를 위해 기도회를 하고, 연보만 많이 한다면 직업의 종류를 선별하거나 제재하는 일도 없고, 교회의 예배 순서에조차 세상의 퇴폐 문화와 귀신 놀음이 가득 차고 들어 와 앉아 버렸으니 오늘의 적과 우리의 싸울 대상은 실제 이렇다고 보입니다.
>> 신학생2 님이 쓰신 내용 <<
:
: 오늘 우리가 싸울 대상은 무엇이며 어떤 면을 조심해야 할까요?
:
: 설교록 내용을 보면 백목사님은 신앙 초기에는 일제의 고문과 고형을 각오하셨고 해방후 45년은 평생에 공산주의자의 독침을 대비하고 매순간 순교정신으로 깨어있었습니다.
:
: 지금 일제 고문과 고형은 지나갔습니다. 앞으로 언제 그런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은 알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또 공산주의자의 독침도 설교록을 듣는 일반 교인에게는 평생에 당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설교록이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면, 그리고 설교록이 오늘 우리 모든 일반 교인에게도 매사에 다 적용이 되는 오늘의 말씀이라면, 오늘 우리 일반 교인들과 우리가 맡은 청소년들에게 목숨 다해서 긴장하고 싸울 대상을 무엇이라고 지칭해 줘야 할까요?
:
: 공회 어느 교회를 가보니까 마치 곧 인민군이 쳐내려오면 순교해야 한다는 식으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전쟁이 난다해도 이제는 서울 이북에서 공방전이 벌어지다가 북한은 요즘 이라크처럼 끝장이 난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굳이 가능성을 두고 말하자면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져서 죽을 수도 있으나 강단에서 마른 번개에 죽는다는 예화를 항상 하게 되면 강단의 설교조차 이상하게 받아들일 것같습니다. 시대의 조류에 맞춰가자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알고 싶어 문의드립니다.
:
: 오늘 우리의 대적은 무엇일까요? 어떤 적을 가르치고 어떻게 싸우기를 예비시켜야 할까요?
미개하던 시절은 우리 가족과 강 건너 가족이 서로 먹을 것과 농토를 놓고 노예가 되느냐 주인이 되느냐는 문제로 생사 결판을 냈습니다. 무기와 전법은 미개했으나 그 대신 왜 싸워야 하며 누가 적인지 우리 편인지는 본능이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 참 단순했습니다. 대신 사람을 마치 개잡듯이 잔인했고 지저분했습니다.
세상이 발전하면서 싸움도 발전을 합니다. 일대 일의 싸움에 제3자를 끌어 들였으니 품앗이나 외상의 개념입니다. 말하자면 외교가 전쟁의 방법이 됩니다. 무기의 발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싸우는 방법이 발전 되다 보니 미개국 시절에는 머리 수와 덩치만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급격히 지능화가 됩니다.
주먹과 주먹의 육체 싸움이 머리와 머리의 지능의 마음 싸움이 되면서부터는 적이 누군지 왜 싸우는지 이 전투의 실체가 무엇이며 이해가 어떻게 되는지 우리처럼 머리 나쁜 사람이나 마음이 착한 순진한 사람은 설명을 들어도 알 수가 없는 상태가 됩니다.
2. 귀신의 666의 싸움
악령의 수준을 성경은 '6'으로 표시합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7'로 표시를 했으니 이 땅 위에서 하나님 한 분을 빼고는 그 어떤 인간이든지 악령의 수준을 넘어 설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 투쟁은 그 종국적 대상이 악령입니다. 악령이 6에 6에 6이니 666입니다. 하나님 한 분을 빼고 인간이 생각하고 상대하려면 가히 이해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고차원입니다.
그 귀신이 우리의 신앙이 어릴 때는 어린 신앙을 삼키는 데 충분한 최소한의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처음부터 과도한 방법을 사용하면 교회의 생명은 면역력을 가지게 되므로 교회를 삼키는 데 충분하다면 그 이상의 방법은 있다 해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도 우리를 길러 가시는데 우리는 자유성을 길러 가야 하기 때문에 어린 상태에서 자기 학습을 통해 길러 가십니다. 기르시는 하나님과 가로 막는 귀신이 교회의 어린 상태에서 훗날 말세까지를 보고 역사 세계의 전쟁을 치르기 때문에 그 가운데 있는 우리는 몇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중에 질문과 관계 된 것은, 악령이 과거에는 아주 미개한 저급의 전법으로 우리를 삼켰으나 갈수록 고급의 발전 된 방법으로 우리를 상대합니다.
