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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의 토론/회의는 전원일치 조건으로 합니다.

이를 하기위한 바른 토론/회의 방법, 방향, 순서, 결정 등에 대한방법이 무었입니까??
공회의 교회 처리법 - 회의를 중심으로
질문의 범위가 넓어 약간 원칙론 중심으로 안내를 드립니다. 일단 읽어 보시고 필요한 내용이 있으면 재질문 또는 보충질문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1. 공회 회의와 관련하여 기억할 '총공회 3 대 원칙'


공회 행정에는 항상 이 3 대 원칙이 적용 되지만 특별히 '회의'를 두고 이 3 대 원칙을 생각할 때 몇 가지 기억할 점을 먼저 소개합니다.


- 성경법 원칙

공회는 66 권 성경만 법입니다. 너무 확고하고 좋은 원칙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공회는 성경법 외에는 법을 두지 않습니다.

이 성경법 절대 원칙은 관습법 존중의 원칙으로 나타 납니다. 앞 서 공회에 일이 생겼을 때 그 당시 성경을 가지고 그 일을 어떻게 처리했으며 그 처리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살펴 좋은 선례는 성경을 법으로 삼아 실제 적용한 경험이니 그 다음에도 같은 일이 있을 때는 성경법의 적용에 참고합니다. 그래서 성경법만 법으로 삼는 순간, 공회는 성경법으로 처리해 온 과거가 훗날의 새로운 처리를 향해 성경법의 적용 선례법의 효과를 가집니다. 바로 이 원칙 때문에 공회는 최대한 예전 것을 존중합니다.

반면에 바로 이 성경법 원칙 때문에 과거 어떤 처리를 했을지라도 그 처리가 잘못 된 것으로 드러 났거나 그 처리보다 나은 방법이 있거나 또는 그 처리를 그대로 반복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과거 공회가 처리한 것보다 더 위에 있는 성경에 근거하여 언제든지 고칠 수 있고 번복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원칙 때문에 공회는 공회 스스로 별도로 만든 원칙이나 별도의 규칙이나 약속이나 어떤 회의로 결정한 것도 항상 바꿀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법 원칙이 제대로 적용 된다면 공회는 그야 말로 불변의 진리 원칙으로 그 어떤 상황의 변동에라도 다 최선 최고의 상태로 처리하고 나갈 수 있고, 동시에 조금 잘못 된다면 아주 엉망진창이 되어 법도 없고 질서도 없고 예의도 없는 난장판이 되기 쉽상입니다. 지금 서부교회를 이런 폐단의 극단적인 대표적 사례로 지목할 수 있습니다.


- 전원일치

공회법의 전원일치를 소수 보호의 원칙이니 소외계층을 배려하니 그런 좌파민주주의적 발상으로 보는 분들도 적지 않으나, 단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자유성은 아무도 강제할 수 없다는 하나님의 목적의 본질에 근거를 둔 원칙입니다. 소수의 어려운 이들이 불쌍하니 동정한다는 그런 사고방식은 공회에 없습니다. 그 소수의 불쌍한 형편을 불쌍히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소수의 자유성을 무시하고는 그 소수에게 닥친 불쌍한 형편을 돌 보는 것조차 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소수'와 '그들의 불쌍함'에 주안점을 두지 않고 소수의 '자유성'과 그들이 불쌍함과 그들의 희망에조차 그들의 '선택의 자유'를 먼저 고려한다는 것이 전원일치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예수님의 대속조차 원하고 원하는 자원함이 근거가 되었습니다. 하물며 사람이 그 어떤 이유를 댄다 해도 남의 자유를 뺏는 것은 금지사항이라는 뜻입니다. 전원일치 회의를 두고 먼저 명심하고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전원일치라는 단어를 가지고 전원일치 제도의 취지를 난도질하게 됩니다.


- 상존직 배제 원칙

교회 내에는 그 누구에게도 항상 주어 지는 권리나 권한은 배제합니다. 회의를 할 때 사회자가 되는 것도 또는 무슨 발언권을 가지는 것까지도 다 이 원칙에 해당 됩니다. 일반적으로 교단들이 총회장이 마치 세상의 대통령처럼 모든 권한을 가지고 교단의 타락의 선봉에 서기 때문에 총공회 3 대 원칙에는 '총공회장 비상존'이라고 표시했으나 이 원칙의 내용은 공회 내에는 어떤 권한과 권리도 계속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배제한다는 원칙입니다. 회의로 말하면 누가 회장을 하기로 했으니 그 사람의 회의법에 회의의 절반은 달려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버려야 합니다.


