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가는 문제에만 주력했던 시대, 이제는 다음을 살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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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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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5 20:39
태어 난 아이에게 모든 것을 한꺼번에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차량은 출고 되는 순간 100% 상태입니다. 그리고 폐차할 때까지 갈수록 낡아 지고 스러 집니다. 생명은 생겨 진 순간이 가장 보잘 것 없으나 갈수록 점점 완전을 향해 나아 갑니다.
한 사람과 한 교회도 그렇지만 역사 교회도 생명성으로 인도하시니 갈수록 자라 가게 됩니다. 초대교회보다 개혁교회가 훨씬 자랐고 지금은 더욱 자랐어야 정상이며 옳습니다. 신약의 2천년 대부분은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가는지에 집중 되었습니다. 그 2천여 년의 수고 끝에 이제는 천국에 가는 문제는 완벽하게 깨달았으나 평생 살며 우리가 만들어 놓은 오염 탈선 불의 죄악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을 살필 시점입니다. 천주교는 연옥이라는 개념으로 해결하려 했으나 그 것은 상상을 넘어 망상이 되었습니다. 홍포 입은 부자의 음부 상황이 정확한 실상입니다. 한 번 존재한 것은 없어 지지 않고 반드시 그 행위까지 심사를 받습니다. 하나님께 붙들리지 않은 것을 영원히 불 태우는 곳이 지옥입니다. 사람 자체가 구원과 상관이 없는 불택자는 사람 자체가 지옥에 버려 지고, 택자들은 사람 자체는 구원을 얻었지만 그 속에 생각과 행위에 잘못 된 것은 어떻게 될까? 행한 대로 갚는다 하셨으니 택자의 잘못 된 행위와 그 행위에 관련 된 모든 것은 지옥에 분리 수거 되어야 합니다.
지방교회는 20세기 초의 혼동 혼탁의 시절에 잠깐 시대의 빛으로 활동했는데 빛의 사자가 너무 짧게 증거하고 가셨으므로 이후 발전에 큰 차질이 있었다고 보입니다. 위트니스 리 목사님이 워치만 니 목사님을 이어 최근까지 세계의 지방교회를 지도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이나 워치만 니 목사님은 무에서 유를 만들었다고 한다면 위트니스 리는 넘겨 받는 교회를 잘 유지했다는 정도로 평가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의미 있는 깨달음의 발전이나 성장은 보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심지어 워치만 니 목사님과 수평 비교를 하는 분들은 위트니스 리 목사님의 길은 다른 길이라고까지 비판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고 듣고 있습니다. 크게 본다면 워치만 니 목사님의 위치는 20세기 초의 상황에서는 시대의 빛이었다고 보이나 이후 본질적 발전이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20세기 중반에 시작하고 20세기 내내 발전의 기회를 가진 공회 노선과 수평 비교하는 것은 죄송할 일입니다.
즉, 천주교 1천 년 세월을 정죄하고 교회를 새 출발 시킨 개혁교회는 천국 가는 것만 제대로 설명한 하나의 공로만 가지고도 역사 교회에 영광의 교회라고 생각하며, 지방교회는 20세기 초에 개혁교회가 나아 갈 다음을 연 수고만 해도 그 시대의 영광의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개혁교회의 1500년대 역할은 빛이었으나 그 이후 그들의 후학들이 보인 모습은 처참했으니 그들이 지방교회의 후학을 비판하는 것은 스스로의 논리로 봐도 나쁜 짓이라고 보입니다. 공회는 20세기 후반을 감당했다고 볼 때 앞 선 교회들과 수평 비교는 곤란하며 공회는 역사 발전적인 면으로 볼 때 구원 받은 성도의 잘못 산 부분까지 명확하게 했다는 점에서도 진일보 된 교회라고 보입니다.
선과 악, 죄와 의, 빛과 어두움을 주셨는데 선과 의와 빛만 살핀다면 자라 가는 과정에서 한 쪽만 본 것이며 악과 죄와 어두움을 제대로 봐야 양면을 통해 원만하게 되고 이렇게 자라 가야 완전에 이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 칼빈주의 님이 쓰신 내용 <<
:
: 정통칼빈주의에서는
:
: 성도가 죽게되면서 영화되는 순간, 성도안에 오염과 부패성은
: 없어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
: 선악간에 심판이 있고, 상급의 차이가 나고, 영광이 다르고, 성화가 많이 된 성도일수록
: 예수님과 보다 가까이 있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
: 그런데 심신이 죄를 지어서, `죄한 순간의 그 현실 - 심신의 작용들 - 죄에 사용된 만물들 - 심신의 죄를 통하여 형성된 범죄한 기능` 들이 지옥에 가지 않는다면
:
: 선악의 개념이 무의미 해지는 것이 아닌가요?
