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목사님의 고신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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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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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1 00:00
어제 연구부 회의가 있었습니다. 관련 내용에 대한 검토가 있었으며 제가 답변하기로 했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다른 분이 보충하겠습니다.
최근에 백영희 전기를 출간했습니다. 책은 두 종류이며 340여 페이지와 900여 페이지를 약간 상회합니다. 전기 때문에 준비한 자료는 훨씬 많습니다. 도서로 출간할 때 독자의 입장에서 읽을 수 있는 적절 분량을 생각했으므로 실제 출간 되지 않은 분량이 많습니다. 이 번 질문은 그 생략 된 내용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용이했습니다.
1. 고신 시절의 영향력과 당시 문제
백 목사님은 고신이 잊고 싶어 하는 분입니다. 백 목사님의 이름이 유명해질수록 그 분을 제명한 사실과 그 배경과 고신에서의 활동이 조명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된다면 고신의 어두운 부분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잊고 싶어도 고신의 최핵심부 인사들이 백 목사님을 비판하는 표현에서조차 백 목사님의 영향력이 생생하게 나옵니다. 고신은 백 목사님을 내보내고 소위 고신 식으로 발전을 해 온 역사를 통해 좋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을 내보낸 20년쯤 시기인 1980년대가 되자 우리 사회에 생생하게 알려진 사건들이 줄을 잇게 됩니다. 미문화원 방화사건처럼 초유의 사태로부터 복음병원 관련 비리들 등으로 세상 사회조차 관심이 집중이 되었습니다. 결국 불신자가 고신의 수뇌가 되는 바벨론유수 사태가 벌어지며 이런 일은 고신 내부의 개혁세력들이 거세게 비판하고 내부 자료를 공개함으로 오늘은 백 목사님의 고신 내부 비판에 대해 선견자적 지적이었음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2. 문제는 '제명'을 당했습니다.
옳든 그르든 일단 고신에서 제명을 당했습니다. 그순간부터 고신의 모든 이들과 단절이 되었습니다. 백 목사님은 제명을 당할 때까지는 외치는 분이나 일단 제명이 되면 먼저 그 곳을 찾지는 않습니다. 타 단체를 흔들며 파괴하는 비복음적 간섭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고신에서 제거되자 고신 내부에 백 목사님을 따르던 수 많은 동지들과 선후배들이 한꺼번에 다 단절됩니다. 이인재 목사님 한 분만 백 목사님을 따라 나왔습니다. 다른 분들은 직장 문제도 있고 그들의 다른 가족들과 얽힌 문제도 있었습니다.
만일 비판을 조절했다면 제명까지는 시키지 못했을 것이고, 만일 고신내에 그대로 있었다면 백 목사님은 1980년대의 고신은 석권을 할 수 있었다고 보입니다. 일단 백 목사님이 고신 내부에서 한국교회의 중심 교회가 된다면 고신은 백 목사님 때문에 또 백 목사님은 고신이라는 교파 때문에 한국 교회 전체를 향해 엄청나게 큰 일들을 했을 것으로 봅니다.
3. 1980년대의 실제 상황
고신 내부에 조금이라도 이름을 가진 분들은 개인적으로 백 목사님께 거의 접근을 해 왔습니다. 고신의 전국 여전도회장을 지냈던 분들 중에서도 고신 내부의 원래나 거물급들이 다 그러했고, 박인순 조수옥 주경순 등의 최고 원로들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 온다 할 만큼 되었습니다. 오면 한량 없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주남선 목사님의 큰 딸인 주경순 권사님은 늘 부친으로 생각하며 매달렸습니다. 송상석 목사님은 백 목사님께 대해 깊은 사과를 했고 손명복 목사님은 서부교회 강단에 서기까지 했으며 백 목사님을 제명할 때 서기로 이름을 올렸던 서완선 목사님은 눈물까지 비추며 백 목사님을 다시 고신에 모셔야 한다고 했으며, 이런 대세 때문에 백 목사님 사후까지 목사님을 비판했던 남영환 목사님까지 80년대에는 고신 전체 원로들의 추세와 흐름을 거스리지 못해서 백 목사님을 만나러 왔었습니다.