2. 공회 회의의 3 대 기본 요건


- 회의의 '목적 절대성':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

어떤 교회, 어떤 회의, 그 누구라도 교회의 회의에서 제일 먼저 찾고 나서야 하는 것은 주님의 뜻입니다. 주님의 뜻이야 그러하겠으나 그렇게 되면 목회자는 뭐가 되며, 장로의 입장이 어떻게 되며,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 처자식들이 좋아 하겠으며, 요즘 청년들이 이해하겠으며... 라는 소리는 대 마귀 소리며 교회를 안으로부터 깨 부수는 원수의 말입니다. 주님의 뜻, 이 것만이 교회 회의의 목적입니다.

대통령은 주어 진 5 년 임기 안에는 누가 뭐라고 하든 자기가 과거에 무슨 약속을 했든 대통령 마음대로 합니다. 공무원은 자기 결재 범위는 자기 권한이며 자기가 휘두릅니다. 판검사도 그렇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교회 내에서도 통하지 않는 경우를 답변자는 보지 못했습니다. 총회장과 각종 임원, 지방의 노회장과 각종 임원, 각 교회의 목사님과 장로님 그리고 각종 책임자들은 자기 직책의 차기 가능성과 자기 위상과 권한 등 여러 가지를 종합 판단한 다음에 자기 권한을 휘두르든 몸을 사리든 알아서 다 그렇게 세상에서 하듯 합니다.

교회 회의에서 '주님의 뜻'이 전제 되지 않은 발언, 권한, 노력, 언행은 무조건 금지 사항입니다. 목사의 입장도 배제해야 하지만 교인의 입장도 배제해야 하고, 교회의 선배 기득권도 타파해야 하지만 교회 내에서도 소수 소외 계층의 목소리라고 해서 보호하는 것도 교회는 무조건 깨뜨려 놓고 봐야 합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신앙의 그 어느 형편 사정이라도 일단 다 물리 치고 오로지 주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찾아야 하고 그 것으로 전부를 삼는 것이 교회 회의입니다.

수도 없는 회의를 통해 결론을 낼 수 있는 것은 '주님의 뜻'을 순수히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에 의한, 인간들을 위한, 인간들의 놀이터가 교회 회의에서 조차 항상 적용 되는 현상입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오늘 자기 출석하는 교회가 공중 분해가 된다 해도 오로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만 생각하는 분들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 숫자는 한국 교회 전체를 통해 10 명이 채 넘지 않을 것입니다.


- 회의의 '과정 절대성': 누구를 통해 역사하시나?

회의를 해 보면 인간의 자기 중심이 극단적으로 설칩니다. 교회 내의 교회를 위한 회의지만 속으로는 자기 중심만을 전부로 삼는 악인들의 자기 중심적 의도와 노력과 결과만이 난무합니다. 사실 이 수준을 넘어 선다면 천하를 담을 그릇이 되는 것이어서 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회의에 참석한 숫자가 10 명이면 10 명이라는 자기 중심의 발악적 인간들이 자기를 위해 자기의 생각을 내고 자기 뜻을 관철하려는 소리 없는 움직임이 가득 차 있습니다.

교회 회의에서는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해 무슨 발언을 하시고, 누구를 통해 어떤 의견으로 보충을 하시며, 누구를 통해 어떤 위험성이나 제 3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우리를 시험하시는가, 그리고 누구를 통해 옳고 바른 최종의 결론을 내시는가? 겉으로는 사람들이 회의를 하시나 속 눈을 뜨고 보면 그 회의 내면에 움직이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고 또한 악령의 방해 흐름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회의의 기본 요건 중 1번이 회의의 목적은 무조건 주님 뜻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뜻을 찾되 그 뜻을 찾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어느 사람의 어떤 생각을 통해 어떻게 움직이고 계시는지를 살펴 좋은 의견을 주지 않는 사람은 기다려야 하고, 좋은 의견을 받은 사람은 자기 감동을 솔직하게 내 놓아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남이 말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치려는 이런 명예심에 붙들린 시도가 있다면 귀신의 일군이 되고, 분명히 주님의 뜻을 찾는 데 필요한 의견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안면 체면 등 여러 형편을 고려해서 머뭇거린다면 그 사람은 요나 같이 버티는 사람입니다.

