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아니라 세상 단체를 경영한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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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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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6 00:00
1. 행복한 고민, 망령 된 죄
회사는 쪼갤 수 있습니다. 돈벌이에 유리하면 열 개로 쪼갰다가 한 자리에서 다시 모아 놓고 M&A라고 유식한 말을 하나 척! 사용하면 모두가 감탄합니다. 회사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고아원을 하나로 유지하는 것보다 반씩 나누어 두 개가 되면 국고 지원금이 많아 질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그냥 턱! 쪼개 버리는 것입니다. 운영자도 좋고 얻어 먹는 아이들도 운영자가 한 푼이라도 더 벌면 뭐가 남아도 남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아이를 많이 낳은 부부가 아이가 많다고 남의 가정에 척척 입양을 해 대는 경우를 보셨을까요? 여자 애 기르기 귀찮다고 여자 아이들은 전부 보낸다든지, 머리 나쁜 아이 순서로 고아원에 줘 버린다든지 그러는 경우가 있을까요?
교회에 교인 한 명이 하늘처럼 보이고 새 교인 한 명이 오면 온 교인이 전율하며 환영하는데 교인이 너무 많아서 정원제를 하겠다 이미 다니는 교인들은 내 보내겠다는 말을 한다면 참으로 배가 불러 행복한 고민에 빠진 교회인가 본데 문제는 이 교회가 회사처럼 세상 단체처럼 교회를 운영했지 생명을 낳고 길러 가는 가정적 교회는 아닐 것입니다.
교회란 개척부터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결혼이라는 것을 철때기 없는 20대들이 제 눈에 좋은 대로 하는 그런 짓처럼 교회 개척도 정말 주님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서 할 수 없이 하는 것이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개척을 했다면 제 멋대로 운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인을 많이 모으기 위해 무조건 어떤 방법이라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 인간이 생각하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바른 교회라면 교회가 아무리 커진다 해도 나누고 보내고 줄이는 것도 제 멋대로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2. 교회를 가지고 아주 놀고 있습니다.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아이를 5 명 6 명을 낳고 보니 2 명 아이가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부부가 2 명만 남기고 나머지 3 - 4 명 아이를 옆 집이나 고아원이나 해외에 보내려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부의 결혼과 출산과 양육과 입양은 놀이터에서 유치원 아이들이 모래로 소꼽장난을 하다가 모래로 만든 살림을 뒤엎고 새로 다시 만드는 장난질입니다. 반인륜 범죄로 처벌해야 할 개망나니들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했으니 많이 낳으려 생각했다면 그 생각이 복 된 생각이고, 주시는 대로 많이 받았으면 그 자녀들이 각각 다 필요해서 주신 것입니다. 너무 많아서 후회가 된다 했다면 그 생각이 망할 생각이며 지옥 보낼 부패성입니다. 후회를 했다고 쳐도, 많다고 해서 제가 낳은 아이를 강제로 떼어 남에게 준다면 이 ㄴㄴ들이 사람입니까?
대형교회가 정말 교회라면 교회는 생명체이며 가정과 같습니다. 교회를 교회로 운영했다면, 교회가 교회로 운영 되면서 모여 진 식구라면 하나님이 보내 주신 양떼들인데 인간이 회사 운영처럼, 투자처 분산화처럼, 시민단체의 들러리 주변 단체 만들기처럼, 건설사 수주전에 짜고 들어 가려고 위장 업체 만들듯이, 교도소나 포로수용소가 재소자를 분산 배치하듯이 그 교회 교인들을 이리저리 쪼개고 흩을 수 있을까? 인간도 가정도 자녀도 생명도 모르는 막 가는 사람들의 행동입니다.
물론 참 교회라면 그렇게 할 리는 없습니다. 자녀들이 자라서 새로 가정을 출발해야 한다면 당연히 그런 과정과 모습을 통해 분가를 시키는 것이고 그 것은 생명의 자연스런 발로이며 발전이며 복입니다만 교회를 없애려고 광분한 세상이 교회 내 적기독들과 힘을 합해서 덩치 큰 교회들을 무력화하려고 교회의 대형화를 수십 년째 집요하게 물고 늘어 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부화뇌동하여 앞서거니 뒷서거니 교회를 인간 생각으로 요리조리 쪼개고 있는 것은 솔로몬의 재판에 제 새끼가 아니니 칼로 쪼개어 나누는 짓입니다.