백영희 전기를 위해 백 목사님과 고신 시절 공부를 함께 한 분들을 일일이 찾아 보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거 고신에서 제명을 할 때는 그렇게 외면을 했거나 또는 무관심 했던 분들이 1980년대에는 백 목사님을 찾아 서부교회로 줄을 잇게 되자 목사님은 기도할 시간조차 없게 되어 외부인이 그 누구든지 일절 만나지 않게 되는데 바로 이 시기에 백 목사님과 함께 공부했거나 과거 인연을 가진 분들이 백 목사님을 찾아 서부교회를 왔다가 수위실에서 면담이 거부 되어 되돌아 가셨고 백 목사님이 사람을 친교 목적으로는 만나지 않는 이유를 모르는 그 분들로서는 문전박대를 당했다며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고신의 내부 분위기 때문에 백 목사님을 공개 지지하지는 못해도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존경하여 아주 극단적인 표현을 하는 분들이 허다했습니다. 실무자로서 전기의 자료 등 여러 면을 맡아 오면서 백 목사님이 고신에 그대로 계셨더라면 고신은 시대의 보배를 갖게 되고 백 목사님은 고신이라는 교단을 통해 한국 교회에 정말 큰 일을 했겠다는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
>> 목회자 님이 쓰신 내용 <<
:
: 이번 집회 자료를 보니까 백목사님은 고신에서 내부 투쟁을 하면서 좀 지나치게 했다는 회고가 있었었습니다. 백목사님은 매를 맞았다 했고 상처가 평생 남았다고 했습니다. 고신에서 제명되지 않았다면 고신을 살리는 중심이 될 수 있었다는 회한으로 생각했습니다. 전국 규모의 집회에서 공개고백을 하는 용기도 진심도 놀랍습니다. 관련 내용을 좀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최근에 백영희 전기를 출간했습니다. 책은 두 종류이며 340여 페이지와 900여 페이지를 약간 상회합니다. 전기 때문에 준비한 자료는 훨씬 많습니다. 도서로 출간할 때 독자의 입장에서 읽을 수 있는 적절 분량을 생각했으므로 실제 출간 되지 않은 분량이 많습니다. 이 번 질문은 그 생략 된 내용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용이했습니다.
1. 고신 시절의 영향력과 당시 문제
백 목사님은 고신이 잊고 싶어 하는 분입니다. 백 목사님의 이름이 유명해질수록 그 분을 제명한 사실과 그 배경과 고신에서의 활동이 조명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된다면 고신의 어두운 부분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잊고 싶어도 고신의 최핵심부 인사들이 백 목사님을 비판하는 표현에서조차 백 목사님의 영향력이 생생하게 나옵니다. 고신은 백 목사님을 내보내고 소위 고신 식으로 발전을 해 온 역사를 통해 좋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을 내보낸 20년쯤 시기인 1980년대가 되자 우리 사회에 생생하게 알려진 사건들이 줄을 잇게 됩니다. 미문화원 방화사건처럼 초유의 사태로부터 복음병원 관련 비리들 등으로 세상 사회조차 관심이 집중이 되었습니다. 결국 불신자가 고신의 수뇌가 되는 바벨론유수 사태가 벌어지며 이런 일은 고신 내부의 개혁세력들이 거세게 비판하고 내부 자료를 공개함으로 오늘은 백 목사님의 고신 내부 비판에 대해 선견자적 지적이었음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2. 문제는 '제명'을 당했습니다.
옳든 그르든 일단 고신에서 제명을 당했습니다. 그순간부터 고신의 모든 이들과 단절이 되었습니다. 백 목사님은 제명을 당할 때까지는 외치는 분이나 일단 제명이 되면 먼저 그 곳을 찾지는 않습니다. 타 단체를 흔들며 파괴하는 비복음적 간섭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고신에서 제거되자 고신 내부에 백 목사님을 따르던 수 많은 동지들과 선후배들이 한꺼번에 다 단절됩니다. 이인재 목사님 한 분만 백 목사님을 따라 나왔습니다. 다른 분들은 직장 문제도 있고 그들의 다른 가족들과 얽힌 문제도 있었습니다.
