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30:23에 액체몰약이 유질몰약으로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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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30:23에 액체몰약이 유질몰약으로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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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판 성경은 처음부터 '액체 몰약'으로 나왔고 우리가 읽는 개역성경은 '유질 몰약'이었는데 어느 사이에 '액체 몰약'으로 출판되고 있습니다. 개역개정의 영향을 받았다면 개역성경에 손볼 곳이 많은데 어떤 기준으로 이렇게 부분 수정을 했는지, 이런 사례가 더 있는지 비교한 자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출애굽기 30:23 너는 상등 향품을 취하되 액체 몰약 오백 세겔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육계 이백 오십 세겔과 향기로운 창포 이백 오십 세겔과
담당 2024.06.24 12:00  
1938년에 출간 된 개역성경 초기본에도 '유질 몰약'이고 1980년대 말에 출간된 개역성경에도 '유질 몰약'입니다. 그런데 1990년대에 출간 된 성경에 '액체 몰약'으로 슬쩍 바뀌었습니다. 어느 신학자가 성서공회에 압력을 넣었다는 뜻입니다. 너무 많이 바뀌면 문제가 생기니 곳곳에 슬쩍 변경 시킨 듯합니다. 그러다가 통째로 뜯어 고친 것이 표준번역이니 개역개정이니 하여 많은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개역성경이라 해도 일제 때나 해방 직후나 정부 출법 이후 맞춤법 등에 따라 단순히 알파벳만 바뀌는 경우는 감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바뀌면 참 괘씸한 처사입니다. 이런 정도의 부분 수정은 이전에도 몇 곳이 있어서 어디 모아 둔 곳이 있습니다. 다른 담당자가 보충하면 좋겠습니다.
서기 2024.06.26 07:20  
(부탁1)
혼자는 어렵고, 성경을 읽다가 같은 개역성경에 개정 된 표현이 발견 되면 읽는 성경의 하단 빈 곳에 각주처럼 간단히 표시를 해두고 이 곳에 연락을 주셔서 모든 분들이 모은 것을 함께 나누면 좋겠습니다. 바뀐 줄 알고 보는 것과 바뀐 줄 모르고 읽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부탁2)
이 곳에서 성서공회에 변경 된 자료가 따로 확인 되는지 직접 물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담당5 2024.06.27 10:30  
(답변)
개역개정은 1998년에 출판하여 다수의 교단에서 오류를 지적하자 제4판까지 개정 출판되었는데 성서공회에서도 너무 많이 변경되어 개정대비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개역개정에 대한 답변은 기존 답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담당5 2024.06.27 10:31  
[성경관] '표준새번역'이라는 현대어 성경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개인 메일로 들어온 질문입니다. 많은 면으로 신중하게 또 명확하게 입장을 정리해야 될 중요한 질문이어서 관리자로서 질문자를 대신하여 문의를 합니다.

질문하신 분을 중심으로 답변을 합니다.
그러나 일반인을 고려하여 성경번역에 대한 총공회의 기본적, 원리적 신앙입장을 전반적으로 요약했습니다.
 
질문 : 개인메일 (2000-09-18 18:19:50)
출처 : (pkist.net / 문의답변 200)

답변 : yilee
(2000-09-18 18:25:35)

또 다른 성경번역은 어떤 형태로든지 단호하게 반대합니다.

(한글 번역성경을 개정 또는 개편하는 작업에 대하여)

번역이란 완전할 수 없습니다. 더 사실에 가깝게 표현한다면 정확한 번역이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질문 내용이 요12:27만 가지고 그 정확한 뜻을 원하는 경우가 있고, 요12:27을 예로 들어볼 때 여러 번역 성경 중에 어느 성경이 적당할지를 문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 번째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요12:27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생략합니다.

1.대표적인 4가지 번역성경

현재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성경을 예로 들라고 한다면 ①개역성경 ②공동번역 ③표준새번역 ④개역개정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개역성경은 1911년 최초 번역되었고 1938년 전반적인 재검토가 있었습니다. 1952년과 1961년에는 해방된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따라 주로 표기법의 수정이 있었던 정도입니다. 내용상 번역으로는 62년째, 맞춤법 기준으로 수정한지 40년째 한국교회 전체가 사용해온 성경입니다.

두 번째 나온 성경은 천주교와 기독교가 동일한 기독교인데 교파만 다르다는 인식에서 성경부터 통일시키면서 장차 교단까지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가 있었고 그 첫 순서를 성경번역을 통일시켜 '공동번역'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천주교가 기독교의 한 교단이라고 생각하는 문익환목사님과 같은 이들이 기독교의 대표로 나섰던 정도이며 거의 대다수 교회들은 이를 거부하여 성경번역사에 이름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나온 성경이 1993년 '표준새번역'이었고 이는 천주교를 배제하고 기독교 내부 각 교단들을 망라하여 번역한 성경입니다. 이 성경은 비록 천주교는 배제하였으나 기독교 교단 중에서 쉽게 말하면 '운동권'에 가까운 사상을 가진 분들이 주도를 하였고, 아직까지 한국교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보수측 교회들이 대규모로 극렬 반대를 하여 일부 자유주의 교회들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나온 성경이 1997년에 나온 '개역개정판'입니다. 지금까지 사용된 '개역'성경을 부분적으로 수정한 것이며 이는 보수측 입장을 대단히 고려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경 역시 보수측에 해당되는 교회들부터 그렇게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직까지 현실입니다.

2.표준새번역을 비롯, 새로 시도되는 한글성경번역 사업 자체를 반대하는 이유

1)현재 사용하는 '개역'성경을 번역한 분들 이상의 신앙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①성경번역은 언어능력이 아니라 신앙사상을 기준으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언어를 매개로 하기 때문에 그 언어 변천에 따라 재 번역 또는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라면 한도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어느 표현이 어느 정도의 문제를 가졌는지 그래서 어떤 표현으로 변경되어야 적절한 번역이 되겠는가 라는 문제는 100명의 학자가 100가지 학설을 제시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번역이란 '언어적 실력'을 기준으로 번역자를 선정하여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 정도의 언어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 자체의 신앙성향을 보고 결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②초기 선교 시절의 건전했던 신앙환경보다 더 건전해질 여지는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1911년에는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의 번역이 완성되었고 1938년에 전면적 검토가 한번 더 이루어져 오늘까지 이르고 있는 '개역'성경을 집착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예를들면 그 당시는 어느 교파 어느 교회에 속했든지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된다는 말에는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1993년과 1997년에 제시된 '표준새번역'과 '개역개정판' 성경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는 교단이 없어졌고 그런 신학자가 없어진 때가 되었습니다. 100여년전 최초 성경을 번역하던 이들과 80여년이 지난 후 '표준새번역'을 번역하는 이들, 그리고 100여년이 된 '개역개정판' 성경을 번역하는 이들의 신앙은 비교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때는 건전했고 지금은 완전 타락을 했다고 표현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번역에 참가할 수 있는 번역진의 세속화는 더욱 가속될 것이기 때문에 현재 가진 '개역성경' 이상의 번역이 나올 수 없다는 성급한 예견을 하는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계의 대동단결과 평화공존에 대단히 반동적이고 편협된 의견이라는 비판을 직시하면서 주장합니다.

③신앙과 별개로, 신학자의 언어능력과 변천된 언어환경을 지적하며 반발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 성경은 그 번역 완간이 1911년이며 전반적인 재검토가 끝난 것은 1938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초작업은 1900년에서 1930여년 사이였으니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의 원문 번역은 약 100여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 100여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초기 선교시대와 그들의 첫 번역을 두고 오늘 현대 신학자들은 미개했던 시절로 단정을 해버리며 또 현대 고등교육을 받는 모든 이들은 이를 수긍하고 있습니다. 오늘 1천명에 이르는 해외 신학박사 학위를 가진 한국교회는 일제 초기 말을 타고 다니며 서툰 한국말로 전도하던 초기 선교사들과 그들을 수종 들던 한학 공부 출신의 한복 차림 초기 교인들이 성경을 번역하고 교회를 개척하며 한국교회의 첫 돌을 놓던 시절을, 고맙게 회상하지만 그들의 번역 형편, 그들의 번역 능력, 그들의 번역 결과는 참으로 조잡하기 이를 데가 없다고들 단정을 하고 있습니다.

④인문 사회계열의 학문이란 이공의 발전과 반비례로 퇴락되는 자연계시를 제시합니다.

이공계와 인문사회계를 나누는 이유를 '정규 대학 출신자'라면 혹 이해할 분들이 생겨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공계에서는 100년을 기준으로 상상도 못할 발전이 있었던 것이 1600년대에서 1900년대까지였습니다. 이공계에서는 10년을 주기로 상상도 못할 발전이 있었던 것이 1900년대 중반까지였습니다. 지금은 그 주기가 제곱비례로 가속되며 하루를 단위로 구시대와 신시대의 기술이 자리를 바꾸는 때입니다. 이공계 범주의 학문에서는 1900년대 초반부를 구석기 시대로 생각하고 전부 박물관에 보존처리를 해버렸습니다.