모두가 자녀를 많이 낳으려 발버둥을 치는데 자녀가 생기지 않아서 약을 먹고 병원을 다니고 심지어 무당 굿을 하듯 장삿꾼 손님을 유치하듯 난리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했든 죄를 지어 모았든 교회가 정말 교회라면 그 교회에 온 교인을 뚝뚝 잘라서 여기저기 흩으면서 '통큰 장군님' 흉내를 내는 것도 가관이고 여러 작은 교회들을 만들어 무소유 무집착 무욕심의 아주 성자처럼 인기를 점령하면서 뒤로는 야곱이 에서를 만나러 갈 때 떼를 나누어 위험 부담을 줄이듯이 또는 금융 상품을 비롯하여 투자처를 여러 곳에 흩는 잔재주처럼 또는 시민단체 데모할 때 덩치 큰 한 단체가 주도적으로 일을 하면서 주변에 들러리 작은 단체들을 동원하듯이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지어 출산을 했든 생각하지 않았는데 생겼든 가정이 가정이라면 두 부부 살면서 낳은 제 자식을 고아원 분리처럼, 교도소 수용소의 죄수 격리처럼, 사업가의 사업체 분리 합동처럼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3. 왜 교회 분리가 하나의 유행이 되는가?
교회가 교회 아닌 방법으로 교회를 길렀고, 그 결과 교회가 교회 아닌 방법의 결과에 힘이 겹고 문제가 생기고 감당하지 못하니 이 번에는 교회가 사용해서 아니 되는 방법으로 교회를 분리 시키고 덩치를 줄이고 있는 것입니다.
1980년대부터 초대형교회들이 집중적으로 나타 나기 시작합니다. 당시 그 과정을 보면 교회가 본질적으로 버려서 안 되는 것을 다 버리고 대형화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들은 실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교회를 쪼개고 나누어 또 하나의 다음 세대를 살아 남는 방법으로 변실을 하는 것입니다. 덩치 큰 한 회사가 유리할 때는 다 모아 들이고, 작은 회사 몇 개가 함께 입찰하면 유리할 상황이 되면 부서 별로 몇 개의 회사를 따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아니라 세상 단체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설명하기는 곤란합니다. 나머지는 안 믿는 세상 학교의 경영학과에 가서 물어 보면 기막히게 설명을 해 줄 것입니다. 세상 그들의 세계가 바로 그런 것을 전문하기 때문입니다.
4. 사랑의교회?
절보다는 낫고, 안 믿고 집에 있는 것보다는 낫습니다만, 그 교회의 그들을 지도하던 선배들 시절의 교회와 비교하면 그런 교회는 교회를 세상 단체로 운영했고 그래서 현재 그런 소식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설립자 옥한음 목사님은 고신이든 총신이든 통합이든 모이기만 하면 된다는 분입니다. 진리의 근방에도 가 보지 못한 분입니다. 그냥 이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제일 좋은 아저씨인데 실력이 출중하여 서울의 요지에 잘 자리 잡고 잘 경영해서 종교 단체 하나를 잘 만든 것입니다.
그 분이 교회를 가정처럼, 그 교회를 출석하는 교인들을 한 생명의 출생과 양육과 교육의 면으로 접근했다면 내 것을 뚝 떼어 남을 주거나 장차 출생하려는 아이의 통로를 산부인과 수술로 막아서 더 이상 출산이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면 주님이 기르십니다. 주님이 주지 않는 것을 인간이 자기 방식으로 불러 모아 만들었기 때문에 숫자가 많아 지면 관리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계모에게는 전처 자식 둘도 많아서 죽을 지경이나 제 자식은 열이라도 넉넉하게 다 기르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당이란 작게 지어도 필요 없이 지으면 죄가 되는 것이고, 예배당이란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온 양 때를 보호하기 위해 지으면 아무리 크게 지어도 칭찬 받을 일입니다. 교회를 줄이면 가정이 되고 가정을 키우면 교회가 되는 이 간단한 원리조차 몰라서 생긴 일입니다.
