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지성과 믿음의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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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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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1 00:00
1. 아이의 지성과 감성
세 살 아이가 어머니를 좋아하는 것은 지식으로 살펴 보고 이성으로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닙니다. 지성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맹목적입니다. 이유도 없고 자료도 없고 따질 것도 없고 아이는 무조건 제 어머니만 좋아합니다. 그래서 아이의 어머니는 모성애라는 것을 원래 가지고 있지만 아이가 어머니를 향해 무조건적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자기 모성애에 기름을 갖다 붓는 모습을 보입니다. 젖먹이 아이가 유아실에 있는 다른 엄마를 쳐다 보면서 키를 재 보고 인물을 따져 보며 경제력과 함께 수유량까지 암산해 가면서 눈치를 보고 어디로 붙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면 어머니의 기분은 아주 달라 질 듯합니다. 아마 소름이 끼치지 않을까요? 그런데 태어 난 아이는 제 어머니 하나에 맹목적으로 울며 매달리고 온갖 행복한 얼굴로 웃음을 보냅니다. 이 모습에 한 여자는 자기 아닌 다른 생명 하나에게 자기 인생을 생각도 하지 않고 다 바쳐 버립니다.
사실 태어 난 아이는 자기 어머니가 자기 어머니인 사실을 모릅니다. 지성이 아니라 감성으로만 어머니를 상대합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살아 남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모든 것을 다 끌어 옵니다. 아이가 처음부터 지성적으로 상대하게 되면 어머니도 자꾸 지성적이 됩니다. 계산을 자꾸 하다 보면 아이라는 것은 가지는 것부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성인이 될수록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감성으로 생명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해결해 놓고, 그리고 자라 감에 따라 조금씩 지성으로 계산을 하기 시작합니다. 감성은 즉각적인 효력이 있으나 감성을 가지고는 대형 건축물을 쌓아 갈 수는 없습니다. 지성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2. 신앙의 세계에서
애매하고 잘 모르는 것이 나오면 부부와 부모 자녀 그리고 가정이라는 세계로 살펴 보면 금방 해결이 됩니다. 하나님의 실존이 물질이 아니고 우리의 영의 세계도 아니고 영계의 일반 영물로도 알 수가 없는 그 이상의 존재이니 알려 준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 살 아이에게 어머니가 '내가 네 어머니다' 이렇게 고지해도 그 단어의 뜻을 아이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알리신 것은 우리 수준에서 조금씩 알려 가는 정도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려면 죽은 후 영계에서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불신자를 신자로 만드는 정도, 세상은 지은 분이 계신다는 정도, 모든 것은 무에서 만들어 졌으며 하나님은 만든 분이라는 이런 몇 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것이 하나님의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은 성경을 읽고 깨달아 가면서 그 깊이와 그 정도를 늘려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지식적인 면으로 우리를 가르치는 수단입니다. 되찾은 아이에게 호적을 보여 주며 부모의 지난 날 사진을 보여 주며 그 집에 다른 아이들이 출세한 기록 영화를 보여 주는 것과 같습니다. 전란에 잃었다가 되찾은 왕자에게 궁궐의 법도를 알려 주며 왕실과 국가의 재산과 통계 수치를 보여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 왕자나 그 되 찾은 아이의 지능이 좀 낮다면 이런 수치나 공부는 괴로운 것입니다. 그 대신 그 아이에게 감성이 풍부하다면 부모에게 안겨 보며 그 어떤 표현도 계산도 필요 없는 느낌, 안정감, 행복감으로 그냥 행복할 것입니다. 아무 말도 필요가 없고 누구 무슨 소리가 상관이 없는 핏줄의 끌림 현상은 감성이 좋은 사람에게는 백 번 천 번의 설명보다 RNA DNA 무슨 생물학적 검사나 표현들을 다 동원해도 근접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유병언의 사망이 실제인 이상 구원파 교도들이 그들의 소원과 느낌을 앞 세워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해 봐야 행정청과 사법기관의 처리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되 찾은 아이에게는 지식적으로 아무리 친자가 확인 된다 해도 감성적으로 부모 자식의 포근함이 되찾아 지지 않는다면 되 찾은 것이 큰 화근이 될 수 있습니다. 당장에는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3. 결론적으로
지식이 따라 가지 않으면 멀리 높게 좋게 발전하지는 못합니다.
감성이 있으면 이유도 계산도 따질 것도 없이 무조건 다 해결이 됩니다.