: 범죄한 기능이(오염성과 부패성) 지옥에 가지 않고, 칼빈주의의 설명데로
: 오염성과 부패성이 사라진다고만 하면(어떻게 사라지는지에 대해서 설명이 거의 없습니다)
:
: 결국 선악에 대한 의미가, 모든 성도의 선한 언행심사와 악한 언행심사가 모두
: 무의미 지는것이 아닌가요?
:
: 범죄한 죄의 기능이 무로돌아가거나, 사라지거나 하면
: 선과 악 의와 죄의 개념이 없어지는것이 아닌지?
: 선과 악 의와 죄의 의미가 없어지는것이 아닌지?
:
: 궁금합니다.
:
:
: 지방교회의 이땅에서 어떻게 살던 모든 성도가 동일해진다는 교리를 접하면서
: 모두가 동일해지면 이땅에서의 선과 악의 개념이 없어지고 의미가 없어지는것이 아닌가?
: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
: 나아가 칼빈주의에서는 영화되는 순간 성과 부패성(죄의기능)이 없어지는것으로 봅니다.
: 죄의 기능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당하지 않고, 사라진다면 무로 돌아간다면
: 결국 선과 악의 개념이 무의미 해지는것이 아닌가 싶어서 질문을 드립니다.
:
: 예전에 어떤 명망있는 무신론자가, 사후에 무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 사람은 이땅에서 선하게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 내세가 없다면, 이 땅에서의 모든 선한삶 악한삶이 아무 의미가 없지 않나 하는
: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방교회의 새하늘새땅에서 모든 성도가 동일해지거나
: 칼빈주의에서 죄의 오염성과 부패성이 무로 돌아간다며, 선과 악 선한 삶 악한 삶
: 모두 아무 의미가 없지않나 생각이 들어서 질문을 올립니다.
:
: (두서없이 글을 올립니다.) 이영인 목사님께서 답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 사람과 한 교회도 그렇지만 역사 교회도 생명성으로 인도하시니 갈수록 자라 가게 됩니다. 초대교회보다 개혁교회가 훨씬 자랐고 지금은 더욱 자랐어야 정상이며 옳습니다. 신약의 2천년 대부분은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가는지에 집중 되었습니다. 그 2천여 년의 수고 끝에 이제는 천국에 가는 문제는 완벽하게 깨달았으나 평생 살며 우리가 만들어 놓은 오염 탈선 불의 죄악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을 살필 시점입니다. 천주교는 연옥이라는 개념으로 해결하려 했으나 그 것은 상상을 넘어 망상이 되었습니다. 홍포 입은 부자의 음부 상황이 정확한 실상입니다. 한 번 존재한 것은 없어 지지 않고 반드시 그 행위까지 심사를 받습니다. 하나님께 붙들리지 않은 것을 영원히 불 태우는 곳이 지옥입니다. 사람 자체가 구원과 상관이 없는 불택자는 사람 자체가 지옥에 버려 지고, 택자들은 사람 자체는 구원을 얻었지만 그 속에 생각과 행위에 잘못 된 것은 어떻게 될까? 행한 대로 갚는다 하셨으니 택자의 잘못 된 행위와 그 행위에 관련 된 모든 것은 지옥에 분리 수거 되어야 합니다.
지방교회는 20세기 초의 혼동 혼탁의 시절에 잠깐 시대의 빛으로 활동했는데 빛의 사자가 너무 짧게 증거하고 가셨으므로 이후 발전에 큰 차질이 있었다고 보입니다. 위트니스 리 목사님이 워치만 니 목사님을 이어 최근까지 세계의 지방교회를 지도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이나 워치만 니 목사님은 무에서 유를 만들었다고 한다면 위트니스 리는 넘겨 받는 교회를 잘 유지했다는 정도로 평가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의미 있는 깨달음의 발전이나 성장은 보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심지어 워치만 니 목사님과 수평 비교를 하는 분들은 위트니스 리 목사님의 길은 다른 길이라고까지 비판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고 듣고 있습니다. 크게 본다면 워치만 니 목사님의 위치는 20세기 초의 상황에서는 시대의 빛이었다고 보이나 이후 본질적 발전이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20세기 중반에 시작하고 20세기 내내 발전의 기회를 가진 공회 노선과 수평 비교하는 것은 죄송할 일입니다.