5. 서부교회의 경우
평균 8,500여 명에 성경학교나 성탄절이 되면 13,000여 명이 한 건물에 모여 들었지만 그들은 1천 개의 개별 반의 반사 선생님들의 자식들처럼 모여 들고 나갔기 때문에 그 주일학교의 규모가 더 커지도록 기도했지 이제 그만 됐다고 만족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왕하4:1 이하에 선지자의 생도 한 사람이 죽고 그 아내가 엘리사에게 호소하기를 아이 둘을 채주가 종으로 삼으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릇을 빌려 와서 기름 한 병을 계속해서 부으라 했습니다. 6절에서 그릇을 더 빌릴 수 없다고 하자 그 순간 기름은 멎었습니다. 교회를 사회 조직체로 보고 있는 정도니 그런 교회는 잘해도 탈, 못해도 탈, 모아서 하나로 만들어도 탈, 쪼개어 여러 개로 나누어도 탈, 회관을 잘 지어도 탈, 못 지어도 탈입니다. 사고방식 자체가 잘못 된 것입니다.
서부교회가 세계 10 대 교회, 국내 5 대 교회라는 소리가 나올 때 전체 교인을 위해 드리는 예배는 각 예배 별로 한 번이었고, 그런 예배를 대예배 4 회와 새벽 예배 7 회로 계속했습니다. 주일에 여러 예배를 마련해 두고 형편 따라 와서 찍고 가라는 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는 교회고 하나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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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중)
서울의 순회 일정 때문에 내일까지 답변이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 목회자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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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명의 교인을 모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해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수만 명의 교인이 몰려드는데 이것을 막아야 하느냐 마느냐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예전에는 모으지 못해서 필사적이었고 요새는 눈치를 보면서 슬금슬금 모아야하는 것이 교계 상층부의 분위기입니다. 빈익빈 부익부라는 경제원칙을 교회 부흥에서도 봐야 합니까? 다음 현상을 살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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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교회가 복음주의면 나는 비복음주의자다
: 강남의 상징이 된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의 교회론 회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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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20일, 그간 사랑의교회 예배당 건축의 문제점을 지적해 온 '사랑의교회 건축, 어떻게 된 것인가?' 카페에는 옥한흠 목사의 아들인 옥성호 본부장이 사랑의교회 목사와 장로들에게 보냈다는 메일이 공개되었고 23일에 <뉴스앤조이>는 이와 관련해서 '아들의 격노, "아버지 옥한흠 목사를 이용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그 메일의 핵심 내용을 정리한 기사를 내보냈다. 관련 기사와 메일 전문을 읽어 보면 고 옥한흠 목사가 사랑의교회 건축을 지지했다는 교회 측 설명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구구절절 설명하였고 교회 목사와 장로들에게는 사진과 동영상이 함께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만일 이것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사랑의교회 측은 이와 관련해서 어느 정도 해명이 필요하게 될 것 같다.
:
: 이 문제는 즉각 인터넷 사이트에서 회자되었고 지금까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도 의견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메일의 내용은 이렇다. 옥한흠 목사가 원하고 찬성해서 건축을 추진했다는 교회 측 주장과는 달리 옥한흠 목사는 교회 신축과 함께 잃어 가는 사랑의교회의 명예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했다는 것이다. 또한 2009년 예배 시간에 상영된, 교회 건축을 독려했던 옥한흠 목사의 동영상은 사실 옥 목사가 오정현 목사의 거듭된 부탁에도 거절하다가 교회가 둘로 쪼개질 수 있다는 오 목사의 말에 괴로워하며 힘들게 찍었던 것이며 그 영상조차도 옥 목사의 우려의 목소리가 삭제된 채 방영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옥성호 본부장의 입장은, 교회에 실망한 교인들이 떠나가고 공공 도로 점유로 사회가 교회를 비판하며 사역 헌금들이 공사 대금으로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상상을 초월하는 은행 대출금의 이자를 내는 현 상황에서 건축은 중단되어야 하며 옥한흠 목사는 결코 '이런' 건축을 찬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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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옥한흠 목사는 생전에 인터뷰나 설교 등을 통해 자신이 강남에서 시작한 사랑의교회가 규모의 교회, 맘몬의 교회가 될까 봐 매순간 노심초사했다. 교회의 세속화를 늘 염려하며 행여 교회의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 그것이 자신의 죄라며 괴로워했다. 교회 건축에 원론적으로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은퇴 후 자신의 후임인 오정현 목사가 건축을 결정했을 때에도 그 결정이 사실상 자신이 교회를 너무 키웠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여겨 그것마저 회개의 제목으로 삼았다. 