만일 비판을 조절했다면 제명까지는 시키지 못했을 것이고, 만일 고신내에 그대로 있었다면 백 목사님은 1980년대의 고신은 석권을 할 수 있었다고 보입니다. 일단 백 목사님이 고신 내부에서 한국교회의 중심 교회가 된다면 고신은 백 목사님 때문에 또 백 목사님은 고신이라는 교파 때문에 한국 교회 전체를 향해 엄청나게 큰 일들을 했을 것으로 봅니다.
3. 1980년대의 실제 상황
고신 내부에 조금이라도 이름을 가진 분들은 개인적으로 백 목사님께 거의 접근을 해 왔습니다. 고신의 전국 여전도회장을 지냈던 분들 중에서도 고신 내부의 원래나 거물급들이 다 그러했고, 박인순 조수옥 주경순 등의 최고 원로들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 온다 할 만큼 되었습니다. 오면 한량 없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주남선 목사님의 큰 딸인 주경순 권사님은 늘 부친으로 생각하며 매달렸습니다. 송상석 목사님은 백 목사님께 대해 깊은 사과를 했고 손명복 목사님은 서부교회 강단에 서기까지 했으며 백 목사님을 제명할 때 서기로 이름을 올렸던 서완선 목사님은 눈물까지 비추며 백 목사님을 다시 고신에 모셔야 한다고 했으며, 이런 대세 때문에 백 목사님 사후까지 목사님을 비판했던 남영환 목사님까지 80년대에는 고신 전체 원로들의 추세와 흐름을 거스리지 못해서 백 목사님을 만나러 왔었습니다.
백영희 전기를 위해 백 목사님과 고신 시절 공부를 함께 한 분들을 일일이 찾아 보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거 고신에서 제명을 할 때는 그렇게 외면을 했거나 또는 무관심 했던 분들이 1980년대에는 백 목사님을 찾아 서부교회로 줄을 잇게 되자 목사님은 기도할 시간조차 없게 되어 외부인이 그 누구든지 일절 만나지 않게 되는데 바로 이 시기에 백 목사님과 함께 공부했거나 과거 인연을 가진 분들이 백 목사님을 찾아 서부교회를 왔다가 수위실에서 면담이 거부 되어 되돌아 가셨고 백 목사님이 사람을 친교 목적으로는 만나지 않는 이유를 모르는 그 분들로서는 문전박대를 당했다며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고신의 내부 분위기 때문에 백 목사님을 공개 지지하지는 못해도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존경하여 아주 극단적인 표현을 하는 분들이 허다했습니다. 실무자로서 전기의 자료 등 여러 면을 맡아 오면서 백 목사님이 고신에 그대로 계셨더라면 고신은 시대의 보배를 갖게 되고 백 목사님은 고신이라는 교단을 통해 한국 교회에 정말 큰 일을 했겠다는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
>> 목회자 님이 쓰신 내용 <<
:
: 이번 집회 자료를 보니까 백목사님은 고신에서 내부 투쟁을 하면서 좀 지나치게 했다는 회고가 있었었습니다. 백목사님은 매를 맞았다 했고 상처가 평생 남았다고 했습니다. 고신에서 제명되지 않았다면 고신을 살리는 중심이 될 수 있었다는 회한으로 생각했습니다. 전국 규모의 집회에서 공개고백을 하는 용기도 진심도 놀랍습니다. 관련 내용을 좀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백목사님의 후회?
이번 집회 자료를 보니까 백목사님은 고신에서 내부 투쟁을 하면서 좀 지나치게 했다는 회고가 있었었습니다. 백목사님은 매를 맞았다 했고 상처가 평생 남았다고 했습니다. 고신에서 제명되지 않았다면 고신을 살리는 중심이 될 수 있었다는 회한으로 생각했습니다. 전국 규모의 집회에서 공개고백을 하는 용기도 진심도 놀랍습니다. 관련 내용을 좀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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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집회 자료를 보니까 백목사님은 고신에서 내부 투쟁을 하면서 좀 지나치게 했다는 회고가 있었었습니다. 백목사님은 매를 맞았다 했고 상처가 평생 남았다고 했습니다. 고신에서 제명되지 않았다면 고신을 살리는 중심이 될 수 있었다는 회한으로 생각했습니다. 전국 규모의 집회에서 공개고백을 하는 용기도 진심도 놀랍습니다. 관련 내용을 좀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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