인문사회계열이 문제입니다. 성경번역 문제는 신학의 범위이며 이는 이공계열이 아니라 인문사회 계열의 학문으로 예를 들고 또 참고를 할 수 있습니다. 수천년 전 소크라테스와 플라토 철학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비교될 철학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자와 맹자의 이론을 능가하는 동양철학 역시 수천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 필적할 철학이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과학은 오늘 5세 유아 수준이며, 반대로 오늘의 철학은 당대에 비하여 5세 유아수준입니다. 정확히 정반대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정치학에 있어 '마케아벨리'는 미소 대결, 오늘 남북 해결에 이르기까지 교과서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돌고 돌아봐야 그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근접된 모습은 종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수천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불교와 유교, 또 이슬람교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국가들, 그 종족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생명과 평생을 마음껏 좌지우지하였던 고등철학들입니다. 이렇게 인류사 전체를 쥐고 흔든 종교라고 불리는 고등철학이 수천년 전 공자, 석가, 마호메트 등의 인물들에 의하여 전반적으로 구성이 되었는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인물들을 능가하는 깊은 철학 넓은 아이디어를 내어놓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공계의 발전에 따른 인간 두뇌의 황폐화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과학적 환경과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이 개선되어감에 따라 그런 심대한 철학은 그 출현 자체가 차단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공계열의 눈부신 발달은 '사고'하는 인간, 경험을 통해 재구성될 수 있는 '지혜'라는 영역을 해체해온 역사였기 때문입니다. 먹고살기에 좋으면 배고픔에서만 나올 수 있는 '처세술'이나 '뼈를 깎고 만든 철학'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⑤1,500년 전 어거스틴, 500년 칼빈, 그리고 오늘의 신학자들을 비교한다면

초기 성경을 번역했던 100년 신학자들은 그래도 그들의 제자라는 이름이라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들만은 못해도 그들을 쫓아 바로 살아보려는 노력과 중심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100년이 지난 현대의 신학자들은 그 노력과 그 중심의 최소한이 말살되었다고 해야 될 정도입니다. 너무 극단적인 말이라는 비판을 받겠지만, 각 신학교와 신학자의 감춰진 내용을 공개해버리면 그렇게까지 일반인이 모르는 세계가 있었느냐고 할 것입니다. 일반 교인들이 믿어 주지를 않을 것입니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일선 경찰서에는 종교계에 대한 평상적인 정보수집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경찰서는 해당 지역의 예상 가능한 모든 종류의 치안 불안 요인을 사전에 파악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종교계 인사에 대하여도 여러 차원의 정보 파악은 필요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국가의 이런 행위를 다른 기독교 인사들과 달리 존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실무 담당자들에게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이 '정치계 이상으로 종교계 지도자들도 썩지 않았느냐'는 그들의 실망, 결코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은 기독교계 내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인정하는 바입니다. '이중국적'의 간교함, '학위취득'의 사기성, '교수보직'의 정치성, '경제축척'의 부패성에 해당되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 명일 것인가? 신학자를 포함한 한국의 교계 신앙은 초기 번역 때의 신앙과 비교하여 최소한 비슷할 정도는 되어야 그다음 '언어 기술적 측면'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인데, 오늘 교계의 신앙과 앞날에 대한 전망은 새로운 번역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입니다.

100년 전 이 나라 초기 선교사와 한국인 초기 교인들이 가졌던 성경번역을 위한 모든 객관적 '장점'들은 100년 후 이 나라 기독교 전성기를 구가하는 1천여 신학자의 '장점'들을 다 모아도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여건들과 실상을 가졌습니다. 인문사회계열에 속한 학문의 특성만 알아도 이해가 될 문제이며, 더하여 '신학'이라는 종교적 사안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더구나 '신앙제일주의'라는 시각을 확정한다면,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100년 전 번역은 '성경다운 성경'으로 가질 있고, 오늘의 여러 가지 시도되는 성경은 '철없는 실험' 정도로 취급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단정입니다.

2)이해집단의 의견을 절충하는 것이 모든 '평화통일'의 원칙입니다. 성경번역에는 독입니다.

①세상 만사, 인간이 하는 일은 결국 '협상을 통한 절충'일 수밖에 없습니다.

미개시절에는 힘있는 쪽이 무력으로 밀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현 21세기 우리 현실은, 배율 차이는 있을지라도 통합에는 '협상을 통한 절충'이라는 과정을 피해 나갈 수 없는 사회환경이 되어 있습니다. 옳고 그른 판단을 기준으로 중앙선을 긋고 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 모서리는 감리교 몫으로 저 모서리는 장로교 몫으로 하다 못해 장애인을 배려하고 여성계까지 배려하며 성구의 표현 하나 하나를 다듬어 가는 것이 '성경번역'입니다.

무리한 통합보다 절충하는 배려가 보다 원만하며 그 장구성이 보장되는 것은 현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입니다. 이 원칙이 꼭 한 군데에는 들어가면 안됩니다. 바로 신앙문제입니다. 성경번역만은 절대로 협상과 절충이란 단어가 존재해서 안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한국교계가 공동으로 번역하는 작업은 볼 것도 없이 잘못된 것입니다. 협상과 절충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②성경번역만은 '협상과 절충'이 완전히 배제되어야 합니다. 성경번역사는 반대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원칙이 '신앙문제' 그것도 '성경번역'에까지 해당된 것은 참으로 기독교 말살 차원에서 살필 문제입니다. 현재 한국의 대주주가 되어 있는 장로교 보수교단들을 고려하며 성서공회는 비양심적인 처신을 해 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공동번역을 하는 것이 그들의 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공동번역을 접어두고 이번에는 '표준새번역'을 시도했습니다. 표준새번역에 대한 반발이 예상외로 너무 커지게 되니까 '개역개정판'이라는 카드를 다시 뽑아 나섰습니다.

성서공회의 기류는 아무리 양보를 하고 타협을 해도 표준새번역 정도 이상으로 양보할 수 없는 자유주의입니다. 그러나 표준새번역이 예상치 못한 역풍을 맞고, 자칫 독점체제로 내려왔던 성경번역 공인기관이 '성경공회'라는 경쟁체제로 갈 수 있는 위기감까지 느끼도록 되었고 그래서 '성경공회'라는 또 하나의 성경번역 기관을 출발시켰던 보수계 교단을 흡수하는 절충과 타협안으로 기존 '개역'성경을 수정 보완하는 정도에서 '개역개정판'을 내놓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 성서공회의 본심은 현재 우리가 보는 '개역'보다 '개역개정판'이, 그보다는 '표준새번역'이, 그보다는 '공동번역' 성경이 장차 한국교회 전체를 위한 모델로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현재 한국교계가 초교파 행사 또는 초교파 기관을 가질 때마다 등장하는 코메디는 한 단체 안에 회장이 수십명, 부회장이 수십명, 총무가 수십명이 되는 것입니다. 옳고 그른 판단이 자리잡을 곳이 없고 타협과 절충, 버무린 비빔밥만 통하는 교계의 교류현장은 '성경번역'이란 두려운 작업을 맡길 곳이 안됩니다. 초기 성경번역 때도 여러 교파의 입장은 분명히 고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손에 잡혀 있는 현재의 '개역'정도라면 읽는 사람이 자신의 신앙입장에서 얼마든지 문제 있는 부분을 지적해가며 사용할 수 있는 정도이며, 오늘 교계에게 다시 한번 그 일을 맡긴다면 '그 족보가 의심스런 별종'이 나올 것입니다.

③종교와 종교를 버무려 '공동번역'이라는 성경을 만든 것이 성서공회였습니다.

성서공회가 전면적으로 개편했던 번역본이 '공동번역'이었습니다. 성경 번역을 천주교와 기독교가 합해서 했다면, 언어적 비평을 할 필요도 없이 '동화'로 취급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물 위를 걸었겠느냐는 신학자와 공자도 천국에 갔을 것이라는 신학자가 번역위원이 되어 번역을 했다면, 그 번역의 구구절절을 예로 들 필요도 없이 이는 틀렸다고 단정을 하고 싶습니다. 현재 성경 제일 주의를 주창하는 몇몇 신학자와 교단들이 '표준새번역'이 언어적으로 또 신학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제시하는 부분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우리는 언어적 문제와 신학적 문제점은 큰 예를 한 두가지 정도로 들면서 참고하는 정도에서 그칩니다. 시간낭비라는 것이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천주교, 불교, 유교, 기독교가 합해서 단일 종교운동을 하여 인류 문명사에 이바지하자는 종교통일이 유행입니다. 불교가 진정한 불교라면 타 종교는 없애야 불교인의 양심입니다. 천주교가 참으로 천주교적이라면 다른 종교인은 화형으로 죽여야 합니다. 기독교가 참으로 기독교라면 이런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마땅히 인사도 하지 말아야 될 이단입니다. 그러나 그 종교지도자들은 이미 종교를 자신이 몸담았던 '수양'과 '지성의 안식처를 구하는 활동'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진정 그 종교가 출발에 가졌던 것처럼 '이 길만 천국이고 이 길을 벗어나는 것은 전부 지옥이다'는 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의 종교는 과학이 발전하여 종교의 본질을 분석해준 뒤에는 모두 자신들의 종교를 '신화적 교훈'으로 스스로들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만은 수양과 지성의 안식을 구하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 자녀로 천국가는 잠깐의 세상으로 살고 있으며 이것이 참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그런 데 동참할 리가 없습니다. 이런 종교통일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표준새번역'에는 번역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현재 한국교회가 통일된 찬송가를 사용합니다. 그 찬송가도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예 사용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3)절충된 성경조차 나올 수 없는 한국교계의 더 큰 병이 있습니다. 그렇게 배가 아픕니다.

①진화론이 먼저 나서서 교회를 급격하게 '윤리조직'으로 만들었습니다.

초기 한국선교를 시작했던 장로교 감리교 등 여러 교파 선교사들은 천주교를 기독교로 취급도 하지 않았으며, 100년 전만 해도 각 교파는 그 강조하는 교훈이나 또 신앙의 방법론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건전한 신앙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분 하나님에 철저했고 성경이 정확무오한 말씀임에 철저했고 예수 믿는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음을 단정했었습니다. 주일성수 등 여러 면에서 그러했기 때문에 교파는 많아도 성경번역에 있어서 별 다른 문제가 없었고 그들대로 있는 힘을 다해서 성경을 번역했던 것입니다.

그후 급격한 과학발달로 성경이 과연 정확무오한 것이냐는 문제를 두고 교회는 급격히 분화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한쪽은 성경에 대한 정확무오를 확실히 믿었고 그런 쪽은 보수라고 하게 되며 그들은 신앙원칙주의에 철저하게 오늘까지 이어졌으며, 반대쪽은 성경은 좋은 말이 기록된 정도이며 정확무오라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세상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교양서' 로 인식하게 되면서 그런 쪽을 자유 또는 진보주의라고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진화론이 교회를 양쪽으로 갈라놓은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②신사참배가 한국교회를 아주 진보주의 쪽으로 밀어 붙였습니다.

초기 선교시대가 교파에 상관없이 아주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분들이 거의 대다수였고 따라서 성경번역의 필요성, 성경말씀의 정확무오를 두려워하여 그 번역에 정확성과 신중성 등에 이견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성경은 성경 그대로의 번역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한국내 모든 교파들이 같은 '개역'성경을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비영리단체이며 동시에 어떤 한 교파에 소속되지 않는 '성서공회'라는 독립단체를 만들어 성경만 출판 보급하는 기관을 만들었습니다.