옥성호 본부장도 자신의 책에서 옥한흠 목사가 생전에 교회의 규모에 대해 우려했고 교인 수가 많아지는 현상을 반기지 않았음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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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후 저(옥한흠)는 제 목회가 자체적으로 자기모순을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너무 키워 버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 교회론에 부합한 교회는 너무 비대해져 버리면 그 정신을 살리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 목회가 교회론과 제자훈련이 엇박자를 이룬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세우는 것은, 양이 많아져 버리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제가 은퇴할 때 사랑의교회가 주일 출석 장년 교인 수 2만 3000명, 전체 등록 교인 수 5만 명, 벌써 너무 커져 버렸습니다. 지금 사랑의교회는 어찌 보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제자훈련의 선두주자로서 교회론으로 볼 때, 그 정신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또, 교회론의 본질에서도 위선자적인 입장에 빠질 수 있어 고민이 됩니다(옥성호, <아버지, 옥한흠> 143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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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반해 오정현 목사는 교회 내의 늘어나는 교인들을 가지고 끙끙거려 온 옥 목사와는 달리 예배당 건축이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행보는 사랑의교회의 또 다른 욕망이다. 사실 오정현 목사는 그간 사랑의교회에서 억압되어 온 교인들의 '이드(id)'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나는 지금도 교회 내 성도들의 절반 이상이 오정현 목사를 지지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해석한다면 사랑의교회 성도들은 그간 '초자아(superego)' 역할을 감당한 옥한흠 목사 아래서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왔던 건 아닐까. 내가 전해 듣기로 몇몇 성도들이 '우리 교회는 능력(돈)도 있는데 건물도 높게 올리고 구질구질한 공간들을 대기업 교육장처럼 깔끔하게 단장하면 안 되겠나'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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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신축 문제 이전부터 이런 조짐은 있었다. 새벽 기도의 기복성을 경계한 옥한흠 목사와는 달리 오정현 목사는 부임 직후부터 '특새(특별 새벽기도회)'를 무슨 대형 집회처럼 열었고 그곳에 온 사람들의 복을 빌어 줬다. 지방에서도 사랑의교회 '특새'에 참석해서 자신의 작은 교회에서는 받지 못했던 하나님의 복을 받아보겠다며 심야 버스를 타고 올라오던 까닭에 한동안 예배당은 타 교회 성도들로 넘쳐났다. 아마 그때부터 사랑의교회 교인들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자교회의 엄청난 스케일에 스스로도 놀라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이러한 총동원 형태의 집회 스타일에 익숙해지면서 사랑의교회 성도들은 이전에는 억눌러 왔던 메가처치의 '규모적' 감동을 영적인 코드로 욕망하게 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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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성호 집사가 보낸 메일을 통해 말하려고 했던 '아버지의 명예'는, 내가 해석하기로는 일개 가족주의적 아버지의 명예의 회복, 혹은 옹호가 아니다. 그것은 옥한흠 목사가 끝까지 분투하고 지키려 했던 규모의 신, 맘몬 신을 하나님과 함께 섬기고 있는 '강남' 지역 교인들의 '제자도'였다. 어떤 의미에서 오정현 목사는 그간 옥한흠 목사가 힘들게 지켜 내고자 했던 사랑의교회의 금욕적 제자도를 '영 단번'에 풀어 줬다. 건축 결정에 우려감을 표한 교인들도 있었겠지만, 내심 눌려왔던 욕망을 신앙의 이름으로 분출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낀 이들도 많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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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한흠 목사는 암이라는 지병을 얻어 가면서까지 교회의 세속화·맘몬화를 막으려고 노력했고, 다행히도 강남에 있는 교회 중에 '복음주의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랑의교회를 만들어 냈다. 이를 두고 청어람 양희송 대표는 사랑의교회가 강남의 핵심부에 자리 잡고 있지만 소망교회, 광림교회 등과 비교해 볼 때 쉽게 동일시되지 않는 "강남에 있지만 강남에 속하지 않는" 어떤 독특한 지점이 있었다고 말한다(양희송 대표도 2009년에 쓴 자신의 글에서 사랑의교회 신축에 대해 우려감을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사랑의교회는, 스스로가 원했던 원하지 않았건 간에 한국교회의 역사 속에서 복음주의 진영의 어떤 본이 되었고 실제로 교회의 금전 규모로 봐도 여러 기독교 핵심 사업의 중심에 설 만한 위치였음에 분명하다. 하지만 옥한흠 목사 체제가 끝나고 오정현 목사 체제가 되면서 한국 복음주의의 중요한 축이 급속도로 무너져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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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쪼갤 수 있습니다. 돈벌이에 유리하면 열 개로 쪼갰다가 한 자리에서 다시 모아 놓고 M&A라고 유식한 말을 하나 척! 사용하면 모두가 감탄합니다. 회사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고아원을 하나로 유지하는 것보다 반씩 나누어 두 개가 되면 국고 지원금이 많아 질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그냥 턱! 쪼개 버리는 것입니다. 운영자도 좋고 얻어 먹는 아이들도 운영자가 한 푼이라도 더 벌면 뭐가 남아도 남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아이를 많이 낳은 부부가 아이가 많다고 남의 가정에 척척 입양을 해 대는 경우를 보셨을까요? 여자 애 기르기 귀찮다고 여자 아이들은 전부 보낸다든지, 머리 나쁜 아이 순서로 고아원에 줘 버린다든지 그러는 경우가 있을까요?