어린 때에 해당 되는 일입니다. 신앙의 초기에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 초기의 무식한 여인들이 한 맺힌 마음으로 예배당을 채웠고 밤을 샜고 이 무서운 감성적 신앙이 세계 기독교사에 유례 없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성경을 읽고 따지고 살피고 묻고 대화하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갑작스런 부흥은 가져 왔으나 그 부흥의 속을 뒤져 보면 거품뿐입니다. 이단들이 몇 마디 논리로 마음대로 휘젓을 수 있는 곳, TV 코메디 흉내로 전대미문의 교인을 모아 놓을 수 있고 그 것을 심령 부흥이라고 해도 통하는 곳, 믿어 본 적도 없는 학자가 그 주 전공을 신학으로 삼으면 그의 말 한 마디에 한국 교회의 교리와 진행 방향을 바꾸는 상황입니다.
훗날과 넓은 면을 생각하면 성경을 읽고 깨달아 가는 지성의 세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당장 믿음의 효력을 보고 교회가 제대로 돌아 가려면 미신으로 오해 받을 정도의 감성이 필요합니다.
성경의 지성과 믿음의 감성이 신앙 발전의 단계에 따라 적절하게 배분이 된다면 정말 이상적인 상황이 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는 그런 상황을 주지 않습니다. 믿음이 강하다 싶으면 맹목적 신앙에 미신적 요소가 보이고,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고 붙들었다고 느껴 지면 이미 그에게는 신령한 믿음의 세계는 구경조차 해 보지 않은 듯 합니다. 둘을 조금만 붙들어도 굉장한 신앙이 됩니다. 백 목사님처럼 무식하게 맹목적 신앙으로 출발한 다음에 기독교 최고 수준의 교리를 넘어 서는 지성적 신앙을 겸비하는 경우는 역사에 거의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4. 결론적으로
질문이 간단하면 안내를 자세히 하기 어렵고 혹시 시도를 해 봐도 자칫 동문서답 되기 쉬워 조심이 됩니다. 일단 짧은 질문을 두고, 이 곳을 방문하는 적지 않은 분들의 공통적인 고민을 함께 안내하기 위해 이 건 관련 기본적인 몇 가지를 적어 봤습니다.
필요하면 좀 구체적으로 또는 다시 지적하거나 적어 주십시오.
>> 초보신앙 님이 쓰신 내용 <<
:
: 목사님
: 하나님의 자존을 믿고싶은데 잘이해가 안됩니다.
: 자존의 뜻은 알겠는데 나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될때
: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세 살 아이가 어머니를 좋아하는 것은 지식으로 살펴 보고 이성으로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닙니다. 지성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맹목적입니다. 이유도 없고 자료도 없고 따질 것도 없고 아이는 무조건 제 어머니만 좋아합니다. 그래서 아이의 어머니는 모성애라는 것을 원래 가지고 있지만 아이가 어머니를 향해 무조건적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자기 모성애에 기름을 갖다 붓는 모습을 보입니다. 젖먹이 아이가 유아실에 있는 다른 엄마를 쳐다 보면서 키를 재 보고 인물을 따져 보며 경제력과 함께 수유량까지 암산해 가면서 눈치를 보고 어디로 붙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면 어머니의 기분은 아주 달라 질 듯합니다. 아마 소름이 끼치지 않을까요? 그런데 태어 난 아이는 제 어머니 하나에 맹목적으로 울며 매달리고 온갖 행복한 얼굴로 웃음을 보냅니다. 이 모습에 한 여자는 자기 아닌 다른 생명 하나에게 자기 인생을 생각도 하지 않고 다 바쳐 버립니다.