1938년, 몇 사람이 수고했던 초기 번역본을 두고 한국교회 전체가 20여년 사용하게 되면서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또 여러 각도에서 번역 미진이 지적되었고 이런 지적을 모아 1938년에 전반적인 재검토를 하게 되어 '개역'성경을 한국교회 전체가 인정하고 출간했으니 이는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교회는 전체적으로 건전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다음해 신사참배 문제가 생겨졌고, 교파를 망라해서 건전했던 한국교회는 극렬하게 반대를 했으며, 그래도 끝까지 신앙지조를 지킨 교회는 극소수이며 마침내 일제 정책에 순응하게 된 교회는 대부분입니다. 신앙지조를 끝까지 지킨 교회는 이전부터 지켜오던 신앙을 그대로 가지게 되면서 해방이 되었고, 신앙지조를 굽힌 대다수 교회들은 그들의 처음 신앙모습과는 다른 형태로 해방 이후의 행적을 가지게 됩니다.

신사참배를 했던 대부분의 교회들, 그들이 해방을 맞이했고 이제 신앙의 자유를 완전히 되찾았기 때문에 이전 건전했던 신앙으로 돌아오면 될 것인데, 그들의 입에서는 회개하고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논리는 거의 없었고, 신사참배 했던 것이 그렇게 크게 잘못된 것이냐는 반문이 있었고, 또 그런 자신들의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성경을 대단히 넓게 해석하면서 급격하게 자유주의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꼭 성경을 그렇게 다 믿어야 되며 꼭 이스라엘 민족이 주창한 이스라엘 제 하나님만 믿어야 되느냐는 사상을 깔고 모든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사참배란 그리 큰 죄가 될 것도 없고 또 이렇게 눈을 달리 뜨고 보니까 주일도 휴일의 개념이 되고 모든 신앙생활이 건전한 윤리생활로 전환되면서 예수믿는 것은 사회 개량 사업에 사용될 여러 방법론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현재 모든 시민운동의 무게 중심에 자유주의 기독교가 자리를 잡게 된 연유입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반 독재 투쟁을 극렬하게 했던 요체였습니다.

③진보주의로 나가는 교회들의 자기 모순

교회가 천국을 잊어버리고 이 세상 사회 개량화를 주업으로 삼게 되는 일을 교회의 자유주의화, 또는 교회의 진보주의화라고 합니다. 약간 다른 면이 되겠지만, 군사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화투쟁에는 목숨을 걸고 고문을 견디던 그들인데 하나님을 바꾸고 신앙을 바꾸는 신사참배 사건이 닥쳤을 때에는 민족마다 개인마다 가지는 여러 형태의 신앙방법들이 다를 수 있으니 이스라엘제 방법론을 일본식 방법론으로 한번 바꾼 것이 무슨 큰 죄라고 옭아대느냐? 는 대담한 발상을 가졌던 이들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식 민주주의도 있지만 한국민 특수 사정에 해당될 한국적 민주주의도 있다는 박대통령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고 할 수 있을 터인데 이 문제에는 '민주주의 앞에는 어떤 수식어라도 붙으면 사이비'라고 그렇게 난리들을 쳤을까? 그것도 교회가 앞장을 서고 배후에 서면서, 그것도 신사참배에 앞장섰던 한신대 조상들과 그 후손들이. 신사참배에 일제식 예수로 변경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정치에는 원조 민주주의만을 고집한다는 것도 우습지만, 군사정권에 대항할 때는 서양식 원조 민주주의로 대항해놓고 군사정권이 민간정부로 움직이고 나니까 이번에는 북한식 수정 공산주의, 또는 고구려중심 한반도 제일주의 정치를 목표로 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100년의 세월, 숫적으로 대세에 해당되는 한국교계의 움직임은 이름만이 아니라 족보인 성씨까지를 바꾼 것이 몇 번인지.

④한국교회의 교권은 보수측, 대세는 자유주의입니다. 성서공회는 대세를 따릅니다.

신앙인지 도덕인지, 신앙인지 정치인지, 신앙인지 이웃돕기 운동인지 혼동될 교회를 오늘에 평가한다면 숫적으로는 한국교회의 다수가 되어 있고 지적으로는 많이 배운 유식자 지성인일수록 그러하며 출신으로는 경남 부산 지방 남쪽 일부만 빼놓고는 전국이 다 그러합니다. 해방직후 이런 윤리적 기독교가 한국교회의 사상적 대세를 휩쓸면서 동시에 외부로는 교단의 분열이 극심하게 일어나게 됩니다. 이 와중에서 '성서공회' 주도세력이 자유주의 신앙으로 그 색채를 급격히 바꾸었으나 초교파 단체이기 때문에 또 기존 성경을 그대로 출판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수교단들은 세력 확장에 절대적인 현장 교회들을 장악하는데만 바빴습니다.

보수적 신앙색채와 전 교파적 인식이 하나되었을 때는 성서공회가 비록 초교파 단체이지만 아무 일을 벌이지 못했습니다. 한국교계 전부가 시어머니였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한국교단 전체가 그 실상이 파악도 될 수 없을 정도로 분열되어 한국교회의 주도와 주체를 파악하기도 힘든 상태가 되고보니까 초교파단체였던 성서공회는 부모없는 아이처럼 간섭이 없었고 그 운영진의 색채를 기준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작품이 '공동번역'이었습니다. 그들의 신학이 천주교와 하나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성경번역을 통해 한국교회를 통째로 움직여 보는 시도를 한 것입니다.

성경의 지나친 구식표현, 천지개벽으로 바뀐 해방 후 한국사회상, 생각도 못했던 한국교회의 자유주의 태동과 그 상승분위기....이런 유리한 환경에다 공동번역의 현대식 표현은 아직도 보수에 강박관념을 가진 한국교회 전체를 완전히 자유주의로 덧칠할 기회로 보았던 것입니다. 천주교와 기독교계의 통일운동이라는 거창한 이름, 통일이라는 구호가 안 통하는 곳은 없으니까 시도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이 작업은 완전히 실패해 버렸습니다. 아주 극단적인 자유주의 교회 일부분만 사용하는 성경이 된 것입니다.

⑤새 번역본들이 실패한 것은, 성서공회의 서툰 솜씨보다 한국교회의 극단적 분열입니다.

공동번역의 '번역오류' 때문이 아니라 '번역진'에 우리 파 우리 학자가 참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 특유의 배가 아픈 병이 도졌던 것입니다. 더하여 교파간 싸움이 극단적으로 나간 상황은 성서공회가 독자적으로 일을 벌리도록 환경을 제공하였지만 동시에 그 싸움은 교파간 누가 정통이냐는 보수간판 전쟁의 양상이었으니 천주교와 공동번역이라는 사안은 어느 교파에서나 매 맞기 좋은 '화풀이감'이었습니다. 성서공회가 한국교파싸움의 본질을 잘못 파악했던 대표적 실패사례가 되었던 것입니다.

성서공회의 전략은 다시 한번 장기적 관점에서 그 입장을 수정하게 됩니다. 천주교와 함께 만든 성경은 미래 어느 시점에서 다시 재론될 때가 있다는 것이 세상역사의 상식이니 그때를 위해 미리 투자해 본 것으로 치고, 일단 한국 기독교 내부만을 위해 통일된 개정 번역을 시도하게 된 것이 '표준새번역'입니다. 표준새번역의 취지는 천주교와 공동으로 번역했던 '공동번역'에서 천주교 입장만을 배제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계 내부만으로 통일된 성경을 만드는 것도 한국교계의 성질상 대단히 합의도출이 어려운 것입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10여년 준비기간을 거쳐 교단을 망라하여 대표적 학자들을 초빙하고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새번역성경'이니, 한국교계는 '새번역성경'에 대하여 반대할 아무 명분도 또 이유도 찾을 수 없는 정도였습니다.

이것마저도 일부 교단의 누락된 학자들이 자기 전공분야에 자기가 빠진 화풀이로 '표준새번역'을 난도질하고 나섰습니다. 어느 학자가 번역진에서 빠지게 되면 새번역성경이 한국교계에서 차지할 비중과 그 번역진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권위상실 문제로 해당 학자는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새번역이 자유주의 주도로 잘못된 번역이라고 마구 난타를 하고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을 다 포섭키 위해 관련 전공 학자 전부를 포함시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표를 세울 수 밖에 없는 것이며 대표로 선임된 쪽은 자기가 한 것이라 새번역이 자유주의 색채가 지나친 데도 번역이 잘 된 것이라고 얼버무리고 말아버립니다. 반대로 더 자유주의가 짙은 교단인데도 자기가 번역진에서 누락이 되면 너무 자유주의 색채로 번역이 되었다고 시비를 걸어 오게 되니까 성서공회로서는 하고 싶어도 제대로 못하는 일이 바로 성경번역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도 인간이 시비를 걸고 잘잘못을 따지는데 하물며 성서공회가 하는 일을 글만 읽는 학자들이 말로서 시비를 걸고 나온다면 걸리지 않을 리가 없겠지요? 그 비판하는 사람보고 번역을 하라 하고 이번에는 비판 받은 사람보고 비판을 해보라고 하면 더 많은 비판이 나올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표준새번역'도 '공동번역'에 못지 않게 반대합니다. 반대하는 구체적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백영희목사님 체질의 신앙이 아니라면 공동번역은 몰라도 '표준새번역'까지 욕을 하고 나서는 것은 한국교계 전부를 포함해서 '번역상 이유'보다 '정치적 이권' 때문에 반대를 위해 반대한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고신교파까지 포함이 된 '표준새번역'을 자유주의라고 욕한다면 말이 성립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4)새 번역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경말씀'은 변화된 언어환경을 배제하기 때문입니다.

①성경이 정확무오가 아니라면, 번역을 두고 그렇게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진화론이 나온 뒤 성경은 교회 안에서 신학자들로부터 정확무오를 해제 당했습니다. 교회사는 그들을 과학적 증명의 범위 안에서 믿는 사람들이라 자유주의 진보주의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불신자라고 불러버립니다. 신자라면 탕자가 된 사람이라고 취급합니다.

성경 원본이 정확무오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성경 번역을 두고는 느긋하게 양보하고 타협하며 이 교파의 교리를 잘게 썰고 저 교파의 교리를 둘둘 감아 여러 사람의 여러 의견을 버무린 다음, 마지막 성서공회 직인과 한국교계의 통일된 의견이라는 드레싱을 발라버리면 좋은 샐러드 번역성경이 됩니다.

성경도 사람이 적다보니까 불경처럼 유교경전처럼 시대 따라 틀린 데가 많고 성경내용들이 세월에 따라 진화도 되고 그럴 것같으면 성경번역을 두고 이렇게 장문을 적고 있는 사람이 정신나간 사람일 것입니다. 성경의 정확무오성은 기독교계가 다 받아들였던 교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난 날 잘 알지 못하고 미개했던 고로 잘못 알았다면서 전부들 취소를 하고 있습니다. 그 취소하는 숫자가 나날이 늘어나고 폭증을 하여, 지금은 성경을 정확무오라고 알고 있는 숫자는 희귀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와 같이 오늘도 성경은 정확무오라는 입장이 견지되고, 오히려 이런 확신이 갈수록 더 강해지게 만드는 것이 백목사님의 교훈입니다. 이 교훈 선상에서 이글은 진행되는 것입니다.