다만 누구든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는 말씀이 있으니 주님의 뜻을 모두가 찾기 위해 노력하고, 필요하다고 생각이 난다면 발언을 하되 서로 다른 분에게 먼저 기회를 주면서 뒤를 따라 순종함으로 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만일 순서를 가리기 곤란하면 당연히 신앙으로 지도 책임을 많이 받은 쪽에서부터 발언을 해야 할 것이고, 지도 책임을 받은 쪽에서 발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면 그는 후배나 다른 분에게 귀뜸을 해서 그들이 발언하게 함으로 그들을 가르치며 일깨우며 길러 가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 회의의 '결정 신중성': 과연 옳은 것인가?

주님의 뜻을 찾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고, 그 뜻을 찾는 과정에서 누구를 통해 어떤 의견을 주는지를 찾아 모두가 확인을 하게 되면 회의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이 결정이 아무리 그 참석한 분들이 은혜롭게 또는 특별한 증거를 체험했다 할지라도 항상 오류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합니다. 그 당시는 목숨을 걸 수 있다 할 만큼 확신을 가지고 결론을 내야 하나 그와 동시에 세월 속에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증거를 통해 확정을 할 때까지는 결론은 항상 과제로 두고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비록 회의에서 결정을 했다 해도 누가 이의를 제기하거나 더 나은 안을 제시하게 되면 언제든지 고칠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한 번 결정했으니 무조건 계속 한다는 식은 주님 앞에 인간들이 가질 자세는 아닙니다. 물론 그 회의를 할 때 최선을 다했어야 하고 또 약속은 여간 손해가 된다 해도 지키라 했으니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지만 주님의 뜻 앞에서 전체를 고려할 때 만일 고쳐야 할 일이면 재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 많은 세상을 현실로 주시고, 교회라도 그 속에 수 없는 모순을 주시며, 우리에게 각자 많은 세월을 통해 이 세상에 살게 하신 것은 우리를 순식간에 뚝딱 만들 수 있는데도 우리의 자유성을 통해 우리 스스로 실수하며 수정하며 느껴 가며 자라 갈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회의가 하나의 결정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의 결정을 제대로 내리기 위해 주님의 뜻을 찾는 일념과 다른 사람을 통해 역사하는 주님을 찾아 순종함과 그리고 결론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소 뒷발 차기로 개구리를 잡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수로 잡은 것인지 이제는 개구리를 잡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것인지가 우리에게는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결론을 낸 일이라 해도 그 결론을 세월 속에 자꾸 검토를 해 보면 그 결론을 내린 회의의 당시가 바로 되었는지 알 수가 있고, 그 것을 통해 나를 고치고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3. 공회 회의의 세부 실무 내용들


- 형식에 매이지 않되 형식을 존중할 것

형식에 매이면 그 순간 주님의 뜻과 복음의 내용은 다 포기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회의의 형식을 무시하면 중구난방이 됩니다. 중구난방의 폐해는 회의의 시간이 길어 지는 그런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몸이 되어야 하는 교회가 진리의 영원성을 맞추어 가야 하는 과정 전체가 다 깨트려 집니다.

따라서 질서는 꼭 지켜야 하고, 근본 원칙에 문제가 없다면 일반적인 회의의 상식은 최대한 수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즉, 다른 곳의 일반 회의 방식을 참고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회의법에는 이제 설명한 공회 회의의 본질을 막는 경우가 많습니다.


- 내용은 주관을 담고 표현은 객관일 것

자기 속에서 깨닫고 느껴 지는 것은 자기 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과정이니 이런 것이 없으면 신앙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기 주관은 성령의 음성을 듣는 통로이자 동시에 악령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소신은 신중하지만 단호하게 표현해야 하지만, 그 표현 과정은 반드시 객관적이라야 합니다. 전체를 고려해야 하고, 순서를 지켜야 하고, 남에게 강요나 억지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비록 나의 주장이 아무리 옳다 해도 남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고 좋다고 따라 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자기 교회를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포기를 해야 합니다.