사실 태어 난 아이는 자기 어머니가 자기 어머니인 사실을 모릅니다. 지성이 아니라 감성으로만 어머니를 상대합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살아 남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모든 것을 다 끌어 옵니다. 아이가 처음부터 지성적으로 상대하게 되면 어머니도 자꾸 지성적이 됩니다. 계산을 자꾸 하다 보면 아이라는 것은 가지는 것부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성인이 될수록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감성으로 생명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해결해 놓고, 그리고 자라 감에 따라 조금씩 지성으로 계산을 하기 시작합니다. 감성은 즉각적인 효력이 있으나 감성을 가지고는 대형 건축물을 쌓아 갈 수는 없습니다. 지성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2. 신앙의 세계에서
애매하고 잘 모르는 것이 나오면 부부와 부모 자녀 그리고 가정이라는 세계로 살펴 보면 금방 해결이 됩니다. 하나님의 실존이 물질이 아니고 우리의 영의 세계도 아니고 영계의 일반 영물로도 알 수가 없는 그 이상의 존재이니 알려 준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 살 아이에게 어머니가 '내가 네 어머니다' 이렇게 고지해도 그 단어의 뜻을 아이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알리신 것은 우리 수준에서 조금씩 알려 가는 정도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려면 죽은 후 영계에서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불신자를 신자로 만드는 정도, 세상은 지은 분이 계신다는 정도, 모든 것은 무에서 만들어 졌으며 하나님은 만든 분이라는 이런 몇 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것이 하나님의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은 성경을 읽고 깨달아 가면서 그 깊이와 그 정도를 늘려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지식적인 면으로 우리를 가르치는 수단입니다. 되찾은 아이에게 호적을 보여 주며 부모의 지난 날 사진을 보여 주며 그 집에 다른 아이들이 출세한 기록 영화를 보여 주는 것과 같습니다. 전란에 잃었다가 되찾은 왕자에게 궁궐의 법도를 알려 주며 왕실과 국가의 재산과 통계 수치를 보여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 왕자나 그 되 찾은 아이의 지능이 좀 낮다면 이런 수치나 공부는 괴로운 것입니다. 그 대신 그 아이에게 감성이 풍부하다면 부모에게 안겨 보며 그 어떤 표현도 계산도 필요 없는 느낌, 안정감, 행복감으로 그냥 행복할 것입니다. 아무 말도 필요가 없고 누구 무슨 소리가 상관이 없는 핏줄의 끌림 현상은 감성이 좋은 사람에게는 백 번 천 번의 설명보다 RNA DNA 무슨 생물학적 검사나 표현들을 다 동원해도 근접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유병언의 사망이 실제인 이상 구원파 교도들이 그들의 소원과 느낌을 앞 세워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해 봐야 행정청과 사법기관의 처리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되 찾은 아이에게는 지식적으로 아무리 친자가 확인 된다 해도 감성적으로 부모 자식의 포근함이 되찾아 지지 않는다면 되 찾은 것이 큰 화근이 될 수 있습니다. 당장에는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3. 결론적으로
지식이 따라 가지 않으면 멀리 높게 좋게 발전하지는 못합니다.
감성이 있으면 이유도 계산도 따질 것도 없이 무조건 다 해결이 됩니다.
어린 때에 해당 되는 일입니다. 신앙의 초기에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 초기의 무식한 여인들이 한 맺힌 마음으로 예배당을 채웠고 밤을 샜고 이 무서운 감성적 신앙이 세계 기독교사에 유례 없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성경을 읽고 따지고 살피고 묻고 대화하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갑작스런 부흥은 가져 왔으나 그 부흥의 속을 뒤져 보면 거품뿐입니다. 이단들이 몇 마디 논리로 마음대로 휘젓을 수 있는 곳, TV 코메디 흉내로 전대미문의 교인을 모아 놓을 수 있고 그 것을 심령 부흥이라고 해도 통하는 곳, 믿어 본 적도 없는 학자가 그 주 전공을 신학으로 삼으면 그의 말 한 마디에 한국 교회의 교리와 진행 방향을 바꾸는 상황입니다.
훗날과 넓은 면을 생각하면 성경을 읽고 깨달아 가는 지성의 세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당장 믿음의 효력을 보고 교회가 제대로 돌아 가려면 미신으로 오해 받을 정도의 감성이 필요합니다.
성경의 지성과 믿음의 감성이 신앙 발전의 단계에 따라 적절하게 배분이 된다면 정말 이상적인 상황이 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는 그런 상황을 주지 않습니다. 믿음이 강하다 싶으면 맹목적 신앙에 미신적 요소가 보이고,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고 붙들었다고 느껴 지면 이미 그에게는 신령한 믿음의 세계는 구경조차 해 보지 않은 듯 합니다. 둘을 조금만 붙들어도 굉장한 신앙이 됩니다. 백 목사님처럼 무식하게 맹목적 신앙으로 출발한 다음에 기독교 최고 수준의 교리를 넘어 서는 지성적 신앙을 겸비하는 경우는 역사에 거의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4. 결론적으로
질문이 간단하면 안내를 자세히 하기 어렵고 혹시 시도를 해 봐도 자칫 동문서답 되기 쉬워 조심이 됩니다. 일단 짧은 질문을 두고, 이 곳을 방문하는 적지 않은 분들의 공통적인 고민을 함께 안내하기 위해 이 건 관련 기본적인 몇 가지를 적어 봤습니다.
필요하면 좀 구체적으로 또는 다시 지적하거나 적어 주십시오.
>> 초보신앙 님이 쓰신 내용 <<
:
: 목사님
: 하나님의 자존을 믿고싶은데 잘이해가 안됩니다.
: 자존의 뜻은 알겠는데 나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될때
: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자존자
목사님
하나님의 자존을 믿고싶은데 잘이해가 안됩니다.
자존의 뜻은 알겠는데 나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될때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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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하나님의 자존을 믿고싶은데 잘이해가 안됩니다.
자존의 뜻은 알겠는데 나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될때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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