②성경은 정확무오입니다. 그런데 정확무오가 없는 번역을 동시에 명령했습니다.

성경이 정확무오하다면, 그 성경이 다른 나라 말로 번역이 되는 것은 필연입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복음으로 주셨고 복음은 모든 민족 땅 끝까지 전할 내용이라면, 그렇다면 전하는 사람이 외국어를 배우던 배우는 사람이 원어를 배우던 성경 번역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번역이란 정확무오가 없습니다. 정확무오가 있을 수가 없는 '번역'을 이방인에게 주시고 모국어를 하는 이들에게 '정확무오'를 주셨다면 이는 구원의 차별이겠습니다. 하나님이 차별하신다면 우리는 이를 감사히 받는 신앙일 뿐입니다. 그러나 차별하지 않으심을 보여주셨으니,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 강림에서 인간으로서는 넘어갈 수 없는 '번역' 의 벽을 성령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번역할 때 번역할 사람들이 오순절 방언의 능력을 다 받아야 하고 그 결과로 번역된 번역본들은 정확무오한 '번역본'이라야 되는가?

③원본의 정확무오도 성령으로 깨닫게 하지 않으면 전부가 틀린 말로만 들립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이 정확무오한 성경이 없어 정확무오하게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까?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에게 모세가 기록해준 성경에 틀린 곳이 많아 그들이 바로 깨닫지 못했습니까? 마태복음 원본성경에 헬라어 원어로 기록된 내용 중에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준비하라 하신 '검'을 원어로 잘 알아듣는 제자였습니다.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고 했고 주님은 '족하다'고 했습니다. 갈릴리 출신이라 사투리까지도 이해를 하는 완벽한 언어소통자였습니다. 그러나 말고의 귀를 잘랐을 때, 주님은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하리라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검'이라는 말씀을 실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검을 내어놓는 베드로는 그 당시로는 '검'을 알아 들을 성령의 사람이 되지를 못했으나, 돌이킨 후에야 성령으로 그때 검이 그 검이 아님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원본을 보고 원본의 내용을 잘못 깨닫는 사람들이 원본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아예 원본 성경을 역사 교회에게 주지를 않으시고 다 없애버렸습니다. 사본성경은 오류를 전제로 한 성경입니다. 역사 교회는 정확무오한 성경을 가지지 못해서 바른 구원을 이루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원본을 제거하시고 사본만 남겨두심은 그 사본을 성령으로 읽는 사람들에게는 사본의 오류를 찾을 수 있도록 그 오류 때문에 자기들에게 이룰 구원에 지장이 되지 않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먼저 선포하시고 그다음 그 내용을 가지고 심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라는 속성과, '계약성' 섭리 역사를 두고 그렇게 단정을 하는 것입니다.

원본 자체가 없어진 역사교회는 비록 모국어를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성령으로가 아니면 원본의 정확무오에 접근할 수 없도록 되었습니다. 사본의 오류에 성령으로 깨달으면 사본의 오류를 초월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사본이 번역된 번역성경은 그 내용의 정확도가 사본원어 성경에 비할 바 없이 부족하지만, 얼마든지 양심을 기우려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따라 나서면 번역성경의 오류를 초월하고 넘어설 수 있고 따라서 성경이 인도하는 정확무오한 신앙길을 따라 갈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 성경이라는 교리를 확실히 붙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주장입니다.

④실은 언어변천에 상관이 없는 유일한 번역이 바로 '성경번역'입니다.

성경이란 한번 적혀져서 인간에게 넘겨지면 그다음에는 수정과 개정이라는 작업이 해당되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변화된 언어환경을 가진 다음 시대 교인들에게는 혼란이 되지 않겠습니까? 성경을 대할 때 만큼은 모든 것을 성경에 맞추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적힌 글도 그러하고 성경에 있는 제도와 사상도 그러합니다. 인간이 인간적으로는 대해봐야 성경이 성경으로 보이지를 않습니다. 계시록과 다니엘 에스겔서는 노스트라무스가 저술할 수 있는 수준의 책이며 시편 잠언 전도서는 중국의 명심보감에도 있는 것이며 창세기로부터 역대하까지는 각국의 상고사와 중세사 정도의 역사서에 흔한 수준입니다. 4복음서 등 신약은 불교계에 내려오는 불경과 저자만 다른 것입니다.

성경은 원본에 손댈 수 없고 원본에 언어를 맞추어야 할 유일한 '서적'입니다. 원어로 된 헬라어와 히브리어는 2천년에서 3천5백년전에 쓰여진 그 상태로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그 원어들의 현대적 사용은 완전히 변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2-3천5백년 전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지 바꾸지를 않고 있습니다.
번역본은 시대마다 언어변천을 따라야 한다는데 그 발상 자체가 완전히 틀렸습니다.

⑤성경번역 문제만 나오면 '원어학자'들의 세계가 됩니다. 대단한 오해이며 오만입니다.

원어로 기록한 성경이기 때문에 성경의 원어는 결코 무시하지 않습니다. 대단히 존중하며 그 원어로 기록한 뜻을 알고 싶어 있는 노력을 기우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원어환경을 가진 사람이라고 원어성경을 바로 볼 수 있는지?

한글로 된 한글 시를 한국인이 아니라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12년 간 매일 국어공부를 하고 또 국어 시험을 칩니까? 대학교 국문과를 4년간 전공하는 것은 국어가 모국어가 아니라 그렇습니까? 더구나 2천년 전 한국언어를 완벽한 상태로 우리가 가질 있다면 그 언어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2천년 전 언어환경을 구성한 그 시대 사회로 돌아가지 않으면 유물로 남은 파편으로 추론할 뿐, 그 의미를 그렇게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를 보세요'를 줄이면 '여봐라'입니다. 100년 환경과 오늘 환경에 이 말들은 아주 다른 의미들이 됩니다. '여기를 보세요'를 더 줄이면 '여보'가 됩니다. 이 여보라는 단어는 여기를 보세요를 줄임말이라고 국어 언어학자들이 언어 기술상 유권해석을 한다고 치더라도 부부간에 부르는 '여보'의 뜻은 전혀 다릅니다.

이상의 시가 한글인데 한글로 된 이상의 시를 제대로 이해하는 한국사람이 없다면, 이상보다 더 높은 차원의 하나님께서 적어놓은 원본성경의 원어 뜻을 어학적 입장에서 접근하려는 발상은 비신앙적 신학을 만들고야 맙니다. 이것이 백목사님이 신학의 근본 터라고 여겨지는 원어를 거의 개의치 않으시고 평생을 번역된 '개역 한글성경' 한권에 집중하고 오신 이유입니다. 그에게는 모든 언어환경적으로 볼 때 불가능이라 할 수 있는 수준의 '전무식한 분'이었으나 원어로 통달하고 내려온 2천년 교회 교리와 성경 해석을 그 초월한 차원에서 자유롭게 진리 안에 자신을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⑥우리가 가진 오류있는 번역본, 여기에 저자이신 성령을 모시는 길만이 우리의 길입니다.

성경은 그 저자가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기록하신 성경임은 상식이라 생각하고, 그렇다면 번역이라는 필연적인 오류를 아시는 하나님, 알면서도 번역으로 우리에게 성경을 전하신 하나님의 뜻은, 정확무오한 원문을 주지 않으시겠다는 뜻이 아니라 성령이 저자이며 저자이신 성령을 찾는 사람, 성령에 감화를 많이 가진 사람이라면 오류가 있는 번역본에서 원문을 찾아나설 수 있을 것이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실감하고 성령으로 살지 않은 사람이라면 비록 원본성경을 쥐어줘도 그에게는 원본이 원본으로 보여지고 들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따지고 본다면, 이스라엘 백성이라 더 유리할 것도 없고 외국어로 원어를 접해야 하는 우리라고 조금도 불리할 것이 없으며, 오직 성령의 사람으로 사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 성령의 감동이면 그 어떤 길이라도 순종으로 따를 수 있는 사람이라야 성경에 정통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⑦이러므로, 새로운 번역의 시도를 전면 반대하는 것입니다.

원어학이 위주가 되고 신학 학위의 권위가 번역의 주체가 되는 것이 오늘의 번역현장입니다. 그 사람이 성령으로 사는 성령의 사람인지 여부는 가릴 수도 없고 가려야 한다는 생각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냄새도 없습니다. 성령은 없고 학자만 모였으며, 성령의 음성 영감은 없고 원어만 남아 있는 곳, 그곳에서 비록 원본성경을 발굴하고 재현하더라도 그들에게는 그 원본이 없어져야 할 이상한 서류로 보여지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글들이 조각조각 났던 것은 그 시대에만 특수하게 있던 일이 아닙니다.

새로운 번역을 시도하는 것보다 비교적, 또 우리 현실에서는 가장 기대 가능한 범위에서 번역했던 것이 현재 우리가 가진 '번역본'입니다. 이 정도에서 '번역한글'은 고정을 시켜 놓고 그다음 부분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가르치고 알리면 되는 일입니다. '낙타'를 '약대'라고 번역되어 요즘 청년들이 무슨 말인지를 모른다면 '낙타=약대'라고 한 마디 하면 될 것 아닙니까? 성경의 언어는 비록 사본일찌라도 2천년에서 3천5백년 이전에 적힌 그 원어 그 단어 그대로만 배껴 적지 변화된 언어환경을 이유로 사본을 배껴 적으면서 변화된 단어로 교체하는 일이 없습니다. 번역이야 원어 사본작업에 비할 수는 없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3천 5백년 전 언어환경에서 만들어진 성경 원어를 오늘 시대에 맞게끔 성경 본문을 고쳐 현대인에게 편리성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읽는 이들이 3천 5백년 전에 기록된 글인 줄 알고 있으니까 그 면을 알고 그다음 읽으면 되는 것입니다.

⑧세상도 '5-60년 된 가사'들을 그대로 부르고 있습니다.