3. 우리가 싸울 대상
- 일제 때까지
역사적으로 신사참배라고 하는 환란까지는 역사 2천 년이든 성경 역사 4천 년까지 거슬러 올라 가든 같습니다. 형들 앞에 선 요셉, 사자굴 앞에 선 다니엘, 헤롯 앞에 선 요한, 황제 앞에 선 로마 교인, 천주교 화형대에 매인 중세 교인과 일본의 박해 앞에 선 1940년대 한국 교회는 별로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 1945년의 공산주의
해방 후 북한 교회는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되 인민을 착취하는 교회의 범죄 행위는 방치할 수 없다는 공산당의 숙제를 풀어야 했습니다. 이래 보면 종교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인데 저렇게 보면 교회를 말살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숙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산정현교회의 한상동 목사와 조만식 장로입니다. 지금은 아무도 믿지 않는 상식이나 당시로서는 이 문제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조만식이라는 민족 제1의 애국자며 실력자며 신앙인이 당시 이 문제를 전혀 풀 수가 없어 김일성에게 농락을 당했고 결국 완패했습니다. 교회의 인민 착취 여부는 공산당이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종교 자유니 뭐니 하는 말은 교회를 사로 잡는 오랏줄이었습니다.
- 1945년 후 남한 교회
일본이 망하고 한국 교회의 전도인이며 후원인인 미국의 남한 통치를 두고 남한 교회는 복음의 전성기를 마련할 발판으로 보았습니다. 공회는 미국의 남한 통치가 남한의 불신 세상에게는 먹여 주고 발전을 시켜 주는 구세주가 될 것이나 한국 교회는 미국의 타락한 세속주의에게 통째로 먹히는 참담한 결과가 될 것으로 내다 보았습니다. 공회는 시대적으로 바뀌는 적을 알았고, 교계는 몰랐습니다. 교계는 희망조차 없을 만큼 탈선의 길을 걸었고 현재 한국에는 교회가 없다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공회는 알았고 배웠으나 원래 신앙의 자질이 형편 없어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알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에게는 소망이라도 있습니다.
- 1989년까지의 한국 사회
80년대 당시에 남침 위협을 언급하면 군사 정부에 속았거나 그 하수인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소련과 중국과 북한의 내부 자료들이 속속 공개 되면서 70년대와 80년대의 한국은 위기의 순간이 수 없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웃던 이들이 비웃음을 받아야 하고, 그들이 비웃든 말든 공회는 세상의 허풍은 허풍으로, 세상의 위협은 위협으로 분리해서 파악하고 대비해 왔으니 1975년 봄 집회는 공회가 마치 6.25 발발 소식을 듣고 긴장하던 그런 자세였고 80년대에도 그러했던 때가 더러 있었습니다. 백 목사님의 생존 마지막까지 이런 일이 계속 되었는데
- 1990년대의 한국 사회
백 목사님이 돌아 가신 1989년의 다음 해인 1990년 10월에 동독이 망하고 서독이 독일 전부를 통일합니다. 서독의 승리가 아니라 소련이 망해서 생긴 일입니다. 백 목사님의 사후 바로 다음 해에 1백여 년의 역사를 가진 공산주의는 밑둥이 썩어 넘어 집니다. 지금 남아서 준동하는 좌파 활동은 쓰러 진 고목에서 기어 나온 각종 벌레들과 부산물들이 사방 천지를 어지럽히는 모습입니다. 하나의 세력으로서 공산주의는 1990년이 사망일입니다. 문제는 하나의 단결 된 모습이 쓰러 지면서 수도 없는 작은 미세 입자들로 나뉘어 져 지금은 공산주의 사상에 물이 들어 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바로 이 면까지를 보면서 백 목사님은 공산주의가 자유진영을 마침내 이길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미국 영국 유럽은 물론 남한 사회도 적화가 절반 이상이 되었다 할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 참으로 고약한 '최악의 조합'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자유진영과 공산국가의 일대 일로 싸우던 시절은 사실 적이 하나였고 눈으로 파악이 되었는데 겉 보기에 공산 국가가 없어 지고 모두 망해 버린 지금, 겉 보기에 자본주의 자유진영은 승리하고 역사에 유래를 찾아 볼 수가 없고 과거 상상으로도 생각하지 못한 풍요가 넘치고 있는데, 정작 신앙으로 살아야 할 우리에게는 최악의 조합으로 탄생한 고약한 적을 두고 있습니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눈 위에 서릿발이 선다더니, 넘어 진 자리가 맨홀이라더니, 공산주의가 하나의 세력으로서는 망하고 없어 졌는데 그 곳에서 유출 된 쓰레기들이 미세 먼지가 되어 자본주의 사회 어느 한 곳도 빼지 않고 전부를 뒤 덮어 버렸습니다. 이제 공산주의식으로 말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교회가 없고, 강단이 없고, 그렇지 않은 반공주의자가 없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반공 자유 진영 내의 자유는 모두가 죄 지을 자유, 썩을 자유, 망할 자유, 남을 썩어 문드러지게 할 권리의 무한한 확보를 주장하면서 이 것이 자본주의의 참된 승리인 줄 알고 있습니다. 6.25 전쟁 당시 38선에 선 사람 꼴이 되었습니다. 양 쪽의 포화와 총탄을 모두 받아야 할 처지입니다.