즉, 천주교 1천 년 세월을 정죄하고 교회를 새 출발 시킨 개혁교회는 천국 가는 것만 제대로 설명한 하나의 공로만 가지고도 역사 교회에 영광의 교회라고 생각하며, 지방교회는 20세기 초에 개혁교회가 나아 갈 다음을 연 수고만 해도 그 시대의 영광의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개혁교회의 1500년대 역할은 빛이었으나 그 이후 그들의 후학들이 보인 모습은 처참했으니 그들이 지방교회의 후학을 비판하는 것은 스스로의 논리로 봐도 나쁜 짓이라고 보입니다. 공회는 20세기 후반을 감당했다고 볼 때 앞 선 교회들과 수평 비교는 곤란하며 공회는 역사 발전적인 면으로 볼 때 구원 받은 성도의 잘못 산 부분까지 명확하게 했다는 점에서도 진일보 된 교회라고 보입니다.
선과 악, 죄와 의, 빛과 어두움을 주셨는데 선과 의와 빛만 살핀다면 자라 가는 과정에서 한 쪽만 본 것이며 악과 죄와 어두움을 제대로 봐야 양면을 통해 원만하게 되고 이렇게 자라 가야 완전에 이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 칼빈주의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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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통칼빈주의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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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가 죽게되면서 영화되는 순간, 성도안에 오염과 부패성은
: 없어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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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악간에 심판이 있고, 상급의 차이가 나고, 영광이 다르고, 성화가 많이 된 성도일수록
: 예수님과 보다 가까이 있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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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심신이 죄를 지어서, `죄한 순간의 그 현실 - 심신의 작용들 - 죄에 사용된 만물들 - 심신의 죄를 통하여 형성된 범죄한 기능` 들이 지옥에 가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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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악의 개념이 무의미 해지는 것이 아닌가요?
: 범죄한 기능이(오염성과 부패성) 지옥에 가지 않고, 칼빈주의의 설명데로
: 오염성과 부패성이 사라진다고만 하면(어떻게 사라지는지에 대해서 설명이 거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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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선악에 대한 의미가, 모든 성도의 선한 언행심사와 악한 언행심사가 모두
: 무의미 지는것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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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한 죄의 기능이 무로돌아가거나, 사라지거나 하면
: 선과 악 의와 죄의 개념이 없어지는것이 아닌지?
: 선과 악 의와 죄의 의미가 없어지는것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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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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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교회의 이땅에서 어떻게 살던 모든 성도가 동일해진다는 교리를 접하면서
: 모두가 동일해지면 이땅에서의 선과 악의 개념이 없어지고 의미가 없어지는것이 아닌가?
: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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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아가 칼빈주의에서는 영화되는 순간 성과 부패성(죄의기능)이 없어지는것으로 봅니다.
: 죄의 기능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당하지 않고, 사라진다면 무로 돌아간다면
: 결국 선과 악의 개념이 무의미 해지는것이 아닌가 싶어서 질문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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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어떤 명망있는 무신론자가, 사후에 무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 사람은 이땅에서 선하게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 내세가 없다면, 이 땅에서의 모든 선한삶 악한삶이 아무 의미가 없지 않나 하는
: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방교회의 새하늘새땅에서 모든 성도가 동일해지거나
: 칼빈주의에서 죄의 오염성과 부패성이 무로 돌아간다며, 선과 악 선한 삶 악한 삶
: 모두 아무 의미가 없지않나 생각이 들어서 질문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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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서없이 글을 올립니다.) 이영인 목사님께서 답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범죄한 죄의 기능이 지옥에 가지 않으면, 이땅에서 성도의 선과 악은 무의미 해지는것이 아닌가요?