애국가의 '보우하사'라는 단어는 애국가 외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사어입니다. 그렇다고 애국가는 국가적 권위를 생각해서 그 단어를 유행가 변하듯 변경시키지는 않습니다. 3.1독립선언문을 그대로 읽어보면 그 맛이 있습니다. 성경은 늘상 우리에게 쉬임없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사용되고 있는 성경이기 때문에 '약대=낙타'로 되는 것이 그리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 정도 수고도 하기 싫어 세상 썩은 모든 지식은 대용량 수퍼 컴퓨터를 동원해서 저장하고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 입에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는 잠언 26:15이 해당되어서야, 그런 정성이라면 성령이 오지도 않을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순종에 투자했을 때 비로소 움직이십니다.

⑨시와 그림을 일반인이 알기 쉽도록 손을 댄다면,

일반인에게 교육을 시키고 이해를 시켜 문학인 시와 예술인 그림을 접하게 합니다. 만일 수준급에 시와 그림을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한다면서 설명문으로 시를 바꾸어 쓰고, 피카소의 그림에다 한국화가들이 덧칠을 몇 군데 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도록 하는 일이 과연 있을 수 있겠습니까?

쉽게 이해가 되도록 하여 그 뜻이 다 전달되었다 해도 이미 그 시는 시가 아니고 그 그림은 예술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원문과 원상을 손대지 않는 것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시나 예술에 한결같이 다 고상한 차원을 가진 이들이며 그들이 시나 예술은 손 하나 대서도 안된다며 하는 사람들이며, 또 그렇게 손 대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 지성인들입니다. 대단한 모순입니다. 인간이 도토리 키 재기로 높여 놓은 수준은 있는 그대로를 감상하라고 하고 하나님이 정확무오로 주신 말씀은 인간 키에 맞춰 분해 조립을 새로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보잉747 최신형 여객기를 선물받은 포장마차 장사꾼이 여객기 여기 저기를 뜯어내어 최고급 포장마차를 몇 개 만들었다면 그들 세계에서는 대단히 부러움을 사겠지요. 그 여객기를 그 여객기 원래의 용도대로 사용한다면 그 사람은 영어를 배우고 조종사 면허증을 따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런 세계는 먼 훗날일 것이며 또 특수한 몇 사람에게 해당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선 포장마차 장사들만 모여 있는 자기 사회에서는 그 여객기 몸체 여기 저기에서 뜯어낸 좋은 재질의 재료로 초일류 포장마차를 만드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변화되는 인간사회에 변동없는 성경을 변동시켜 인간에 맞게끔 화장을 고쳐 새로 내놓았으니 인기는 대단히 좋을 것입니다. 죄악의 낙일 것이며 악습에 익숙한 사람들의 입맛에는 맞기 때문에 호응도는 시간만 지나면 분명 좋아질 것입니다만 그대신 성경 이름만 남고 그 내용은 성경이 아니겠지요?

3.총공회 교단 내부에서조차 이미 '성경번역의 필요성'을 반대할 사람은 없습니다.

무작정 반대하고 나설 이들은 더러 있습니다. 한글성경이 정확무오한 바로 그 성경인 줄로 아는 정도의 교인들도 더러 있습니다. 보수신앙 계열에서 나타나는 아쉬운 면들입니다. 번역성경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신학사상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번역성경에 대한 신학적 문제점을 정확히 그리고 낱낱이 알고 있는 학자들입니다. 그들이 그 신학지식으로 성경번역을 반대하고 나서야 그들 속에 들어있는 신학이 비로소 산 신학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걸어온 신앙노선의 성격상 그렇다는 말입니다.

앞으로 찬송가가 통일되듯이 성경이 만일, 한국 교계적 지지를 받으며 단일 번역본을 배출시킨다면 성서공회는 즉각 기존 한글 성경을 찬송가 통일 때 했던 것처럼 그 저작권을 근거로 회수할 것입니다. 다행히 성경 번역이 여러갈래로 찢겨지고 나뉘어지면 그 틈에 우리같이 '기존 개역성경 보관' 주장자들이 현재 성경을 좀 더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환경을 우리에게 주실런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이미 성경번역을 두고 성서공회가 '표준새번역'으로 또 '개역개정판'번역으로 교계를 좌우로 한번씩 흔들었고 그 파동에 넘어가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예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성서공회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표준새번역'을 발간했을 때, 기독지혜사라는 주석성경으로 유명한 출판사가 판권 등 여러 영업적 문제점을 간파하고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 맞설 수 있는 보수측 교단을 결집하여 기존의 '성서공회'를 필적하는 '성경공회'가 결성이 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서공회의 '표준새번역'을 아주 반대하는 쪽입니다. 그러나 그 표준새번역의 문제점 때문에 보수교단들이 일시적 충동과 감정으로 또 성서공회가 독주하는 것이 못 마땅한 분들이 일거에 힘을 합해 현재까지 보던 '개역'을 수정한 '보수측 개역보완판 성경'을 내어놓았다는 것은 또 하나의 반동적 폐단이라고 봅니다. 성서공회가 성급했고 서툴렀다면 그 반동의 산물인 '성경공회'는 '급조'라고 해야겠고 '성깔'이라고 해야 될 정도로 성경에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오류가 있는 현재의 '개역성경',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조심하고 더 정확한 뜻은 이 정도 성경이라면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그 정확한 말씀에게 나아가는 것이 지혜롭다고 보며, 오류가 있는 성경에 '오류'를 주시하여 그 '오류'를 바로 잡는다고 나서는 이들이 있다면 결코 더 큰 오류를 만들어 신앙의 근본을 다 흔들어 놓으리라 보며, 그것은 표준새번역이던 성서공회에 반발하는 성경공회 보수교단의 새로운 번역이던 결과는 같으리라고 봅니다.

마지막 한 마디 안따깝게 덧붙일 말씀은, 이 모든 번역에는 교계를 다 삼킨 무서운 적,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돈'이 '학자들의 명예욕심'과 함께 번역성경 사업에 관련된 광범위한 사건들에 길목마다 지키고 서서 번역관련 결정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답변 : (김정수)
(2000-09-19 23:37: 4)

'개역개정판, 감수용'에 대한 언어학적인 검토 (관리자 인용)


(*번역에 관련된 '참고문'입니다. 읽기에 편리하도록 칸 띄우기를 했습니다. 관리자)

<성경 전서 개역 개정판, 감수용>에 대한 언어학적인 검토 한양 대학교 교수 김 정수

대한 성서 공회에 따르면, 한국 교회의 사랑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성경 전서 개역 한글판>(이하, "개역판")은 1911년에 완역되고 1938년에 대폭 개정되었다가 1961년에 최종적으로 개정된 것인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개역 성경 자체의 번역의 어려움과 언어의 변천에 따른 우리 말 표현과 어휘의 변화 때문에 개역 성경을 다시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교회의 요청에 따라 1983년부터 10 년 동안 "개역 개정 위원회"를 통해 개역 개정판의 원고를 준비하고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여러 교단에서 대표로 파송한 성경학자, 신학자, 목회자, 국어학자 등으로 구성된 "성경 전서 개역 한글판 개정 감수 위원회"를 거쳐 개정 작업을 마쳤다고 한다. 그 결과가 이제 1997년 11월 20일 발행의 <성경 전서 개역 개정판, 감수용>(이하, "개정판")으로 나타난 것이다.

성서 공회에서는 이보다 앞서 1968년 1월 신구교 대표로 구성된 공동 위원회를 통해서 공동 번역을 시작하고 1977년 부활절에 <공동 번역 성서>(이하, "공동 번역")를 발행했다. 이 책은 세계 성서 공회 연합회와 바티칸이 합의한 번역 지침과 공동 위원회 자체의 번역 원칙에 따라 이루어 진 것으로 신구교에서 함께 쓰이게 하려고 만들어 진 현대말 성경이다. 그러나 성서 공회는 6 년 뒤인 1983년부터 오직 신교만을 위한 또 다른 현대말 성경을 준비해서 1992년 성탄절에 <성경 전서 표준 새 번역>(이하, "새 번역")을 발행했다. 이번의 <성경 전서 개역 개정판, 감수용>은 공동 번역으로도, 새 번역으로도 충족시킬 수 없는 교회의 다른 요구를 위해서 나오게 되었을 것이다. 그 요구는 개정판의 보수적인 문체로 짐작컨대 공동 번역도 새 번역도 받아들이지 않는 보수적인 신교인들과 교회의 요구일 것이며, 그 목표는 개역판을 개정판으로 완전히 바꾸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번은 구교와 신교의 화합을 위해서, 한 번은 신교의 젊은이들을 위해서 봉사한 성서 공회가 이제 또 한 번은 신교의 늙은이들 또는 젊지 않은 이들을 위해서 봉사하자는 데에 이 새로운 번역의 뜻을 둔 것으로 인정된다.

대강 훑어 보면 개정판은 개역판의 옛말 문체를 보전하면서 일부 어휘와 표현의 현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그래서 개역판에 길든 사람들이 개정판의 달라짐을 알아차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제한해서 어렵지 않게 옮겨 갈 수 있기를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렇게 되기만 한다면 개정판은 성공작이 될 것이다.

1911년의 개역판이 1938년의 대폭 개정을 거쳐 1961년의 최종 개정에 이른 것이라 했거니와, 거기서 다시 이번 1983년부터 1997년에 이르는 동안 개정판에서 표현이 바뀌는 모습도 역시 대폭적임을 보면, 성서 공회는 성경 번역에 대해서 여간 대담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성경 독자들도 마찬가지로 여간 관대하지 않거나 무관심하거나 했기에 이런 폭넓은 개정이 가능했을 것이다. 새로운 번역이 아니고 개정이어서 유감스럽기라도 하다는 듯이 대략적인 문체의 동질성을 겨우 유지하는 한계 안에서 개정 작업이 상당히 자유롭게 이루어 져 있으니 말이다.