4. 오늘의 적
주 5일 근무제라는 자본주의의 활짝 핀 꽃 위에 생각하지도 않게 주일이 실종 되었습니다.
주 5일 근무제에 남들처럼 마음껏 놀지 못한다는 사람을 위해 좌파적 지원이 집중 되면서 주 5일 근무제에도 불구하고 주일을 지키려는 이들에게 주말의 무료 행사를 쏟아 부음으로 그 홍수에 떠내려 가게 해 버립니다. 만사가 이런 모습입니다.
미개하던 시절, 불과 일제 때까지만 해도 매를 들고 계명을 지키느냐 버리느냐는 단순한 싸움만 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 주신 자연은총을 얼마나 어떻게 누리느냐는 행복한 고민에 싸여 이미 교회와 신앙이 없어 져 버렸습니다. 생존을 담보하는 직장조차 주일 때문에 버린 것이 공회 신앙인데 이제는 세상을 향한 자기 성취감을 얻으려는 철 없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 스스로 주일날 시험을 치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세상의 과거 전쟁은 적과 아군이 뚜렷했고 싸우는 목적이 절체절명의 것이었는데, 이제는 누가 적인지 왜 싸우는지 누가 무엇을 얻는지도 모를 만큼 아주 어려운 시대인 것처럼 교회도 누가 적인지 언제 어떻게 싸워야 할지를 모를 만큼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군에 입대하는 신앙의 청년이 주일 날 보초를 서야 하는 문제로 고민을 했는데, 주일에 보초를 거부하는 것은 인권이 극도로 보장 되는 오늘 날 그리고 야당 쪽에서는 군대를 없애자는 말이 나오고 태극기를 밟아 버리는 분위기로 군대를 지켜 보고 있으니 사실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군인이 부대 생활을 하면서 자기 한 사람 빼놓고 부대 내 온 군인들이 온갖 음란 퇴폐 향락적인 말과 행동을 어지럽게 펼치는 한 가운데서 자기 사상과 말과 행동과 도덕을 깨끗하게 지키기란 어려워도 너무 어려울 듯합니다. 옆에 있는 군인들이 전부 20대 초반의 혈기 넘치는 죄인들인데 그들 입과 행동이 온갖 남녀 이성에 대한 농담과 표현으로 가득 채울 때 그 속에서 우리의 생각 하나까지 보초를 세워 그들의 언행이 더럽힐 수 없도록 싸우려면, 군 부대의 정문 앞에 보초 서는 싸움 이기기는 쉬우나 이런 퇴폐적 세상 언행에 물 들지 않으려는 싸움을 이기는 것은 군 생활 내내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싸워도 이길지 질지 모르는 전쟁입니다.
결혼의 경우도, 세상에 물 들어 있는 상대방과 결혼을 하여 부부가 원만하게 살아 가게 되면 한 사람이 요즘 세상에 익어 있는 언행심사와 생활을 하게 되고 그 상대방과 소리 없는 전쟁을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그리고 끝나지도 않을 뿐더러 구약 이스라엘 역사를 봐서 알지만 마침내 이방을 따라 가다가 망하는 결론으로 나가는 식입니다.
오늘 우리의 적은
공부를 얼마나 해야 하는가,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가, 어느 것을 언제 잘라 버릴 것인가?
어떤 직업을 택할 것인가, 얼마 정도만 벌 것인가... 이런 식의 싸움을 해야 할 것이고.
소위 문화 여가 생활이라는 것 전체가 가장 크고 무서운 적이 앞 세운 돌격대임을 알아야 할 것이니
바로 이런 것이 오늘 우리의 원수들인데 이미 교회가 입시를 위해 기도회를 하고, 연보만 많이 한다면 직업의 종류를 선별하거나 제재하는 일도 없고, 교회의 예배 순서에조차 세상의 퇴폐 문화와 귀신 놀음이 가득 차고 들어 와 앉아 버렸으니 오늘의 적과 우리의 싸울 대상은 실제 이렇다고 보입니다.