과거로 예를 들면 교회 차량을 구입하면서 당장에는 좀 비싸지만 결국은 현대차가 좋다는 의견과 오늘 교회 경제가 어려우니 일단 기아차를 구입하자는 의견은 진리 문제가 아닙니다. 한 쪽이 져 준다고 해서 진리 양보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것을 진리 투쟁의 대상인 줄 알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 사람의 자세와 생각이 비진리입니다. 분명히 더 나은 안이 있다 해도 나의 객관이 되는 전체 교인이 좋은 마음으로 동의하지 않고 좋지 않은 결론을 낸다면 자기의 의견은 충분히 개진하되 결론을 낼 때는 다수를 따라 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결정을 그 날의 결정으로 끝내지 말고 그 결정의 훗날을 가지고 살펴서 당일의 결정을 심사하면 됩니다.


- 진리 아닌 것은 최대한 양보하고 세월에게 맡길 것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이 땅 위에서 하나님께서 세워 둔 심판자 중에 가장 확실한 심판자는 세월입니다. 머리는 천재라 해도 1 초 순간도 그 뒤를 알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세월이라는 재판장을 하나님께서 세상에 두셨습니다. 따라서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으면 무난한 결론을 가지고 일단 '잠정 결론'이라 생각하면서 전체의 의견을 따라 가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의논 중에 진리성에 속한 것은 단 한 명이라도 찬성하지 않으면 결론은 내지 못합니다.

사람이 배우는 것 중에는 미리 배워서 손해를 보지 않으며 배우는 것도 있으나 잘못 배우고 손해를 본 다음에 배우는 것도 있습니다. 비용은 많이 들지만 후자의 경우가 산 지식에는 훨씬 효력이 강합니다. 일단 신앙이란 건설적인 것이므로 미리 가르쳐서 실수 없이 자라 가는 것에 주력해야 하나, 손실 비용을 지출하지 않고는 배울 수 없게 되면 할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침략을 미리 대비하자고 목에 피를 토하도록 외치는 것은 해야 할 일이나 듣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을 위협해서 끌어다 놓고 일을 한다면 일도 되지 않을 뿐더러 교회에서는 애초부터 금지 사항입니다. 하는 데까지 하고, 안 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고 세월을 통해 지켜 볼 줄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부산 서부교회가 20 년이 넘는 분쟁을 겪는 것은 공회의 기본 회의법을 전혀 알지 못해서 생기는 일입니다. 양 측이 서로 자기 의견을 전하는 것은 충분하게 하되 그렇게 했다면 이후 문제는 맡겨야 하는데 하나님의 역사와 판단과 다음 단계의 섭리 인도는 모두 배제를 시켜 버리고 오직 양 측이 미리 결론을 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만이 전부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교회라 하지 않고 종교단체라고 하게 됩니다. 양 측의 지도자들은 답변자보다 수십 년을 먼저 이 원칙을 배웠으며 그 교회는 오랜 세월 공회의 본부였는데도 막상 일이 발생하자 공회의 가장 초보적인 상식을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없애 버렸습니다. 평소에 수 많은 명상을 통해 실전을 연습해 보지 않고, 갑자기 상황이 발생하면 사람은 결국 다 그렇게 됩니다.


>> 반사 님이 쓰신 내용 <<

:

: 공회의 토론/회의는 전원일치 조건으로 합니다.

: 이를 하기위한 바른 토론/회의 방법, 방향, 순서, 결정 등에 대한방법이 무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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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이라 하셨으니...!
>> 반사 님이 쓰신 내용 <<

:

: 공회의 토론/회의는 전원일치 조건으로 합니다.

: 이를 하기위한 바른 토론/회의 방법, 방향, 순서, 결정 등에 대한방법이 무었입니다


질문이 소위 총론이고 내용이 각론인데...질문자의 각론의 내용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구체적으로 좀 해주시면 이왕 토론이라면 저도 한번 듣고 참석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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