두드러진 차이를 보자. 창세기 1장에서, 어휘 부류로 "가라사대"는 어김 없이 "이르시되"로, "칭하다"는 "부르다"로, "육축"은 "가축"으로, "공중"은 "하늘"로, "식물"은 "먹을 것"으로, "비취다"는 "비추다"로 바뀌었다. "빛과 어둠"을 "그 빛과 그 어둠"으로, "궁창"을 "그 궁창"으로, "뭍"을 "그 뭍"으로, "모인 물"을 "그 모인 물"로 바꾸어 지시 대명사 "그"를 많이 첨가한 점도 눈에 크게 띈다. 조사 부류로서 "하나님의 보시기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로, "생물로 번성하게 하라"는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로 바뀌었다. 어미 부류로서 "창조하시니라"는 "창조하셨느니라"로, "하시매"는 "하시니"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로 바뀌었다. 뒤에 말할 어미의 예외를 빼고는 대체로 현대인의 언어 감각에 맞지 않는 것을 거의 다 바꾸기로 했음을 알 수 있다. 창세기 2장 2절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는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로부터 일곱째 날에 쉬시니라"로 바뀌어 부분적인 대조가 어려울 만큼 문장 전체가 크게 바뀌었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가 이 개정판 전체에서 문장을 마치는 어미 "-니라"나 "-더라"를 "-었다"로 모조리 바꾸기만 하면 개정판 자체가 꽤 자연스러운 현대말 성경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개정판의 문체를 옛말투로 보이게 하는 것은 대체로 이 종결 어미 "-니라"와 "-더라" 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어미 부류 가운데 "-이러라"를 "-이더라"로, "-뇨"를 "-냐"로, "-이니라"를 "-이라"로, "-신대"를 "-시니"로, "-이어든"을 "-일진대"로, "-이로라"를 "-이라"로 바꾼 것은 일관성도 지키지 않았거니와 현대화라는 명분에도 맞지 않고 국어학의 전문 지식이 충분히 적용되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내가...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 5: 17)를 "내가...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로 바꾸었는데, 여기 "함이로라"의 "-로-"는 "보내노니, 이르노니, 왔노라" 등의 "-노-"에 포함된 "-오-"와 더불어 그 주체가 일인칭임을 나타내는 문법 기능을 가진 형태소이기 때문에 "함이로라"를 "함이라"로 하려면, "보내노니, 이르노니, 왔노라" 등에서도 같은 형태소를 모조리 빼어 "보내나니, 이르나니, 왔다" 등으로 바꾸었어야 옳다. "이루려 하심이니라"(마 2: 15)를 "이루려 하심이라"로 바꾸어 "-니-"를 빼려면 "따르니라, 유익하니라, 나느니라" 등의 "-니-"도 다 빼고 어형 전체를 "따르다, 유익하다, 난다" 등으로 크게 바꾸었어야 맞는다.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마 2: 4)를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로 바꾸었는데, 의문 종결 어미 "-뇨"는 그 문장 안에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등의 의문사가 있을 때 곧 설명 의문문에서 쓰이고 의문사가 없는 의문문 곧 판정 의문문에서는 "-냐"가 구별되어 쓰인 것인 만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러라"(마 1: 17)를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더라"로 바꾸었으면, "이루려 함이러라"(마 2: 23)도 "이루려 함이더라"로 바꾸었어야 일관성이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렇게 하지 않은 정당한 이유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개정판의 개정 위원회와 감수 위원회의 위원들이 반세기 이상의 거리를 둔 개역판의 한국말과 현대 한국말의 구조적인 차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일했다는 증거 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이런 형태소들에 대해서 이토록 무감각하지만, 개역판의 번역자들과 당대 한국 사람들은 이들을 잘 알고 세심히 구별하면서 썼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교회에서 흔히들 혼동하고 쓰는 "복"과 "축복"(복을 비는 일)이라는 중요한 낱말 한 쌍이 개역판 어디에도 혼동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아울러 참조하기 바란다.

1911년에 완역된 개역판이 27 년이 지난 1938년에 대폭 개정되었다는 것도 본격적으로 따져 볼 필요가 있거니와, 이 개역판이 86 년이나 또는 59 년이나 지난 1997년에 이처럼 언어학적인 오류를 크게 지닌 채로 대폭 개정된다는 것은 어느 모로나 적절하지 못한 일이다. 반세기나 넘은 시기의 문헌을 개정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개정 주체의 근본적인 한계를 인식하지 못한 무리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중요한 이유는 개역 개정 위원회와 감수 위원회 등에 참여한 20세기 말기의 성경학자, 신학자, 목회자들이 20세기 초기의 한국말을 정확하게 구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점은 위에 지적한 바 문법 형태소 전반에 대한 잘못과 소홀함으로 보아 단언할 수 있다. 이런 일은 오늘날의 누가 맡아도 거의 마찬가지일 것이다. 옛글을 읽을 줄 아는 것과 옛글을 짓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개정판의 감수 위원회에 국어학자가 참여했다고는 하나 그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느끼기 어렵다. 종결 어미나 겨우 유지하는 개정판이 개역판을 대신하기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치다고 생각된다. 잘 모르는 보통 사람들이 속아 주기를 기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런 저런 차이를 알거나 설명을 듣고 이해하거나 한 분들은 개정판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 같지 않다.

언어는 낱말이나 형태소 등의 요소를 대강 대강 섞고 뭉쳐도 무관한 집합체가 아니라 모든 요소가 치밀한 관련을 맺고 이루는 정교한 구조물이다. 이 구조물은 시대를 따라 전면적으로 변화하는 유기체와 같은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개역판 성경의 모든 언어적인 사항들은, 문체든, 개별 어휘든, 문법적인 조사며 어미들이든, 개역 당시인 20세기 초기 한국말의 유기적인 구조로 인정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보존해야 서로 가장 잘 어울리며 저마다 지닌 본래의 의미와 기능이 살게 된다. 어려운 어휘나 표현 등에 대해서는 찬송가에서처럼 각주 등의 방식으로 풀이해 주는 것으로 족히 여겨야 한다.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경우와 독자를 위해서는 <새 번역>도 있고 <공동 번역>도 있지 않은가? 이처럼 절제 없이 정당한 이유도 없이 빼고 바꾸고 한 개정판의 사이비한 옛말투는 아무런 가치도 매력도 없다.

20세기 초기 한국말과 20세기 말기 한국말은 도저히 한데 섞일 수 없도록 이질적인 구조물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귀한 만큼 그것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한국말도 가장 귀하고 순결한 것이어야 할텐데, 개정판의 균질하지 못한 한국말은 품격이 낮은 피진(pidgin) 언어와 같다. 하나님께서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소와 나귀를 함께 부리지 말고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라"(신 22: 9- 11) 하신 말씀을 이 경우에 적용해도 좋지 않을까 한다.

차라리 성경학계의 최신 연구 결과에 비추어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잘못이 혹 있다면 바로잡고, 누가 보아도 분명한 문법적인 잘못이나 편집의 잘못 또는 인쇄 단계의 잘못 등을 고치는 정도에서 그치는 수정판이 절실하다. 필자가 1981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개역판에서 찾아 내고 성서 공회에 보고한 잘못만도 500 군데가 넘는데 최근판에서마저 아직 충분히 고쳐 지지 않았다. 책에 잘못된 곳이 있으면 수정판을 내든지, 그럴 형편이 못 되면 고침표라도 따로 만들어 책에 끼워 내는 것이 세상 사람의 출판 관행이며 윤리이건만, 성서 공회는 무슨 면책 사유라도 있는가? 이런 흠만 찾아 고친 수정판만으로도 훌륭한 봉사가 될 것이다.

1998. 1. 5.

대한 성서 공회 귀중

2차 답변 : yilee
(2000-11-07 20:47:52)

성경 개정판에 대한 성서공회의 소개 - 1


대한성서공회: 서울 서초구 서초2동 1365-16/(TEL)3474:3061/(FAX)3474:1268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감수용) 출간 - 대한성서공회 -

1997년 11월에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이 감수 본문으로 출간되었다. 현재 한국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1961년판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을 개정하기 위하여 1983년 9월부터 1988년 4월까지 개역개정위원회에서 개정실무 작업을 진행하였고, 1993년 8월 파송된 교단 대표들로 구성된 "성경전서 개역판글판 개정감수위원회"가 조직되었다. 1993년 6월에 모두 마무리되어 11월에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이 감수 본문으로 출간되었다.

1.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 개정 감수 위원회" 조직

현재 한국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1961년판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을 개정하기 위하여 1983년 9월 12일부터 1988년 4월 29일까지 개역개정위원회에서 개정 실무 작업을 진행하였고, 개역개정위원회에서 작업한 개정 자료에 근거하여 대한성서공회 이사회는 1991년 9월 17일 개역 개정을 위해 전제와 기준을 마련하였고, 각 교단에 개역 개정 감수위원회의 대표 파송을 요청하였으며, 1993년 8월 16일 파송된 교단 대표들로 구성된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 개정 감수 위원회"가 조직되었습니다.

대한성서공회 이사회가 밝힌 개역 개정의 전제 내용은, "개역"이 현재까지 교회 안에서 독점적으로 사용되어 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앞으로도 중요하게 사용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 동안 시대와 언어와 세대의 변화를 감안하여 불가피한 부분을 수정함으로써 개역이 앞으로도 효과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데 지장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2. 개역 성경의 개정 기준 (1991. 9. 17 이사회)

본 안은 "개역"이 교회 안에서 현재까지 독점적으로 사용되어 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동안 중요하게 사용될 것이 확실함을 전제로 하고, 그 동안의 시대와 언어와 세대의 변동을 감안하여, 불가피한 부분만을 수정함으로써, 개역이 앞으로도 효과적으로 널리 사용되는데 지장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기준 :

2.1.
원본은 개역이 사용한 원본을 그대로 존중하고, 그 후에 발견된 원본과 차이가 있더라도 이를 따르지 아니한다.

2.2.
따라서 개역 당시의 원본에 비추어 오역이 분명한 것이 발견된다면 이를 시정하는데 그치고, 그 후에 발견된 원본과의 차이 중에서 꼭 필요한 부분은 "난외주"로 표시한다.

2.3.
언어와 표현은 현대인 특히 청년층에 이해될 수 없거나 오해될 염려가 확실한 것만을 수정하되, 고체라 하더라도, 쉽게 배울 수 있거나 배워서 알아 둘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와, 현대체로 대안이 만족하지 않은 경우에는, 수정하지 아니한다.

2.4.
한자 및 한자음도 이상에 준한다.

2.5.
개역의 '무-드'를 그대로 유지한다.

3. 개역 성경 개정 원칙

3.1.
문법상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

3.2.
어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

3.3.
개역당시 어휘의 선택이 현재 그 의미가 바뀌어 오해가 있을 경우 현대 어휘로 고친다. 과거에는 통용되었으나 현재에는 잘 쓰이지 않거나 어려운 말은 쉬운 말로 바꾸어 쓴다.

3.4.
제 3인칭 대명사 '저'와 '저희'는 각각 '그'와 '그들'로 고친다.

3.5.
사투리는 표준말로 바로잡는다.

3.6.
준말은 그 원말로 바꾼다.

3.7.
수치감이나 혐오감을 유발시키는 말은 다른 말로 대치한다.

3.8.
명사나 대명사에서 의미 전달에 꼭 필요한 경우 소유격과 복수형을 분명히 밝힌다.