정통칼빈주의에서는
성도가 죽게되면서 영화되는 순간, 성도안에 오염과 부패성은
없어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선악간에 심판이 있고, 상급의 차이가 나고, 영광이 다르고, 성화가 많이 된 성도일수록
예수님과 보다 가까이 있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심신이 죄를 지어서, `죄한 순간의 그 현실 - 심신의 작용들 - 죄에 사용된 만물들 - 심신의 죄를 통하여 형성된 범죄한 기능` 들이 지옥에 가지 않는다면
선악의 개념이 무의미 해지는 것이 아닌가요?
범죄한 기능이(오염성과 부패성) 지옥에 가지 않고, 칼빈주의의 설명데로
오염성과 부패성이 사라진다고만 하면(어떻게 사라지는지에 대해서 설명이 거의 없습니다)
결국 선악에 대한 의미가, 모든 성도의 선한 언행심사와 악한 언행심사가 모두
무의미 지는것이 아닌가요?
범죄한 죄의 기능이 무로돌아가거나, 사라지거나 하면
선과 악 의와 죄의 개념이 없어지는것이 아닌지?
선과 악 의와 죄의 의미가 없어지는것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지방교회의 이땅에서 어떻게 살던 모든 성도가 동일해진다는 교리를 접하면서
모두가 동일해지면 이땅에서의 선과 악의 개념이 없어지고 의미가 없어지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나아가 칼빈주의에서는 영화되는 순간 성과 부패성(죄의기능)이 없어지는것으로 봅니다.
죄의 기능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당하지 않고, 사라진다면 무로 돌아간다면
결국 선과 악의 개념이 무의미 해지는것이 아닌가 싶어서 질문을 드립니다.
예전에 어떤 명망있는 무신론자가, 사후에 무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사람은 이땅에서 선하게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내세가 없다면, 이 땅에서의 모든 선한삶 악한삶이 아무 의미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방교회의 새하늘새땅에서 모든 성도가 동일해지거나
칼빈주의에서 죄의 오염성과 부패성이 무로 돌아간다며, 선과 악 선한 삶 악한 삶
모두 아무 의미가 없지않나 생각이 들어서 질문을 올립니다.
(두서없이 글을 올립니다.) 이영인 목사님께서 답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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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죽게되면서 영화되는 순간, 성도안에 오염과 부패성은
없어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선악간에 심판이 있고, 상급의 차이가 나고, 영광이 다르고, 성화가 많이 된 성도일수록
예수님과 보다 가까이 있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심신이 죄를 지어서, `죄한 순간의 그 현실 - 심신의 작용들 - 죄에 사용된 만물들 - 심신의 죄를 통하여 형성된 범죄한 기능` 들이 지옥에 가지 않는다면
선악의 개념이 무의미 해지는 것이 아닌가요?
범죄한 기능이(오염성과 부패성) 지옥에 가지 않고, 칼빈주의의 설명데로
오염성과 부패성이 사라진다고만 하면(어떻게 사라지는지에 대해서 설명이 거의 없습니다)
결국 선악에 대한 의미가, 모든 성도의 선한 언행심사와 악한 언행심사가 모두
무의미 지는것이 아닌가요?
범죄한 죄의 기능이 무로돌아가거나, 사라지거나 하면
선과 악 의와 죄의 개념이 없어지는것이 아닌지?
선과 악 의와 죄의 의미가 없어지는것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지방교회의 이땅에서 어떻게 살던 모든 성도가 동일해진다는 교리를 접하면서
모두가 동일해지면 이땅에서의 선과 악의 개념이 없어지고 의미가 없어지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나아가 칼빈주의에서는 영화되는 순간 성과 부패성(죄의기능)이 없어지는것으로 봅니다.
죄의 기능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당하지 않고, 사라진다면 무로 돌아간다면
결국 선과 악의 개념이 무의미 해지는것이 아닌가 싶어서 질문을 드립니다.
예전에 어떤 명망있는 무신론자가, 사후에 무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사람은 이땅에서 선하게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내세가 없다면, 이 땅에서의 모든 선한삶 악한삶이 아무 의미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방교회의 새하늘새땅에서 모든 성도가 동일해지거나
칼빈주의에서 죄의 오염성과 부패성이 무로 돌아간다며, 선과 악 선한 삶 악한 삶
모두 아무 의미가 없지않나 생각이 들어서 질문을 올립니다.
(두서없이 글을 올립니다.) 이영인 목사님께서 답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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