>> 신학생2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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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가 싸울 대상은 무엇이며 어떤 면을 조심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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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록 내용을 보면 백목사님은 신앙 초기에는 일제의 고문과 고형을 각오하셨고 해방후 45년은 평생에 공산주의자의 독침을 대비하고 매순간 순교정신으로 깨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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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일제 고문과 고형은 지나갔습니다. 앞으로 언제 그런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은 알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또 공산주의자의 독침도 설교록을 듣는 일반 교인에게는 평생에 당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설교록이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면, 그리고 설교록이 오늘 우리 모든 일반 교인에게도 매사에 다 적용이 되는 오늘의 말씀이라면, 오늘 우리 일반 교인들과 우리가 맡은 청소년들에게 목숨 다해서 긴장하고 싸울 대상을 무엇이라고 지칭해 줘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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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회 어느 교회를 가보니까 마치 곧 인민군이 쳐내려오면 순교해야 한다는 식으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전쟁이 난다해도 이제는 서울 이북에서 공방전이 벌어지다가 북한은 요즘 이라크처럼 끝장이 난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굳이 가능성을 두고 말하자면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져서 죽을 수도 있으나 강단에서 마른 번개에 죽는다는 예화를 항상 하게 되면 강단의 설교조차 이상하게 받아들일 것같습니다. 시대의 조류에 맞춰가자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알고 싶어 문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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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대적은 무엇일까요? 어떤 적을 가르치고 어떻게 싸우기를 예비시켜야 할까요?
오늘 우리의 투쟁 대상
오늘 우리가 싸울 대상은 무엇이며 어떤 면을 조심해야 할까요?
설교록 내용을 보면 백목사님은 신앙 초기에는 일제의 고문과 고형을 각오하셨고 해방후 45년은 평생에 공산주의자의 독침을 대비하고 매순간 순교정신으로 깨어있었습니다.
지금 일제 고문과 고형은 지나갔습니다. 앞으로 언제 그런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은 알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또 공산주의자의 독침도 설교록을 듣는 일반 교인에게는 평생에 당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설교록이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면, 그리고 설교록이 오늘 우리 모든 일반 교인에게도 매사에 다 적용이 되는 오늘의 말씀이라면, 오늘 우리 일반 교인들과 우리가 맡은 청소년들에게 목숨 다해서 긴장하고 싸울 대상을 무엇이라고 지칭해 줘야 할까요?
공회 어느 교회를 가보니까 마치 곧 인민군이 쳐내려오면 순교해야 한다는 식으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전쟁이 난다해도 이제는 서울 이북에서 공방전이 벌어지다가 북한은 요즘 이라크처럼 끝장이 난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굳이 가능성을 두고 말하자면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져서 죽을 수도 있으나 강단에서 마른 번개에 죽는다는 예화를 항상 하게 되면 강단의 설교조차 이상하게 받아들일 것같습니다. 시대의 조류에 맞춰가자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알고 싶어 문의드립니다.
오늘 우리의 대적은 무엇일까요? 어떤 적을 가르치고 어떻게 싸우기를 예비시켜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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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싸울 대상은 무엇이며 어떤 면을 조심해야 할까요?
설교록 내용을 보면 백목사님은 신앙 초기에는 일제의 고문과 고형을 각오하셨고 해방후 45년은 평생에 공산주의자의 독침을 대비하고 매순간 순교정신으로 깨어있었습니다.
지금 일제 고문과 고형은 지나갔습니다. 앞으로 언제 그런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은 알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또 공산주의자의 독침도 설교록을 듣는 일반 교인에게는 평생에 당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설교록이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면, 그리고 설교록이 오늘 우리 모든 일반 교인에게도 매사에 다 적용이 되는 오늘의 말씀이라면, 오늘 우리 일반 교인들과 우리가 맡은 청소년들에게 목숨 다해서 긴장하고 싸울 대상을 무엇이라고 지칭해 줘야 할까요?
공회 어느 교회를 가보니까 마치 곧 인민군이 쳐내려오면 순교해야 한다는 식으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전쟁이 난다해도 이제는 서울 이북에서 공방전이 벌어지다가 북한은 요즘 이라크처럼 끝장이 난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굳이 가능성을 두고 말하자면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져서 죽을 수도 있으나 강단에서 마른 번개에 죽는다는 예화를 항상 하게 되면 강단의 설교조차 이상하게 받아들일 것같습니다. 시대의 조류에 맞춰가자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알고 싶어 문의드립니다.
오늘 우리의 대적은 무엇일까요? 어떤 적을 가르치고 어떻게 싸우기를 예비시켜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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