3.9.
개역의 본문이 오역임이 확실한 것은 바른 번역으로 고친다.

4. 감수 작업의 원칙 및 작업 방법

4.1.
감수 원칙은 성서공회 이사회가 제시한 개정 원칙에 준한다. 개정 원칙은 개역이 사용한 원본을 존중하며, 오역이 분명한 것은 시정하고, 한자어를 포함하여 개역의 언어와 표현이 현대인들에게 오해될 염려가 있는 것은 수정한다는 것이다. 특히 개역의 "무드"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을 중시하였다.

4.2.
감수 작업은 위원장의 사회로 감수위원 과반수 이상이 출석한 회의에서 이루어지며 개정위원회의 개정안 본문을 감수위원들에게 미리 나누어주고 회의에서 마태복음부터 한 장씩 위원들이 돌아가며 큰 소리로 읽고 매 장마다 감수위원들이 제기한 문제들을 위원장이 토론에 부친 후(토론에는 원문 대조 및 여러 역본들의 비교와 함께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개정안의 선택은 종다수로 결정하고, 3인 이상의 반대가 있을 경우는 개정안을 버리고 본래 개역 본문을 그대로 두기로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투표로 개정 본문을 확정하기보다 대부분 만장 일치로 의견을 모았다.

4.3.
감수위원회는 감수 과정에서 원문 대조에 특히 유의하여 작업하였으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원문 대조 문제가 제기될 때는 가능한 한 최근의 편집 본문 신약 희랍어 성경(GNT UBS4판)과 구약(BHS)까지 철저히 대조하였다.

4.4.
감수된 원고 자료는 성서공회에 넘겨져서 개정 감수 본문으로 정리되어 다시 감수위원들에게 전달되고, 감수위원회에서는 위원들이 그것을 돌아가면서 2∼3장씩 큰 소리로 다시 읽은 후 감수가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고, 누락된 부분을 보완하거나 꼭 필요한 부분을 추가한 후, 감수 확정 본문을 결정하였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때로는 두 반으로 나누어 작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감수 확정 본문은 언제나 전체 회의에서 결정하였다.

4.5.
감수위원회의 모임은 보통 1주일에 하루를 정하여(주로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성서공회 9층 회의실에서 작업한 것을 1회로 셈 하였다. 여름, 겨울 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3∼5일간 서울 근교 수양관에서 집중 감수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5. 회의 진행

1993년 8월 16일부터 시작된 개역개정 감수작업이 1997년 6월 28일 총 157회 회의로 모두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 작업에는 총 3년 10개월이 소요되었으며 각 교단에서 파견된 열아홉 분의 위원들(강성찬, 강흥복, 김영백, 김중은, 김이곤, 도한호, 박병진, 박재택, 배제민, 엄현섭, 오택근, 유영기,조병수(중도 교체), 이대용, 최의원, 오병세, 명성훈, 송재석 이상훈)께서 수고하였습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은 97년 11월에 출간됩니다.

6. 개정 건수

6.1.
신약 27권에서 개정 감수 확정된 것은 12,823개소이다(각 책에 따른 개정 개소의 수는 다음과 같다: 마 1425; 막 1011; 눅 1690; 요 1238; 행 1788; 롬 727; 고전 764; 고후 532; 갈 242; 엡 233; 빌 135; 골 143; 살전 138; 살후 95; 딤전 182; 딤후 135; 딛 83; 몬 44; 히 629; 약 167; 벧전 195; 벧후 122; 요일 163; 요이 28; 요삼 29; 유 51; 계 834).

6.2.
개역 개정판 구약에서만 개정한 건수는 59,889건이다.

6.3.
신구약전서에서 모두 합쳐서 대략 72,732 건을 개정하였다.

7. 개정 내용(창세기 시편을 중심으로 대략의 예를 찾음)

7.1.
번역을 고친 것 (번역을 보완한 곳)

창1:21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창6:14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창13:3
그가 남방에서부터 →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창41:1
하숫가에 섰는데 →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창50:12
{야곱}의 아들들이 부명을 좇아 →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
게 명령한 대로 그를 위해 따라

시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46:10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시49:13
저희의 이 행위는 저희의 우매함이나 후세 사람은 오히려 저희 말을 칭찬하리로다 →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의 길이며 그들의 말을 기뻐하는 자들의 종말이로다
시74:14 }1)}악어의 → }1)}리우야탄의

시78:62-64
[62]
그 백성을 또 칼에 붙이사 그의 기업에게 분내셨으니 → 그가 그의 소유 때문에 분내사 그의 백성을 칼에 넘기셨으니

[63]
저희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저희 처녀에게는 혼인 노래가 없으며 → 그들의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그들의 처녀들은 혼인 노래를 들을 수 없었으며

[64]
저희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저희 과부들은 애곡하지 못하였도다 → 그들의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그들의 과부들은 애곡도 하지 못하였도다

시124: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7.2.
음역 : 인지명 모든 음역은 개역을 따르되, 꼭 필요한 부분은 개정하였다. (어려운 원어를 이해할 수 있는 우리말로)

창33:19
일백개로 → 1)백 {크시타}에 샀으며

창6:15
{규빗} → 1){암마},

시18:5
음부의 →{스올}의

시편 6편
제목 {스미닛}에 맞춘 노래 →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

7.3.
어려운 한자어

창1:11
과목을 → 나무를

창1:14
주야를 → 낮과 밤을

창1:26
공중의 → 하늘의, 육축과 → 가축과

창2:5
경작할 → 땅을 갈

창2:18
독처하는 → 혼자 사는

창4:22
동철로 → 구리와 쇠로

창5:23
향수하였더라 → 살았더라

창14:17
파하고 → 쳐부수고

창15:4
후사가 → 상속자가

창21:1
권고하셨고 → 돌보셨고

창24:33
식물을 → 음식을

창29:31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시편 4편
제목: 영장으로 → 지휘자를 따라

시6:8
악행하는 → 악을 행하는, 곡성을 → 울음 소리를

시10:8
향촌 유벽한 → 마을 구석진

시12:8
비루함이 → 비열함이, 처처에 → 곳곳에서, 횡행하는도다 → 날뛰는도다

시15:5
변리로 대금치 →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요동치 → 흔들리지

시42:7
엄몰하도소이다 → 휩쓸었나이다

시46:3
흉용하고 → 솟아나고

시81:3
월삭과 월망과 → 초하루와 보름과, 절일에 → 명절에

시89:40
보장을 훼파하셨으므로 → 요새를 무너뜨리셨으므로

7.4.
낯선 한문 번역투를 쉬운 우리말로

창19:2
경야하리라 → 밤을 새우리라

창21:8
대연을 배설하였더라 →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창27:34
방성대곡하며 → 소리내어 울며

창49:26
부여조의 → 선조의

시5:8
원수들을 인하여 → 원수들로 말미암아

시7:5
진토에 떨어뜨리게 → 먼지 속에 살게

시27:4
청하였던 → 바라는, 생전에 → 평생에, 거하여 → 살면서, 앙망하며 → 바라보며

시28:9
저희의 목자가 되사 →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드십소서 → 그들을 인도하소서

시29:3
뇌성을 발하시니 → 우렛소리를 내시니

시57:1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시71:6
주의 붙드신 바 되었으며 → 주를 의지하였으며, 내 어미 배에서 주의 취하여 내신 바 되었사오니 →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시76:1
알린 바 되셨으며 → 알려지셨으며

시91:6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 하지 아니하리로다

시109:16
긍휼히 여길 → 인자를 베풀, 한 연고니이다 → 하였기 때문이니이다

시119:148
묵상하려고 →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7.5.
문장 단위로 번역 고친 예(번역의 개정)

창2: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 하나님이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고 그가 하시던 모든 일로부터 일곱째 날에 쉬시니라

창2:4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창24:2
청컨대 네 손을 내 환도뼈 밑에 넣으라 →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시27:1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시33:17
구원함에 말은 헛것임이여 그 큰 힘으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

시49:8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시58:1
인자들아 너희가 당연히 공의를 말하겠거늘 어찌 잠잠하느뇨 너희가 정직히 판단하느뇨 →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의를 말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느냐 인자들아 너희가 올바르게 판결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느냐

7.6.
한글맞춤법에 따른 교정

창20:8 일찌기 → 일찍이

창24:42
아니할찌라도 → 아니할지라도

창25:27
사냥군 → 사냥꾼

창31:18
가려 할쌔 → 가려 할새

창30:35
수염소 → 숫염소

시18:26
사특한 → 사악한, 거스리심을 → 거스르심을

시2:11
즐거워할찌어다 →즐거워할지어다

시90:10
년수가 → 연수가

7.7. 옛말
가라사대 → 이르시되

창3:20
어미가 → 어머니가

창24:22
약대가 → 낙타가

창37:36
시위대장 → 친위대장

창45:8
치리자를 → 통치자로

7.8.
조사 어미(옛말투 조사, 옛말 어미의 변화)

창1:25
하나님의 → 하나님이

창3:17
너더러 → 네게

창15:18
{아브람}으로 → {아브람}과

창31:42
아니하셨더면 → 아니하셨더라면

창44:27
나간고로 → 나갔으므로

시2:1
열방이 → 이방 나라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 헛된 일을 꾸미는가

시4:2
변하여 → 바꾸어, 허사를 → 헛된 일을, 궤휼을 → 거짓을, 구하겠는고 → 구하려는가

시4:4
무지하뇨 → 무지하냐, 저희가 → 그들이

시8:4
무엇이관대 → 무엇이기에, 저를 → 그를, 무엇이관대 → 무엇이기에, 저
를 → 그를, 권고하시나이까 → 돌보시나이까

시11:3
할꼬 → 하랴

시12:1
자가 → 자들이, 없어지도소이다 → 없어지나이다

시18:42
열방의 → 여러 민족의, 으뜸을 → 으뜸으로

시52:7
하나님으로 → 하나님을, 힘을 → 힘으로, 그 → 자기, 제 → 자기의,
든든케 → 든든하게

시121:1
어디서 올꼬 → 어디서 올까

시121:3
너로 → 너를, 실족지 → 실족하지, 않게 → 아니하게, 자가 →이가

7.9.
우리말 표현

창3:7
치마를 하였더라 → 치마로 삼았더라

창8:8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창13:14
동서남북을 →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창19:9이
놈이 → 자가

창30:35
자와 → 것과, 있는 자를 → 점 있는 것을

창35:17
두려워말라 → 두려워하지 말라

창37:10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
하매 아버지가

창41:40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 →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창50:2
향 재료로 아비의 몸에 넣게 →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창50:6
아비를 → 아버지를

7.10. 동음이의어

창15:1 이상 → 환상

7.11.
난하주 변경 사항 :
난하주를 추가하거나 불필요한 난하주를 없애어 이해를 도왔다.