교회에 교인 한 명이 하늘처럼 보이고 새 교인 한 명이 오면 온 교인이 전율하며 환영하는데 교인이 너무 많아서 정원제를 하겠다 이미 다니는 교인들은 내 보내겠다는 말을 한다면 참으로 배가 불러 행복한 고민에 빠진 교회인가 본데 문제는 이 교회가 회사처럼 세상 단체처럼 교회를 운영했지 생명을 낳고 길러 가는 가정적 교회는 아닐 것입니다.
교회란 개척부터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결혼이라는 것을 철때기 없는 20대들이 제 눈에 좋은 대로 하는 그런 짓처럼 교회 개척도 정말 주님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서 할 수 없이 하는 것이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개척을 했다면 제 멋대로 운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인을 많이 모으기 위해 무조건 어떤 방법이라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 인간이 생각하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바른 교회라면 교회가 아무리 커진다 해도 나누고 보내고 줄이는 것도 제 멋대로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2. 교회를 가지고 아주 놀고 있습니다.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아이를 5 명 6 명을 낳고 보니 2 명 아이가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부부가 2 명만 남기고 나머지 3 - 4 명 아이를 옆 집이나 고아원이나 해외에 보내려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부의 결혼과 출산과 양육과 입양은 놀이터에서 유치원 아이들이 모래로 소꼽장난을 하다가 모래로 만든 살림을 뒤엎고 새로 다시 만드는 장난질입니다. 반인륜 범죄로 처벌해야 할 개망나니들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했으니 많이 낳으려 생각했다면 그 생각이 복 된 생각이고, 주시는 대로 많이 받았으면 그 자녀들이 각각 다 필요해서 주신 것입니다. 너무 많아서 후회가 된다 했다면 그 생각이 망할 생각이며 지옥 보낼 부패성입니다. 후회를 했다고 쳐도, 많다고 해서 제가 낳은 아이를 강제로 떼어 남에게 준다면 이 ㄴㄴ들이 사람입니까?
대형교회가 정말 교회라면 교회는 생명체이며 가정과 같습니다. 교회를 교회로 운영했다면, 교회가 교회로 운영 되면서 모여 진 식구라면 하나님이 보내 주신 양떼들인데 인간이 회사 운영처럼, 투자처 분산화처럼, 시민단체의 들러리 주변 단체 만들기처럼, 건설사 수주전에 짜고 들어 가려고 위장 업체 만들듯이, 교도소나 포로수용소가 재소자를 분산 배치하듯이 그 교회 교인들을 이리저리 쪼개고 흩을 수 있을까? 인간도 가정도 자녀도 생명도 모르는 막 가는 사람들의 행동입니다.
물론 참 교회라면 그렇게 할 리는 없습니다. 자녀들이 자라서 새로 가정을 출발해야 한다면 당연히 그런 과정과 모습을 통해 분가를 시키는 것이고 그 것은 생명의 자연스런 발로이며 발전이며 복입니다만 교회를 없애려고 광분한 세상이 교회 내 적기독들과 힘을 합해서 덩치 큰 교회들을 무력화하려고 교회의 대형화를 수십 년째 집요하게 물고 늘어 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부화뇌동하여 앞서거니 뒷서거니 교회를 인간 생각으로 요리조리 쪼개고 있는 것은 솔로몬의 재판에 제 새끼가 아니니 칼로 쪼개어 나누는 짓입니다.