창1:2
또는 '형체가 없는' → 난하주첨가

창1:14
광명이 → 1)광명체들이 :{히}, 또는 '발광체'

창1:26
온 땅과 → 1)온 땅과 :{시리아}어 역본에는 '온 땅의 짐승과'

창2:7
생령이 → 1)생령이 :{히}, '생물'

창2:9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1)도 :선악 지식의 나무

창4:1
동침하매 → 1)동침하매 :{히}, '알게 되매'

창4:8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 {아벨}에게 1)말하고 :고대 역본들에 의하면 "우리가 들로 나가자"가 있음

창6:15
{규빗}, → 1){암마}, :길이의 단위로 약 45센티미터임

창38:21
창녀가 → 1)창녀가 :{히, 크데샤, 가나안} 이방 성소의 창녀

창48:22
일부분을 → 1){세겜} 땅을 :또는 '한 몫을'

창49:33
그 열조에게로 → 그의 1)백성에게로 : 또는 '열조에게로'

성경 개정판에 대한 성서공회의 소개 - 2


<성경전서 개역 개정판>(1998년 8월 31일 초판)을 출간하였습니다

훈민정음에 기록된 중세국어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언어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고 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모든 언어는 변화합니다. 이와 같은 언어의 변화는 성경의 번역에도 영향을 미쳐서, 새로운 번역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그동안 써 오던 번역의 개정의 필요성도 제기됩니다. 이것은 우리 한글 성경의 경우만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성경에 해당되는 일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한국 교회에서 읽고 있는 <성경전서 개역한글판>도 여러 차례의 손질과 개정을 거쳐 오늘에 이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말 성경은 1911년에 <구역> 성경이 완역되어 출간된 이래로, 1938년에 개정되어 출간된 <개역>과 1952년으로부터 1961년에 이르는 개정이 반영되어 출간된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으로 이어지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한국 교회의 사랑을 받아 온 자랑스러운 성경입니다. 그러나 이 오래 된 성경을 그대로 계속해서 쓰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학교 교과서와 국어 사전 및 모든 출판물에서 쓰는 한글 맞춤법이 변하였고, 사람들이 사용하는 현실 언어도 많이 변하여서, 개정을 해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또 성서학이나 언어학 고고학 등 관련된 학문도 눈부시게 발전하여, 부분적으로 본문 자체의 번역을 손질할 필요도 생겼습니다. 또 그동안 개역한글판 성경을 사용하면서 발견된 문제들도 보완하고 개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고쳐야 할 필요가 있는 곳만을 고친다는 원칙 하에 개정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1983년 9월부터 약 10년간의 작업 끝에 '개역 한글판 개정 원고'가 완성되었고, 1993년 8월 16일 각 교단에서 대표로 파송한 성서학자 신학자 목회자 국어학자 등으로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 개정 감수 위원회"가 조직되어 4년 동안 157회의 독회와 토론을 거쳐 개정 원고를 감수하였으며, 그 결과 1995년 11월에는 <개역 개정판 신약전서>가 출간되고, 1997년 11월에는 <성경전서 개역 개정판>(감수용)이 출간되었습니다.

대한성서공회에서는 이렇게 완성된 <성경전서 개역 개정판>을 1997년 11월 20일 감수용 성경으로 제작하여, 1,500여명 이상의 한국 교회 중진 목회자들과 학자들에게 보내어 의견을 들었습니다. 보내온 의견들 가운데는 <성경전서 개역 개정판>이 아주 잘 되었다고 반가워하는 의견들이 많았고, 개역이 틀리지 않았지만 더 좋게 하느라고 고친 어떤 곳들에 대해서는 개역대로 두면 좋겠다고 하는 의견들도 있었고, 추가로 더 개정할 곳이나 이미 개정된 곳에 대한 새로운 개정안을 제시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1998년 5월에는 개정위원들과 감수위원들이 모여서 한국 교회로부터 들어온 의견들을 최종적으로 수렴하여 개정판에 반영하였습니다.

이번 개역 한글판의 개정과 감수 작업을 통해서 우리는 개역 성경이 원문과 대조해 볼 때에, 원전에 충실한 좋은 번역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위원들은 개정 작업을 하는 동안, 개역 성경이 직역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또한 결코 축어적이거나 기계적이지 않으며, 유연하고 간결한 한글 문어체의 감동을 전해 주는 훌륭한 번역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번에 개역 성경을 개정하면서는 이러한 점을 중시하여, 기본적으로 개역의 "무드"를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틀리지 않았으면 개역 성경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원칙 하에 개정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좀더 좋은 성경, 좀더 이해하기 쉬운 성경을 만들려는 모든 분들의 열성과 노력으로, 처음 개정을 시작할 때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많은 곳을 개정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전서개역개정판>(감수용)을 출판할 때에, 신약 27권에서 개정된 곳은 약 12,823곳, 구약에서 개정된 곳은 약 59,889곳, 이렇게 신구약전서에서 모두 합쳐서 대략 72,732곳을 개정하였습니다.

이것은 한국 교회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또 부분적으로 적지 않은 곳이 추가로 개정이 되었습니다. 이 단계의 개정에서는 대부분, 한국 교회로부터 <개역 개정판>(감수용)에 대하여 이견이나 이의가 제기된 본문들 또는 논란이 된 본문들을 살펴보고, 검토를 하였습니다. 이들 가운데에는 경우에 따라서 개정 본문이 원래의 개역 본문보다 좀 더 쉽게 된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문제가 된 본문들 가운데에서 원래의 <개역 한글판>의 번역이 틀리지 않은 경우에는 개역대로 두는 쪽으로 개정을 하여, 최대한 현재의 <개역 한글판>을 존중한다는 정신으로 개정 작업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기에는 아쉬움도 없지 않았지만, 아쉬운 부분은 다음 세대의 과제로 넘기기로 하고, 자료집으로 남겨서 연구 과제로 삼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성경전서 개역 개정판>의 최종 결정판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개역 개정판>의 전체적인 개정 특징을 들어보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1 시대와 언어의 변화를 감안하여 꼭 고쳐야 할 부분만을 개정함으로써 <개역 한글판>의
번역을 최대한 존중하였다.

2 개역의 문체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3 개역 본문의 번역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보완하여 개정하였다.

4 인명과 지명 기타 외래어 음역은 개역을 그대로 따르고, 개역에서 문제가 있는 부분만
개정하였다.
5 국어 맞춤법이 달라진 곳을 개정하였다.

6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본문은 알기 쉽게 개정하였다.

7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옛 말이나 한자어는 알기 쉬운 말로 개정하였다.

8 문법상 잘못된 문장을 개정하였다.

9 사투리는 표준말로 개정하였다.

10 전체적으로 준말은 본디말로 환원하되 준말이 표준어로 정착된 것과 같은 특별한 경우는
예외로 하였다.

11 특정한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는 용어는 개정하였다.

12 개역 본문 아래의 난하주(註)는 그대로 두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추가하거나 개정하였다.

13 개역이 사용한 원본을 존중하며, 원문 대조 문제가 제기될 때는 가능한 한 최근의 편집
본문 신약 희랍어 성경(GNT UBS 4판)과 구약(BHS)까지 철저히 대조하였다.

오랜 기간 동안 한국 교회를 위한 이 일을 성실과 인내로 감당해 주신 개정위원 감수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좋은 의견을 보내 주신 학자님들 목회자님들, 관심을 보내 주시고 기도로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개역 개정판>이 나올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이제 개역 개정판 성경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말로 좀더 바르게 전달되고 분명하게 이해되어 문자 그대로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성경전서개역개정판>(1998년 8월 31일 초판)에서 추가로 다시 개정된 예

1 개역대로 환원

창21:16화살 <쏜 만큼>한 바탕 거리 떨어져
창22:10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창24:10성에
창29:13 {라반}에게 말하매

2 번역 문제 개정(경배-예배)
개역 개정판에 나오는 '경배'를 '예배'로 고친 곳
창22:5 출32:8 출33:10 삼상1:3 왕상16:31 왕상22:53 왕하17:36 왕하18:22 대하29:30 대하32:12 욥1:20 시5:7 시29:2 시96:9 시99:5 시99:9 시132:7 시138:1-2 사27:13 사36:7 사66:23 렘7:2 렘26:2 사37:38 겔8:16 겔46:2 겔46:3 슥14:16-17
마10:5고을에도

3 동음이의어
마1:1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족보라 >계보라

4 어려운 한자어
마5:25너를 <송사하는>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마15:13내 하늘 아버지께서
마24:9내 이름 때문에
창7:6며느리들과

5 준말 - 본디말
마21:33<산울로>산울타리로

6 표준어
창29:3 우물 <아구>아귀

7 조사 어미
마4:3<아들일진대>아들이어든
마24:35천지는 <없어질지라도>없어질지언정
창1:1천지를 창조하시니라

8 문법
마5:45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마6:30믿음이 작은 자들아
마12:47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서 있나이다
마13:50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갈리라
마24:35천지는 <없어질지라도>없어질지언정
창4:14 너무 <무겁나이다>무거우니이다
창39:14내게로 들어오므로

9 문체 조정
창24:49인자함과 진실함으로
창25:2{수아}를 <낳았고>낳고

10 장애인 관련 용어 순화
마11:[5]맹인이 보며 <앉은뱅이가>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못 듣는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1) 문둥병> 나병; 문둥병자>나병환자
2) 소경>맹인
3) 난쟁이>키 못 자란 사람; 곱사등이>등 굽은 자 레21:[20]
4) 벙어리>말 못하는 사람 출4:11[11] 마12:22
5) 귀머거리(시58:4와 같은 곳은 개역대로 둠) 출4:[11]
6) 절뚝발이>다리 저는 자 막9:[45]
7) 불구자>장애인 마15:[30-31]
8) 앉은뱅이>못 걷는 사람 마11:[5]
9. 병신>몸 불편한 사람/몸 불편한 자 눅14:[13]

11 음역 개정
<1){암마}>1){규빗},

12 난하주 보완
'세례'가 있는 곳에는 모두 난하주를 답니다. 난하주: 헬, 또는 침례
18:8 각주 {헬}, 생명에

13 원문 대조
창8:[1]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창35:[10]<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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