모두가 자녀를 많이 낳으려 발버둥을 치는데 자녀가 생기지 않아서 약을 먹고 병원을 다니고 심지어 무당 굿을 하듯 장삿꾼 손님을 유치하듯 난리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했든 죄를 지어 모았든 교회가 정말 교회라면 그 교회에 온 교인을 뚝뚝 잘라서 여기저기 흩으면서 '통큰 장군님' 흉내를 내는 것도 가관이고 여러 작은 교회들을 만들어 무소유 무집착 무욕심의 아주 성자처럼 인기를 점령하면서 뒤로는 야곱이 에서를 만나러 갈 때 떼를 나누어 위험 부담을 줄이듯이 또는 금융 상품을 비롯하여 투자처를 여러 곳에 흩는 잔재주처럼 또는 시민단체 데모할 때 덩치 큰 한 단체가 주도적으로 일을 하면서 주변에 들러리 작은 단체들을 동원하듯이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지어 출산을 했든 생각하지 않았는데 생겼든 가정이 가정이라면 두 부부 살면서 낳은 제 자식을 고아원 분리처럼, 교도소 수용소의 죄수 격리처럼, 사업가의 사업체 분리 합동처럼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3. 왜 교회 분리가 하나의 유행이 되는가?
교회가 교회 아닌 방법으로 교회를 길렀고, 그 결과 교회가 교회 아닌 방법의 결과에 힘이 겹고 문제가 생기고 감당하지 못하니 이 번에는 교회가 사용해서 아니 되는 방법으로 교회를 분리 시키고 덩치를 줄이고 있는 것입니다.
1980년대부터 초대형교회들이 집중적으로 나타 나기 시작합니다. 당시 그 과정을 보면 교회가 본질적으로 버려서 안 되는 것을 다 버리고 대형화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들은 실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교회를 쪼개고 나누어 또 하나의 다음 세대를 살아 남는 방법으로 변실을 하는 것입니다. 덩치 큰 한 회사가 유리할 때는 다 모아 들이고, 작은 회사 몇 개가 함께 입찰하면 유리할 상황이 되면 부서 별로 몇 개의 회사를 따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아니라 세상 단체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설명하기는 곤란합니다. 나머지는 안 믿는 세상 학교의 경영학과에 가서 물어 보면 기막히게 설명을 해 줄 것입니다. 세상 그들의 세계가 바로 그런 것을 전문하기 때문입니다.
4. 사랑의교회?
절보다는 낫고, 안 믿고 집에 있는 것보다는 낫습니다만, 그 교회의 그들을 지도하던 선배들 시절의 교회와 비교하면 그런 교회는 교회를 세상 단체로 운영했고 그래서 현재 그런 소식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설립자 옥한음 목사님은 고신이든 총신이든 통합이든 모이기만 하면 된다는 분입니다. 진리의 근방에도 가 보지 못한 분입니다. 그냥 이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제일 좋은 아저씨인데 실력이 출중하여 서울의 요지에 잘 자리 잡고 잘 경영해서 종교 단체 하나를 잘 만든 것입니다.
그 분이 교회를 가정처럼, 그 교회를 출석하는 교인들을 한 생명의 출생과 양육과 교육의 면으로 접근했다면 내 것을 뚝 떼어 남을 주거나 장차 출생하려는 아이의 통로를 산부인과 수술로 막아서 더 이상 출산이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면 주님이 기르십니다. 주님이 주지 않는 것을 인간이 자기 방식으로 불러 모아 만들었기 때문에 숫자가 많아 지면 관리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계모에게는 전처 자식 둘도 많아서 죽을 지경이나 제 자식은 열이라도 넉넉하게 다 기르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당이란 작게 지어도 필요 없이 지으면 죄가 되는 것이고, 예배당이란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온 양 때를 보호하기 위해 지으면 아무리 크게 지어도 칭찬 받을 일입니다. 교회를 줄이면 가정이 되고 가정을 키우면 교회가 되는 이 간단한 원리조차 몰라서 생긴 일입니다.
5. 서부교회의 경우
평균 8,500여 명에 성경학교나 성탄절이 되면 13,000여 명이 한 건물에 모여 들었지만 그들은 1천 개의 개별 반의 반사 선생님들의 자식들처럼 모여 들고 나갔기 때문에 그 주일학교의 규모가 더 커지도록 기도했지 이제 그만 됐다고 만족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왕하4:1 이하에 선지자의 생도 한 사람이 죽고 그 아내가 엘리사에게 호소하기를 아이 둘을 채주가 종으로 삼으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릇을 빌려 와서 기름 한 병을 계속해서 부으라 했습니다. 6절에서 그릇을 더 빌릴 수 없다고 하자 그 순간 기름은 멎었습니다. 교회를 사회 조직체로 보고 있는 정도니 그런 교회는 잘해도 탈, 못해도 탈, 모아서 하나로 만들어도 탈, 쪼개어 여러 개로 나누어도 탈, 회관을 잘 지어도 탈, 못 지어도 탈입니다. 사고방식 자체가 잘못 된 것입니다.
서부교회가 세계 10 대 교회, 국내 5 대 교회라는 소리가 나올 때 전체 교인을 위해 드리는 예배는 각 예배 별로 한 번이었고, 그런 예배를 대예배 4 회와 새벽 예배 7 회로 계속했습니다. 주일에 여러 예배를 마련해 두고 형편 따라 와서 찍고 가라는 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는 교회고 하나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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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중)
서울의 순회 일정 때문에 내일까지 답변이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 목회자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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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명의 교인을 모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해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수만 명의 교인이 몰려드는데 이것을 막아야 하느냐 마느냐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예전에는 모으지 못해서 필사적이었고 요새는 눈치를 보면서 슬금슬금 모아야하는 것이 교계 상층부의 분위기입니다. 빈익빈 부익부라는 경제원칙을 교회 부흥에서도 봐야 합니까? 다음 현상을 살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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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교회가 복음주의면 나는 비복음주의자다
: 강남의 상징이 된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의 교회론 회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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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20일, 그간 사랑의교회 예배당 건축의 문제점을 지적해 온 '사랑의교회 건축, 어떻게 된 것인가?' 카페에는 옥한흠 목사의 아들인 옥성호 본부장이 사랑의교회 목사와 장로들에게 보냈다는 메일이 공개되었고 23일에 <뉴스앤조이>는 이와 관련해서 '아들의 격노, "아버지 옥한흠 목사를 이용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그 메일의 핵심 내용을 정리한 기사를 내보냈다. 관련 기사와 메일 전문을 읽어 보면 고 옥한흠 목사가 사랑의교회 건축을 지지했다는 교회 측 설명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구구절절 설명하였고 교회 목사와 장로들에게는 사진과 동영상이 함께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만일 이것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사랑의교회 측은 이와 관련해서 어느 정도 해명이 필요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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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제는 즉각 인터넷 사이트에서 회자되었고 지금까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도 의견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메일의 내용은 이렇다. 옥한흠 목사가 원하고 찬성해서 건축을 추진했다는 교회 측 주장과는 달리 옥한흠 목사는 교회 신축과 함께 잃어 가는 사랑의교회의 명예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했다는 것이다. 또한 2009년 예배 시간에 상영된, 교회 건축을 독려했던 옥한흠 목사의 동영상은 사실 옥 목사가 오정현 목사의 거듭된 부탁에도 거절하다가 교회가 둘로 쪼개질 수 있다는 오 목사의 말에 괴로워하며 힘들게 찍었던 것이며 그 영상조차도 옥 목사의 우려의 목소리가 삭제된 채 방영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옥성호 본부장의 입장은, 교회에 실망한 교인들이 떠나가고 공공 도로 점유로 사회가 교회를 비판하며 사역 헌금들이 공사 대금으로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상상을 초월하는 은행 대출금의 이자를 내는 현 상황에서 건축은 중단되어야 하며 옥한흠 목사는 결코 '이런' 건축을 찬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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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옥한흠 목사는 생전에 인터뷰나 설교 등을 통해 자신이 강남에서 시작한 사랑의교회가 규모의 교회, 맘몬의 교회가 될까 봐 매순간 노심초사했다. 교회의 세속화를 늘 염려하며 행여 교회의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 그것이 자신의 죄라며 괴로워했다. 교회 건축에 원론적으로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은퇴 후 자신의 후임인 오정현 목사가 건축을 결정했을 때에도 그 결정이 사실상 자신이 교회를 너무 키웠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여겨 그것마저 회개의 제목으로 삼았다. 옥성호 본부장도 자신의 책에서 옥한흠 목사가 생전에 교회의 규모에 대해 우려했고 교인 수가 많아지는 현상을 반기지 않았음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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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후 저(옥한흠)는 제 목회가 자체적으로 자기모순을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너무 키워 버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 교회론에 부합한 교회는 너무 비대해져 버리면 그 정신을 살리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 목회가 교회론과 제자훈련이 엇박자를 이룬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세우는 것은, 양이 많아져 버리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제가 은퇴할 때 사랑의교회가 주일 출석 장년 교인 수 2만 3000명, 전체 등록 교인 수 5만 명, 벌써 너무 커져 버렸습니다. 지금 사랑의교회는 어찌 보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제자훈련의 선두주자로서 교회론으로 볼 때, 그 정신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또, 교회론의 본질에서도 위선자적인 입장에 빠질 수 있어 고민이 됩니다(옥성호, <아버지, 옥한흠> 143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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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반해 오정현 목사는 교회 내의 늘어나는 교인들을 가지고 끙끙거려 온 옥 목사와는 달리 예배당 건축이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행보는 사랑의교회의 또 다른 욕망이다. 사실 오정현 목사는 그간 사랑의교회에서 억압되어 온 교인들의 '이드(id)'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나는 지금도 교회 내 성도들의 절반 이상이 오정현 목사를 지지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해석한다면 사랑의교회 성도들은 그간 '초자아(superego)' 역할을 감당한 옥한흠 목사 아래서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왔던 건 아닐까. 내가 전해 듣기로 몇몇 성도들이 '우리 교회는 능력(돈)도 있는데 건물도 높게 올리고 구질구질한 공간들을 대기업 교육장처럼 깔끔하게 단장하면 안 되겠나'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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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신축 문제 이전부터 이런 조짐은 있었다. 새벽 기도의 기복성을 경계한 옥한흠 목사와는 달리 오정현 목사는 부임 직후부터 '특새(특별 새벽기도회)'를 무슨 대형 집회처럼 열었고 그곳에 온 사람들의 복을 빌어 줬다. 지방에서도 사랑의교회 '특새'에 참석해서 자신의 작은 교회에서는 받지 못했던 하나님의 복을 받아보겠다며 심야 버스를 타고 올라오던 까닭에 한동안 예배당은 타 교회 성도들로 넘쳐났다. 아마 그때부터 사랑의교회 교인들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자교회의 엄청난 스케일에 스스로도 놀라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이러한 총동원 형태의 집회 스타일에 익숙해지면서 사랑의교회 성도들은 이전에는 억눌러 왔던 메가처치의 '규모적' 감동을 영적인 코드로 욕망하게 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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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성호 집사가 보낸 메일을 통해 말하려고 했던 '아버지의 명예'는, 내가 해석하기로는 일개 가족주의적 아버지의 명예의 회복, 혹은 옹호가 아니다. 그것은 옥한흠 목사가 끝까지 분투하고 지키려 했던 규모의 신, 맘몬 신을 하나님과 함께 섬기고 있는 '강남' 지역 교인들의 '제자도'였다. 어떤 의미에서 오정현 목사는 그간 옥한흠 목사가 힘들게 지켜 내고자 했던 사랑의교회의 금욕적 제자도를 '영 단번'에 풀어 줬다. 건축 결정에 우려감을 표한 교인들도 있었겠지만, 내심 눌려왔던 욕망을 신앙의 이름으로 분출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낀 이들도 많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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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한흠 목사는 암이라는 지병을 얻어 가면서까지 교회의 세속화·맘몬화를 막으려고 노력했고, 다행히도 강남에 있는 교회 중에 '복음주의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랑의교회를 만들어 냈다. 이를 두고 청어람 양희송 대표는 사랑의교회가 강남의 핵심부에 자리 잡고 있지만 소망교회, 광림교회 등과 비교해 볼 때 쉽게 동일시되지 않는 "강남에 있지만 강남에 속하지 않는" 어떤 독특한 지점이 있었다고 말한다(양희송 대표도 2009년에 쓴 자신의 글에서 사랑의교회 신축에 대해 우려감을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사랑의교회는, 스스로가 원했던 원하지 않았건 간에 한국교회의 역사 속에서 복음주의 진영의 어떤 본이 되었고 실제로 교회의 금전 규모로 봐도 여러 기독교 핵심 사업의 중심에 설 만한 위치였음에 분명하다. 하지만 옥한흠 목사 체제가 끝나고 오정현 목사 체제가 되면서 한국 복음주의의 중요한 축이 급속도로 무너져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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